뚱보



나는 친구 리타네 집에서 커피를 앞에 놓고 담배를 피워가면서그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이다.
다음은 내가 그녀에게 얘기한 내용이다.
허브가 그 뚱뚱한 남자를 내 담당 테이블에 앉힌 건 손님이 뜸한 어느 수요일 저녁이었어.
그 뚱뚱한 남자는 단정한 외모에 아주 잘 차려입고 있긴 했지만, 난 그렇게 뚱뚱한 사람은 처음 봤어. 모든 게 다 크더라구. 하지만 가장 잘 기억나는 건 손가락이야. 그 사람 테이블 가까이에앉은 노부부의 시중을 들러 그 옆에 섰을 때 그 손가락들을 처음보았어. 보통사람 크기의 세 배는 되어 보이데. 길고 두껍고 말랑말랑하게 생겼어. - P9

나는 다른 테이블의 시중도 들어야 했어. 요구가 많은 사업가네 명이 앉은 테이블하고 남자 세 명과 여자 한명이 앉은 테이블, 그리고 노부부의 테이블이었지. 리앤더가 그 뚱뚱한 남자에게 물을 따라주었고, 나는 그 남자가 결정할 시간을 충분히 준 다음 그테이블로 갔어.
안녕하세요? 주문 받을까요? 내가 말했지.
리타, 그 남자는 덩치가 컸어, 정말 크더라구.
안녕하세요, 좋은 저녁이네요. 우리 이제 주문할 준비가 된 것같은데요, 하고 그가 말했지. - P10

그는 이런 식으로 말했어 ㅡ이상하지 않니? 그리고 때때로 조금씩 쌕쌕거리는 소리를 내더라.
시저 샐러드로 시작하는 게 좋겠어요. 그러고 나서 괜찮으시다면 수프에 빵과 버터를 곁들이구요. 양고기 요리가 좋을 것 같군요. 사워크림 얹은 구운 감자하고요. 디저트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합시다. 대단히 고맙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게 메뉴를 건넸어.
세상에, 리타, 그 손가락이라니.
나는 서둘러 주방으로 가서 루디에게 주문서를 내밀었어. 그는인상을 쓰면서 그것을 받았어. 너도 알잖아. 그 사람 일할 때면 늘그런 얼굴이지. - P10

나는 침대에 들어가서 가장자리에 딱 붙어 배를 깔고 누웠어. 그런데 불을 끄고 침대로 들어오자마자 루디가 시작하는 거야. 나는 원치 않았지만 바로 누워서 몸의 힘을 뺐어. 그런데 바로 그거였어. 그가 내 위로 올라왔을 때 난 갑자기 내가 뚱뚱하다고 느낀 거야. 내가 끔찍하게 뚱뚱하다고, 너무 뚱뚱해서 루디가 조그맣게 되어버리고 날 제대로 안지도 못한다고.
말도 안 돼, 라고 리타가 말하지만 나는 그녀가 그걸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알 수 없어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는 우울해진다. 하지만 그녀와 그 얘기를 계속 하지는 않을것이다. 벌써 그녀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말했다.
그녀는 우아한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매만지면서 기다리고앉아 있다.
뭘 기다리는 걸까? 난 알고 싶다.
8월이다.
내 인생은 변할 것이다. 나는 그것을 느낀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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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 너무한 일


이제 겨우 배가 떠서 기어다니기 시작하는 첫애기에게봉숭아 꽃물을 들여주겠다고 덤비는 엄마가 있었으니 그건 해도 너무한 일.
아이와 실랑이를 하는 엄마에게 남편은 핀잔은 주어도 그 맘속에는 엄마와 한가지인 어떤 게 있던 터라 외면하며 바라보는 여러 가지가 다 꽃 피어나듯 잔잔한 물결속인데, 그렇기는 해도 그 예닐곱 달 된 애기에게 봉숭아꽃물을 들이겠다고 한 것은 너무하긴 너무한 일이다. - P21

