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날 쫓아오는 바람에 달리고 또 달리는데 말이다. 그러다가 벽에 부딪히게 돼. 벽을 뛰어넘긴 해야 하는데 그 뒤에뭐가 있는지 모르잖아. 그래서 난 무서워 하지."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죽음 그 자체가 무서운 건 아니야. 죽음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무서운 거지."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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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옳다 -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정혜신 지음 / 해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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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떤 단어가 사냥매처럼 마음속에 내리꽂히거나 저녁 강물처럼 흘러 들어올 때가 있다. '적정기술'이란 단어가 그랬다. 이런 사람 살리는 개념이라니. 심플하고 아름다웠다. 매혹당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아프리카 어느 마을 식수가 부족해 아이들은 아침 일찍 물동이를 지고 물을 길어 나선다. 몇 시간을 걸어가서 물을 길어 이고 지고 되돌아오는데, 아이들의 불완전한 걸음과 부실한 물동이 때문에 절반은 돌아오는 동안 흘러서 사라진다. 그 딱한 사정을 접한 디자이너가 사람들과 힘을 합쳐 큰 공(드럼통) 모양의 물통을 만들었다.

그 후 아이들의 삶은 달라졌다. 아이들은 물을 꽉 채운 물동이를 놀이하듯 굴리며 돌아온다.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양의 물을 운반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저장도 가능하게 되었다. 마을 주민들의 삶도 달라졌다. 아이들은 물 긷느라 갈 수 없었던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아주 간단한 물통 디자인 하나가 바꿔놓은 일상의 기적이다.

   흔하디흔한 적정기술의 한 사례다. - P11~12

   활자 중독자이기는 하지만 '자기를 계발하라' 라든가 하는 류의 책을 거의 접하지 않는다. 그런 종류의 책은 읽고 있노라면 스스로가 얼마나 형편없는 사람인지 계속 평가하게 만들어서 자괴감의 늪에 허우적 되도록 만들어 버린다. 거기에 더해 끝없는 각성을 요구한다. 그렇게 삼일쯤 지나면 읽을 때의 다짐과 각성과 반성들은 읽기 이전으로 사라지고 만다. 옳은 줄은 알지만 실행해지지 않는 그 무엇을 요구하는 도돌이표다. 그런 끈기가 없기에 '니가 요 모양 요 꼴'인 거라고 누군가 지적질을 한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또한 무슨 저명한 박사란 타이틀이 눈에 띄는 책도 주저한다. 꼭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압박에 스스로 눈에 불을 껴고 읽지만 어김없이 한 사나흘 지나면 까맣게 잊힌다. '그래서 니가 무식한 거야'란 힐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릴 때, (그 시절 유행했던) 안병욱 박사나 김형석 박사, 또 이시형 박사 (이분의 책 중에는 '내성적인 너무나 내성적인'(제목이 이거 맞나, 갸웃~!)은 꽤 재밌게 읽었던 기억은 난다.) 크리슈나무르트, 칼릴 지브란 등등의 책을 접한 적 있다. 읽을 때도 도통 모르겠더니 읽고 난 후는 기억이 1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때부터 조금씩 기피해 온 독서 대상들이 되었다.

   내게 책은, 읽는 동안 마구마구 호기심이 동하게 즐겁거나, 주변 상황에서 책 속으로 순간 이동이 가능할 만큼의 몰입이거나, 정신의 쉼이거나, 지친 마음에 위로이자 세상으로 나아가는 배다. 책 속에 빠져있는 시간은 언제나 모자라고 간절하지만 사람들과의 시간도 나에게는 소중하다. 꽤나 누군가의 얘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 능력도 뛰어난 편에 속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피 대상이던 저명한 분이지만 "당신이 옳다"는 선택된 책이다. 마침 탁월한 공감 능력이 필요한 일도 시작한 지 일 년 차다. 그런데 '적정 심리학'은 뭘까. 책 표지에 강조점까지 표시된 '적정'이란 단어의 뜻은 저 페이지에서 고스란히 나온다. 그런 쓰임새라면, '적정'은 참 좋은 뜻을 가진 단어가 된다. 맨 발의 아이들이 커다란 공을 굴리면서 돌아오는 행복한 표정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저 아이들은 뭐가 저리 행복할까' 그런 의문 없이 주름살이 쫘악 펴지게 만드는 그런 영상이었는데 그 커다란 통들이 '물통'이었다는 것은 저 글을 읽고 알게 되었다. 그런 표정이 가능케했던 이유도.

