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게 아니라 선택은 인류의 오랜 숙제였다. 세계가 지금과 같은 모양으로 존재하는 것은 그간 인류가 해왔던 선택의 결과가 그러하기 때문이며, 당신과 내가 지금 이 모습으로 존재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있다. 삶은 선택,이라고 말해도 전혀 어색할 것이 없다. 죽느냐 사느냐를 고민하던 햄릿부터 인생에는 간 길과 가지않은 길, 두 길이 있노라 노래한 로버트 프로스트,〈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에 이르기까지 선택을피해 갈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선택에 능한 사람과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은 있을지라도.
- P188

그때 구직 활동을 계속했더라면 지금과는 다른인생을 살게 되었을까. 그러나 그런 경험은 한 번으로 족하다, 그 길은 내 길이 아니다 결론 내리고 곧바로 대학원에 진학해 시를 썼고, 숱한 탈락과 경제적곤궁 속에서도 그 선택을 후회해본 적은 없다. 문을열면 낯선 곳이었고 아 여기가 아니구나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다시 돌아간다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읽고 쓰는 자로 살아가는 삶을. 무엇보다 시를.
선택은 테니스 경기가 아니어서 아무리 좋은 라켓으로 공을 쳐 넘긴들 반대편에서 돌아오는 공은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던지고 또 던져도, 사라진 공은 사라진 공일 뿐이다. 결혼을 결심하고, 이사할 집을 고르고, 반려 화분을 들이고, 스스로 세상을 등진친구를 보러 가기 위해 기차를 탈 것인가 비행기를탈 것인가를 고민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누구나 라켓을 든 혼자다. 언제나 밤은 쉽게도 왔고. - P190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더 파괴되거나 그나마 덜 파괴되는 쪽, 최악과 차악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괜찮다. 내게는 시가 있으니까. 시는 파괴의 잔해들, 파쇄되고 폐기된 시간을 그러모으는 손으로 쓰이니까.
우는 손이 슬픔을 알아보고 쓰다듬는다. 악몽에 시달리는 손이 빛을 뒤적인다. 열매를 위해서 적화했던 순간들을, 손은 전부 기억한다. - P192

평소 꽤나 건강한 편이라고, 못먹는 음식이나 알레르기 같은 건 없다고 자신해왔는데 이럴 수가. 서른여섯 해나 데리고 산 몸뚱이인데도 나는 나를 참 모르는구나 싶었다.
불쑥 머리를 스치는 문장이 있었다. 몇 년 전에쓴 〈비롯〉이라는 시의 한 구절, "보드라울 줄 알고겁 없이 만진 복숭아 때문에 / 벌겋게 부어오르는손이 있다는 것 / 그건 조심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손의 주인도 알지 못하는 시간의 일이라는 것"이라는 문장이었다(《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 현대문학, 2019). 아직 오지 않은 시간, 우리가 흔히 미래라고부르는 시간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혼자 상상하며 써 내려간 문장이었는데 그 문장을 이런 식으로 겪게 될 줄은 몰랐다. 복숭아가 마로 바뀌었을 뿐 부어오른 손은 시에만 존재하는 상상의 손이 아니라 진짜 내 손이었던 것이다. - P194

그런데 정말 그럴까. 묘실은 멀리에, 육체적 죽음 이후에만 가능해지는 공간일까. 묘실이 한 존재의 죽음을 담는 그릇이라면, 산 자에게도 얼마든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린 매일매일 이별하고 매일매일 죽으며 살아가는 존재들이니까. 일력을 떼어내듯 자정이 되면 나를 한 겹씩 벗겨내고, 벗겨낸 만큼단출해진 영혼으로 또 하루를 맞이하는 존재들이니까. 투명한 허물을 담아놓는 옷장, 어제의 허물과 마주 앉아 밥 먹는 식탁, 허물 위로 허물이 쌓여가는 침대.… 그렇게 무한 증식하는 나의 작은 죽음들, 허물들의 거처인 내 작은방, 현관을 나서면 이어지는 미로 같은 골목들, 나의 반경, 이 좁디좁은 세계가 전부묘실인 것은 아닐까. - P200

우주에서 보면 지구는 작고 푸른 구슬, 희미한 얼룩, 오래전 잊힌 무덤일지도 모르겠다. 여기 아직 사람이 살아요. 가망 없어 보이지만 숨겨진 보물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메이데이, 메이데이, 난파 구조신호를 보내며 발굴을 기다리는 섬.
내가 쓸 수 있는 건 죽음 이후가 아니라 죽음 같은 삶으로부터 기인한 문장이다. 이 거대하고도 비좁은 묘실에서 보물인 줄도 모르는 보물들과 종종거리며 살아가는 이야기. 헛되고 헛되다는 말을 반찬삼아 갓 지은 밥 앞에서는 주먹을 불끈 쥐는 이야기.
고고학자나 철학자의 사유보다는 허무맹랑하겠지만 그래도 이따금 정해진 선로를 이탈해 우주 바깥으로 상상적 여행을 떠나게 하는 시의 이야기. - P201

