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둘 다 가난해도 잘 살아갈 줄 안다는 긍정적인 덕목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러려면 노력, 창의성, 그리고 저렴한옷을 찾아내는 예리한 안목이 필요했다. 존스 바겐 스토어에서 별 소득이 없으면 일요일 아침마다 리빙턴 스트리트와 오처드 스트리트의 작은 가게들을 찾았다. 에식스 공설시장에서 멀지 않은 이 거리에서는 야물커를 쓴 남자들이 물건을 팔았다. 1달러 98센트에 산 운동화, 99센트에 건진 단색 긴팔 티셔츠 같은 것은 자랑해도 좋을 수확이었다.
우리는 함께 세계를 새로이 발명하고 있었다. 뮤리얼은 내게 가능성들로 이뤄진 세계를 열어줬고, 그건 유도라의 서글프고도 우스운 눈빛과 느긋한 웃음이 내게 남긴 유산처럼 느껴졌다. 나는 유도라에게서일을 처리하는 방법, 다이크로서 자부심을 느끼는 방법, 사랑하고 살아가고 이야기하는 법을 배웠다, 그것도 솜씨 좋게. 나는 유도라에게서 배운 것을 뮤리얼과 함께 실현해내고 있었다. - P362

뮤리얼과 함께하던 시절을 떠올리면 우리가 서로에게 주었던 확실성, 폭풍 속 작은 틈새에 함께 깃들어 있던 감각, 마술과 근면한 노력에서 비롯되었던 경이로움이 기억난다. 이 아침이, 이 삶이, 영영 계속될 수 있을것 같던 느낌을 아직도 기억한다. 뮤리얼의 굽은 손가락과 깊은 눈빛과버터 같은 피부의 체취가 기억난다. 바질 향. 우리 사랑의 개방성을 ‘사랑‘이라 불리던 모든 것에 잣대로 들이댔던 것이 기억난다. 훗날 나는 그것이 모든 연인 사이에 오고가는 정당한 요구라는 사실을 알았다.
뮤리얼과 나는 다정하게, 오래, 잘 사랑했지만, 우리의 강렬한 사랑이 언제나 현명하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말을해줄 사람은 없었다.
둘 다 너무 오랫동안 사랑에 굶주려 있었기에 마침내 찾아낸 사랑 - P362

이 전지전능하다고 믿고 싶었다. 우리는 이 사랑이 아직 시작에 불과했던 나의 고통과 분노에 언어를 부여해줄 거라고 믿고 싶었다. 사랑은 뮤리얼이 세상을 마주하고 일자리를 구하게 해줄 수 있을 거라고, 우리가쓰는 글을 해방시켜줄 거라고, 인종주의를 치료하고, 호모포비아를 종식시키고, 사춘기의 여드름까지도 없앨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우리는 음식만 있으면 지금 느끼는 온갖 고통은 물론, 오래 지속된 결핍의아픔까지도 치료될 거라 믿는 굶주린 여자들이었다. - P363

1955년의 그 황금빛 여름, 우리는 바빴고 또 빛으로 가득했다. 평일이면 나는 도서관 일을 했고 뮤리얼은 동네 반대편에 사는 믹과 코딜리어를 위해 침대를 만들었다. 주말이면 함께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중국서예를 공부하고 해변과 바에 놀러 다녔다.
헬렌 언니의 시립대학교 졸업식에서는 조나스 소크가 소아마비 백신을 발표했는데, 헌터고등학교 시절 친구들 중 상당수가 소아마비에서 비롯된 다양한 정도의 장애를 갖고 있었던 탓에 이 소식은 내게 개인적인 의미로 다가왔다.
삶에는 각기 다른 수많은 조각들이 있었다. <제트>는 흑인 시사 잡지를 표방하는 여성지였는데, 나는 드물게 브롱크스에 갈 때마다 헨리형부로부터 잡지를 빌려서는 다운타운까지 돌아오는 내내 지하철에서 열심히 읽은 뒤 내릴 때 슬쩍 옆자리에 두고 왔다. 도서관에서는 내가 시를 쓴다는 이야기를 하자 누군가 그해 선풍적 인기를 끈 베스트셀러인 앤 모로 린드버그의 《바다의 선물》을 언급했다. 그 책과 내 작품은 가리비와 고래만큼이나 딴판이었는데 말이다.  - P364

도서관 책들로 부족한 독서는 4번 애비뉴에 있는 헌책방들에서 꾸준히 책을 거래하며 채웠다. 뮤리얼도 그곳에서 긴 시간을 보냈는데,
스트랜드 서점에서 바이런이나 거트루드 스타인의 헌책을 산 후 일주일 뒤 좀 더 싼값으로 같은 거리에 있는 파인 서점에 팔았다. 그 시절 책은 지금만큼 흔하게 넘쳐나는 것들이 아니었다. 한번은 린드버그 책 특별판을 넘기고 페이퍼백 열 권, 비주류 시인들의 하드커버 시집 두 권,
거기다가 10센트짜리 <매드> 잡지 창간호까지 받아왔던 기억이 난다.
6월, 린이 우리 집에 와서 함께 살게 됐다. 그럴 계획은 아니었지만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뮤리얼과 나는 비와도 조심스레 연락을 이어왔는데, 린은 문제의 새해 전날 파티에서 처음 만났던 비의 전 연인이었다. - P365

그해 가을, 뮤리얼과 나는 뉴스쿨대학교에서 미국 현대시 강의를수강했고 나는 심리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 느끼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때때로 눈앞이 어찌할만큼 심한 두통이 파도처럼 밀어닥쳤다.
또 나는 거의 입을 열지 않았다. 글을 쓰고 꿈을 꾸었지만 직접 묻는말에 답하거나 무언가를 지시할 때 말고는 말을 하지 않았다. 뮤리얼과함께하는 생활이 계속될수록 점점 그 사실을 의식하게 되었다. 게레아와 대화할 때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듣는 사람 역할을 했다. 보통 사람들은 마음껏 이야기할 기회가 잘 없었으며,
나는 상대가 하고픈 말에 진심으로 흥미를 보이며 열심히 듣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런 이야기들을 기억해뒀다가 남몰래 타인의 삶을 곱씹다보면 나자신에 대해 무언가를 알게 될지도 모르니까.)
뮤리얼과 나는 대체로 직관, 그리고 끝맺지 않은 문장으로 소통했다. - P372

