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서리


깊은 산골짜구니에
숯 굽는 연기,
구름과 함께 사라지다
구름과 함께

얕은 집 울안에
장대를 들어 과일 따는 어린애
날마다 사다리 놓고
지붕 위에 올라가더니

홍시 찍어먹는 가마귀, 검은 가마귀
가 소년을 부른다.
무서리 내린 지붕 위에
멀고 먼 하늘이 있다
구름이 있다.
- P192

여정 (旅程)


또 한 번 멀리 떠나자.
거기
항구와 파도가 이는 곳,
오후만 되면 회사나 관청에서 물밀듯 나오는 
사람
나도 그 틈에 끼어 천천히 담배를 물고
뒷골목에 빠끔빠끔 내다보는
소매치기, 행려병자, 어린 거지를 다려다보며
다만 떠내려가는 널판쪽 모양 몸을 맡기자.

거기,
날마다 드나드는 이국선과 해관(海關)의 창고가 있는 곳
나도 낯설은 거리에 서서
항구와 물결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회사원이나 관청 사람과 같이
우정 그네들을 따라가 보자.
그러면,
항상 기계와 같이 돌아가는 계절 가운데
우수가 지나고 경칩이 지나 - P193

고향에서는 눈 속에 파묻힌 보리 이랑이 물결치듯 소곤대며 머리를들고
강기슭 두터운 얼음장이 터지는 소리,
이때의 나는 무엇이 제일 그리울 거냐.

찾아온 발길이 아주 맥히는 바닷가에서
그때, 나의 떠나온 도정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자.
신개지(新開地) 비인 터전에
새로이 포장 치는 곡예단의 쇠망치 소리.
내가 무에라 흐렁흐렁 울어야는지,
우두머니 그저 우두머니 
밤과 낮, 둘밖에 없는 세상에
어째서 나 홀로 집을 버렸나. 집을 버렸나. - P194

연화시편(蓮花詩篇)


곡식이 익는다. 풀섶에 벌레가 운다. 이런 때 연잎은 지는 것이다. 차고 쓸쓸한 꽃잎 하나 줄기에 붙이지 않고 연잎은 지는 것이다. 
일년 가야 쇠동 맑은 적 없는 시꺼먼 시궁창 속에 거북은 보는 게었다.
봄철 갈라지는 얼음장, 여름 찾아 점벙대던 개구리 새끼. 모든 것이 침전하였다. 모든 게 오직 까라앉을 뿐이었었다.
연잎이 시들면, 연잎이 시들면, 심심한 수면 위에 또 한 해의 향기는 스미어들고

물속에 차차로 가라앉는 오리털,
이 속에 손님이 오는 것이다. 아무런 표정도 없이 아무런 기맥도 없이 밤이슬은 내리어 서리가 된다.
소 몰고 돌아가는 저녁길, 저녁길의 논두렁 위에 푸뜩푸뜩 풍장치며 흩어지는 농사꾼.
오곡이 익은 게었다. 곡식이 익은 게었다.

웅덩이에는 낙엽이 한 겹 물 위에 쌓이더니 밤마다 풀섶에는 가을벌레가 울고, 낙엽이 다시 모조리 가라앉는 날, 죄그만 어족들은 보드라운 - P195

진흙 속에 연뿌리 울타리 하여 길고 긴 겨울잠으로 빠지는 것이었었다.
한때는 그 넓은 이파리에 함촉 이슬을 받들었을 연잎조차 잠자는 미꾸리와 거머리의 등을 덮는 것이나, 두 눈 감고 깊은 생각에 잠기인 거북이의 등 위엔, 거북이의 하늘 위엔 살얼음이 가고 그것이 차차로 두꺼워질 뿐.
까만 머리 따 늘이는 밤하늘에도 총총하던 별 한 송이, 별 한 송이 비최지 않고 희부연 얼음장에는 붉은 물 든 감잎이 끼어 있을 뿐.
한겨울은 다시 얼어붙은 웅덩이에 눈싸리를 쌓아 얹으나 어둠 속에 가라앉은 거북이는, 목을 늘여, 구정물 마시며, 반년 동안 밤이 이읏는 아라사의 옥창(獄窓)과 같이, 맛없는 울음에 오! 맛없는 울음에 보드라운 회한의 진흙구덩이 깊이 헤치며 뜯어먹는 미꾸리와 거머리.
두꺼운 얼음장 밖으로 연이어 연이어 깜깜한 어둠이 흐른다 해도, 구름 속에 상현달이 오른다 해도 거북이의 이고 있는 하늘엔 희부연 얼음장이 깔려 있을 뿐, 한 사리 싸락눈이 쌓여 있을 뿐. - P196

