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내가 돈을 받은 최초의 작품이자 출판된 두 번째 작품이다. 또한 확실히기억나지는 않지만 내가 쓴 서른 번째인가 마흔 번째 작품이다. 글을 모르던 다섯 살짜리 여동생이 주변에서 얼쩡대는 게 귀찮아진 테드 오빠가 내게 읽기를 가르쳐준 이후로 줄곧 나는 시와 소설을 썼다. 스무 살 무렵, 나는 쓴 글들을 출판사에 보내기 시작했다. 몇몇 시는 출판이 되었지만 서른이 될 무렵까지 소설은 제대로 출판되지 못했다. 내가 보낸 소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늘 반송되어 돌아왔다.
<파리의 4월〉은 1942년 《어스타운딩》지에 ‘지구 생명체 기원‘에 관한 이야기를썼다가 터무니없는 이유로 게재를 거절당한 뒤(나는 존 우드 캠벨과 잘 맞았던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판타지소설이나 SF로 인식할 수 있는 ‘장르‘로는 최초의작품이다. 열두 살 때는 게재를 거절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고도 마냥 기뻐했고서른둘이 되어서는 수표를 받고 매우 기뻐했다. ‘전문가주의‘는 미덕이 아니다.
프로란 아마추어가 열정 때문에 하는 일을 돈을 받고 하는 사람에 불과하다. 하지만 돈의 경제학에서 보면, 보수를 받는다는 것은 자신이 한 작업을 여러 사람이 알게 되고 읽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작가와 독자의 의사소통을 의미하는 것이고 또한 이는 예술가의 목적이기도 하다. 1962년에 이 작품을 사준 셀리골드스미스 랠리는 역사상 SF 잡지를 담당했던 그 어떤 편집자보다도 진취적이고 예리한 사람이다. 나는 셀리가 내게 이런 기회를 준 것에 늘 고맙게 생각하고있다.

배리 페니위더 교수는 춥고 어두운 다락방에 앉아 앞에 놓인 탁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탁자 위에는 책 한권과 딱딱한 빵 한조각이 놓여 있었다. 빵은 저녁식사였고, 책은 페니위더 교수 필생의 작업이었다. 둘 다 말라붙어 있었다. 페니위더 박사는 한숨을 쉬고 몸을 떨었다. 낡은 집의 아래층 셋방은 꽤 우아했다. 하지만 급기야 난방은 4월 1일 끊겼고 오늘은 4월 2일이었으며 밖에는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조금만 고개를 들어도 창문을 통해 땅거미 속에서 손에 잡힐 듯 가깝게 어렴풋이솟아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사각탑 두 개가 보였다. 페니위더박사가 사는 생루이 섬은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는 시테 섬 뒤쪽에 하류로 끌려가는 작은 나룻배처럼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니위더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는 너무나 추웠다. - P55

거대한 탑이 어둠에 잠겼다. 페니위더 박사는 우울했다. 박사는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책을 바라보았다. 이 책 덕분에 1년을파리에 머물 수 있게 되었다. 학과장은 뭔가를 출판하거나 아니면 관두라고 말했고, 페니위더는 뭔가를 써내는 쪽을 택했으며,
그 보상으로 1년 동안 학교를 떠나 있을 수 있었지만 대신 월급은 없었다. 먼슨 대학은 강의를 하지 않는 교수에게 급여를 줄만한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페니위더 박사는 저축한 돈을 긁어모아 파리로 왔다. 학생 때처럼 다락방에 살면서 국립도서관에서 15세기 문헌들을 읽으며 길가 밤나무에 꽃이 피는 것을 보며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아무 소용없는 짓이었다. 페니위더는마흔 살이었고, 다락방에서 혼자 살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았다.
진눈깨비는 막 봉오리 지기 시작한 밤꽃들을 망쳐놓을 터였다. - P56

하지만 라이터는 쓸데없이 짤깍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페니위더는 다시 한숨을 쉬고일어나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프랑스제 라이터 연료 한 통을 꺼내 온 다음 자리에 앉아 담요를 다시 고치처럼 몸에 감싸고 라이터에 연료를 채운 뒤 한 번 더 짤깍거려보았다. 액체연료가 주변으로 많이 흘러넘쳐 있었다. 라이터에 불이 켜지는 순간 페니위더 박사의 손목 아래쪽부터 불이 붙었다. "이런 제길!" 손가락 마디에서 푸른 불꽃이 솟아오르자 페니위더는 비명을 지르고 팔을 거칠게 휘저으며 펄쩍 뛰었다. "제길!" 페니위더는 소리치면서 운명의 여신을 저주했다. 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이람! 때는 1961년 4월 2일 오후 8시 12분이었다. - P57

"아닙니다. 아니에요. 전 미국에서 왔습니다. 그러니까.... 미래에서 왔습니다. 서기 20세기에서 말입니다." 페니위더는 얼굴을 붉혔다. 자신이 한 말이 바보 같아 보이기도 했고 사실 페니위더는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이 환상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지금 서 있는 방은 자기 방이면서도 새로운 방이었다. 500년이나 된 낡은 집이 아니었다. 청소는 되어 있지 않았지만 새집이었다. 그리고 페니위더의 무릎께에 있는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의 책도 새것으로, 부드럽고 낭창거리는 소가죽 표지에 금박 문자가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르누아르는 무대 의상이 아닌 집에서 입는 검은 가운을 걸치고 서 있었다…….
"좀 앉으시지요, 선생님." 르누아르가 말했다. 그리고 세련되면서도 가난한 학자답게 약간 어색한 태도로 덧붙였다. "여행때문에 피곤하시지요? 제게 빵과 치즈가 있습니다. 저와 함께나누어 드신다면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 P63

둘의 삶은 곧 안정되어갔다. 페니위더는 처음에는 붐비는 거리에서 좀 불안해하는 것 같았지만, 여분으로 있던 르누아르의검은 가운을 입으니 큰 키를 빼고는 그리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페니위더는 15세기 프랑스에서 가장 키가 큰 사람이었을 터였다. 생활 수준은 낮았고 사방에 이가 들끓었지만 원래부터 페니위더는 안락함을 추구하지 않았다. 페니위더가 유일하게 그리워했던 것은 아침식사와 함께하는 커피뿐이었다.  - P68

"진짜 마법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어요."
"그렇다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거죠?" 페니위더가 소리 질렀다. "도대체 왜 그 멍청하고 낡은 주문이 장에게, 우리에게 효력이 나타나는 거죠? 왜 그 마법이 다른 곳도 아닌 여기에서, 그리고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에게, 5천 아니, 8천 아니, 1만 5천년의 역사에 걸쳐 효력을 나타내는 거죠? 왜죠? 왜입니까? 그리고 자네, 대체 그 강아지는 어디서 온 거지?" - P75

르누아르가 좀이 슨 검은 가운을 입는 동안 키슬크는 자신의은색 튜닉을 실용적이면서 특징 없는 외투로 가렸다. 페니위더가 생각에 잠겨 목에 벌레 물린 곳을 긁는 동안 보타는 머리를 벗었다. 그리고 넷은 아침거리를 구하러 집을 나섰다. 연금술사와 성간 고고학자가 프랑스어로 말하며 앞서 가고, 갈리아에서 온 노예와 인디애나에서 온 교수가 라틴어로 말하며 손을잡고 뒤따랐다. 좁은 길은 붐볐고,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네 사람 위로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사각탑 두 개가 하늘을 향해 솟아 있었다. 옆으로는 센 강이 부드럽게 출렁였다. 바야흐로 파리는 4월이었고, 강둑에는 밤꽃이 피어 있었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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