초승달에서



어스름 막 지난 때
노란 불을 하나 켜서 맞는
마지막 저물어가는 하늘빛 속으로
오너라
아픈 사람의 이마를 짚는 손길처럼
떡쌀에 머무는 흰빛처럼

오늘 하루
마음에 가장 오래 머문 일,
시들어 떨어지는 분꽃들
눈여겨 바라봐야 했던 일
말갛게 삭이러

허공을 파낸 이 풀씨만한 석굴(石窟)로. 분꽃이 지듯,
오너라
분꽃이 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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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오,
저 물위를 건너가는 물결들
처럼.

서른넷, 初
장석남

개정판 시인의 말


고맙게도 ‘서른넷, 初‘라고 쓴 그 아래에
나란히 이렇게 한번 더 써본다.
‘쉰여덟, 初!‘

그 사이를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여전히 젖은 눈이다.


2022년 3월
장석남

봉숭아를 심고


조그만 샛강이 하나 흘러왔다고 하면 될까
바람들이 슬하의 식구들을 데리고
내 속눈썹을 스친다고 하면 될까
봉숭아씨를 얻어다 화분에 묻고
싹이 돋아 문득
그 앞에 쪼그리고 앉는 일이여
돋은 떡잎 위에 어른대는
해와 달에도 겸하여
조심히 물을 뿌리는 일이여

후일 꽃이 피고 씨를 터뜨릴 때
무릎 펴고 일어나
일생을 잘살았다고 하면 되겠나
그중 몇은 물빛 손톱에게도 건너간
그러한 작고 간절한 일생이 여기 있었다고
있었다고 하면 되겠나
이 애기들 앞에서

일모



저기 뒹구는 것은 돌멩이
저것은 자기 그늘을 다독이는 오동나무
저것은 어딘가를 올라가는 계단
저것은 곧 밤이 되면 보이지 않을 새털구름
그리고 저것은 근심보다 더 낮은 데로 떨어지는 태양

화평한 가운데
어디선가 새소리 짧게 들리다 만다
오늘 저녁은 새의 일생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한다

이 시장기

밤의 창변



적적한 가정의 지붕들을 바라보며
종일 선배들의 에세이를 읽었다 때로
사랑은 헤어졌다가 나뭇잎 몇 번 지게 하고는 다시 만나더군
음악은 귀를 툭툭 치며 장마 지난 밭고랑을 따라갔고
어둠은 늘 말이 없는 가장처럼
슬픔 몇 송이를 오므려 갓더군
돋을새김한 불빛들
자세히 봐도
더 자세히 봐도 이곳에 온 내 생에서
참을 만한 것은
연애를 잃은
슬픔 정도뿐이더군
약관의 나라에 태어난 것 말고는
(이제 협궤열차도 없어지고......
남동 갯벌의 노을도 참을 만은 했었는데......)

돌멩이들



바닷소리 새까만
돌멩이 너덧 알을 주워다
책상 위에 풀어놓고
읽던 책 갈피에도 끼워두고 세간
기울어진 자리도 괴곤 했다
잠 아니 오는 밤에는 나머지 것들
물끄러미 치어다도 보다가 맨 처음
이 돌멩이들 있던 자리까지를
궁금해하노라면,

구름 지나는 그림자에
귀 먹먹해지는 어느 겨울날 오후
혼자 매인
늦둥이 송아지 눈매에 얹힌
낮달처럼
저나 나나
살아간다는 것이,
이렇듯 외따로 있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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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일은 괴로웠다. 유월 초 아내가 떠난 뒤로 여름 내내 괴로웠다. 하지만 그 얼마 전까지, 그러니까 일하던 고등학교에서수업이 시작되기 얼마 전까지, 칼라일은 아이를 돌볼 사람이 필요 없었다. 그 자신이 아이를 돌봤다. 매일 밤낮으로 그는 아이들과 함께 지냈다.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멀리 여행을 떠났다고말했다.
그가 처음으로 구한 베이비시터 데비는 뚱뚱한 열아홉 살 소녀로 자기 집에는 가족이 많다고 칼라일에게 말했다. 아이들이저를 따르거든요. 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두 개 정도의 이름을 적어주면서 참고하라고 했다. 그녀는 노트에 그 이름들을적기까지 했다. 칼라일은 그 이름을 건네받고 잘 접어서 셔츠 주 - P243

