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루아에서 보낸 어느 여름, 나의 클레먼타인과 캐럴라인의 루실, 두 마리 개가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보는 뒷모습이 찍힌 사진이 한 장 있다. 나란히 놓인 두 꼬리, 꼼짝 않고제자리를 지키는 두 견공의 모습에서 경계심과 충직함을 포착한 전형적인 반려견 사진이다. 그런데 여러 해가 지나도록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있다. 창 너머 멀리 들판으로 이어진사진 속 중경의 아주 작은 형체 비탈길을 걸어내려가는 나와 캐럴라인의 실루엣이다. 아마 호수에 가는 길이었을 것이고, 우리 일과에 적응한 개들은 저희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을 것이다. 이 장면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를 집어든 사람은 사진작가인 캐럴라인의 남자친구 모렐리였다. - P24

그녀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에 사진 속에서 이 이미지를 발견한 나는 줄곧 이것이 어떤 그림에 감춰진 단서 - 사라진뒤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비밀의 정원- 처럼 느껴졌다. 초코루아에 얽힌 모든 것에는 소박하고 서정적인 빛이 감돌았다.
나는 캐럴라인이 팔씨름에서 톰을 이길 뻔했던 그날 밤을, 쥐를 보고 식탁 위로 뛰어올라간 내 모습에 캐럴라인이 폭소를터뜨리던 순간을, 우리가 제정한(그리고 항상 캐럴라인이 수상한) 최우수 캠퍼 상을 기억한다. 느린 카약을 탄 캐럴라인 - P24

을 놔두고 혼자 안개 속으로 노를 저어 가버린 내게 그녀가화를 내던 그날 일에 대해 나는 지금도 모기 때문이라고 둘러댄다. 기억이란 대부분 마지막 장면의 색조로 물들듯, 나의기억에는 슬픔의 물리적인 무게가 따라다닌다. 애타게 보고싶은 마음은 차라리 애도의 단순한 부분임을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 P25

지금 그 사진과 액자는 개들 사진과 나란히 내 침실에 걸려있다. 캐럴라인은 2002년 6월 초에 마흔둘의 나이로 세상을떠났다. 폐암 4기 진단을 받고 칠 주 만이었다. 병원에 입원한 처음 몇 주 동안 유언장을 작성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보트를, 내게 처음 로잉을 가르쳐준 보트이자 그녀가 오랜 세월애마처럼 아끼던 정든 밴두센호를 나에게 주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침상에 앉아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죽음을앞두고 차차 닥칠 일을 내다보며 어떻게든 헤쳐나가려 안간힘을 쓰는 투병 초기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는 보트를 받겠다고, 단 로잉의 전통에 따라 뱃머리에 그녀의 이름을 써넣겠다고 대답했다. 배의 이름은 캐럴라인 냅이 될 거라고, 무슨 소리, 라고 대꾸하는 그녀의 눈빛이 내게 처음 노 젓는 법을 가르쳐주던 날과 똑같이 반짝였다. 브루티타라고 해야지. - P27

나무의 색마저 바꿔놓는 이 슬픔의 스펙트럼에 들어서기 전까지, 멋모르고 세월을 보낼 수 있는 우리의 배후에는 필시무모하리만큼 맹목적이고 엇나간 가정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현재의 삶이 언제까지고 지속될 방법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 혹시 상실의 순간이 오더라도 길의 중간이 아니라 끄 - P27

트머리쯤일 것이라고, 캐럴라인이 죽었을 때 나는 쉰한살이었고, 인생에서 그 시점쯤이면 전도서의 구절을 외워 읊을 정도로 장례식에도 다닐 만큼 다녔을 나이다. 그런데 캐럴라인의 병을 알게 된 날- "환자의 고통을 덜어줄 수는 있습니다"
라는 의사의 무서운 말을 들은 그날-4월의 화창한 생기가감도는 거리를 걸으며 순진함에 타격을 입은 채 내가 크게혼잣말을 한 것을 기억한다. "너한테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진심으로 믿었지, 안 그래?"
이 말은 곧 견딜 수 없는 상실의 잔인함을 나는 어떻게든비켜갈 줄 알았다는 의미였다. 약물남용, 자살, 나이듦처럼당사자의 의지로 혹은 자연의 순리로 비상구에 불이 들어온 죽음들을 마주한 적은 있었다.  - P28