귀촉도(歸蜀途)
정주(廷柱)에 주는 시


파촉(巴蜀)으로 가는 길은 
서역 삼만리.
뜸부기 울음 우는 논두렁의 어둔 밤에서
길라래비 날려보는 외방 젊은이,
가슴에 깃든 꿈은 나래 접고 기다리는가.

흙먼지 자욱히 이는 장거리에
허리끈 끄르고, 대님 끄르고, 끝끝내 옷고름 떼고
어두컴컴한 방구석에 혼자 앉아서
창 너머 뜨는 달, 상현달 바라다보면 물결은 이랑 이랑
먼 바다의 향기를 품고,
파촉의 인주빛 노을은, 차차로, 더워지는 눈시울 안에ㅡ

풀섶마다 소해자(小孩子)의 관들이 널려 있는 뙤의 땅에는,
너를 기다리는 일금 칠십원야의 샐러리와 죄그만 STOOL이 하나
집을 떠나고, 권속마저 뿌리이치고,
장안 술 하룻밤에 마시려 해도 - P197

그거사 안 되지라요 그거사 안 되지라요

파촉으로 가는 길은
서역 하늘 밑.
둘러보는 네 웃음은 용천병의 꽃 피는 울음
굳이 서서 웃는 검은 하늘에
상기도 날지 않는 너의 꿈은 새벽별 모양,
아 새벽별 모양, 빤작일 수 있는 것일까.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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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하나, 열린


오월 빛깔, 서늘한, 시간
이제는 부를 수 없는 것, 뜨겁게
입안에서 들린다.

다시금, 그 누구의 목소리도 없고,

아파오는 안구의 밑바닥.
눈꺼풀은
가로막지 않고, 속눈썹은
들어오는 것을 헤아리지 않는다.

눈물 반 방울,
한층 도수 높은 렌즈, 흔들리며,
너에게 모습들을 전해 준다.



눈 하나: Ein Auge. 첼란의 시에서 빈번히 나오는 고통의 심상이다. 외눈, 감기지 못한 눈, 뜬 채로 굳어진 눈, 생명의 물기를 잃어버린 눈, 본 것이 준고통이 각막에 지워지지 않는 상흔으로 남아 지층에 총총히 박혀 있는 눈등. 이 시는 「언어창살』에 수록되어 있다. - P17




돌.
내가 따라갔던 공중의 돌.
돌처럼 멀어 버린 너의 눈.

우리는
손이었다
어둠을 남김없이 퍼냈다. 찾았다
여름을 타고 올라온 단어.
꽃.

꽃ㅡ맹인의 단어.
너의 눈과 나의 눈이
물을
마련한다.

성장(成長).
마음의 벽이 한 꺼풀 한 꺼풀
떨어져 내린다.

이런 단어 하나 더, 그러면 종추(鐘錘)들이
트인 곳에서 흔들린다.



- P18

꽃: 경직된 이미지로 가득한 시집 『언어창살』에 수록된 시다. 서정시의 대표적인 대상, 혹은 시 자체의 은유로서의 꽃의 이미지는 시의 역사만큼이나 많은 굴곡을 겪어 왔지만, 이 시에서 그려지는 꽃은 시사(詩史)에서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경직된 의식에는 역사의 고통이 서려 있고("돌처럼 멀어 버린 너의 눈), 그 가운데서 인식된 사물은 활성화된 언어 (꽃=말)로 전이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눈물로 키운 꽃, 어렵게 찾은 소중한 언어, 허물어지는 마음의 벽, 울려 퍼지는 종소리에의 꿈 역시 이 시에 담겨 있다.
종추들이 트인 곳에서 흔들린다: 얽매임 없이 울리는 여러 개의 종소리를 나타낸 표현이다. - P19

언어창살


창살 사이의 안구(眼球).

섬모충 눈꺼풀이
위로 노 저어 가
시선 하나를 틔워 준다.

