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제공자들에게, 그 일을 유급으로 하는 사람, 무급으로 하는 사람 모두에게
Ducunt volentem fata, nolentem trahunt.
운명은 순순히 따르는 이에게는 길을 안내하고, 순순히 따르지 않는 이는 억지로 끌고 간다.
1994년 말, 어머니가 병을 얻었다. 그로부터 약 11년동안 어머니는 자신의 세 딸들, 즉 나와 두 언니에게, 그리고 의사들, 간병인들, 간호사들, 물리치료사들, 기타의료종사자들에게 의지했다. 어머니는 상주 간병인과함께 맨해튼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지냈다. 언니들과 나는 역할을 분담해가며 어머니를 공동으로 돌봤다. 어머니의 의료 문제에 관한 결정을 함께 내리고 어머니가 집에서 편안하게 생활하는 데 필요한 업무를 협력해서 처리했다. 어머니를 살리는 일에 주저함은 없었지만, 맹목적으로 희생하며 이타적으로 그 일을 수행하지는 않았고, 또한 그것은 가혹한 의무이기도 했다. 그 11년은 좌절의 연속이었고 배움의 과정이었으며 이상하게도 깨달음의 시간, 일종의 병적인 깨달음의 시간이었다. 미칠 것 같은, 우울하기 짝이 없는 날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결코 알고 싶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병든 부모를 돌보는 성인 자녀에게는 이 이야기가 - P10
조금씩 다른 점은 있겠지만 익숙한 이야기일 것이다. 직면한 문제가 같으면서도 다르기 때문이다. 아직 부모를돌봐야 하는 상황을 겪지 않은 자녀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상황을 마주할 일이 없을 자녀들, 즉 행운아들에게 이 이야기는 반면교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족마다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고, 이보다 더 이상한 경험을 했을 수도 있다. 언니들은 같은 사건과 관련 사건들에 대해 다른 버전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모든 사건은 개인의 주관적인 관점에 의해 걸러지기마련이고, 이것이 회고록과 구술사가 설득력을 얻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이야기에서는 화자의 솔직함, 화자가 기억하는 것, 화자의 삶을 이루는 사실들 못지않게화자를 신뢰할 수 없다는 점, 화자가 지닌 잘못된 정보와 편향도 중요하다. - P11
역설적이게도 나는 한때 이렇게 쓴 바 있다. "경험은우리에게 경험을 신뢰하지 말라는 교훈을 준다." 그리고그것은 진리다. 적어도 다른 사람의 경험에 대해서는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것들이 항상 본인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어머니를 돌보는 일에 대해 어느 정도 온화한 감정이 들었고, 때로는 절망과 분노를 느꼈다.
내가쓰는 반면교사의 이야기에서 사람들이 자신의경험을 엿보거나 다른 사람의 경험과 유사한 점을 발견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또한 크고 작은 차이점도많을 것이다. 가장 중요하게는 내러티브의 판관判官이라고 할 수 있는 시점이 다르다. 허구든 실화든 모든 이야기는 화자의 입장을 대변한다. 이것은 전체 그림의 일부, 내가 바라보는 위치에서들려주는 이야기이므로 아마도 내게 유리하게 서술될것이다. 물론 나는 내가 그런 경향에 굴복하지 않고 이글을 쓸 수 있기를 바란다. 내 목표는 당신에게 도움이되거나 정보를 제공하거나 위로를 건네거나 당신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내가 이 상황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이다. 이 일을 완벽하게 제대로 해내기란 불가능하다. - P12
부터 10월까지다. 그리고 11월이 되면 어머니는 더 이상자신의 일정을 관리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어머니의 일정을 관리하거나 언니들 중 한 명이 했다. 나중에는 어머니의 오랜 간병인이 그 일을 인수받아서 병원 진료와 물리치료 등의 예약 일정을 기록했다. 나는 잊지 않기 위해일기를 썼다. 어떤 사건들은 집중적으로 세밀하게 다룬다. 장면들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사람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문장 전체 답변, 질문이 그대로 되살아난다. 대다수의 사건들은 잊혔다. 특히 사건들 사이의순간들이 더 큰 사건 또는 주요 사건들, 예컨대 어머니의 수술 같은 사건의 서곡 같은 것들이. - P19