이런 죽음에는 비극을 야기한 매개 (우울증 약만 먹었어도, 코카인만 가까이하지 않았어도)나 서글픈 수용(잘살다 가셨지)이라는 공통의 화두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기둥-중 누구도 너무 이른 나이에, 살려는 의지가 충만한 채로 갑작스레 죽음을 맞은 사람은 없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검사 결과를 받고 머리카락이 빠지고 주변을 정리하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더구나 캐럴라인이라니, 안 될 말이었다.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동생, 수십년 뒤 내가 늙고 쇠약해 음식을 못하게 되면 수프를 끓여다 - P28

주겠다고 몇 년째 농담을 하던 그 사람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우리 둘 사이에는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좀 오묘하기까지 한 분위기가 있어서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를 자매나 연인으로 오해하기도 했고 때로는 친구들이 우리둘의 이름을 바꿔 부르기도 했다. 캐럴라인이 죽고 일 년 뒤,
우리가 자주 산책하던 프레시폰드저수지에서 우리 두 사람의 공통의 친구가 "캐럴라인!" 하고 나를 불렀다. 그러고는자기 실수를 알아차리고 왈칵 눈물을 쏟았다. 우정의 깊이를보여주는 것으로는 명백한 애착도 있었을 테지만, 겉으로 드러나거나 안에서 숨죽인 우리 둘의 닮은 점들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각자 살아온 이야기가 서로 상응하는 경로를 거쳐 차츰 접점을 향해 굽이굽이 나아갔다는 사실은 초반에 우리를 이어준 한 부분이었다. - P29

수년 전 그날 밤 캐럴라인 손에 들려 있던 화이트와인이 그녀에게 마법의 지팡이인 동시에 비수였다는 사실은 나 역시공개된 사정만이 아니라 개인적 연유로도 알고 있었다. 공개된 사정이란 회고록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을 통해서 캐럴라인이 스스로 밝힌 이야기였다. 그때는 회고록이 출간된 해여름이었고, 그사이 그녀는 토크쇼며 언론 기사에 여러 차례등장해 이미 출판계의 이상형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업계 사람들 말마따나 그녀는 "그림이 좋았다". 길게 땋은 금발, 고운음색, 단정한 태도 이면에 깊은 우울이 엿보이는 조심스러움까지, 캐럴라인의 책이 누린 성공이야말로 대부분 작가가 원하는 종류의 성공이라고 흔히들 생각한다. 경험과 직관에 비추어 내가 보는 관점은 달랐다. 만약 작가들에게 공통된 기질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소극적인 자기중심주의 성향일 것이다. 대중의 관심은 그들이 갈망하는 인정을 받기 위해 감내하는 스포트라이트일 뿐이다. - P37

나는 나대로 혼잡한 기로를 막 빠져나온 참이었다. 사십대초반, 언덕에서 바라보는 시야가 분명하고도 신랄해지는 나이였다. 상상했던 조망이 실제 행로로 실현되는 나이, 어린시절 이후로 그 어느 때보다 더 현재를 사는 시기가 아닐까.
나는 마감할 원고만큼이나 아드레날린과 테스토스테론이 산재한 대도시 신문편집실에서 삼십대를 보냈다. 그리고 얼마전 서평란 편집자를 그만두고 보스턴 글로브> 서평가라는본업으로 돌아갔다. 이런 이동과 최근의 기술변화 덕분에 재택근무를 하며 개와 시간을 보내는 생활이 가능해졌다. 클레먼타인은 내게 책읽기란 자기가 뼈를 씹는 행위와 같다는 걸금세 파악했다. 하늘이 내 특유의 기질에 꼭 맞춤한 직업을안겨줬다고 나는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  - P46

나는 이 애착을 있는 그대로 이해했다. 그것은 제 목숨을내게 의지하는 존재에 대한 본능적이고 깊은, 어쩌면 모성을닮은 감정이었다. 인간과 동물의 인연을 존중하는 마음이 생긴 것도 당연했다. 항상 아버지 주위로는 개들이 모여들었고, 나도 어릴 때부터 동물들과 함께 자랐으니까. 텍사스에 사는 언니는 에어데일 한 마리와 보더콜리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그러니 다른 생물종 사이의 애착이 내게는 생소하지 않았다.  - P65