그리고 나는 대학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뉴스쿨대학교에서 듣는 강의는 이해하기 어려웠고, 나는 공부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제대로 공부해본 적 없이 고등학교를 마쳤음에도 아무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못했다. 나는 사람은 삼투압처럼 지식을 흡수하며 다른 사람이 하는 말에 면밀히 귀를 기울이는 과정에서 배움을 얻는 거라고 믿으며 대학교에 입학했다. 우리 가족의 집에서 생존하는 방식이 그것이었다.
대학교를 그만둘 때, 나는 대학 생활 1년이면 어지간한 흑인 여성들보다는 많이 공부한 거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하지만 뮤리얼이 뉴욕에 오자 나는 내가 당분간 멕시코로 돌아갈 일이 없음을 알게 되었고,
그러자 학위를 얻고 싶어졌다. 마땅한 기술이 없는 흑인 여성이 구직 과정에서 겪는 현실도 이미 체험해본 터였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기는했지만, 언젠가는 남의 명령을 받지 않는 일을 하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고 또 실행할 수 있는 자유를갖고 싶었다. 화가 날 때 몸을 덜덜 떨지도, 성이 날 때 울지도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게다가 시립대학교는 여전히 학비가 공짜였다. - P373

누가 내게 찬물을 끼얹기라도 한 기분이 된 나는 아무 말 없이 종이만 빤히 들여다보았다. 손을 뻗어 뮤리얼의 손을 잡았다. 서늘한 손은내 손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누가 자신을 나에게 견주며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낀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사랑하는 나의 뮤리얼이라니,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나는 우리의 삶은 상호 탐구라고, 사랑의 힘을 통해 점점 나아지고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책에 담긴 그의 냉정한 서술을 읽고 또 읽으면서 나는 뮤리얼의 눈에 우리의 결합은 점점 나의 성취, 그리고 그 성취 때문에 두드러지는 그의 무능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뮤리얼의공책은 우리의 삶이 공통의 성취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나도, 우리의사랑도, 뮤리얼이 바라본 진실로부터 그를 보호해줄 수 없다고 분명히이야기해주고 있었다. - P380

답답한 공기 속에서 담배연기와 음악, 머리에 바른 포마드 냄새가향이 피어오르듯 뒤섞이는 가운데, 앞 공간에서 서로를 탐색하는 여자들, 그리고 안쪽 댄스플로어에서 피시를 추는 여자들 틈을 지나고 있노라면, 내가 아웃사이더인 것이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과 연관이 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흑인 여성인 내가 지난주에도, 다음 주에도, 이 수많은 얼굴속 나를 닮은 얼굴을 하나도 마주치지 못했을 때는, 내가 바가텔에서 아웃사이더인 것이 내가 흑인이라는 사실과는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걸 지극히 잘 알 수 있었다.
바가텔이라는 제한된 사회는 이 공간을 낳은 더 큰 사회의 부침을그대로 닮아 있었다. 사회성을 발산할 곳도, 함께 어울릴 곳도 없는 외로운 다이크를 상대로 물을 탄 술에 바가지를 씌워 파는 바가텔이 이토록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던 것 역시 그 때문이었다. - P382

평소에 나는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면 이 말이 함축하고 있는의미를 모른 척 흘려보냄으로써 자기방어를 했다. 그런데 도티 도스가폴리가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했다는 사실에 초조했기 때문인지 이 화제를 그냥 흘려보내지 못하고 멋지게 탄 내 피부를 놓고 끝없이 떠들어댔다. 자기 팔을 내 팔 옆에 대본다든지, 옅은 색 금발을 설레설레 저어대며 자신도 햇빛을 받으면 화상을 입는 대신 나처럼 피부가 그을렸으면좋겠다든지, 이렇게 잘 그을리는 피부를 가진 내가 운이 정말 좋다느니하는 말들이었다. 나는 질려버렸고, 그 뒤엔 참을 만큼 참았다는 생각에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성이 났다.
"여태까지 내 자연스러운 검은 피부에 대해 아무 말도 안 하고 무슨수로 참았던 거야, 도티 도스? 대체 어떻게?"
우리가 앉은 테이블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뮤리얼만 이해한다는듯 희미하게 풉 웃었고, 곧 모두가 다행스럽게도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나는 속으로는 여전히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난 그 일을 영영 잊지 않았다. - P387

레즈비언 바를 찾을 때마다 나는 다른 흑인 여성을 마주치길 간절히 바랐지만, 그런 바람을 입 밖에 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흑인 여성들은 이 나라로 온 지 400년이 되도록 서로를 짙은 의혹의 눈으로 바라보도록 학습해왔던 것이다. 동성애자 세계에서도 다를 바 없었다.
흑인 레즈비언은 대부분 벽장 안에 있었는데, 우리는 인종주의 사회에서 흑인으로 살아남느라 마주하는 수많은 다른 직접적인 위협들을 알고 있듯 흑인 공동체가 우리의 위치에 관심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흑인으로 사는 것만으로도, 흑인이자 여성으로 사는 것만으로도,
흑인이자 여성이자 동성애자로 사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흑인 레즈비언들은 대부분 백인 중심 세계에서 흑인이고, 여성이고, 동성애자로살아가면서 벽장 밖으로 나간다는 것이 고작 바가텔에서 춤을 추는 것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자살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런 행동을 할 정도로 어리석은 이상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터프한 모습이어야 했다. 나는 때때로 그들의 세련된 태도, 옷차림새, 매너, 차, 그리고그들이 데리고 다니는 펨들 때문에 기가 죽었다. - P388

내가 바가텔에서 보는 흑인 여성들은 대개 역할 수행에 열을 올렸고, 그 모습을 보면 나는 겁이 났다. 나 자신의 흑인성을 거울로 비춰 보는 것 같아서이기도 했고, 그 가장 속에 담긴 진실 때문이기도 했다.
힘과 통제를 갈구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꼭 내 안의 어떤 부분이 적의 복장을 걸친 채로 백일하에 드러난 모습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들은 나로서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방식으로 터프했다. 실제로는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자기보호 본능이 그들에게 터프하게굴어야 한다고 경고했던 것이다. 백인 중심적으로 왜곡된 미의 기준 때 - P388