의사들은 대개 가족이 의사에게 전달하는 의견이나 이론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거기에서부터 의사는 분석하고 가설을 세우고 추론하고 진단한다. 당신이 내린결론을 먼저 제시하는 것은 실수다. 의학적 보고는 내러티브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순서에 따라 의사가 두는 첫수와 해석이 달라진다. 환자의 대변인은 증상을 함부로진단하지 않도록 경계해야만 한다. 대신 이상 행동 등 문제나 증거를 시간 순서대로 제시해야 한다. 이때 가능하면 해석은 덧붙이지 말아야 한다. 이 일이 일어났을 때, 그전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가 하면...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당신이 실제로 관찰한 것과 당신이 받은 인상은 분명 중요하지만, 그것은 정답이 아닐 수 - P23
도 있고 정답이어서도 안 된다. 다른 한편으로(그리고 그런 다른 한편은 아주 많다) 수동적인 태도는 방해가 된다. 간병인은 의사에게공격적으로 달려들어야 할 수도 있다. 의사의 결정, 처방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의사가 짜증을 낼 때까지 물고 늘어져야 할 수도 있다. 의사는 신이 아니다. 비록 신처럼 구는 의사도 있지만. 환자나 그 가족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질색하는 의사도 있다. 환자 측의 이야기를들어줄 시간이 없는 의사도 있다. 개의치 않는 의사도 있다. 많은 의사가 자신의 일을 훌륭하게 해낸다. 의사들은 환자를 해고할 수 있다. 아마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일을 당한 경험이 없다. 그보다는 당신이의사를 해고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이 더 높을것이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을 하라.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세심한 주의력, 경청하는태도(당신도 경청해야만 한다), 진심 어린 숙고, 솔직함, 성실함이다. - P24
의사의 진료실은 혼돈 그 자체일 수 있다. 진료 예약 시간은 오후 1시지만, 이미 오후 2시 30분이다. 의사가 응급 상황에 호출되었다. 사람들은 잊기 마련이다. 당신도잊고, 의사도 잊고, 차트의 기록이 틀리고, 당신이 설파계 항생제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는 정보가 빠져 있기도 하고 간호사가 차트를 엉뚱한 곳에 두기도 하고 비유적으로는 환자를 엉뚱한 곳에 두기도 한다. 내게는, 모든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퍼져나가는 동시에 한데 몰려들었다. 어려운 의학적문제들, 확신의 부족, 선택지와 가능성이 적거나 없다는느낌. 무거운 장애물이 당신을 약하게 만든다. 위협이 당신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도록 마구 흔들어댄다. 실제로도 다른 선택지는 없다. 오로지 그런 것들을 극복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담대하게. - P33
삶은 질서정연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자기 삶의 모든 부분을 통제해야 하는 사람들, 작은 것 하나라도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변하면 길길이 날뛰는 사람들을좌절시킨다. 삶은 완전하고 완벽한 통제를 허락하지 않는다. 삶은 남쪽 북쪽 사방팔방으로,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 P33
아인슈타인은 시간이 존재하는 이유가 오로지 모든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썼다. 나는 나를 안내해줄 시간, 달력, 시계, 시와 분이 없는날들을 상상해봤다. 시간이 없는 날들, 서로 구별되지않는 날들, 현재와 과거를 분간할 수 없는 상태가 아마도 어머니가 느낀 것들일 것이다. 어머니에게는 모든 날들이 하루였다. 시간의 밖에 존재하는 것, 계획을 세울수 없는 것, 자신의 일정을 관리하지 못하는 것은 무척이나 끔찍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또한 어머니의 자아 감각에 엄청난 타격을 입혔을 것이다. 어머니의 자존심에커다란 상처를 남겼을 것이다. - P36