말은 그렇게 해도 내심 이런 마음을 더 크게 품고있다. 세상의 기준과는 다른 나만의 ‘도량형‘을 가질수 있다는 건 정말이지 근사한 일이라는 생각. 헥타르, 그램, 마일, 톤, 미터..… 세상엔 수많은 단위들이있다. 하지만 그런 도량형들로 우리 마음의 길이, 부피, 무게를 재기에는 역부족이다. 글을 쓰는 행위는수치화가 아니라 형태화에 관여한다. 이 세계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측량하고 자신만의 시각과 목소리로 변환해내는 작업. 한 시인의 개성이란 그가 어떤도량형을 가졌는지에 달려 있대도 과언이 아니다.
감정이든 풍경이든 시간이든 일단 뭔가를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그것을 계측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강보에 싸야 하는 아이를 포일이나 사포로 휘감아 내민다고 생각해보라.  - P251

이 참 달게 들렸다.
Zank라는 단어는 사전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을것이다. 이런 단어들을 맞닥뜨릴 때마다 가슴이 쿵쾅거린다. 세상에 없는 단어들, 살아가는 과정에서발명되고 발견되며 나만의 사전에 새로이 등재되는단어들이 더욱더 많아지기를. 시 쓰기를 업으로 하는 만큼 사전을 늘 가까이 두고 시도 때도 없이 들춰보는 형편이지만 같은 이유로 나의 언어가 사전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늘 꿈꾼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단어의 문을 열어보는 쪽으로 나의 시가 움직였으면 - P256

좋겠다" (<빚진 마음의 문장>,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
현대문학, 2019)라는 고백은 여전히 유효하다. 한 단어의 문을 열면 단어가 품고 있는 거대한 우주가 시작되고, 나는 우주선을 탄 듯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배면, 후면, 이면, 내면, 그 모든 것을 품고 있는 세계를 유영하다 보면 삶은 한껏 자유로워지고, 나의 몸도 아름다움 쪽으로 들어 올려지는 기분이다. - P257

시인이 가진 물욕이 있다면 단어에 대한 ‘점거욕‘
이 아닐까. 한 시인을 떠올리면 곧장 연상되는 시나단어, 이미지가 있다는 건 시인으로서 얼마나 복된일인지. 내게 한강 시인은(소설가 말고 시인!)은 ‘파란돌‘의 시인이고 김혜순 시인은 ‘첫‘이라는 단어를 독점한 시인이다. 허수경 시인은 ‘레몬‘의 다른 이름이고 리베카 솔닛은 ‘살구‘의 왕이다. 과일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지난 학기에는 학생들과 ‘과일 시편‘을써보자며 각자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기도 했었다. 너의 과일은 무엇이니. 너는 어떤 향과 맛으로 물크러지는 사람이니. 온갖 과일의 이름이 나열되는 동안, - P257

비파나 유자가 내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은밀히 생각했었지. 사실 레몬을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그건 이미 허수경 시인의 것이니까.
틈만 나면 고민한다. 그렇다면 나는? 나에게는 어떤 단어가 있지? 언젠가 동료 시인과 진행한 라이브방송에서 이 화두로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생각 없이 ‘여름‘이라고 말했다가 혼쭐이 났다. 무려일 년의 사분의 일을 혼자 다 해 먹겠다는 거냐고. 욕심도 많다고.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아무려나 지난 시집 제목을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으로 삼은이상 여름의 비좁은 틈새에 발가락 하나라도 걸치고있었으면 좋겠다. 어림없는 소리라면, 이제부터라도나의 단어를 열심히 찾아 나서야겠지. - P258

그러니까 이 책은, 나만의 단어를 찾기 위해 이런저런 가능성을 타진해본 연습장이자 놀이터였다. 뒤척이며 애를 쓴 원고임에도 쓸 때마다 자신이 없었음을 이제는 고백해야겠다. 내가 쓰는 글엔 문학이없다고, 가볍고 하찮기만 하다고 징징댄 밤도 여럿 - P258

이다. 빨리 끝이라고 적은 뒤 나를 짓누르는 모든 불안과 걱정으로부터 해방됐으면 싶었다. 그러나 글쓰기에 있어 요행은 없다. 투명한 피부를 가진 사람은실핏줄까지 들여다보인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은 그런 글이었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글. 속이지 않는 글. 그러므로 말간 글. - P259