문에 ‘‘ 역할을 하는 흑인 여성들은 바가텔에서 인기가 없었다. 또 부치들은 누가 제일 ‘매력적인 펨‘을 팔에 끼고 다니는지를 놓고 끊임없이경쟁했다. 여기서 ‘매력‘을 정의하는 것은 백인 남성들의 기준이었다.
나에게 바가텔에 혼자 가는 건 마치 변칙적인 여성 금지구역으로들어가는 것 같았다. 나는 ‘펌‘ 행세를 할 만큼 귀엽지도 수동적이지도않았으며, ‘부치‘로 통할 만큼 험상궂지도 터프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은내게 가까이 오지 않았다. 전형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은 동성애자 공동체에서조차도 위험할 수 있었다. - P389

펠리시아와 나만 빼고, 바가텔의 흑인 여성들은 몸에 걸칠 수 있는권력의 상징들을 모조리 과시하며 스스로를 보호했다. 라이언이나 트립이 평일에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금요일 밤마다값비싼 옷을 입은 여자들을 대동하거나, 홀로 이곳에 나타날 때는 관심과 존경을 요구했다. 그들은 돈이 많았고, 옷을 빼입었고, 자기관리에능했고, 컨버터블을 몰았으며, 자기 친구들한테 술을 몇 잔씩이나 돌렸고, 대체로 사업에 종사했다.
그러나 그들마저도 때때로 그들을 알아보는 가드 없이는 입장을 거부당했다.
나와 내 친구들은 히피라는 단어가 생기기 전부터 레즈비언 세계에서 히피였다. 우리 중 여럿이 죽거나 실성했고, 우리 중 여럿은 우리가맞서 싸워야 했던 수많은 전선에 의해 왜곡됐다. 그러나 살아남았을 때우리는 강해졌다.
그 시절 내가 빌리지에서 만난 흑인 여성들은 비록 금요일 밤 바가텔의 머릿수로만 존재했을지라도 모두 내 생존에 크건 작건 기여했다. - P389

흑인이건 백인이건 키키건 부치건 펨이건, 우리 모두가 때로는 제각기 다른 비율로 공유하던 유일한 공통점은 우리가 여성이라는 이름아래서 감히 서로 연결되고자 한다는 것,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름을 우리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힘으로 본다는 것이었다.
그 시대로부터 살아남은 우리는 어느 정도 이상한 사람일 수밖에 없었다. 젊은 날의 우리는 그런 용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면서도 여성으로 정체화한 여성으로 스스로를 정의하려 노력했으며, 우리가당면한 경계 너머에 그런 말들을 듣고자 귀를 기울이는 이들이 있다는사실은 까맣게 몰랐다. 그 시대로부터 살아남은 우리는 어느 정도 자부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자부심을 느낄 법도 했다. 기우뚱하게나마 하나가 되어 우리만의 길을 가고자 하는 시도는 양철 호루라기로 디누줄루 전쟁가나 베토벤 소나타를 연주하는 것을 방불케 했으므로. - P390

중요한 건, 우리만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스스로에 관해 느끼는 그 무엇을 정당하게 다룰 수 있건 없건, 연료를 새로채우고 날개를 점검할 수 있는 장소가 있어야만 했다.
결핍과 엄청난 불안정성의 시기에 공간이란, 우리가 애초 그 공간을 필요로 하게 된 본질보다는 의미에 가까워지기도 했다. 때로 후퇴가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카페에 죽치고 앉아 단 두 단어도 쓰지 않은 채자기 작품을 죽어라고 논하는 사람들. 여성 그리고 자신의 여성성을 맹렬히 혐오하는 남성만큼이나 정력적인 레즈비언들. 1950년대 빌리지의 바, 커피숍, 거리는 애써 얻어낸 집단을 거역하길 죽도록 두려워하는비순응주의자들로 넘쳐났다. 결국 이들은 집단의 욕구와 개인의 욕구사이에서 괴리를 겪었다.
우리 중 어떤 이들에게는 특정한 장소가 주어지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공간이, 위로가, 고요가, 미소가, 비판하지 않는 태도가 있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매달렸다. - P391

함께 여성인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달랐다. 함께 레즈비언인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달랐다. 함께 흑인인 것만으로는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달랐다. 함께 흑인 여성인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달랐다. 함께 흑인 레즈비언인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달랐다.


우리는 각자만의 욕구와 목표, 다양한 여러 동맹을 지니고 있었다.
자기보호 본능은 우리가 한가지의 쉬운 정의, 좁은 의미의 하나의 개별 - P391

적 자아에 머무를 여유가 없다고 경고해줬으므로 진정한 나는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각각 바가텔, 헌터대학교, 할렘 업타운, 도서관이라는 공간에 얽매인 채로 성장했다.
우리의 자리란 그 어떤 하나의 특정한 차이에서 오는 안정감이 아닌, 차이라는 집 그 자체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종종 우리는 배움 앞에서 겁쟁이가 된다.) 매일같이 살아남음으로써 얻은힘을 사용하는 법을 배운 것은, 두려움이 반드시 무력함을 가져오는 게아니라는 것을, 우리와 반드시 같지 않아도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것을 알게 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의 일이다.
1950년대 빌리지의 레즈비언 바를 드나들던 흑인 레즈비언들은 서로의 이름을 알았으나 서로의 검은 눈을 들여다보는 일은 거의 없었다.
검은빛을 좇다 보면 스스로의 외로움이, 스스로의 약해진 힘이 거울처럼 비춰 보일 테니까. 우리 중 몇몇은 거울과 이를 외면하는 시선 사이의 간극 속에서 죽어버렸다. - P392

