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의 최대 축적을 즐기면서도 자연을 손님으로 초대하지는않으며, 이로써 경제가 자신이 유발한) 생태적 재생산 비용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도록 프로그램화한다. 그 결과 이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수록 생태계가 불안정에 빠지며, 주기적으로자본주의 사회의 날림 건축물 전체에 균열을 일으킨다. 자연을필요로 하면서도 하찮게 여김으로써 자본주의는 자기 신체의필수 기관을 먹어 치우는 식인종이 된다. 자본주의는 우로보로스처럼 자기 꼬리를 먹는다. - P166

우리가 어떻게 논의를 시작하는 결국 도달하는 결론은 같다.
자본주의적으로 조직된 사회는 그 DNA 안에 생태적 모순을 담고 있다. 이런 사회는 ‘자연의 파국‘을 재촉하는데, 이 파국은 자본주의의 전 역사에 걸쳐 주기적이며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즉,
자본주의 사회는 생태 위기를 몰고 오는 내적 경향을 장착하고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그 작동 방식의 본질적 부분으로서 생태계의 취약성을 유발하며, 이는 현재진행형의 토대 위에 있다. 이취약성은 항상 극적인 형태를 띠거나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누적된다. 그리고 결국 임계점에 도달하면 피해가 분출해 드디어 우리 시야에 들어오게 된다. - P167

자본주의 사회의 사회·재생산 조건을 살펴보자. 여기에서도자본주의는 생산만을 조직하지 않는다. 제3장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자본주의는 공동체와 가족이 수행하는(대부분을 여성이 떠맡는) 다양한 형태의 돌봄 활동이 생산과 맺는 관계를 결정하기도한다. 돌봄 활동은 ‘노동‘을 구성하는 인간 존재를 떠받치고 협력이 이뤄질 수 있게 하는 사회적 유대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어떠한 사회적 필수재 공급 시스템에도 없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를 조직하는 자본주의만의 독특한 방식은 자연을 조직하는 방식만큼이나 철저히 모순적이다. - P169

사회적 재생산 활동이 삶과 죽음의 문제와 깊이 관련돼 있다는 점을 고찰해보자. 어린이 돌봄은 사회화, 교육, 정서적 양육뿐만 아니라 임신,출산, 산후조리, 지속적인 신체 관리를 아우른다. 마찬가지로 환자 돌봄과 임종 돌봄은 몸을 치료하고 고통을줄이는 것뿐만 아니라 위안을 주고 존엄성을 보장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젊든 연로하든, 아프든 건강하든, 모든 사람은육체적 안녕과 사회적 연결 모두를 위한 쉼터, 영양공급, 위생을유지해주는 돌봄 활동에 의존한다. 즉, 일반적으로 사회적 재생산 활동은 자연적이면서 동시에 문화적인 존재를 떠받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사회적 재생산 활동은 자연/문화 구별을 넘나듦으로써 사회성과 생물학, 공동체와 생활 터전이 상호작용하도록 만든다. - P171

지금까지 나는 생태 위기를 낳는 자본주의의 경향을 구조적 맥락에서만 상술했다. 마치 그것이 시간 바깥에 존재하기라도 하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경향은 오직 역사적으로 구체적인 형태로만 표출된다. 여기에서는 이를 ‘사회생태적 축적 체제‘라 표현하겠다. 나는 이 문구를 자본주의 역사에서교대로 이어진 다양한 국면을 지칭하는 데 사용하고자 한다.
자본주의의 각 체제는 경제/자연 관계를 조직하는 서로 다른방식을 보여준다. 각 체제마다 에너지를 발생시키고자원을 추출하며 폐기물을 처리하는 독특한 수단이 중심을 이룬다. 또한각 체제는 서로 다른 확장 경로(즉 정복, 도둑질, 상품화, 국유화, 금융화)의 역사적으로 특수한 혼합을 통해, 과거에는 외재적이었던자연의 막대한 부분을 새로 합병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각 체제는 자연을 외부화하고 관리하는 독특한 전략을 발전시킨다. 그 수단은 정치적 영향력이 없는 가족과 공동체에 피해를 떠넘기는 것이고, 그 방안은 피해 경감의 책임을 국가와 정부조직, 시장에 분배하는 것이다.  - P179

그들은 오랜 세월 동안 유효성을 증명한 이런 수단을마음껏 활용했지만, ‘구‘세계뿐만 아니라 ‘신세계까지 아우르면서 그 규모가 엄청나게 확대됐다.
즉, 중상주의-자본주의 주체들은 주변부에 사회생태적 추출주의의 잔인한 시스템을 정착시켰다. 포토시의 은광에서 생ㅡ도맹그의 노예제 플랜테이션 농장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토지와노동을 기력이 고갈될 때까지 부려먹었다. 그러면서도 자기네가 소모한 것을 보충하려는 노력 따위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외부‘로부터 강제로 흡수한 전에 없던 인간 및 비인간 ‘투입물‘을 먹어 치우기로 했고, 모든 대륙 곳곳에 환경적·사회적 피해의 자취를 남겨놓았다. - P183

포토시는 볼리비아의 포토시주에 소재한 도시다. 스페인인들이 이 지역을 점령한 뒤인 1545 년에 거대 은광이 개발됐다. 스페인 점령자들은 선주민들에게 강제 노동을 시켜 다량의 은을 채굴한 뒤, 이를 중국 등과의 무역에 경화(국제결제통화로 사용했다. 이로 인해 선주민들은 인종 학살 수준의 고난을 겪은반면에 유럽에는 다량의 은이 유입돼 초기 상업자본주의가 순항할 수 있었다.


생-도맹그는 카리브해의 현 아이티공화국을 일컫던 옛 지명이다. 카리브해에서 쿠바 다음으로 큰 섬인 히스파니올라의 동쪽을 점령한 스페인인들은 이 지역을 산토도밍고라 불렀고, 섬 서쪽을 식민지로 만든 프랑스인들은 자기 지역을 생-도맹그라 칭했다. 바로 이곳에서 번성한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농장(한때 프랑스 국부의 1/4에 달했다는 보고도 있다)에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서부아프리카 해안에서 주민들을 납치·매매하면서 근대 노예제가 대두했다. 1791년에 프랑스대혁명에 화답하며 근대 노예제 철폐의 첫 막을 연 위대한 흑인혁명도 다름 아닌 이곳(현 아이티)에서 시작됐다.

석탄으로 가열된 증기가 생산 영역에서 산업혁명의 동력이되었다면, 이는 교통에서도 혁명을 일으켰다. 철도와 증기선은공간을 압축하고 시간을 단축했으며, 아주 먼 거리를 가로지르는 원자재와 공산품의 이동 속도를 높였다. 이로써 자본의 회전율을 가속하고 이윤을 불렸다.‘ 농업에 끼친 영향도 심대했다.
굶주린 프롤레타리아트가 도시로 모여들자 시골에서는 이윤이주도하는 지속 불가능한 농업으로 돈을 벌어들였다. 그러나 물론 이런 제도배열은 도시와 농촌의 물질대사 균열을 크게 악화시켰다. 농촌의 토양에서 약탈된 영양분은 추출이 발생한 그 지점으로 돌아오지 않고, 도시의 수로에 유기성 폐기물로 방출됐다. 결국 석탄을 땐 자유주의-식민주의 체제는 농지를 소진시켰고, 단번에 도시를 오염시켰다. - P187

정제 석유는 사회민주주의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자동차 및유관 제조업체가 획득한 이윤은 부유한 국가들의 세수를 크게늘렸으며, 이는 전후 사회복지의 재정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그아이러니를 눈치 챈 이들은 많지 않았다. 북반구에서 사회복지의 공적 지출이 늘어날 수 있게 해준 것은 남반구에서 더욱 강화된 자연의 사적 약탈이었다. 자본이 사회적 재생산 비용 청구서를 일부나마 계산해주었다고 한다면 이는 오직 저 먼 곳에서, 액수가 훨씬 더 큰 자연의 재생산 비용 청구서를 나 몰라라 할 수있었던 덕분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이 모든 것에 연결고리 노릇을 한 것은 석유였으니, 이게 없었다면 모든 활동이 가루처럼 부서지며 중단됐을 것이다. - P192

동시에 미국은 강력한 환경운동을 낳기도 했다. 이전 체제의자연-낭만주의를 이어받아 19세기에 시작된 한 조류는 금지구역과 국립공원 창설을 통한 ‘야생보호‘에 집중했는데, 이런 조치들은 선주민의 강제 이주를 수반하는 경우가 많았다." 복고풍에 반대하는 ‘혁신‘라 자처한 이런 ‘부자들의 환경주의‘는 기존체제를 보완하는 조치에 주력했는데, (일부) 미국인들이 산업문명에서 일시적으로 탈주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을 뿐 산업문명과 대결하거나 이를 변혁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 P193

하지만 국가관리 자본주의가 발전하자 체제의 산업적 중핵을 공략하는 또 다른 환경주의가 알을 깨고 나왔다. 생물학자이자 환경보호론자인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의 1962년작 <침묵의봄Silent Spring》으로 불이 붙은 이 조류는 국가가 대기업발 공해를 줄이기 위해 행동에 나서도록 압박했다. 그 결과는 환경보호국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 EPA의 설립이었고, 이는 사회적 재생산을 지원한 뉴딜 기관의 환경판이었다. 1970년에 창설된 EPA는 환경 문제를 국가 규제 대상으로 삼아 ‘외부성을 내부화함으로써‘ 시스템 위기를 진정시키려던, 국가관리 체제의 - P193

마지막 주요 시도였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슈퍼펀드superfund였다. 미국 내 유독 폐기물 오염지를 자본의 비용 지불로 정화하고자 한 것이다. 슈퍼펀드는 주로 석유화학산업에 과세하여 자금을 조달했고, 자본주의 국가의 강압적 기관을 통해 ‘오염자 부담‘
원칙을 실행했다. 이는 채찍을 당근으로 대체하며 시장에 의존하는 요즘의 탄소거래제도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자연에 대한 국가자본주의적 규제는 이런 점에서 진보적이었지만, 그 근저에는 (사회적 재생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비용 전가를 통한 책임 회피가 있었다. 이 체제는 생태적-‘외부성‘을 중심부의 가난한 공동체들(전부는 아니지만 다수는 유색인 공동체였다)에게 압도적으로 떠안겼고, 주변부에서는 추출주의와 환경 부담전이를 급증시켰다.  - P194

게다가 미국 환경주의의 산업 감시 진영은대기업발 공해라는 핵심 쟁점의 틀을 잘못 짰다. 생태-정치의 집행 단위로 국민-영토국가를 상정하는 바람에, 산업 폐기물 배출이 본질적으로 국경을 넘어서는 특성을 갖는다는 점을 놓치고만 것이다." 이렇게 못 보고 놓친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는지는 그 효과가 본래 전 지구적일 수밖에 없는 온실가스와 관련하여 드러나게 된다. 당시에는 이 과정이 제대로 이해되지 못했지만, 국가관리 체제가 그 존속기간 내내 이산화탄소를 쉬지 않고 만들어냄으로써 이 시한폭탄의 폭발은 급격히 당겨졌다. - P194

한편 자본은 빠른 속도로 새로운 역사적 자연들을 계속 발생시키고 있다. 여기에는 리튬과 콜탄처럼 반드시 새롭게 확보해야 하는 광물이 포함되는데, 콜탄은 휴대전화의 필수 원료로서이윤이 엄청난 상품이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내전의 원인이자,
노예화된 콩고 어린이들에 의해 채굴되는 상품이다. 또 다른 신자유주의적 자연들로는 새롭게 인클로저 대상이 된 낯익은 대상들이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사례는 물인데, 물의 사유화는 대중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이들 대중은 ‘물질적 이해관계‘만이 아니라 ‘삶의 원천‘, 그리고 이와 연관된 자연/상품 결합체에 대한 서발턴적 관점을 지키는 데 전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P196

인클로저는 자본주의의 어떤 국면에서든 필수 요소였지만,
현 체제는 교활하고도 독창적이기까지 한 새로운 인클로저 형태들을 탄생시키고 있다. 새로운 독점 지대를 뽑아내기 위해 최첨단 생명공학이 최신형 지적재산법과 결합한다는 사실은 이미널리 알려져 있다. 종종 제약 대기업은 토종 식물에 기반한 신약 - P196

성분의 소유권을 주장하는데, 그 한 사례로 인도멀구슬나무(최근에 게놈을 해독했다)에서 추출한 성분을 들 수 있다. 문제의 성분은 이미 그 치료 효과가 남아시아 전역에 잘 알려져 있어서 여러세기에 걸쳐 사용되던 것이었다. 유사한 사례로 농업 대기업의곡물 품종 특허권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유전자 ‘개선‘이라는 개념을 근거로 바스마티 쌀 같은 곡물 품종의 특허권을 확보하려하는데, 그 목적은 이를 개발한 영농 공동체의 자산을 박탈하려는 데 있다. - P197

반대로, ‘자연에서는 발생하지 않는 새로운 역사적 자연을생명공학을 통해 발생시키는 경우도 있다. 악명 높은 사례로 몬산토Monsanto의 터미네이터 씨앗이 있다. 농가에서 매년 종자를 구매할 수밖에 없도록, 의도적으로 열매가 열리지 않게 고안된 씨앗이다. 다국적기업이 자본의 자기 재생산 경로가 되는 인공적인 생명-소진 과정을 탐식하기 위해, 씨앗이 재생산되는 자연스러운 생명-소생 과정을 고의로 죽여 없애는 것이다." 이제자본은 자신이 늘 의지해온 바로 그 ‘무상의 선물‘(즉 스스로를 보 - P197

충하는 자연의 역량을 다른 이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가로막음으로써, 사실상 자신의 자연 I 개념을 거꾸로 뒤집는다.
그 결과는 극도의 이윤과 다양한 고통의 얽힘이며, 이를 통해환경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이 한데 뒤엉킨다. 농민의 부채가 급증해 농민들 사이에서 자살이 유행하고, 더 나아가 전 지구적 환경 부담에서 짊어져야 할 몫이 증가해(도시의 극단적인 공해, 시골의과잉 추출주의, 점점 더 치명적인 충격을 안겨주는 지구 온난화에 유독 취약한 상태) 이미 허리가 훨 지경인 지역들이 더욱 빈궁해진다. - P198

지구 온난화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자, 국가 강제력 대신 탄소 배출권 시장이 신뢰할 만한 규제 기제의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아울러 일국적 차원 대신 국제적 차원이 생태-거버넌스의 사랑받는 무대가 되었다.
이에 따라 환경운동도 변천했다. 야생보호의 흐름은 그 한지류가 녹색-자본주의의 권력 중심에 끌려들어간 반면 다른 지류는 점차 환경정의를 고수하는 운동이 되면서 분열되고 약화됐다. 현재 환경정의의 흐름에는 광범위한 서발턴이 포함된다. 남반구에서 인클로저와 땅뺏기에 맞서 저항하는 ‘가난한 자들의환경주의‘, 독성물질 노출에서 나타나는 불평등을 공격하는 북반구 반인종주의자, 송유관과 싸우는 선주민운동, 삼림 파괴와전투를 벌이는 에코페미니스트 등등. 이들 중 다수는 초국적 네트워크 안에서 서로 중첩되고 상호 연결된다. - P200

이와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최근까지 이 무대에서 보기 힘들었던 국가 중심 프로젝트가 이제 새로운 활력을 내뿜으며 다시 부상하고 있다. 좌우 양쪽에서 포퓰리즘의 반란이 일어나자유시장‘이라는 요술방망이에 대한 믿음을 분쇄하자, 일부는 국가권력이 생태-사회 개혁의 주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가령 한편에는 마린 르펜의 ‘새 생태주의"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그린뉴딜이 있다. 또한 노동조합 역시 녹색 인프라 프로젝트를 통한 일자리 창출에 기대를 건다(이 - P200

들은 오랫동안 조합원의 산업 보건과 작업 안전을 위해 헌신했지만 ‘발전‘ 을 제한하는 데는 조심스러웠다). 마지막으로 스펙트럼의 반대쪽 끝에서는 탈성장 흐름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새로운 참여자를 발견하고 있다. 이들은 물질 처리량 급증과 소비자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대담한 문명 비판에 끌리고, 또한 채식주의, 커머닝, 사회적경제연대경제를 통한 ‘부엔 비비르buen vivir 의 약속에매혹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두를 종합한 결과는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어디로 이끌 수 있을까? - P201

프랑스의 비대한 핵발전소
‘부엔 비비르‘는 ‘좋은 삶‘이라는 뜻인데, 라틴아메리카에서 특히 선주민운동과 환경운동을 중심으로 신자유주의 질서에 맞서는 대안의 기본 방향이자 가치로 제시되었다. 이들이 발전시킨 ‘부엔 비비르‘라는 말에는 인간이 서로, 그리고 자연과 함께 조화롭고 지속 가능하게 사는 삶의 여러 면모와 이와 관련된 다양한 관심사들이 집약돼 있다. 2008년에 에콰도르의 좌파 라파엘코레아 정부 아래에서 채택된 에콰도르 헌법은 ‘부엔 비비르‘를 경제사회 질서의기본 원리로 천명했다.