이 책의 목적이 ‘끝‘에 있었다면, 책의 끝남과 동시에 단어들도 캄캄한 땅속에 묻힐 것이다. 그러나나의 노트에는 여전히 수십 개의 단어가 적혀 있다.
심지어 매일 한두 개씩 불어난다. 단어들은 아우성친다. 나도 써줘. 내 이야기도 해줘. 왜 나는 선택해주지 않는 거야! 쓰는 자에겐 오직 ‘끗‘의 상태만 있다. 끗은 안온함이나 홀가분함과는 거리가 멀다. 끗은 ‘첫‘만큼이나 위태로운 단어다. 한 끗 차이로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이야기는 과장이 아니다. 끗은 우리를 긴장하게 만든다. 끗은 타협하지 않는다.
끗은 무시무시하고 책임이 따르는 단어다. 끗은 매듭이 아니다. 끗은 파도처럼 밀려와 순식간에 우리 - P259

를 덮치고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린다.
끝을 갈망하는 이에게 끗이라는 단어를 안겨주는건 외발자전거를 탄 곡예사에게 저글링을 시키고 불붙은 훌라후프를 통과해보라는 명령일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두려울 것이다. 고독하고 힘겨울 것이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끝!‘이라 쓰면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는 선생님은 이제 없다. 살아 있는 한 끝은 영원히 유예된다. 끝은 죽은 자의 것. 그러니 나는 끝이 아닌 끗의자리에서, 끗과 함께, 한 끗 차이로도 완전히 뒤집히는 세계의 비밀을 예민하게 목격하는 자로 살아가고싶다. 여기 이곳, 단어들이 사방에 놓여 있는 나의 작은 놀이터에서. -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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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다 지구에 있는데 나 혼자 지구 바깥에, 우주에 있는 느낌이 들어" 너를 만난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그 말이 불쑥불쑥 떠오른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빨래를 널다가도 멍하니 서 있게 돼. 이름에 진실되다는 의미의 한자어가 들어 있어 이렇게 사는가보다고, ‘거짓 가(假)‘자가 들어간 이름이었다면 조금 다르게 살지 않았겠냐고 무심한 듯 말하던 너. 오래 준비하던 일이 잘 되지 않아 속상했을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내내 나의 마음도 빗물에 오래 담가 둔 이불처럼 눅진하고 무거웠어. - P180

홀로 우주에 있을 너에게 나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먼저 누군가의 상심과 좌절에 무엇을 보태거나 덜어내는 일이 근본적으로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나는 네가 쥐고 있는 단어가 추방, 박탈, 탈락, 소외감 같은 단어가 아니길 바라지만 우주는 너무 거대하고 공허하고 추운 공간이니까. 그곳에서 너의 시간이 어떤 속도로 흐르는지 알지 못하니까. 희망, 긍정, 열정, 목표 같은 단어들을 억지로발에 묶어 지구로 끌어당기고 싶지도 않으니까. 네앞에선 아무 말도 못 하거나 아무 상관없는 소리만늘어놓게 되는 것 같다. - P181

그래서 편지를 써. 거긴 위험한 곳이니 하루빨리돌아와야 한다는 이야기 같은 건 안 해. 그저 네가 그곳에서 숨 쉬기 불편하지 않게 산소통이라도 가득채워주고 싶은 마음일 뿐. 그래도 내가 쓰는 사람이라는 것이 다행일 때가 있어.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이야기를 계속 찾게 된다는 것이 사실은 오늘도 너에게 이 이야기를 하려고 글을 시작했어. <굴〉(《프란 - P181

츠 카프카》, 현대문학, 2020)이라는 카프카 소설에 관한이야기야. 다른 대표작들에 비해서는 생소할 수 있는 작품이지만 흥미로운 점이 많은 소설이었어. 카프카가 죽기 바로 전에 쓴 소설이라고도 하고 미완성이라는 말도 있지. 이쯤 되면 스토리를 맛깔스럽게 설명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러기가 참 난감해. 왜냐하면 스토리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거든. 땅속에굴을 파는 ‘나‘가 있어. 그게 다야. 시작부터 끝까지굴속에서 굴만 파다 끝나. 스토리를 따라 읽어야 하는 소설이 있고 구조 자체가 곧 메시지인 소설이 있잖아. 이 소설은 말하자면 후자에 속하는 듯해. 내용이 아니라 형식을 봐야 하는 소설. - P182

재미있었냐고? 그럴 리가. 사건이랄 것도, 돋보이는 캐릭터나 인상적인 대화랄 것도 없는 소설이었는걸. 굴속에서 혼잣말하고, 있지도 않은 침입자의 존재를 두려워하고, 그런 두려움 속에서 또 굴을 파고.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여름인지 겨울인지도 모르겠는 소설에 대고 재미를 운운할 수는 없지. 단편치고 - P182