뇌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때, 그래서 스스로 무슨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하거나 생각하더라도 더 이상 자기 생각을 믿을 수 없게 되면 삶에 논리를 부여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다만 그 삶은 당신의 예전 삶일 수는 없다. 나는 스스로를 관리하기 위한 자신의 능력 상실에 대처하기 위한 어머니의 노력을목격했다. 어머니의 노트는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고, 그러다 어머니는 노력을 할 능력조차 잃었다. 나는 어머니의 카드비와 관리비를 내고, 살림과봄 서비스 제공자에게 임금을 지불했다. 어머니는 한 번도 내 업무 처리에 간섭하지 않았다. 그전까지 어머니는 자신의 수표책을 직접 관리하면서 수입·지출을 관리했다. 수표책은 화려하고 또렷한 필체로 기록했다. 더하고 빼면서, 나는 어머니의 수표책을 관리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내 수표책도 관리한 적이 없다. - P38
메디케어가 없었다면 어머니에게 우리가 제공한 것과 같은 의료및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기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어머니의 예금은 어머니가 평생을 쓰고도 남을 만큼 넉넉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바닥났을 것이다. 언니들과 내재정 상태도 심각한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메디케어는어머니의 수술비를 댔다. 그리고 공동 부담을 통해 어머니의 진료비도 함께 냈다. 어머니를 진찰한 의사들은 모두 메디케어 환자를 받았다. 그러나 한결같이 대비해야한다. 메디케어 명세서와 청구서는 복잡하고 이해하기쉽지 않다. 무엇이 지불되었는지, 무엇이 지불되지 않았는지를 파악하기 어렵다. 다행히 우리는 그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 P39
그리고 허공에서 바느질을 하는 무의식 상태의 어머니를멍하니 바라봤다. 어머니는 망망대해 같은 이 로비에서갈 길을 잃은 채로 떠다니고 있었다. 독특하게 끔찍하면서도 기괴한 경험이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어머니는 갈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리고 어머니 옆에 있는 나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나는 틀림없이 울고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 옆에 딱 붙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아무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마도 성질이 급하거나 그냥 성실한 사람인 구급대원은 내게 입원 수속 안내 직원에게 다시 한 번 얘기해보라고 말했다. 나는 또다시 달려가서 병상이 마련되어 있다는 약속을 받았다는 등 설명을 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그 자리에 서서, 내 평생 처음으로 히스테리를 부리기 직전의 감정을 느끼면서. 로비 한가운데에 누워 있는 어머니는 허공에 대고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 P46
의사가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당신이돌보는 환자가 도움을 받을 수도, 해를 입을 수도 있다. 의사가 질병에 대한 두려움, 질병에 대한 공포증이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의사가 되었을 수도 있다. 질병을물리치고 싶어서, 다른 사람의 생명뿐 아니라 자신의 생명도 구하기 위해서 어머니나 형제가 아픈 환자여서. 어떤 의사는 노인을 충분히 정성 들여 치료하지 않는다. 심지어 무시하기도 한다. 노인은 죽음을 나타낸다. 나이가 들면서 몸이 더 쇠약해지고 면역체계도 더 약해진다. 장기가 마모되고 질병에 걸릴 가능성도 더 높아진다. 의사들도 노화 및 죽음이 탄생 및 젊음과 마찬가지로 질병이 아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 P55
알지만, 게다가 노인 인구와 인간의 수명이 똑같이 늘고있지만, 노인학을 전공으로 선택하는 의사는 거의 없다. 성형외과, 산부인과, 피부과가 선호되는 전공이다.
