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고통과 상처, 갈등을 이야기할 때는 ‘충고나 조언, 평가나,판단 (충조평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대화가 시작된.
다. 충조평판은 고통에 빠진 사람의 상황에서 고통은 소거하고, 상황만 인식할 때 나오는 말이다. 고통 속 상황에서 고통을 소거하면 그상황에 대한 팩트 대부분이 유실된다. 그건 이미 팩트가 아니다. 모르고 하는 말이 도움이 될리 없다. 알지 못하는 사림이 안다고 확신하며 기어이 던지는 말은 비수일 뿐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 일상의 언어 대부분은 충조평판이다.
- P106

고통을 마주할 때 우리의 언어는 거기서 벼랑 처럼 품어진다. 길을잃는다. 그 이상의 언어를 알지 못한다. 노느니 장독 낀다고 충조평판이라도 날려보는 것이다. 그러니 끼니처럼 찾아오는 일상의 갈등과 상처가 치유될 리 만무하다. 덧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건이 풀리지 않을 때 현장을 다시 찾는 수사관처럼 내 언어가끊어진 벼랑으로 돌아가 보자, 현장에 가는 이유는 그곳에 해결의실마리가 있기 때문이다. 벼랑 끝에 선 사람에게 나는 어떤 말을 해줘야 하는가. 결론적으로 해줄 말이 별로 필요치 않다.
그때 필요한 건 내 말이 아니라 그의 말이다. 그의 존재, 그의 고통에 눈을 포개고 그의 말이 나올 수 있도록 내가 그에게 물어줘야 한다. 무언가 해줘야 한다는 조바심을 내려놓고 지금 그의 마음이 어떤지 물어봐야 한다. 사실 지금 그의 상태를 내가 잘 모르지 않는가.
물어보는 게 당연하다. 내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인정한다면 그에게 물어볼 말이 자연히 떠오른다.
- P107

내 고통에 진심으로 눈을 포개고 듣고 또 듣는 사람, 내 존재에 집중해서 묻고 또 물어주는 사람, 대답을 채근하지 않고 먹먹하게 기다려주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상관없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앓다.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다. 그 한 사람이있으면 사람은 산다.
- P109

한 사람의 힘이 그렇게 강력한 것은 한 사람이 한 우주라서 그럴것이다. 근사한 수식이나 관념적인 언어가 아니라 마음에 관한 신비한 팩트다. 사람은 그 한 사람‘이라는 존재의 개별성 끝에서 보편성을 획득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은 세상의 전부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다. 그래서 누구든 결정적인 치유자가 될수 있다.
‘나‘ 이야기, 내 존재 자체에 대한 이야기의 불씨가 지펴지면 희미하던 생명의 박동이 쿵쾅쿵쾅 돌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나‘ 이야기에 정확하게 두 손을 대고 있는 한 사람은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어도 심리적 CPR을 하는 사람이다. 사람 목숨을 구하는 사람이다. 두손을 그의 나‘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한 존재와 이어진 것이다. 존재와 존재의 연결이 사람에게 생명을 부여한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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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매 할머니의 시
           김승희

  저기 파출소가 있네
  잘 외워둬야지
  나를 분실할까 두려워
  외출할 땐 주민등록증을 손에 꼭 쥐고
  내 신체의 일부에 아이들 외국 전화번호를 새겨둬야 하는데
  팔에 새겨둘까 다리에 새겨둘까
  가슴에 새겨둘까
  유방 위부터 쇄골 있는 곳까지 거기 가운데가 좋겠어?
  아니면 둥글넓적한 복부 한가운데

  잊어야 좋은 것들
  잊으면 안 되는 것들 사이사이로
  백발에 맨발로 거리를 배회하다가
  착한 경찰관 아저씨의 안내로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면
  아무도 없는 집
  할머니, 집에 아무도 없어요? 자제분들 안 계세요?