는 길이도 꽤 긴 편인데, 몇 장을 건너뛰고 읽어도 계속 굴속에서 굴만 파고 있는 거야. 진전되지 않는, 공회전하는 듯한 느낌이 어찌나 답답하던지. 미궁에빠진 기분이었어. 폐소공포증 있는 사람은 아마 못읽을지도 몰라. 나중에는 오기가 생기더라니까? 같은 문장을 두 번 세 번 읽는 고통을 감수하면서 (응?
여기 아까 읽은 거 같은데?) 어찌어찌 완독을 하고 나니간신히 비상구 밖으로 빠져나온 기분이 들더라. 소설이라 얼마나 다행이야? 책을 덮으면 어쨌든 사라지는 세계라는 게 실제로도 창문을 활짝 열고 바람을 실컷 맞았어. 겨울의 매서운 칼바람이었는데도말이야 - P183

굴속 같은 현실을 반영한 알레고리로 이 소설을이해하는 건 너무 뻔한 독해 같아. 이렇게 암담한 게현실이지, 아무렴. 그런 닳고 닳은 말을 하려고 꺼낸이야기도 아니고. 내게 흥미로웠던 건 그 소설에 등장하는 ‘벼락닫이‘라는 표현이었어. 세상으로부터단절된 주인공에게 연상된 창문의 형태가 바로 그 - P183

벼락닫이였거든. 사전에도 등재되어 있더라. ‘위짝은 붙박이고 아래짝만 오르내려 여닫는 창문‘을 일컫는 말이래. 같은 뜻으로 ‘들창‘이라는 우리말도 있는데 벼락닫이라는 옛말이 훨씬 인상적인 것 같아.
어쩌다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벼락처럼 닫히는 문.
문은 문이 난관이 따르는 문. 절반만 허락된 문신이 인간에게 허락한 창문은 그 정도일 뿐이라는 말이었을까. - P184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곳이 굴속이든 바닷속이든 우주이든, 인간에겐 누구나 창문이 필요한 것 같아. 각자가 필요로 하는 창의 모양이나 크기도 제각각이겠지. 언젠가 시에도 쓴 것처럼, 나는 내 영혼이문도 창도 없는 새하얀 방 안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자주 해. 내가 영영 잃어버린 것들, 다시는 돌아올 수없는 시간들을 떠올릴 때마다 어김없이 소환되는 공간이야. 마치 너의 우주처럼 말이야. 거길 떠나고 싶었는데 안 되더라. 결국은 도돌이표처럼 되돌아오게되더라고.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었어. 이제 더 이상 - P184

다른 세계로의 탈출을 꿈꾸지 않고 그냥 거기, 그 방의 "흰 벽에 빛이 가득한 창문을 그리기로(면벽의 유령》,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갇혀 있어도, 천국이 아니어도 지워지면 그만일 창문이더라도, 내가 분명히그렸고 그 과정이 진실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생각.
<굴>의 주인공에게 연상된 문처럼, 제아무리 굴속물속 마음속이라 해도 창을 내는 일이 불가능한 건아니잖아.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실질적, 물리적인 창문이기도 하지만 존재론적이고 심리적인 창문일 경우가 훨씬 많으니까. 어쩌면 벼락닫이를 통한 환기는불완전한 것일지도 모르겠어.  - P185

위짝은 붙박이니까 실질적으로 열리는 문은 아래쪽, 즉 절반에 불과할 테고, 혹 고정 핀이 부러지기라도 한다면 캄캄하게 닫혀버릴 수도 있겠지. 그렇더라도 그 방식이 최선인순간이 있었겠지? 그런 모습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우주에 적합한 창은 어떤 방식일까? 궁금하다. 다 - P185

