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고요하여라 The Mind is Still
마음은 고요하여라.
허언(言) 담긴 멋들어진 책들은 아무리 해도 부족하니.
아이디어란 돼지 구유 위를 맴도는
어지러운 파리 떼.
말은 나의 일. 하나의 돌을 30년간 깎고도 아직
내가 볼 수 없는 것의 심상을 끝내지 못했으니,
이 일을 마쳐 에너지로 변하도록
풀어 놓을 수가 없네.
나는 깎고 더듬거리지만
여느 새처럼 진실을 노래하진 않네.
매일 나는 심판에 들어
똑같은 반 토막 말을 더듬거리지.
그래서 무슨 일인가?
나는 손에 든 돌이 무겁다는 걸 이해할 수 있네.
아이디어는 구정물 위 파리 떼처럼 스쳐 날고.
나는 다른 돼지들 사이에 뛰어들어 배를 채우네.
마음은 고요한 채로.
(1977)
나는 시나 소설을 읽을 때처럼 즐겁게 논픽션을 읽는 일이별로 없다. 잘 쓴 에세이에 감탄은 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생각보다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게 더 좋고, 그 생각이 추상적일수록 이해를 못한다. 내 머릿속에서 철학은 우화로만 서식하고, 논리는 아예 들어오질 않는다. 그러나 또 문법 이해는 훌륭하다. 나에게는 문법이 언어의 논리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 사고방식의 이런한계는 최악이나 다름없는 산술 능력, 체스는커녕 체커도 두지 못하는 무능력, 어쩌면 음악 조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특성과도 관련이 있을지 모르겠다. 내 머릿속에 단어가 아니라 숫자와 그래프로표현된 개념, 아니면 ‘죄악‘이라든가 ‘창조‘ 같은 추상적인 말로 표현되는 생각들에 저항하는 방화벽이 있는 것 같다. - P9
나는 그저 그런것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해하지 못하면, 지루하다. 그런 까닭에 내가 읽는 논픽션은 대개 서사가 있다. 전기,역사, 여행, 그리고 서사적인 면이 있는 과학, 그러니까 지질학, 우주론, 자연사, 인류학, 심리학 등등의 과학. 구체적이면 구체적일수록 좋다. 그리고 서사성만이 아니라 글의 질이 나에게는 아주 중요하다. 옳든 그르든 간에 나는 따분하고 서툰 스타일은 곧 사고의빈한함이나 불완전함을 나타낸다고 믿는다. 다윈의 정확하고 폭넓고 탁월한 지력은 그의 명료하고 강하고 활력 있는 글로 표현된다고 본다. 그 글의 아름다움이 곧 지성이다. 이 말은, 내가 논픽션을 쓸 때 스스로에게 말도 안 되게 높은 기준을 세워 놓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서사가 아니면 쓰기가 힘든 데다 좋은지 나쁜지 판단하기도 어렵다. 나에게 소설이나 시를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 P10
쓰기도 하고, 쓰고 싶어 하며, 무용수가 무용을 하거나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씀으로써 채워진다. 소설이나 시는 나에게서 바로 뽑아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의문의 여지 없이 스스로를 그 글의 정확도와 정직성과 품질을 판단하는 데가장 적합한 사람으로 여긴다. 하지만 강연용 글이나 에세이를 쓰는 건 언제나 학업과 비슷하다. 그 글들은 스타일과 내용 모두 외부 평가를 받을 테고, 그게 당연하다. 내 소설이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지는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이 없지만, 내 에세이는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에 대해 나보다 훨씬 잘 아는 사람들의 판단을 받을수 있다. - P10