여기에서 도출되는 정치적 함의는 실천하기에는 간단하지 않아도 개념상으로는 단순하다.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생태정치가 되려면, 반자본주의적이면서 또한 환경의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장에서 제시한 역사적 성찰은 이 명제를 더욱 심화시킨다.
내가 처음에 추상적인 4D 논리로 제시한 내용, 즉 자본이 자신의 의존 대상인 자연 조건을 불안정에 빠뜨리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있다는 것은 이제 시간과 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구체적인과정으로 나타난다. 그 궤적은 대략 다음과 같을 것이다.
중심부에서 비롯된 사회생태적 곤경은 주변부에서 약탈의물결을 촉발하며, 노략질 대상은 정치적 자기방어 수단을 빼앗긴 인구집단의 자연적 부다. 또한 매번 생태적 곤경에 대한 해법은 새로운 역사적 자연을 불러내는 마법과 그 전유를 포함하는 - P202

데, 이러한 새로운 역사적 자연은 과거에는 가치 없는 것이었으나 갑자기 황금처럼 떠받들어지면서 반드시 가져야 할 전 세계적 상품이 되고, 주인이 없기에 잡는 사람이 임자라고 편의적으로 간주된다. 결국에 가서 매번 나타나는 것은 걷잡을 수 없는연쇄 효과이며, 이는 새로운 사회생태적 곤경을 촉발해 순환이계속되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런 과정이 거듭 반복된다.
각 체제마다 되풀이되는 이 과정은 세계적 규모로 확대되며전개된다. 설탕과 은, 석탄과 구아노, 정제 석유와 화학 비료, 콜탄과 유전자 조작 씨앗을 헤쳐나가며 이 과정은 정부에서부터식민화로, 신제국주의로, 금융화로 단계를 밟아나간다. 그 결과는 중심부/주변부 지리학의 진화로서, 서로를 구성하는 이두공간 사이의 경계선은 경제/자연의 경계선이 변동하는 것에 발맞춰 주기적으로 변동한다. 이런 변동을 낳는 과정은 자본주의 사회의 독특한 공간성을 발생시킨다.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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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제시한 분석은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역사적으로인종주의의 구조적 토대 노릇을 하던 것이 (비록 완전한 소멸까지는 아니더라도) 분명 무너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자본주의에는 수탈과 착취가 모두 필요했다. 하지만 과거에는 수탈과 착취가 분리돼, (피부색 경계선에 따라분할된) 서로 구별되는 두 인구집단에게 따로 적용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것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 오히려 현체제는 거의 모든 무자산 상태의 성인을 임금노동에 징용하면서도, 압도적 다수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재생산 비용보다 적은임금을 받는다. 공적 지원을 해체해 ‘사회임금‘을 줄이는 바람에막대한 수의 무자산 대중이 부채의 마수에 얽혀든다. - P106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의 이 국면에서도 인종적 억압은 건재하다. 유색인은 여전히 인종화되며, 빈민·실업자·노숙자가 되어 굶주리고 병들 가능성이 다른 이들보다 훨씬 높다. 범죄나 약탈 대출에 희생될 가능성 감금되거나 사형 선고를 받을가능성, 경찰이 괴롭히고 살해할 가능성, 총알받이나 성노예로이용당하며 끝없는 전쟁에서 난민이나 ‘부수적 피해자 collateraldemage‘가 될 가능성, 자산을 박탈당하고 폭력·빈곤·기후변화가 야기하는 재앙을 피해 도주할 수밖에 없어 결국 국경 수용소에 갇히거나 바다에서 익사할 가능성 역시 마찬가지다.
이러한 사태 전개를 한데 합치면 한 가지 수수께끼가 제기된다. 한편으로 금융화된 자본주의는 이전 체제에서 인종적 억압의 토대 노릇을 하던 정치-경제적 구조를 해체하고 있다.  - P107

인종주의는과거에 자본의 포식 행위에 맞설 방패가 있었던 이들의 상당수가 이제는 짐을 함께 들려는 의지를 별로 보이지 않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들이 인종주의적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물론 그들 가운데 일부가 인종주의적이기는 하다). 그들에게도 정당한 불만이 있다는 점 역시 분명하다. 보편적으로 수탈을 강제하는 사회 시스템을 폐지하려는 인종 교차적 운동이 부재한 상황에서,
이러한 불만은 대개 권위주의적 우익 포퓰리즘이 성장하는 것으로 표출된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역사적 중심부에 속한 거의모든 나라에서, 그리고 예전의 주변부에 속했던 몇몇 나라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만개하고 있다.
이 흐름들은 우리 시대의 ‘진보적 신자유주의‘에 대한 예측가능한 반작용을 보여준다. 진보적 신자유주의를 체화한 엘리트들은 냉소적으로 ‘공정‘에 호소하면서도 수탈을 확대한다. 한때 ‘백인‘ 혹은 ‘유럽인‘ 지위 덕택에 최악은 면하도록 보호받던 이들에게 이제는 특혜 받는 지위를 버리라고, 불안정성의 증대를 받아들이고 폭력에 굴복하라고 말한다.  - P109

하지만 이에 대해 비탄에 빠지기 전에, 현상황에서비인종적자본주의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어떤 해석에 따르면, 이는 한편으로 유색인이 그 인구수에 비례해 글로벌 금융의 관제고지에 진출하거나 정치적 실력자가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탈과 착취를 당하는 이들 사이에서도인구수에 맞게 포진하는 체제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가능성은반인종주의자에게는 그다지 위안거리가 못 되는데, 이 상황에서유색인 중 대다수는 다른 이들에 비해 생활 조건이 계속 악화할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비인종적 자본주의는 급증하는불평등 안에서 격차를 조절함으로써 기껏해야 (인종적 증오가 치솟는 상황에서) 제살 깎아먹기의 기회균등을 실현할 뿐이다. - P110

여기에서 내가 전개한 분석은 그보다 급진적인 변혁이 긴급하게 필요함을 보여준다. 진보적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과 달리, 인종주의는 제 살 깎아먹기의 기회균등으로는 격퇴되지 못한다. 또 통상적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 같은 법률 개정을통해서도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흑인 민족주의자들에게는 실례되는 이야기이지만, 기업 유치정책이나 지역사회통제 혹은자결권도 해결책이 아니다. 또한 전통적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착취에 집중한다고 하여 인종화된 대중을 해방시킬 수 있는것도 아니며, 어떤 피부색의 노동 대중도 그렇게는 해방되지 못한다. 오히려 앞서 말한 것처럼, 착취와 체계적인 연계를 맺고 있는 수탈까지도 공격 목표로 삼아야 한다. 실제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본주의의 강고한 수탈-착취 결합체를 극복하는 일이며, 그 기반 전체를 변형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수탈-착취 공생을 유발하는 더 큰 시스템을 철폐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수탈과 착취 모두를 근절하는 것이다. - P111

피착취자가 피수탈자이기도 하고 피수탈자가 피착취자이기도 한 오늘날에는 마침내 둘 사이의 동맹을 구상할 수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금융화된 자본주의는 착취와 수탈의 경계선을 희석시킴으로써 이 둘 모두를 폐지할 물적 토대를 창출하고 있을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역사적 ‘가능성‘을 현실적인 역사적 ‘힘‘ (해방으로 나아가는)으로전환시키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 P112

이 목적을 달성하기란 어쨌든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자본주의 사회의 또 다른 몇몇 구조적 측면을 고려해보면, 이는 더욱복잡해진다. 제1장에서 본 것처럼, 인종화된 수탈은 자본주의사회의 뿌리 깊은 지배 형태 중 유일한 예가 아니다. 우리가 찾아낸 다른 감춰진 장소들에, 또 다른 불의들(정치적·생태적·사회재생산적)이 존재하며, 인종화된 수탈은 이들과 깊이 얽혀 있다.
인종주의를 충분히 이해하려면 그러한 불의들 또한 이해해야한다. 그러므로 나는 다음 장에서, 생산과 재생산의 구조적 분리에서 비롯된 젠더화된 형태의 제살 깎아먹기로 눈길을 옮기고자 한다. - P112

자본은 인종화된 인구집단의 부를 먹잇감으로 삼을 뿐만 아니라 ‘돌봄‘을 폭식하기도 한다. 자본의 식인성이 지닌 이 측면은오늘날 광범한 사회적 탈진과 시간 빈곤을 통해 표출되는데, 이것들은 사회 현실에 구조적 토대를 둔 경험들이다. 실제로 우리의 사회 시스템은 흔히 돌봄 활동이라 일컫는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갉아먹고 있다. 이를테면 가정에 관심을 기울이고 가계를 유지하며, 공동체를 떠받치고 우애를 꽃피우며, 정치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연대를 다지는 일 등이다. 이런 활동은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일상에서든 세대 간에든, 인간 존재를 보충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유대를 유지시킨다. 게다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를 통해 노동력의 공급이 보장된다. 자본이잉여가치를 빨아들이는 대상인, 상품화된 노동력 말이다. 그러므로 내가 ‘사회적 재생산‘이라 부르는 이런 활동이 없다면 생산도 이윤도 자본도 없으며, 따라서 경제도 문화도 정치도 있을 수 없다. - P115

실로 어떤 사회도(자본주의 사회는 아니든) 사회적 재생산을 놓고 제살 깎아먹는 짓을 벌인다면 결코 오래 버틸 수 없다고 장담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현재 형태가 벌이고 있는 짓은 남을돌보는 활동에 쏟아부어야 할 정서적·물질적 자원을 별 필요도없는 활동에 전용하는 것이다. 물론 대기업에게는 돈 보따리를안겨주겠지만 말이다. 그 결과 자본주의에 심각한 위기가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돌봄만이 아니라 더 넓은 의미에서 사회적 재생산의 위기이기도 하다.
이 위기만큼이나 심각한 것은, 이것이 더 거대한 현상, 즉 먹잇감을 향해 달려드는 포식자의 광란이 발현되는 여러 사례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점이다. 오늘날 자본은 사회적 재생산뿐만 아니라 공적 권력과 정치적 역량을 놓고도 제살 깎아먹는 짓을 벌이며, 자연과 인종화된 대중도 그 대상으로 삼는다. 그 결과는 우리 사회 질서 전체의 전반적 위기다. 그리고 이 위기의 여러 지류支流들이 상호 교차하며 서로를 더욱 악화시킨다. - P116

나는 현재의 ‘돌봄 긴장‘을 자본주의에 내재한 사회 - 재생산모순의 첨예한 표현으로 해석하자고 제안한다. 이는 두 가지 발상을 담고 있다. 첫째, 현재의 돌봄 긴장은 우발적인 게 아니라,
앞에서 내가 ‘금융화된 자본주의‘라 칭한 현 사회 질서에 구조적으로 깊이 뿌리내린 것이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사회적 재생산 위기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현재 형태만이 아니라자본주의 자체에서 뭔가가 썩어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러므로현재의 신자유주의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가 변혁되어야만한다. - P117

그 이유를 살펴보려면,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에 관한 우리의 인식을 확장해야 한다. 대다수 분석은 자본주의 시스템의경제에 내재한 모순을 강조한다. 이에 따르면, 자본주의 경제의핵심에는 ‘자기 불안정화‘의 내적 경향이 있으며, 이는 주기적인경제 위기, 즉 주식시장 폭락, 경기 순환, 대공황 등으로 표출된다. 이 관점은 그 자체로는 옳다. 그러나 자본주의라는 사회 시스템의 결정적 측면, 즉 경제를 넘어선(혹은 경제 이면의) 영역의 부를 놓고 제살 깎아먹는 짓을 벌이려는 자본의 충동을 간과한다는 점에서 완전한 그림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는 앞에서 제시한 확장된 자본주의관을 받아들이게 되면 곧바로 교정된다. 이 관점은 공식 경제만이 아니라 비-경제적 배경조건들까지 포괄하기 때문에, 사회적 재생산을 포함해 자본주의의 모순을 폭넓게 개념화하고 비판할 수 있게 해준다. - P118

자본주의 경제는 사회적 유대를 생산하고 유지하는 필수재공급이나 돌봄 제공, 상호작용 등의 활동에 화폐화된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마치 무상인 듯 취급하면서도 이에 의존한다. 아니,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무임승차한다. ‘돌봄‘, ‘감정노동‘, ‘주체화‘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는 이 활동은 자본주의의 인간 주체를 형성하고, 이들을 신체화된 자연적 존재로 유지시킴과 동시에 사회적 존재로 구성하여 이들의 아비투스와 문화적 에토스를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는 새 세대를 낳고 사회화하는 일뿐만 아니라, 노인을 돌보고 가계를 유지하며 공동체를 구축해 사회적 협력을 뒷받침하는 공동의 의미·정서·가치 지평을 지탱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 - P119

이렇게 광범하게 이해될 경우 사회적 재생산 활동은 모든 사회에 필수적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는 또 다른, 좀 더특수한 기능을 수행한다. 자본이 잉여가치를 획득하기 위해 착취할 노동력 보유 계급을 생산하고 보충하는 일이 그것이다. 말하자면 아이러니하게도 돌봄 활동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생산적‘이라 부르는 노동을 생산하지만, 그 자체는 ‘비생산적‘이라 간주된다. 물론 돌봄 활동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다수가 공식 경제의 가치-축적 회로 바깥에 자리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를테면 가정, 마을, 시민사회 기구, 공공기관 등이다. 그리고 돈을 받고 수행하는 경우에조차 자본주의적 의미에서 ‘생산적‘인 돌봄 활동은 상대적으로 적다.
그러나 돌봄 활동이 이뤄지는 장소가 어디인지, 보상으로 돈 - P119

을 받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사회 - 재생산 활동은 자본주의의작동에 필수적이다. 생산적이라 간주되는 임금노동도, 이로부터추출되는 잉여가치도, 돌봄 활동이 없다면 있을 수 없다. 자본이자신에게 필요한 만큼의 양과 질을 갖춘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가사와 육아, 학교 교육, 정서적 돌봄, 그리고 일군의 관련 활동들 덕분이다. 즉, 사회적 재생산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생산의 필수 전제조건이다.
하지만 늦어도 산업화 이후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재생산 활동이 경제적 생산 활동과 분리됐다. 자본주의 사회는사회적 재생산 활동은 여성과, 경제적 생산 활동은 남성과 결부시킴으로써 특정한 정서적 분위기가 재생산 활동을 에워싸도록 만들었다.  - P120

그 정서란, 사회적 재생산 활동은 그만의 독특한 보상만 있으면 된다거나,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에도 쥐꼬리만한 보수만 받으면 된다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자본을 위해 일하면서(이론상으로는) 노동자가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임금을 받는 활동과는 구별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자본주의 사회는 여성 종속의 새로운 근대적형태를 위한 제도적 토대를 수립했다. 과거 인간 활동의 더 큰우주에서는 여성의 일이 일정한 지위를 인정받았지만, 자본주의는 여기에서 재생산 노동을 따로 떼어낸 뒤 이를 새롭게 제도화된 가정 공간과 결부시켰다. 이제 이 공간은 사회적 중요성이 탈 - P120

색된 채, ‘여성다움‘이라는 새로 발명된 관념의 안개에 가려지게되었다. 그리고 화폐가 권력의 1차적 매체가 된 새 세상에서는,
돈을 받지 못한다거나 적은 돈만 받는다는 점이 중요한 진실을은폐하는 역할을 했다. 즉 재생산 활동 덕분에 임금노동이 이뤄질 수 있는 것임에도, 이런 필수적인 재생산 활동을 수행하는 이들이 생계임금을 벌어오는 이들(공식 경제에서 잉여가치를 낳는 노동을 하는)에게 구조적으로 종속된다는 진실 말이다.
다시 말해,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사회는 사회적 재생산과 경제적 생산을 분리하여, 전자를 여성과 결부시키고 그 중요성과가치가 눈에 잘 띄지 않게 만든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자본주의 사회는 바로 그 사회적 재생산 과정에 의존해 공식 경제를만들어낸다.  - P121

이러한 분할division + 의존dependency + 책임 회피disavowal의 별난 관계야말로 불안정화destabilization를 야기하는 비법이다. 실제로 D로 시작하는 이 네 단어는 모순을 압축한다. 자본주의의 경제적 생산이 사회적 재생산에 크게 의존함에도 불구하고, 무한히 축적하려는 자본주의의 충동이 바로 그 재생산 과정과 역량을 불안정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그 장기적 결과는 자본주의 경제에 필수 불가결한 사회적 조건들에 닥치는 주기적 위험이다.
요컨대 여기에 자본주의 사회의 제도적 구조에 깊이 뿌리내린 ‘사회적 모순‘이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강조한 경제적 모 - P121

순과 마찬가지로 이 사회적 모순 역시 위기 경향의 토대 구실을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 문제는 자본주의 경제 ‘내부‘가 아니라생산과 재생산을 분리하는(그러면서 연결하는 ‘경계‘에 위치한다.
이 모순은 경제-내부도 가정-내부도 아닌, 두 영역에 각기 존재하는 규범적 문법 및 행동 논리 사이에서 충돌을 야기한다. 물론이 모순은 잘 감지되지 않을 때가 잦으며, 이와 결부된 위기 경향 역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하지만 축적을 확대하려는 자본의충동이 사회적 토대에서 벗어나 이와 충돌하기 시작할 때 모순은 첨예해진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경제적 생산의 논리가 사회적 재생산의 논리를 압도함으로써 자본이 의존하는 바로 그 과정이 불안정에 빠지며, 장기간 축적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역량이 가정 영역에서든 공적 영역에서든 손상을 입는다. 자본 축적이 이뤄질 수 있게 하는 그 조건을 파괴하면서 자본 축적역학은 마치 우로보로스를 흉내 내듯 자기 꼬리를 먹는다. - P122

주변부의 사회성sociality에 대한 대규모 공격은 19세기의 이른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아래에서도 계속됐으며, 이 시기에유럽 국가들은 식민 통치를 강화했다. 그러나 식민 본국에서 상황은 극적으로 변했다. 자본주의 중심부의 초기 제조업 중심지에서 공장주들은 여성과 아동의 노동이 저렴하고 다루기 쉽다는 평판에 군침을 삼키며 이들을 공장과 광산에 강제로 몰아넣었다. 쥐꼬리만 한 임금에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장시간 일하면서, 아동과 여성 노동자는 자본의 생산성을 떠받쳐주는 사회관계와 역량[사회적 재생산 관련]에 대한 자본의 무시를 상징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생산과 재생산이라는 두 지상명령은 서로 직접적으로 모순되는 모습을 보였다. - P125