머니에 넣었다. 그는 그녀에게 다음 날 첫 수업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 날 아침부터 일할 수 있는지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물론이죠"라고 대답했다.
그는 자신의 삶이 새로운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납득했다. 아일린은 칼라일이 성적표를 작성하고 있을 때 집을 떠났다. 그녀는 서던 캘리포니아에서 홀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칼라일의 고등학교 직장동료인 리처드 홉스와 떠나버렸다. 홉스는 연극교사이자 유리를 불어서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사람이었는데, 제시간에 성적표를 작성하고 자기물건들을 챙겨 아일린과 황급히 마을을 떠난 게 분명했다. 이제길고 고통스러웠던 여름은 거의 끝나고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려하고 있었다. 칼라일은 결국 새로운 베이비시터를 구하는 문제에 골몰했다. 첫번째 시도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누군가를, 그게 누구라도 구하려고 했기 때문에 데비를 선택한 것이다. - P244

칼라일은 말을 계속했다. 처음에는 두통도 여전했고, 파자마차림으로 자신의 이야기가 계속되기를 묵묵히 기다리는 그 할머니와 함께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는 게 쑥스러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러다가 두통이 사라졌다. 그다음에는 쑥스러운 느낌도멎더니 자신이 어떤 식으로 느끼고 있었는지도 잊어버렸다. 그는 아이가 태어난 뒤의 중간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처음으로, 그러니까 아일린은 열여덟, 그는 열아홉시절의 일들, 한 소년이 한 소녀를 만나 사랑에 불타오르던 시절로 돌아갔다.
그는 이마를 닦기 위해 말을 멈췄다. 그는 입술을 적셨다.
"계속해요." 웹스터 부인이 말했다. "당신이 하는 말이 뭔지알아요. 계속 말하세요, 칼라일 씨, 때로는 그렇게 다 말하는 게 좋을 때가 있어요. 때로는 말해야만 하는 거라우. 게다가, 나도듣고 싶어요. 다 말하고 나면 기분이 한결 가벼워질 거예요. 나한테도 일어났던 일이에요. 당신이 말하는 얘기 말이에요. 사랑.
바로 그것 말이죠." - P285

노부부는 조심스레 길을 따라 걸어내려가 트럭에 올라탔다. 짐 웹스터는 대시보드 아래로 몸을 그렸다. 웹스터 부인은 칼라일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바로 그때, 그가 창가에 서 있을 때, 그는 뭔가가 완전히 떠나갔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일린과 관계된 이전의 삶과 관계된 그 뭔가가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든 적이 있었던가? 물론 그랬을 것이다. 그랬다는 것을 안다. 비록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하지만 그는 이제 모든게 끝났다는 걸 이해했고 그녀를 보낼 수 있다고 느꼈다. 그는 자신들이 함께한 인생이 자신이 말한 그대로 이뤄졌다는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그 인생은 이제 지나가고 있었다. 그 지나침은 - 비록 그게 불가능하게 보였고 그가 맞서 싸우기까지 했지만 - 이제 그의 일부가 됐다. 그가 거쳐온 지난 인생의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픽업이 덜컹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그는 다시 한번 팔을 올렸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두 부부가 짧게 그를 향해 몸을돌리는 걸 그는 바라봤다. 그런 다음 그는 팔을 내리고 아이들에게 몸을 돌렸다. - P287