이 신비롭고 영리한 동물을 나는 다른 무엇의 대신이 아니라 하나의 축복으로 내 인생에 맞아들였다.
내 생활은 더없이 흡족하고 소박하게 변했다. 저녁에 친구들과 회식을 하는 대신 동네 공원의 반려견 모임에 합류해, 개 없는 세상에서 삶의 경로가 교차하지 않았을 사람들과 어리게 됐다. 고질적인 올빼미족인 내가 클레먼타인의 배변시간표를 지키느라 새벽 여섯시에 일어나기 시작했고, 책장과 오래된 페르시아러그로 정돈된 공간이었던 아파트는 이게 누르면 소리나는 장난감이며 원숭이인형으로 어수선했다. 계획중이던 해외여행은 보류하고 대신 웰플리트연못 근처에 집을 한 채 빌려 클레멘타인에게 헤엄을 가르쳤다.  - P66

친구가 되기 전 여름, 나는 클레먼타인과 일주일 동안 머물던 케이프코드 트루로의 비에젖은 오두막에서 이미 캐럴라인의 회고록 드링킹』을 읽었다. 낮 동안은 연못에서 수영을 하고 땅거미가 질 때까지 방충망을 친 베란다에서 책을 읽었다. 잠든 클레먼타인 옆에 앉아 바깥의 어스름이 칠흑처럼 깜깜해질 때까지 책을 읽던 일을 아직도 기억한다. 당시는 자신의 중독을 고백하는 유명인사의 회고록이 잇달아 출간되던 시즌 첫 라운드로, 피트 해밀을 비롯한 몇몇이 『화산 아래서』의 터프가이 버전을 새롭게 발표한 참이었다. 허나 그때까지도 술에 얽힌 이야기는 대부분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나는 그날 밤 트루로에서 캐럴라인의 책을 단숨에 끝까지 읽었다. 그것이 감춰진 것을 드러내는 비통하고 정직한 이야기임을 나는 알았다. 그리고 십이년 전 마지막 남은 잭다니엘 한 병을 개수대에 쏟아버린 사람으로서, 나는 그 이야기가 진실이라는 것도 알았다. - P74

눈앞에 삶이 펼쳐지려는 아슬아슬한 순간, 도약을 할는지추락을 할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마 허세와 불안이 나를 반반씩 차지하고 있었나보다. 오스틴에서 보낸 마지막 두 해동안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박사학위 구술시험을 대비해 공부하는 시늉을 하면서도 나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글을 쓰는 삶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글쓰기라는 내면의 안식처의 위력과 위안은 실로 대단해서 그것이 내미는 손에 나 - P84

는 심히 흔들렸다. 당시 나는 충고 3미터에 창문을 유리공예로 장식한 오래된 남부풍 저택에 방을 빌려 지냈고, 밤마다그곳에서 스카치 한 잔과 윈스턴 한 갑을 옆에 두고 타자기앞에 앉았다. 어느 밤인가는 술기운이 돌기 전에 글을 써놓고-무슨 글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흥분이 차오른나머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선 채로 타자기를 계속 두드렸다. 젊은 작가 지망생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글을 쏟아내는 또렷한 희열의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보건대 나에게그것은 결정적인 순간이자 내 영혼을 팔아넘기는 파우스트적인 순간이었다. 호박색 불빛, 왱왱 돌아가던 타자기, 그리고 열망과 기쁨으로 가득찬 젊은 여성이 그곳에 있었다. 글쓰기는 나의 생명력이었고 위스키는 풀숲에 도사린 뱀이었다.
할 수 있는 한 오래오래 나는 두 가지를 다 놓지 않았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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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일 콜드웰Gail Caldwell

미국의 문학평론가, 1951년 텍사스 팬핸들에서 나고 자랐고 텍사스대학에 입학해 미국학을 전공했다. 1981년 작가가 되기 위해 동부로 떠났고, 지역 문예평론지 편집자와 글쓰기 강사로 일하다 1985년부터 2009년까지 <보스턴 글로브> 북섹션 평론가로 활동했다. 〈빌리지 보이스>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 글을 실었고, 2001년 동시대의 삶과 문학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을 인정받아 퓰리처상(비평 부문)을 수상했다.
2010년 발표한 「먼길로 돌아갈까?」는 2002년 42세의 나이로 갑작스레 세상을 뜬 친구 캐럴라인 냅을 추억하며 두 사람이 나눈 7년의 우정을 그린 에세이다. "따로 있을 때는 겁에 질린 술꾼이자 야심찬 작가이며 애견인이던 두 사람은 각자가 키우는 개를 매개로 작은 공동체를 이루었고, 서서히 서로의 삶에 스며들어 "자연스러운 관계가 주는 따스함과 홀로 남겨지는 자유로움"을 마음껏 누렸다. "먼길로 돌아갈까?"는 두 사람의 일과였던 산책 도중에 헤어지는 시간을 좀더 늦추고 싶어 캐럴라인이 습관처럼 하던 말이다.
그 밖에 에세이 『강한 서풍A Strong West Wind』(2006), 새로운 인생, 법칙없음 New Life, No Instructions』 (2014), 『반짝거리고 소중한 것들 Bright PreciousThing』 (2020)을 썼다. 현재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살고 있다.