주변부에서는 이와는 다른 역학이 펼쳐졌다. 자원 추출 식민주의가 피정복민을 황폐하게 만든 그곳에서는 영역 분리도, 사회적 보호도 통하지 않았다. 토착적인 사회적 재생산 관계를 보호하기는커녕 식민 지배국은 이를 파괴하도록 적극 장려했다.
값싼 식량, 직물, 광물, 에너지를 공급하느라 농민은 노략질당했고 농민 공동체는 망가졌는데, 이런 전리품이 없었다면 식민 본국의 산업 노동자를 착취하더라도 이윤이 시원치 않았을 것이다. 한편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여성 노예의 재생산 능력이 폭력적으로 점유돼 농장주의 이윤 계산에 맞춰 이용됐고, 노예 가족은 각기 다른 소유주에게, 게다가 많은 경우 아주 먼 곳의 소유주에게 팔려나가면서 갈가리 찢기는 것이 다반사였다. 선주민자녀 역시 공동체에서 유리됐고, 선교사 학교에 징용됐으며, 백인에게 동화되라는 강압적 훈육에 맡겨졌다. - P129

시민으로서 온전한 사회 구성원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존엄성·권리·존경받을만한 자격뿐만 아니라 안전과 물질적 안녕이필요했는데, 이 모두는 안정적인 가정생활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있다고 인식됐다. 즉 노동계급은 사회민주주의를 받아들임으로써,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경제적 생산에 맞서 사회적 재생산의가치를 지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들은 사실상 공장·시스템·기계에 맞서, 가족·조국·생활세계에 투표한 것이었다. 이전 체제의 보호입법과 달리 국가관리 자본주의의 해결책은 계급 타협에서 나왔으며, 민주주의의 전진을 대변했다. 또한 이전의 제도배열과 달리 새로운 제도배열은 적어도 일부에게는(그리고 한동안은) 사회적 재생산을 안정시켰다. 자본주의 중심부에서 다수 인종에 속한 노동자들은 이 새로운 제도배열 덕분에 가정생활을 짓누르는 물질적 압박이 경감됐고, 정치적 통합이 촉진됐다. - P134

두 모델 모두 가족임금을 승인했고,
당연시했으며, 장려했다. 또한 가족과 일에 관한 남성 중심 인식을 제도화함으로써 이성애 규범성, 젠더 이분법, 젠더 위계제를자연 법칙인 양 설파했고, 이와 결부된 불평등을 대부분의 정치적 쟁투의 의제에서 지워버렸다.
이 모든 측면에서 사회민주주의는 사회보호와 시장화의 동맹에 ‘해방‘을 희생시켰다. 심지어는 수십 년간 자본주의의 사회적 모순을 완화하는 와중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국가자본주의 체제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선은 1960년대에 전 지구적으로 신좌파가 들고 일어나 제국주의적 · 젠더적·인종적 배제뿐만 아니라 그 관료적 가부장주의에 해방의 이름으로 맞서자 정치적으로 격동했다. 다음으로 1970년대에 스태그플레이션, ‘생산성 위기‘, 제조업 이윤율 하락이 시상화에 채워진 족쇄를 풀려는 신자유주의의 시도를 북돋자 경제적으로 요동쳤다. ‘해방‘과
‘시장화‘라는 두 항이 손을 잡은 상황에서 희생된 것은 ‘사회보호‘의 항이었다. - P137

신자유주의 지구화를 추진한 이 체제는 국가와 대기업이 사회복지 투자에서 철수함과 동시에 여성을 유급 노동력으로 대거 충원하고, 결국 돌봄 활동을 가족과 공동체에 떠넘겨 외부화하면서 가족과 공동체의 역량을 위축시키도록 조장했다.
그 결과 새롭게 이원화된 사회적 재생산의 조직화가 나타났다. 지불 능력이 있는 이들을 위해서는 사회적 재생산을 상품화하고, 그렇지 못한 이들을 위해서는 이를 사유화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두 번째 범주에 속한 이들은 첫 번째 범주에 속한 이들에게 돌봄 활동을 제공하면서 그 대가로 (저임금을 받는다.
한편 페미니즘적 비판을 몇 방 맞은 데다 탈산업화가 덮친 결과로 가족임금은 완전히 신뢰를 잃어버렸다. 이 사회-민주적 이상은 오늘날 ‘맞벌이 가족‘이라는 신자유주의적 규범에 자리를 내주었다. - P138

반면에 재생산은 후진적인 잔여 영역이자, 해방으로 나아가는 길에서 어떻게든 치워야 할 진보의 장애물로 나타난다.
페미니즘의 아우라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그것 때문에, 이 해방 이데올로기는 새롭게 강도를 더해가는 자본주의 내사회적 모순의 현재 형태를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금융화된 자본주의는 공적 지원을 축소하고 여성을 유급 일자리로 충원할 뿐만 아니라 실질임금을 낮췄고, 이로써 가족을 지탱하려면 각 가정마다 유급 노동에 보내는 시간을 늘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는 돌봄 활동을 타인에게 맡기려는 필사적인 쟁탈전을 부채질했다.  - P142

이 돌봄 간극을 해소하기 위해 현 체제는 가난한 나라에서 부유한 나라로 이주노동자를 수입했다. 과거에는 좀 더 특권을 지닌 여성이 수행하던 재생산·돌봄노동을 떠맡게 된 것은 대개 인종화되고 많은 경우 농촌 출신인 여성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이주민이 자신의 가족·공동체 책무를 다른 이에게, 더 가난한 돌봄 제공자에게 떠넘겨야 하며, 그러면 이 돌봄 제공자 역시같은 선택을 해야 하고, 이는 꼬리에 꼬리를 물어 결국 유례없는전 지구적 ‘돌봄 사슬‘이 등장하게 된다. 돌봄 간극을 해소하기는커녕 최종 결과는 부유한 가족에서 가난한 가족으로,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이 간극을 치환하는 것이다. - P142

사회적 재생산을 둘러싼 경계투쟁은 경제적 생산을 둘러싼(협소하게 정의된 계급투쟁만큼이나 현 정세에서 중심적이다. 무엇보다도 이 투쟁은 금융화된 자본주의의 구조적 역학에 뿌리를 둔 ‘돌봄 위기‘에 대처한다. 지구화를 추구하며 부채를 원동력으로 삼는 이 자본주의는 사회적 연결을 지속시키는 데 쓰일 수있는 역량을 둘러싸고 체계적으로 제살 깎아먹는 짓을 벌인다.
금융화된 자본주의는 ‘맞벌이 가족‘이라는 새로운 이상을 선포함으로써 해방을 지향하는 운동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이 운동은 시장화의 지지자들과 합작하면서, 최근 점점 더원한에 사무쳐 국수주의적 성격마저 보이는 사회보호의 지지자들에 맞서고 있다. - P145

기후정치가 무대의 중심에 등장했다. 기후위기 부정론이 소수나마 잔존하기는 하지만, 다양한 색깔의 정치적 주체들이 녹색으로 전향하고 있다. 새 세대의 젊은 운동가들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치명적 위협이 우리를 덮치고 있다고 외치는 중이다. 이 투사들은 나이 든 세대가 젊은이들의 미래를 도둑질했다고 책망하며, 지구를 구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권리와 책임을부르짖는다. 동시에 탈성장을 주장하는 운동도 힘을 얻고 있다.
소비주의 라이프 스타일이 우리를 나락으로 몰고 가고 있다고확신하는 성장론자들은 생활양식의 변혁을 촉구한다. 또한 북반구와 남반구의 토착민 공동체가 벌이던 투쟁은 최근에 들어서야 생태적이라 인식되기 시작하며 새삼 지지를 늘려가고 있다. - P151

한마디로, 도처에 생태정치가 등장했다. 기후변화는 더 이상환경운동만의 고립된 배타적 소유물이 아니며, 이제는 모든 정치적 주체가 입장을 표명해야 하는 긴급한 사안인 것만 같다. 경쟁하는 숱한 의제들에 포함된 이 주제는 이와 한 쌍을 이루는 대의가 무엇인지에 따라 다양하게 굴절된다. 그 결과는 표면적인합의 이면의 떠들썩한 의견 불일치다. 한편에서는 점점 더 많은사람들이 지구 온난화를 지구 위 뭇 생명에 대한 위협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이러한 각성 과정을 추동하는 사회 세력들의 공통 시각을 공유하지는 않으며, 지구 온난화를 중단시키기 위해 필요한 사회 변화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과학의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의견이 같지만, 정치의 측면에서는(상당한 정도로) 다른 것이다. - P154

실은 ‘의견 일치‘와 ‘불일치‘ 같은 말은 상황을 제대로 포착하기에는 너무 무덤덤한 말이다. 우리 시대의 생태정치는 획기적[시대를 가르는] 위기 안에서, 이 위기의 표식이 선명히 찍힌 채펼쳐진다. 이는 물론 생태 위기이지만, 경제·사회·정치·공중보건의 위기이기도 하다. 즉, 기존 세계관과 지배 엘리트에 대한 신뢰를 뒤흔드는 전반적 위기로서 그 효과가 모든 곳으로 전이되는위기다. 그 결과는 헤게모니의 위기이며, 공적 공간의 야만화다.
정치적 공간은 더 이상 지배적인 상식에 의해 길들여지지 못하며, 이제는 더 나은 정책뿐 아니라 새로운 정치적 프로젝트와 - P154

생활양식을 미친 듯이 찾아 헤매는 공간이 되었다. 이런 심란한분위기는 코비드-19 돌발 이전에도 증대하고 있었지만 팬데믹을 통해 급격히 강화됐으며, 이런 분위기를 무대 삼아 전개될 수밖에 없는 생태정치 안에 스며들어 있다. 따라서 기후 의견 불일치가 실로 우려되는 현상인 이유는, 지구의 운명을 알 수 없게됐기 때문만도 아니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만도 아니다. 정치의 기후 역시 격변에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구를 지키려면 대항헤게모니를 구축해야한다. 달리 말하면, 현재의 시끄러운 의견 불일치를, 광범하게 공감하는 변혁 프로젝트로 나아갈 수 있는 생태정치적 상식으로 바꿔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 P155

물론 이러한 생태정치적 상식이라면서로 충돌하는 관점들의 얽힌 타래를 단번에 끊어내고,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사회에서 바뀌어야 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식별해야만 한다. 즉 기후과학의 권위 있는 발견을, 기후변화를 추동한 사회역사적 힘에 관한 권위 있는 설명과 연결해야만한다.
하지만 진정한 대항헤게모니가 되려면, 이 새로운 생태정치적 상식은 ‘단지 환경적이기만 한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전반적위기를 빠짐없이 다룸으로써 생태적 진단을 다른 중대한 관심사들과 연결해야 한다. 이를테면 생계 불안정과 노동권의 부정,
사회적 재생산에 대한 투자 철수와 돌봄 활동에 대한 오래된 저 - P155

평가, 종족적-인종적-제국주의적 억압과젠더·성지배, 이주민의 박탈·추방·배제, 정치적 권위주의, 정치적 야만성 등과 연결해야 한다. 이런 관심사들은 분명히 기후변화와 얽혀 있으며, 이를 통해 악화된다.
또한 새로운 생태정치적 상식은 환원론적인 ‘생태지상주의ecologism‘를 피해야 한다. 지구 온난화를 전가의 보도처럼 다루기보다는 현 위기의 다른 지류들까지 추동하는 근원적 사회 역학에 대한 위협을 추적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적‘이든 ‘비환경적‘이든 이 위기의 모든 주요 측면을 다뤄야만, 그리고 환경적 측면과 비환경적 측면 사이의 연계를 드러내야만, 우리는 공동 프로젝트를 뒷받침하면서 동시에 이를 효과적으로 추진할 정치적무게를 지닌 대항헤게모니 블록을 기획할 수 있다. - P156

첫째로, 구조적 수준에서는 자본주의에 관한 정확한 이해를전제로, 자본주의가 심층적인 생태적 모순의 터전이며 이 모순이 환경 위기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음을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이 모순은 자본주의의 또 다른 고질병들인 다른 여러 모순과도 얽혀 있으므로, 그 모순들을 생략해서는 제대로 다뤄질 수 없다.
다음으로, 역사적 목록으로 시야를 옮겨, 현재에 이르기까지(그리고 현재까지 포함하여) 자본주의 시스템 발전의 다양한 국면에서 자본주의의 생태적 모순이 취한 특수한 형태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이는 환경만을 쟁점으로 삼는 생태지상주의와 달리, 생태-위기와 생태-투쟁이 또 다른 지류의 위기·투쟁들과 끈질기게 얽혀 있으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들이 완전히 분리된 적이 한 번도 없음을 드러낼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수준으로 관심을 이동하여, 오늘날 생태 - P157

정치는 총체적인 반-시스템 성격을 갖춰야 하며 이를 통해 ‘단지 환경적이기만 한 수준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지구 온난화가 전반적 위기의 다른 긴급한 측면들과 뒤엉켜 있음을 전면에 드러냄으로써, 녹색운동이 환경을 넘어 반자본주의에중심을 둔 더 광범한 대항헤게모니 블록에 참여해야 하며, 그래야 일단 원리상으로 지구를 구해낼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 P158

자칭 탈자본주의 사회들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으로 소비에트연방 같은 ‘현실사회주의‘는 지속 불가능한 농업·공업 군대를 운영했고, 화학 비료로 토지를 오염시켰으며, 이산화탄소를대기에 내뿜었다. 물론 과거의 전자본주의 사회들과 달리 현실사회주의의 행위들은 전혀 ‘자연 친화적‘이지 않은 세계관에 맞춰져 있었고, 그 행동에 형태를 부여한 것은 ‘생산력 발전‘을 누리자는 이데올로기적 약속이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점은 이런세계관도, 이데올로기적 약속도 사회주의에 내재하는 역학에서비롯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 뿌리는 이 사회주의 국가들이 싹을 틔운 지정학적 토양에 있었다. 그 토양이란, 자본주의 사회와 벌이는 경쟁, 이러한 환경이 북돋은 ‘추격‘ 중심 추출주의 사고방식, 이 경우 주된 선호 방식인 화석 연료 기반의 중화학공업 중심 산업화 모델 등에 의해 구조가 형성된 세계체제 였다. - P160

제3장에서 주장한 것처럼, 임금노동을 수행할 인간 존재를형성하고 지속시키는 사회적 재생산을 비임금 노동을 통해 실행하지 않는다면 상품 생산은 꿈도 꿀 수 없다. 또한 제5장에서살펴보겠지만, 이러한 생산은 사적 소유와 계약을 통한 교환을떠받치는 법질서, 억압 기구, 공공재가 없어도 존재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이 장에서 상술할 내용처럼, 원자재와 에너지원 등의 핵심 투입물을 확보할 수 있게 해주는 자연 과정 없이는 이윤도 자본도 있을 수 없다.
자본주의 경제에 꼭 필요한 조건인 이러한 ‘비-경제적‘ 심급들은 자본주의에 외재적인 게 아니라 그 자체로 필수 불가결한요소다. 이들을 삭제한 자본주의관은 이데올로기적이다. 자본주의를 경제와 동등하게 취급한다면,이 시스템의 경제주의적 자기 인식을 앵무새처럼 따라 할 뿐 이를 비판적으로 따져 물을 기회를 놓치게 된다. 그러므로 비판적 시각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를 더욱 폭넓게 이해해야만 한다. - P162

이런 인식의 수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와 그 ‘타자‘ 사이에 수립된 관계(이것이 핵심적인 요소다)를 검토할 수 있는 능력이며, 여기에는 ‘자연‘이라 알려진 핵심적 타자도포함된다. 이 관계는 그 중심에서부터 모순적이며, 위기로 기우는 성향이 있다. 한편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의 경제는 자연에 구성적으로 의존한다. 생산적 투입물을 뽑아낼 수도꼭지로서든, 폐기물을 처분할 하수구로서든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는 두 ‘관할영역‘의 선명한 분할을 만들어낸다. 즉 가치를 발생시키는 창조적 인간 행동의 장으로서 경제를 구축하는 반면에, 스스로를 무한히 보충하며 상품 생산 과정에 쉽게 투입될 수 있는 사물(가치가 없는)의 영역으로서 자연을 구축한다. - P163

이 존재론적인 깊은 골은 자본이 그 둘의 혼합물에 다가갈 경우에는 미친 듯이 타오르는 지옥이 된다. ‘자기 확장하도록 조작된 화폐화된 추상인 자본은 끝없는 축적을 명한다. 그 결과 이윤극대화에 골몰하는 소유주가 ‘자연의 선물‘을 최대한 싸게 징발하는 게 칭찬받을 일이 되고, 그러면서도 사용한 만큼 보충하거나 해를 끼친 만큼 수선할 의무는 모조리 면제받게 된다. 피해는이윤의 동전 반대 면이다. 생태적 재생산 비용을 할인받은 덕에자본주의 생산과 유통에 투입되는 모든 주요 요소는 값이 엄청 - P163

깎인다. 원자재나 에너지, 교통만이 아니라, 노동도 값이 형편없게 매겨진다. 자본이 자연에서 식량을 헐값에 뽑아내면 생활비와 더불어 임금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든 자본가는 절감액을 이윤의 형태로 전유하며, 그 부산물과 함께 살아가야 할(또한 그 때문에 죽어가야 할 이들에게 환경 비용을 전가한다. 여기에는 미래 인간 세대도 포함된다.
즉, 자본은 노동과 관계를 맺을 뿐만 아니라 자연과도 관계를맺는다. 그리고 이 관계는 식인적이고 추출적인 관계다. 더 많은
‘가치‘를 쌓아올리기 위해 더 많은 생물물리학적‘ 부를 먹어 치우면서도 생태적 ‘외부성externalities에 대한 책임은 부정한다는점에서 그렇다. 이와 동시에 필연적으로 쌓아올리는 게 하나 더 - P164

