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를 보면 너나없이 아프다. 마음이 아픈 사람 천지다. 근래에 조용하고 빠르게 확산하는 현상 중 하나가 공황장애, 공황발작이다. 의료 관련 통계를 들먹이지 않아도 주변에 공황발작을겪는 사람이 급격하게 늘고 있다는 걸 피부로 실감한다.
공황발작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심장이 멈추는 것 같은 느낌이 망치처럼 날아오는 증상이다. 그 순간 당사자는 죽을 것 같은공포를 생생하게 감각한다. 그런 현상이 몇 분간 지속된다. 인간이경험할 수 있는 최극단의 공포다. 그런 경험을 한두 번 하면 일상 전체가 두려움에 휩싸인다. 언제 어디서 그 광폭한 불안이 자신을 쓰나미처럼 덮칠지 알 수 없다. 예측할 수 없으니 대비할 수 없고 대비할 수 없으니 불안은 더욱 증폭된다.
- P35

정상급 연예인 중에서 공황장애를 고백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팬들에게 그들은 선망의 대상이자 품을 이룬 사람들이다. 안티팬도 있겠지만 그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호감들의 관심과 애정을 받고 있으니 대중의 사랑을 받아야 하는 연예인으로서는 최종 목표를 달성한 거나 마찬가지다. 정상에 올라 맛보는개인적 성취감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주머니까지 두둑하다.
애정 과임이 골치 아프지 결핍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사람들이왜 공황장애 행렬의 맨 앞줄을 차지하고 있는 걸까.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의 좌절은 이해할 수 있지만 꿈을 이룬 사람의 좌절은 도대체 무엇일까. 꿈을 이뤄도 좌절하고 못 이뤄도 좌절을 피할 수 없다.
면 꿈의 실현 여부와 좌절은 상관이 없다는 말인가.
- P36

‘나‘가 흐려지면 사람은 반드시 병든다. 마음의 영역에선 그게 팩트다. 공황발작은 자기 소멸의 비랑 끝에 몰린 사람이 버둥거리며 보내는 모르스 부호 같은 급전(完)이다. "내가 희미해지고 있어요. 기의 다 지워진 것 같아요"라는 단말마다. 공황발작의 원인을 생물학적 요인 중심으로 판단하면 증상을 없애기 위해 약물치료에 보다 치중하겠지만, 그러다 보면 공황발작이 의미하는 개인의 심리적 상태에 대한 집중과 해결은 놓지기 쉽다.
사람은 나를 그대로 드러내는 사람에게 끌린다. 사람이 가장 매력적인 순간은 거침없이 나를 표현할 때다. 모든 아기가 아름다운 것도 그 때문이다.
- P39

공황발작은 곧 심장이 멎어버릴 것 같지만 절대 멎지 않으며, 죽을것 같은 느낌이 생생하지만 물리적으론 절대 죽지 않는 병이다. 공황발작 자체로 사람이 죽지는 않지만 자기 소멸의 끝에서 탈진한 사람이 스스로 자기 삶을 거둬들이는 경우는 꽤 있다. 심장이 약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워가며 살던 삶의 끝자락에서 더없이 기진맥진해져서 생 전체에서 마침내 손을 놓아버리게 되는 것이다. 누구든내 삶이 나와 멀어질수록 위험해진다.
- P41

부산에 도착한 희망버스를 막무가내로 세우고 버스에 올라 젊은여성들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폭력을 휘두른 사람들도 노인이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아이를 잃고 거리를 떠돌 때 그들에게 면전에서폭언을 퍼부은 이들도 대개는 노인들이었다. 어버이연합에서 태극기집회로 이어지는 동안 젊은이들에게 노인의 존재는 고약함 그 자체로 자리 잡은 느낌이다.
- P43

모든 아이가 다 다르듯 모든 노인도 당연히 다 다르다. 개별적 존재들이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은 노인을 노인이라는 집단적 정체성이 전부인 존재로 바라본다. 노인이 아닌 어느 누구에게라도 그런 시선은 그 존재에 대한 폭력이다. 누군가와 생생한 관계를맺고 있는 유기체가 아닌 ‘노인 일반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그 존재에대한 무례다. 그 시선은 그의 개별성을 몽땅 휘발시킨다.
- P44