음에 만나면 네가 꿈꾸는 창문의 구체적인 형상과여닫는 방식에 대해 들어보고 싶어. 그리고 이건 공공연한 비밀(?)인데, 난 네 이름이 참 좋아. 이름에거짓이 없어서 도망갈 구석이 하나도 없는, 전부이고 전체여야 하는 그런 진실함이 온통 너여서.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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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내가 돈을 받은 최초의 작품이자 출판된 두 번째 작품이다. 또한 확실히기억나지는 않지만 내가 쓴 서른 번째인가 마흔 번째 작품이다. 글을 모르던 다섯 살짜리 여동생이 주변에서 얼쩡대는 게 귀찮아진 테드 오빠가 내게 읽기를 가르쳐준 이후로 줄곧 나는 시와 소설을 썼다. 스무 살 무렵, 나는 쓴 글들을 출판사에 보내기 시작했다. 몇몇 시는 출판이 되었지만 서른이 될 무렵까지 소설은 제대로 출판되지 못했다. 내가 보낸 소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늘 반송되어 돌아왔다.
<파리의 4월〉은 1942년 《어스타운딩》지에 ‘지구 생명체 기원‘에 관한 이야기를썼다가 터무니없는 이유로 게재를 거절당한 뒤(나는 존 우드 캠벨과 잘 맞았던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판타지소설이나 SF로 인식할 수 있는 ‘장르‘로는 최초의작품이다. 열두 살 때는 게재를 거절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고도 마냥 기뻐했고서른둘이 되어서는 수표를 받고 매우 기뻐했다. ‘전문가주의‘는 미덕이 아니다.
프로란 아마추어가 열정 때문에 하는 일을 돈을 받고 하는 사람에 불과하다. 하지만 돈의 경제학에서 보면, 보수를 받는다는 것은 자신이 한 작업을 여러 사람이 알게 되고 읽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작가와 독자의 의사소통을 의미하는 것이고 또한 이는 예술가의 목적이기도 하다. 1962년에 이 작품을 사준 셀리골드스미스 랠리는 역사상 SF 잡지를 담당했던 그 어떤 편집자보다도 진취적이고 예리한 사람이다. 나는 셀리가 내게 이런 기회를 준 것에 늘 고맙게 생각하고있다.

배리 페니위더 교수는 춥고 어두운 다락방에 앉아 앞에 놓인 탁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탁자 위에는 책 한권과 딱딱한 빵 한조각이 놓여 있었다. 빵은 저녁식사였고, 책은 페니위더 교수 필생의 작업이었다. 둘 다 말라붙어 있었다. 페니위더 박사는 한숨을 쉬고 몸을 떨었다. 낡은 집의 아래층 셋방은 꽤 우아했다. 하지만 급기야 난방은 4월 1일 끊겼고 오늘은 4월 2일이었으며 밖에는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조금만 고개를 들어도 창문을 통해 땅거미 속에서 손에 잡힐 듯 가깝게 어렴풋이솟아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사각탑 두 개가 보였다. 페니위더박사가 사는 생루이 섬은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는 시테 섬 뒤쪽에 하류로 끌려가는 작은 나룻배처럼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니위더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는 너무나 추웠다. - P55

거대한 탑이 어둠에 잠겼다. 페니위더 박사는 우울했다. 박사는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책을 바라보았다. 이 책 덕분에 1년을파리에 머물 수 있게 되었다. 학과장은 뭔가를 출판하거나 아니면 관두라고 말했고, 페니위더는 뭔가를 써내는 쪽을 택했으며,
그 보상으로 1년 동안 학교를 떠나 있을 수 있었지만 대신 월급은 없었다. 먼슨 대학은 강의를 하지 않는 교수에게 급여를 줄만한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페니위더 박사는 저축한 돈을 긁어모아 파리로 왔다. 학생 때처럼 다락방에 살면서 국립도서관에서 15세기 문헌들을 읽으며 길가 밤나무에 꽃이 피는 것을 보며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아무 소용없는 짓이었다. 페니위더는마흔 살이었고, 다락방에서 혼자 살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았다.
진눈깨비는 막 봉오리 지기 시작한 밤꽃들을 망쳐놓을 터였다. - P56

하지만 라이터는 쓸데없이 짤깍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페니위더는 다시 한숨을 쉬고일어나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프랑스제 라이터 연료 한 통을 꺼내 온 다음 자리에 앉아 담요를 다시 고치처럼 몸에 감싸고 라이터에 연료를 채운 뒤 한 번 더 짤깍거려보았다. 액체연료가 주변으로 많이 흘러넘쳐 있었다. 라이터에 불이 켜지는 순간 페니위더 박사의 손목 아래쪽부터 불이 붙었다. "이런 제길!" 손가락 마디에서 푸른 불꽃이 솟아오르자 페니위더는 비명을 지르고 팔을 거칠게 휘저으며 펄쩍 뛰었다. "제길!" 페니위더는 소리치면서 운명의 여신을 저주했다. 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이람! 때는 1961년 4월 2일 오후 8시 12분이었다. - P57

"아닙니다. 아니에요. 전 미국에서 왔습니다. 그러니까.... 미래에서 왔습니다. 서기 20세기에서 말입니다." 페니위더는 얼굴을 붉혔다. 자신이 한 말이 바보 같아 보이기도 했고 사실 페니위더는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이 환상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지금 서 있는 방은 자기 방이면서도 새로운 방이었다. 500년이나 된 낡은 집이 아니었다. 청소는 되어 있지 않았지만 새집이었다. 그리고 페니위더의 무릎께에 있는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의 책도 새것으로, 부드럽고 낭창거리는 소가죽 표지에 금박 문자가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르누아르는 무대 의상이 아닌 집에서 입는 검은 가운을 걸치고 서 있었다…….
"좀 앉으시지요, 선생님." 르누아르가 말했다. 그리고 세련되면서도 가난한 학자답게 약간 어색한 태도로 덧붙였다. "여행때문에 피곤하시지요? 제게 빵과 치즈가 있습니다. 저와 함께나누어 드신다면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 P63