있으니, 그것은 더욱더 산처럼 솟아오르기만 하는 생태-피해다.
인간이 배출한 탄소로 뒤덮인 대기, 기온 급상승, 사라지는 극지방 빙상, 플라스틱 섬이 곳곳을 뒤덮은 바다, 대량 멸종, 종 다양성 감소, 기후변화로 인한 생물체와 병원균의 이동, 치명적 바이러스의 인간-야생동물간 전파 증가, 초강력 폭풍, 심각한 가뭄,
거대 메뚜기 떼, 초대형 산불, 초대형 홍수, 데드존dead zones, 유독물질로 오염된 땅, 호흡 불가능한 공기 등등이 그러한 생태-피해다. 스스로를 무한히 보충할 수는 없는 자연에 체계적으로무임승차할 태세를 갖춘 자본주의 경제는 자신을 가능케 하는바로 그 생태적 조건을 늘 불안정에 빠뜨리려 한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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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화는 자유주의-식민주의체제에서 수탈과 착취의 뚜렷한 분리를 통해 더욱 강화됐다. 이 국면에서 수탈과 착취는 서로다른 지역에 자리를 잡고 다른 인구집단에 배당된 형태로 나타났다. 수탈은 노예화되거나 식민화된 지역과 인구집단에, 착취는 이중으로) 자유로운 지역과 인구집단에 말이다. 하지만 사실이 분할은 그렇게 경계선이 뚜렷하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일부자원 채굴 산업은 식민지 예속민을 임금노동 형태로 고용했다.
한편 자본주의 중심부에 거주하는 피착취 노동자들 가운데에서 - P97

는 극히 일부만 당시 계속 진행 중이던 수탈에서 완전히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외관상 분리된 듯 보임에도 수탈과 착취는 체계적으로 중첩돼 있었다. 가령 값싼 식량, 의복, 광물, 에너지를 공급한 것은 주변부 대중의 수탈이었으며, 이것이 없었다면 식민 본국 산업 노동자의 착취는 수익성이 높지 않았을 것이다. 말하자면 자유주의-식민주의 시기에 수탈과 착취는 단일한 세계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서로 구별되면서도 상호 조율되는 축적 엔진들이었다.
그 다음 시대에 수탈-착취 결합체는 다시금 변천했다. 양차세계대전 사이의 시기에 시작돼 제2차 세계대전 후에 공고해진새로운 국가관리 자본주의 체제는, 수탈과 착취의 분리를 유지하면서도 이를 완화했다.  - P98

말하자면 국가관리 자본주의에서 착취는 더 이상 수탈과 분리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수탈과 착취는 한편으로는인종화된 산업 노동 내부에, 다른 한편으로는 포스트 식민 사회의 시민권을 둘러싼 타협 내부에 접합됐다. 그럼에도 수탈과 착취의 구별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각자의 ‘순수한‘ 변형이 중심부와 주변부에서 끈질기게 지속됐다. 상당수 주민은 여전히 순전한 수탈의 대상이었으며, 그들은 거의 예외 없이 유색인이었다.
다른 이들은 착취‘만‘ 당했으며, 그들은 유럽인이고 ‘백인‘일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또 하나의 새로운 요소가 있었으니, 일부대중이 수탈과 착취를 동시에 당하는 혼종적 사례가 출현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국가관리 자본주의 아래에서 소수에 머물렀지만, 이후 도래할 세상의 전조였다. - P101

여기에서 주범은 부채다. 예를 들면, 국가는 글로벌 금융기관들의 압력 아래, 무방비 대중으로부터 부를 빼앗아 제살 깎아먹는 짓을 벌이려는 투자자와 결탁한다. 실제로 농민이 자산을 박탈당하고 자본주의 주변부에서 대기업의 땅뺏기가 치열해지는것은 대개 부채를 통해서다. 하지만 희생양은 이들만이 아니다.
포스트 식민 사회에 사는 사실상 모든 무자산 대중이 국가부채를 통해 수탈을 당한다. 예컨대 국제 채권자에게 담보를 잡히고
‘구조조정‘의 덫에 갇힌 포스트 식민 국가는 자유화 정책을 지향하지 않을 수 없다. 즉 발전주의를 폐기하고, 대기업 자본과 글로벌 금융에게 부를 이전하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구조조정은 부채를 줄이기는커녕 재조정만 할 뿐이며, 국내총생산(GNP대비 채무상환비율이 천정부지로 치솟게 만든다. 그 결과 수많은 세대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부터 수탈당할(착취까지 당하게 될지여부와는 상관없이) 운명을 타고나도록 한다. - P102

그리하여 착취와 수탈이 교대로 이어진다. 게다가 중심부에서는 (주변부와 마찬가지로) 밑바닥을 향한 경쟁으로 인해 법인세가 낮아지고, 이에 따라 국고가 바닥이 나 더 심한 ‘긴축‘이 필요해지게 되며, 결국 악순환이 벌어진다. 대기업에 계속 선심을 쓴결과, 어렵게 획득한 노동권은 뼈대만 남고 한때 보호받던 노동자는 폭력에 방치된다. 하지만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노동자들 역시 지구 어딘가에서 만들어진 값싼 물품을 구매하는 처지다. 이런 조건 아래에서 소비자가 지출을 지속하려면 소비자 대출을 확대해야 한다. 그리고 살이 피둥피둥 찐 투자자는 피부색과 상관없이 시민-노동자를 놓고 제살 깎아먹는 짓을 벌인다.
그중에서도 특히, 극도로 수탈적인 서브프라임 대출이나 고금 - P103

그리하여 현 체제에서 우리는 착취와 수탈의 새로운 얽힘, 그리고 정치적 주체화의 새로운 논리와 만난다. 종속적 수탈 예속민과 자유로운 피착취 노동자를 확연히 가르던 과거의 분할대신에 연속체가 등장한다. 한쪽 끝에서는 무방비 상태의 피수탈 주체의 무리가 증가하는 반면에, 다른 쪽 끝에서는 착취‘만‘
당하는 주체인 보호받는 시민-노동자 계층이 감소한다. 그리고그 중간에는 새로운 등장인물, 즉 수탈과 착취를 동시에 당하는 시민-노동자가 자리한다. 형식적으로는 자유롭지만 너무도 취약한상태인 이 새 등장인물은 더 이상 주변부 주민이나 인종적 소수집단에 한정되지 않는 표준적 존재가 된다. - P104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공적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한 소수집단 밀집지가 특히 공장 폐쇄의 충격을 받아 일자리를 잃었을뿐만 아니라, 덩달아 세입원도 사라졌다. 이에 따라 학교, 병원, 기본 인프라 보수 등의 예산마저 사라졌고, 결국은 미시건주 플린트나 뉴올리언스의 로우어 나인스 워드" 같은 곳이 붕괴에 이르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차별적 판결과 가혹한 감금, 강제 노동, 사회적으로 용인된 폭력(경찰에 의한 폭력을 비롯한)에휘둘리던 흑인은 대거 징용당하는 신세가 됐다. 이른바 비판적인종이론에서 ‘감옥-산업 복합체라 명명한 곳으로 말이다. 이들은 소량의 크랙 코카인을 타깃으로 삼은 ‘마약과의 전쟁‘ 탓에수용 한계에 도달한 감금 시설에 갇혀 있는데, 수감자들 사이에서는 실업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렇듯 수탈/착취 결합체내의 변동에도 불구하고 처벌을 즐기는 수탈 탐식가인 금융화된 자본주의 안에서 인종주의는 건재하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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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둘 다 가난해도 잘 살아갈 줄 안다는 긍정적인 덕목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러려면 노력, 창의성, 그리고 저렴한옷을 찾아내는 예리한 안목이 필요했다. 존스 바겐 스토어에서 별 소득이 없으면 일요일 아침마다 리빙턴 스트리트와 오처드 스트리트의 작은 가게들을 찾았다. 에식스 공설시장에서 멀지 않은 이 거리에서는 야물커를 쓴 남자들이 물건을 팔았다. 1달러 98센트에 산 운동화, 99센트에 건진 단색 긴팔 티셔츠 같은 것은 자랑해도 좋을 수확이었다.
우리는 함께 세계를 새로이 발명하고 있었다. 뮤리얼은 내게 가능성들로 이뤄진 세계를 열어줬고, 그건 유도라의 서글프고도 우스운 눈빛과 느긋한 웃음이 내게 남긴 유산처럼 느껴졌다. 나는 유도라에게서일을 처리하는 방법, 다이크로서 자부심을 느끼는 방법, 사랑하고 살아가고 이야기하는 법을 배웠다, 그것도 솜씨 좋게. 나는 유도라에게서 배운 것을 뮤리얼과 함께 실현해내고 있었다. - P362

뮤리얼과 함께하던 시절을 떠올리면 우리가 서로에게 주었던 확실성, 폭풍 속 작은 틈새에 함께 깃들어 있던 감각, 마술과 근면한 노력에서 비롯되었던 경이로움이 기억난다. 이 아침이, 이 삶이, 영영 계속될 수 있을것 같던 느낌을 아직도 기억한다. 뮤리얼의 굽은 손가락과 깊은 눈빛과버터 같은 피부의 체취가 기억난다. 바질 향. 우리 사랑의 개방성을 ‘사랑‘이라 불리던 모든 것에 잣대로 들이댔던 것이 기억난다. 훗날 나는 그것이 모든 연인 사이에 오고가는 정당한 요구라는 사실을 알았다.
뮤리얼과 나는 다정하게, 오래, 잘 사랑했지만, 우리의 강렬한 사랑이 언제나 현명하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말을해줄 사람은 없었다.
둘 다 너무 오랫동안 사랑에 굶주려 있었기에 마침내 찾아낸 사랑 - P362

이 전지전능하다고 믿고 싶었다. 우리는 이 사랑이 아직 시작에 불과했던 나의 고통과 분노에 언어를 부여해줄 거라고 믿고 싶었다. 사랑은 뮤리얼이 세상을 마주하고 일자리를 구하게 해줄 수 있을 거라고, 우리가쓰는 글을 해방시켜줄 거라고, 인종주의를 치료하고, 호모포비아를 종식시키고, 사춘기의 여드름까지도 없앨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우리는 음식만 있으면 지금 느끼는 온갖 고통은 물론, 오래 지속된 결핍의아픔까지도 치료될 거라 믿는 굶주린 여자들이었다. - P363

1955년의 그 황금빛 여름, 우리는 바빴고 또 빛으로 가득했다. 평일이면 나는 도서관 일을 했고 뮤리얼은 동네 반대편에 사는 믹과 코딜리어를 위해 침대를 만들었다. 주말이면 함께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중국서예를 공부하고 해변과 바에 놀러 다녔다.
헬렌 언니의 시립대학교 졸업식에서는 조나스 소크가 소아마비 백신을 발표했는데, 헌터고등학교 시절 친구들 중 상당수가 소아마비에서 비롯된 다양한 정도의 장애를 갖고 있었던 탓에 이 소식은 내게 개인적인 의미로 다가왔다.
삶에는 각기 다른 수많은 조각들이 있었다. <제트>는 흑인 시사 잡지를 표방하는 여성지였는데, 나는 드물게 브롱크스에 갈 때마다 헨리형부로부터 잡지를 빌려서는 다운타운까지 돌아오는 내내 지하철에서 열심히 읽은 뒤 내릴 때 슬쩍 옆자리에 두고 왔다. 도서관에서는 내가 시를 쓴다는 이야기를 하자 누군가 그해 선풍적 인기를 끈 베스트셀러인 앤 모로 린드버그의 《바다의 선물》을 언급했다. 그 책과 내 작품은 가리비와 고래만큼이나 딴판이었는데 말이다.  - P364

도서관 책들로 부족한 독서는 4번 애비뉴에 있는 헌책방들에서 꾸준히 책을 거래하며 채웠다. 뮤리얼도 그곳에서 긴 시간을 보냈는데,
스트랜드 서점에서 바이런이나 거트루드 스타인의 헌책을 산 후 일주일 뒤 좀 더 싼값으로 같은 거리에 있는 파인 서점에 팔았다. 그 시절 책은 지금만큼 흔하게 넘쳐나는 것들이 아니었다. 한번은 린드버그 책 특별판을 넘기고 페이퍼백 열 권, 비주류 시인들의 하드커버 시집 두 권,
거기다가 10센트짜리 <매드> 잡지 창간호까지 받아왔던 기억이 난다.
6월, 린이 우리 집에 와서 함께 살게 됐다. 그럴 계획은 아니었지만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뮤리얼과 나는 비와도 조심스레 연락을 이어왔는데, 린은 문제의 새해 전날 파티에서 처음 만났던 비의 전 연인이었다. - P365

그해 가을, 뮤리얼과 나는 뉴스쿨대학교에서 미국 현대시 강의를수강했고 나는 심리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 느끼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때때로 눈앞이 어찌할만큼 심한 두통이 파도처럼 밀어닥쳤다.
또 나는 거의 입을 열지 않았다. 글을 쓰고 꿈을 꾸었지만 직접 묻는말에 답하거나 무언가를 지시할 때 말고는 말을 하지 않았다. 뮤리얼과함께하는 생활이 계속될수록 점점 그 사실을 의식하게 되었다. 게레아와 대화할 때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듣는 사람 역할을 했다. 보통 사람들은 마음껏 이야기할 기회가 잘 없었으며,
나는 상대가 하고픈 말에 진심으로 흥미를 보이며 열심히 듣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런 이야기들을 기억해뒀다가 남몰래 타인의 삶을 곱씹다보면 나자신에 대해 무언가를 알게 될지도 모르니까.)
뮤리얼과 나는 대체로 직관, 그리고 끝맺지 않은 문장으로 소통했다. - P372

그리고 나는 대학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뉴스쿨대학교에서 듣는 강의는 이해하기 어려웠고, 나는 공부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제대로 공부해본 적 없이 고등학교를 마쳤음에도 아무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못했다. 나는 사람은 삼투압처럼 지식을 흡수하며 다른 사람이 하는 말에 면밀히 귀를 기울이는 과정에서 배움을 얻는 거라고 믿으며 대학교에 입학했다. 우리 가족의 집에서 생존하는 방식이 그것이었다.
대학교를 그만둘 때, 나는 대학 생활 1년이면 어지간한 흑인 여성들보다는 많이 공부한 거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하지만 뮤리얼이 뉴욕에 오자 나는 내가 당분간 멕시코로 돌아갈 일이 없음을 알게 되었고,
그러자 학위를 얻고 싶어졌다. 마땅한 기술이 없는 흑인 여성이 구직 과정에서 겪는 현실도 이미 체험해본 터였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기는했지만, 언젠가는 남의 명령을 받지 않는 일을 하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고 또 실행할 수 있는 자유를갖고 싶었다. 화가 날 때 몸을 덜덜 떨지도, 성이 날 때 울지도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게다가 시립대학교는 여전히 학비가 공짜였다. - P373

누가 내게 찬물을 끼얹기라도 한 기분이 된 나는 아무 말 없이 종이만 빤히 들여다보았다. 손을 뻗어 뮤리얼의 손을 잡았다. 서늘한 손은내 손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누가 자신을 나에게 견주며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낀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사랑하는 나의 뮤리얼이라니,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나는 우리의 삶은 상호 탐구라고, 사랑의 힘을 통해 점점 나아지고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책에 담긴 그의 냉정한 서술을 읽고 또 읽으면서 나는 뮤리얼의 눈에 우리의 결합은 점점 나의 성취, 그리고 그 성취 때문에 두드러지는 그의 무능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뮤리얼의공책은 우리의 삶이 공통의 성취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나도, 우리의사랑도, 뮤리얼이 바라본 진실로부터 그를 보호해줄 수 없다고 분명히이야기해주고 있었다. - P380

답답한 공기 속에서 담배연기와 음악, 머리에 바른 포마드 냄새가향이 피어오르듯 뒤섞이는 가운데, 앞 공간에서 서로를 탐색하는 여자들, 그리고 안쪽 댄스플로어에서 피시를 추는 여자들 틈을 지나고 있노라면, 내가 아웃사이더인 것이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과 연관이 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흑인 여성인 내가 지난주에도, 다음 주에도, 이 수많은 얼굴속 나를 닮은 얼굴을 하나도 마주치지 못했을 때는, 내가 바가텔에서 아웃사이더인 것이 내가 흑인이라는 사실과는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걸 지극히 잘 알 수 있었다.
바가텔이라는 제한된 사회는 이 공간을 낳은 더 큰 사회의 부침을그대로 닮아 있었다. 사회성을 발산할 곳도, 함께 어울릴 곳도 없는 외로운 다이크를 상대로 물을 탄 술에 바가지를 씌워 파는 바가텔이 이토록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던 것 역시 그 때문이었다. - P382

평소에 나는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면 이 말이 함축하고 있는의미를 모른 척 흘려보냄으로써 자기방어를 했다. 그런데 도티 도스가폴리가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했다는 사실에 초조했기 때문인지 이 화제를 그냥 흘려보내지 못하고 멋지게 탄 내 피부를 놓고 끝없이 떠들어댔다. 자기 팔을 내 팔 옆에 대본다든지, 옅은 색 금발을 설레설레 저어대며 자신도 햇빛을 받으면 화상을 입는 대신 나처럼 피부가 그을렸으면좋겠다든지, 이렇게 잘 그을리는 피부를 가진 내가 운이 정말 좋다느니하는 말들이었다. 나는 질려버렸고, 그 뒤엔 참을 만큼 참았다는 생각에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성이 났다.
"여태까지 내 자연스러운 검은 피부에 대해 아무 말도 안 하고 무슨수로 참았던 거야, 도티 도스? 대체 어떻게?"
우리가 앉은 테이블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뮤리얼만 이해한다는듯 희미하게 풉 웃었고, 곧 모두가 다행스럽게도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나는 속으로는 여전히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난 그 일을 영영 잊지 않았다. - P387

레즈비언 바를 찾을 때마다 나는 다른 흑인 여성을 마주치길 간절히 바랐지만, 그런 바람을 입 밖에 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흑인 여성들은 이 나라로 온 지 400년이 되도록 서로를 짙은 의혹의 눈으로 바라보도록 학습해왔던 것이다. 동성애자 세계에서도 다를 바 없었다.
흑인 레즈비언은 대부분 벽장 안에 있었는데, 우리는 인종주의 사회에서 흑인으로 살아남느라 마주하는 수많은 다른 직접적인 위협들을 알고 있듯 흑인 공동체가 우리의 위치에 관심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흑인으로 사는 것만으로도, 흑인이자 여성으로 사는 것만으로도,
흑인이자 여성이자 동성애자로 사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흑인 레즈비언들은 대부분 백인 중심 세계에서 흑인이고, 여성이고, 동성애자로살아가면서 벽장 밖으로 나간다는 것이 고작 바가텔에서 춤을 추는 것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자살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런 행동을 할 정도로 어리석은 이상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터프한 모습이어야 했다. 나는 때때로 그들의 세련된 태도, 옷차림새, 매너, 차, 그리고그들이 데리고 다니는 펨들 때문에 기가 죽었다. - P388