  그러면 바지를 내리고
  복부 한가운데 새겨둔 아이들 이름과 전화번호를 보여줘야 해?
  신이 말했잖아, 너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그러므로 나의 배에다 이름과 전화번호를 새겨놔야 해?
  아 그건 좀 아무래도......
  그러면 가슴 한복판, 양쪽 유방 위 쇄골의 영역에다 새겨서
  옷을 올리고 보여줘야 해? 하하, 그래도 그게 좀 낫겠다

  인생은 다 재미있어,
  똥오줌 그게 문젠데
  너무 제정신으로 똑 부러지게 인생을 살 필요는 없어
  초월을 못하잖아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중에서


  픽~ 웃음이 나는 시다. 웃기지만 슬프다. 요즘 말로 웃픈, 시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치매‘라는 단어만 들어도 두려움이 슬금슬금 파고든다. 치매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고,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는 것을 시인도 알고 있다. 한때는 머리를 쓰지 않으면 치매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해서 어른들 사이에 고스톱 치는 게 유행이기도 했다. 고스톱은 점수를 계산해야 하고 상대방이 가진 패를 짐작해야 하고 손을 움직이는 운동이 계속되기 때문에 치매 예방에 좋다는 썰이 떠돌던 시절이었다. 과학적으로, 의학적으로 맞는지 어떤지 모르겠다. 그런데 사유가 깊은 시인의 치매에 대한 근심은 그저 기우이기만 한 것은 아님 또한 알고 있다. 저렇게 자연스럽고 적나라한 감정 변화와 걱정들이라니 시인의 의식은 명료하다. 혼자 지내기에 더욱 걱정의 종류는 많아질 것이다. 어디다가 연락할 곳을 적어두지, 하루하루 달라지는 기억력은 몸의 어느 부분에 문신처럼 새겨놓아야 할까? 이 현실적인 고민들 앞에서 무기력해지는 노인을 본다. 노인, 쉬운 단어이면서 어려운 단어이기도 하다. 누구도 노인이 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노인이 되는 것도 순식간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늙으니까. 영원히 나이들 것 같지 않았지만 지금 내 나이 또한 노인을 향해 성큼 다가가고 있다. 치매도, 노인도, 그 사람이 바로 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언제나 하고 있다. 어쩌면 죽음보다 ‘치매‘와 ‘노인‘이 더 심각한 걱정거리다. 그러나 걱정한다고 뭐가 달라지랴~! ˝인생은 다 재미있어˝ 앞서서 걱정하지 말고 오늘을 재미있게 살자고 시인은 결론 내린다. ˝너무 제정신으로 똑 부러지게 인생을 살 필요는 없어˝


  활동을 위한 시간이 있다면 게으름을 피우기 위한 시간도 있다. 카이로스다. 우리 문화는 후자가 아닌 전자만 중요시한다.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는 왕성하게 활동한 작가였지만 가끔은 모든 일을 멈추고 쉬기도 했다. 두 사람이 로마에서 보낸 여름들은 무無를 확장하는 시간이었다. 보부아르는 자신의 여러 프로젝트와 끝없는 분투를 잠시 옆에 치워두고 로마에 ˝몸을 담갔다.˝ 비버는 쉬고 있었다.
  ‘수용‘은 보부아르가 자주 쓴 단어가 아니었지만 그녀는 수용과 유사한 무언가를 이뤄냈다. 일흔다섯 번째 생일을 하루 앞둔 날 보부아르는 이렇게 말했다. ˝나이 드는 데에도 장점이 있다.˝ 니체처럼 보부아르도 지난 삶을 전혀 후회하지 않았다. ˝나는 모든 것을 최대한 많이, 최대한 오랫동안 즐겼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보부아르처럼 늙어가는 법 -p 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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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선서울에서 태어나 요코하마, 리스본, 산과 울부, 오사카, 뉴다. 도쿄에서 성장했다. 2005년부터 글을 쓴 이래, 신문 『엄마와 연애할때』 『나라는 여자』 『태도에 관하여『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자유로울 것』『교토에 다녀왔습니다』, 소설 『어떤 날 그녀들이』 『기억해줘』 『나의 남자』 『곁에 남아 있는 사람』 등을 펴냈다. 네이버 오디오클립 요조와 임경선의 교환일기‘를 진행 중이다.

