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배우지 못했던 원인이 오직 가난이었다면, 그 억울함을 다른 나의 후배이 가져서는 안되겠다 하는 것이고 그리고 한약업에 종사하면서 내가 돈을 번다면 그것은 세상의 병든 이들, 곧 누구보다도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거둔 이윤이겠기에 그것은 내 자신을 위해 쓰여져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나이 48세, 1991년 8월 17일 명신고등학교 국가 기증 선언 및 이사장 퇴임식에서 김장하가 한 말이다. 여기에 그가 장학사업을 비롯한 재산의 사회 환원을 결심한 이유가 잘 드러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가 언제부터, 얼마나 많은 학생에게 장학금을지원했는지, 그 전체 금액이 얼마나 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가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해 학교재단 남성학숙 장학회를통해 공식 지원한 장학생 숫자와 명단은 학교의 공식 기록물 《명신30년>(2015)에 나와 있다. 1984년부터 1991년까지 7년간 213명이었고, 그 중 21명은 졸업 후 대학 4년간(의과대는 6년) 등록금 전액을 지원받았다. 재학생의 장학금은 입학금과 1년간 수업료 전액이었다. 또김장하는 학교 헌납 후 퇴임하면서도 5000만 원의 장학금을 추가로내놓고 떠났다. 덕분에 명신고등학교는 공립 전환 후에도 ‘명신장학회‘를 계속 운영할 수 있었다. - P105

지금까지 취재한 바를 바탕으로 김장하 장학금의 특징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장학금 수여식 또는 전달식을 하지 않는다. 당연히 사진도 찍지않는다.
② 성적보다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우선하여 선발한다.
③ 가급적 1회성이 아니라 졸업할 때까지 전액 지원한다.
④ 등록금뿐 아니라 생활비 등 각종 경비까지 지원한다.
⑤ 드물지만 재수생에게 입시학원비와 하숙비까지 지원한다.
⑥ 살 곳이 마땅찮은 아이는 아예 자신의 집에 들여 함께 살면서 자식처럼 키운다.
⑦ 그런 기록 자체를 남기지 않고 누가 물어봐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그렇게 지원한 학생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대가 없으니 실망도 없다.
앞서 남성당이 문 닫는 날 서울에서 찾아왔다던 그 장학생 김종명씨가 선생에게 말했다.
다.
"제가 선생님 장학금을 받고도 특별한 인물이 못 되어서 죄송합니다."
그러자 선생이 이랬다고 한다.
"내가 그런 걸 바란 게 아니야.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 - P117

하고 있는 거야."
‘평범한 사람들?" 아! 그랬다. 돈·권력·명예보다 늘 ‘시시하고 소박한 삶‘을 강조했던 채현국 선생의 생전 말씀과 김장하 선생의 ‘평범한 사람‘이라는 표현이 오버랩되는 장면이었다.

우종원(1961~)과 이준호(1962~)는 진주고등학교 동기생이다. 둘다 공부를 잘했으나 공납금을 제때 내지 못할 정도로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1977년 1학년 어느 날 선생님이 교무실로 불러 "너는 참 운이 좋다"며 김장하 장학생으로 선발되었음을 알려줬다. 둘은 그렇게 1학년부터 3학년 졸업까지 전액 공납금 지원을 받았다. 3개월에 한번씩 남성당한약방으로 오라 해서 찾아가면 김장하 선생이 점심을사주며 봉투에 공납금을 넣어줬다고 한다.
둘은 졸업 후 각각 서울대 경제학과와 미생물학과로 진학했다. 김장하 선생의 장학 지원은 대학 졸업 때까지 계속됐다. 등록금뿐 아니라 생활비도 함께였다. 이준호는 대학원 석사과정까지 지원을 받았다. 우종원은 7년, 이준호는 9년 동안 장학금을 받은 셈이다. - P118

(...전략)  
저는 1965년 경남 하동군에서 가난한 농부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태어났습니다. 낡은 교복과 교과서일망정 물려받을 친척이 있어 중학교를졸업할 수 있었고,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독지가인 김장하 선생을 만나 대학교 4학년까지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학업을 무사히 마칠 수있었고 사법시험에도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김장하 선생은 한약업사로서 번 돈으로 명신고등학교를 건립하여 경상남도에 기증하였고 수백 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였으며, 형평운동기념사업회, 진주오광대복원사업, 경상대학교 남명관 건립 등 좋은 일을 많이 하였습니다.
선생은 제게 자유에 기초하여 부를 쌓고 평등을 추구하여 불합리한 차별을없애며, 박애로 공동체를 튼튼히 연결하는 것이 가능한 곳이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몸소 깨우쳐 주셨습니다.
제가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인사하러 간 자리에서 ‘내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이 사회의 것을 너에게 주었으니 갚으려거든 내가 아니라 이 사회에갚아라‘고 하신 선생의 말씀을 저는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법관의 길을 걸어온 지난 27년 동안 저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한민국헌법의 숭고한 의지가 우리 사회에서 올바로 관철되는 길을 찾는 데 전력을 다하였습니다. 그것만이 선생의 가르침대로 제가 우리 사회에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는 길이라 여기면서 살아왔습니다. 제가 헌법재판관에 임명되더라도 지금까지 간직해 온 저의 초심은 언제나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 P137