유영하는 아이리스, 꿈 없이 우울하게,
심회색(心灰色) 하늘이 가깝구나.

갸름한 쇠 등잔 속, 비스듬히,
천천히 타는 희미한 관솔 등화(燈火).
빛 감각에서
너는 영혼을 알아본다.

(내가 너 같았으면. 네가 나 같았으면.
우리 한 무역풍 아래
서 있지 않았던가?
지금은 낯선 이들인 우리.) - P20

타일들. 그 위에
바싹 붙어 있다. 두 개의
심회색 물줄기.
두 개의
입안 가득한 침묵.




언어창살: Sprachgitter. 원래 중세 수도원 면회실의 창살문을 가리키며 이것을 사이에 두고 수도 중인 사람과 외부 면회자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를 ‘언어창살‘로 직역한 것은, 그 창살문의 이미지가 여기서는 소통과 단절의 기능을 동시에 가지는 언어와 접목되었기 때문이다. 가까우면서도("타일들. 그 위에 바싹 붙어 있다. 두 개의 / 심회색 물줄기.") 낯설고 단절된("두 개의 / 입안 가득한 침묵.") 인간관계가 현미경적 이미지들로 포착되어 있다. 이 시는 『언어창살』에 수록되어 있다.

아이리스: 무지개의 여신. 눈의 홍채를 뜻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안구의 홍채와 안구의 홍채 속을 헤엄치는 아이리스를 동시에 보여 준다. - P21

무덤 근처


남녘 만(灣)의 물은 아직 알고 있을까요,
어머니, 당신에게 상처를 남긴 파도를?

한가운데 물방아들이 있는 벌판은 알까요,
얼마나 나직하게 당신의 가슴이 당신의 천사들을 견뎠는지?

어떤 은(銀)포플러도 어떤 수양버들도, 이제는
당신의 근심을 거둬 가지 못하지요, 위안을 드리지 못하지요?

그런데 신은, 꽃봉오리 피어나는 지팡이를 짚고
언덕으로, 언덕 아래로, 가지 않나요?

그런데 견디시겠어요, 어머니, 아 언젠가, 집에서처럼,
이 나직한, 이 독일어의, 이 고통스러운 
운(韻)을? 
- P22

독일어: 첼란은 복합적인 이유로 여러 언어를 뛰어나게 구사하였다. 그러나 극한의 체험(「죽음의 푸가」 해설 참조.) 이후 모든 사람을 잃고 홀로 살아남은 첼란은, 독일어로 시를 쓰기로 결심한다. 독일어는 그에게 오로지 고통만을 가져다준 나라의 언어, ‘살인자들의 언어‘였지만, 동시에 모국어(‘어머니의 말(Muttersprache)‘)이자 무엇보다 비명에 간 어머니와 어린시절 함께 즐겁게 읽었던 문학의 언어였던 것이다. 첼란의 어머니의 사망시기나 장소는 불명이지만, 유대인들이 송치되었던 흑해변 드네프르 강 연안(‘남녘 만‘)으로 추정된다. 이 시는 첼란이 한정판으로 냈다가 회수한 첫시집 『유골 항아리에서 나온 모래』에 수록되어 있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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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장환

1918년 충청북도 보은 출생.
1931년 휘문고등보통학교 입학. 정지용으로부터 시를 배울1933년 조선문학』에 시 「목욕간」을 발표함으로써 작품 활동 시작1934년 일본으로 건너가 지산(智山)중학교에 전입.
1936년 지산중학교 수료. 「낭만』, 『시인부락』 동인으로 참가.
1937년 명(明)대학 전문부에 입학. 자오선」 동인으로 참가.
제1시집 『성벽』(풍림사) 발간..
1938년 명치대학 전문부를 중퇴하고 귀국.
1939년 제2시집 「헌사』 (남서방) 발간.
1945년 해방 후 시작(詩作) 재개1946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하여 활동. 「예세닌 시집』 (동향사)번역 출간. 제4시집 「병든 서울』 (정음사) 발간.
1947년 제3시집 『나 사는 곳』(헌문사) 발간. 월북.
1948년 산문집 『남조선의 문학예술』 발간. 병 치료차 모스크바로 감.
1949년 모스크바를 떠나 귀국함.
1950년 소련 기행 시집 「붉은 기』 발간.
1951년 지병인 신장병으로 사망. - P-1

황혼(黃昏)


직업소개에는 실업자들이 일터와 같이 출근하였다. 아무 일도 안 하면 일할 때보다는 야위어진다. 검푸른 황혼은 언덕 알로 깔리어오고 가로수와 절망과 같은 나의 긴 그림자는 군집(群集)의 대하(大河)에 짓밟히었다.

