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노동자들
마르가리따 강물이 단단해지면 저 강을 건너 돌아가자 먼바다에 겨울 폭풍우 내륙 깊숙이에는 서리 먹은 바람이 우리는 이름이 없는 자 이름 이전에 다만 살아 번식하며 아무런 계산에도 셈해지지 않는 자 그러나 나무들이 잎을 잃는 저녁이면 가슴이 울렁이고 구토가 났지 죽음 같은 잠을 자고 깨어나도 끝내 달라지지 않는 사실이 있어 오늘은 불길한 바이러스가 한쪽 눈으로 창궐하니 슬픔과 무관하게 한 눈으로만 울 수밖에 날마다 눈먼 올빼미는 태어나고 목말라 목말라 가슴을 쪼아대며 날마다 죽어갔지 씨앗이 가득 맺힌 들풀들과 병든 고춧대 가시 많은 장미들을 꺾어 묻던 시절이었어마르가리따 어딘가 집에는 방이 있다 했지우리 격렬했으나 선의의 심장은 찾을 길 없던 그때 마르가리따 삐라처럼 나부끼던 시절이었어 - P9
공장의 출구 동백꽃을 가슴에 달고
어느 봄날이면 살아야지 꽃잎들 많이는 말고 어깨며 발등 위로 산산이 떨어질 때 전생에서 불어온 바람 들판에 종일 불고 핏방울 점점이 꽃 무더기 피면 먼 옛날 먼 곳에서 와 다리 아래 굶어 죽은 낙타들 울음소리며 배꽃 아래비단 끈으로 목을 맨 그 여자 눈물도 없는 마지막 모습이 떠오르면 밤새 모래바람 불어 더듬더듬 흙벽에 잊을 수 없는 얼굴을 새기던 서역의 한 사내이거나 제 부족을 전쟁으로 몰살시키고 홀로 우는 병약한 부족장의 울음이 생각나면 무너진 왕궁의 기둥에 걸터앉아 바람 속에 바람 속에흰 머리칼만 날리는 무녀처럼 그런 바람이면 살아야지 그런 봄날이면 살자 했는데,
봄바람 치는 들판에 혼자 서 있는 것 같구나 나 자신에게만 도취되어 살았는데 더이상 그럴 수 없다면 도취된 내가 그리워하는 너도 없을 거야, 처음에 삿된 이름을 조가비에 적던 사람들은 어디서도 조가비를 구할 수 없어 가슴에 이름을 새겼지 산홋빛 공단리본 진주가 박힌 머리빗그 여자의 심장에는 제 이름자가 박혀 있었나 저 바람은북쪽에서 불어와 이름을 갖지 못하고 물길뿐이던 안개와 - P18
물의 땅으로부터 와 어쩐지 자꾸 울음이 나는데 눈물 없는울음도 울음일 수 있다면 소리 없는 노래도 노래일 수 있다면 바람은 침묵의 탑에 매달리고 한밤을 배회하는 짐승의 털 아무도 노래하지 않았나 자, 살자의 밤 - P19
가난하고 아름다운 사냥꾼 딸이 꿈을 헐어 전나무에 물을 주고 큰 배로 만들 때까지
진눈깨비 밤새 무섭게 온 아침
눈꽃 핀 눈꽃 나무 아래
폭신한 옷으로 겹겹이 무장한 누가 프롬나드한다
어디선가 앰뷸런스 싸이렌 소리 위급히 들리고
옛이야기처럼 착한 사람들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
모가지가 부러질까 서러운 나는
고양이 걸음으로 살얼음판을 걸어 고양이 밥을 구하러 간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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