하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무거운 슬픔에 젖어 어둠 속에서 돌아눕는 또 다른 내가 있었다. 문득 부모님 집에서 보낸 마지막 해가 떠올랐다. 어느 날 아침, 학교에 가기 전에 머리를 펴려고 동이 트기도 전에 부모님 침실로 들어갔을 때였다. 어둑한 아침 빛 속에서 내가 소리없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순간나는 화들짝 놀랐다. 그제야 어머니가 한참 전에 잠에서 깨, 내가 적막한 집 안을 돌아다니며 십 대다운 일을 하고 있는 기척에 귀를 기울였으리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우리의 눈이 잠시 마주쳤고, 우리 사이에서영영 사라질 줄 모르는 적대감에 대한 어머니의 고통이 얼마나 무거운것인지를 내가 완연히 느낀 건 그 순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짧고도 날카로우며,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무치던 순간이었다.
나는 침실 문손잡이를 쥐고 서 있었다. 어머니도 나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으나, 문득 첫 월경을 한 날이 떠오르는 바람에 울음이 터질 것같았다. 나는 고데기를 품 안에 숨긴 채 침실을 나가 조용히 문을 닫았다. - P399

나는 점점 다른 곳에 에너지를 집중시키고 싶었다. 뮤리얼과 함께하는 삶이 이전만큼 목가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어도 나는 여전히 그것이 우리 두 사람 모두가 만들고자 헌신할 만큼 소중한 것이라 여겼다.
게다가 우리는 영원을 약속하지 않았던가.
뮤리얼은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얻은 것만 같았다. 더 잘 잤고, 가운데 방 소파에 누워 보내는 시간이 점점 줄었다.
13302오래지 않아 체구가 크고 무뚝뚝한, 체조용 재킷 차림에 꼿꼿이 쳐든 머리에는 어울리지 않는 레이스 달린 간호 모자를 쓴 토니는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다. 일요일 오후면 토니는 직접 만든 블린츠와 차트를 가지고 우리 집으로 왔고, 우리는 그 차트 위에다가 훗날 우리가 함께 만들 여성들의 세계에서 가능해질 상호관계들을 그려보고자 했다. - P400

나는 그 소리를 애써 외면하고 싶은 심정으로, 깨어 있지도 그 자리에 있고 싶지도않은 심정으로, 창밖의 7층 높이의 허공과 옆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행위 사이에서 꼼짝하지 못하고 갇힌 채 덫에 걸린 야생동물처럼 뻣뻣이누워 있었다. 출구가 없었다.
뮤리얼과 함께 소파에 있는 이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고통과 분노는덜했을지도 몰랐다. 질과 나 사이엔 아직 풀리지 않은 앙금이 너무 많았다. 질은 뮤리얼이 택할 수 있는 잔인한 흉기였고,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다른 곳도 아닌 우리 집에서. 그것도 옆방에 내가 누워 있는 사이에 어머니 집에 살던, 눈물 대신 코피를 터뜨리곤 하던 그 시절이후로 느낀 적 없던 새빨간 분노의 너울이 내 의식을 온통 뒤덮었다.
모직 담요를 입에 물고 짓씹으며 죽여버리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죽일상대가 없었다. 나는 절박한 자기보호 본능에 의지해 곧바로 다시 잠들었다. - P401

거리도 하늘도, 모두 분노의 너울로 뒤덮여 있었고, 그 너울의 끄트머리에 링으로 고정된 금속볼트는 내 가슴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었다.
브롱크스의 도서관으로 출근해야 했다. 다가오는 열차 앞으로 내가누군가를, 어쩌면 나 자신을 밀어버릴지도 몰라 두려운 나머지 나는 애스터 플레이스 지하철역 뒷벽으로 다가가 섰다.
모리스 애비뉴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는 내내 눈앞이 시뻘겋고 손은벌벌 떨렸다. 배신당한 고통과 날것의 분노가 주는 고통이 뒤섞였다. 뮤리얼을 향한 분노, 질을 향한 분노, 둘 다 죽여버리지 못한 나 자신을 향한 분노. 열차는 34번가에서 잠시 지연되었다가 다시금 쏜살같이 나아갔다. 내 안에 들끓는 독을 내보내지 못하면 죽을 것만 같았다. 눈앞이 흐려질 정도로 심한 두통이 찾아왔다가 사라지는 사이, 번뇌는 늘지도줄지도 않은 그대로였다. 그랜드 센트럴 지하철역쯤 왔을 때 코피가 쏟아졌다. 누가 티슈를 건네주고 자리까지 양보해주어서, 자리에 앉은 채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았다. 눈꺼풀 안쪽을 스크린 삼아 번득이는학살극의 장면들이 너무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도착할 때까지 애써 눈을 뜨고 버텼다. - P402

그 뒤로 며칠간, 내가 고통 외에 느낀 감각이라고는 마치 용서받을수 없으며 입에도 올릴 수 없는 짓을 저지르기라도 한 것만 같은 죄책감과 수치심뿐이었다. 자해. 고통을 표출하는 쿨하지도 힙하지도 않은 방식. 그 밖에는 그 어떤 열정도 느낄 수 없었다.
뮤리얼과 나는 질에 대해서도, 사고에 대해서도 한 마디도 입 밖에내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조심스럽고 다정했고, 더는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일을 침묵으로 수긍하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다소 구슬펐다.
질은 떠났고, 훗날 전혀 예기치 못했던 어딘가에서 다시 나타나게된다. 질은 이곳에서 그리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고, 중요한 건 오로지그가 상징했던 무언가였다. 지금, 대화가 우리 사이에서 그 무엇보다도중요한 이 순간 뮤리얼도 나도 입을 다물었다. 우리 사이에 있었던 그무언가는 과거의 언어로는 닿을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고, 우리는 둘 다극도로 혼란스럽고 두려운 나머지 새로운 언어를 시도할 수 없었다. - P404