굴레



미네소타 번호판을 단 스테이션왜건이 창 너머로 보이는 주차장으로 들어온다. 앞자리에는 남자와 여자가, 뒷자리에는 남자아이 둘이 타고 있다. 칠월이고 기온은 화씨 100도가 넘는다. 그 사람들은 기가 죽어 보인다. 차 안에는 옷들이 걸려 있다. 뒤에는 여행가방, 박스 등이 쌓여 있다. 할리와 내가 나중에 얘기를 맞춰본 바에 따르면, 미네소타에 있는 은행에다가 집, 픽업,
트랙터, 농기구, 소 몇 마리를 넘겨버린 그들에게 남은 물건은그게 다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듯 잠시 가만히 앉아 있다. 우리 아파트의 에어컨은 펑펑 돌아가고 있다. 할리는 건물 뒤에서 잔디를 깎고 있다 앞자리에서 약간 말을 주고받은 - P289

뒤, 여자와 남자가 차에서 내려 현관문으로 향한다. 나는 손으로머리칼을 매만진 뒤 그들이 벨을 두 번 누를 때까지 기다린다.
그다음에 나는 그들을 안으로 들어오게 한다. "아파트를 찾으시나요?" 나는 묻는다. "여기, 시원한 곳으로 들어오세요." 나는그들에게 거실을 보여준다. 거실은 내가 일하는 곳이다. 거기서나는 집세를 징수하고, 영수증을 쓰고, 관심이 있는 고객들과 상담한다. 나는 머리도 만진다. 나는 내가 스타일리스트라고 생각한다. 내 명함에 그렇게 적혀 있다. 나는 미용사라는 말을 싫어한다. 그건 촌스럽다. 거실 한쪽에는 의자가 있고, 의자 뒤에는 내가 뽑아서 쓸 수 있는 드라이어가 있다. 몇 년 전 할리가 설치한세면대도 있다. 의자 옆에 있는 탁자에다 나는 잡지를 몇 권 갖다놓는다. 낡은 잡지들이다. 어떤 잡지는 표지도 뜯어지고 없다. 하지만 머리를 말리는 동안 사람들은 뭐라도 봐야 한다. - P290

서랍 안쪽 구석에서 나는 그 남자가 처음 찾아왔을 때 들고 온 말굴레를 본다. 서둘러서 떠나느라 빼놓고 간 게 틀림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있다. 그 남자가 일부러 두고 갔을 수도 있다.
"굴레"라고 나는 말해본다. 나는 그걸 창 쪽으로 들고가 밝은빛에 비춰본다. 멋질 수가 없는, 낡은 검은 가죽의 말굴레일 뿐이다. 내가 아는 바는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거기에 말의 입에 물리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안다. 그 부분을 재갈이라고 부른다. 강철로 만들었다. 말의 머리 위로 고삐를 돌리므로 손가락사이로 목을 잡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마부가 그 고삐를 이리저리 잡아당기면 말은 방향을 바꾼다. 간단하다. 재갈은 무겁고 차갑다. 이빨로 이런 걸 물어야만 한다면 금방 많은 것을 알게 됐으리라. 뭔가 당겨진다면 그건 떠날 시간이 됐다는 뜻이라고. 어딘가로 가고 있다는 뜻이라고. - P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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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민



나는 일자리가 있었고 패티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밤에 병원에서 몇 시간 정도 일했다. 변변찮은 일이었다. 적당하게 일하고, 여덟 시간 일했다고 카드에 사인하고, 간호사들과 술 마시러가는 정도였다. 시간이 흐르자 패티는 일자리를 원했다. 자기의성장을 위해서라도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래서그녀는 복합 비타민 방문판매 일을 시작했다.
얼마 동안 그녀는 낯선 동네를 기웃거리며 집집마다 대문을 두드리는 여자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녀는 요령을 깨쳤다. 그녀는 머리 회전이 빨랐고 학교 성적도 좋았다. 인간적인 매력도 있었다. 그녀는 회사에서 꽤 빨리 승진했다. 그녀의 밑에서 일하던 여자들은 그렇게 열정적으로 일하지 않았다. 오래지 - P145