지난 늦여름, 아빠를 엄마 곁으로 보내드리고 나는 상실의 슬픔과 사후의 현실적인 문제들로 마음이 더 깊이 지쳤다. 때로는 인간에 대한 절망과 환멸의 감정이 나를 압도했다. 그즈음 이었다. 내 곁의 딸을 보면서 아. 내가 지금 이 나이였을때 그곳에 있었지. 깨닫고 미소 짓게 된 것은, 그렇게 기억속에 묻어두었던 리스본의 존재가 내 안에서 점점 커져갔다.
문득 그 시절 내가 보고 만지고 느낀 경험들을 딸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고 싶었다. 다시 갈 수 있을 거라고는 그런 생각도.
로 해보던 리스본이 갈수록 자석처럼 나를 끌어당겼다. 하지만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지었다. 리스본은 뭐랄까, 당시 같이 살았던 유일한 자식으로서, 부모님에 관한 가장 농축된 기억이 서려 있는 장소였다. 리스본에 가면 감정적으로 완전히 무너질 것 같아서 두려웠다. 그러다가도 마음이 차분해지면, 그들이 가장 생생하게 삶을 살았던 공간에서 그들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곳에서 환하게 웃던, 갓 마흔 살 눈부신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영원히 각인하고 싶었다. 생의 마지막 날들의 고통스럽고 쓸쓸한 모습으로 간직하기에는 내마음이 너무 아팠다.
- P11

리스본에 가기로 마음을 먹자 거짓말처럼 나는 평론해.
고, 그 평온함은 이내 상상치도 못한 설렘의 감정으로 변해 내안에서 부풀어 올랐다. 결심했다. 딸아이를 데리고 리스본에가자고,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많이 쉬고 많이 자자고, 내키는 대로 걸어 다니고, 마음에 드는 장소를 발견하면 그곳에서 아낌없이 시간을 보내자고, 가끔은 과거의 장소들이 궁금하겠지만 지나치게 감상적이 될 것 같으면 무리하진 말자고,
그래도 느끼는 감정 모두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딸에게서 내모습이 겹쳐 보일 때마다 그 아이를 품에 안아주자고, 그렇게앞으로의 날들을 살아가게 해줄 힘을 얻으러 가자고,
- P12

이 이상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을까. 이미 이것으로 너무나충분한 것을,
그러니까 윤서야.
이제는 너의 시대야.
인생의 모든 눈부신 것들을 다 너에게 넘길게.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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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구원
임경선 지음 / 창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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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경선 작가의 이름을 들은 건 "어떤 날에 그녀들이" 책 광고에서 처음이다. 그리고 "태도에 관하여"라는 궁금했지만 온라인 중고서점에서 구입한 건 "다정한 구원"이었다. 제목에서 끌렸다. "구원"도 좋은데 "다정"하기까지 하다니 완벽한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산문집이려니 했는데 뜻밖에도 리스본 여행기다. 리. 스. 본.

 

  세상이 온통 회색빛이기만 하던 때였을 것이다. 특별하게 무엇을 주신 적은 없지만 거기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던 엄마가 세상을 떠나신 뒤 부엌을 같이 쓰는 방을 얻어 동생과 둘이 지냈다. 많이 다르고 많이 닮기도 한 여동생과는 떨어져 있을 땐 그리운 존재였으나 함께하면서 우리는 애증의 절벽에서 서로에게 창을 겨누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둘 다 고아처럼 의지가지없이 지내온 세월의 보호색이 되어준 뾰족한 창이 정작 고아가 되어버렸을 때는 상대를 향해 겨누게 된 것이다. 우리에게 휴전의 시간은 한수산 소설을 읽으며 같은 페이지에 눈물 자국을 남기거나 라디오를 같이 들을 때뿐이었다. 그렇게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의 "검은 돛배"를 들었다.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는 외로움의 방에 갇힌 우리를 거센 파도가 청청한 해변으로 데려다주었다. 가슴을 두드리는 전주와 애절한 목소리는 아직도 피를 철철 흘리는 상처에 연고처럼 스며들어 딱지를 만들어주었다. 창이 무뎌진 것은 아니지만 창을 내려놓은 순간들이 늘어났다. 파두를 그렇게 만났고 파두의 본고장 리스본을 알게 되었다. 내게 리스본은 파두와 동의어다. 아련하고 먹먹하게 그립고도 머나먼 곳. 혹은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20대 같은.