바보와 같이 거무러지는 하늘을 보며 나는 나의 키보다 얕은 가로수에 기대어 섰다. 병든 나에게도 고향은 있다. 근육이 풀릴 때 향수는 실마리처럼 풀려나온다. 나는 젊음의 자랑과 희망을, 나의 무거운 절망의 그림자와 함께, 뭇사람의 웃음과 발길에 채이고 밟히며 스미어오는 황혼에 맡겨버린다.

제 집을 향하는 많은 군중들은 시끄러이 떠들며, 부산히 어둠 속으로 흩어져버리고, 나는 공복의 가는 눈을 떠, 희미한 노등(路燈)을 본다. 띄엄띄엄 서 있는 포도위에 잎새 없는 가로수도 나와 같이 공허하고나.

고향이여! 황혼의 저자에서 나는 아리따운 너의 기억을 찾아 나의 마 - P22

음을 전서구(傳書鳩)와 같이 날려보낸다. 정든 고샅. 썩은 울타리. 늙은 아베의 하얀 상투에는 몇 나절의 때묻은 회상이 맺혀 있는가. 우거진 송림 속으로 곱게 보이는 고향이여! 병든 학이었다. 너는 날마다 야위어가는......

어디를 가도 사람보다 일 잘하는 기계는 나날이 늘어나 가고, 나는 병든 사나이. 야윈 손을 들어 오랫동안 타태(惰怠)와, 무기력을 극진히 어루만졌다. 어두워지는 황혼 속에서, 아무도 보는 이 없는, 보이지 않는 황혼 속에서, 나는 힘없는 분노와 절망을 묻어버린다. - P23

화원(花園)


꽃밭은 번창하였다. 날로 날로 거미집들은 술막처럼 번지었다. 꽃밭을 허황하게 만드는 문명. 거미줄을 새어나가는 향그러운 바람결. 바람결은머리카락처럼 간지러워∙∙∙∙∙∙ 부끄럼을 갓 배운 시악시는 젖통이가 능금처럼 익는다. 줄기째 긁어먹는 뭉툭한 버러지. 유행치마 가음처럼 어른거리는 나비 나래. 가벼이 꽃포기 속에 묻히는 참벌이. 참벌이들. 닝닝거리는 울음. 꽃밭에서는 끊일 사이 없는 교통사고가 생기어났다. - P34

북방(北方)의 길


눈 덮인 철로는 더욱이 싸늘하였다
소반 귀퉁이 옆에 앉은 농군에게서는 송아지의 냄새가 난다.
힘없이 웃으면서 차만 타면 북으로 간다고
어린애는 운다 철마구리 울듯
차창이 고향을 지워버린다
어린애가 유리창을 쥐어뜯으며 몸부림친다 - P68

불길한 노래


나요 오장환이요. 나의 곁을 스치는 것은, 그대가 아니요. 검은 먹구렁이요 당신이요.
외양조차 날 닮았다면 얼마나 기쁘고 또한 신용하리요.
이야기를 들려요. 이야길 들려요
비명조차 숨기는 이는 그대요 그대의 동족뿐이요.
그대의 피는 거떻다지요 붉지를 않고 거멓다지요.
음부 마리아 모양, 집시의 계집애 모양,

당신이요 충충한 아구리에 까만 열매를 물고 이브의 뒤를 따른 것은 그대 사탄이요
차디찬 몸으로 친친이 날 감아주시요. 나요 카인의 말예(末裔)요 병든 시인이요. 벌(罰)이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능금을 따먹고 날 낳았소.