않아. 그녀는 자기 팀을 꾸려 상점가에 작은 사무실을 냈다. 하지만 그녀와 함께 일하는 여자들은 항상 바뀌었다. 몇몇은 이삼일만에 그만두었다. 때로는 두세 시간 만에 그만두는 여자도 있었다. 그렇긴 해도 일을 잘하는 여자들은 있었다. 비타민을 잘팔 수 있는 여자들이었다. 이런 여자들은 패티를 떠나지 않았다.
그들이 팀의 핵심을 이루었다. 하지만 비타민을 팔아치우지 못하는 여자들도 있었다.
잘하지 못하는 여자들은 그냥 그만두곤 했다. 그냥 일하러 나오지 않았다. 전화를 걸면 그 여자들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문을 두들겨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 여자들이 갈 길을 잃은 개종자(改宗者)라도 된다는 듯이 패티는 그 상실감을 마음에 담아뒀다. 그녀는 자신을 책망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걸 이겨냈다. 너무나 많이 당하는 일이라 이겨내지 않을 수 없었다. - P146

이따금 얼어붙어서 초인종을 누르지도 못하는 여자들이 나왔다. 또 대문 앞까지는 갔다고 하더라도 목소리에 문제가 일어나기도 했다. 혹은 인사를 건네면서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는 꺼내서는 안 되는 말을 뒤죽박죽 섞어대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여자들은 그 순간 일을 그만두기로 마음먹고, 샘플이 담긴 가방을 든채 자동차가 있는 곳으로 내달려, 패티와 동료들이 일을 끝마칠때까지 빈둥거리곤 했다. 모두가 참석하는 회의가 있었다. 그다 - P146

음에 그들은 함께 자동차를 타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들은 서로 힘을 북돋아주는 말을 하기도 했다. "힘들 때일수록 더 힘을내자." 그리고 "똑바로 행동하면 일이 잘 풀릴 거야." 그런 것들.
가끔은 일하던 여자가 샘플이 든 가방 일체를 들고 그냥 사라지는 일도 있었다. 차를 얻어 타고 시내로 들어간 뒤 그길로 도망쳤다. 하지만 그런 여자의 빈자리를 메울 여자들은 항상 있었다. 그즈음 여자들은 수시로 드나들고 있었다. 패티는 명단을 가지고 있었다. 몇 주에 한 번씩 그녀는 <페니세이버>에 작은 광고를 게재했다. 더 많은 여자들과 더 많은 교육과정이 있었다. 여자들은 끊이지 않았다. - P147

나는 잔에 스카치위스키를 부어서 조금 들이켠 뒤, 잔을 들고 화장실로 갔다. 나는 이를 닦았다. 그리고 서랍을 열었다. 침실에서 패티가 뭐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화장실 문을 열었다. 그녀는 외출복 그대로였다. 옷을 입은 채로 잠들었었군, 이라고 나는 짐작했다.
"지금이 몇 시야?" 그녀가 외쳤다. "잠을 너무 많이 잤잖아! 세상에, 맙소사! 왜 깨우지 않은 거야, 젠장!"
그녀는 사납게 굴었다. 그녀는 옷을 입은 채 문간에 서 있었다. 그 상태 그대로 바로 일하러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샘플이 담긴 가방도, 비타민도 없었다. 그녀는 악몽을 꿨던 것이다. 그게 다였다. 그녀는 좌우로 머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나는 오늘밤은 이쯤에서 그만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여보, 다시 자. 뭘 좀 찾고 있었어." 내가 말했다. 나는 세면대 앞 약을 넣어두는 선반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을 꺼냈다. 몇 개가 떨어져하수구 쪽으로 굴러갔다. "아스피린 못 봤어?" 내가 말했다. 나는 계속 꺼냈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선반에서 이것저것 계속떨어졌다. - P174

