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십대에 들어섰을 무렵 어머니는 인우드에 있는 지역센터에서 개설된 그림 강좌에 매주 참석하면서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언니들은 더 이상 우리와 함께살지 않았다. 대학을 다니거나 도시에서 일하느라 집에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 어머니는 자신에게 쓸 수 있는시간이 더 많아졌다. 학교가 끝나면 나는 어머니와 단둘이 있을 때가 많았다.
인우드는 이른바 파이브 타운스 Five Towns 중에서 ‘가난한 타운이었다. 그 타운 주민들은 대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나 이탈리아계 미국인이었다.  - P94

하층민 내지는 중하층민들, 예컨대 내가 자란 타운에서 가정부, 배관공정원사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동네와 학교를 통해 인종, 종교, 계급에 의한 엄격한 구획이 철저히 적용되고있었고, 나는 열 살이 될 때까지, 그해에 걸스카우트 캠프에서 2주를 보내기 전까지는 이 점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메리트 배지 merit badge(걸스카우트 활동 기간에 특정 기술의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고서그 기술을 익혔음을 검증받으면 받을 수 있는 배지가 받고 싶었다. (최근 나는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1932~1963, 미국 출 - P94

생의 시인이자 작가가 성실한 걸스카우트였고 그녀도 배지를 받고 싶어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캠프의 인구집단 구성은 내가 사는 동네와는 달랐다. 54명의 소녀들 중에 유대인은 나 하나뿐이었다. 그 후로 나는 계급과 인종에 따른 구분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간 나의 삶이 달라졌다. 그런 차이로 인해 그 삶을 다른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어머니가 지역센터에, 인우드에, 그림 수업을 받으러가는 것은, 즉 지역센터의 사회복지사와 사회복지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과 사귀는 것은 어머니가 눈에 보이는그리고 보이지 않는 선을 넘었음을 의미했다. 그곳에서어머니와 친하게 지낸 친구 프레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사회복지사였다. 프레드는 호탕한 사람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리고 한쪽 다리를 절었다. - P95

어머니는 정식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재능 있는 아마추어 화가였다. 어머니의 첫 작품은 유명한 화가의 그림, 반 고흐의 노동자 신발 그림들을 그대로 베낀 것이었다. 어머니의 작품들은 대개 사실적이고 상징적이었다.
오렌지색 고양이, 로맨스 여주인공처럼 꾸민 내 초상화.
마네 작품을 똑같이 따라 그린 것. 마네의 어느 작품이었는지는 잊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로 - P95

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그림들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다 어머니는 환자가 되었다.
션트가 제대로 작동을 해서 어머니의 상태가 좋아졌을 때 어머니의 신체 기능이 돌아와서 그림을 그릴 수있게 되자 어머니는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제어머니의 그림은 추상적이었다. 어머니는 "고양이를 그릴 거야"라고 말하고는 고양이와 조금도 닮지 않은 것을그렸다. 적어도 고양이는 아니었다. 눈동자였다. 안쪽은온통 하얀색, 하얀색 덩어리였다. 어머니의 마음이 보는 것이었다. 달리 말하면 어머니의 뇌가 보는 것이었다. - P96

그런 변화는 흥미로웠고, 연구할 가치가 있었다. 그래서나는 사진을 찍었다. 나는 그 사진을 닥터 A에게 보여드렸다. 그림을 그리고 뜨개를 하겠다는, 다시 배우겠다는어머니의 의지는 가히 존경받을 만했다. 어머니의 회복탄력성은 존경받을 만했다. 그리고 희망을 줬다. 어머니는 그런 면에서 독특했다. 어머니는 스스로를 돕는 사람이었다. - P97

프랜시스가 어머니와 살기 시작한 지 약 3년쯤 지났을 때 물건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뉴욕 언니가 스웨터 한두 개, 모조 보석 장신구 하나, 귀중품은 아닌 것들이 사라졌다는 걸 눈치챘다. 프랜시스의 친구가 가져갔을 수도 있고, 제자리에 돌려놓지 않아서 못 찾았을 수도 있다. 프랜시스가 어머니와 살기 시작했을 때 프랜시스의 친구들이 많이 놀러 왔다. 사소한 물건들이 사라졌다.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머니를 돌보는 훨씬 더 어려운 문제에 비하면 나머지 것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게다가, 프랜시스는 어머니를 성실히 잘 돌봤다. 어머니는 그동안 어머니를 돌본 다른 여자들과는 달리 프랜시스에 대해서는 불평하지 않았다. - P97

연구원들은 무미건조하고 무심한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어머니를 연구 대상으로만 봤다. 뇌 손상은 어머니를 놀라울 정도로 순종적으로 만들었다. 어머니는 원래공격적일 때가 많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이어머니에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 일직선으로 똑바로 걷기, 제시된 단어들 기억하기 - 을 하려고 어머니가 애쓰는 모습에 가슴이 저려왔고 심지어 한숨이 나오기까지했다. 어머니가 그들의 이론을 입증하거나 부정하는 한에서만 그들에게 중요했기 때문에 더 그랬다. 그들은 어머니가 정상뇌압수두증 환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더 잘 걷게 되었을 때, 간병인과 극장을 찾 - P100

거나 자신의 생일파티에서 입을 정장-연한 핑크색이었다-을 사려고 버스를 타고 블루밍데일 백화점에 가거나 농담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을 때, 어머니가 의학적 기대를 뛰어넘는 수준으로 기능을 회복했을 때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그 무심한 연구원들 앞에다시 나타나는 상상을 했다. 어머니는 그들이 자신들이무엇을 봤는지 전혀 몰랐다는 사실을, 누군가를 검사하는 법을 전혀 몰랐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을 것이다.
그건 판타지로 남았다. 그 거만한 신경과 전문의 닥터 Z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그러했듯이. - P101

어떤 날은 모든 사람에게 소송을 걸고 싶었다. 신이버린 욥만큼이나 불쌍한 나,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만했을까. 인생에게 사기당한 느낌. 그렇다. 나도 불쌍하고, 모든 사람이 다 불쌍하다.


야생에서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생명을
작은 새가 얼어 죽은 채 나뭇가지에서 떨어진다
단 한 번도 자신이 불쌍하다 여기는 일 없이.