어느 겨울날 오후, 혼자 서재에 앉아 있던 나는 머리가 굳어버린 것처럼 아무 글도 쓰지 못하고 종이 귀퉁이에 나무 그림만 끼적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무심코 이렇게 갈겨썼다. "나에게 한 친구가 있었고, 우리는 모든 것을 함께했다. 그러다 친구가 죽었고, 그래서 우리는 그것도 함께했다."
종이에 적힌 그 말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말을 그대로, 아무것도 더하지 않은 채로 두고 기다렸다. 내가 이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려줄 준비가 될 때까지. 온화하고 아름다운 이 사람, 너무나도 많은 의미에서 나의 분신이자 나의 자매였던 이 여성과 나의 특별한시간의 우정을 글로 쓸 준비가 될 때까지.

시간의 유한함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에는 평생이 걸리기도 한다. 이야기라는 세계의 영원한 현재 안에 우정의 시간들을 되살릴 수 있었던 것이 나로서는 이 책을 쓰면서 얻은 한가지 선물이었다. 나는 날마다 벅찬 기쁨을 느끼며 계단을 올라 서재에 들어섰고, 그 안에서 기억에 몸을 묻으면 기억의언어가 스스로 글이 되어 나를 휘감았다. 캐럴라인이 내 머리와 가슴속에 목소리로 존재했고, 나는 바라건대 우리 두 사람보다 더 오래오래 살아남을 무언가에 숨을 불어넣고 있었다.

이제 이 이야기는 다양한 언어로 살아 있다. 어느 정도는내가 말하려던 슬픔이 보편적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운이 좋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우리는 모두 애도한다.
상처는 우리를 이어주고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준다.


끝으로 이 책의 옮긴이에게, 그리고 언어를 옮기는 모든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의 이야기를 세계 곳곳으로 옮겨주는 언어의 기술자들은 언제나 나의 영웅이다. 하늘을 나는 새들처럼 언어와 언어 사이를 오가며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선물을 집으로 실어나르는 이들이다. 그 기예와 헌신에 감사드린다.


2021년 가을
게일 콜드웰
끝이고, 끝이며, 끝인, 끝

삶이라는 유수의 황금빛 순간은우리를 급히 스쳐가고 보이는 것은 모래뿐이니,
천사들이 우리에게 찾아오지만우리가 그들을 알아보는 것은 그들이 떠나간 뒤일 뿐.
- 조지 엘리엇, ‘목사생활의 정경

새삼스러울 것 없는 이야기다. 나에게 한 친구가 있었고, 우리는 모든 것을 함께했다. 그러다 친구가 죽었고, 그래서 우리는 그것도 함께했다.
캐럴라인이 떠난 이듬해, 애도 초기의 미칠 듯한 슬픔은 모두 지나왔다고 생각할 무렵, 나는 캐럴라인과 수년간 개들을 산책시킨 케임브리지저수지의 오솔길에 서 있었다. 겨울 오후였고, 인적이 드물었다 - 앞으로도 뒤로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 굽이진 길에서, 나는 너무나 커다란 적막감에 잠시 무릎을 움직일 수 없었다. "여기서 내가 뭘 해야 하지?" 나는 소리내서 그녀에게 물었다. 고인이 된 가장 친한 친구와 대화를 하는 일은 이미 익숙했다. "그냥 계속 걸어야 하나?" 캐럴라 - P15

인의 삶과 나란히 놓였을 때는 내 삶이 너무나 분명히 이해되었다. 여러 해 동안 우리는 친밀한 사이에서 그러듯 가벼운일상의 캐치볼을 즐겼다. 공 하나, 글러브 둘, 던지고 받는 균등한 즐거움, 이제 그녀가 없는 필드에 나혼자다. 글러브 하나로는 게임을 할 수 없다. 누군가를 잃고 홀로 남은 당신이누구인지, 슬픔은 가르쳐준다. - P16