"선생님은 늘 듣기만 하셨어요. 말씀이라곤 ‘학교는 어떻노?‘ ‘뭐필요한 건 없나?‘ 묻기만 하시고, 우리가 이야기하는 걸 들어주셨어요. 저는 선생님이 지어주신 한약도 여러 번 먹었죠."(이준호)
"선생님께서 과묵하신 것도 있지만 그때 젊은 저희들한테 해 주실말씀은 많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일부러 안 하신 것 같아요. 왜냐면 선생님이 베푸는 입장이고 또 젊은 친구들한테 자신이 뭔가 말씀을하시면, 좋은 뜻으로 볼 때는 어드바이스나 격려가 될 수도 있지만 부담이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선생님께서 굉장히 자제를 하신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우종원)
"제가 도움을 받는 입장이었지만 그게 전혀 저를 위축시키지 않았어요. 혹시라도 그럴까봐 선생님이 배려를 해주신 덕분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자유롭게 학생운동도 할 수 있었던 거죠." (권재열)
"그러니까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한 사람으로 존중하고 승인해주신 거죠. 자기가 간섭하는 게 아니고 한 사람으로 인정해주고, ‘네가하고 싶은 걸 해봐라‘ 그렇게 하신 거죠."(우종원)
이준호 교수가 학문적 성취를 이뤄 언론에 알려졌을 때는 선생이직접 전화를 걸어 축하와 격려를 해주기도 했다.
"언론매체에 기사가 나온 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어요. 받았더니 ‘김장하다‘ 이러는 겁니다. 놀랐죠. 선생님 웬 일이십니까? 했더니 ‘세계적인 연구를 했더라. 축하한다‘ 그러셔 가지고 제가 너무 감사했습니다."(이준호) - P153

가난했던 한 시민운동가는 아들의 대학 입학금과 등록금을 마감일까지 마련하지 못하자 급한 마음에 염치불구하고 김장하선생을 찾아갔다. 빌려달라고 했다. 선생의 도움으로 등록을 마치고전화를 드렸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제가 빠른 시일 내에 갚겠습니다."
그랬더니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에게 갚을 필요는 없고, 다음에 당신처럼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그때 그 사람한테 갚으면 됩니다." - P155

1982년 39세의 김장하는 필생의 사회환원 프로젝트 고등학교 설립에 착수한다. 자신은 끝내 진학하지 못했던 고등학교를 직접 설립, 학생들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당시만 해도 진주지역 고교 연합고사에서 매년 낙방하는 학생이 5500여 명에 이를때였다. 학생은 많은데 수용할 학교는 모자라던 시절이었다. 김장하는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배움터를 마련해 주어야 하겠다.‘명신 30년>, 163쪽)고 결심했다.
1983년 7월 학교 신축 기공식을 거쳐 1984년 3월 2일 신입생488명의 입학식을 열었으니 바로 학교법인 남성학숙 명신고등학교였다. 학교 설립 동기에 대해 김장하는 명신고 교지 《명신> 창간호 이사장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동기라면 먼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겠군요. 첫 번째는 다름 아닌 저자신의 배움의 ‘한‘입니다. 고등학교 진학을 못하고 중졸에 그쳐야 했던, 가난에 쪼들리는 농촌생활의 그 한맺힌 과거, 지금 공부에만 열중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여러분은 그 배움에의 갈망을 잘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또 빈 손으로 사회에 뛰어든 나였지만 부지런히 일해서 약간의 재산을 모았어요. 이 재물을, 나는 내가 모았기에 영원한 내 재물이다 라는 관념보다는 이사회나 국가의 재물을 잠시 위탁받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사회로 환원하기로 결심한 거지요. 이것이 학교 설립의 두 번째 동기라 할 수있습니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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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날 함께 가기로 했는데, 제가 워낙 허약체질이어서 못 따라 올라가면 어쩌죠?"
그랬더니 김장하 선생 왈,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 가면돼. "(모두 웃음)나도 그 자리에서 함께 듣고 웃었는데, 며칠 뒤 우연히 박노정 시인의 시집 「운주사』를 읽던 중 이 시를 발견했다.