- D. H. 로런스 - P101

내 생각에는, 삶을 지속하기 어려울 때가 매우 잦았을 것이다. 자기 연민이라는 사치를 부릴 수 없었다면 말이다.
-조지 기싱 - P102

뇌는 새로운 세포를 키운다. 척수액이 션트를 통해배출되는 상태에 따라,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매시간 어머니의 신체와 정신 상태가 달라졌다. 어떤 날들은 놀라울 정도로 정신이 말짱했다. 어떤 날들은 그렇지 않았다. 어떤 날들은 더 잘 걸었다. 우리는 그런 차이가 뇌척수액의 흐름과 관련이 있다고 짐작했다. 션트가 삽입되기 전, 그리고 션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받은 압력으로 인해 어머니의 뇌 일부는 영구적인 손상을 입었다. 션트가 고장 나면 어머니의 모든 증상이 돌아왔고,
교정하지 않으면 어머니의 뇌 전부가 영구적인 손상을입게 될 것이었다. - P102

거만한 신경과 전문의 닥터 Z는, 지금은 고인이 되었는데, 우리가 걱정을 표하면 웃어넘기면서 션트가 아주 잘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션트는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의료 과실로 닥터 Z에게 소송을 걸었어야 마땅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런 - P102

소송이 우리의 시간을 빼앗고, 점점 약해지는 우리의 영혼과 에너지를 더 약하게 만들 거라고, 그리고 버틸 수없을 정도로 우리를 짓누를 것이라고 생각했고, 뉴욕 언니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 소송을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닥터 Z는 죽고 없다.
어머니는 신경외과 수술의가 소속된 병원과 협진관계에 있는 새 신경과 전문의 닥터 D와 진료 예약을 했다. 처음에 닥터 D는 어머니가 나아질 거라고 믿지 않는것처럼 보였다. 닥터 D의 첫인상은 침울했고 심지어 음침하기까지 했으며 딱히 어머니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같지 않았다 - P103

환자를 돌보는 사람은 의사, 간호사, 병원으로부터최선의 서비스를 받아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반드시 저돌적으로 나가야 한다. 당신이 돌보는 환자는 스스로를 보호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지킬 수 없다. 당신이직접 조사하고, 의사로 하여금 다른 치료법, 전략, 아이디어를 찾고 시도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노인 환자는 특히나 의학계에서 가망이 없는 짐짝으로 여겨진다. 모든의사가 노인 환자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의사들도 있다. 노인 환자는 절망적일 수 있다.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상태가 좋아져서 더 나은 여생을 사는 노인 환자도 있지만. - P104

어머니의 운명은 엄청난 구속이었지만 끝이 있는 것이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상기시켰다. 그러나 매일매일 어머니의 건강과 기분, 신입 또는 기존 피고용인에 관한 지루한 논의가 이어졌다. 가장 기이했던 것은, 내가결코 그런 일상에 완벽하게 익숙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그저 더 잘 대처하게 되었을 뿐이다. 같음과 다름, 예측 가능성은 예상할 수 없었고, 예측 불가능성은예상할 수 있었다. 어머니를 돌보는 일상은 당신이 한때당신의 삶이라고 불렀던 것과 늘 어긋나 있었다.
이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수명이 상대적으로 더 짧다. 돌봄에 필요한 노동과 인내심, 긴 근무 시간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정체된것처럼, 멈춘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시간은 사람들에게있거나 없는 것이다. - P106

내가 놓치지 않고 포착한 아이러니는 정작 어머니는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가까운 친구들은 내가 내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모범적인 병사였지만, 비참했다. 어머니를 돌보는 문제에 대해 얘기해도 아무런 위안을 얻지 못했다. 연민은 내게 도움이 되지않았고 오히려 스스로를 더 불쌍히 여기게 되었다.
너무나 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머니의 상태는 좋아지거나 좋아지지 않을 것이었고, 시간이 걸릴 것이었고, 어머니는 머지않아 죽을 것이었고, 어머니의 미래는 예측 불가능했다. 모든사람의 미래가 예측 불가능하지만, 우리 가족의 미래는 어머니의 미래에 구속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이 얼마나더 오래 지속될 것인가. - P107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낸다. 내 심리상담사는 계속해서 우리가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내면의 압력과 외부의 압력에 굴복했다. 좋은딸이 되어야 한다는, 좋은 동생이 되어야 한다는 어떤날은 기분이 괜찮았다. 어떤 날은 내 초활성화된 초자아에 절망했다. - P108

베이어머니는 늘 자신이 오페라 가수나 다름없다고 자부했다. 어머니는 자신에 대한 환상을 몇 가지 가지고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자신이 완벽하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내게 예수는 완벽하지 않다고도 말했다. 예수가
"너무 완벽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어머니의 논리는언제나 어머니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때로는 어머니의흔들리지 않는 나르시시즘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정확하게 노래하기 위해 정확한 호흡법을 배우는것은 어머니의 균형감각과 걷기에 도움이 되었다. 노래레슨의 예측하지 못한 긍정적인 효과였다. 호흡은 균형감각에 영향을 미친다. 당연한 얘기지만.
한번은 밴드 연주가 끝난 뒤 노라가 내게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내 어머니를 가르치면서 나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 노라는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연민을 담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 P109

어머니는 똑똑했고 자신의 신경증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으며 어머니가 아주 어릴 때 일어난 일들에 의해,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일들에 의해 어머니의 성격은 뒤틀려 있었다. 어머니는 마치 자신에 대해 말하듯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말했다. 어머니의 어머니는 완벽했다. 둘 다 완벽하지 않다는 것은 누가 봐도 자명했다.
어머니의 어머니, 즉 외할머니에 대해 내가 아는 일화는하나뿐이고 그 일화는 어머니가 쓴 이야기에 나온다. 나는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없다. 아니, 있다. 다만 그 기먹은 오직 8밀리 영상에서 본 장면으로부터 기인한다.
어머니가 쓴 이야기, 미완성작인 그 이야기는 우리 고양이, 놀라운 그리젤다의 입양에 관한 이야기다. - P111

그 11년 동안 어머니는 변했다. 그리고 주름 한 줄없는 얼굴에 생기가 도는, 그림 속 완벽한 작은 노파 같은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나이가 들수록 더 잘 웃었다.
아마도 자신의 병에 의해 스스로 무장해제되었는지도모른다. 어머니는 사회불안장애를 완화하는 팍실 Paxil을 복용했다.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었지만 항상은 아니었다. 또한 나도 어머니를 다르게 보게 되었다. 어머니의신경적 문제로 인해 어머니는 더 이상 나를 기른 그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 좋은 엄마건 나쁜 엄마건, 그 어떤엄마 역할도 수행할 수 없게 되었다. 어머니는 대체로 순했고 나를 공격적으로 대하지는 않았다. - P114

8년째가 되었을 때, 나는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는건 불가능하다고,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거라고 체념하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어머니가 사시면 얼마나 더 사시겠는가. 나는 이렇게 존재하는 삶에 최종적으로 묶였고 어머니는, 이렇게 존재하는 삶은, 내 삶과 불완전하게 통합되었다. 그런 통합은 어머니나 어머니를 돌보는 일을 의식해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기간 내내 어머니에게, 어머니를 돌보는 삶에 묶이게 된것이 막 일어난 일처럼 느껴졌다. 그게 가장 기이한 점이었다. 그렇게 묶인 삶은 결코 일반적인 삶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삶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야 돌아올것이다.
어쨌거나 양가감정이 내 안에 살았다.  - P117