 

  여행을 다녀온 적이 언제인가 돌아본다. 짧게 든 길게 든, 가깝게 든 멀리든, 혼자든 여럿이든... 오래되었다. 코로나가 성행하기 이전 겨울이었나 싶다. 천만 년 전 일처럼 아득하다. 그런데 리스본, 아직 직항로도 없는 심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머나먼 곳 리스본에 가볼 수 있을까? 나지막한 천정의 식당에 앉아 파두를 듣게 될 수 있을까.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 리스본을 작가를 통해 만난다. 그에게 리스본은 열 살 때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곳이고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상실감에 허우적거릴 때 열 살의 딸아이를 데리고 열 살의 자신을 찾아서, 그 시절을 함께한 부모님을 찾아서 그렇게 만나는 리스본이다. 여느 여행기와도 달랐고 기대했던 "구원"을 내게 주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에게는 "구원"이었겠기에 부러운 시선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런 추억을 가지고 있는 작가에게 부러웠고 그런 추억을 가질 열 살 윤서(딸)도 부러웠다. 열 살, 열한 살 내 인생에서도 가장 따뜻한 유년이었을 그 나이. 아직 아버지가 계시던 집안은 평화로웠다. 쑥불이 타는 마당의 평상에 누워서 탱자나무 가시로 다슬기를 빼내먹으면 별들이 얼굴 위로 우수수 쏟아져 내리고는 했다. 다음 날 아침에 보면 별 대신 다슬기 껍데기가 가득했다. 어느 날 엄마는 키우던 닭을 잡아서 쫄깃한 살이 씹히던 닭죽을 끓여주셨고, 어떤 날은 팥을 삶고 칼국수를 밀어 팥칼국수를 만들어 주시곤 했다. 나는 그 이후로 그 팥칼국수보다 맛있는 팥칼국수를 먹지 못했고 그 여름밤의 별 보다 더 많은 별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아니, 영원히 만나지 못할 것이다. 같은 분위기, 같은 사람들은 없으니까. 양수장 집 마당의 평상이 나에겐 리스본이었고 드들강이 테주강이었구나 싶다.

 

  책을 덮고 오랜만에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의 파두들을 들었다. 여러 버전의 "검은 돛배(Barco Negro)"를 찾아들었다. 여전하다. 파두, 진실은 심금을 울린다. 그런데 달라진 것이 있다. "어두운 숙명(Maldcao)"이 더 좋았다. 그 차이는 어디서 온 것인지 모른다. 그래도 꿈꾼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도시 리스본을 만나게 될 어느 때를. 그 오래된 골목의 오래된 식당에서 식당만큼 나이 든 의자에 앉아 파두를 듣게 될 자유로운 어느 때를. 우리에게 "다정한 구원"은 그 어느 때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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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를 보면 너나없이 아프다. 마음이 아픈 사람 천지다. 근래에 조용하고 빠르게 확산하는 현상 중 하나가 공황장애, 공황발작이다. 의료 관련 통계를 들먹이지 않아도 주변에 공황발작을겪는 사람이 급격하게 늘고 있다는 걸 피부로 실감한다.
공황발작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심장이 멈추는 것 같은 느낌이 망치처럼 날아오는 증상이다. 그 순간 당사자는 죽을 것 같은공포를 생생하게 감각한다. 그런 현상이 몇 분간 지속된다. 인간이경험할 수 있는 최극단의 공포다. 그런 경험을 한두 번 하면 일상 전체가 두려움에 휩싸인다. 언제 어디서 그 광폭한 불안이 자신을 쓰나미처럼 덮칠지 알 수 없다. 예측할 수 없으니 대비할 수 없고 대비할 수 없으니 불안은 더욱 증폭된다.
- P35