강가에 선 캐럴라인이 눈에 아직도 선하다. 목에는 수건을 두르고, 손에는 운동 후 담배 한 개비를 든 모습-기젯‘과 ‘스플렌디드 스플린터‘를 반씩 섞어놓은 것처럼" 어디에서 찾아입었는지 모를 끔찍한 분홍 수영복에 도전하듯 로잉"하는사람 특유의 팔근육이 대비되던 모습. 때는 1997년 여름, 캐럴라인과 나는 서로 운동종목을 바꿔보기로 했다. 나는 그녀에게 수영을, 그녀는 나에게 노 젓는 법을 가르쳐주기로 이합의로 가장 가까운 친구의 로잉보트, 그것도 최대 폭이 고 - P19

작 30센티미터인 바늘처럼 가느다란 배 안에 웅크려 앉은 내꼴은 노를 젓는 사람이라기보다 술 취한 거미에 가까웠다. 우리는 뉴햄프셔주 화이트마운틴 근처에 있는 1.5킬로미터 길이의 청정한 초코루아호에 있었고, 캐럴라인 외에 나의 대담한 묘기를 지켜볼 사람은 그곳으로 함께 휴가를 떠난 친구톰뿐이었다.
"아주 좋아!" 캐럴라인은 내가 엉성하나마 조금이라도 기술적인 동작을 해 보일 때마다 나를 향해 소리쳤다. 나는 주먹이 핏기 없이 새하얗게 변하도록 노를 움켜잡고 있었다.  - P20

서튼일곱 살이던 캐럴라인은 로잉을 한 지 십 년이 넘었고, 나는 그녀보다 아홉 살가량 많고 평생 수영을 해온 사람이기에 물위에서 스컬의 기초를 터득할 정도의 신체적 역량은 아직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메트로놈처럼 정확한 캐럴라인의 스트로크를 흉내내고 싶은 마음만 앞섰지, 보트에 그냥 앉아만 있는 것도 물위에 떠 있는 나뭇잎 위에서 중심을 잡듯 위태로울 줄은 미처 몰랐다. 어쩌다가 그녀의 말에 넘어가 이걸 하겠다고 했을까?
보통 초보들은 캐럴라인의 밴두센호에 비해 무게와 폭이 두 배나 큰 보트로 스컬에 입문한다. 후에 털어놓길, 캐럴 - P20

라인은 내가 언제 뒤집히나 짓궂게 기다렸단다. 하지만 물가에 버티고 서서 큰 소리로 지시를 내릴 때의 그녀는 그저 활기찬 기운과 단호한 열의만을 뿜어냈다. 어쩌면 스톱워치로찰나나마 내가 성공한 시간을 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기댈데라고는 노밖에 없던 나는 노를 움켜쥔 채 수면을 향해 점점 몸이 기울다가 아슬아슬하게 60도 각도에서 얼어붙어버렸다. 무슨 균형감각이 발동해서라기보다 몸이 마비되어 꼼짝할 수가 없었다. 선착장에서 톰이 배꼽을 잡으며 웃고 있었다. 내가 심하게 기울수록 그는 더 심하게 웃어댔다.
"빠질 것 같아!" 내가 소리쳤다. - P21

"아니, 안 빠져." 캐럴라인은 시즌 성적이 저조한 팀의 코치처럼 진지한 얼굴로 대꾸했다. "빠지지 않아 양손을 모아.
그대로 가만히 있어-물을 보지 말고 손을 봐. 자, 이제 나를봐." 그녀의 목소리가 한참을 달래고 이끌어준 덕분에 나는겨우 몸을 펴 다시 자세를 잡고 잔잔한 물에서 대여섯 차례스트로크에 성공했고, 그런 다음 중심을 잃고 보트 밖으로 튕겨나가 호수에 빠졌다. 몇초 뒤 1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수면 위로 떠오르니 캐럴라인이 깔깔 웃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언뜻 그녀의 희열을 엿보았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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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

차이가 의미를 만든다. 시를 포함하여 모든 글쓰기는 차이의 기록이다. 하지만 차이란 말 그대로 차이일 뿐 정본이 아니다. 탁자 위의 물방울이 마른 흔적을 통해, 여기 물방울이 있었다고 기록할 수는 있겠지만, 물방울을 돌이키지는 못한다. 글쓰기는 말하자면 돌이킬 수 없는 물방울 같은, 좌절된 열망의 흔적이다. 나는 그 흔적의 글쓰기를 통해, 지금은 없는, 그대를 기록한다. 아니 그대의 흔적을 기록한다. 그 차이가 의미를 만든다.