사람들은 자신이 할 수 있으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고는 나중에 그런 자신에게 놀란다. 아드레날린, 의지, 고집, 맹목, 무지가 당신을 버티게 해줄 것이다. 나는 좋은 딸 역할을 연기했지만 거기에는 내 진심이담겨 있지 않았고 대신 내 양심은 담겨 있었다. 우리 자매들은 모두 양심에 의해 등 떠밀렸다. 그건 그렇게까지끔찍한 일은 아니다.
어머니는 사랑이 넘치는 다정한 엄마와는 거리가멀었다. 그러나 우리 부모님은 그들의 신경불안증과 해로운 행동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딸들에게 책임감과양심을, 그리고 그와 함께 치명적이고 적절한 죄책감을키워주는 환경을 제공했음이 틀림없다.
어머니와 관련해서는 나는 죄책감을 느낀 적이 결코 없다. 내가 어머니에게 내주는 것은 어머니가 받을 자격이 있는 것보다 많았다. 아주 매정하게 들리겠지만 말이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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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돌봄 컨설턴트의 회사는 휘황찬란한 이름이었는데, 어머니의 의사들과의 연락을 담당하기로 되어있었고 우리가 사람 찾는 것을 돕기로 되어 있었다. 초기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으며 몸과 마음이 매우 약해진 상태였다. 그 컨설턴트는 우리 앞에 놓인 너무나 많은 문제들을 대신 해결해줄 듯한 인상을 줬다. 그건 사실이 아니었고, 역설적이게도 컨설턴트가 보낸 사람들이 문제였다. 그리고 컨설턴트의 서비스는 엄청나게 비쌌다. 그녀가 어머니를 위해 고른 사람들은 무능하거나 제정신이 아니었으므로 그녀에게 그렇게 큰돈을 지급하는 것은 말이 안 됐다. 나는 어느 달엔가 컨설턴트가 청구한 비용이 1,600달러였다고 기억한다. 그녀는 모든 것에 대한 비용을 청구했고, 별걸 다 포함시켰다. 그 내역을 상세히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사소하거나쓸데없는 것들이어서 아무리 계산해봐도 그녀가 청구한 비용은 과도했다. 컨설턴트는 해고되었다.
- P77

하염없이 계속되는 기운을 빼는 기다림. 병원에 있으면 기가 빨린다. 여기 갔다가 저기 갔다가 사회복지사가 나와 뉴욕 언니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렀고, 그곳에서 사회복지사는 뉴욕 언니를 혼란에 빠뜨린 질문들을 했다. 사회복지사는 우리를 평가하고 있었다. 우리가 어머니를 학대하고 있는지 조사하고 있었다. 실제로, 노인은 학대를 당하곤 한다. 그 누구도 예외는 아니다. 돈이 많든 적든 거동을 못 하는 사람은 누구나 가학적 인격의 사냥감이 될 수 있다. 그런 학대자로 의심받는 일은, 당연히 불쾌했다. - P79

병원에서, 당신이 돌보는 환자가 병실에 있고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신음소리를 내거나 울거나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그래서 당신은 간호사실로 달려가 당장 도와줄 사람을 찾는다. 아마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않을 수 있다. 그럼 당신은 도와달라고 소리를 지른다.
관심을 끈다. 통증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체면의 모든 규칙이 깨진다. 그 호화로운 병실에서,
의사가 어머니를 봐주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고, 어머니는 당장 치료가 필요했으므로 걱정은 커져만 갔다.  - P79

나는 단언할 수 있다. 부모가 거동을 하지 못하게되면 그 가족은 놀랍고 당혹스럽고 지속적이고 복잡한 문제들에 휩쓸린다. 이전에는 단 한 번도 대면하지 않은 문제들이다. 이런 새로우면서도 오래된 삶에 관한 사실들의 크기와 깊이와 영향력에 충격을 받을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하고 진단이 내려지며, 가족들은 조사에 나서거나 충동적으로 반응할 수도 있고 심사숙고하거나 공포로 인해 마비될 수도 있다. 종종 가족들은 입장 차이로 인해 와해된다. 자녀 중 한 명이 부모 돌봄을 전담하는 일이 잦고 그 자녀가 모든 부담을 - P80

짊어진다. 반면에 두 명 이상의 어른 자녀가 돌봄을 맡으면 엄청난 불만과 갈등이 쌓여서 정작 돌봄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될 수 있다.
부모와 형제자매 사이에서 형성된 경험적·심리적관계는 암묵적이고 무의식적인 법칙을 만들어낸다. 이모든 역사가 개인의 태도와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 결과 돌봄에 관여하는 모든 사람의 의욕을 꺾고힘을 뺀다. 그동안 쌓인 감정들이 해석과 결정 속에 맴돈다. 지형은 험난하고, 이전 전쟁에서 남은 폭탄이 깊은감정의 밀도에 의해 기폭된다. 가족 또는 친구들은 환자라는 대의를 위해 협력할 것이다. 아니면 분열하다 분해될 것이다. 많은 경우 그렇게 된다. 우리 자매들은, 우리딸들은 서로를 놓지 않았고, 우리의 목표는 어머니를 가능한 한 오랫동안, 최대한 건강하게, 이 세상에 살아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 P81

때로는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 글들이 떠올랐다. 하인들과 하인들의 감정, 아이들, 남편들, 요리, 능력, 그들의 실수, 임금, 요컨대 일반적으로 정의에 대해 느끼는 분노를 쏟아낸 글들, 간병인은 19세기의 하인이 아니라 서비스 제공자다. 그러나 어머니의 삶은 간병인의 삶과 단단히 얽혀 있었다. 그리고 역으로 간병인의 삶도 어머니의 삶과 단단히 얽혀 있었다. 어머니는 간병인에게 의지했다. 어머니가 간병인에게 더 많이 의지할수록 나는더 행복해졌다. 더 많은 시간을, 자유를 얻었다. 나는 내 - P82

집에 머물 수 있었고, 글을 쓰거나 탈출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아파트에서 멀어지면서 나는 어머니의 것이 아닌 공기를 마셨다. 그것이 곧 자유처럼 느껴졌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이상하게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
자신을 고용한 사람의 집에서 사는 피고용인은 다른 노동자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그 가족의 습관에 의해 고통을 받고 혜택을 본다. 그리고 세입자와 집주인의 관계에는 봉건적인 측면이 있고, 그런 측면은 ‘함께살기‘의 심리적인 측면에 우선한다. 우리의 마지막, 그리고 가장 오랜 기간을 함께한 간병인은 어머니를 매우 잘돌봤다. 어머니가 신체활동을 하도록 적극적으로 도왔다. 어머니를 극장, 영화관, 박물관에 모시고 다녔고, 매일 어머니와 외출했다. 매니큐어, 페디큐어, 미용실 약속을 잡고 모시고 다녔다. 어머니의 담당의와의 진료 일정과 정기 검진에 동행했고, 어머니의 모든 의사는 그녀가 어머니의 상태에 관한 상담 내용과 새로운 약의 처방사실을 우리들, 어머니의 딸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녀는 신뢰를 받았다. 우리는 그녀를 신뢰했다. - P83

정신이 돌왔을 때는 논리가 통하다가 다시 벗어났다. 가끔은 이쪽으로, 저쪽으로, 그러다 그 어디로도 통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 모두는, 어머니에게 논리를 강요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했다.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짜증이 쌓였고 내 짜증이 쌓였고 이해가 도출되지 않았다.
나는 ‘네‘라고 말하고,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어머니를안심시키는 법을 배웠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언젠가는잊어버리고 다른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기를 기다렸다. 어머니는 이름을 헷갈렸지만 그건 문제라고 할 수도 없었다. 어머니는 내 남편 데이비드를 "지미"라고 불렀다. 어머니의 정신이 맑을 때 나는 물었다. 왜 데이비드를 지미라고 부르세요? 어머니는 웃으며 말했다. "나도 모르겠구나."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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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제공자들에게,
그 일을 유급으로 하는 사람,
무급으로 하는 사람 모두에게

Ducunt volentem fata,
nolentem trahunt.