둘의 삶은 곧 안정되어갔다. 페니위더는 처음에는 붐비는 거리에서 좀 불안해하는 것 같았지만, 여분으로 있던 르누아르의검은 가운을 입으니 큰 키를 빼고는 그리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페니위더는 15세기 프랑스에서 가장 키가 큰 사람이었을 터였다. 생활 수준은 낮았고 사방에 이가 들끓었지만 원래부터 페니위더는 안락함을 추구하지 않았다. 페니위더가 유일하게 그리워했던 것은 아침식사와 함께하는 커피뿐이었다.  - P68

"진짜 마법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어요."
"그렇다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거죠?" 페니위더가 소리 질렀다. "도대체 왜 그 멍청하고 낡은 주문이 장에게, 우리에게 효력이 나타나는 거죠? 왜 그 마법이 다른 곳도 아닌 여기에서, 그리고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에게, 5천 아니, 8천 아니, 1만 5천년의 역사에 걸쳐 효력을 나타내는 거죠? 왜죠? 왜입니까? 그리고 자네, 대체 그 강아지는 어디서 온 거지?" - P75

르누아르가 좀이 슨 검은 가운을 입는 동안 키슬크는 자신의은색 튜닉을 실용적이면서 특징 없는 외투로 가렸다. 페니위더가 생각에 잠겨 목에 벌레 물린 곳을 긁는 동안 보타는 머리를 벗었다. 그리고 넷은 아침거리를 구하러 집을 나섰다. 연금술사와 성간 고고학자가 프랑스어로 말하며 앞서 가고, 갈리아에서 온 노예와 인디애나에서 온 교수가 라틴어로 말하며 손을잡고 뒤따랐다. 좁은 길은 붐볐고,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네 사람 위로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사각탑 두 개가 하늘을 향해 솟아 있었다. 옆으로는 센 강이 부드럽게 출렁였다. 바야흐로 파리는 4월이었고, 강둑에는 밤꽃이 피어 있었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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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노동자들


마르가리따
강물이 단단해지면 저 강을 건너 돌아가자
먼바다에 겨울 폭풍우 내륙 깊숙이에는 서리 먹은 바람이
우리는 이름이 없는 자
이름 이전에 다만 살아 번식하며
아무런 계산에도 셈해지지 않는 자
그러나 나무들이 잎을 잃는 저녁이면
가슴이 울렁이고 구토가 났지
죽음 같은 잠을 자고 깨어나도 끝내 달라지지 않는 사실이 있어
오늘은 불길한 바이러스가 한쪽 눈으로 창궐하니
슬픔과 무관하게 한 눈으로만 울 수밖에
날마다 눈먼 올빼미는 태어나고
목말라 목말라 가슴을 쪼아대며 날마다 죽어갔지
씨앗이 가득 맺힌 들풀들과 병든 고춧대
가시 많은 장미들을 꺾어 묻던 시절이었어마르가리따 어딘가 집에는 방이 있다 했지우리 격렬했으나 선의의 심장은 찾을 길 없던 그때
마르가리따 삐라처럼 나부끼던 시절이었어 - P9

공장의 출구
동백꽃을 가슴에 달고


어느 봄날이면 살아야지 꽃잎들 많이는 말고 어깨며 발등 위로 산산이 떨어질 때 전생에서 불어온 바람 들판에 종일 불고 핏방울 점점이 꽃 무더기 피면 먼 옛날 먼 곳에서 와 다리 아래 굶어 죽은 낙타들 울음소리며 배꽃 아래비단 끈으로 목을 맨 그 여자 눈물도 없는 마지막 모습이 떠오르면 밤새 모래바람 불어 더듬더듬 흙벽에 잊을 수 없는 얼굴을 새기던 서역의 한 사내이거나 제 부족을 전쟁으로 몰살시키고 홀로 우는 병약한 부족장의 울음이 생각나면 무너진 왕궁의 기둥에 걸터앉아 바람 속에 바람 속에흰 머리칼만 날리는 무녀처럼 그런 바람이면 살아야지 그런 봄날이면 살자 했는데,


봄바람 치는 들판에 혼자 서 있는 것 같구나 나 자신에게만 도취되어 살았는데 더이상 그럴 수 없다면 도취된 내가 그리워하는 너도 없을 거야, 처음에 삿된 이름을 조가비에 적던 사람들은 어디서도 조가비를 구할 수 없어 가슴에 이름을 새겼지 산홋빛 공단리본 진주가 박힌 머리빗그 여자의 심장에는 제 이름자가 박혀 있었나 저 바람은북쪽에서 불어와 이름을 갖지 못하고 물길뿐이던 안개와 - P18

