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고통과 상처, 갈등을 이야기할 때는 ‘충고나 조언, 평가나,판단 (충조평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대화가 시작된. 다. 충조평판은 고통에 빠진 사람의 상황에서 고통은 소거하고, 상황만 인식할 때 나오는 말이다. 고통 속 상황에서 고통을 소거하면 그상황에 대한 팩트 대부분이 유실된다. 그건 이미 팩트가 아니다. 모르고 하는 말이 도움이 될리 없다. 알지 못하는 사림이 안다고 확신하며 기어이 던지는 말은 비수일 뿐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 일상의 언어 대부분은 충조평판이다. - P106
고통을 마주할 때 우리의 언어는 거기서 벼랑 처럼 품어진다. 길을잃는다. 그 이상의 언어를 알지 못한다. 노느니 장독 낀다고 충조평판이라도 날려보는 것이다. 그러니 끼니처럼 찾아오는 일상의 갈등과 상처가 치유될 리 만무하다. 덧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건이 풀리지 않을 때 현장을 다시 찾는 수사관처럼 내 언어가끊어진 벼랑으로 돌아가 보자, 현장에 가는 이유는 그곳에 해결의실마리가 있기 때문이다. 벼랑 끝에 선 사람에게 나는 어떤 말을 해줘야 하는가. 결론적으로 해줄 말이 별로 필요치 않다. 그때 필요한 건 내 말이 아니라 그의 말이다. 그의 존재, 그의 고통에 눈을 포개고 그의 말이 나올 수 있도록 내가 그에게 물어줘야 한다. 무언가 해줘야 한다는 조바심을 내려놓고 지금 그의 마음이 어떤지 물어봐야 한다. 사실 지금 그의 상태를 내가 잘 모르지 않는가. 물어보는 게 당연하다. 내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인정한다면 그에게 물어볼 말이 자연히 떠오른다. - P107
내 고통에 진심으로 눈을 포개고 듣고 또 듣는 사람, 내 존재에 집중해서 묻고 또 물어주는 사람, 대답을 채근하지 않고 먹먹하게 기다려주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상관없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앓다.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다. 그 한 사람이있으면 사람은 산다. - P109
한 사람의 힘이 그렇게 강력한 것은 한 사람이 한 우주라서 그럴것이다. 근사한 수식이나 관념적인 언어가 아니라 마음에 관한 신비한 팩트다. 사람은 그 한 사람‘이라는 존재의 개별성 끝에서 보편성을 획득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은 세상의 전부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다. 그래서 누구든 결정적인 치유자가 될수 있다. ‘나‘ 이야기, 내 존재 자체에 대한 이야기의 불씨가 지펴지면 희미하던 생명의 박동이 쿵쾅쿵쾅 돌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나‘ 이야기에 정확하게 두 손을 대고 있는 한 사람은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어도 심리적 CPR을 하는 사람이다. 사람 목숨을 구하는 사람이다. 두손을 그의 나‘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한 존재와 이어진 것이다. 존재와 존재의 연결이 사람에게 생명을 부여한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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