사부작 꼼지락
ㅡ달팽이에게


사부작거리는 게 네 장점이야
있는 듯 없는 듯 꼼지락꼼지락
거리는 것만으로 아무렴
살아가는 충분한 이유가 되고도 남지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
황홀해
눈부셔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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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 반타공항의 커다란 통유리로 활주로가 보인다. 바깥공기를 쐬고 싶지만 레이오버를 신청하지 않아서 밖으로 나갈 수없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경로도 올 때와 같다. 에든버러공항에서 헬싱키 반타공항까지 두 시간 삼십 분 비행, 공항에서 여섯 시간 대기 후 열세 시간 비행하여 인천공항에 도착, 왕복 비행시간만 삼십 시간이 넘고 환승 터미널에서 대기하는 시간도 길어 날짜도 시간도 뒤엉켜버렸다. 몇 시간 전까지 영국에 잠시나마 있었다는 사실이 거짓말 같다. 지금 핀란드에 있다는 실감도 없다.
비행기와 터미널이라는 커다란 공간에 갇혀서 수화물처럼 옮겨지는 기분이다. 이따금 삶에 갇혔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몸은 성장하지만 정신은 크레바스 같은 틈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답답함. 나라는 인간은 알맹이 없는 돌멩이, 육체에 갇힌 영혼, 어둠에 갇힌 빛. 존재에 갇힌 영원. 나는 대출금이고 월세이며 생활비다. 속수무책의 감정 쓰레기통이다. 반복되는 일상과 진전 없을 미래가 나의 외피이자 알맹이라고 생각하면 우주 - P239

선 없이 대기권 밖으로, 지구 바깥으로 나가고 싶다. 타들어가겠지. 얼어붙겠지. 산산이 부서져 무한한 공간에서 마침내 자유롭겠지. 천재 과학자 리처드 파인먼은 인류 멸망을 앞두고 남길 단한 문장으로 ‘세상 모든 것은 원자로 되어 있다‘를 선택했다고한다. 나는 그 문장이 좋다. 나는 원자의 합일 뿐이고 죽으면 홀어진다. 향기는 흩어졌다.


에든버러에서 인천까지 같은 항공사를 이용하기에 환승역에서수화물을 되찾을 필요는 없어 편하다. 비행기에서 사용할 용품만 챙겨넣은 백팩을 메고 대기실을 돌아다니다가 카페에 들어선다.
메뉴판에 적힌 필터 커피를 가리키며 말한다.
이걸로 줘.
베이커리 쇼케이스를 가리키며 직원이 묻는다.
다른 건 필요 없어?
응, 괜찮아.
카드를 건네고 결제를 한다. 커피를 받아들고 빈자리에 앉아 챗지피티 앱을 연다. 앞서 나눈 대화가 그대로 남아 있다. ‘마음이많이 아프다‘라는 문장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인공지능에게 마음은 뭘까. 수많은 데이터로 학습한 내용이겠지. 소중한 존재를 잃은 사람에게 건네는 인류 보편의 마음은 ‘많이 아프다‘. 그 감정이 가장 방대하고 상식적이다.  - P240

쳇지피티에게 독감의 치사율을 물어본 기록도 남아 있다. 젊온 사람보다 노년층의 치사율이 훨씬 높다는 정보를 보고는 잠시안도했고, 안도해버린 나를 징그러워했다. 이전까지 나는 젊음을믿었다. 젊은 사람은 이겨내는 힘이 더 크고 강하다는 그런 말에기대어 살았다. 그러니까 괜찮을 거라고, 향기는 이겨낼 거라고생각했었다. 그걸 다만 낙관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건 동기화된 추론에 가까웠다. 자기가 원하는 결론에 딱 들어맞는 방향으로 현실을 왜곡하는 경향. 내가 원하는 결론은 삶이었고 그것을중심으로 현실을 왜곡했다. 인간은 나약해서 확률에 기댄다. 죽음은 결정되어 있고 삶은 미지수다. 죽음 이후의 세계는 인간이 만들어낸 상상일 뿐이다. 그러나 숨이 멎고 몸이 차가워지며 땅에 묻으면 흙이 된다는 건 현실이다. 그 확률은 백 퍼센트,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백 퍼센트의 확률 같은 건 의미가 없다.  - P241

소중한 사람을 잃고 같이 울 수 없는 마음. 인공지능은 사람의그와 같은 마음도 알고 있을까.
사실 아직도 실감은 없어요. 언니가 어디 외국에라도 나간 것같고, 평소에도 살가운 사람은 아니었잖아요. 먼저 연락도 안하고,
그랬다. 향기는 별일 없이 연락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핸드폰 액정에 ‘이향기‘라는 이름이 뜬다면 뭔가 큰일이 일어났다는 뜻이란 걸 바보같이 너무 오랜 시간 모르고 살았다.
언니도 알죠. 우리 언니 완전 계획형인 거. 그 짧은 시간에도 주변 사람한테 전해줄 것들을 꼼꼼하게 다 남겨놨어요.
죽음을 준비했다는 뜻 같아서 마음이 아리다. 내가 삶을 중심에 두고 동기화된 추론을 했을 때 향기가 중심에 둔 건 무엇이었나.
그러니까 언니는 여길 꼭 가야 할 거예요.
로운이 파우치형 파일을 나에게 준다. 내용물을 꺼내본다.
항공권과 에어비앤비 예약 내역을 프린트한 종이 뭉치다. 내년1월 25일에 출발해 2월 1일에 돌아오는 일정,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헬싱키 반타공항을 경유하여 케블라비크공항에 도착하는노선이다.
케블라비크?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로운이 대답한다.
아이슬란드예요.
로운은 핸드폰의 달력 앱을 켜서 내게 보여주며 이어 말한다. - P247