그런데 노인이 그 당당한 폭력을 후회한 것도 자기 존재에 주목해주고 자기 삶에 귀 기울여준 사람(나)을 만나서였다. 변하지 않을 것같은 사람도 예외 없이 변하게 하는 그 지점이 바로 ‘자기‘다. 사람은자기에 공감해 주는 사람에게 반드시 반응한다. 사람은 본래 그런존재다.
노인만 그런 게 아니다. 학교나 부모에게 주목받지 못하는 청소년들, 좋은 대학을 못 다니고 변변한 직장이 없다는 이유로 형제나 또래 중에서 제대로 눈길 한번 받지 못하는 청년들의 삶도 한 개별적존재로서 인정받고 주목받지 못한다는 점에선 노인의 삶과 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 P47

젊든 늙든 우리가 왜 이렇게 아픈지 이젠 알 것 같다. 자기 존재에주목을 받은 이후부터가 제대로 된 내 삶의 시작이다. 거기서부터건강한 일상이 시작된다. 노인도 그렇고 청년이나 아이들도 그렇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 P47

가장 절박하고 힘이 부치는 순간에 사람에게 필요한 건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너는 옳다‘는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이다. ‘너는 옳다‘는 존재에 대한 수용을 건너뛴 객관적인 조언이나 도움은 산소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에게 요리를 해주는 일처럼 불필요하고 무의미하다. ‘저 사람은 지금 내가 산소가 필요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라는 걸 확인시키는 인증 작업일 뿐이다.
- P50

‘네가 옳다는 확인을 받으면 "집을 나가겠다, 죽겠다. 죽이겠다"는따위의 말들은 이내 아침 이슬이 된다. ‘당신이 옳다‘는 말을 거리낌없이 할 수 있으면 아침 이슬과 먹살잡이하는 허무한 일을 더 이상하지 않게 된다.
"당신이 옳다."
온 체중을 실은 그 짧은 문장만큼 누군가를 강력하게 변화시키는말은 세상에 또 없다.
- P53

심리적으로 벼랑 끝에 있으면서도 낌새조차 내보이지 않고 소리없이 스러지고 있는 사람이 많은 현실이라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
라는 질문 하나가 예상치 않게 심리적 심폐소생술(CPR)을 시작하게만들기도 한다. 이 질문은 심장 충격기 같은 정도의 힘을 발휘한다.
간단한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은 초등학생이 거리에서 갑자기 쓰러진 성인의 목숨을 구했다는 실화처럼 심리적 CPR 또한 마찬가지다.
심리적 CPR은 꼭 배워야 한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을살리게 된다.
- P58

의사의 얘기를 들으며 엄마의 눈에 눈물이 고이고 눈동자가 흔들리는 모습을 아이가 봤던 모양이다. 그걸 보고 아이는 ‘아, 우리 엄마가 나 때문에 힘들어하는구나라는 걸 느끼며 안심했다고 한다. 자기가 엄마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아니었다는 확인이 뿌리 같은 안정감을 준 것이다. 약물과 상담 치료를 다 거부했지만 아이는 엄마의 흔들리는 눈동자에서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고 편안해졌다. 아이의 그 말(느낌)을 내게 전하며 엄마는 강물처럼 울었다.
- P72

질병이 아닌 일상의 영역에선 사람에 대한 자연스럽고 상식적인반응이 때로 가장 효과적인 치유다. 그것이 사람 마음에 더 빠르게스미고 와닿는다. 그런 일의 위력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탁월한치유자가 된다. 어떤 고통을 당한 사람에게라도 그 고통스러운 마음에 눈을 맞추고 그의 마음이 어떤지 피하지 않고 물어봐줄 수 있고,
그걸 들으면서 이해하고, 이해되는 만큼만 공감해 줄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도움이 되는 도움이다.
- P76


이 땅에서 사는 일은 죽음 충동을 특별한 질병의 징후라고 여길수 없을 만큼 일상적이지도 평화롭지도 않다. 모든 게 전투적이다.
불행이 이웃처럼 가깝다. 지난 십여 년간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세계최고 수준이다. 주위에 자살이나 비극적 사고로 세상을 떠난 가족이나 지인이 한두 명쯤은 있다.
- P77