그러나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몸을 밀착하고 복잡한 미뉴에트를추고 있는 두 파트너였다. 둘 중 누구도 춤을 그만둘 수 없었다. 우리 둘다 우리의 작고 빠듯한 춤의 분위기나 스텝을 바꿀 만한 도구를 갖고 있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파괴할 수 있었지만 우리의 고통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이제 우리가 함께 사는 건 심지어 편의를 위해서조차도 아니었고, 다만 우리 둘 다 서로를 놓아줄 수 없으며, 파괴적인 접촉의 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도 못해서일 뿐이었다. 이 관계를 끝내려면, 우리는 그 이유를 질문해야 할 터였다. 그리고 이제 사랑은 충분한 대답이 될 수 없었다.
그즈음 뮤리얼은 6번가와 애비뉴 B에 있는, 니키와 존이 얼마 전부터 세 들어 살기 시작한 지층 아파트에서 종일 머무르다시피 했다. 우리둘만 있는 때면 내 입에서 앙심과 비난이 야생 개구리처럼 튀어나와 반응 없이 시큰둥한 그의 머리 위에서 비처럼 쏟아졌다. - P406

내 심장은 내가 머리로 이해하기를 거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우리가 함께하는 삶은 끝났다. 존이 아니더라도 뮤리얼은 다른 누군가를 만났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심 이런 일이 일어날 리 없다고 끈질기게 생각했고, 꿈을 꾸면 살인과 죽음과 지진의 장면들에 시달렸다. 정신의 불협화음이 뇌를 찢어발기고 있었다. 분명 내가 모든 걸 해결할 수있는, 헤어짐 때문에 느끼는 번뇌에 종지부를 찍고 뮤리얼에게 이성을찾게 해줄 다른 방법이 있을 터였다. 그를 설득해 이 모든 게 불필요하고 말도 안 되는 행동이라고 알려줄 수만 있다면. 거기서부터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 P407

드라이아이스처럼 차가운 분노가 눈꺼풀 속에서 지끈거릴 때도 있었다. 뮤리얼이 며칠씩 집에 들어오지 않을 때면 나는 걷잡을 수 없이휘몰아치는 정서적 태풍에 휩싸인 채 그와 존을 찾아 빌리지의 거리를헤집고 다녔다. 증오. 나는 제정신인 사람이면 감히 뚫고 들어오지 못할만큼 짙은 고통과 분노의 구름에 둘러싸여 동트기 전의 여름 거리를 겨울바람처럼 쏘다녔다. 그렇게 걷고 있으면 아무도 내 쪽으로 다가오지않았다. 그 점이 때로는 아쉬웠다. 누굴 죽일 핑계가 간절했으니까. 머리를 도려내는 것 같던 두통은 사그라들었다. - P408

우리가 알았던 것을 알고 우리가 나눈 것을 나눈 뮤리얼과 내가 함께하지 못한다면, 그 어떤 두 여자가 함께할 수 있겠는가? 이 세상의 그어떤 두 인간이 과연 함께할 수 있을까? 또다시 다른 누군가와 맺어지길 시도하며 느낄 아픔보다는 뮤리얼에게 매달리는 아픔이 더 견딜 만할 것 같았다.
살면서 겪었던 고통과 여태껏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온갖 고통까지 회색 박쥐처럼 내 머리 주변을 날아다녔다. 그것들이 내 눈을 쏘고, 목구멍에, 명치 아래 집을 지었다.
유도라, 유도라, 당신이 나한테 뭐라고 했었더라?
그 무엇도 허투루 쓰지 마, 치카, 고통마저도. 특히 고통을 낭비해서는안돼.
- P409

그해 여름, 모퉁이 술집에서 새어나온 톱밥과 술 냄새가 거리로 스며들고, 흑인 남자들이 나이를 가리지 않고 엎어놓은 두 개의 우유 상자앞에 번갈아 자리 잡고 체스를 두던 8번 애비뉴의 그 구역으로 나는 얼마나 여러 번 발길을 옮겼던가? 모퉁이를 돌아 113번가로 들어간 뒤 공원을 향하는 내 걸음은 급해졌고 아프레케테의 흙을 가지고 놀 생각에손끝이 아릿아릿했다.
그리고 나는 아프레케테를 기억한다, 꿈에서 빠져나온, 언제나 내 배꼽 아래쪽 가장자리를 따라 난 불의 털만큼이나 단단한 실체이던 이. 그는 덤불에서 난 살아 있는 것들을 가져다주었으며 그의 농장으로부터 코코암과 카사바를 가져왔다. 키티가 140번가의 레녹스 애비뉴에 늘어선서인도제도 상점에서, 또는 머리 위로 센트럴 철도 구조물이 지나가는파크 애비뉴와 116번가의 북적거리는 시장 안 푸에르토리코인이 운영하는 보데가에서 사온 마술적인 과일들. - P430

우리는 프랑스산 캐슈 열매만 한 맛 좋은 빨간 피핀 사과를 샀다. 녹색 플랜테인도 사서 껍질을 반만 벗긴 뒤 서로의 몸에 심는다. 위쪽으로활짝 벌린 우리의 허벅지 사이 곱슬곱슬한 어둠 위로 꽃잎 같은 플랜테인 껍질이 커다란 초록 불길의 촉수처럼 놓일 때까지. 작달막하고 달콤한, 붉게 농익은 핑거 바나나, 그것으로 너의 입술을 조심스레 벌린 뒤 껍질 벗겨진 바나나를 포도처럼 짙은 보랏빛 꽃 속에 밀어넣는다.
나는 네 갈색 다리 사이에 누워 너를 안은 채 네 익숙한 숲속을 천천히 혀로 더듬어 느릿느릿 핥고 삼켰고, 네 강인한 몸이 자아내는 깊은 파형과 밀물과 썰물 같은 움직임은 바나나를 으깨어 전류가 흐르는 네 몸의 즙에 뒤섞인 베이지색 크림으로 만들었다. 또 한 번 우리의 몸은 구부린 발가락 끝에서부터 혀끝까지 표면이란 표면은 전부 서로의 뼈대에 맞닿고,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낸 격렬한 리듬에 사로잡힌 채 천둥이휘몰아치는 공간을 가로질러 서로를 몰아가 서로의 혀끝에서 빛이 되어 뚝뚝 떨어졌다. - P431