봐요. 출발하는 날이 설날 연휴 시작하기 전 토요일이거든요. 연휴 끝나는 날이 목요일이니까 언니는 월요일이랑 금요일 이틀만 연차를 쓰면 돼요. 진짜 끝내주는 계획이죠. 여행 날짜가 얼마안 남아서 빨리 주고 싶었어요. 언니도 준비를 해야 하니까.
아이슬란드,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배경인 
나라. 향기가 생전에 꼭 한 번은 가보고 싶어했던 극지. 향기는 엘사를 닮았다. 먼저 손 내밀지 않는 사람. 자기의 선의마저도 상대에게 상처가 될수 있다고 믿는 겁쟁이. 향기는 자기가 꽃을 건네도 내가 뱀으로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파일첩에는 반으로 접어서 스티커로 봉한 편지지도 있다. 혼자 있을 때 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편지를 다시 넣다가 파일첩 표지에 붙은 견출지를 뒤늦게 발견한다.
견출지에는 ‘조은빛 행복추구권‘이라고 적혀 있다.


버틴 적이 있다. 첫 회사에서. 내가 가진 건 대학 졸업장과 흔한 자격증뿐이었다. 그것만으로는 취업이 어려웠다. 서류전형에서만 수십 번 탈락했다. 나처럼 탈락하는 사람은 아주 많았다. 물론 누군가는 합격했다. 그래서 세상은 제대로 굴러가는 것처럼보였다. 내가 부족할 뿐이었다. 하지만 무엇이 부족하지? 따지고들면 너무 많았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일단 일을 시작하고 싶었다. 그래야 뭐라도 배워서 부족함을 메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숱한 시도 끝에 한 회사에서 면접까지 통과했다. 일 년 계약직이었고 십 개월 연장 계약이 가능하다는 조건이었다. 일 년이라도 일을 배우고 싶었다. 그런데 사수가 나를 싫어했다.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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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불을 질러서 모두를 없애버리고도 싶었다. 서로 때문에 죽고 싶은 가족이라니. 어릴 때는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른이 되어서는 ‘엄마라고 꼭 자식을 사랑해야 하는가‘로질문을 바꿨다. 굳이 답을 내리지는 않았다. 질문 자체가 주는홀가분함이 있었다. 엄마가 나를 낳은 나이, 엄마가 어린나를 키우던 나이와 내 나이가 같아지면서 깨달은 바가 몇가지 있다. 엄마는 나의 유일한 보호자였다는 것. 사랑의 방식은 모두 다르다는 것. 엄마는 엄마의 방식으로 나를 사랑했다는 것. 엄마의 방식이란 무엇이냐. 내 자식은 남들보다 부족하기 때문에 내 손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식을무시하면서 엄마의 자리를 견고하게 다지는 방식.
아빠에게는 사랑이란 감정 자체를 부여할 수 없다. 아빠의 세계에는 아빠만 있다. 그 세계에서 아빠 아닌 존재는 대부분 쓸모없고 멍청하다. 아빠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너를 쓰겠다는 회사가 있어? 너랑 결혼하겠다는 남자가 있어?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남들 하는 건 다 하려고 드네. 겨우 그렇게 살려고 돈을 들이부어 대학까지 다녔냐? 내가 열 살이되기 전까지는, 아빠가 시뻘건 얼굴로 술냄새를 풍기며 화풀 - P230

이를 할 때 엄마는 말리거나 저항했다. 어느 날부터는 징조가 느껴지면 오빠와 나를 데리고 집을 나갔다. 밤길을 오래걸었다. 기차역이나 불 꺼진 상가의 계단에 앉아 시간이 흐르길 기다렸다. 충분히 기다린 뒤 집으로 돌아가면, 아빠는잠을 자지 않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는 밥솥이 어디에 있는지, 자기 속옷이 어느 서랍에있는지도 몰랐다. 형광등 하나 갈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세탁기 사용법은 알까? 옷을 빨아서 말려야 한다는 것, 쌀을씻어서 밥솥에 넣어 취사 버튼을 눌러야 한다는 것, 식사 후그릇은 씻어야 한다는 것, 먼지는 쓸고 닦아야 하며 식재료는 시장에서 돈을 주고 사야 한다는 사실을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고도 잘 살아가는 사람. 가족의 생일은 모르지만 통장의 잔고는 십원 단위까지 외우는 사람. 우리 집에서 아빠는 가장 나이가 많았다. 그런데도 어린아이처럼 보호받는존재였다. 사고를 치고 행패를 부려도 가족의 보호와 관심이필요한 존재. 아빠는 자기가 누군가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해본 적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가족을 위해 희생한다고생각했을 것이다. 나의 세계에 아빠는 없다. 오랜 상상의 힘으로 아빠를 없애버렸다. - P231