조심



수많은 이야기를 나눈 뒤 ㅡ그의 아내인 이네즈는 사정(査)이라고 표현했다ㅡ 로이드는 집에서 나와 자기 거처로 들어갔다. 그 집은 삼층 건물의 맨 꼭대기 층에 있는 집으로 두 개의 방과 화장실 하나로 이뤄져 있었다. 방에 들어가면 급하게 경사진지붕의 안쪽이 나왔다. 방 안을 서성거리면 필시 머리가 부딪힐수밖에 없었다. 창밖을 내다보려면 꾸부정하게 몸을 숙여야 했으며 침대를 들락거릴 때마다 조심해야 했다. 그 집에는 열쇠가 두 개였다. 우선 건물로 들어가는 데 필요한 열쇠가 있었다. 거기서 얼마간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층계참이 나왔다. 방문까지가려면 층계를 하나 더 올라가야 했다. 다른 열쇠는 그 방문을여는 데 필요했다. - P175

어느 오후였다. 앙드레 샴페인 세 병과 런천미트를 넣은 종이봉투를 들고 거처로 돌아가다가 그는 층계참에 멈춰 서서 주인할머니의 거실을 들여다봤다. 할머니는 카펫에 등을 대고 누워있었다. 잠든 것 같았다. 갑자기 그 할머니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텔레비전이 켜져 있었기 때문에 설핏잠든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그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종이봉투를 다른 손으로 옮겼다.
그때 할머니가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손을 몸 쪽으로 붙이고는다시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누워 있었다. 로이드는 계단을 밟고올라가 문을 잠갔다. 저녁이 다가오던 그날 오후, 부엌 창문으로내려다보니 할머니는 밀짚모자를 쓰고 한 손을 몸에 붙인 채 뒷마당에서 있었다. 할머니는 작은 양철 물뿌리개로 팬지에 물을주고 있었다. - P176

부엌에는 냉장고와 레인지 겸용 장치가 설치돼 있었다. 그다지 크지 않은 장치로 싱크대와 벽 사이의 공간에 붙박여 있었다.
냉장고에 든 물건을 꺼내려면 거의 무릎이 바닥에 닿을 정도로몸을 그려야 했다. 하지만 냉장고에 들어 있는 것이라고는 과일주스, 런천미트, 샴페인이 다였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레인지의 버너는 두 개였다. 그는 이따금 손잡이가 달린 냄비에 물을 끓여 인스턴트커피를 끓여먹었다. 커피를 마시지 않 - P176

는 날도 있었다. 마시는 걸 잊어버리거나, 그냥 마시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서였다. 어느 날 아침에는 깨어나자마자 샴페인과 함께 크럼 도넛을 먹은 적도 있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식으로 아침을 해결한다고 하면 껄껄거리고 웃었을 사람이었다. 이제는 뭐 이상하게 여길 게 하나도 없었다. 사실은 그날 저녁 침대에 누워 아침에 일어나서 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돌이켜보고서야 그 일도 생각났다. 처음에는 기억할 만한 일은 하나도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샴페인과 함께 도넛을 먹은 일이 떠올랐다. 예전의 그였다면 살짝 미친 게 아니냐며 친구에게 들려줘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게 뭐가 문제냐는 생각이 들었다. 샴페인과 도넛으로 아침을 때웠다. 그래서 어쩌라고? - P177

아직 하루는 많이 남아 있었다. 그는 부엌으로 들어가 작은 냉장고 앞에 몸을 수그리고 시원한 샴페인병을 꺼냈다. 그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플라스틱 코르크 마개를 돌려 땄지만, 펑하는 기분 좋은 소리는 빠지지 않았다. 그는 컵에 묻은 베이비오일을 가셔내고 샴페인을 부었다. 그는 잔을 들고 소파로 가서 앉았다.
그는 다탁에 잔을 놓았다. 그는 다탁 위 샴페인잔 바로 옆에 두발을 올렸다. 그는 뒤로 등을 기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그 - P194