정상급 연예인 중에서 공황장애를 고백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팬들에게 그들은 선망의 대상이자 품을 이룬 사람들이다. 안티팬도 있겠지만 그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호감들의 관심과 애정을 받고 있으니 대중의 사랑을 받아야 하는 연예인으로서는 최종 목표를 달성한 거나 마찬가지다. 정상에 올라 맛보는개인적 성취감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주머니까지 두둑하다.
애정 과임이 골치 아프지 결핍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사람들이왜 공황장애 행렬의 맨 앞줄을 차지하고 있는 걸까.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의 좌절은 이해할 수 있지만 꿈을 이룬 사람의 좌절은 도대체 무엇일까. 꿈을 이뤄도 좌절하고 못 이뤄도 좌절을 피할 수 없다.
면 꿈의 실현 여부와 좌절은 상관이 없다는 말인가.
- P36

‘나‘가 흐려지면 사람은 반드시 병든다. 마음의 영역에선 그게 팩트다. 공황발작은 자기 소멸의 비랑 끝에 몰린 사람이 버둥거리며 보내는 모르스 부호 같은 급전(完)이다. "내가 희미해지고 있어요. 기의 다 지워진 것 같아요"라는 단말마다. 공황발작의 원인을 생물학적 요인 중심으로 판단하면 증상을 없애기 위해 약물치료에 보다 치중하겠지만, 그러다 보면 공황발작이 의미하는 개인의 심리적 상태에 대한 집중과 해결은 놓지기 쉽다.
사람은 나를 그대로 드러내는 사람에게 끌린다. 사람이 가장 매력적인 순간은 거침없이 나를 표현할 때다. 모든 아기가 아름다운 것도 그 때문이다.
- P39

공황발작은 곧 심장이 멎어버릴 것 같지만 절대 멎지 않으며, 죽을것 같은 느낌이 생생하지만 물리적으론 절대 죽지 않는 병이다. 공황발작 자체로 사람이 죽지는 않지만 자기 소멸의 끝에서 탈진한 사람이 스스로 자기 삶을 거둬들이는 경우는 꽤 있다. 심장이 약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워가며 살던 삶의 끝자락에서 더없이 기진맥진해져서 생 전체에서 마침내 손을 놓아버리게 되는 것이다. 누구든내 삶이 나와 멀어질수록 위험해진다.
- P41

부산에 도착한 희망버스를 막무가내로 세우고 버스에 올라 젊은여성들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폭력을 휘두른 사람들도 노인이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아이를 잃고 거리를 떠돌 때 그들에게 면전에서폭언을 퍼부은 이들도 대개는 노인들이었다. 어버이연합에서 태극기집회로 이어지는 동안 젊은이들에게 노인의 존재는 고약함 그 자체로 자리 잡은 느낌이다.
- P43

모든 아이가 다 다르듯 모든 노인도 당연히 다 다르다. 개별적 존재들이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은 노인을 노인이라는 집단적 정체성이 전부인 존재로 바라본다. 노인이 아닌 어느 누구에게라도 그런 시선은 그 존재에 대한 폭력이다. 누군가와 생생한 관계를맺고 있는 유기체가 아닌 ‘노인 일반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그 존재에대한 무례다. 그 시선은 그의 개별성을 몽땅 휘발시킨다.
- P44

그런데 노인이 그 당당한 폭력을 후회한 것도 자기 존재에 주목해주고 자기 삶에 귀 기울여준 사람(나)을 만나서였다. 변하지 않을 것같은 사람도 예외 없이 변하게 하는 그 지점이 바로 ‘자기‘다. 사람은자기에 공감해 주는 사람에게 반드시 반응한다. 사람은 본래 그런존재다.
노인만 그런 게 아니다. 학교나 부모에게 주목받지 못하는 청소년들, 좋은 대학을 못 다니고 변변한 직장이 없다는 이유로 형제나 또래 중에서 제대로 눈길 한번 받지 못하는 청년들의 삶도 한 개별적존재로서 인정받고 주목받지 못한다는 점에선 노인의 삶과 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 P47