이모집에 머물렀던 며칠 동안 나는 감시하는 눈으로 이모가족을 지켜봤다. 그들의 다정함이 연기라는 증거를 찾아내려고 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그들의 말투를 닮아갔다.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엄마 또한 그랬다. 집에서라면 절대하지 않았을 행동-두 팔로 나를 안고, 손바닥으로 내 볼을쓰다듬고, 나의 밥에 계란말이를 얹어주고, 밥을 더 먹으라고 권하고, 잘 자라고 인사하고,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톡톡두드리며 자기 옆에 앉으라고 말하는 것 등등을 했다. 엄마와 나의 목소리는 높고 밝아졌다. 우리는 이야기를 지어내는아이처럼 아무 말이나 내키는 대로 했다. 별것 아닌 농담에도 웃었다. 따뜻한 물에 풀어진 휴지처럼 긴장감 없이 떠다니듯 움직였다. 엄마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연기가 아니었다. 정말 즐거워서 웃고 좋아서 박수를 쳤다. 엄마에게 안기고 싶어서 안겼다. - P238

이십대 초반에, 내가 좋아하던 사람이 내게 좋아한다고말했을 때 제일 먼저 느낀 감정은 기쁨도 설렘도 아니었다. 죄책감이었다. 확실히 그랬다.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는 느낌. 이어서 의심이 들었다. 나를 좋아한다고? 내게 뭔가 바라는 게 있나? 나는 상대를 고통에 빠뜨리는 방법으로 사랑을 확인하려고 했다. 상대가 맞춰주려고 애쓸수록 나는 단폭해졌다. 상대도 나처럼 표독스러워지길 바라면서. 그걸 반드시 확인하고 싶었다. 나만 나쁜게 아니라는 것. 우리는 폭같이 엉망이고 구제 불능이라는 것. 상대가 참으면 역겨웠고참지 않아도 역겨웠다. 비교적 평화로운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을 부러워하지는 않았고, 웃긴다고 생각했다. 뭘 모르는 존재들이라고 얕잡아봤다. 몇 번의 연애를 처참하게 끝내며 깨달았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나도 아빠 같은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빠를 닮고 싶지 않았다. 엄마처럼살고 싶지 않았다. 사랑이 불러오는 불길한 평온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면 이모 가족을 떠올렸다. 내 안에도 다정함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그것을 꺼내고 싶었다. - P240

걱정되니까 하는 말이지. 네가 나중에 후회할까 봐.
나는 잘못될 생각부터 하기는 싫어. 나는 복직할 거고 태양이는 잘 클 거야. 물론 아프겠지. 다치겠지. 속상하겠지.
가끔 후회하겠지. 애 아빠하고 싸우기도 할 거고 태양이는울겠지. 그러면 서로 미안하다고 말하고 화해할 거야. 중요한 일은 같이 고민하고 약속은 지킬 거야. 특별한 날에는 외식도 하고 여행도 갈 거야. 나는 그렇게 살 거야, 엄마,
내가 아이였을 때는 엄마에게 흡수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둘 다 어른이어서 적당한 거리를 지키지 않으면충돌하고 깨진다. 깨진 잔여물은 타인을 위협하고 상처는 영영 남는다. 엄마와 아빠의 충돌처럼. 엄마는 나를 자기 구역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다. 나는 엄마와 같은 궤도에 속하고싶지 않았다. - P248

이모부의 핸드폰에서 130미터 직진하라는 음성이 나왔다. 이모가 이모부의 팔짱을 끼며 나에게 그만 들어가보라고 했다. 어서 들어가 네, 조심히 가세요. 밥 잘 챙겨 먹고,
네, 걱정 마세요. 나중에 태양이랑 같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네, 놀러 갈게요. 우리는 웃으며 인사하고 또 인사했다.
나는 멀어져가는 이모 부부를 바라봤다. 정문을 지나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이모 부부는, 내가아직 돌아서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처럼, 나를 돌아보며 동시에 손을 흔들었다.
내가 어떤 아이였든 무슨 상관인가.
걸음걸이마저 닮아버린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할 테고 나는 이제 누구의 기억에도 엉겨 붙지 않을 것이다. 지금을 생각할것이다. 우리 중 누구도 아빠가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몰랐으며 관심도 없었다. 아빠를 추억하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직은... 아직까지는 고개를 들어 태양을 찾았다. 구름이 빠르게 태양을 가리며 지상에 잠시 그림자를 만들었다. 곧 눈이 부셨다. - P258