세상에는 사라지지 않는, 우리가 의지하는 진리들이 있다. 여름철엔 해가 북쪽으로 움직인다는 것, 얼음은 녹으면 작아진다는 것, 휘어진바나나가 더 달다는 것. 아프레케테는 나에게 나의 뿌리를, 우리가 가진여성의 몸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가르쳐주었고, 여태까지 나는 그 정의를 배우기 위한 훈련을 해왔을 따름이었다.
여름이 다가왔을 무렵 아프레케테의 아파트 벽은 옥상에서 전해지는 열기 때문에 늘 따뜻했으며, 창을 통해 불어온 우연한 바람은 창가의식물들을 살랑 흔들고 사랑을 나눈 뒤 휴식 중이던 우리의 땀에 젖어 미끈한 몸을 쓸고 지나갔다. - P432

때로 우리는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비록 수시로혀를 깨물며 침묵해야 한다 해도 태풍의 눈 속에서 그것이 얼마만큼 위안인지 이야기했다. 아프레케테한테는 일곱 살 난 딸이 있었고, 그 애는조지아에 사는 어머니 집에 있었고, 우리는 수많은 꿈을 함께 나눴다.
"그 애는 사랑하고 싶은 그 누구나 사랑할 수 있게 될 거야." 아프레케테는 맹렬히 말하며 럭키 스트라이크 담배에 불을 붙였다. "마찬가지로 그 애는 원하는 그 어디서든 일할 수 있게 될 거야. 그 애 엄마가 눈똑바로 뜨고 지켜볼 테니까."
한번은 흑인 여성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적군의 근거지에서 활동에임하는 데 전념하는 일이 너무 많고 또 잦다고, 이러한 반복되는 전투와활동으로 우리의 정신적 지형은 약탈당했으며 지쳐버렸다고 이야기한적도 있었다. - P432

해는 먼지 낀 유리창을, 아프레케테가 세심하게 가꾼 수많은 초록식물들을 통과해 우리 위로 쏟아졌다.
나는 농익은 아보카도를 하나 찾아 들어서는 초록색 껍질 속에서단단한 씨앗을 품은 과육이 부드럽게 으깨질 때까지 양 손바닥 사이에서 굴렸다. 네 입술이 남긴 입맞춤 속에서 깨어난 나는 과일 껍질 탯줄 가까운 곳을 살짝 베어 물고 옅은 황록색 과즙을 짜내 코코넛 같은 네 갈색배 위로 가느다란 의례의 선을 남겼다. 우리의 살갗에 흥건한 기름과 땀덕분에 과일은 말랑거리고, 나는 과일로 네 허벅지 위와 양 가슴 사이를마사지한다. 마침내 연하디연한 녹색 아보카도의 베일, 내가 네 몸에서 느릿느릿 핥아낸 여신의 배 열매로 이루어진 너울 아래서 네 갈색이 빛처럼 배어나올 때까지. - P433

어느 날 제니는 내 무릎을 베고 있던 고개를 돌려 불편한 기색으로이런 말을 했었다. "있잖아, 난 가끔 엘라가 미친 건지, 멍청한 건지, 아니면 성스러운 건지 모르겠어."
이제 와 생각하면, 여신이 엘라의 입을 통해 무언가 말하고 있었던것 같다. 하지만 잔인무도한 필립 때문에 쇠약해지고 감각을 잃은 엘라는 자신이 하는 말을 믿지 못했고, 우리, 제니와 나는 오만하고도 유치하기 그지없었기에 (우리는 그저 아이에 불과했으니 그러고도 남았겠으나 저 - P434

비질하는 여인의 단조로운 노래에 우리의 생존이 달려 있을 가능성을알지 못했다.
ma나는 내 자매 제니를 잃었다. 내 침묵 때문에, 그 애의 고통과 절망때문에, 우리 둘 모두의 분노, 그리고 어린아이들을 파괴하는 세상의 잔혹함 때문에. 그것도 반항적인 제스처나 희생, 영혼이 새로운 삶을 얻으리란 희망 때문조차 아닌, 그저 이 파괴에 대한 무지와 무심함 때문에나는 그 잔혹함으로부터 도저히 눈을 돌릴 수 없었고, 정신건강에 대한널리 퍼진 한 가지 정의에 따르자면 그 때문에 나는 정신적으로 불건강해졌다. - P435

수영장아프레케테의 집은 모퉁이 근처의 가장 높은 건물에 있었다. 대로 한편에서 모닝사이드 파크의 높다란 절벽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하지절전날 밤, 달이 뜨자 우리는 담요를 챙겨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의 집은꼭대기 층이었고 암묵적인 약속에 따라 옥상은 지붕이 전달하는 열기를 견디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공간이었다. 옥상은 공동주택에 사는 이들의 주된 휴식공간으로 타르 비치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우리는 운동화 신은 발로 옥상 문을 차서 쾅 닫은 뒤, 뜨뜻한 벽돌굴뚝과 건물 전면의 높은 난간사이 공간에 담요를 펼쳤다. 유황 가로등이 등장해 뉴욕의 길거리에서 나무와 그림자를 지워버리기 이전이었으므로 거리의 가로등 불빛은 이렇게 높은 곳까지 닿지 못하고 희미해졌다. 길 건너편 공원에서 우뚝 솟아 뚜렷한 윤곽을 드러내는 노출된 현무암과 대리석 절벽이 묘하게 가깝고 또 도발적으로 보였다. - P435

서로의 축축한 가슴에 파고들어 달을, 영광을, 사랑을 나눴다. 거리로부터 뿜어져 나온 유령처럼 흐릿한 가로등 불빛과 보름달이 뿌리는달콤하고도 차디찬 은빛은 밀물의 바다처럼 성스러운, 땀에 젖어 미끈거리는 우리의 검은 몸을 너나없이 거울처럼 비추었다.
비스듬히 쳐든 그의 허벅지 위로 달이 떴던 것이, 빛이 어룽진 처녀의 숲을 이루는 곱슬곱슬한 덤불 속에 반사된 빛을 내 혀가 담았던 것이 기억난다. 나는 네 커다란 홍채 한가운데에 박힌 새하얀 동공 같던 보름달이 기억난다.
달이 사라지고, 내 위로 몸을 굴려 올라오는 네 눈이 새까매지고, 나는달의 은빛 광채가 내 눈꺼풀을 더듬는 너의 젖은 혀와 뒤섞이는 것을 느꼈다.
아프레케테, 아프레케테, 우리가 여자의 힘으로 감싸여 잠들 수 있는그 교차로까지 나를 몰아가줘. 우리의 몸이 맞닿는 소리는 모든 낯선 이들과 자매들의 기도이기에, 교차로마다 버려져 폐기된 악마들은 우리의 여정을 쫓아오지 못할 거야, - P436

