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



나는 일자리가 있었고 패티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밤에 병원에서 몇 시간 정도 일했다. 변변찮은 일이었다. 적당하게 일하고, 여덟 시간 일했다고 카드에 사인하고, 간호사들과 술 마시러가는 정도였다. 시간이 흐르자 패티는 일자리를 원했다. 자기의성장을 위해서라도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래서그녀는 복합 비타민 방문판매 일을 시작했다.
얼마 동안 그녀는 낯선 동네를 기웃거리며 집집마다 대문을 두드리는 여자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녀는 요령을 깨쳤다. 그녀는 머리 회전이 빨랐고 학교 성적도 좋았다. 인간적인 매력도 있었다. 그녀는 회사에서 꽤 빨리 승진했다. 그녀의 밑에서 일하던 여자들은 그렇게 열정적으로 일하지 않았다. 오래지 - P145

않아. 그녀는 자기 팀을 꾸려 상점가에 작은 사무실을 냈다. 하지만 그녀와 함께 일하는 여자들은 항상 바뀌었다. 몇몇은 이삼일만에 그만두었다. 때로는 두세 시간 만에 그만두는 여자도 있었다. 그렇긴 해도 일을 잘하는 여자들은 있었다. 비타민을 잘팔 수 있는 여자들이었다. 이런 여자들은 패티를 떠나지 않았다.
그들이 팀의 핵심을 이루었다. 하지만 비타민을 팔아치우지 못하는 여자들도 있었다.
잘하지 못하는 여자들은 그냥 그만두곤 했다. 그냥 일하러 나오지 않았다. 전화를 걸면 그 여자들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문을 두들겨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 여자들이 갈 길을 잃은 개종자(改宗者)라도 된다는 듯이 패티는 그 상실감을 마음에 담아뒀다. 그녀는 자신을 책망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걸 이겨냈다. 너무나 많이 당하는 일이라 이겨내지 않을 수 없었다. - P146

이따금 얼어붙어서 초인종을 누르지도 못하는 여자들이 나왔다. 또 대문 앞까지는 갔다고 하더라도 목소리에 문제가 일어나기도 했다. 혹은 인사를 건네면서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는 꺼내서는 안 되는 말을 뒤죽박죽 섞어대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여자들은 그 순간 일을 그만두기로 마음먹고, 샘플이 담긴 가방을 든채 자동차가 있는 곳으로 내달려, 패티와 동료들이 일을 끝마칠때까지 빈둥거리곤 했다. 모두가 참석하는 회의가 있었다. 그다 - P146

음에 그들은 함께 자동차를 타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들은 서로 힘을 북돋아주는 말을 하기도 했다. "힘들 때일수록 더 힘을내자." 그리고 "똑바로 행동하면 일이 잘 풀릴 거야." 그런 것들.
가끔은 일하던 여자가 샘플이 든 가방 일체를 들고 그냥 사라지는 일도 있었다. 차를 얻어 타고 시내로 들어간 뒤 그길로 도망쳤다. 하지만 그런 여자의 빈자리를 메울 여자들은 항상 있었다. 그즈음 여자들은 수시로 드나들고 있었다. 패티는 명단을 가지고 있었다. 몇 주에 한 번씩 그녀는 <페니세이버>에 작은 광고를 게재했다. 더 많은 여자들과 더 많은 교육과정이 있었다. 여자들은 끊이지 않았다. - P147

나는 잔에 스카치위스키를 부어서 조금 들이켠 뒤, 잔을 들고 화장실로 갔다. 나는 이를 닦았다. 그리고 서랍을 열었다. 침실에서 패티가 뭐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화장실 문을 열었다. 그녀는 외출복 그대로였다. 옷을 입은 채로 잠들었었군, 이라고 나는 짐작했다.
"지금이 몇 시야?" 그녀가 외쳤다. "잠을 너무 많이 잤잖아! 세상에, 맙소사! 왜 깨우지 않은 거야, 젠장!"
그녀는 사납게 굴었다. 그녀는 옷을 입은 채 문간에 서 있었다. 그 상태 그대로 바로 일하러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샘플이 담긴 가방도, 비타민도 없었다. 그녀는 악몽을 꿨던 것이다. 그게 다였다. 그녀는 좌우로 머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나는 오늘밤은 이쯤에서 그만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여보, 다시 자. 뭘 좀 찾고 있었어." 내가 말했다. 나는 세면대 앞 약을 넣어두는 선반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을 꺼냈다. 몇 개가 떨어져하수구 쪽으로 굴러갔다. "아스피린 못 봤어?" 내가 말했다. 나는 계속 꺼냈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선반에서 이것저것 계속떨어졌다. - P174