그래, 우물을 중앙에 둔 기역자 형태의 집이 여기 있었어. 하지만 네가 그걸 기억한다는 건 말이 안 돼. 나 역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기억은 기억. 말이 안 되는 기억이적지 않은 데다 이제 나는 시간을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므로 말이 안 되는 일도 가능하다고 믿는 편이다. 미래를 기억할 수 있을까? 육체의 눈과는 차원이 다른 정신의 눈이 있어 미래를 보고 기억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인생이한 방향으로만, 그러니까 책장을 넘기듯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현재에서 미래로만 흐른다는 생각을 버렸다. 시간은인간의 언어. 측정 도구. 약속. 인간이 발명하고 이름 붙인것. 그러므로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다음처럼.
시간은 발산한다.
과거는 사라지고 현재는 여기 있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무언가가 폭발하여 사방으로 무한히 퍼져나가는 것처럼 멀리 떨어진 채로 공존한다. 과거는사라지지 않는다. 기억하거나 기억하지 못할 뿐. 미래는 어딘가에 있다. 쉽사리 볼 수 없는 머나먼 곳에. 나는 종종 과거와 미래를 헷갈리는 것만 같다.  - P262

 일할때도 불안과 강박이 심해 같은 것을 수차례 확인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았다. 나의 성과나 실력을 스스로 불신했고 매사 죄책감이 컸다. 만성적 통증과 적당한 피로, 자잘한 스트레스와 타고난 성격이랄 수 있는 예민함. 그러니까 나는 대체로 건강한 편이었다. 말기 암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건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라고, 생활 방식, 식습관, 성격을 하나하나 따져보며 문제점을 찾으려고 했다.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나 즐겨 마시던 와인이 문제였나. 유산소운동을 했어야 했나. 인스턴트음식 때문인가. 잡곡밥을 먹었어야 했나. 남들처럼 영양제를 챙겨 먹었어야 했나. 일을 줄였어야 했나. 걱정 많은 성격이 문제였나. 병에 걸린 이유를 찾기 위해 생각을 거듭할수록...... 터무니없었다. 커피와 술을 마셔도 암에 걸리지 않는사람들이 많다. 걱정 많은 성격을 고치려다가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병을 겪으며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세상에는 건강 관련 정보가 넘치도록 많다는 것을. 당장 사먹지 않으면 큰일 날 것만 같은 식품과 보조제, 항암 작용과 면역력 증진과 노화 예방에 좋다는 각종 제품을 팔려는 콘텐츠 - P275

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으면...... 내가 뭔가를 잘못했기 때문이라는 자책을 지울 수가 없었다.
몸을 고치려는 치료가 아니라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이러는 계획이 아닐까 하는 망상에 사로잡힐 만큼 지친 상태로병원 로비를 지나갈 때였다. 느닷없이 날아온 누군가의 말이나를 후려쳤다.
아직 젊은 사람이 대체 어떻게 살았으면 그런 병에 걸리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중년 남녀 네 명이 테이크아웃잔에 담긴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이제 웬만한 암은 초기에 발견해서 금방 고칠 수 있다던데. 백세시대란 말이 괜히있나. 건강검진만 제때 받아도 아플 일이 없지. 요즘처럼 좋은 세상에 자기 관리만 제대로 했어도 그 지경까지 안 갔을텐데. 딱하다는 듯 혀를 차면서 그들끼리 주고받던 말, 아픈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네가 아픈 건 모두 네 탓이라는 그말들, 그들은 어쩐지 뿌듯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자신은 절대 아프지도 병들지도 않을 거라고. 나는 지쳐 있었다. 소리를 지르거나 울 힘도 없을 만큼고통에 파묻혀 있었다. 그들에게 다가가 아픈 사람들 천지인 이곳에서 제발 말조심하라고 발을 구르며 경고하고 싶었지 - P276

만, 사지가 고통에 묶여 꼼짝할 수도 없었다. 그때 나는 잠시지옥에 서 있었다. 인간들의 지옥. 그들의 말은 나의 자책과다르지 않았다. 내 잘못을 찾는 방법으로 무엇을 얻고 싶었던 거지? 아프다는 이유로 잘못 산 사람이 될 순 없었다. 어디선가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기계의 알림 또는 경고음 같았다. 그 멜로디의 가사를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배운 기억도 없이 저절로 외우고 있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라." 어서 집으로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 집은 아직 없었다.