물의 땅으로부터 와 어쩐지 자꾸 울음이 나는데 눈물 없는울음도 울음일 수 있다면 소리 없는 노래도 노래일 수 있다면 바람은 침묵의 탑에 매달리고 한밤을 배회하는 짐승의 털 아무도 노래하지 않았나 자, 살자의 밤 - P19

가난하고 아름다운 사냥꾼 딸이 꿈을 헐어 전나무에 물을 주고 큰 배로 만들 때까지


진눈깨비 밤새 무섭게 온 아침

눈꽃 핀
눈꽃 나무 아래

폭신한 옷으로 겹겹이 무장한 누가
프롬나드한다

어디선가 앰뷸런스 싸이렌 소리
위급히 들리고

옛이야기처럼
착한 사람들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

모가지가 부러질까
서러운 나는

고양이 걸음으로
살얼음판을 걸어
고양이 밥을 구하러 간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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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고요하여라 The Mind is Still


마음은 고요하여라.
허언(言) 담긴 멋들어진 책들은 아무리 해도 부족하니.
아이디어란 돼지 구유 위를 맴도는
어지러운 파리 떼.

말은 나의 일. 하나의 돌을 30년간 깎고도 아직
내가 볼 수 없는 것의 심상을 끝내지 못했으니,
이 일을 마쳐 에너지로 변하도록
풀어 놓을 수가 없네.

나는 깎고 더듬거리지만
여느 새처럼 진실을 노래하진 않네.
매일 나는 심판에 들어
똑같은 반 토막 말을 더듬거리지.

그래서 무슨 일인가?
나는 손에 든 돌이 무겁다는 걸 이해할 수 있네.
아이디어는 구정물 위 파리 떼처럼 스쳐 날고.
나는 다른 돼지들 사이에 뛰어들어 배를 채우네.
마음은 고요한 채로.

(1977)

나는 시나 소설을 읽을 때처럼 즐겁게 논픽션을 읽는 일이별로 없다. 잘 쓴 에세이에 감탄은 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생각보다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게 더 좋고, 그 생각이 추상적일수록 이해를 못한다. 내 머릿속에서 철학은 우화로만 서식하고, 논리는 아예 들어오질 않는다. 그러나 또 문법 이해는 훌륭하다. 나에게는 문법이 언어의 논리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 사고방식의 이런한계는 최악이나 다름없는 산술 능력, 체스는커녕 체커도 두지 못하는 무능력, 어쩌면 음악 조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특성과도 관련이 있을지 모르겠다. 내 머릿속에 단어가 아니라 숫자와 그래프로표현된 개념, 아니면 ‘죄악‘이라든가 ‘창조‘ 같은 추상적인 말로 표현되는 생각들에 저항하는 방화벽이 있는 것 같다. - P9

나는 그저 그런것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해하지 못하면, 지루하다.
그런 까닭에 내가 읽는 논픽션은 대개 서사가 있다. 전기,역사, 여행, 그리고 서사적인 면이 있는 과학, 그러니까 지질학, 우주론, 자연사, 인류학, 심리학 등등의 과학. 구체적이면 구체적일수록 좋다. 그리고 서사성만이 아니라 글의 질이 나에게는 아주 중요하다. 옳든 그르든 간에 나는 따분하고 서툰 스타일은 곧 사고의빈한함이나 불완전함을 나타낸다고 믿는다. 다윈의 정확하고 폭넓고 탁월한 지력은 그의 명료하고 강하고 활력 있는 글로 표현된다고 본다. 그 글의 아름다움이 곧 지성이다.
이 말은, 내가 논픽션을 쓸 때 스스로에게 말도 안 되게 높은 기준을 세워 놓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서사가 아니면 쓰기가 힘든 데다 좋은지 나쁜지 판단하기도 어렵다. 나에게 소설이나 시를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 P10

쓰기도 하고, 쓰고 싶어 하며, 무용수가 무용을 하거나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씀으로써 채워진다. 소설이나 시는 나에게서 바로 뽑아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의문의 여지 없이 스스로를 그 글의 정확도와 정직성과 품질을 판단하는 데가장 적합한 사람으로 여긴다. 하지만 강연용 글이나 에세이를 쓰는 건 언제나 학업과 비슷하다. 그 글들은 스타일과 내용 모두 외부 평가를 받을 테고, 그게 당연하다. 내 소설이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지는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이 없지만, 내 에세이는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에 대해 나보다 훨씬 잘 아는 사람들의 판단을 받을수 있다. - P10