조심



수많은 이야기를 나눈 뒤 ㅡ그의 아내인 이네즈는 사정(査)이라고 표현했다ㅡ 로이드는 집에서 나와 자기 거처로 들어갔다. 그 집은 삼층 건물의 맨 꼭대기 층에 있는 집으로 두 개의 방과 화장실 하나로 이뤄져 있었다. 방에 들어가면 급하게 경사진지붕의 안쪽이 나왔다. 방 안을 서성거리면 필시 머리가 부딪힐수밖에 없었다. 창밖을 내다보려면 꾸부정하게 몸을 숙여야 했으며 침대를 들락거릴 때마다 조심해야 했다. 그 집에는 열쇠가 두 개였다. 우선 건물로 들어가는 데 필요한 열쇠가 있었다. 거기서 얼마간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층계참이 나왔다. 방문까지가려면 층계를 하나 더 올라가야 했다. 다른 열쇠는 그 방문을여는 데 필요했다. - P175

어느 오후였다. 앙드레 샴페인 세 병과 런천미트를 넣은 종이봉투를 들고 거처로 돌아가다가 그는 층계참에 멈춰 서서 주인할머니의 거실을 들여다봤다. 할머니는 카펫에 등을 대고 누워있었다. 잠든 것 같았다. 갑자기 그 할머니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텔레비전이 켜져 있었기 때문에 설핏잠든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그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종이봉투를 다른 손으로 옮겼다.
그때 할머니가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손을 몸 쪽으로 붙이고는다시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누워 있었다. 로이드는 계단을 밟고올라가 문을 잠갔다. 저녁이 다가오던 그날 오후, 부엌 창문으로내려다보니 할머니는 밀짚모자를 쓰고 한 손을 몸에 붙인 채 뒷마당에서 있었다. 할머니는 작은 양철 물뿌리개로 팬지에 물을주고 있었다. - P176

부엌에는 냉장고와 레인지 겸용 장치가 설치돼 있었다. 그다지 크지 않은 장치로 싱크대와 벽 사이의 공간에 붙박여 있었다.
냉장고에 든 물건을 꺼내려면 거의 무릎이 바닥에 닿을 정도로몸을 그려야 했다. 하지만 냉장고에 들어 있는 것이라고는 과일주스, 런천미트, 샴페인이 다였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레인지의 버너는 두 개였다. 그는 이따금 손잡이가 달린 냄비에 물을 끓여 인스턴트커피를 끓여먹었다. 커피를 마시지 않 - P176

는 날도 있었다. 마시는 걸 잊어버리거나, 그냥 마시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서였다. 어느 날 아침에는 깨어나자마자 샴페인과 함께 크럼 도넛을 먹은 적도 있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식으로 아침을 해결한다고 하면 껄껄거리고 웃었을 사람이었다. 이제는 뭐 이상하게 여길 게 하나도 없었다. 사실은 그날 저녁 침대에 누워 아침에 일어나서 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돌이켜보고서야 그 일도 생각났다. 처음에는 기억할 만한 일은 하나도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샴페인과 함께 도넛을 먹은 일이 떠올랐다. 예전의 그였다면 살짝 미친 게 아니냐며 친구에게 들려줘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게 뭐가 문제냐는 생각이 들었다. 샴페인과 도넛으로 아침을 때웠다. 그래서 어쩌라고? - P177