기생충이요. 추억이요. 독한 버섯들이요.
다릿한 꿈이요. 번뇌요. 아름다운 뉘우침이요.
손발조차 가는 몸에 숨기고, 내 뒤를 쫓는 것은 그대 아니요 두엄자리에 반사(半死)한 점성사(占星師), 나의 예감이요. 당신이요. - P76

견딜 수 없는 것은 낼룽대는 혓바닥이요. 서릿발 같은 면도날이요.
괴로움이요. 괴로움이요. 피 흐르는 시인에게 이지(理智)의 프리즘은 현기로웁소
어른거리는 무지개 속에, 손꾸락을 보시요 주먹을 보시요.
남빛이요 ㅡ빨갱이요. 잿빛이요. 잿빛이요. 빨갱이요. - P77

초봄의 노래


내가 부르는 노래
어데선가 그대도 듣는다면은
나와 함께 노래하리라.
"아 우리는 얼마나
기다렸는가......" 하고

유리창 밖으론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데
한겨울
나는 아무 데도 못 가고
부질없는 노래만 불러왔구나.

그리움도 맛없어라
사무침도 더디어라

언제인가 언제인가
안타까운 기약조차 버리고 - P85

한동안 쉴 수 있는 사랑마저 미루고
저마다 어둠 속에 앞서던 사람

이제 와선 함께 간다.
함께 간다.
어디선가 그대가 헤매인대도
그 길은 나도 헤매이는 길

내가 부르는 노래
어데선가 그대가 듣는다면은
나와 함께 노래하리라.
"아 우리는 얼마나
기다렸는가......" 하고 - P86

붉은 산


가도 가도 붉은 산이다.
가도 가도 고향뿐이다.
이따금 솔나무숲이 있으나
그것은
내 나이같이 어리고나.
가도 가도 붉은 산이다.
가도 가도 고향뿐이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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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람들은 자국 문화의 우월함과 프랑스어의 아름다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으므로 원문 충실성은 크게 신경을 안 쓰고 프랑스 미녀를 탄생시키는 데 집중했다. 그렇지만 독일 문학가들의 입장은 달랐다. 슐라이어마허는 「번역의 다른 방법에 대하여」(1813)에서 프랑스처럼 길들일 게 아니라 번역 과정에서 낯선 것들이 독일어에 들어오게 하여 독일어가 더욱 풍부해지게 하자고 주장했다. 비슷한 시기에 번역에 골몰하던 횔덜린도 "번역이 마치 체조처럼 독일어에 좋은 영향을 준다. 아름답고 위대한 외국어의 변덕에 억지로 적응하다 보면 아름답게 유연해진다"고 말한 바 있다. 횔덜린은 충실성을 극단으로 추구하다가 체조를 넘어 곡예에 이르렀는지 존경하는 실러에게 비웃음을 사고 말았으나. 이후 20세기에 "원문이 투명하게 비쳐 보이게"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한 벤야민도 같은 입장이다. 벤야민은 시를 있는 그대로 번역해야 번역에 영향을받아 언어가 자란다고 하며 그 낯섦과 버석거림을 ‘산통(birthpangs)‘이라고 표현했다.

이들은 주로 언어와 문학의 관점에서 낯설게 
하기의 장점과 효용을 역설했으나, 20세기 후반에 와서 번역 이론이 탈식민주의 연구와 결합하며 낯설게 하기는 더욱 강력한 설득력을 얻게된다. 탈식민주의 이론가들은 지금까지의 번역 연구가 서로 - P140

다른 언어 사이의 불평등한 권력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을 중대한 문제로 지적했다. 실제로 식민화 과정에서 번역이 지배자의 세계관이나 통치 체계를 강제하고 식민지의 언어와 문화를왜곡하거나 삭제하는 등의 역할을 했음에도 번역 연구는 그 점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식민 권력은 성경을 토착어로 번역해 서구의 종교와 세계관을 식민지인에게 전파하는 것에서 시작해, 지배자의 언어로 원주민의 설화와 역사 등을 번역해 원주민 문화를 연구하고 통제했다. 이렇게 언어적·문화적 침투가 이루어진 후에 실용적 · 통치적 필요에 따라 지배자의 언어를 강요하기도 했다. 그렇게 식민지인들은 언어와 문화적 정체성을 잃고 자신을 드러낼 목소리를 잃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우리도 직접경험으로 아는 일이다. 일제강점기 말기에 일제가한국어 사용을 금지하여 우리의 정체성과 문화를 파괴하는 잔인한 식민지 정책을 펼치면서 우리말도 커다란 위기를 겪었다. - P141