7월 몇 주간 아프레케테를 만나지 못했고, 그의 집에는 전화가 없었으므로 나는 업타운으로 그를 찾아갔다. 문은 잠겨 있었고 층계참에서소리를 질러 불러보았지만 옥상에도 아무도 없었다.
일주일 뒤 포니 스테이블 바텐더 미지가 아프레케테가 주었다는 쪽지를 내게 전했다. 9월 내내 애틀랜타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으며, 한동안 어머니와 딸을 보러 간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한데 모이면 뇌우가 되어 터지는 요소들처럼 짧은 시간이지만 흠뻑 젖은 채 하나가 되어 에너지를 교환하고 전류를 나누었다. 그뒤에는 헤어지고, 지나치고, 개선되었고, 더 나은 교환을 할 수 있도록스스로를 다시금 빚어냈다.
그 뒤 나는 다시는 아프레케테를 만나지 못했으나, 그의 흔적은 반향과 힘을 담은 정서적인 타투로서 내 삶에 남아 있다. - P437

내가 사랑한 여자들은 저마다 나에게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나 자신의 일부면서도 나와는 별개인, 너무나도 다른 나머지 그를 알아보기위해서 자라나고 뻗어나가야 했던 귀중한 일부분을 내가 사랑했던 자리에. 그렇게 자라다가 우리는 헤어짐에 이르렀다. 모든 것이 시작되는자리다. 또 다른 만남.
1년 뒤, 나는 사서 학교를 졸업했다. 나 다음으로 이곳을 찾을, 쉼터가 필요할 그 누군가를 위해 현관문을 잠그지 않고 집을 떠난 뒤 마지막으로 7번가를 걸으며 1960년의 첫 여름이 저물었다. 욕실 변기와 욕조 사이의 벽에는 미완성의 시 네 편을 끄적거려두었고, 나머지 시들은창문의 세로 기둥에, 꽃무늬 리놀륨 아래 나무 바닥에 쓰인 채 유령처럼희미하게 남은 다채로운 음식 냄새들로 뒤덮이고 있었다.
이 공간이라는 껍데기가 7년간 나의 집이었다. 죽은 세포가 새로운세포로 교체되며 인간의 몸이 완전히 재생되는 데 필요한 시간인 7년.
그리고 그 7년 동안 내 삶은 점점 더 여성들의 터와 다리가 되어갔다.
자미. - P439

자미, 친구이자 연인으로서 함께 일하는 여성들을 부르는 캐리아쿠식이름.

우리는 그 전통을 이어간다. 웨스트체스터의 새 아파트에 가져갈적십자 소금 몇 상자와 옥수숫대로 만든 새 빗자루를 산다. 새로운 일자리, 새 집, 오래된 삶을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는 새 생활. 내게 본질을불어넣어준 여자들을 언어로써 다시금 창조하면서.

마 리즈, 들로이스, 루이즈 브리스코, 안니 이모, 린다, 제너비브. 천둥이자 하늘이고 태양인, 우리 모두의 위대한 어머니인 마울리사. 그리고 그의 가장 어린 딸이자, 장난기 많은 언어학자, 변신가, 최고의 사랑인, 우리모두가 되어야 하는 모습이 아프레케테 - P440

이 이름, 자아, 얼굴들이 노동하기 전의 옥수수처럼 나를 먹여 살렸다. 나는 나의 일부인 그들을 살아가고, 주요한 핵심이자 우리 모두의삶을 예지하는 시각인 시를 쓸 때 말을 고르는 것과 똑같이 깊은 관심을담아 이 말을 고른다.


한때 집은 무척이나 먼 곳, 단 한 번도 가지 못한, 오로지 어머니의입을 통해서만 알던 장소였다. 그곳이 더는 내 집이 아니게 된 뒤에야나는 캐리아쿠의 위도를 알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다른 여성들과 눕는 일이 내 어머니의 혈통을 타고 전해지는 일이라고 한다. - P440

감사의 글


삶을 가능케 한 모든 이들에게 진 빚을 잊지 않고 살고 싶다.
이 책이 형태를 갖출 수 있도록 꿈, 신화, 이야기를 나누어준 여성들각각에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진심으로 감사한다.
특히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이들이 있다.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용기, 그리고 대답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준 바버라 스미스. 제3의귀로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준 체리 모라가. 그리고 두 사람이 편집과정에서 보여준 배짱에도 감사한다. 내가 적절한 책을 들고 두 번째 도전을 했을 때 그 자리에 있어준 진 밀러. 섬사람의 귀, 초록 바나나,  - P441

그리고 세밀하고 날렵한 연필을 지닌 미셸 클리프 캐리아쿠를 방문해 이야기를 전해준 도널드 힐. 내 역사가 악몽을 넘어 미래를 위한 구조물이될 수 있도록 이끌어준 블랜치 쿡.모계보를 통해 나와 연결된 클레어 코스. 언어가 일치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그럴 것이라믿었던 에이드리언 리치 내 나날을 이어 붙여 노래들을 만들어준 이들.
차이 중의 차이를 처음 만들어준 버니스 굿맨. 모든 것을 참고 견디고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프랜시스 클레이턴. 영원에 이름을 붙여준 매리 - P441

언 메이슨. 내가 단순함을 유지하는 걸 잊지 않게 해준 베벌리 스미스.
나의 전투와 생존에 있어 최초의 원칙을 알려준 린다 벨마 로드. 내가솔직하고 현재에 걸맞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해준 엘리자베스 로드롤린스와 조너선 로드 롤린스, 마 마리아, 마 리즈, 안니 이모, 시스터 루를비롯해 내 꿈을 교정해준 벨마 집안의 여성들, 그리고 아직은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 밖의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 P442

