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일 콜드웰Gail Caldwell
미국의 문학평론가, 1951년 텍사스 팬핸들에서 나고 자랐고 텍사스대학에 입학해 미국학을 전공했다. 1981년 작가가 되기 위해 동부로 떠났고, 지역 문예평론지 편집자와 글쓰기 강사로 일하다 1985년부터 2009년까지 <보스턴 글로브> 북섹션 평론가로 활동했다. 〈빌리지 보이스>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 글을 실었고, 2001년 동시대의 삶과 문학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을 인정받아 퓰리처상(비평 부문)을 수상했다. 2010년 발표한 「먼길로 돌아갈까?」는 2002년 42세의 나이로 갑작스레 세상을 뜬 친구 캐럴라인 냅을 추억하며 두 사람이 나눈 7년의 우정을 그린 에세이다. "따로 있을 때는 겁에 질린 술꾼이자 야심찬 작가이며 애견인이던 두 사람은 각자가 키우는 개를 매개로 작은 공동체를 이루었고, 서서히 서로의 삶에 스며들어 "자연스러운 관계가 주는 따스함과 홀로 남겨지는 자유로움"을 마음껏 누렸다. "먼길로 돌아갈까?"는 두 사람의 일과였던 산책 도중에 헤어지는 시간을 좀더 늦추고 싶어 캐럴라인이 습관처럼 하던 말이다. 그 밖에 에세이 『강한 서풍A Strong West Wind』(2006), 새로운 인생, 법칙없음 New Life, No Instructions』 (2014), 『반짝거리고 소중한 것들 Bright PreciousThing』 (2020)을 썼다. 현재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살고 있다.
어느 겨울날 오후, 혼자 서재에 앉아 있던 나는 머리가 굳어버린 것처럼 아무 글도 쓰지 못하고 종이 귀퉁이에 나무 그림만 끼적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무심코 이렇게 갈겨썼다. "나에게 한 친구가 있었고, 우리는 모든 것을 함께했다. 그러다 친구가 죽었고, 그래서 우리는 그것도 함께했다." 종이에 적힌 그 말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말을 그대로, 아무것도 더하지 않은 채로 두고 기다렸다. 내가 이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려줄 준비가 될 때까지. 온화하고 아름다운 이 사람, 너무나도 많은 의미에서 나의 분신이자 나의 자매였던 이 여성과 나의 특별한시간의 우정을 글로 쓸 준비가 될 때까지.
시간의 유한함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에는 평생이 걸리기도 한다. 이야기라는 세계의 영원한 현재 안에 우정의 시간들을 되살릴 수 있었던 것이 나로서는 이 책을 쓰면서 얻은 한가지 선물이었다. 나는 날마다 벅찬 기쁨을 느끼며 계단을 올라 서재에 들어섰고, 그 안에서 기억에 몸을 묻으면 기억의언어가 스스로 글이 되어 나를 휘감았다. 캐럴라인이 내 머리와 가슴속에 목소리로 존재했고, 나는 바라건대 우리 두 사람보다 더 오래오래 살아남을 무언가에 숨을 불어넣고 있었다.
이제 이 이야기는 다양한 언어로 살아 있다. 어느 정도는내가 말하려던 슬픔이 보편적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운이 좋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우리는 모두 애도한다. 상처는 우리를 이어주고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준다.
끝으로 이 책의 옮긴이에게, 그리고 언어를 옮기는 모든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의 이야기를 세계 곳곳으로 옮겨주는 언어의 기술자들은 언제나 나의 영웅이다. 하늘을 나는 새들처럼 언어와 언어 사이를 오가며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선물을 집으로 실어나르는 이들이다. 그 기예와 헌신에 감사드린다.