에게는 다가올 밤에 대한 걱정이 조금씩 더 생기기 시작했다. 이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귀지가 다른 쪽 귀를 막아버리면 어떻게 하지? 그는 눈을 감고 머리를 흔들었다. 이내 그는일어나 침실로 갔다. 그는 옷을 벗고 다시 잠옷을 입었다. 그러고선 그는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 그는 다시 한번 소파에 앉았고, 다시 한번 두 발을 올렸다. 그는 손을 뻗어 텔레비전을 켰다.
그는 볼륨을 조절했다. 그는 잠잘 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걱정을 떨칠 수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걸 평생 껴안고살아가는 방법을 익혀야만 했다. 어떤 점에서 이 모든 일은 도넛과 샴페인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그다지 신기한 일도 아니었다. 그는 샴페인을 조금 들이켰다. 그런데 맛이 이상했다. 그는 혀로 입술을 훔치고 나서 소매로 입을 닦았다. 눈을 돌린 그는 샴페인 표면에 형성된 오일 막을 볼 수 있었다. - P195

ㅈ그는 일어나 싱크대까지 잔을 들고 가 샴페인을 부었다. 그는샴페인병을 거실로 들고 와 소파 위에 편안하게 앉았다. 그는 병의 목을 잡고 들이켰다. 그에게는 병나발 부는 버릇이 없었지만, 정상에서 그렇게 크게 벗어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한낮에 소파에 앉아서 잠잔다고 해서, 그게 몇 시간이고 등을 바닥에대고 자야만 하는 사람보다 더 이상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창밖을 응시했다. 햇살의 각도로 볼때, 그리고 방에 드리워지는 그림자로 볼 때, 세시쯤이라고 그는 추측했다. - P196

내가 전화를 거는 곳



J.P.와 나는 프랭크 마틴이 운영하는 알코올중독 치료센터의 앞베란다에 있다. 치료센터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J. P. 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술꾼이다. 하지만 그는 굴뚝청소부이기도 하다. 그는 이곳에 처음 왔고, 지금 겁을 내고 있다. 나는 전에 한 번 여기 온 적이 있었다.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나는 돌아왔다. J. P.의 원래 이름은 조 페니지만, 그는 자신을 J. P.
라고 불러야 한다고 내게 말한다. 그는 서른 살 정도다. 나보다 젊다. 많이 젊은 건 아니고 조금 젊다. 그는 내게 어떻게 그 사업에 뛰어들었는지 말하고 있는 중인데, 말하면서 두 손을 사용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는 손을 떤다. 그러니까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뜻이다.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거든." 그는 말한다. 손 - P197

떠는 일 말이다. 나는 알 만하다고 그에게 말한다. 나는 수전증은 나아질 거라고 그에게 말한다. 그게 그렇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여기 온 지 이틀째에 불과하다. 우리는 아직 첩첩산중에 있다. J. P.는 손 떨림이 있고, 내 어깨의 신경- 어쩌면 신경이 아닌,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 은 자주 발작을 일으킨다. 때로 목 옆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 이렇게 되면 내 입이 마른다. 그때는 침을 삼키는 일만 해도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무슨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그걸 피하고자 한다.
나는 그 일로부터 숨어버리기를 원하는데,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나는 두 눈을 감고 그게 지나가도록,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도록 내버려둔다. J. P.는 얼마간 기다려준다. - P198