내가 바가텔에서 보는 흑인 여성들은 대개 역할 수행에 열을 올렸고, 그 모습을 보면 나는 겁이 났다. 나 자신의 흑인성을 거울로 비춰 보는 것 같아서이기도 했고, 그 가장 속에 담긴 진실 때문이기도 했다.
힘과 통제를 갈구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꼭 내 안의 어떤 부분이 적의 복장을 걸친 채로 백일하에 드러난 모습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들은 나로서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방식으로 터프했다. 실제로는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자기보호 본능이 그들에게 터프하게굴어야 한다고 경고했던 것이다. 백인 중심적으로 왜곡된 미의 기준 때 - P388

문에 ‘‘ 역할을 하는 흑인 여성들은 바가텔에서 인기가 없었다. 또 부치들은 누가 제일 ‘매력적인 펨‘을 팔에 끼고 다니는지를 놓고 끊임없이경쟁했다. 여기서 ‘매력‘을 정의하는 것은 백인 남성들의 기준이었다.
나에게 바가텔에 혼자 가는 건 마치 변칙적인 여성 금지구역으로들어가는 것 같았다. 나는 ‘펌‘ 행세를 할 만큼 귀엽지도 수동적이지도않았으며, ‘부치‘로 통할 만큼 험상궂지도 터프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은내게 가까이 오지 않았다. 전형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은 동성애자 공동체에서조차도 위험할 수 있었다. - P389

펠리시아와 나만 빼고, 바가텔의 흑인 여성들은 몸에 걸칠 수 있는권력의 상징들을 모조리 과시하며 스스로를 보호했다. 라이언이나 트립이 평일에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금요일 밤마다값비싼 옷을 입은 여자들을 대동하거나, 홀로 이곳에 나타날 때는 관심과 존경을 요구했다. 그들은 돈이 많았고, 옷을 빼입었고, 자기관리에능했고, 컨버터블을 몰았으며, 자기 친구들한테 술을 몇 잔씩이나 돌렸고, 대체로 사업에 종사했다.
그러나 그들마저도 때때로 그들을 알아보는 가드 없이는 입장을 거부당했다.
나와 내 친구들은 히피라는 단어가 생기기 전부터 레즈비언 세계에서 히피였다. 우리 중 여럿이 죽거나 실성했고, 우리 중 여럿은 우리가맞서 싸워야 했던 수많은 전선에 의해 왜곡됐다. 그러나 살아남았을 때우리는 강해졌다.
그 시절 내가 빌리지에서 만난 흑인 여성들은 비록 금요일 밤 바가텔의 머릿수로만 존재했을지라도 모두 내 생존에 크건 작건 기여했다. - P389

흑인이건 백인이건 키키건 부치건 펨이건, 우리 모두가 때로는 제각기 다른 비율로 공유하던 유일한 공통점은 우리가 여성이라는 이름아래서 감히 서로 연결되고자 한다는 것,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름을 우리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힘으로 본다는 것이었다.
그 시대로부터 살아남은 우리는 어느 정도 이상한 사람일 수밖에 없었다. 젊은 날의 우리는 그런 용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면서도 여성으로 정체화한 여성으로 스스로를 정의하려 노력했으며, 우리가당면한 경계 너머에 그런 말들을 듣고자 귀를 기울이는 이들이 있다는사실은 까맣게 몰랐다. 그 시대로부터 살아남은 우리는 어느 정도 자부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자부심을 느낄 법도 했다. 기우뚱하게나마 하나가 되어 우리만의 길을 가고자 하는 시도는 양철 호루라기로 디누줄루 전쟁가나 베토벤 소나타를 연주하는 것을 방불케 했으므로. - P390

중요한 건, 우리만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스스로에 관해 느끼는 그 무엇을 정당하게 다룰 수 있건 없건, 연료를 새로채우고 날개를 점검할 수 있는 장소가 있어야만 했다.
결핍과 엄청난 불안정성의 시기에 공간이란, 우리가 애초 그 공간을 필요로 하게 된 본질보다는 의미에 가까워지기도 했다. 때로 후퇴가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카페에 죽치고 앉아 단 두 단어도 쓰지 않은 채자기 작품을 죽어라고 논하는 사람들. 여성 그리고 자신의 여성성을 맹렬히 혐오하는 남성만큼이나 정력적인 레즈비언들. 1950년대 빌리지의 바, 커피숍, 거리는 애써 얻어낸 집단을 거역하길 죽도록 두려워하는비순응주의자들로 넘쳐났다. 결국 이들은 집단의 욕구와 개인의 욕구사이에서 괴리를 겪었다.
우리 중 어떤 이들에게는 특정한 장소가 주어지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공간이, 위로가, 고요가, 미소가, 비판하지 않는 태도가 있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매달렸다. - P391

함께 여성인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달랐다. 함께 레즈비언인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달랐다. 함께 흑인인 것만으로는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달랐다. 함께 흑인 여성인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달랐다. 함께 흑인 레즈비언인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달랐다.


우리는 각자만의 욕구와 목표, 다양한 여러 동맹을 지니고 있었다.
자기보호 본능은 우리가 한가지의 쉬운 정의, 좁은 의미의 하나의 개별 - P391

적 자아에 머무를 여유가 없다고 경고해줬으므로 진정한 나는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각각 바가텔, 헌터대학교, 할렘 업타운, 도서관이라는 공간에 얽매인 채로 성장했다.
우리의 자리란 그 어떤 하나의 특정한 차이에서 오는 안정감이 아닌, 차이라는 집 그 자체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종종 우리는 배움 앞에서 겁쟁이가 된다.) 매일같이 살아남음으로써 얻은힘을 사용하는 법을 배운 것은, 두려움이 반드시 무력함을 가져오는 게아니라는 것을, 우리와 반드시 같지 않아도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것을 알게 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의 일이다.
1950년대 빌리지의 레즈비언 바를 드나들던 흑인 레즈비언들은 서로의 이름을 알았으나 서로의 검은 눈을 들여다보는 일은 거의 없었다.
검은빛을 좇다 보면 스스로의 외로움이, 스스로의 약해진 힘이 거울처럼 비춰 보일 테니까. 우리 중 몇몇은 거울과 이를 외면하는 시선 사이의 간극 속에서 죽어버렸다. - P392

하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무거운 슬픔에 젖어 어둠 속에서 돌아눕는 또 다른 내가 있었다. 문득 부모님 집에서 보낸 마지막 해가 떠올랐다. 어느 날 아침, 학교에 가기 전에 머리를 펴려고 동이 트기도 전에 부모님 침실로 들어갔을 때였다. 어둑한 아침 빛 속에서 내가 소리없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순간나는 화들짝 놀랐다. 그제야 어머니가 한참 전에 잠에서 깨, 내가 적막한 집 안을 돌아다니며 십 대다운 일을 하고 있는 기척에 귀를 기울였으리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우리의 눈이 잠시 마주쳤고, 우리 사이에서영영 사라질 줄 모르는 적대감에 대한 어머니의 고통이 얼마나 무거운것인지를 내가 완연히 느낀 건 그 순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짧고도 날카로우며,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무치던 순간이었다.
나는 침실 문손잡이를 쥐고 서 있었다. 어머니도 나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으나, 문득 첫 월경을 한 날이 떠오르는 바람에 울음이 터질 것같았다. 나는 고데기를 품 안에 숨긴 채 침실을 나가 조용히 문을 닫았다. - P399

나는 점점 다른 곳에 에너지를 집중시키고 싶었다. 뮤리얼과 함께하는 삶이 이전만큼 목가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어도 나는 여전히 그것이 우리 두 사람 모두가 만들고자 헌신할 만큼 소중한 것이라 여겼다.
게다가 우리는 영원을 약속하지 않았던가.
뮤리얼은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얻은 것만 같았다. 더 잘 잤고, 가운데 방 소파에 누워 보내는 시간이 점점 줄었다.
13302오래지 않아 체구가 크고 무뚝뚝한, 체조용 재킷 차림에 꼿꼿이 쳐든 머리에는 어울리지 않는 레이스 달린 간호 모자를 쓴 토니는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다. 일요일 오후면 토니는 직접 만든 블린츠와 차트를 가지고 우리 집으로 왔고, 우리는 그 차트 위에다가 훗날 우리가 함께 만들 여성들의 세계에서 가능해질 상호관계들을 그려보고자 했다. - P400

나는 그 소리를 애써 외면하고 싶은 심정으로, 깨어 있지도 그 자리에 있고 싶지도않은 심정으로, 창밖의 7층 높이의 허공과 옆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행위 사이에서 꼼짝하지 못하고 갇힌 채 덫에 걸린 야생동물처럼 뻣뻣이누워 있었다. 출구가 없었다.
뮤리얼과 함께 소파에 있는 이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고통과 분노는덜했을지도 몰랐다. 질과 나 사이엔 아직 풀리지 않은 앙금이 너무 많았다. 질은 뮤리얼이 택할 수 있는 잔인한 흉기였고,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다른 곳도 아닌 우리 집에서. 그것도 옆방에 내가 누워 있는 사이에 어머니 집에 살던, 눈물 대신 코피를 터뜨리곤 하던 그 시절이후로 느낀 적 없던 새빨간 분노의 너울이 내 의식을 온통 뒤덮었다.
모직 담요를 입에 물고 짓씹으며 죽여버리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죽일상대가 없었다. 나는 절박한 자기보호 본능에 의지해 곧바로 다시 잠들었다. - P401

거리도 하늘도, 모두 분노의 너울로 뒤덮여 있었고, 그 너울의 끄트머리에 링으로 고정된 금속볼트는 내 가슴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었다.
브롱크스의 도서관으로 출근해야 했다. 다가오는 열차 앞으로 내가누군가를, 어쩌면 나 자신을 밀어버릴지도 몰라 두려운 나머지 나는 애스터 플레이스 지하철역 뒷벽으로 다가가 섰다.
모리스 애비뉴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는 내내 눈앞이 시뻘겋고 손은벌벌 떨렸다. 배신당한 고통과 날것의 분노가 주는 고통이 뒤섞였다. 뮤리얼을 향한 분노, 질을 향한 분노, 둘 다 죽여버리지 못한 나 자신을 향한 분노. 열차는 34번가에서 잠시 지연되었다가 다시금 쏜살같이 나아갔다. 내 안에 들끓는 독을 내보내지 못하면 죽을 것만 같았다. 눈앞이 흐려질 정도로 심한 두통이 찾아왔다가 사라지는 사이, 번뇌는 늘지도줄지도 않은 그대로였다. 그랜드 센트럴 지하철역쯤 왔을 때 코피가 쏟아졌다. 누가 티슈를 건네주고 자리까지 양보해주어서, 자리에 앉은 채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았다. 눈꺼풀 안쪽을 스크린 삼아 번득이는학살극의 장면들이 너무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도착할 때까지 애써 눈을 뜨고 버텼다. - P402

그 뒤로 며칠간, 내가 고통 외에 느낀 감각이라고는 마치 용서받을수 없으며 입에도 올릴 수 없는 짓을 저지르기라도 한 것만 같은 죄책감과 수치심뿐이었다. 자해. 고통을 표출하는 쿨하지도 힙하지도 않은 방식. 그 밖에는 그 어떤 열정도 느낄 수 없었다.
뮤리얼과 나는 질에 대해서도, 사고에 대해서도 한 마디도 입 밖에내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조심스럽고 다정했고, 더는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일을 침묵으로 수긍하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다소 구슬펐다.
질은 떠났고, 훗날 전혀 예기치 못했던 어딘가에서 다시 나타나게된다. 질은 이곳에서 그리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고, 중요한 건 오로지그가 상징했던 무언가였다. 지금, 대화가 우리 사이에서 그 무엇보다도중요한 이 순간 뮤리얼도 나도 입을 다물었다. 우리 사이에 있었던 그무언가는 과거의 언어로는 닿을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고, 우리는 둘 다극도로 혼란스럽고 두려운 나머지 새로운 언어를 시도할 수 없었다. - P404

그러나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몸을 밀착하고 복잡한 미뉴에트를추고 있는 두 파트너였다. 둘 중 누구도 춤을 그만둘 수 없었다. 우리 둘다 우리의 작고 빠듯한 춤의 분위기나 스텝을 바꿀 만한 도구를 갖고 있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파괴할 수 있었지만 우리의 고통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이제 우리가 함께 사는 건 심지어 편의를 위해서조차도 아니었고, 다만 우리 둘 다 서로를 놓아줄 수 없으며, 파괴적인 접촉의 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도 못해서일 뿐이었다. 이 관계를 끝내려면, 우리는 그 이유를 질문해야 할 터였다. 그리고 이제 사랑은 충분한 대답이 될 수 없었다.
그즈음 뮤리얼은 6번가와 애비뉴 B에 있는, 니키와 존이 얼마 전부터 세 들어 살기 시작한 지층 아파트에서 종일 머무르다시피 했다. 우리둘만 있는 때면 내 입에서 앙심과 비난이 야생 개구리처럼 튀어나와 반응 없이 시큰둥한 그의 머리 위에서 비처럼 쏟아졌다. - P406

내 심장은 내가 머리로 이해하기를 거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우리가 함께하는 삶은 끝났다. 존이 아니더라도 뮤리얼은 다른 누군가를 만났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심 이런 일이 일어날 리 없다고 끈질기게 생각했고, 꿈을 꾸면 살인과 죽음과 지진의 장면들에 시달렸다. 정신의 불협화음이 뇌를 찢어발기고 있었다. 분명 내가 모든 걸 해결할 수있는, 헤어짐 때문에 느끼는 번뇌에 종지부를 찍고 뮤리얼에게 이성을찾게 해줄 다른 방법이 있을 터였다. 그를 설득해 이 모든 게 불필요하고 말도 안 되는 행동이라고 알려줄 수만 있다면. 거기서부터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 P407

드라이아이스처럼 차가운 분노가 눈꺼풀 속에서 지끈거릴 때도 있었다. 뮤리얼이 며칠씩 집에 들어오지 않을 때면 나는 걷잡을 수 없이휘몰아치는 정서적 태풍에 휩싸인 채 그와 존을 찾아 빌리지의 거리를헤집고 다녔다. 증오. 나는 제정신인 사람이면 감히 뚫고 들어오지 못할만큼 짙은 고통과 분노의 구름에 둘러싸여 동트기 전의 여름 거리를 겨울바람처럼 쏘다녔다. 그렇게 걷고 있으면 아무도 내 쪽으로 다가오지않았다. 그 점이 때로는 아쉬웠다. 누굴 죽일 핑계가 간절했으니까. 머리를 도려내는 것 같던 두통은 사그라들었다. - P408

우리가 알았던 것을 알고 우리가 나눈 것을 나눈 뮤리얼과 내가 함께하지 못한다면, 그 어떤 두 여자가 함께할 수 있겠는가? 이 세상의 그어떤 두 인간이 과연 함께할 수 있을까? 또다시 다른 누군가와 맺어지길 시도하며 느낄 아픔보다는 뮤리얼에게 매달리는 아픔이 더 견딜 만할 것 같았다.
살면서 겪었던 고통과 여태껏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온갖 고통까지 회색 박쥐처럼 내 머리 주변을 날아다녔다. 그것들이 내 눈을 쏘고, 목구멍에, 명치 아래 집을 지었다.
유도라, 유도라, 당신이 나한테 뭐라고 했었더라?
그 무엇도 허투루 쓰지 마, 치카, 고통마저도. 특히 고통을 낭비해서는안돼.
- P409

그해 여름, 모퉁이 술집에서 새어나온 톱밥과 술 냄새가 거리로 스며들고, 흑인 남자들이 나이를 가리지 않고 엎어놓은 두 개의 우유 상자앞에 번갈아 자리 잡고 체스를 두던 8번 애비뉴의 그 구역으로 나는 얼마나 여러 번 발길을 옮겼던가? 모퉁이를 돌아 113번가로 들어간 뒤 공원을 향하는 내 걸음은 급해졌고 아프레케테의 흙을 가지고 놀 생각에손끝이 아릿아릿했다.
그리고 나는 아프레케테를 기억한다, 꿈에서 빠져나온, 언제나 내 배꼽 아래쪽 가장자리를 따라 난 불의 털만큼이나 단단한 실체이던 이. 그는 덤불에서 난 살아 있는 것들을 가져다주었으며 그의 농장으로부터 코코암과 카사바를 가져왔다. 키티가 140번가의 레녹스 애비뉴에 늘어선서인도제도 상점에서, 또는 머리 위로 센트럴 철도 구조물이 지나가는파크 애비뉴와 116번가의 북적거리는 시장 안 푸에르토리코인이 운영하는 보데가에서 사온 마술적인 과일들. - P430

우리는 프랑스산 캐슈 열매만 한 맛 좋은 빨간 피핀 사과를 샀다. 녹색 플랜테인도 사서 껍질을 반만 벗긴 뒤 서로의 몸에 심는다. 위쪽으로활짝 벌린 우리의 허벅지 사이 곱슬곱슬한 어둠 위로 꽃잎 같은 플랜테인 껍질이 커다란 초록 불길의 촉수처럼 놓일 때까지. 작달막하고 달콤한, 붉게 농익은 핑거 바나나, 그것으로 너의 입술을 조심스레 벌린 뒤 껍질 벗겨진 바나나를 포도처럼 짙은 보랏빛 꽃 속에 밀어넣는다.
나는 네 갈색 다리 사이에 누워 너를 안은 채 네 익숙한 숲속을 천천히 혀로 더듬어 느릿느릿 핥고 삼켰고, 네 강인한 몸이 자아내는 깊은 파형과 밀물과 썰물 같은 움직임은 바나나를 으깨어 전류가 흐르는 네 몸의 즙에 뒤섞인 베이지색 크림으로 만들었다. 또 한 번 우리의 몸은 구부린 발가락 끝에서부터 혀끝까지 표면이란 표면은 전부 서로의 뼈대에 맞닿고,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낸 격렬한 리듬에 사로잡힌 채 천둥이휘몰아치는 공간을 가로질러 서로를 몰아가 서로의 혀끝에서 빛이 되어 뚝뚝 떨어졌다. - P431