그러니 번역이란 순수하게 언어적이거나 문학적인 행위일 수 없고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사이의 불평등한 지위와 권력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문화적·언어적 자신감이나 우월감의 유무에 따라, 바깥으로부터의 문화적 수혜를 바라는지 아니면 자국의 문화를 지키기를 바라는지에 따라 번역 태도는 달라진다.
이를테면 에드워드 피츠제럴드는 원문을 충실하게 지켜야 한다는 생각 없이 낯선 것을 자기에게 맞게 바꾸어 흡수했다. 피츠제럴드는 오마르 하이얌의 시들을 가위로 오리고 풀로 붙이는 작업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친구에게 편지로 이렇게전했다. "이 페르시아인들을 마음껏 자유롭게 번역하는 것이즐거워. (내 생각에는) 페르시아인들은 대단한 시인이 아니라서 이렇게 거리낌 없이 일탈할 수 있어. 아무래도 예술적으로좀 만져줄 필요가 있으니까."(강조는 원문)  피츠제럴드의 자유로운 번역을 문화적 우월감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피츠제럴드에게는 오마르의 시를 존중하는 마음이 없었고 오마르를 ‘내 소유물(my property)‘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피츠제럴드가 남달리 오만해서 그렇다기보다는 당시 일반전이 관념이 그랬다.  - P142

2016년 데버라 스미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TheVegetarian 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뒤에 번역 논쟁이뜨겁게 벌어졌다. 최근에 구체적인 사례를 두고 이만큼 열띤논쟁이 벌어진 일은 없었을 듯하다. 처음 수상 소식이 들려왔을 때 (한 시인의 노벨문학상 수상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던)한국인들은 한국문학의 위상을 높이는 쾌거라며 들떠서 축하하고 칭찬했다. 그러나, 얼마 후 인터넷에 The Vegetarian의 오역 의심 사례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번역 작품을 원본과 비교해본 국내 번역가들은 다들 나처럼 아연했을 듯싶다. 데버라스미스가 우리로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유로운 번역을 했던 것이다.  만약 국내 번역가가 외국의 유명한 작품을그렇게 번역했다면 곧 오역 논쟁에 휩싸였을 것이고 영원히 출판계에 발을 붙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 P145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논리에 설득력이 부족하다. 첫 번째논문에서 의미 충실성을 따지는 것이 국수적 민족주의라고 본것은 아무리 봐도 과잉 해석이다. 또 두 번째 논문에서 남성 인물이 더 가부장적일수록, 여성 인물이 더 독립적일수록 더 페미니스트적인 텍스트라는 건 너무 단순한 생각이 아닌가? 아니, 아시아 여성의 텍스트에 페미니스트적 인식이 부족하다고보고 서구 독자의 수준에 맞추어서 관점을 강화하는 번역을했다면 그 자체가 문제적이지 않나? 데버라 스미스의 번역을옹호하려면, 원문 충실성보다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개별 문학작품으로서 이룬 성취에 초점을 맞춰야 할 텐데, 이 논문에서는 번역의 장점을 다시 원문과 비교해서 설명하고 있다. 번역을 원문에 종속된 것으로 보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스미스의 번역을 정당화하는 데 실패한다. 번역이 원문과 비교해서 ‘더 가부장적‘이고 ‘더 이기적‘이고 ‘더 독립적‘이 - P149

라고 주장한다면, 원문과 비교해서 덜한 것들도 있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조재룡은 같은 번역에 대한 비평에서 "단호하고 폭력적이고 단순한 남편은 […] [번역에서] 우유부단하고 고민에 휩싸인 남편이 된다"거나 "번역은 원문의 수동적인 아내에게 능동성을 부여하고, 원문의 폭력적인 남편에게는 인내심과 합리성을 선사한다고 평가하고, 이런 점을 번역이 "남성 중심주의 전반의 구조적 문제나 남성 편향적 가족 이데올로기의 폭력성, 직장의 위계와 권력의 횡포, 남성의 종속성과 비굴함 전반을 지워버리는 사례로 지적한다." 그렇다면 TheVegetarian은 채식주의자』에 비해 더 페미니스트적인가, 아닌가? 뭘 얻었고 뭘 잃었는지를 견주어서는 결론이 날 수가 없다. The Vegetarian 이 부정한 미녀로 존재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원문에 대한 비교 우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작품 자체의 성취로 인정받아야 한다. - P150