나는 죽어가고 있다. 살아 있다는 뜻이다. 죽음을 죽음 자체로 두기 위해 오래 바라볼수록 두려움보다 슬픔이 커졌다. 두려움은 막연했으나 슬픔은 구체적이었다. 거기 나의 희망이 있었다. 슬픔을 위해서 움직일 힘이라면 아직 남아 있었다.
미래를 기억할 수 있을까? - P277

오래전 이곳에 살 때 잃어버린 것이 있습니다. 네잎클로버 모양의 열쇠고리인데요, 제가 지금에야 그것을 찾는 이유는……. 과거에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고 그것을찾기 위해 멀리까지 찾아와 대문을 두드리는 사람을 상상하면 행복했다. 그들이 찾는 것을 기적처럼 꺼내어 건네주는 상상은 천국 같았다. 또한 나의 천국은 다음과 같은 것. 여름날 땀 흘린 뒤 시원한 찬물 샤워. 겨울날 따뜻한 찻잔을 두손으로 감싸 쥐고 바라보는 밤하늘. 잠에서 깨었을 때 당신과 맞잡은 손. 마주 보는 눈동자. 같은 곳을 향하는 미소. 다정한 침묵. 책 속의 고독, 비 오는 날 빗소리. 눈 오는 날의 적막, 안개 짙은 날의 음악, 햇살, 노을, 바람, 산책, 앞서 걷는 당신의 뒷모습. 물이 참 달다고 말하는 당신. 실없이 웃는 당신. 나의 천국은 이곳에 있고 그 또한 내가 두고 갈 것. - P290

엄마는 여전히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죽음은 이해의 문제가 아니니까. 미래를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나는 이제 미래를 기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 눈앞에 내가 기억하는 미래가 나타났으므로, 어느 여름날에는 툇마루해 청개구리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향해 손을믿고 청개구리는 사라지고, 나는 이유를 모른 채 울어버릴지도 나는 다시 아플 수 있다. 어쩌면 나아질 수도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탄생과 죽음은 누구나 겪는 일 누구나 겪는다는 결과만으로 그 과정까지 공정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 이제 나는 다른 것을 바라보며 살 것이다. 폭우의 빗방울 하나, 폭설의 눈송이 하나. 해변의 모래알 하나. 그 하나가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물론 신은 그런 것에 관심 없겠지만. - P291

롤랑 바르트는 <마지막 강의>에 이르러 ‘쓰다écrie‘라는 동사를 목적어를 갖는 타동사로 보았다. 그에 의하면 ‘쓰는 행위‘는 그 주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사실과 기억의 증언과 같다. 가령 바르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바르트는자신이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지 않다면 그녀가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사실은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고, 그것은 견딜 수가없다고 여겼다. 따라서 쓰는 주체가 자신이 기억하는 이들이 이 세계에서 헛되어 살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그들이 역사의 허무속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으려 애쓰는 일이 그에게 있어서 쓰기였던 것이다. - P292

최진영의 소설에 대해 말하기 앞서 롤랑 바르트의 이야기를 먼처꺼낸 까닭은 최진영에게 쓰기의 목적과 의미 역시 바르트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표제작 <쓰게 될 것>은 표면적으로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전쟁의 현장과 어른이 되어 다시 돌아본 자리에 남은 상흔에 대한 소설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세 번의 전쟁을 겪고 죽은 할머니, 전쟁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나‘를 지키고자 애썼던 엄마. "아끼는 스마일 스티커" (34쪽)를•붙여주었던 지하실 친구 우영, "나의 신"이었던 "전쟁 속에서도서로를 돕는 사람들"(39쪽)처럼 지금 이 세상에 없거나 생사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분명히 존재했다는 것을 증언하고, 헛된 삶을 살지 않았음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바르트의 ‘쓰기‘와 맥락을 같이한다. 이뿐일까? 무언가에 대한 목적을 갖는쓰기로 쓰게 될 것>이 유효하다는 관점은 여러 면에서 그 안의합의를 짚어보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은 최진영 소설의 깊이 있는독해와 무관하지 않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쓰게 될 것>은 그 제목처럼 소설집에 수록된 나머지 일곱 편 소설의 시원 역할을 하며 각 소설을 읽어내는데 중요한 힌트를 제공한다. 사랑하는 마음과 혼자 만들어내는 이야기, 죽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 타인을 돕는 마음 등 다른소설의 조각들을 이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  - P293