아직 하루는 많이 남아 있었다. 그는 부엌으로 들어가 작은 냉장고 앞에 몸을 수그리고 시원한 샴페인병을 꺼냈다. 그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플라스틱 코르크 마개를 돌려 땄지만, 펑하는 기분 좋은 소리는 빠지지 않았다. 그는 컵에 묻은 베이비오일을 가셔내고 샴페인을 부었다. 그는 잔을 들고 소파로 가서 앉았다.
그는 다탁에 잔을 놓았다. 그는 다탁 위 샴페인잔 바로 옆에 두발을 올렸다. 그는 뒤로 등을 기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그 - P194

에게는 다가올 밤에 대한 걱정이 조금씩 더 생기기 시작했다. 이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귀지가 다른 쪽 귀를 막아버리면 어떻게 하지? 그는 눈을 감고 머리를 흔들었다. 이내 그는일어나 침실로 갔다. 그는 옷을 벗고 다시 잠옷을 입었다. 그러고선 그는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 그는 다시 한번 소파에 앉았고, 다시 한번 두 발을 올렸다. 그는 손을 뻗어 텔레비전을 켰다.
그는 볼륨을 조절했다. 그는 잠잘 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걱정을 떨칠 수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걸 평생 껴안고살아가는 방법을 익혀야만 했다. 어떤 점에서 이 모든 일은 도넛과 샴페인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그다지 신기한 일도 아니었다. 그는 샴페인을 조금 들이켰다. 그런데 맛이 이상했다. 그는 혀로 입술을 훔치고 나서 소매로 입을 닦았다. 눈을 돌린 그는 샴페인 표면에 형성된 오일 막을 볼 수 있었다. - P195

ㅈ그는 일어나 싱크대까지 잔을 들고 가 샴페인을 부었다. 그는샴페인병을 거실로 들고 와 소파 위에 편안하게 앉았다. 그는 병의 목을 잡고 들이켰다. 그에게는 병나발 부는 버릇이 없었지만, 정상에서 그렇게 크게 벗어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한낮에 소파에 앉아서 잠잔다고 해서, 그게 몇 시간이고 등을 바닥에대고 자야만 하는 사람보다 더 이상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창밖을 응시했다. 햇살의 각도로 볼때, 그리고 방에 드리워지는 그림자로 볼 때, 세시쯤이라고 그는 추측했다. - P196

내가 전화를 거는 곳



J.P.와 나는 프랭크 마틴이 운영하는 알코올중독 치료센터의 앞베란다에 있다. 치료센터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J. P. 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술꾼이다. 하지만 그는 굴뚝청소부이기도 하다. 그는 이곳에 처음 왔고, 지금 겁을 내고 있다. 나는 전에 한 번 여기 온 적이 있었다.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나는 돌아왔다. J. P.의 원래 이름은 조 페니지만, 그는 자신을 J. P.
라고 불러야 한다고 내게 말한다. 그는 서른 살 정도다. 나보다 젊다. 많이 젊은 건 아니고 조금 젊다. 그는 내게 어떻게 그 사업에 뛰어들었는지 말하고 있는 중인데, 말하면서 두 손을 사용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는 손을 떤다. 그러니까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뜻이다.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거든." 그는 말한다. 손 - P197

떠는 일 말이다. 나는 알 만하다고 그에게 말한다. 나는 수전증은 나아질 거라고 그에게 말한다. 그게 그렇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여기 온 지 이틀째에 불과하다. 우리는 아직 첩첩산중에 있다. J. P.는 손 떨림이 있고, 내 어깨의 신경- 어쩌면 신경이 아닌,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 은 자주 발작을 일으킨다. 때로 목 옆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 이렇게 되면 내 입이 마른다. 그때는 침을 삼키는 일만 해도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무슨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그걸 피하고자 한다.
나는 그 일로부터 숨어버리기를 원하는데,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나는 두 눈을 감고 그게 지나가도록,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도록 내버려둔다. J. P.는 얼마간 기다려준다. - P198