옮긴이의 글


1934년 그라나다 출신의 미국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오드리 로드는 평생 인종주의와 성차별, 동성애혐오와 싸워온 흑인 페미니스트이론가이자 활동가, 그리고 시인이다. 1968년 첫 시집 《최초의 도시들The First Cities》을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시인으로서의 명성을 얻었으나그가 본격적으로 더 많은 독자들에게 이름을 알리고 흑인 페미니스트로서 활약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에 와서다. ‘레즈비언이자, 어머니이자, 전사이자, 시인‘ 등의 수많은 이름으로 스스로를 정의했던 로드는중첩되는 정체성이 빚어내는 다채로운 삶의 형태를 긍정하고 ‘차이를가로질러 함께 손을 맞잡을 때 생기는 다양성의 힘을 운동의 동력으로삼은, 훗날 교차성intersectionality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된 페미니즘 이론을 일찍이 주장하고 실천한 사람이기도 하다. - P443

때로 우리는 이런 인물들을 처음부터 완전하게 형성된 모습으로 상상한다. 마치 서너 살의 어린 오드리 로드가 진짜가 되기를 염원하며 밀가루 점토로 빚고 색칠하고 향을 입혀 만든 사람의 형상처럼 (4장), 처음부터 인상적이고 위대한 모습으로 나타나 1970년대 페미니즘에 목소리를 내며 줄곧 흐름을 주도한 사람처럼 말이다. 《자미》에는 그가 우리가 익히 아는 사람이 되기 전의 모습들이 담겨 있다. 그는 뉴욕에 사는서인도제도 이민자 가정의 막내였고, 두꺼운 안경을 통해 세상을 보는아이였으며, 나아가 위험한 저임금 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젊은 여성이자, 1950년대 뉴욕의 레즈비언 신을 누비며 환대에 반드시 따라오는차별을 감지하던, 갓 정체화한 레즈비언이기도 했다. 《자미》는 이 기념비적인 인물이 우리가 아는 모습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다. 또한 그가 어떻게 시인이 되었는가를 설명하는 대신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 P444

《자미>의 원서 표지에는 자서전이나 회고록 대신 ‘자전신화 biomythography‘라는 생경한 설명이 붙어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회고록은 대개가 한 사람의 성장 과정을 선형적 시간 순서대로 다루며 삶의 특정한 한 국면에 초점을 맞추는 서사다. 이 책 역시 어린 시절부터젊은 여성으로 성장하기까지를 시간 순서대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회고록의 플롯을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그가 이 서사의 시작, 즉 자신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향신료 가득한 서인도제도의 섬에서 서로를사랑했던 여성들이다. - P444

<자미》가 출간된 것은 오드리 로드가 이미 퀴어 페미니스트 지식인이자 활동가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던 1982년이지만, 《자미》의 서사 속에서는 젊은 오드리가 곧 시인으로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거나, 이후 그가 평생을 헌신한 투쟁의 장에 뛰어들었다는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다. 그 대신 1960년대의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아프리케테와함께 이 책 역시 끝을 맺는다.
그러니까 오드리 로드라는 존재 역시 한 가지 결정적인 정체성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학교를 시작으로 경험하는 첫 불편한 자각에서부터, 대학을 마치지 못한 데다가 타이핑을 할 줄 모르는 흑인 여성이 현실적으로 마주하던 일자리의 제약, 매카시즘이 득세하던 1950년대 미국에서 젊은 급진주의자로 각성한 경험, 그리고 그리니치빌리지의 레즈비언 바의 생생하고 풍요로운 풍경들이 차례차례 등장하고, 시와 꿈, 다호메와 아보메의 여신들, 기억인 것 같기도 하고 상상인 것 같기도 한 짤막한 단편들이 그 사이에 끼어든다. - P445

한편, 《자미》의 서사는 어린 시절의 어머니 또는 그의 근원을 이루는 신화에 도사린 여성들을 시작으로 삶 전반에 흩뿌려져 있던 다양한여성들과의 관계를 통해 앞으로 나아간다. 에필로그를 여는 첫 문장처럼, 오드리 로드가 사랑했던 여자들은 그에게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이런 관계들은 점을 차례차례 이어 그림을 그려내듯 끊김 없이 유연한 선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그려간 그림들이 겹쳐지고 또 짙어지면서, 훗날우리가 알게 되는 오드리 로드의 모습이 어렴풋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오드리 로드가 스스로에게 써주고 싶어 했던 신화는 그런 식으로이루어진 것이었으리라. 《자미》는 우리가 알고자 하는 사람을 선명하고 단호한 선으로 그려내지 않는다. 때로는 망설이고, 때로는 대담하게,
그때그때 수선해 입는 옷을 걸친 채 춤을 추고(13장), 낯선 소리와 냄새를 들이마시며 어두운 피부를 자랑스레 드러낸 채로(21장), 자신을 끊임없이 바깥과 연결하고자 시도하는 모험이다. - P445

오드리 로드는 <성애의 발견>에서 "나에게 좋은 시를 쓰는 것과, 내가 사랑하는 여성의 몸에 쏟아지는 햇살 속으로 걸어 들어가 함께하는것은 아무 차이가 없다"고 썼다(《시스터 아웃사이더》). 그에게 에로틱한것이란 여성에게 내재된 고유의 힘이며, 외부의 제약 없이 삶을 꾸려가기 위한 자원이다.
《자미》를 읽고 우리말로 옮기는 동안 젊은 흑인 레즈비언 여성으로서의 오드리 로드를 만나볼 수 있다는 기대로 설렜다. 여성들과의 에로틱한 관계, 그리고 레즈비언 여성들의 연대에 대한 기록은 《자》라는 자전신화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오드리 로드의 생각과 시론, 그리고 그가 살아온 용감하고도 위태로운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향신료를빻는 절구의 리드미컬한 움직임 속에서 (11장), 자신 안에서 침묵하던 에로틱한 힘을 끄집어내고 나아가 서로에게 그 힘을 불어넣는 과정을, 또여성을 향한 깊은 사랑과 육체적 마주침을 통해 나눈 강렬한 기쁨을 함께 읽을 수 있어서 기쁘다. 《자미》를 통해 우리가 다시 한번 힘을 주고받을 수 있기를, 외로움과 차별에 저항하는 새로운 방법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뿐만 아니라 사랑을 통해 스스로를 발견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미>가 영감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 P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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