어머니가 다시 예전의 자신으로 되돌아가거나 예전만큼 신체·정신 능력을 회복하기를 기대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어머니는 시간이 지나면서 나아지기는 했다. 뇌는 자가복구를 하면서 새로운 경로를 찾고 만들어낸다. 또한 어머니는 심지가 굳은 사람이었다. 어머니가 더젊을 때 정상뇌압수두증에 걸렸다면 상태가 훨씬, 훨씬더 잘 회복되었을 것이다. 션트를 더 일찍 삽입했다면 예후가 훨씬 더 좋았을 것이다. - P56
이런 고통스러운 과정-인지 저하, 수술, 검사, 더딘 회복을 겪는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나는 미래가, 시간의 유령이 다가오는 것이 두려웠다. 심지어 터무니없게도 내가 더 빨리 늙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 가능성들과 환상들을 어머니에게, 그것도 내가 사랑하지 않는 어머니에게 빼앗기고 있었다. 이것이 초창기의 그림 일부를 구성한다. 우리 세 자매는 끊임없는 걱정의 공기 속에 존재했다. 불길한 예감은 우리가 선택한 적 없는, 일상의 구성 요소였다. 며칠, 몇 주는 다른 날들, 다른 주들보다 나았다. 그러다 뭔가일이 터지곤 했다. - P57
나의 특권은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후유증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그 특권의 조건과 결과는 추상적이지 않았고 사적이었으며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우리가 고용한 여자라는 형태로 체화되었다. 나는 이를 의식하고 있었지만 내 특권을 포기하지않았다. 내가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면, 그렇게 어머니를위해 내 삶을 바꿨다면 내 특권을 포기할 수 있었다. 그것이 역사에 저항하는 방법임을 알았지만 나는 그럴 수없었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살 수 없었다. 그냥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했다면 나는 24층에 있는 어머니 아파트의여러 창문 중 하나에서 몸을 내던졌을 것이다. 죄책감은 중요하지 않았다. 죄책감은 이기적이었다. - P59
서로 소원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절대로 일어나지 않기를바랐다고 생각한다. 이런 걸 언니들과 논의한 기억은 전혀 없지만 암묵적으로 전제되어 있었다. 어떤 가족은 죽움이 닥치는 그 순간까지 분열되고, 파괴되고, 편을 가른다. 우리는 서로를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어머니도 버리고 싶지 않았다. 비록 나는 이따금 그러고 싶었지만, 우리 중 어느 누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잠들지 못한 날들이 있었고, 언니들도 그랬을 것이라고확신한다. - P68
내 삶이 좁아진 듯했다. 내 삶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듯했다. 나는 내 삶의 일부를 포기했고, 그런 생각들을 했다. 꼭 해야만 하는 의무로 여겨지는 일을 하고 싶지 않은 나 같은 사람들이 흔히 하는 그런 생각들을 희생. 나는 자유의 상실이라는 현실에 저항했다. 특히 첫이삼 년간 크게 반항했다.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다적응했다. 그러나 완벽하게 적응하지는 못했다. 어머니의 아파트에서 주말을 보내야 할 차례가 되었을 때가 특히 힘들었다. 그럴 때면 몇 시간이 몇 년처럼 느껴졌다. 무기력하게, 포로가 되어, 넝쿨째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철없는 또는 바보 같은 또는 쓰잘머리 없는 감정들. 그리고 그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 P69
바랐다. 이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는 일이 내게는 커다란벽처럼 느껴졌다. 간병인과 어머니의 관계, 우리 자매가이 짐을 동등하게 부담하게 하는 법. 우리 중 누구도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우리는 그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고,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대처했고, 최선을 다했다. 나는 내가 내 한계를 안다고 생각했다. 내게 한계가 주어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계와경계는 지워졌고 세워졌고 다시 지워졌다. 기본적으로상태가 불안정한 환자나 친구가 문제일 때는 그 무엇도안정적일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러기를 바랐고 평형 상태를 기대했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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