운명은 순순히 따르는 이에게는 길을 안내하고,
순순히 따르지 않는 이는 억지로 끌고 간다.

1994년 말, 어머니가 병을 얻었다. 그로부터 약 11년동안 어머니는 자신의 세 딸들, 즉 나와 두 언니에게, 그리고 의사들, 간병인들, 간호사들, 물리치료사들, 기타의료종사자들에게 의지했다. 어머니는 상주 간병인과함께 맨해튼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지냈다. 언니들과 나는 역할을 분담해가며 어머니를 공동으로 돌봤다.
어머니의 의료 문제에 관한 결정을 함께 내리고 어머니가 집에서 편안하게 생활하는 데 필요한 업무를 협력해서 처리했다. 어머니를 살리는 일에 주저함은 없었지만, 맹목적으로 희생하며 이타적으로 그 일을 수행하지는 않았고, 또한 그것은 가혹한 의무이기도 했다. 그 11년은 좌절의 연속이었고 배움의 과정이었으며 이상하게도 깨달음의 시간, 일종의 병적인 깨달음의 시간이었다. 미칠 것 같은, 우울하기 짝이 없는 날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결코 알고 싶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병든 부모를 돌보는 성인 자녀에게는 이 이야기가 - P10

조금씩 다른 점은 있겠지만 익숙한 이야기일 것이다. 직면한 문제가 같으면서도 다르기 때문이다. 아직 부모를돌봐야 하는 상황을 겪지 않은 자녀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상황을 마주할 일이 없을 자녀들, 즉 행운아들에게 이 이야기는 반면교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족마다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고, 이보다 더 이상한 경험을 했을 수도 있다. 언니들은 같은 사건과 관련 사건들에 대해 다른 버전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모든 사건은 개인의 주관적인 관점에 의해 걸러지기마련이고, 이것이 회고록과 구술사가 설득력을 얻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이야기에서는 화자의 솔직함, 화자가 기억하는 것, 화자의 삶을 이루는 사실들 못지않게화자를 신뢰할 수 없다는 점, 화자가 지닌 잘못된 정보와 편향도 중요하다. - P11

역설적이게도 나는 한때 이렇게 쓴 바 있다. "경험은우리에게 경험을 신뢰하지 말라는 교훈을 준다." 그리고그것은 진리다. 적어도 다른 사람의 경험에 대해서는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것들이 항상 본인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어머니를 돌보는 일에 대해 어느 정도 온화한 감정이 들었고, 때로는 절망과 분노를 느꼈다.

내가쓰는 반면교사의 이야기에서 사람들이 자신의경험을 엿보거나 다른 사람의 경험과 유사한 점을 발견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또한 크고 작은 차이점도많을 것이다. 가장 중요하게는 내러티브의 판관判官이라고 할 수 있는 시점이 다르다. 허구든 실화든 모든 이야기는 화자의 입장을 대변한다.
이것은 전체 그림의 일부, 내가 바라보는 위치에서들려주는 이야기이므로 아마도 내게 유리하게 서술될것이다. 물론 나는 내가 그런 경향에 굴복하지 않고 이글을 쓸 수 있기를 바란다. 내 목표는 당신에게 도움이되거나 정보를 제공하거나 위로를 건네거나 당신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내가 이 상황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이다. 이 일을 완벽하게 제대로 해내기란 불가능하다. - P12

부터 10월까지다. 그리고 11월이 되면 어머니는 더 이상자신의 일정을 관리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어머니의 일정을 관리하거나 언니들 중 한 명이 했다. 나중에는 어머니의 오랜 간병인이 그 일을 인수받아서 병원 진료와 물리치료 등의 예약 일정을 기록했다. 나는 잊지 않기 위해일기를 썼다. 어떤 사건들은 집중적으로 세밀하게 다룬다. 장면들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사람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문장 전체 답변, 질문이 그대로 되살아난다. 대다수의 사건들은 잊혔다. 특히 사건들 사이의순간들이 더 큰 사건 또는 주요 사건들, 예컨대 어머니의 수술 같은 사건의 서곡 같은 것들이. - P19

의사들은 대개 가족이 의사에게 전달하는 의견이나 이론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거기에서부터 의사는 분석하고 가설을 세우고 추론하고 진단한다. 당신이 내린결론을 먼저 제시하는 것은 실수다. 의학적 보고는 내러티브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순서에 따라 의사가 두는 첫수와 해석이 달라진다. 환자의 대변인은 증상을 함부로진단하지 않도록 경계해야만 한다. 대신 이상 행동 등 문제나 증거를 시간 순서대로 제시해야 한다. 이때 가능하면 해석은 덧붙이지 말아야 한다. 이 일이 일어났을 때,
그전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가 하면...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당신이 실제로 관찰한 것과 당신이 받은 인상은 분명 중요하지만, 그것은 정답이 아닐 수 - P23

도 있고 정답이어서도 안 된다.
다른 한편으로(그리고 그런 다른 한편은 아주 많다) 수동적인 태도는 방해가 된다. 간병인은 의사에게공격적으로 달려들어야 할 수도 있다. 의사의 결정, 처방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의사가 짜증을 낼 때까지 물고 늘어져야 할 수도 있다. 의사는 신이 아니다. 비록 신처럼 구는 의사도 있지만. 환자나 그 가족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질색하는 의사도 있다. 환자 측의 이야기를들어줄 시간이 없는 의사도 있다. 개의치 않는 의사도 있다. 많은 의사가 자신의 일을 훌륭하게 해낸다. 의사들은 환자를 해고할 수 있다. 아마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일을 당한 경험이 없다. 그보다는 당신이의사를 해고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이 더 높을것이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을 하라.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세심한 주의력, 경청하는태도(당신도 경청해야만 한다), 진심 어린 숙고, 솔직함, 성실함이다. - P24