그는 술을 끊고 인생을 원래의 궤도로 되돌려놓는 방법을 찾기 위해 여기 프랭크 마틴의 치료센터에 찾아왔다. 하지만 그도나처럼 자신이 원해서 여기에 왔다. 우리는 갇힌 게 아니었다.
나가고 싶으면 언제라도 떠날 수 있었다. 그러나 최소한 일주일은 여기서 지내는 편이 좋다고들 했고,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두 주에서 한 달 정도는 "강력 권고사항"이었다.
말했다시피 나는 프랭크 마틴의 치료센터에 온 게 두번째다. 일주일 체류비용을 내기 위해 수표에 서명하려고 끙끙대고 있을때, 프랭크 마틴은 말했다. "휴가란 항상 나쁜 것이지. 아마 이번에는 좀더 오래 여기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겠지? 두 주 동안머무는 일을 생각해봐. 두 주 동안은 할 수 있겠나? 어쨌든 생각해보라구. 지금 당장 결정하라고 하는 말은 아니네."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수표를 누르고 있었고 나는 내 이름을 서명했다. 그다음에 나는 여자친구와 함께 현관문까지 걸어간 뒤 작별인사를했다. "안녕"이라고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문을 지나 포치로 나갔다. 늦은 오후다. 비가 내리고 있다. 나는 문에서창문으로 간다. 나는 커튼을 걷고 차를 몰고 나가는 그녀를 본다. 그녀는 내 차를 타고 있다. 그녀는 술에 취한 상태다.  - P210

나는 내가 잭 런던의 책을 읽어본 적이 있는지 생각해본다.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에 단편을 읽은 적은있었다. ‘불 지피기‘라는 제목이었다. 유콘에서 한 남자가 동사하고 있다. 생각해보라. 불을 구하지 못하면 얼어서 죽어버리게되는 한 남자를. 불이 있어야만 양말과 다른 것들도 말릴 수 있고 몸도 덥힐 수 있다.
그는 불을 피우지만, 그때 또 일이 생기기 시작한다. 나뭇가지위에 쌓여 있던 눈이 그 위로 떨어진다. 불은 꺼진다. 그러는 동안 날은 더욱 추워진다. 밤이 다가오고 있다.
나는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낸다. 아내에게 먼저 걸어볼 작정이다. 만약 전화를 받는다면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일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을 것이다. 그녀가 먼저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그녀는내가 어디에서 전화를 거는지 물어볼 테고 나는 말해야만 할 것이다. 새해의 결심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상황에서 농담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 그녀와 통화한 뒤, 나는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 것이다.  - P226

기차
존 치버에게



그 여인의 이름은 미스 덴트. 그날 초저녁 그녀는 한 남자에게총을 겨눴다. 그녀의 위협에 그 남자는 흙바닥에 엎드려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남자의 두 눈에 눈물이 솟구치고 손가락에 낙엽이 잡히는 동안, 그녀는 리볼버를 겨눈 채 그가 어떤 사람인지얘기했다. 그녀는 그가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짓밟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이해시키려고 했다. "가만히 있어!"라고 그녀는 말했지만, 그 남자가 한 일이라고는 두려움 때문에 손가락으로 흙을판 일과 다리를 조금 움직인 것뿐이었다. 말을 모두 마쳤을 때,
그러니까 그에게 할 이야기들을 모두 전하고 난 뒤, 그녀는 그의뒤통수에 발을 올리고 그의 얼굴을 흙에 처박았다. 그러고는 리볼버를 핸드백에 넣고 기차역까지 걸어갔다. - P229

그녀는 황량한 대합실 벤치에 앉아 무릎에 핸드백을 올려놓았다. 매표소는 문을 닫았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역사 바깥의 주차장도 텅 비어 있었다. 그녀는 벽에 걸린 대형 시계에시선을 뒀다. 그녀는 남자에 대해, 그리고 남자가 원하는 것을손에 넣은 뒤 자신에게 어떻게 행동했는지에 대해 더이상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무릎을 꿇고 앉았을 때코로 낸 소리를 아주 오랫동안 기억하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는 숨을 들이켜고 눈을 감은 뒤, 기차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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