젊든 늙든 우리가 왜 이렇게 아픈지 이젠 알 것 같다. 자기 존재에주목을 받은 이후부터가 제대로 된 내 삶의 시작이다. 거기서부터건강한 일상이 시작된다. 노인도 그렇고 청년이나 아이들도 그렇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 P47

가장 절박하고 힘이 부치는 순간에 사람에게 필요한 건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너는 옳다‘는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이다. ‘너는 옳다‘는 존재에 대한 수용을 건너뛴 객관적인 조언이나 도움은 산소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에게 요리를 해주는 일처럼 불필요하고 무의미하다. ‘저 사람은 지금 내가 산소가 필요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라는 걸 확인시키는 인증 작업일 뿐이다.
- P50

‘네가 옳다는 확인을 받으면 "집을 나가겠다, 죽겠다. 죽이겠다"는따위의 말들은 이내 아침 이슬이 된다. ‘당신이 옳다‘는 말을 거리낌없이 할 수 있으면 아침 이슬과 먹살잡이하는 허무한 일을 더 이상하지 않게 된다.
"당신이 옳다."
온 체중을 실은 그 짧은 문장만큼 누군가를 강력하게 변화시키는말은 세상에 또 없다.
- P53

심리적으로 벼랑 끝에 있으면서도 낌새조차 내보이지 않고 소리없이 스러지고 있는 사람이 많은 현실이라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
라는 질문 하나가 예상치 않게 심리적 심폐소생술(CPR)을 시작하게만들기도 한다. 이 질문은 심장 충격기 같은 정도의 힘을 발휘한다.
간단한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은 초등학생이 거리에서 갑자기 쓰러진 성인의 목숨을 구했다는 실화처럼 심리적 CPR 또한 마찬가지다.
심리적 CPR은 꼭 배워야 한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을살리게 된다.
- P58

의사의 얘기를 들으며 엄마의 눈에 눈물이 고이고 눈동자가 흔들리는 모습을 아이가 봤던 모양이다. 그걸 보고 아이는 ‘아, 우리 엄마가 나 때문에 힘들어하는구나라는 걸 느끼며 안심했다고 한다. 자기가 엄마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아니었다는 확인이 뿌리 같은 안정감을 준 것이다. 약물과 상담 치료를 다 거부했지만 아이는 엄마의 흔들리는 눈동자에서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고 편안해졌다. 아이의 그 말(느낌)을 내게 전하며 엄마는 강물처럼 울었다.
- P72

질병이 아닌 일상의 영역에선 사람에 대한 자연스럽고 상식적인반응이 때로 가장 효과적인 치유다. 그것이 사람 마음에 더 빠르게스미고 와닿는다. 그런 일의 위력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탁월한치유자가 된다. 어떤 고통을 당한 사람에게라도 그 고통스러운 마음에 눈을 맞추고 그의 마음이 어떤지 피하지 않고 물어봐줄 수 있고,
그걸 들으면서 이해하고, 이해되는 만큼만 공감해 줄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도움이 되는 도움이다.
- P76


이 땅에서 사는 일은 죽음 충동을 특별한 질병의 징후라고 여길수 없을 만큼 일상적이지도 평화롭지도 않다. 모든 게 전투적이다.
불행이 이웃처럼 가깝다. 지난 십여 년간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세계최고 수준이다. 주위에 자살이나 비극적 사고로 세상을 떠난 가족이나 지인이 한두 명쯤은 있다.
- P77