의사의 진료실은 혼돈 그 자체일 수 있다. 진료 예약 시간은 오후 1시지만, 이미 오후 2시 30분이다. 의사가 응급 상황에 호출되었다. 사람들은 잊기 마련이다. 당신도잊고, 의사도 잊고, 차트의 기록이 틀리고, 당신이 설파계 항생제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는 정보가 빠져 있기도 하고 간호사가 차트를 엉뚱한 곳에 두기도 하고 비유적으로는 환자를 엉뚱한 곳에 두기도 한다.
내게는, 모든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퍼져나가는 동시에 한데 몰려들었다. 어려운 의학적문제들, 확신의 부족, 선택지와 가능성이 적거나 없다는느낌. 무거운 장애물이 당신을 약하게 만든다. 위협이 당신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도록 마구 흔들어댄다. 실제로도 다른 선택지는 없다. 오로지 그런 것들을 극복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담대하게. - P33

삶은 질서정연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자기 삶의 모든 부분을 통제해야 하는 사람들, 작은 것 하나라도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변하면 길길이 날뛰는 사람들을좌절시킨다. 삶은 완전하고 완벽한 통제를 허락하지 않는다. 삶은 남쪽 북쪽 사방팔방으로,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 P33

아인슈타인은 시간이 존재하는 이유가 오로지 모든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썼다.
나는 나를 안내해줄 시간, 달력, 시계, 시와 분이 없는날들을 상상해봤다. 시간이 없는 날들, 서로 구별되지않는 날들, 현재와 과거를 분간할 수 없는 상태가 아마도 어머니가 느낀 것들일 것이다. 어머니에게는 모든 날들이 하루였다. 시간의 밖에 존재하는 것, 계획을 세울수 없는 것, 자신의 일정을 관리하지 못하는 것은 무척이나 끔찍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또한 어머니의 자아 감각에 엄청난 타격을 입혔을 것이다. 어머니의 자존심에커다란 상처를 남겼을 것이다. - P36

뇌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때, 그래서 스스로 무슨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하거나 생각하더라도 더 이상 자기 생각을 믿을 수 없게 되면 삶에 논리를 부여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다만 그 삶은 당신의 예전 삶일 수는 없다. 나는 스스로를 관리하기 위한 자신의 능력 상실에 대처하기 위한 어머니의 노력을목격했다. 어머니의 노트는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고, 그러다 어머니는 노력을 할 능력조차 잃었다.
나는 어머니의 카드비와 관리비를 내고, 살림과봄 서비스 제공자에게 임금을 지불했다. 어머니는 한 번도 내 업무 처리에 간섭하지 않았다. 그전까지 어머니는 자신의 수표책을 직접 관리하면서 수입·지출을 관리했다. 수표책은 화려하고 또렷한 필체로 기록했다. 더하고 빼면서, 나는 어머니의 수표책을 관리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내 수표책도 관리한 적이 없다.  - P38

메디케어가 없었다면 어머니에게 우리가 제공한 것과 같은 의료및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기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어머니의 예금은 어머니가 평생을 쓰고도 남을 만큼 넉넉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바닥났을 것이다. 언니들과 내재정 상태도 심각한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메디케어는어머니의 수술비를 댔다. 그리고 공동 부담을 통해 어머니의 진료비도 함께 냈다. 어머니를 진찰한 의사들은 모두 메디케어 환자를 받았다. 그러나 한결같이 대비해야한다. 메디케어 명세서와 청구서는 복잡하고 이해하기쉽지 않다. 무엇이 지불되었는지, 무엇이 지불되지 않았는지를 파악하기 어렵다. 다행히 우리는 그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 P39

그리고 허공에서 바느질을 하는 무의식 상태의 어머니를멍하니 바라봤다. 어머니는 망망대해 같은 이 로비에서갈 길을 잃은 채로 떠다니고 있었다. 독특하게 끔찍하면서도 기괴한 경험이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어머니는 갈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리고 어머니 옆에 있는 나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나는 틀림없이 울고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 옆에 딱 붙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아무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마도 성질이 급하거나 그냥 성실한 사람인 구급대원은 내게 입원 수속 안내 직원에게 다시 한 번 얘기해보라고 말했다. 나는 또다시 달려가서 병상이 마련되어 있다는 약속을 받았다는 등 설명을 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그 자리에 서서, 내 평생 처음으로 히스테리를 부리기 직전의 감정을 느끼면서. 로비 한가운데에 누워 있는 어머니는 허공에 대고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 P46

의사가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당신이돌보는 환자가 도움을 받을 수도, 해를 입을 수도 있다.
의사가 질병에 대한 두려움, 질병에 대한 공포증이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의사가 되었을 수도 있다. 질병을물리치고 싶어서, 다른 사람의 생명뿐 아니라 자신의 생명도 구하기 위해서 어머니나 형제가 아픈 환자여서.
어떤 의사는 노인을 충분히 정성 들여 치료하지 않는다. 심지어 무시하기도 한다. 노인은 죽음을 나타낸다.
나이가 들면서 몸이 더 쇠약해지고 면역체계도 더 약해진다. 장기가 마모되고 질병에 걸릴 가능성도 더 높아진다. 의사들도 노화 및 죽음이 탄생 및 젊음과 마찬가지로 질병이 아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 P55

알지만, 게다가 노인 인구와 인간의 수명이 똑같이 늘고있지만, 노인학을 전공으로 선택하는 의사는 거의 없다.
성형외과, 산부인과, 피부과가 선호되는 전공이다.


어머니가 다시 예전의 자신으로 되돌아가거나 예전만큼 신체·정신 능력을 회복하기를 기대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어머니는 시간이 지나면서 나아지기는 했다.
뇌는 자가복구를 하면서 새로운 경로를 찾고 만들어낸다. 또한 어머니는 심지가 굳은 사람이었다. 어머니가 더젊을 때 정상뇌압수두증에 걸렸다면 상태가 훨씬, 훨씬더 잘 회복되었을 것이다. 션트를 더 일찍 삽입했다면 예후가 훨씬 더 좋았을 것이다. - P56

이런 고통스러운 과정-인지 저하, 수술, 검사, 더딘 회복을 겪는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나는 미래가, 시간의 유령이 다가오는 것이 두려웠다. 심지어 터무니없게도 내가 더 빨리 늙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 가능성들과 환상들을 어머니에게, 그것도 내가 사랑하지 않는 어머니에게 빼앗기고 있었다.
이것이 초창기의 그림 일부를 구성한다. 우리 세 자매는 끊임없는 걱정의 공기 속에 존재했다. 불길한 예감은 우리가 선택한 적 없는, 일상의 구성 요소였다. 며칠,
몇 주는 다른 날들, 다른 주들보다 나았다. 그러다 뭔가일이 터지곤 했다. - P57

나의 특권은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후유증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그 특권의 조건과 결과는 추상적이지 않았고 사적이었으며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우리가 고용한 여자라는 형태로 체화되었다. 나는 이를 의식하고 있었지만 내 특권을 포기하지않았다. 내가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면, 그렇게 어머니를위해 내 삶을 바꿨다면 내 특권을 포기할 수 있었다. 그것이 역사에 저항하는 방법임을 알았지만 나는 그럴 수없었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살 수 없었다. 그냥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했다면 나는 24층에 있는 어머니 아파트의여러 창문 중 하나에서 몸을 내던졌을 것이다.
죄책감은 중요하지 않았다. 죄책감은 이기적이었다. - P59