세상에는 사라지지 않는, 우리가 의지하는 진리들이 있다. 여름철엔 해가 북쪽으로 움직인다는 것, 얼음은 녹으면 작아진다는 것, 휘어진바나나가 더 달다는 것. 아프레케테는 나에게 나의 뿌리를, 우리가 가진여성의 몸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가르쳐주었고, 여태까지 나는 그 정의를 배우기 위한 훈련을 해왔을 따름이었다.
여름이 다가왔을 무렵 아프레케테의 아파트 벽은 옥상에서 전해지는 열기 때문에 늘 따뜻했으며, 창을 통해 불어온 우연한 바람은 창가의식물들을 살랑 흔들고 사랑을 나눈 뒤 휴식 중이던 우리의 땀에 젖어 미끈한 몸을 쓸고 지나갔다. - P432

때로 우리는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비록 수시로혀를 깨물며 침묵해야 한다 해도 태풍의 눈 속에서 그것이 얼마만큼 위안인지 이야기했다. 아프레케테한테는 일곱 살 난 딸이 있었고, 그 애는조지아에 사는 어머니 집에 있었고, 우리는 수많은 꿈을 함께 나눴다.
"그 애는 사랑하고 싶은 그 누구나 사랑할 수 있게 될 거야." 아프레케테는 맹렬히 말하며 럭키 스트라이크 담배에 불을 붙였다. "마찬가지로 그 애는 원하는 그 어디서든 일할 수 있게 될 거야. 그 애 엄마가 눈똑바로 뜨고 지켜볼 테니까."
한번은 흑인 여성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적군의 근거지에서 활동에임하는 데 전념하는 일이 너무 많고 또 잦다고, 이러한 반복되는 전투와활동으로 우리의 정신적 지형은 약탈당했으며 지쳐버렸다고 이야기한적도 있었다. - P432

해는 먼지 낀 유리창을, 아프레케테가 세심하게 가꾼 수많은 초록식물들을 통과해 우리 위로 쏟아졌다.
나는 농익은 아보카도를 하나 찾아 들어서는 초록색 껍질 속에서단단한 씨앗을 품은 과육이 부드럽게 으깨질 때까지 양 손바닥 사이에서 굴렸다. 네 입술이 남긴 입맞춤 속에서 깨어난 나는 과일 껍질 탯줄 가까운 곳을 살짝 베어 물고 옅은 황록색 과즙을 짜내 코코넛 같은 네 갈색배 위로 가느다란 의례의 선을 남겼다. 우리의 살갗에 흥건한 기름과 땀덕분에 과일은 말랑거리고, 나는 과일로 네 허벅지 위와 양 가슴 사이를마사지한다. 마침내 연하디연한 녹색 아보카도의 베일, 내가 네 몸에서 느릿느릿 핥아낸 여신의 배 열매로 이루어진 너울 아래서 네 갈색이 빛처럼 배어나올 때까지. - P433

어느 날 제니는 내 무릎을 베고 있던 고개를 돌려 불편한 기색으로이런 말을 했었다. "있잖아, 난 가끔 엘라가 미친 건지, 멍청한 건지, 아니면 성스러운 건지 모르겠어."
이제 와 생각하면, 여신이 엘라의 입을 통해 무언가 말하고 있었던것 같다. 하지만 잔인무도한 필립 때문에 쇠약해지고 감각을 잃은 엘라는 자신이 하는 말을 믿지 못했고, 우리, 제니와 나는 오만하고도 유치하기 그지없었기에 (우리는 그저 아이에 불과했으니 그러고도 남았겠으나 저 - P434

비질하는 여인의 단조로운 노래에 우리의 생존이 달려 있을 가능성을알지 못했다.
ma나는 내 자매 제니를 잃었다. 내 침묵 때문에, 그 애의 고통과 절망때문에, 우리 둘 모두의 분노, 그리고 어린아이들을 파괴하는 세상의 잔혹함 때문에. 그것도 반항적인 제스처나 희생, 영혼이 새로운 삶을 얻으리란 희망 때문조차 아닌, 그저 이 파괴에 대한 무지와 무심함 때문에나는 그 잔혹함으로부터 도저히 눈을 돌릴 수 없었고, 정신건강에 대한널리 퍼진 한 가지 정의에 따르자면 그 때문에 나는 정신적으로 불건강해졌다. - P435

수영장아프레케테의 집은 모퉁이 근처의 가장 높은 건물에 있었다. 대로 한편에서 모닝사이드 파크의 높다란 절벽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하지절전날 밤, 달이 뜨자 우리는 담요를 챙겨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의 집은꼭대기 층이었고 암묵적인 약속에 따라 옥상은 지붕이 전달하는 열기를 견디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공간이었다. 옥상은 공동주택에 사는 이들의 주된 휴식공간으로 타르 비치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우리는 운동화 신은 발로 옥상 문을 차서 쾅 닫은 뒤, 뜨뜻한 벽돌굴뚝과 건물 전면의 높은 난간사이 공간에 담요를 펼쳤다. 유황 가로등이 등장해 뉴욕의 길거리에서 나무와 그림자를 지워버리기 이전이었으므로 거리의 가로등 불빛은 이렇게 높은 곳까지 닿지 못하고 희미해졌다. 길 건너편 공원에서 우뚝 솟아 뚜렷한 윤곽을 드러내는 노출된 현무암과 대리석 절벽이 묘하게 가깝고 또 도발적으로 보였다. - P435

서로의 축축한 가슴에 파고들어 달을, 영광을, 사랑을 나눴다. 거리로부터 뿜어져 나온 유령처럼 흐릿한 가로등 불빛과 보름달이 뿌리는달콤하고도 차디찬 은빛은 밀물의 바다처럼 성스러운, 땀에 젖어 미끈거리는 우리의 검은 몸을 너나없이 거울처럼 비추었다.
비스듬히 쳐든 그의 허벅지 위로 달이 떴던 것이, 빛이 어룽진 처녀의 숲을 이루는 곱슬곱슬한 덤불 속에 반사된 빛을 내 혀가 담았던 것이 기억난다. 나는 네 커다란 홍채 한가운데에 박힌 새하얀 동공 같던 보름달이 기억난다.
달이 사라지고, 내 위로 몸을 굴려 올라오는 네 눈이 새까매지고, 나는달의 은빛 광채가 내 눈꺼풀을 더듬는 너의 젖은 혀와 뒤섞이는 것을 느꼈다.
아프레케테, 아프레케테, 우리가 여자의 힘으로 감싸여 잠들 수 있는그 교차로까지 나를 몰아가줘. 우리의 몸이 맞닿는 소리는 모든 낯선 이들과 자매들의 기도이기에, 교차로마다 버려져 폐기된 악마들은 우리의 여정을 쫓아오지 못할 거야, - P436

7월 몇 주간 아프레케테를 만나지 못했고, 그의 집에는 전화가 없었으므로 나는 업타운으로 그를 찾아갔다. 문은 잠겨 있었고 층계참에서소리를 질러 불러보았지만 옥상에도 아무도 없었다.
일주일 뒤 포니 스테이블 바텐더 미지가 아프레케테가 주었다는 쪽지를 내게 전했다. 9월 내내 애틀랜타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으며, 한동안 어머니와 딸을 보러 간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한데 모이면 뇌우가 되어 터지는 요소들처럼 짧은 시간이지만 흠뻑 젖은 채 하나가 되어 에너지를 교환하고 전류를 나누었다. 그뒤에는 헤어지고, 지나치고, 개선되었고, 더 나은 교환을 할 수 있도록스스로를 다시금 빚어냈다.
그 뒤 나는 다시는 아프레케테를 만나지 못했으나, 그의 흔적은 반향과 힘을 담은 정서적인 타투로서 내 삶에 남아 있다. - P437

내가 사랑한 여자들은 저마다 나에게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나 자신의 일부면서도 나와는 별개인, 너무나도 다른 나머지 그를 알아보기위해서 자라나고 뻗어나가야 했던 귀중한 일부분을 내가 사랑했던 자리에. 그렇게 자라다가 우리는 헤어짐에 이르렀다. 모든 것이 시작되는자리다. 또 다른 만남.
1년 뒤, 나는 사서 학교를 졸업했다. 나 다음으로 이곳을 찾을, 쉼터가 필요할 그 누군가를 위해 현관문을 잠그지 않고 집을 떠난 뒤 마지막으로 7번가를 걸으며 1960년의 첫 여름이 저물었다. 욕실 변기와 욕조 사이의 벽에는 미완성의 시 네 편을 끄적거려두었고, 나머지 시들은창문의 세로 기둥에, 꽃무늬 리놀륨 아래 나무 바닥에 쓰인 채 유령처럼희미하게 남은 다채로운 음식 냄새들로 뒤덮이고 있었다.
이 공간이라는 껍데기가 7년간 나의 집이었다. 죽은 세포가 새로운세포로 교체되며 인간의 몸이 완전히 재생되는 데 필요한 시간인 7년.
그리고 그 7년 동안 내 삶은 점점 더 여성들의 터와 다리가 되어갔다.
자미. - P439

자미, 친구이자 연인으로서 함께 일하는 여성들을 부르는 캐리아쿠식이름.

우리는 그 전통을 이어간다. 웨스트체스터의 새 아파트에 가져갈적십자 소금 몇 상자와 옥수숫대로 만든 새 빗자루를 산다. 새로운 일자리, 새 집, 오래된 삶을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는 새 생활. 내게 본질을불어넣어준 여자들을 언어로써 다시금 창조하면서.

마 리즈, 들로이스, 루이즈 브리스코, 안니 이모, 린다, 제너비브. 천둥이자 하늘이고 태양인, 우리 모두의 위대한 어머니인 마울리사. 그리고 그의 가장 어린 딸이자, 장난기 많은 언어학자, 변신가, 최고의 사랑인, 우리모두가 되어야 하는 모습이 아프레케테 - P440

이 이름, 자아, 얼굴들이 노동하기 전의 옥수수처럼 나를 먹여 살렸다. 나는 나의 일부인 그들을 살아가고, 주요한 핵심이자 우리 모두의삶을 예지하는 시각인 시를 쓸 때 말을 고르는 것과 똑같이 깊은 관심을담아 이 말을 고른다.


한때 집은 무척이나 먼 곳, 단 한 번도 가지 못한, 오로지 어머니의입을 통해서만 알던 장소였다. 그곳이 더는 내 집이 아니게 된 뒤에야나는 캐리아쿠의 위도를 알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다른 여성들과 눕는 일이 내 어머니의 혈통을 타고 전해지는 일이라고 한다. - P440

감사의 글


삶을 가능케 한 모든 이들에게 진 빚을 잊지 않고 살고 싶다.
이 책이 형태를 갖출 수 있도록 꿈, 신화, 이야기를 나누어준 여성들각각에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진심으로 감사한다.
특히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이들이 있다.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용기, 그리고 대답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준 바버라 스미스. 제3의귀로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준 체리 모라가. 그리고 두 사람이 편집과정에서 보여준 배짱에도 감사한다. 내가 적절한 책을 들고 두 번째 도전을 했을 때 그 자리에 있어준 진 밀러. 섬사람의 귀, 초록 바나나,  - P441

그리고 세밀하고 날렵한 연필을 지닌 미셸 클리프 캐리아쿠를 방문해 이야기를 전해준 도널드 힐. 내 역사가 악몽을 넘어 미래를 위한 구조물이될 수 있도록 이끌어준 블랜치 쿡.모계보를 통해 나와 연결된 클레어 코스. 언어가 일치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그럴 것이라믿었던 에이드리언 리치 내 나날을 이어 붙여 노래들을 만들어준 이들.
차이 중의 차이를 처음 만들어준 버니스 굿맨. 모든 것을 참고 견디고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프랜시스 클레이턴. 영원에 이름을 붙여준 매리 - P441

언 메이슨. 내가 단순함을 유지하는 걸 잊지 않게 해준 베벌리 스미스.
나의 전투와 생존에 있어 최초의 원칙을 알려준 린다 벨마 로드. 내가솔직하고 현재에 걸맞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해준 엘리자베스 로드롤린스와 조너선 로드 롤린스, 마 마리아, 마 리즈, 안니 이모, 시스터 루를비롯해 내 꿈을 교정해준 벨마 집안의 여성들, 그리고 아직은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 밖의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 P442

옮긴이의 글


1934년 그라나다 출신의 미국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오드리 로드는 평생 인종주의와 성차별, 동성애혐오와 싸워온 흑인 페미니스트이론가이자 활동가, 그리고 시인이다. 1968년 첫 시집 《최초의 도시들The First Cities》을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시인으로서의 명성을 얻었으나그가 본격적으로 더 많은 독자들에게 이름을 알리고 흑인 페미니스트로서 활약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에 와서다. ‘레즈비언이자, 어머니이자, 전사이자, 시인‘ 등의 수많은 이름으로 스스로를 정의했던 로드는중첩되는 정체성이 빚어내는 다채로운 삶의 형태를 긍정하고 ‘차이를가로질러 함께 손을 맞잡을 때 생기는 다양성의 힘을 운동의 동력으로삼은, 훗날 교차성intersectionality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된 페미니즘 이론을 일찍이 주장하고 실천한 사람이기도 하다. - P443

때로 우리는 이런 인물들을 처음부터 완전하게 형성된 모습으로 상상한다. 마치 서너 살의 어린 오드리 로드가 진짜가 되기를 염원하며 밀가루 점토로 빚고 색칠하고 향을 입혀 만든 사람의 형상처럼 (4장), 처음부터 인상적이고 위대한 모습으로 나타나 1970년대 페미니즘에 목소리를 내며 줄곧 흐름을 주도한 사람처럼 말이다. 《자미》에는 그가 우리가 익히 아는 사람이 되기 전의 모습들이 담겨 있다. 그는 뉴욕에 사는서인도제도 이민자 가정의 막내였고, 두꺼운 안경을 통해 세상을 보는아이였으며, 나아가 위험한 저임금 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젊은 여성이자, 1950년대 뉴욕의 레즈비언 신을 누비며 환대에 반드시 따라오는차별을 감지하던, 갓 정체화한 레즈비언이기도 했다. 《자미》는 이 기념비적인 인물이 우리가 아는 모습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다. 또한 그가 어떻게 시인이 되었는가를 설명하는 대신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 P444

《자미>의 원서 표지에는 자서전이나 회고록 대신 ‘자전신화 biomythography‘라는 생경한 설명이 붙어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회고록은 대개가 한 사람의 성장 과정을 선형적 시간 순서대로 다루며 삶의 특정한 한 국면에 초점을 맞추는 서사다. 이 책 역시 어린 시절부터젊은 여성으로 성장하기까지를 시간 순서대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회고록의 플롯을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그가 이 서사의 시작, 즉 자신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향신료 가득한 서인도제도의 섬에서 서로를사랑했던 여성들이다. - P444

<자미》가 출간된 것은 오드리 로드가 이미 퀴어 페미니스트 지식인이자 활동가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던 1982년이지만, 《자미》의 서사 속에서는 젊은 오드리가 곧 시인으로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거나, 이후 그가 평생을 헌신한 투쟁의 장에 뛰어들었다는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다. 그 대신 1960년대의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아프리케테와함께 이 책 역시 끝을 맺는다.
그러니까 오드리 로드라는 존재 역시 한 가지 결정적인 정체성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학교를 시작으로 경험하는 첫 불편한 자각에서부터, 대학을 마치지 못한 데다가 타이핑을 할 줄 모르는 흑인 여성이 현실적으로 마주하던 일자리의 제약, 매카시즘이 득세하던 1950년대 미국에서 젊은 급진주의자로 각성한 경험, 그리고 그리니치빌리지의 레즈비언 바의 생생하고 풍요로운 풍경들이 차례차례 등장하고, 시와 꿈, 다호메와 아보메의 여신들, 기억인 것 같기도 하고 상상인 것 같기도 한 짤막한 단편들이 그 사이에 끼어든다. - P445

한편, 《자미》의 서사는 어린 시절의 어머니 또는 그의 근원을 이루는 신화에 도사린 여성들을 시작으로 삶 전반에 흩뿌려져 있던 다양한여성들과의 관계를 통해 앞으로 나아간다. 에필로그를 여는 첫 문장처럼, 오드리 로드가 사랑했던 여자들은 그에게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이런 관계들은 점을 차례차례 이어 그림을 그려내듯 끊김 없이 유연한 선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그려간 그림들이 겹쳐지고 또 짙어지면서, 훗날우리가 알게 되는 오드리 로드의 모습이 어렴풋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오드리 로드가 스스로에게 써주고 싶어 했던 신화는 그런 식으로이루어진 것이었으리라. 《자미》는 우리가 알고자 하는 사람을 선명하고 단호한 선으로 그려내지 않는다. 때로는 망설이고, 때로는 대담하게,
그때그때 수선해 입는 옷을 걸친 채 춤을 추고(13장), 낯선 소리와 냄새를 들이마시며 어두운 피부를 자랑스레 드러낸 채로(21장), 자신을 끊임없이 바깥과 연결하고자 시도하는 모험이다. - P445