더디고 더딘 발걸음으로 새 시집을 묶는다. 오랜만이다. 지나온 날이 그러했듯 어쩔 수 없어서 내가 내 앞을자꾸 가로막았기 때문일 것이다. 별다른 뜻 없이 크게네 부분으로 나누었지만, 세상에 아무 의미 없는 일이과연 있겠는가.

그대만 견디고 있는 게 아니므로 세월은 또 느릿느릿흘러갈 것이다.

2001년 여름
강연호

적멸


지친 몸빛이 저녁을 끌고 온다.
찬물에 말아 넘긴 끼니처럼
채 읽지 못한 생각들은 허기지다
그대 이 다음에는 가볍게 만나야지
한때는 수천 번이었을 다짐이 문득 헐거워질 때
홀로 켜지는 불빛, 어떤 그리움도
시선이 닿는 곳까지만 눈부시게 그리운 법이다
그러므로 제 몫의 세월을 건너가는
느려터진 발걸음을 재촉하지 말자
저 불빛에 붐비는 하루살이들의 생애가
새삼스럽게 하루뿐이라 하더라도
이 밤을 건너가면 다시
그대 눈 밑의 그늘이 바로 벼랑이라 하더라도간절함을 포기하면 세상은 조용해진다
달리 말하자면 이제는 노래나 시 같은 것
그 동안 베껴썼던 모든 문자들에게
나는 용서를 구해야 한다혹은 그대의 텅 빈 부재를 채우던
비애마저 사치스러워 더불어 버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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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에서


죄 없는 자들일수록 더 많이 참회하고
적게 먹는 자들이 더 많이 감사하고
타락하지 않은 자들이 더 많이 뉘우치고
힘들여 사는 자들일수록 고행의 순례길을 떠나고
적게 살생한 자들이 더 많이 속죄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만
그것이 나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했다

그러한 감사와 참회가 낡아빠진 문화라는 사실 때문에
그리하여 내가사는 곳에 감사와 참회 따위가입에 오르는 일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오래전에 낡은 체제를 혁명하고
또 혁명에 혁명을 거듭했기 때문에
더 혁명할 것이 없을 즈음에
마침내 어떤 진리에 이르렀기 때문에

많이 먹고 많이 가질수록 죄가 줄어든다는,

축의 시간


굵은 비 쏟아지는 산길
키 낮은 병꽃나무에 튼 둥지에서
새 한마리
알을 품고 있다 억수같이 퍼부어대는 비를 다 맞고

날개 지붕을 펴 둥지를 덮고
떨고 있다 쏟아지는 것은 쏟아지라고

알은 해석으로 풀려나올 수 없다
어떤 문법으로도 풀려나올 수 없다
어떤 언어로도 깨어나게 할 수 없다
품을 수밖에 없다

시작과 끝이 맞물린 알
시제가 없는 알

지금은 축의 시간
주둥이가 막힌 병
거센 물살 가운데 정지한 나무

꼭지가 막 떨어진 사과의 시간

지금은 오직 전체를 기울여야 할 때
시간은 수컷처럼 둥지 밖에서
초조하게 서성일 뿐

인간 형성


매번 다른 사람이 오는데 그 사람이 그 사람 같다
몸가짐이 거침없고 말이 시원시원하다
똥 푸러 오는 사람들 속이 훤히 다 보일 것 같다

종일 남의 집 똥구덩이에 고개를 박고
얼굴에 입술에 똥물 바르고 그 돈 벌어 밥 먹고
애들 학교 보내고 마누라 화장품도 사주고 조상 제사도 모시고
아무나 하는 일 아니다 속이 컴컴한 자들
근기 모자라는 자들은 근처에도 못 가는 일이다

꽃을 노래하고 별을 우러르고
영롱한 이슬을 글에 담는 사람들더러
영혼이 맑은 사람인 것 같아요 누군가 감동하자
그 영혼들이 우쭐대지만 속사정은 개뿔이다