서로 소원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절대로 일어나지 않기를바랐다고 생각한다. 이런 걸 언니들과 논의한 기억은 전혀 없지만 암묵적으로 전제되어 있었다. 어떤 가족은 죽움이 닥치는 그 순간까지 분열되고, 파괴되고, 편을 가른다. 우리는 서로를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어머니도 버리고 싶지 않았다. 비록 나는 이따금 그러고 싶었지만,
우리 중 어느 누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잠들지 못한 날들이 있었고, 언니들도 그랬을 것이라고확신한다. - P68

내 삶이 좁아진 듯했다. 내 삶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듯했다. 나는 내 삶의 일부를 포기했고, 그런 생각들을 했다. 꼭 해야만 하는 의무로 여겨지는 일을 하고 싶지 않은 나 같은 사람들이 흔히 하는 그런 생각들을 희생. 나는 자유의 상실이라는 현실에 저항했다. 특히 첫이삼 년간 크게 반항했다.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다적응했다. 그러나 완벽하게 적응하지는 못했다. 어머니의 아파트에서 주말을 보내야 할 차례가 되었을 때가 특히 힘들었다. 그럴 때면 몇 시간이 몇 년처럼 느껴졌다.
무기력하게, 포로가 되어, 넝쿨째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철없는 또는 바보 같은 또는 쓰잘머리 없는 감정들. 그리고 그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 P69

바랐다. 이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는 일이 내게는 커다란벽처럼 느껴졌다. 간병인과 어머니의 관계, 우리 자매가이 짐을 동등하게 부담하게 하는 법. 우리 중 누구도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우리는 그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고,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대처했고, 최선을 다했다. 나는 내가 내 한계를 안다고 생각했다. 내게 한계가 주어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계와경계는 지워졌고 세워졌고 다시 지워졌다. 기본적으로상태가 불안정한 환자나 친구가 문제일 때는 그 무엇도안정적일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러기를 바랐고 평형 상태를 기대했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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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


내소사 다녀왔으므로 내소사 안다고 해도 될까
전나무 숲길 오래 걸었으므로
삼층석탑 전신 속속들이 보았으므로
백의관음보살좌상 눈부처로 있었으므로
단청 지운 맨얼굴을 사랑하였으므로
내소사도 나를 사랑한다고 믿어도 될까
깊고 긴 숲 지나
요사채 안쪽까지 드나들 수 있었으므로
나는 특별히 사랑받고 있다고 믿었다
그가 붉은 단풍으로 절정의 시간을 지날 때나능가산 품에 깃들여 고즈넉할 때는 나도
그로 인해 깊어지고 있었으므로
그의 배경이 되어주는 푸른 하늘까지
다 안다고 말하곤 하였다
정작 그의 적막을 모르면서
종양이 자라는 것 같은 세월을 함께 보내지 않았으면서
그의 오래된 내상(內傷)과 함께 있지 않았으면서
그가 왜 직소폭포 같은 걸 내면에 지니고 있는지
그의 내면 곳곳이 왜 낭떠러지인지 알지 못하면서

어찌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의 곁에 사월 등 행렬 가득하였으므로
그의 기둥과 주춧돌 하나까지 사랑스러웠으므로
사랑했다 말할 수 있을까
해 기울면 그의 그리움이
어느 산기슭과 벼랑을 헤매다 오는지 알지 못하면서
포(包)* 하나가 채워지지 않은 그의 법당이
몇백년을 어떻게 버틸 수 있었는지 알지 못하면서
그의 흐느낌 그의 살에 떨어진 촛농을 모르면서

들국화 2


너 없이 어찌
이 쏠쏠한 시절을 견딜 수 있으랴

너 없이 어찌
이 먼 산길이 가을일 수 있으랴

이렇게 늦게 내게 와
이렇게 오래 꽃으로 있는 너

너 없이 어찌
이 메마르고 거친 땅에 향기 있으랴

저녁노을


눈이 그쳤는데 그는 이제 아프지 않을까
지는 해를 바라보는 동안 나는 내내 아팠다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드는 동안
내 안에 저녁노을처럼 번지는 통증을 그는 알까
그리움 때문에 아프다는 걸
그리움이 얼마나 큰 아픔인지를 그도 알고 있지 않을까
하루 종일 누워서 일어나지 못했다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안다
돌이킬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왜 그리움은 혼자 남아 돌아가지 못하는 걸까
눈은 내리다 그쳤는데
눈처럼 쏟아지던 그리움은
허공을 헤매다 내 곁에 내린다 아프다

엽연


안되는데 안되는데 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멈추자 멈추어야 한다 하면서
오늘도 다리를 건넜다
잘 드는 칼로 끊어버린 날도 많았다
달맞이꽃도 밤별도 알고 있으리라
바보같이 천치같이를 되풀이하며
회초리로 나를 때리며 새운 밤도 많았다
오늘도 안되는데 안되는데 하면서
오늘도 돌아가자 돌아가자 하면서

노란 잎


누구나 혼자 가을로 간다
누구나 혼자 조용히 물든다
가을에는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대 인생의 가을도 그러하리라
몸을 지나가는 오후의 햇살에도
파르르 떨리는 마음
저녁이 오는 시간을 받아들이는
저 노란 잎의 황홀한 적막을 보라
은행나무도
우리도
가을에는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상사화


남쪽에선 태풍이 올라오는데
상사화 꽃대 하나가 쑥 올라왔다
자줏빛 꽃봉오리 두개도 따라 올라왔다
겁도 없다


숲은 어떤 예감으로 부르르 떨고 있는데
어떤 폭우 어떤 강풍 앞에서도
꽃 피우는 일 멈출 수 없다는
저 무모한
저 뜨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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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는 젠더 문제이기도 하면서, 지리적 문제이자 특권 문제이기도 했다. 아이비리그에서는 텍사스 규정에는 없던 모든 방식으로 여학생들을 훈련하려고 했다. 텍사스 여학생들은 승마 경주banneracing)에 나갈 수는 있었지만, 승마를 하려면 돈과 말이 필요했다.
우리가 갖지 못했던 건 스스로 삶의 힘이 자라나고 넓어져 가는 걸 느낄 기회와 방식이었다. 당신은 아직 무엇을 배우지 못했는지, 어떤 기회가 없었는지, 그리 많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부재가 내게 가져다준 모순적인 상황에 조금 경탄한다. 나의 걸음걸이를 느리게 했던 소아마비가 내게 물을 선물해 줬으니까 말이다.
캐롤라인에 대한 나의 사랑은 내 삶에 있어 본질적인 의미의관계였고, 공교롭게도 내가 특정 나이가 되어 힘과 자유를 느끼기시작할 무렵 그녀를 만났다. 40대 초반이 되었을 때다. 세상 물정 - P201