다행히도, 프랑스 문학과 다른 중세 로맨스 문학을 공부하면서 학문에도, 비평글을 쓰는 데에도 훌륭한 훈련을 받은 덕분에어느 정도는 자신감을 얻었다. 불행히도, 나는 감언이설에도 재능을 보였다. 통계의 눈보라로 꾸며 낸 실상을 묻는 류의 재능은 아니지만, 불완전한 생각을 너무나 우아하고 자신감 넘치게 표현하여자세히 살펴보기 전에는 그럴싸하게 만드는 스타일이라는 면에서감언이설이다. 거침없는 스타일이 꼭 표현하는 생각의 깊이에 기대어 나오는 건 아니다. 스타일을 이용해서 지식의 틈을 슬쩍 넘어가고 개념과 개념 사이의 허약한 이음매를 감출 수도 있다. 논픽션을쓸 때 나는 말이 제멋대로 흘러가서 부드럽고도 행복하게 나를 실상에서 먼 곳으로, 엄격한 개념 연결에서 먼 곳으로, 진실을 전혀다르게 표현하고 생각을 전혀 다르게 연결시키는 나의 조국, 즉소설과 시의 세계로 실어 가지 않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 P11

서평은 흥미롭고 부담스러운 글이다. 그리고 문학적으로나 다른 분야로나 더 넓은 문제들과 관련된 서평에서는많은 말을 할 수 있다.
싫은 책을 다룰 때만 아니면 서평 쓰기는 좋아한다. 서평을읽을 때는 바로 서점으로 달려가게 만드는 글이 최고지만, 잘 쓰고잘 맞는 악평도 귀하게 여긴다. 형편없는 책에 대한 죽여주는 평을읽으면 죄책감 없이 즐겁다. 그러나 악평을 쓰는 즐거움은, 저자에대한 동료 의식이며 고통을 가하는 것을 즐긴다는 데 대한 부끄러움 등 온갖 죄책감 탓에 우울해진다……. 그렇다 해도 내가 저자가뭘 하려 했는지 이해하고, 내 비평이 절대적이란 환상에 시달리지도 않는 한, 조악한 작품을 대충 넘어가 줄 수는 없다. 그런 이유로,
이 책에 실린 유일한 진짜 악평은 나에게 심각한 문제를 선사했다.
저자를 많이 존경했지만, 책은 놀라울 정도로 형편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걸 어떻게 평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친구인 소설가 몰리 글로스에게 호소했다. 어떻게 하지? 몰리는 그냥 플롯을이야기하면 어떠냐고 했다. 훌륭한 해결책이었다. 대마(大麻)를 충분히 공급하면 문제가 사라지리니. - P12

이 글들은 사실 모두 다양한 행사에서 다양한 청중들을 상대로 어쩌다 내놓은 조각글들이다.
주제는 책 속에 나오는 동물들, 만들어 낸언어, 잠, 내가 성장한 집, 아나키즘, 시를 읽는 방법, 그리고 어느 받침대에 대한 시까지 망라한다. 이 글들을 정리하는 가장 유용한 방법은 연대순배열이었다. 상당수는 이 책에 싣기 위해 살짝 손을 보았다. 원래글이 궁금하다면, 처음 출간된 곳이나 내 웹사이트에서 찾아볼 수있다.
공공연히 정치적인 글은 딱 두 편뿐이다. 하지만 로빈 모건‘ 같은 사람들에게 배웠다시피,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은 분리할 수 없다. 많은 글이 문학의 특정한 면을 옹호하는 내용이며,
때로는 상당히 호전적인 옹호를 담고 있다. 상상 소설, 장르, 여성의 글, 경험형 매체와는 다른 읽기 등에 대해서다.
지난 15년간은 상상 문학에 대한 비평적 관심과 이해가 꾸준히 증가했고, - P18

리얼리즘만이 문학이라는 이름을 쓸 자격이 있다는 융통성 없는 시각에서는 멀어졌다. 이렇게 쓰는 동안에도 내가장르에 대해 변호할 필요가 없어져 간다는 사실이 기쁘다.
그러나 문학의 성차 문제는 괴로운 상태로 남아 있다. 여성들이 쓴 책은 계속 차별당하거나 소외당하며, "중요한 문학상은더 적게 받고, 작가가 죽고 나면 부주의하게 다뤄지는 일이 더 많다.
"여성의 글"에 대해서는 들어도 "남성의 글에 대해 듣지 못하는 상황, 즉 남성의 글이 정상으로 여겨지는 한 균형은 맞지 않는다. 페미니즘이라는 말은 흔히 쓰면서 자연히 따라와야 마땅할 반대말인매스큘리니즘은 아예 쓰지 않는다는 사실에도 동일한 특권과 편견이 반영되어 있다. 둘 다 필요 없어질 날을 간절히 바란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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