비상 상황이지만 내용을 미리 잘 알아서 일상 속으로 끌어들이면내 일상을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고도 대처가 가능하다. 오히려 그게더 안전할 수 있다.
일상의 외주화로 인한 결과는 어떤 모습일까. 예를 들어 내 삶의고통과 외로움이 우울증이라는 의사의 진단 영역으로 한계가 지어지는 순간 나의 존재 자세는 다시 소외되고 우울증 환자 일반으로대상화되기 쉽다. 고통으로 피폐해졌을 때 사람은 무엇보다 정서적공급이 시급한데, 그런 순간에 결정적으로 정서적 소외가 일어나는것이다.  - P81

감정도 그렇다. 슬픔이나 무기력, 외로움 같은 감정도 날씨와 비슷하다. 감정은 병의 증상이 아니라 내 삶이나 존재의 내면을 알려주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우울은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높고단단한 벽 앞에 섰을 때 인간이 느끼는 감정 반응이다. 인간의 삶은죽음이라는 벽, 하루는 24시간뿐이라는 시간의 절대적 한계라는 벽앞에 있다. 인간의 삶은 벽 그 자체다. 그런 점에서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우울한 존재다.
- P86

대기업 CEO였다가 은퇴한 남자가 있다. 퇴직 후 몸이 가라앉고 쉽게 화가 났다. 본인도 감지할 만큼 피해 의식이 생기고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졌다. 무력감을 떨쳐보려고 운동도 시작하고 중국어 학원에도 등록했다. 다음날 특별한 약속이 없어도 현역 시절처럼 기상알람을 새벽 5시에 맞추고 잠자리에 든다. 긴장이 풀어질까 봐 그런다고 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은퇴 후에 우울중으로 고생한다"고귀띔한다.
그의 무기력은 은퇴 후 우울증이라는 병인가. 해결하고 극복해야할 과제인가. 아니다.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순하게 수용해야 할 삶의 중요한 감정이다. 그의 무력감은 은퇴 이후의 생활에 제대로 적용하지 못해서 생긴 병적인 감정이 아니다.
은퇴 후에 이런 감정이 없다면 그게 외려 정상적이지 않은 것이다.
퇴직 후에도 여전히 의욕과 활력이 넘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를걱정스럽게 바라보게 될 것이다. 방부제를 많이 넣어서 썩지 않는 햄버거처럼 퇴직이라는 삶의 자연적인 흐름을 무언가로 계속 막다 보면 결국에는 터진다 - P87

죄의식과 무력감은 겉보기엔 자신만 갉아먹는 아무짝에도 쓸모..
는 감정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았다. 유사 이래 가장 강한 위력을내포한 사회적 힘을 이끌어냈다. 죄의식과 무력감의 연대가 해낸 일이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 감정들은 삶의 나침반이다. 약으로 함부로 없앨 하찮은 것이 아니다. 약으로 무조건 눌러버리면 내 삶의 나침반과 등대도 함께 사라진다. 감정은 내 존재의 핵이다.
- P92

엄밀히 말하면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맞고 살아온 사람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내밀한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존재 자체에대한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 부모에게 맞던 그 아이가 느꼈던 무력감이나 수치심에 대한 이야기가 그의 존재 자체에 더 가까운 이야기다. 가정 폭력에 시달린 아이가 느끼는 감정은 자라면서 분노나 무감각 등으로 얼마든지 바뀔 수도 있다. 그런 감정들을 떠올리고 얘기할수 있다면 그것이 존재 자체에 대한 얘기다. 내 상지의 내용보다 내상처에 대한 내 태도와 느낌이 내 존재의 이야기다. 내 상처가 나가아니라 내 상처에 대한 나의 느낌과 태도가 더 ‘나‘라는 말이다.
내 느낌이나 감정은 내 존재로 들어가는 문이다. 느낌을 통해 사람은 진솔한 자기 존재를 만날 수 있다. 느낌을 통해 사람은 자기 존재에 더 밀착할 수 있다. 느낌에 민감해지면 액세서리나 스펙 차원의
‘나‘가 아니라 존재 차원의 ‘나‘를 더 수월하게 만날 수 있다. ‘나‘가 또렷해져야 그 다음부터 비로소 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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