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
차이가 의미를 만든다. 시를 포함하여 모든 글쓰기는 차이의 기록이다. 하지만 차이란 말 그대로 차이일 뿐 정본이 아니다. 탁자 위의 물방울이 마른 흔적을 통해, 여기 물방울이 있었다고 기록할 수는 있겠지만, 물방울을 돌이키지는 못한다. 글쓰기는 말하자면 돌이킬 수 없는 물방울 같은, 좌절된 열망의 흔적이다. 나는 그 흔적의 글쓰기를 통해, 지금은 없는, 그대를 기록한다. 아니 그대의 흔적을 기록한다. 그 차이가 의미를 만든다.
더디고 더딘 발걸음으로 새 시집을 묶는다. 오랜만이다. 지나온 날이 그러했듯 어쩔 수 없어서 내가 내 앞을자꾸 가로막았기 때문일 것이다. 별다른 뜻 없이 크게네 부분으로 나누었지만, 세상에 아무 의미 없는 일이과연 있겠는가.
그대만 견디고 있는 게 아니므로 세월은 또 느릿느릿흘러갈 것이다.
2001년 여름
강연호
적멸
지친 몸빛이 저녁을 끌고 온다.
찬물에 말아 넘긴 끼니처럼
채 읽지 못한 생각들은 허기지다
그대 이 다음에는 가볍게 만나야지
한때는 수천 번이었을 다짐이 문득 헐거워질 때
홀로 켜지는 불빛, 어떤 그리움도
시선이 닿는 곳까지만 눈부시게 그리운 법이다
그러므로 제 몫의 세월을 건너가는
느려터진 발걸음을 재촉하지 말자
저 불빛에 붐비는 하루살이들의 생애가
새삼스럽게 하루뿐이라 하더라도
이 밤을 건너가면 다시
그대 눈 밑의 그늘이 바로 벼랑이라 하더라도간절함을 포기하면 세상은 조용해진다
달리 말하자면 이제는 노래나 시 같은 것
그 동안 베껴썼던 모든 문자들에게
나는 용서를 구해야 한다혹은 그대의 텅 빈 부재를 채우던
비애마저 사치스러워 더불어 버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