속에 구정물이 가득해서 이슬을 찾고
당장 숨이 차고 혼미해서 꽃을 찾고
인간성이 시궁창이라서 향기를 찾고

영혼이 누더기라서 별로 기워야 했을 것
아니면 오염되기 쉬운 선천적 기형이라서
별과 이슬을 복용해야 하거나

인간이 제 손으로 똥 푸는 일이 없어지고
자기가 싸놓고 제 것이 아닌 양
혐오하고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고상한 습성을
동물과 유일하게 구별되는 습성을
우리는 인간성이라고 부른다

교차 신호등

삼십년지기 먼 길 배웅하고 돌아오던 밤길 지방도

마을도 교차로도 없는데 문득 켜지는 신호등 하나

너는 저만큼 가버리고 나는 어둠에 지워져 있고

길은 차갑게 식어 있고 따라오는 신호등 하나

낯선 길인 양 낯익은 길 오래되었으나 처음 들어선 길

나도 모르게 들어선 길 위에 둥근 달 신호등 하나

무무소유

굶주리는 사람이 건강 단식을 어떻게 이해하나
없는 사람이 무소유를 어떻게 이해하나

잃을 것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잃을 것은 사슬뿐인 사람들은
자유를 위해 분연히 떨쳐 일어날 거라지만
그들도 잃을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지
가진 것 아무것도 없는 거지는 동냥 구역을 잃을 게 있지
없을수록 집착할 수밖에

거액의 자산가가 방송에 나와 무소유의 자유로움에 대해
진지한 표정으로 말할 때 그건 분명 진심이었을 거다
무소유의 청빈함을 제대로 글로 쓰는 작가는 좀 살 만한자다
어디 가나 밥과 집이 넉넉한 스님이라야
무소유를 제대로 설법할 수 있다.

무소유는 가진 뒤의 자유다
무소유는 소유라는 단어가 있은 뒤 조합된 낱말이다

다 내려놓은 사람의 무소유는 이미 그 낱말이 아니다.

가진 것이 넉넉해야 무소유를 맘껏 가질 수 있다

모과


맹렬하게 뿜어내는 저 향기는 나무를 떠난 뒤 급격히 기우는 시간의 기울기를 만회하려는 몸짓인가

당신이 떠난 뒤 지상의 것이 아닌 이 슬픔의 실상은 당신과의 분리로 인한 급격한 시간의 기울기가 만들어낸 죽음의 냄새인가

꽃은 이미 분리를 시작한 불안한 시간의 빛과 향기 모든 향기에는 죽음의 냄새가 묻어 있어 그렇지 않다면 그 어떤향기가 우리를 매혹시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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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그림들은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어떤 사물의 그림이 아니다. 과정의 순간이 캔버스에 포착된 것이다. 그것은 순수 회화다.
존은 순수에 열광한다. 그러나 그 열광은 오직 미술에만 한정된 것이다. 그것은 모든 어머니들, 특히 그의 어머니에 대한 과장된 항의 선언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살림살이에는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어쩌다 하는 설거지도 그는 빵 부스러기와 통조림 옥수수 낟알이 배수구에 걸려 있는 욕조에서 한다. 거실 바닥은 주말이 지나간 해변같다. 침대보는 그 자체가 ‘과정의 순간‘을 보여 주고 있는데, 그 순간이라는 것이 상당 기간 지속된다. 나는 그나마 덜 더러워 보이는슬리핑 백에서 자는 것을 선호한다. 욕실은 북쪽의 외딴 휴게소 화장실처럼 보인다. 변기 안쪽에는 갈색 테가 보이고 담배꽁초가 떠다니며, 타월이 혹시라도 있을 때면 손자국이 마구 찍혀 있고, 정체 모를 종이 조각들이 바닥 이곳저곳에 뒹군다. - P189

그러나 이 모임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 이유는 알 수없다. 나는 어색하고 막연한 느낌에 사로잡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내가 하는 말이 틀린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충분히 고통받지도 않았고 권리를 쟁취하지도 않았으므로 말을 꺼낼 권리가 없는 것이다. 문 안쪽에서 판결과 비난 어린 선고가 내려지는 동안 닫힌 문 밖에 서 있는 기분이다. 그와 동시에 나는 호감을 사고 싶기도하다.
나는 스스로에게 중얼거린다. ‘자매애란 내게 어려운 개념이야,
나는 자매가 없었으니까. 형제애는 어렵지 않다.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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