그는 술을 끊고 인생을 원래의 궤도로 되돌려놓는 방법을 찾기 위해 여기 프랭크 마틴의 치료센터에 찾아왔다. 하지만 그도나처럼 자신이 원해서 여기에 왔다. 우리는 갇힌 게 아니었다.
나가고 싶으면 언제라도 떠날 수 있었다. 그러나 최소한 일주일은 여기서 지내는 편이 좋다고들 했고,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두 주에서 한 달 정도는 "강력 권고사항"이었다.
말했다시피 나는 프랭크 마틴의 치료센터에 온 게 두번째다. 일주일 체류비용을 내기 위해 수표에 서명하려고 끙끙대고 있을때, 프랭크 마틴은 말했다. "휴가란 항상 나쁜 것이지. 아마 이번에는 좀더 오래 여기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겠지? 두 주 동안머무는 일을 생각해봐. 두 주 동안은 할 수 있겠나? 어쨌든 생각해보라구. 지금 당장 결정하라고 하는 말은 아니네."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수표를 누르고 있었고 나는 내 이름을 서명했다. 그다음에 나는 여자친구와 함께 현관문까지 걸어간 뒤 작별인사를했다. "안녕"이라고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문을 지나 포치로 나갔다. 늦은 오후다. 비가 내리고 있다. 나는 문에서창문으로 간다. 나는 커튼을 걷고 차를 몰고 나가는 그녀를 본다. 그녀는 내 차를 타고 있다. 그녀는 술에 취한 상태다.  - P210

나는 내가 잭 런던의 책을 읽어본 적이 있는지 생각해본다.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에 단편을 읽은 적은있었다. ‘불 지피기‘라는 제목이었다. 유콘에서 한 남자가 동사하고 있다. 생각해보라. 불을 구하지 못하면 얼어서 죽어버리게되는 한 남자를. 불이 있어야만 양말과 다른 것들도 말릴 수 있고 몸도 덥힐 수 있다.
그는 불을 피우지만, 그때 또 일이 생기기 시작한다. 나뭇가지위에 쌓여 있던 눈이 그 위로 떨어진다. 불은 꺼진다. 그러는 동안 날은 더욱 추워진다. 밤이 다가오고 있다.
나는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낸다. 아내에게 먼저 걸어볼 작정이다. 만약 전화를 받는다면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일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을 것이다. 그녀가 먼저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그녀는내가 어디에서 전화를 거는지 물어볼 테고 나는 말해야만 할 것이다. 새해의 결심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상황에서 농담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 그녀와 통화한 뒤, 나는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 것이다.  - P226

기차
존 치버에게



그 여인의 이름은 미스 덴트. 그날 초저녁 그녀는 한 남자에게총을 겨눴다. 그녀의 위협에 그 남자는 흙바닥에 엎드려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남자의 두 눈에 눈물이 솟구치고 손가락에 낙엽이 잡히는 동안, 그녀는 리볼버를 겨눈 채 그가 어떤 사람인지얘기했다. 그녀는 그가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짓밟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이해시키려고 했다. "가만히 있어!"라고 그녀는 말했지만, 그 남자가 한 일이라고는 두려움 때문에 손가락으로 흙을판 일과 다리를 조금 움직인 것뿐이었다. 말을 모두 마쳤을 때,
그러니까 그에게 할 이야기들을 모두 전하고 난 뒤, 그녀는 그의뒤통수에 발을 올리고 그의 얼굴을 흙에 처박았다. 그러고는 리볼버를 핸드백에 넣고 기차역까지 걸어갔다. - P229

그녀는 황량한 대합실 벤치에 앉아 무릎에 핸드백을 올려놓았다. 매표소는 문을 닫았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역사 바깥의 주차장도 텅 비어 있었다. 그녀는 벽에 걸린 대형 시계에시선을 뒀다. 그녀는 남자에 대해, 그리고 남자가 원하는 것을손에 넣은 뒤 자신에게 어떻게 행동했는지에 대해 더이상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무릎을 꿇고 앉았을 때코로 낸 소리를 아주 오랫동안 기억하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는 숨을 들이켜고 눈을 감은 뒤, 기차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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