2021년 가을 게일 콜드웰 끝이고, 끝이며, 끝인, 끝
삶이라는 유수의 황금빛 순간은우리를 급히 스쳐가고 보이는 것은 모래뿐이니, 천사들이 우리에게 찾아오지만우리가 그들을 알아보는 것은 그들이 떠나간 뒤일 뿐. - 조지 엘리엇, ‘목사생활의 정경
새삼스러울 것 없는 이야기다. 나에게 한 친구가 있었고, 우리는 모든 것을 함께했다. 그러다 친구가 죽었고, 그래서 우리는 그것도 함께했다. 캐럴라인이 떠난 이듬해, 애도 초기의 미칠 듯한 슬픔은 모두 지나왔다고 생각할 무렵, 나는 캐럴라인과 수년간 개들을 산책시킨 케임브리지저수지의 오솔길에 서 있었다. 겨울 오후였고, 인적이 드물었다 - 앞으로도 뒤로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 굽이진 길에서, 나는 너무나 커다란 적막감에 잠시 무릎을 움직일 수 없었다. "여기서 내가 뭘 해야 하지?" 나는 소리내서 그녀에게 물었다. 고인이 된 가장 친한 친구와 대화를 하는 일은 이미 익숙했다. "그냥 계속 걸어야 하나?" 캐럴라 - P15
인의 삶과 나란히 놓였을 때는 내 삶이 너무나 분명히 이해되었다. 여러 해 동안 우리는 친밀한 사이에서 그러듯 가벼운일상의 캐치볼을 즐겼다. 공 하나, 글러브 둘, 던지고 받는 균등한 즐거움, 이제 그녀가 없는 필드에 나혼자다. 글러브 하나로는 게임을 할 수 없다. 누군가를 잃고 홀로 남은 당신이누구인지, 슬픔은 가르쳐준다. - P16
강가에 선 캐럴라인이 눈에 아직도 선하다. 목에는 수건을 두르고, 손에는 운동 후 담배 한 개비를 든 모습-기젯‘과 ‘스플렌디드 스플린터‘를 반씩 섞어놓은 것처럼" 어디에서 찾아입었는지 모를 끔찍한 분홍 수영복에 도전하듯 로잉"하는사람 특유의 팔근육이 대비되던 모습. 때는 1997년 여름, 캐럴라인과 나는 서로 운동종목을 바꿔보기로 했다. 나는 그녀에게 수영을, 그녀는 나에게 노 젓는 법을 가르쳐주기로 이합의로 가장 가까운 친구의 로잉보트, 그것도 최대 폭이 고 - P19
작 30센티미터인 바늘처럼 가느다란 배 안에 웅크려 앉은 내꼴은 노를 젓는 사람이라기보다 술 취한 거미에 가까웠다. 우리는 뉴햄프셔주 화이트마운틴 근처에 있는 1.5킬로미터 길이의 청정한 초코루아호에 있었고, 캐럴라인 외에 나의 대담한 묘기를 지켜볼 사람은 그곳으로 함께 휴가를 떠난 친구톰뿐이었다. "아주 좋아!" 캐럴라인은 내가 엉성하나마 조금이라도 기술적인 동작을 해 보일 때마다 나를 향해 소리쳤다. 나는 주먹이 핏기 없이 새하얗게 변하도록 노를 움켜잡고 있었다. - P20
서튼일곱 살이던 캐럴라인은 로잉을 한 지 십 년이 넘었고, 나는 그녀보다 아홉 살가량 많고 평생 수영을 해온 사람이기에 물위에서 스컬의 기초를 터득할 정도의 신체적 역량은 아직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메트로놈처럼 정확한 캐럴라인의 스트로크를 흉내내고 싶은 마음만 앞섰지, 보트에 그냥 앉아만 있는 것도 물위에 떠 있는 나뭇잎 위에서 중심을 잡듯 위태로울 줄은 미처 몰랐다. 어쩌다가 그녀의 말에 넘어가 이걸 하겠다고 했을까? 보통 초보들은 캐럴라인의 밴두센호에 비해 무게와 폭이 두 배나 큰 보트로 스컬에 입문한다. 후에 털어놓길, 캐럴 - P20
라인은 내가 언제 뒤집히나 짓궂게 기다렸단다. 하지만 물가에 버티고 서서 큰 소리로 지시를 내릴 때의 그녀는 그저 활기찬 기운과 단호한 열의만을 뿜어냈다. 어쩌면 스톱워치로찰나나마 내가 성공한 시간을 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기댈데라고는 노밖에 없던 나는 노를 움켜쥔 채 수면을 향해 점점 몸이 기울다가 아슬아슬하게 60도 각도에서 얼어붙어버렸다. 무슨 균형감각이 발동해서라기보다 몸이 마비되어 꼼짝할 수가 없었다. 선착장에서 톰이 배꼽을 잡으며 웃고 있었다. 내가 심하게 기울수록 그는 더 심하게 웃어댔다. "빠질 것 같아!" 내가 소리쳤다. - P21
"아니, 안 빠져." 캐럴라인은 시즌 성적이 저조한 팀의 코치처럼 진지한 얼굴로 대꾸했다. "빠지지 않아 양손을 모아. 그대로 가만히 있어-물을 보지 말고 손을 봐. 자, 이제 나를봐." 그녀의 목소리가 한참을 달래고 이끌어준 덕분에 나는겨우 몸을 펴 다시 자세를 잡고 잔잔한 물에서 대여섯 차례스트로크에 성공했고, 그런 다음 중심을 잃고 보트 밖으로 튕겨나가 호수에 빠졌다. 몇초 뒤 1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수면 위로 떠오르니 캐럴라인이 깔깔 웃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언뜻 그녀의 희열을 엿보았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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