에 밝으면서도 마라톤에 나갈 수 있을 만큼 젊은 나이.
나는 문학 비평가라는 사랑하는 일이 있었고, 처음으로 반려견 사모예드를 기르게 되었다. 22킬로그램이 넘는 아름다운 사모예드는 만족스러운 내 삶의 나날들을 더욱 풍요롭게 해줬다. 내겐 매주 마감 일정이 있었고, 수영장과 숲 그리고 내 쌍둥이인 것같은 여자친구도 있었다. 사실 캐롤라인에겐 진짜 쌍둥이 자매가 있었지만 말이다.
그보다 몇 년 앞서 나는 사랑했던 혹은 사랑한다고 생각했던한 남자를 떠났다. 하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라 그의 칭찬과 사랑을 갈구하며 인질로 잡혀 있는 관계일 뿐이었다. 그는 수년간 형편없는 로맨스로 점철된 내 삶의 거친 나날들의 마지막 장을 장식한 남자였다. - P202

내겐 일이 있었고 술 취하지 않는 맨 정신이 있었기에 겨우 살아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여자친구와의 우정, 특히 캐롤라인과의관계가 나를 지켜 냈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각자의 모습을 발견하며 성장했고, 각자가 발견하지 못한 내면의 힘을 상대가 끌어내주며 함께 성장했다. 함께일 때면, 혼자일 적엔 몰랐던 내면의 강한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사랑했다. - P202

내가 칭찬을 갈구했던 그 남자는 내 글이 발행되기 전 종종 미리 읽고 수정해 주곤 했다. 그 남자가 파란색 펜을 들고 수정하던어느 날, 우리 관계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나는 존 르 카레(John le Carré)와 어렵게 인터뷰를 마친 뒤 기사를작성했는데, 기사 도입부가 썩 마음에 들었다(시간이 확실성의 지표라면 3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그 도입부가 마음에 든다. 내가 쓴기사를 읽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데, 어느 순간 그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생겼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내 첫문장에 줄을 긋고는 "문장이 지나치게 화려해"라고 말했다. - P203

머뭇거리던 그 모습에 나는 그를 보내 버렸다. 나는 이전에도그런 장면을 두어 번 본 적이 있다. 대학원과 직장에서, 내가 존경하던 남성들은 내 글을 읽으며 움찔하고는 분수에 맞는 문장을 쓰라고 했다. 나는 그 남자보다 열한 살이 어렸지만 더 나은 작가였고, 어떤 문장이 좋은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가 수정을 끝냈을 때, 나는 고맙다고 말하고는 사본을 들고내 서재로 갔다. 나는 원래 썼던 그대로 내 문장들을 복구했다. 이틀 뒤 신문이 발행되었고, 내 글은 맨 앞쪽에 실렸다. 그는 아침을먹으며 기사를 읽더니, 눈썹을 치켜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그냥 웃었다. - P203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여자가 그러듯) 친구에게 우리의 성적 역사와권력 앞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했다. 진실이 속삭이거나 소리치는데도 권력은 별 관심도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크든 작든 성폭력이 나를 쓰러뜨리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느낀다고 말한다.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기지도, 드러나든 드러나지 않는 나를 망쳐 놓지 않아서 다행이다.
뜻밖의 행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사람들은 트라우마에시달리고, 트라우마를 안고 살고, 무수한 방식으로 트라우마를 표출하며 살아간다. - P204

마조리는 우리에게 일어난 흔한 일이나 우리의 아주 미미한 조언도 모두 메모하곤 했다. 정작 메모를 해 가며 그녀의 말을 듣고기억해야 했던 건 우리였는데 말이다.
마조리를 알고 지낸 시간이 20년도 되지 않지만, 그동안 내겐반려견이 있었고, 캐롤라인이 있었으며, 내가 사랑한 모든 게 있었고, 그것들을 모두 잃기도 했다.
마조리는 그 모든 걸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비통함앞에서 결코 움츠러드는 법이 없었고, 비탄이 다가올 때 폄하하지않았으며, 큰 의문 이상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녀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50대에는 자매를 잃었기에, 견딜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걸 잃는다는 상실에 관해 잘알 - P217

고 있었다. 이 전쟁터에서 그녀는 전사였다.
지금 와 돌아보면, 그녀는 캐롤라인이 죽은 다음 날 아침 나를만나러 처음으로 내 집에 찾아와 활짝 웃으며 두 팔을 펼치고 성큼성큼 다가온 사람이었다.
몇주 뒤 내가 아무런 경고도 없이 그녀의 집에 찾아가 현관에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자, "벼락처럼 덮쳐 오는 일들이 있지만,
때로는 그만큼 빨리 사라져 버리기도 해"라고 말해 줬다. 그녀는고통을 피해 달아나거나, 말실수한 친구들 그리고 날 돕지 못한친구들을 용서하라고도 일러 줬다. - P218

분개 말고도, 내가 돌봐야 할 더 큰 감정이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았다. 그녀는 내가 가장 친한 친구를 묻을 때도, 부모님 두 분을 땅에 묻을 때도 사랑하던 반려견을 묻을 때도, 내곁에 머물러 주고 어떻게든 계속 살아갈 방법을 알려 줬다.
죽음을 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야기의 자연스러운 결말로받아들이는 것, 그건 비나 밤처럼 어느새 찾아오는 무심하고도확실한 삶의 결과였다.
마조리가 살면서 가장 아쉬워한 점은 자녀가 없다는 것이었다. 자식을 낳지 않은 걸 두고 인생의 한 가지 선택지가 아닌 개인적 실패 혹은 잘못이라고 생각하는게 나는 속상했다. - P218

버지니아 울프는 《파도(The Wave)》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소설 집필을 시작하며, ‘매우 불완전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황홀한 책이 가지고 있는 힘은 하늘만이 아실 것이다‘라고 일기에 썼다.
이 장면은 울프의 순전한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일기 도입부에서는 위풍당당하면서도 외로운 모습을 드러내며 작가의 경험을 정확히 묘사한다.
나는 이 문장을 프린트해서 위층 서재 벽에 붙여 두었다. 그 옆에는 튤라가 잠든 모습을 그린 그림, 글쓰기 아이디어들을 적어둔포스트잇,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아빠가 엄마에게 보낸 전보도 붙여 두었다. - P227

나는 울프의 정신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오래전 잉크병을 집어던졌다. 가정의 상징적인 천사에 맞서기 위해 잉크를 무기로 사용했다. 남성에게 부여받은 성스러움으로 창의적인 여성의 영으로 배를 채우는 가정의 천사에 맞서야 했다. 울프가 기록하길, 그녀는 한 세기 동안 여성들에게 영감을 주고 여간해서는 죽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 내게 강요하는 천사는 없다.
아무도 내게 저녁을 준비하고, 자신을 희생하고, 예의를 갖추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오직 나뿐이다. 나와 반려견, 그리고 바늘이 없는 시계만 있다.
배고프면 먹고, 걷고 싶으면 걷는다. 때로는 몇몇 훌륭한 순간을 위해 검소하고 엄격한 흥정을 하고, 어쩔 땐 잔인한 고요함을누린다.
요즘은 계단을 오를 때면 익숙하게 느껴지는 숲의 빈터를 향해마음이 굽는다. 너무 무서워서 받아들이지는 못할 때도 있다. 어느 날은 그냥 앉아서 창밖을 내다본다. 가끔 겨울 오후에는 춤을춘다. - P230