비상 상황이지만 내용을 미리 잘 알아서 일상 속으로 끌어들이면내 일상을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고도 대처가 가능하다. 오히려 그게더 안전할 수 있다.
일상의 외주화로 인한 결과는 어떤 모습일까. 예를 들어 내 삶의고통과 외로움이 우울증이라는 의사의 진단 영역으로 한계가 지어지는 순간 나의 존재 자세는 다시 소외되고 우울증 환자 일반으로대상화되기 쉽다. 고통으로 피폐해졌을 때 사람은 무엇보다 정서적공급이 시급한데, 그런 순간에 결정적으로 정서적 소외가 일어나는것이다.  - P81

감정도 그렇다. 슬픔이나 무기력, 외로움 같은 감정도 날씨와 비슷하다. 감정은 병의 증상이 아니라 내 삶이나 존재의 내면을 알려주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우울은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높고단단한 벽 앞에 섰을 때 인간이 느끼는 감정 반응이다. 인간의 삶은죽음이라는 벽, 하루는 24시간뿐이라는 시간의 절대적 한계라는 벽앞에 있다. 인간의 삶은 벽 그 자체다. 그런 점에서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우울한 존재다.
- P86

대기업 CEO였다가 은퇴한 남자가 있다. 퇴직 후 몸이 가라앉고 쉽게 화가 났다. 본인도 감지할 만큼 피해 의식이 생기고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졌다. 무력감을 떨쳐보려고 운동도 시작하고 중국어 학원에도 등록했다. 다음날 특별한 약속이 없어도 현역 시절처럼 기상알람을 새벽 5시에 맞추고 잠자리에 든다. 긴장이 풀어질까 봐 그런다고 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은퇴 후에 우울중으로 고생한다"고귀띔한다.
그의 무기력은 은퇴 후 우울증이라는 병인가. 해결하고 극복해야할 과제인가. 아니다.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순하게 수용해야 할 삶의 중요한 감정이다. 그의 무력감은 은퇴 이후의 생활에 제대로 적용하지 못해서 생긴 병적인 감정이 아니다.
은퇴 후에 이런 감정이 없다면 그게 외려 정상적이지 않은 것이다.
퇴직 후에도 여전히 의욕과 활력이 넘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를걱정스럽게 바라보게 될 것이다. 방부제를 많이 넣어서 썩지 않는 햄버거처럼 퇴직이라는 삶의 자연적인 흐름을 무언가로 계속 막다 보면 결국에는 터진다 - P87

죄의식과 무력감은 겉보기엔 자신만 갉아먹는 아무짝에도 쓸모..
는 감정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았다. 유사 이래 가장 강한 위력을내포한 사회적 힘을 이끌어냈다. 죄의식과 무력감의 연대가 해낸 일이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 감정들은 삶의 나침반이다. 약으로 함부로 없앨 하찮은 것이 아니다. 약으로 무조건 눌러버리면 내 삶의 나침반과 등대도 함께 사라진다. 감정은 내 존재의 핵이다.
- P92

엄밀히 말하면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맞고 살아온 사람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내밀한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존재 자체에대한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 부모에게 맞던 그 아이가 느꼈던 무력감이나 수치심에 대한 이야기가 그의 존재 자체에 더 가까운 이야기다. 가정 폭력에 시달린 아이가 느끼는 감정은 자라면서 분노나 무감각 등으로 얼마든지 바뀔 수도 있다. 그런 감정들을 떠올리고 얘기할수 있다면 그것이 존재 자체에 대한 얘기다. 내 상지의 내용보다 내상처에 대한 내 태도와 느낌이 내 존재의 이야기다. 내 상처가 나가아니라 내 상처에 대한 나의 느낌과 태도가 더 ‘나‘라는 말이다.
내 느낌이나 감정은 내 존재로 들어가는 문이다. 느낌을 통해 사람은 진솔한 자기 존재를 만날 수 있다. 느낌을 통해 사람은 자기 존재에 더 밀착할 수 있다. 느낌에 민감해지면 액세서리나 스펙 차원의
‘나‘가 아니라 존재 차원의 ‘나‘를 더 수월하게 만날 수 있다. ‘나‘가 또렷해져야 그 다음부터 비로소 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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