영어권에서는 번역이 별로 필요 없는 반면, 그 밖의 다른 언어권에서는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려면 혹은 상을 받으려면 일단 영어로 번역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에 의해서도 번역 관행의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한국에서 미국 책을 들여올 때는 경쟁이 붙는 경우가 많고 한국 출판사는 을이된다. 원문 수정을 요구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원저작권자에게 번역자 약력과 번역 샘플, 번역서 표지, 제목 등을 미리보여주고 허락을 받아야만 번역서를 출간할 수 있을 때도 있다. 반면 미국 출판사에서 한국 책을 수입할 때는 상당히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입맛에 맞게 바꿀 수도 있고 번역도자유롭게 할 수 있다.
또 얼마나 낯선가에 따라 길들이는 정도의 차이가 난다. 평균적인 한국 독자가 미국 문화에 친숙감을 느끼는 정도와 평균적인 미국 독자가 한국 문화에 친숙감을 느끼는 정도는 크게다르다. 거리가 있을수록 많이 길들이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중심에서 변방으로 갈 때는 충실성을 지키며 번역할 수 있지만, 변방에서 중심으로 갈 때는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으로들어올 때까지 길들여야 하기도 한다. - P154

2020년에 김초엽 소설가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부터 나는 소설을 쓸 때 ‘그녀‘를 되도록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인칭대명사를 둘러싼 논쟁을 접하면서 예전처럼 아무 입장 없이 ‘그너‘를 쓰기가 불편해진 것이다." 김초엽 소설가가 고민하는 지점은 이런 것이다. "이브가 아담의 갈비뼈에서 파생된 존재라는 것처럼 우리를 둘러싼 언어는 남성을 기본형으로 간주하고그것에 슬그머니 ‘여‘를 덧붙여 여성을 보편에서 배제한다. 물론 소설에서 흔히 쓰이는 ‘그‘와 ‘그녀‘도 그런 혐의에서 무결하지 않다." 
내가 어렸을 때 들은 유명한 난센스 문제가 있다. 어떤 아버지와 아들이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했다. 아버지는 즉사하고, 아들은 응급실로 실려 갔다. 그런데 호출을 받고 온 외과 의사가 아들을 보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난 이환자 수술 못 합니다. 이 애는 내 아들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일어난 걸까? 출생의 비밀은 아니고, 너무나 당연한 답이지만, 의사는 환자의 어머니였다. 요즘 사람들은 쉽게 답을 떠올리고왜 이게 난센스 문제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어릴 때는 의사는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고정관념의 허를 찌르는 문제였다. 그리고 그런 고정관념의 흔적이 ‘여의사, 여경, 여배우‘ 등에 남아 있다(‘남의사, 남경, 남배우‘가 얼마나 어색하게 들리는지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그/그녀‘를 유럽어에서 받아들여 쓰게 되었는 - P174

데, 이제는 서양에서도 남녀를 구분하는 대명사를 불편하게여긴다. 자신이 이분법적 성별 체계에 속하지 않는 논바이너리(non-binary)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면서 ‘he/she‘ 대신 ‘they‘를 삼인칭 복수 겸 단수 대명사로 쓰는 경향이 눈에 뜨인다. 경칭으로도 ‘Ms‘나 ‘Mr‘ 대신 ‘Mx‘를 붙이기도 한다. 미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친구에게 들었는데, 이렇게 논바이너리로 정체화한 학생을 임의로 ‘he/she‘로 지칭하면 차별이 될수 있어서 늘 신경 쓰고 조심한다고 한다.
그러니 이제는 한국어에 성별 구분 대명사가 본디 없었고지금도 미미한 지위밖에 지니지 못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한국어에 성별 표지가 없어서 번역을 거치며성별 정보가 지워지기도 하고 그게 손실로 느껴질 때가 없는건 아니다. 내가 리베카 솔닛의 [해방자 신데렐라]]를 번역할때도 손실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일이 있었다. 해방자 신데렐라는 리베카 솔닛이 전래 동화 [신데렐라]를 세심하게 다듬어 오늘날 시대감각에 맞지 않는 부분을 고쳐 쓴 그림책이다. 다시 쓴 이야기에도 신데렐라가 흘리고 간 구두를 주인에게 돌려주려고 왕자가 집집마다 찾아다니는 장면이 있다. 이구두 주인이 여기 있느냐는 질문에, 사람들은 차례로 이렇게대답한다. - P175