‘일년생식물(annual)‘이란 단어도 한 해를 의미하는 라틴어에서왔으며, 반드시 죽는(mortal)‘이라는 단어도 죽음을 의미하는 라틴어에 어원을 둔다. 오직 한 단어만이 시간과 연관된 단어가 아닌끝 혹은 빛을 잃는 순간을 의미한다. 반려견은 죽을 것이고, 나는다년간 내가 죽을 때까지 반려견을 사랑할 것이다.
나는 양쪽 부모님 집안으로부터 원예 재능을 물려받았다. 물론 텍사스에서 뭔가를 기르는 일은, 특히 농장 집안 출신이라면의무적으로 주어진 업이었다.
1950년대쯤 찍은 한 사진을 보면, 뒷마당에 있는 아빠 무릎에아주 조그마한 내가 앉아 있다. 옥수수와 토마토의 키가 얼마나큰지, 나는 밥도 못 얻어먹은 아이처럼 보인다. - P238

몇 주 동안은 가을정원을 청소하고 꿩의다리꽃과 스위트피를 지나친 애정으로 돌보느라 날마다 흙에 파묻혀 시간을 보냈다. 해질녘까지 정원에머물다 손이 흙으로 엉망이 되었고, 한철 늦게 피는 야생화들의풍작을 보며 야생의 행복을 음미했다.
나는 항상 삶의 다년성을 상기해야 했고, 윌라 캐더(Willa Cather)의 소설 《나의 안토니아(My Antonia)》에서 호박밭에 누워 완벽한 고요 속으로 떠다니는 장면을 아름답고 정교하게 묘사한 문장 ‘우리가 죽어 전적으로 다른 무언가의 일부가 될 때‘를 상기해야 했다.
내 지친 마음에 연고를 발라 줬다. 내가 일하는 동안튤라는 수호초 근처에 엎드려 있었고, 나는 튤라옆에 누워잡초와 한련초가 고개를 숙이고 우리의 슬픔을 흔적도 없이 덮어 주길 바랐다. - P241

우리는 모두 괜찮고, 사랑은 죽지 않는다. 다만 물리적인 육체만 죽어 없어질 뿐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위안이 된다. 반복해서잊고 마는 천진함처럼,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언제나 잊고 사는진실이다.
샌프란시스코에 살 때 나는 20대 초반이었고, 하루는 희망에찼다가 다음 날 무너져 버리는, 방황하고 아슬아슬한 사람이었다. 혼란스러운 시대에 캘리포니아는 최고의 것과 최악의 것을모두 다 가지고 있었다. - P250

캘리포니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게 분명하다. 닫혔던 내 시스템을 무엇인가가 비집어 열고 들어왔다. 나는 어두운 밤 혼자의자에 앉아서도 혼자라 느끼지 않고 분열되지 않는다. 그냥 슬프고 슬픔에서 위안을 얻을 뿐이다. 그건 온전함이다. 때로는 기쁨 대신 경험 자체를 얻는다.
비탄은 어둠 속에서 펼치는 레슬링 경기다. 당신은 숨을 빼앗기고 탈진해 버린다. 당신은 쓰러지고 거대한 자신 그 자체가 될뿐이다. 당신은 매번 다시 배워야 한다. 고통을 겪어 봤다고 해서, 이해하거나 거르고 넘어가는 법은 없다. - P254

북동부의 끝없는 겨울엔 무엇보다도 빛이 가장 먼저 돌아온다. 맹렬한 눈보라 한가운데서도 견뎌 내야 하는 혹한의 바람이주나 더 남았어도 매일 새하얀 눈 위로 하얗게 반사되어 펼쳐지는 빛을 보며 삶은 살아봄 직하다는 사실이 축복처럼 다가온다.
상처받고 황량해도 밝게 펼쳐지는 빛이 있고, 길어질 날이 있으며, 약속이 있다.
살아오면서, 지나온 것들보다는 앞에 놓인 것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러지 못하면 삶의 여정에서 슬픔에 빠져정신을 놓아 버릴 것이다. 과거의 시계와 앞에 놓인 날들 사이에조심스럽게 머물러야 한다. 같은 길일지라도 말이다.
나는 겨울 중 아주 여러 날을 케임브리지 거리를 걸으며 보낸다. 어떤 날은 묘지에 들러 내가 돌멩이를 놓아 둔 묘비를 지나친다.  - P256

가능한 한 매일, 영감의 원천이 되는 샘물을 마셔야 한다. 꼭 대단한 트레비 분수가 아니어도 된다. 개울에서 흘러온 물도 괜찮고 컵에 든 한 잔의 물이어도 된다. 아름다움이든 선함이든, 거기 있는 걸 취하면 된다. 들이마시는 공기도 피어스 무덤 위를 뱅뱅 도는 새빨간 꽁지깃을 단 매도, 영감을 준다.
돌멩이들을 남겨라. 걱정은 되도록 하지 말자. 나는 이 무덤이 좋고, 죽음과 희망에 관해 무덤이 가르쳐 주는 게 좋다. 타일러가 어릴 적 상상했던 40만 킬로미터도 넘는 밧줄처럼, 세대를 건너 무덤이 던지는 기다란 밧줄 같은 게 느껴진다.
나는 지금 나의 어둠보다 멀리 걸어 나가려 한다. 한 발짝 한발짝이 모두 믿음의 행동이고, 매번 내쉬는 숨은 누더기가 되어버린 기도문이다. - P258

공집합 기호 Ø가 새겨진 피어스의 무덤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무한대 기호 ∞와 헷갈렸다. 어릴 때 나름 수학 영재였던 내가처음부터 제대로 파악했어야 했지만, 어쨌든 몇 달간은 무한대로착각하고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무의식중에 아무것도 없는 공집합이 아닌 영원함을 보고 - P267

싶었던 것 같다. 텅 빈 공간이 아닌 한계가 없는 수평선을 말이다.
나는 수평선이 두 가지 모두를 상징한다고 배우며 자랐다. 끝이없으면서도 반드시 풍족한 개념은 아니기에, 내게도 그리고 세상에도 와 ∞는 같은 걸로 보일지 모르겠다.
당신은 이 두가지 모두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요정들은 자라서 사라지고, 반려견과 친구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도 모두 당신을 떠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삶 자체를 비롯한 삶의 모든 것이, 타인의 선의는 물론이고 타인의 덧없음에도 달려 있다는 사실 또한 기억해야 한다.
영원은 멀리 한 줄 기억 속에 흐릿해지도록 두고, 당신은 신기루를 향해 걸어가야만 한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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