다행히도, 프랑스 문학과 다른 중세 로맨스 문학을 공부하면서 학문에도, 비평글을 쓰는 데에도 훌륭한 훈련을 받은 덕분에어느 정도는 자신감을 얻었다. 불행히도, 나는 감언이설에도 재능을 보였다. 통계의 눈보라로 꾸며 낸 실상을 묻는 류의 재능은 아니지만, 불완전한 생각을 너무나 우아하고 자신감 넘치게 표현하여자세히 살펴보기 전에는 그럴싸하게 만드는 스타일이라는 면에서감언이설이다. 거침없는 스타일이 꼭 표현하는 생각의 깊이에 기대어 나오는 건 아니다. 스타일을 이용해서 지식의 틈을 슬쩍 넘어가고 개념과 개념 사이의 허약한 이음매를 감출 수도 있다. 논픽션을쓸 때 나는 말이 제멋대로 흘러가서 부드럽고도 행복하게 나를 실상에서 먼 곳으로, 엄격한 개념 연결에서 먼 곳으로, 진실을 전혀다르게 표현하고 생각을 전혀 다르게 연결시키는 나의 조국, 즉소설과 시의 세계로 실어 가지 않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 P11
서평은 흥미롭고 부담스러운 글이다. 그리고 문학적으로나 다른 분야로나 더 넓은 문제들과 관련된 서평에서는많은 말을 할 수 있다. 싫은 책을 다룰 때만 아니면 서평 쓰기는 좋아한다. 서평을읽을 때는 바로 서점으로 달려가게 만드는 글이 최고지만, 잘 쓰고잘 맞는 악평도 귀하게 여긴다. 형편없는 책에 대한 죽여주는 평을읽으면 죄책감 없이 즐겁다. 그러나 악평을 쓰는 즐거움은, 저자에대한 동료 의식이며 고통을 가하는 것을 즐긴다는 데 대한 부끄러움 등 온갖 죄책감 탓에 우울해진다……. 그렇다 해도 내가 저자가뭘 하려 했는지 이해하고, 내 비평이 절대적이란 환상에 시달리지도 않는 한, 조악한 작품을 대충 넘어가 줄 수는 없다. 그런 이유로, 이 책에 실린 유일한 진짜 악평은 나에게 심각한 문제를 선사했다. 저자를 많이 존경했지만, 책은 놀라울 정도로 형편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걸 어떻게 평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친구인 소설가 몰리 글로스에게 호소했다. 어떻게 하지? 몰리는 그냥 플롯을이야기하면 어떠냐고 했다. 훌륭한 해결책이었다. 대마(大麻)를 충분히 공급하면 문제가 사라지리니. - P12
이 글들은 사실 모두 다양한 행사에서 다양한 청중들을 상대로 어쩌다 내놓은 조각글들이다. 주제는 책 속에 나오는 동물들, 만들어 낸언어, 잠, 내가 성장한 집, 아나키즘, 시를 읽는 방법, 그리고 어느 받침대에 대한 시까지 망라한다. 이 글들을 정리하는 가장 유용한 방법은 연대순배열이었다. 상당수는 이 책에 싣기 위해 살짝 손을 보았다. 원래글이 궁금하다면, 처음 출간된 곳이나 내 웹사이트에서 찾아볼 수있다. 공공연히 정치적인 글은 딱 두 편뿐이다. 하지만 로빈 모건‘ 같은 사람들에게 배웠다시피,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은 분리할 수 없다. 많은 글이 문학의 특정한 면을 옹호하는 내용이며, 때로는 상당히 호전적인 옹호를 담고 있다. 상상 소설, 장르, 여성의 글, 경험형 매체와는 다른 읽기 등에 대해서다. 지난 15년간은 상상 문학에 대한 비평적 관심과 이해가 꾸준히 증가했고, - P18
리얼리즘만이 문학이라는 이름을 쓸 자격이 있다는 융통성 없는 시각에서는 멀어졌다. 이렇게 쓰는 동안에도 내가장르에 대해 변호할 필요가 없어져 간다는 사실이 기쁘다. 그러나 문학의 성차 문제는 괴로운 상태로 남아 있다. 여성들이 쓴 책은 계속 차별당하거나 소외당하며, "중요한 문학상은더 적게 받고, 작가가 죽고 나면 부주의하게 다뤄지는 일이 더 많다. "여성의 글"에 대해서는 들어도 "남성의 글에 대해 듣지 못하는 상황, 즉 남성의 글이 정상으로 여겨지는 한 균형은 맞지 않는다. 페미니즘이라는 말은 흔히 쓰면서 자연히 따라와야 마땅할 반대말인매스큘리니즘은 아예 쓰지 않는다는 사실에도 동일한 특권과 편견이 반영되어 있다. 둘 다 필요 없어질 날을 간절히 바란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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