나는 글에도 편하고 자연스러운 구어체를 쓰는 
편을 더 좋아해서 웬만하면 삼인칭대명사는 잘 넣지 않는다. 물론 삼인칭대명사 없이 번역하기가 불가능한 글도 있고, 삼인칭대명사든 뭐든 동원해서 문어적 느낌을 살려주어야 하는 글도 있으니 삼인칭대명사를 쓰지 않는다는 원칙 같은 것은 없다. 또 성별을 나타내는 삼인칭대명사를 쓰지 않음으로써 사라지는 정보가 있음도 생각해야 한다.
번역이 아무리 자연스럽고 편안한 한국어를 추구한다고할지라도 번역문에는 번역의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다. 때로는그 흔적이 번역문의 미덕이 된다. 타자의 언어와 나의 언어가포개어지고 간섭이 일어날 때 아롱거리는 무늬가 언어에 아름다운 흔적으로 남는다. 나는 한국어로 글을 쓰는 사람을 흉내내려 하는데 번역가를 흉내 내어 글을 쓰는 사람도 있고, 이런교환과 충돌을 통해 언어의 가능성이 최대로 이끌어내어지기도 한다. 내가 쓰는 언어에도 지금까지 내가 읽고 번역한 무수한 글들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타자의 텍스트를 씹고 삼키고 흔적도 남지 않게흡수해버리는 번역도 있다. 다음 장에서는 길들이다 못해 잡아먹어버리는 식인주의 번역(Cannibalist Translation)을 다룬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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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달자
愼達子. 1943년 경남 거창 출생. 숙명여대 국문과 졸업. 1970년 「빨래」 「발」 「에레베타」로 문단에 나왔다. 주요작품으로는 「일기」「미로」 「미인계」 등이 있으며 이들 작품을 통해 조화할 수 없는 인간의 외로움과 숙명적인 상실을 노래한 여류시인이다.


뒷산

외로울 적에
마음 답답할 적에
뒷산에 올라가 마음을 벗는다
나무마다 하나씩 마음을 걸어두고
노을을 받으며 드러눕는 그림자
돌아갈 것이 없는 빈 몸이다.
뒷산은 뒷산은 내 몸이다.
무겁게 끌어 온 신발의 진흙덩이
서리 감겨 살을 에는 하루의 바람
모두 모두 부려놓는
울먹이는 내몸이다. - P-1

오규원
吳圭原. 1941년 경남 삼랑진 출생. 동아대 법과를 졸업.『현대문학』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데뷔한 이후로 왕성하게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그는, 일상적으로 보고 들을 수 있는 언어와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들로 가득찬, 그러면서도 우리가의식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삶의 뒷 모습까지도 예리하게 파헤쳐나가는 시인이다. 시집으로 『분명한 사건』『순례』『사랑의 기교』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이땅에 쓰여진 서정시』와 시론집 『현실과 극기』『언어와 삶』 등이 있다. 현재 서울 예술 전문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 P-1



저기 저 담벽, 저기 저 라일락, 저기 저 별, 그리고 저가저 우리 집 개똥 하나, 그래 모두 이리와 내 언어 속에 서라. 담벽은 내 언어의 담벽이 되고, 라일락은 내 언어의 꽃이 되고, 별은 반짝이고, 개똥은 내 언어의 뜰에서 굴러라. 내가내 언어에게 자유를 주었으니 너희들도 자유롭게 서고, 앉고반짝이고, 굴러라. 그래 봄이다.

봄은 자유롭다. 자 봐라, 꽃 피고 싶은 놈 꽃 피고, 잎 달고 반짝이고 싶은 놈은 반짝이고, 아지랑이고 싶은 놈은 아지랑이가 되었다. 봄이 자유가 아니라면 꽃 피는 지옥이라고하자. 그래 봄은 지옥이다. 이름이 지옥이라고 해서 필 꽃이안 피고, 반짝일 게 안 반짝이든가. 내 말이 옳으면 자, 자유다 마음대로 뛰어라.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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