오드리 로드는 <성애의 발견>에서 "나에게 좋은 시를 쓰는 것과, 내가 사랑하는 여성의 몸에 쏟아지는 햇살 속으로 걸어 들어가 함께하는것은 아무 차이가 없다"고 썼다(《시스터 아웃사이더》). 그에게 에로틱한것이란 여성에게 내재된 고유의 힘이며, 외부의 제약 없이 삶을 꾸려가기 위한 자원이다.
《자미》를 읽고 우리말로 옮기는 동안 젊은 흑인 레즈비언 여성으로서의 오드리 로드를 만나볼 수 있다는 기대로 설렜다. 여성들과의 에로틱한 관계, 그리고 레즈비언 여성들의 연대에 대한 기록은 《자》라는 자전신화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오드리 로드의 생각과 시론, 그리고 그가 살아온 용감하고도 위태로운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향신료를빻는 절구의 리드미컬한 움직임 속에서 (11장), 자신 안에서 침묵하던 에로틱한 힘을 끄집어내고 나아가 서로에게 그 힘을 불어넣는 과정을, 또여성을 향한 깊은 사랑과 육체적 마주침을 통해 나눈 강렬한 기쁨을 함께 읽을 수 있어서 기쁘다. 《자미》를 통해 우리가 다시 한번 힘을 주고받을 수 있기를, 외로움과 차별에 저항하는 새로운 방법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뿐만 아니라 사랑을 통해 스스로를 발견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미>가 영감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 P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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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적으로서 수탈: 경제적 논의


‘수탈‘이 자본주의에 구조를 부여하는 요소라는 정의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해보자. 앞 장에서 본 대로, 수탈은 다른 수단을 통한 축적이다. 즉, 착취와는 다른 방식을 통한 축적이다. 자본이 임금을 대가로 ‘노동력‘을 구매하는 계약 관계 대신, 수탈은인간 역량과 자연 자원을 징발하여 자본 확장 회로에 징용함으로써 작동한다. 징발은 신세계 노예제에서 그랬듯이 뻔뻔스럽고폭력적일 수도 있고, 우리 시대의 약탈적 대출과 담보물 압류에서 그렇듯이 상거래라는 베일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
또 수탈당하는 주체는 자본주의 주변부의 농촌이나 토착민공동체일 수도 있고, 자본주의 중심부의 종속 집단이나 하위 집단 구성원일 수도 있다. 한때 수탈을 당했더라도 운이 좋으면 착취받는 프롤레타리아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면 빈민, 슬럼거주자, 물납 소작인sharecropper˝, ‘원주민, 노예, 임금 계약 바깥에서 계속 수탈당하는 주체로 끝날 수도 있다. 징발된 자산은노동, 토지, 가축, 도구, 광산이나 에너지 매장지일 수도 있지만, 또한 인간, 인간의 성적·생식적 역량, 자녀와 장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핵심은 징발된 역량들이 자본의 핵심 특징인 가치 확장 과정에 흡수된다는 것이다. 단순한 도둑질이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자본주의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있었던 강탈 같은 행위와는 달리, 내가 말하는 수탈은 징발과 징용을 통해 축적에흡수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수탈은 다수의 죄악을 포함하며, 그중 대다수는인종적 억압과 강한 상관성이 있다. 그 관련성은 영토 정복, 합병, 노예화, 강제 노동, 아동 유괴, 조직적 강간처럼 자본주의 초기 역사(물론 지금도 계속되지만)와 광범하게 결합된 행위들에서는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대적인‘ 형태(이를테면인종적 억압과도 연관된 수감 노동, 초국적 성매매, 대기업의 땅뺏기, 약탈적 대출에 따른 압류 등)를 취하기도 하며, 현대 제국주의와 함께하기도 한다. p85, 86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1947~)

미국의 정치철학자, 사회이론가. 뉴욕 뉴스쿨의 철학·정치사회이론 담당 교수로 있다. 독일 비판이론의 영향을 크게 받은 프레이저는 위르겐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을 계급과 젠더의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을펼쳤다. 국제적으로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 첫 번째 계기는 신자유주의가 확고한 지배 이념으로 자리 잡은 1990년대에 착수한 ‘정의‘론 작업이었다. 그는 ‘분배‘에만 초점을 맞추는 존 롤스식 정의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1970년대 이후 급속히 발전한 여성운동, 흑인운동, 성소수자운동 등이 제기하는 또 다른 정의관, 즉 문화적 정체성의 ‘인정‘을 중심에 둔 정의관을 적극수용해 이 둘의 공존과 상호작용을 중심에 두는 새로운 정의론을 제시했다.
이러한 그의 정의론은 악셀 호네트와 벌인 논쟁의 기록 《분배냐, 인정이냐?》에 잘 나타나 있다.
이후 프레이저의 정치사회이론은 부단히 진화했다. 그는 정의의 또 다른 축으로서, 분배와 인정의 측면에서 불의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치적 ‘대표‘의 측면에서 만인의 동등한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삼차원적 정의론을 발전시켰다. 또한 지구화 시대에 정치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초국적인 공론장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구화 시대의 정의》는 그의 이러한 정의론 작업을 결산한 저작이다.
경제 위기와 극우 포퓰리즘의 창궐, 기후 급변 등으로 어지러웠던 2010년대에 프레이저는 이제까지의 이론적 토대 위에서 다른 어떤 사회이론가보다더 맹렬히 현실에 개입하면서, 신자유주의 이후의 대안을 찾는 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영감을 주었다. 그는 정체성 정치만 강조하며 분배 요구를 등한시한 사회운동들을 비판했고, 최근 극우 포퓰리즘이 상당수 대중에게 대안으로 선택받는 근본 원인이 여기에 있음을 통렬히 지적했다. 특히 페미니즘의대중적 확산에도 불구하고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비판적 지지‘ 식의 낡은 틀

에 갇혀 있는 여성운동을 향해 자기 성찰과 노선 전환을 촉구했다. 그 결실이《전진하는 페미니즘> <99% 페미니즘 선언》(공저) 같은 저작들이다.
또한 그는 무엇보다도 사회운동과 좌파정치 전반이 환골탈태해야 함을 역설했다. 2020년 미국 대선 직전에 펴낸 팸플릿 《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은》에서 그는, ‘진보적 신자유주의‘는 극우 포퓰리즘이 발호하도록 만든원홍이기에 결코 대안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즉, 극우 포퓰리즘에 맞설 수 있는 것은 오직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의 동맹에 바탕을 둔 ‘진보적 포퓰리즘‘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노동운동, 여성운동, 생태운동, 흑인운동 등이 굳건한 동맹을 발전시켜야 할 근거를 ‘자본주의‘라는 토대 자체에서 찾아내려 한다. 다만, 이 ‘자본주의‘는 더 이상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이이야기하던 그 ‘자본주의‘와 같지 않다. 자본- 임금노동관계만으로 환원되지않는, 더 복잡한 제도적 실체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책 《좌파의 길: 식인자본주의에 반대한다》에서 드디어 프레이저의 새로운 자본주의관은 그 전모를 드러낸다.

장석준

사회학을 공부했고 진보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다. 진보신당 부대표, 정의당 부설 정의정책연구소 부소장을 역임했으며, 출판&연구공동체 산현재의 기획위원이다. 저서로 《근대의 가을》 《장석준의 적록서재><세계 진보정당 운동사》《사회주의》《신자유주의의 탄생》《능력주의, 가장 한국적인 계급 지도/유령들의 패자부활전》(공저) 등이 있고, 《길드 사회주의><G.D. H. 콜의 산업민주주의》《유럽민중사》《안토니오 그람시 옥중수고이전》(공역)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굳이 지금이 혼란기라고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독자들은 난마처럼 서로 얽힌 미래의 위협과 현재의참사에 이미 익숙해져 있으며, 실은 이로 인해 이미 요동치고 있다. 부채는 무겁게 어깨를 짓누르고, 노동은 불안정하며, 생계는위협받고 있다. 공공 서비스는 퇴보하고, 인프라는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며, 국경 감시는 더욱 가혹해진다. 거기에다 인종화된폭력, 생명을 위협하는 팬데믹, 극단적인 기후까지 엄습한다. 그리고 그 해법을 상상하거나 실행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정치의 기능 장애가 이 모두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 중에서 처음듣는 이야기는 하나도 없으므로 여기에서 굳이 장황하게 부연할 필요는 없겠다. - P15

‘식인[동족포식]cannibalism‘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가장 익숙하고도 구체적인 의미는 ‘인간이 다른 인간의 신체를 먹는 의례‘
라는 것이다. 기나긴 인종주의의 역사에서 이 말은 아프리카 흑인들을 묘사하는 데 주로 쓰였는데, 실은 이들이야말로 오히려유럽 제국주의의 식인적 약탈의 희생자들이었다. 따라서 이 책에서 ‘식인종‘을 자본가 계급을 묘사하는 말로 다시 불러내면서우리는 얼마간 복수의 쾌감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은 바로 이 집단이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그러나 이 단어에는 좀 더 추상적인 의미도 있는데, 여기에는우리 사회를 둘러싼 더 심층적인 진실이 담겨 있다. ‘cannibal-ize"라는 동사에는 ‘어떤 설비나 사업에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 - P16

하는 부품이나 부서를 떼어내 다른 설비나 사업을 만들거나 유지하는 데 쓴다‘는 파생적 의미도 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는 자본주의 경제가 시스템 내부의 ‘비-경제적‘ 주변 영역과 맺는 관계와 상당히 유사하다. 그 관계란, 자본주의 경제가 제 배를채우기 위해 가족과 공동체, 생활터전, 생태계의 피와 살을 다빨아먹어 버리는 현실이다.
게다가 특별한 천문학적 의미도 있다. 우주 공간의 물체가 중력을 통해 다른 물체의 상당부분을 흡수할 때에도 ‘cannibal-ize‘라는 동사를 쓴다. 역시 이 책에서 다루겠지만, 이는 자본이세계체제의 주변부에서 천연자원과 사회적 부를 끌어다 자기궤도에 가둬놓는 과정을 적절히 묘사한다. 이것은 결국 우로보로스ouroboros, 즉 제 꼬리를 먹으며 자멸하는 셈이다. 역시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이는 바로 자신을 지탱해주는 사회·정치·자연의 토대(우리의 토대이기도 한)를 먹어 치우느라 여념이 없는 이시스템에 꼭 들어맞는 이미지다. - P17

이 모두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식인‘이라는 은유가 자본주의 사회에 관한 분석을 발전시킬 여러 통로를 열어준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먹이 떼를 향해 달려드는 포식자 무리를제도화한 것‘으로서 사회를 바라보게 된다. 여기에서 중심 메뉴는 우리다.
‘자본주의capitalism‘ 역시 의미를 분명히 해야 할 단어다. 보통 이 말은 사적 소유, 시장 교환, 임금노동, 그리고 이윤을 위한생산에 바탕을 둔 경제 시스템을 일컫는 데 쓰인다. 그러나 이정의는 너무나 협소하여, 시스템의 참된 특성을 드러내기는커녕 오히려 모호하게 만든다. 이 책에서는 ‘자본주의‘라는 용어가
‘더 커다란 무엇‘을 가리키는 말일 때 좀 더 쓸모 있음을 주장하려 한다. ‘더 커다란 무엇‘이란, 이윤 주도 경제가 그 작동에 필요한 ‘경제 외적 기둥‘들을 포식하도록 북돋는 사회societal 질서를뜻한다. 자연과 예속민subjects으로부터 수탈한 부富, 오랫동안 - P18

가치를 무시당해온 다양한 형태의 돌봄 활동, 자본이 필요로 하면서도 동시에 감축하려 드는 공공재와 공적 권력public power,
노동 대중의 열의와 창의력 등이 그런 경제 외적 기둥에 해당한다. 이런 형태의 부는 기업 회계장부에 표시되는 이윤과 수익의필수 전제조건이지만, 정작 회계장부에는 표시되지 않는다. 축적의 핵심 기반인 이런 형태의 부 역시 자본주의 질서의 구성적costitutive 요소다.
따라서 이 책에서 ‘자본주의‘는 경제의 한 유형만이 아니라 사회의 한 유형을 가리킨다. 투자자와 소유주를 위해 화폐화된 가치를 축적하는 공식적으로 ‘경제‘라 지정된 영역을 인가해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화되지 않은 모든 부를 먹어 치우는 사회 말이다. 이러한 사회는 그 부를 접시에 담아 대기업 소유 계급에게 대접한다. 또한 이 사회는 그들이 우리의 터전인 지구와우리의 창조적 역량에서 먹을 것을 뽑아내도록 해준다. 저들에게는 자신들이 소비한 것을 보충하거나 훼손한 것을 원래대로고쳐놓을 책임은 애당초 면제돼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온갖 곤경이 생겨난다. 제 꼬리를 먹는 우로보로스처럼, 자본주의 사회는 자신의 가장 중요한 부분마저 먹어 치울 태세다.  - P19

즉, 현 위기를 발생시킨 책임은 ‘식인 자본주의‘ 시스템에 있다. 현재의 위기는 다양한 폭식증의 발작이 한데 모인 예외적유형의 위기다. 수십 년에 걸친 금융화로 인해 지금 우리가 직면한 위기는, ‘단지‘ 극단적인 불평등이나 저임금 불안정 노동의 위기만이 아니다. ‘단지‘ 돌봄이나 사회적 재생산의 위기만도 아니고, 이민과 인종화된 폭력의 위기만도 아니다. 또한 뜨거워진 지구가 치명적 전염병을 토해내는 ‘단순한‘ 생태적 위기만도 아니고, 무너져가는 인프라와 군사주의 증대, 독재자의 만
‘연을 특징으로 하는 ‘오로지‘ 정치적인 위기만도 아니다. 아니,
이 위기는 ‘더 나쁜 무엇‘이다. 이 모든 재난이 한데 모여 서로를악화시키며 우리를 집어삼키겠다고 위협하는, 사회질서 전체의 전반적 위기다. - P20

 이를 ‘사회주의‘라 부르는 아니면 다른 뭐라 부르든, 우리가추구하는 대안은 시스템의 경제 영역 재편만을 목표로 삼을 수는 없다. 경제 영역이 현재 제살 깎아먹기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저 모든 형태의 부가 경제 영역과 맺는 관계 역시 재편해야만 한다. 즉 생산과 재생산의 관계, 사적 권력과 공적 권력의 관계, 인간 사회와 비인간 자연의 관계를 처음부터 다시 구축해야한다.
이것이 무리한 요구라 느낄지도 모르지만, 여기에 최선의 희망이 있다. 오직 더 커다란 대안을 사고해야만, 우리 모두를 잡아먹으려는 식인 자본주의의 끝없는 식욕을 제압하기 위해 싸울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 - P23

요점은, 우리가 혹독하기 이를 데 없는 자본주의 위기 속에살고 있지만 그 위기를 명쾌히 정리해주는 비판이론을 갖추지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해방의 해법으로 인도할 이론이 없다는 건 더 말할 것도 없다. 분명 오늘날의 위기는 우리가 물려받은 표준적인 이론 모델에는 들어맞지 않는다. 현 위기는 금융 등의 공식 경제뿐만 아니라 지구 온난화, ‘돌봄 결핍‘, 광범위한 공적 권력의 유명무실화 같은 ‘비경제적‘ 현상까지 포괄하는 다차원적 위기다. 하지만 우리가 물려받은 위기 이론은 경제 측면에만 집중함으로써 이를 다른 측면들과 분리하고 특권화하는 경향이 있다. - P29

나는 이런 개념의 하나로 ‘식인 자본주의‘를 주창한다. 먼저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Capital》 제1권이 제시하는 핵심 주장의 이면에 숨은 내용을 물으면서 이 개념을 소개하고자 한다. <자본>은 일반적인 개념들의 재료 면에서 풍부한 내용을 제공하며, 원칙적으로는 내가 위에서 언급한 광범한 관심들에도 열려 있다.
하지만 젠더, 인종, 생태계, 정치권력을 자본주의 사회 내부 불평등의 구조적 축으로서 체계적으로 사고하지는 않는다. 물론 사회 투쟁의 관심사로서나 그 전제로서도 마찬가지다. - P30

하나, 상품 생산에서사회적 재생산으로


인식의 전환에서 한 가지 핵심적인 것은 ‘생산‘에서 ‘사회적 재생산‘으로 나아가는 전환이다. ‘사회적 재생산‘이란, 인간 존재와 사회적 유대를 생산하고 지탱하는 상호작용, 필수재공급, 돌봄 제공의 형태들을 뜻한다. ‘돌봄‘, ‘감정노동‘, ‘주체화subjectivation‘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는 이러한 활동은 자본주의의 인간 주체들을 형성하고, 그들을 육체를 지닌 자연적 존재로지속시킨다. 또한 그들을 사회적 존재로 구성하고 그들의 활동반경을 이루는 아비투스habitus‘ 와 사회-윤리적 내용 혹은 인륜성을 형성한다. - P40

게다가 사회적 재생산과 상품 생산의 분리는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중심을 이룬다. 실로 이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작품이다. 많은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이 강조한 것처럼, 이 구별은 심각하게 젠더화되어 있다. 재생산은 여성과 결합되고, 생산은 남성과 결합되는 식으로 말이다. 역사적으로 ‘생산적인 유급 일자리와 무급 ‘재생산‘ 노동의 분할은 여성 종속의 근대 자본주의적형태를 뒷받침했다. 소유주와 노동자의 분할과 마찬가지로 이분할 역시 이전 세계의 해체에 바탕을 둔다. 파괴된 이전 세계에서는, 여성의 일이 비록 남성의 일과 구별되기는 했지만 그래도눈에 잘 띄었고 공적으로 인정받았으며 사회적 우주의 불가결한 부분을 이루었다.  - P42

둘, 경제에서 생태로


이제 우리는 또 다른 감춰진 장소로 이끄는, 중대한 두번째 인식의 전환을 고찰해야 한다. 이 전환은 생태사회주의 사 - P43

상가들의 저작에 가장 훌륭하게 담겨 있는데, 요즘 이들은 자연을 둘러싼 자본주의의 제살 깎아먹기에 초점을 맞추며 또 다른배경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이 이야기는 생산 ‘투입물‘의 원천이자, 생산 과정에서 배출된 폐기물을 빨아들일 ‘하수구‘로서, 자본이 자연을 ‘합병‘(로자 룩셈부르크가 ‘병탄[땅뺏기]Landnahme‘이라칭한하는 것과 관련된다.
여기에서 자연은 자본을 위한 자원이 되는데, 그 가치는 전제됨과 동시에 부인된다. 자본 회계에서 자연은 마치 비용이 제로인 듯 처리된다. 그래서 아무런 수선이나 보충도 없이 무상으로혹은 헐값에 전용되는데, 이런 행위의 노골적인 전제는 ‘자연은스스로 무한히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생명을 지탱하고 스스로를 새롭게 하는 자연의 역량이 상품 생산과 자본 축적의 또 다른 필수 배경조건이 되며, 따라서 이를 놓고 또 다른제살 깎아먹는 짓이 벌어진다. - P44