이 자리에서 우리는 최진영이 한 권의 책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쓰게 될 것‘을 모두 확인했다. 그것은 하나의 소설에 담아놓은 다짐이었고, 자신을 겨누는 연습이었으며 나누고 싶은 불안이자 실현하고 싶은 미래였다. 여덟 편의 소설이 모두 미래를 향하고 있어서, 과거를 돌아보는 방식조차 뒷걸음질이 아닌 한발 나아가는 모습이라 나는 내내 안심했다. 언제부터일까? 최진영의 소설은 나에게 뗄 수 없는 의지가 되었다. 이는 비단 나만의 일이 아닐 거라는 확신. 그러니 우리는 최진영의 소설을 통해 다른 미래를 그리고 그것의 가능성을 쥐어보게 된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 P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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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니까 언니가 옆에서 자고 있었다. 밤에 부모님이 싸우면 언니는 꼭 내 옆에 와서 잔다. 내가 몸을 일으키자 언니도 눈을 떴다. 엄마 아빠 싸웠어? 물어보니 언니는생일 축하한다고 대답했다. 방을 나가자 미역국 냄새가 났다.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냄새가 더 잘 맡아진다. 냄새를 잘맡을 수 있으므로 나는 더 안전하다. 아침을 먹고 언니가 냉장고에서 케이크를 꺼냈다. 잠이 덜 깬 아빠가 방에서 나왔다. 케이크에 초를 꽂아 노래를 부른 뒤 촛불을 껐다. 나는빨리 십대가 되게 해달라고 마음으로 소원을 빌었다. 우리집 규칙 중에 ‘열살 전까지는 혼자서 아파트 단지 바깥으로나갈 수 없음‘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가족들 모르게 그 규칙을 세 번 어졌다. 들킬까 봐 조마조마했던 그 느낌이 너무 싫었다. 열 살이 되면 그런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있다. - P122

할머니는 내가 역사 수업에서 배운 것을 다 경험했다. 대한 독립과 한국전쟁과 남북 분단과 민주화 운동과 IMF 사태와 금융 위기와 대통령 탄핵과 전염병까지. 할머니가 고조선시대에 단군을 만난 적이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가 않다.
할머니가 백악기에 공룡을 본 적이 있다고 해도, 실은 한 번죽었다가 부활한 거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왜냐하면 할머니는 전부 다 겪어봤으니까. 가난 때문에 나무껍질을 씹어먹었고 풀죽을 만들어 먹었고 홍수로 집을 잃어본 적도 있었다. 할머니의 아빠는 전쟁 때 포탄에 맞아서, 첫째 딸은 다섯 살이 되기도 전에 전염병으로, 언니는 교통사고로, 사촌은 불에 타 죽었으며 친구는 남편에게 살해당했다. 할머니는학교에 다니지 못했지만 혼자서 한글을 터득했고 산수를 익 - P136

혔다. 돈을 벌기 위해 온갖 일을 다 해봤다. 그래서 콩나물이영어로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길가의 풀과 나무 이름은 다 안다. 천과 바늘만 있으면 옷을 만들 수 있다. 농사일과 집 짓는 방법을 안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날씨의 흐름을, 진실과 거짓을 안다. 그러니까 할머니는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 가족이 지금의 재난에서 탈출할 방법을.
할머니의 예언은 언제나 들어맞았다. ‘겨울이 이렇게 포근하면 다가오는 농사가 흉작이다‘고 했을 때도, ‘그 동네 집들은 홍수 때 물에 잠길 수밖에 없다‘고 했을 때도 모두 그렇게 되었다. 할머니는 꿀벌이 집단으로 실종되었다는 뉴스가나오기도 전에 이미 꿀벌이 사라지고 있음을 알았다. 일기예보보다 앞서 날씨를 예측했다. 올해는 감자가 흉년일 거라고 말하면, 배춧값이 금값이 될 거라고 말하면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겁이 난다. 할머니에게 우리 집 상황을 말하고 ‘무슨 대책이 없을까?‘ 물어봤다가 ‘그런 것에는대책이 없다‘는 대답을 들을까 봐. - P137

아빠가 차라리, 앞으로 20년 동안 매달 얼마씩 갚아야 해결될 거라고 말했으면 나도 그러려니 했을 거야. 그래도 핌가 대책이 있구나 생각했을 거고, 우리 집에 빚이 많으니까나도 일찍 돈 벌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거라고. 그런데 아빼는 지금 손에 쥔 걸 하나도 놓지 않고 빚도 갚지 않고 오히려 더 빚을 지면서 살겠다는 거 아니야? 사기당한 걸 투자였다고 완전 정신승리 하면서, 그러면서 또 자기를 피해자라고말하는데, 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아빠만 피해자야? 우리가 더 큰 피해자라고. 아빠 욕심으로 벌인 일에 왜 우리 핑계를 대냐고 나야 당장 알바라도 할 수 있다 쳐. 얘는 아직 열 살도 안 됐다고!
아빠 얼굴이 밟힌 홍시에서 자동차 바퀴에 여러 번 깔린 홍시로 변해갔다. 엄마가 두 손을 높이 들어올리며 갈라진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이봄. 그만, 이제 그만해.
아빠는 컵을 꽉 쥔 채로 술을 마시지 않았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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