셋, 경제적인 것에서 정치적인 것으로


다음으로 세 번째 중요한 인식의 전환을 살펴보자. 이는자본주의를 존립할 수 있게 하는 정치적 조건, 즉 자본주의가 자신의 구성적 규범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공적 권력에 의존하는현실을 가리킨다. 사기업과 시장 교환의 토대를 이루는 법률적틀이 없다면 자본주의의 존립은 꿈도 꿀 수 없다. 자본주의의 본이야기는 이 공적 권력에 결정적으로 의존한다. 이를테면 재산권을 보장하고, 계약 내용을 실행하게 하며, 분쟁을 심판하고, 반자본주의 반란을 진압하며, 자본의 생계수단이라 할 화폐 공급을 지속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역사적으로 이 공적 권력은 대개영토국가 안에 고정돼 작동했으며, 여기에는 식민지 보유국이나제국주의 강대국처럼 초국적으로 움직이는 국가도 포함되었다. - P47

넷, 착취에서 수탈로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러한 사고의 전개 전반에 영감을준 생각, 즉 원시 축적이 자본 축적의 역사적 전제조건이라는 마르크스의 설명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생각을 이제는 옛일이 되어버린 초창기의 흔적이 아니라, 근대 자본주의에서도 지속되는 특징으로 재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는 이 사회 시스템에서 구조적으로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감춰진 장소이면에 감춰진 또 다른 장소‘를 개념화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서 감춰진 필수 요소란 수탈, 즉 종속되고 소수자화된 사람들의부를 지속적으로 강제 탈취하는 것이다. 대개 수탈을 자본주의만의 특징인 착취 과정의 반反명제로 여기지만, 오히려 착취가 - P50

이뤄질 수 있게 하는 조건으로 보는 것이 수탈을 더 잘 이해하는길이다.
착취와 수탈 모두 축적에 기여하지만 그 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착취는 자유 계약에 따른 교환으로 위장한채 가치를 자본에 이전시킨다. 즉, 노동자는 노동력 사용 대가로임금을 받아 생활비를 충당하고, 자본은 ‘잉여노동시간‘을 전유하는 한편 ‘필요노동시간만큼만 급여를 지불한다. 반면에 수탈의 경우에는 자본가가 타인의 자산을 대가를 거의 혹은 전혀 지불하지 않은 채) 폭력적으로 징발하는 쪽을 선호하기에 이러한 온갖세심함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즉 강제 노동, 토지, 광물, 에너지를 기업 활동에 몰아줌으로써 기업의 생산비를 낮추고 이윤을 늘린다. - P51

게다가 수탈과 착취의 구분은 지위 위계와조응한다. 착취의 대상이 되는 ‘노동자‘는 당당한 개인과 시민의 지위에 해당하며, 국가에 의해 보호받을 자격을 갖추고 자기 노동력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다. 반면 수탈의 대상이 되는 ‘타자‘는 부자유하고 종속적인 존재이며, 정치적 보호 바깥에 무방비 상태로 방치된 채 본질적으로 ‘불가침하지 않은violable" 신세가 된다. 즉, 자본주의 사회는 생산 계급마저도 서로 다른 두 범주로 나누니, 하나는 ‘순수한 착취에 어울리고 다른 하나는 폭력적 수탈을 당하는 운명이다. 이 분할은 자본주의 사회의 또 다른 제도적 단층선 - P52

으로서, 앞에서 이미 살펴본 생산과 재생산, 사회와 자연, 정치와경제의 분할만큼이나 자본주의 사회에 구성적이며 그 구조적토대 노릇을 한다.
게다가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이 노동자/타자의 분할은자본주의 사회에서 특별한 지배 양식을 강화한다. 즉, 인종적이면서 동시에 제국주의적인 억압이다. 제2장에서 살펴보겠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치적 보호가 거부되고 반복적으로 폭행을당하는 이들 가운데 압도적 다수는 인종화된 인구집단이다. 동산動産 노예chattel slaves, 식민지 예속민, 정복당한 ‘원주민‘, 부채 노예, ‘불법 체류자‘ 유죄 확정 중죄인, 인종분리국가와 그 후예들 내부의 인종화된 예속민 등등. 이들은 모두 시민노동자로인정받은 이들과는 달리) 일시적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계속 수탈의대상이 된다. 즉, 수탈/착취 분할선은 전 지구적 피부색의 경계선과 완전히 같지는 않아도 분명히 겹친다. 이로부터 인종적 억압, 제국주의(구식이든 신식이든), 토착민 자산 박탈, 인종 학살에이르는 구조적 불의가 줄지어 나온다.
말하자면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 구성적인 또 다른 구조적 - P53

분할이다. 그리고 이 분할 또한 역사적으로 변천해왔고, 제살 깎아먹기의 토대 노릇을 했다. 이는 이 책에서 개념화한 다른 분할들과 깊이 얽혀 있으며, 따라서 지금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위기와도 얽혀 있다. 위기의 여러 갈래들, 즉 정치 위기, 생태 위기, 사화재생산 위기는 주변부와 중심부 모두에서 벌어지는 인종화된 수탈과 분리될 수 없다. 예컨대 자본은 수탈한 땅, 강제 노동,
광물 약탈품을 획득하고 소유하기 위해 공적 권력에 기대고(일국적이든 초국적이든), 독성 폐기물 처리장과 무급 돌봄 활동 공급자로서 인종화된 지역에 의존하며, 정치 위기를 진정(또는 치환)시키거나 아니면 오히려 조장하기 위해 지위 분할과 인종적 원한에 호소한다. 한마디로 경제·생태·사회·정치 위기는 제국주의적·인종적 억압과 긴밀히 얽혀 있으며, 따라서 이러한 억압과결합해 점증하고 있는 적대와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 P54

었다. 즉사적 소유, ‘자기‘ 확장하는 가치의 축적, 이중으로 자유로운 노동 등 상품 생산 투입요소의 시장적 할당, 사회적 잉여의시장적 할당을 특징으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는 각각 사회적 재생산, 지구 생태계, 정치권력, 인종적 피억압자에게서 수탈한 부의 지속적 유입 등 네 가지 결정적 배경조건 덕분에 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이 네 가지 배경이야기와의 관계 속에서 마르크스의 본이야기가 차지하는 위치를다시 정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마르크스적 관점을 비판적 이론작업의 다른 해방적 흐름들, 즉 페미니즘, 생태주의, 정치이론, 반제국주의, 반인종주의와 연결해야만 한다. - P55

자본주의가 경제적 시스템도 아니고 윤리적 삶의 사물화된형태도 아니라면, 그럼 도대체 무엇이라는 말인가? 자본주의를제도화된 사회 질서an institutionalized societal order 로 바라보는 것이 가장 훌륭한 이해라는 게 나의 답이다. 이를테면 봉건제 같은 하나의 사회 질서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이런 식으로 이해하게 되면 자본주의의 구조적분할, 특히 앞에서 확인한 제도적 분리들이 부각된다. ‘경제적 생산‘과 ‘사회적 재생산‘의 제도적 분리, 즉 남성 지배의 특수한 자본주의적 형태에 토대를 제공하는 젠더화된 분리는 자본주의에구성적인 것이며, 노동력의 자본주의적 착취가 이뤄질 수 있게하고 이를 통해 공인된 축적 양식이 존립하게 한다. ‘정치‘와 ‘경제‘의 분리 역시 자본주의에 결정적인 것인데, 경제적이라 규정된 사안들을 영토국가의 정치 의제에서 추방함으로써, 자본이주인 없는 초국적 무대를 자유로이 떠돌며 어떤 정치적 통제도없이 패권적 질서에서 떨어지는 이익을 주워 담게 해준다.  - P58

그러므로 자본주의의 전경/배경 관계에 관한 설명이 정확하려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서로 다른 생각을 모두 포함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첫째, 자본주의의 ‘비-경제적 영역들은자본주의 경제를 가능하게 하는 배경조건 구실을 한다. 즉, 자본주의 경제는 그 존립 자체를 자본주의의 ‘비-경제적 영역들에서 나오는 가치들과 투입요소에 의존한다. 하지만 둘째로, 자본주의의 ‘비-경제적 영역들은 각기 고유한 무게와 성격을 지니며, 특정한 환경에서는 반자본주의 투쟁에 자원을 제공할 수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셋째로, 이 영역들은 자본주의 사회의본질적 부분으로서,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와 화합하며로를 구성해왔고 이러한 공생관계가 각 영역에 자취를 남기고있다. - P64

이제는 많은 이들이 자신들이 벌이는 투쟁을 더 잘 이해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또한 이제 많은 이들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위기 심화가 반인종주의와 인종주의적 포퓰리즘의 발전 모두에폭넓은 배경이 되었음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사회의 위기는 자본주의에서 특유하게 나타나는 인종적 억압을좀 더 눈에 잘 띄게 하면서, 동시에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마침내 ‘자본주의‘는 더 이상 금기어가 아니게 되었으며, 마르크스주의는 부흥을 경험하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흑인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질문이 다시금 절박하게 제기되었다. 자본주의는필연적으로 인종주의적인가? 과연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인종적억압이 극복될 수 있을까? - P76

자본주의는 그 필수조건으로서 착취만이 아니라 수탈에도 의존하기에 인종적 억압의 구조적 토대를 장착한다는 명제를 옹호할 것이다. 다음으로, 착취/수탈이 자본주의 역사의 주요 국면에서 그 형세배열을 어떻게 바꿔왔는지 윤곽을 그려 보임으로써 이 구조를 역사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여전히 착취와 수탈에 의존하지만 이들을 서로 극명히 나뉘는 인구집단에 적용하지는 않는,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종적억압을 극복할 전망을 따져볼 것이다. 이런 논의들을 통해 자본주의 시스템이 특정 인구집단을 인종화함으로써 더 쉽게 제 살깎아먹기를 벌이려 하는 내재적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자본주의는 ‘잔혹한 처벌을 즐기는 수탈탐식가‘로 이해되어야만 함을밝힐 것이다. - P78

충동 일체를 시장 바깥으로 추방하고, 이를 시장의 작동을 왜곡하는 요소로 본다. 따라서 인종주의의 원흉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이를 둘러싼 더 큰 사회가 된다. 인종주의는 역사·정치·문화에서 연유하며, 이 모두는 자본주의에 외재적인 것으로서 오직우발적으로만 이와 연결된다. 그 결과 자본주의는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수단·목적으로 축소되고, 역사적·정치적 내용이제거되면서 형식화되고 만다. 이런 식으로 교환 중심 관점은 자본주의 경제에 구조적으로 인종적 억압을 발생시키는 ‘비-경제적‘ 전제조건과 투입요소가 필요하다는 점이 눈에 잘 드러나지않게 한다. 그러한 의존을 염두에 두지 않는 탓에 자본주의 시스템의 독특한 축적, 지배, 제살 깎아먹기 메커니즘이 잘 보이지않도록 만든다. - P80

바로 이것이 요점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핵심이 착취이고, 이는 두 계급의 관계라고 봤다. 이 관계의 한쪽은 사회의생산수단을 소유하며 잉여를 전유하는 자본가이고, 다른 한쪽은자유롭지만 재산이 없는 탓에 나날이 자기 노동력을 팔 수밖에없는 생산자다. 마르크스의 관점에서 자본주의는 단순히 경제만은 아니며, 상품 생산을 통해 자본이 자유로운 노동을 착취하는계급 지배의 사회적 시스템이다.
마르크스의 시각에는 많은 장점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한 가지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 자본주의를 착취의 렌즈를 통해 바라봄으로써 교환의 시각이 가리고 있던 것이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이중으로) 자유로운 노동자에 대한 계급 지배가 이뤄지게 하는, 자본주의 사회 내부의 구조적 토대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 P81

내 주장은 수탈이 자본주의 사회에 실로 필수불가결하며, 따라서 자본주의와 인종주의의 얽힘에도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이다. 뒤에 설명하겠지만, 간단히 말해 자본의 수탈 대상이 되는 이들의 예속은 착취 대상이 되는 이들의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감춰진 조건이다. 그러므로 전자에 관한 설명이 없다면 후자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또한 자본주의와 인종주의를 역사적으로얽히게 만드는 구조적 토대 역시 엿볼 수 없게 된다.
이 주장을 풀어놓기 위해 나는 제1장에서 소개한 자본주의에관한 확대된 인식을 활용하고자 한다. 이는 위에서 이야기한 세가지 시각 가운데 뒤의 두 가지, 즉 착취의 시각과 수탈의 시각의 요소들을 결합한다. 그리고 이는 마르크스가 익숙한 교환의수준 이면으로 파고들어가 밝혀낸 착취의 ‘감춰진 장소‘를, 훨씬더 어둠에 가려진 수탈의 순간과 결합시킨다. 이렇게 착취와 수탈의 관계를 이론화함으로써 나는 자본주의와 인종주의를 끈덕지게 얽히게 만드는 구조적 토대를 식별해낼 것이다. - P84

‘수탈‘이 자본주의에 구조를 부여하는 요소라는 정의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해보자. 앞 장에서 본 대로, 수탈은 다른 수단을 통한 축적이다. 즉, 착취와는 다른 방식을 통한 축적이다. 자본이 임금을 대가로 ‘노동력‘을 구매하는 계약 관계 대신, 수탈은인간 역량과 자연 자원을 징발하여 자본 확장 회로에 징용함으로써 작동한다. 징발은 신세계 노예제에서 그랬듯이 뻔뻔스럽고폭력적일 수도 있고, 우리 시대의 약탈적 대출과 담보물 압류에서 그렇듯이 상거래라는 베일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
또 수탈당하는 주체는 자본주의 주변부의 농촌이나 토착민공동체일 수도 있고, 자본주의 중심부의 종속 집단이나 하위 집단 구성원일 수도 있다. 한때 수탈을 당했더라도 운이 좋으면 착취받는 프롤레타리아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면 빈민, 슬럼거주자, 물납 소작인sharecropper", ‘원주민, 노예, 임금 계약 바깥에서 계속 수탈당하는 주체로 끝날 수도 있다. 징발된 자산은노동, 토지, 가축, 도구, 광산이나 에너지 매장지일 수도 있지만, - P85

또한 인간, 인간의 성적·생식적 역량, 자녀와 장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핵심은 징발된 역량들이 자본의 핵심 특징인 가치 확장 과정에 흡수된다는 것이다. 단순한 도둑질이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자본주의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있었던 강탈 같은 행위와는 달리, 내가 말하는 수탈은 징발과 징용을 통해 축적에흡수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수탈은 다수의 죄악을 포함하며, 그중 대다수는인종적 억압과 강한 상관성이 있다. 그 관련성은 영토 정복, 합병, 노예화, 강제 노동, 아동 유괴, 조직적 강간처럼 자본주의 초기 역사(물론 지금도 계속되지만)와 광범하게 결합된 행위들에서는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대적인‘ 형태(이를테면인종적 억압과도 연관된 수감 노동, 초국적 성매매, 대기업의 땅뺏기, 약탈적 대출에 따른 압류 등)를 취하기도 하며, 현대 제국주의와 함께하기도 한다. - P86

수탈과 착취의 구별은 경제적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이다. 경제적으로 봤을 때 두 용어는 (분석상으로는 구분되지만 서로뒤얽혀 가치를 확대하는 ‘자본 축적‘ 메커니즘들에 붙여진 이름이다. 반면 정치적으로 봤을 때는 ‘지배‘ 양식과 관련된 용어들이다. 특히 권리를 보유한 개인시민과 예속민·부자유한 노예·하위 집단의 종속적 구성원을 구별하는 지위 위계제와 관련된다.
마르크스가 주장한 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피착취 노동자는 법률상 자유로운 개인의 지위를 갖고 있어, 임금을 대가로 자기 노동력을 판매할 권한이 있다. 일단 생산수단에서 분리돼 프롤레타리아화하면 노동자는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추가적인) 수탈로부터 보호받는다. 이 점에서 노동자의 지위는, 노동·재산·인격이 여전히 자본 측의 징발에 내맡겨져 있는 이들과는 뚜렷이 구별된다. 징발 대상이 되는 집단은 정치적 보호를 누리기는커녕 수탈하기에 안성맞춤인 무방비 상태가 되며, 이 상태는 끊이지 않고 계속된다.  - P89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호를 제공하기도 하고 거부하기도 하는 것은 정치적 행위자들,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국가다. 시민을 예속민이나 체류 외국인과구별하고, 권리를 지닌 노동자를 종속적인 상습 채무자와 구별하는 지위 위계제를 법률로 정하고 집행하는 것 역시 국가다. 이러한 국가의 정치적 주체화 기능은 피착취 주체와 피탈 주체를 구축하고 이 둘을 서로 구별함으로써, 자본의 ‘자기‘ -확대에필수 전제조건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 방면에서 국가는 홀로 역할하지 않는다. 지정학적제도배열 또한 관련돼 있다. 일국 수준에서 이러한 정치적 주체화가 이뤄질 수 있게 하는 것은, 국가를 ‘승인‘하고 국경 통제권(합법적 주민을 ‘불법 외국인‘과 구별하는)을 인가하는 국제적 시스템이다. 이렇게 지정학적인 권능을 부여받은 정치적 지위 위계제에 얼마나 쉽게 인종적 내용이 각인되는지 확인하려면, 이민과 난민을 둘러싼 최근의 갈등을 떠올려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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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31 0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31 15:36   좋아요 1 | URL
아, 이해...가 될 때까지 읽다가는...도무지 마칠 것 같지 않아서ㅠ,ㅠ 읽고 또 읽어보고 (뜨거운 음식 빨리 먹으려는 것처럼, 지저분하게 먹는 모습 떠오르시죠.) 그렇게 집어 삼키듯 읽고 있어요. 스스로 위안을 삼듯... 그러다보면 알 듯도, 알겠는 듯도 해지더라구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