   "사냥매처럼 마음속에 내리꽂히거나 저녁 강물처럼 흘러 들어올 때가 있다. '적정기술'이란 단어가 그랬다. 이런 사람 살리는 개념이라니. 심플하고 아름다웠다. 매혹당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이 책에서 그 무엇보다 이 문장에 매혹당했다. 처음 만나는 저명한 이 분께 단박에 사로잡혔다. 나도 ' 매혹당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나는 결코 금사빠가 아닌데!!) 그렇게 쭉죽 읽어나간다. 밑줄 그을 부분이 늘어난다.

 

 

   세월호 참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초기에 많은 (심리치유) 전문가들이 현장에 왔지만 이내 거의 사라졌다. 대신 "집에 앉아만 있을 수없어서 무작정 왔다"는 자원활동가들의 숫자는 시간이 갈수록 늘어났다. 그들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며 울면서 무슨 일이든 했다. 피해자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했으며 한없이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자신의 슬픔과 분노, 무력감을 호소하면서도 유가족들 손을 잡고 함께 울었다.

   그들의 이런 마음과 태도는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났던 일들이다. 그들의 행동과 눈빛은 트라우마를 받은 이후 세상과 사람을 통째로 불신하게 된 피해자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결정적인 위로다.

   아무 자격증 없는 자원활동가들은 현장에서 그렇게 자신의 자리를 찾고 역할은 해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정부와 정치권력은 상처 입은 피해자들을 길바닥에 패대기치고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하지만 자원활동가들의 한결같은 일상적 활동과 그들의 공통 정서인 슬픔과 무기력이 만들어낸 '슬픔과 무기력의 거대한 연대'는 피해자들을 구하는 동아줄이 되었다. - P14

   '세월호' 벌써 팔 년째다. 여전히 '세월'이란 단어만 보아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고 '세월호'를 위해서 뭔가를 하지도 않았다. 단지 마음이 먹먹하고 죄스러울 뿐, 여전히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입으로만 '세월호'타령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무책임하고 무능한 어른인 스스로를 인정하고 묵인하는 장치로 '세월호'는 작동한다. 그날의 바다를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하는 비겁함으로 말이다. 그런 비겁함을 보란 듯이 몸으로 뭔가를 행한 자원봉사자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언제나 몸을 움직여 행동하면서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평온한 일상을 포기하고 뭔가라도 도움이 되려고 찾아 나서는 언제나 행동으로 실천하는 그분들의 발걸음이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어 가는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어쩌다 우연히 '세월호'이야기가 나오면 '이제 그만하라고, 지겹다고' 말하는 이들도 꼭 있다. '그 당사자가 당신이어도, 희생자가 당신이 아는 누구였다면?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은 있느냐'라고 묻는다. 그 느닷없고 공격적인 질문에 뜨악하고도 억울한 눈으로 흘겨보며 입을 다문다. 한결같이 재수 없다는 반응이다. 내게는 일어나지 않은 일일 때 얼마나 함부로 말을 하게 되는지 생각해 보게 만든다. 특별히 그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언론이 그렇게 말하면 그것만 옳다고 생각하는 학습된 시각을 가져서다. 실제로 그런 분들은 주변에도 비일비재한데 대체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줄 모른다. 남의 이야기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언론에서 회자되는 사안들에 대해서만은 무척 신랄하다. 그것이 정치적인 것이든, 사회 문제이든, 100분 토론 속 참가자만큼 분석적이고 뼈 때리는 말들과 욕설도 서슴지 않는다. '정치적인 전문가'의 시선과 논조를 가졌다. 스스로 신념이라 생각한 것들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그것이 틀린 건지 맞는 건지에 대한 생각은 없다. 그런 '재수 없는' 일이 내 것일 리는 없다고, 그런 물음을 듣는 것도 못마땅하고 '재수 없는'일이 되어버렸다. 그저 '나'만 비껴가면 되는 걸까?

   여전히 '세월호'에 준하는 참사는 곳곳에서 진행 중이고 원인 제공자는 없는 나라에 살고 있다. 인구감소는 걱정하면서 어처구니없는 사고들로 생명을 잃는 악순환이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이 단지 '재수가 없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묵인하고 방관한 국가의 시스템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아니 현재 진행형이다. 타인의 아픔에 무감한 채로 먹고살 만해서 목소리도, 소유권도 분명한 이들에게만 정치권력의 구애도 집중되는 이 현실이 우리가 그토록 꿈꾸던 대한민국의 오늘이긴 할까?

   모두 전문가가 되기를 원하고 그리 살려 하지만 저런 현장에서 쓸모없는 전문가만 양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도 지금 하는 일에서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자주 생각한다. 어떤 돌발적인 상황 앞에도 흔들리지 않게 대처하고 더 많은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전문가. 내가 생각하는 전문가란 그런 것인데, 머리만 있고 가슴은 없는 직업적인 전문가가 되고 마는 것은 아닌지 걱정 아닌 걱정도 있다. '자원봉사자'에서 시작한 생각이 삼천포로 빠져서 다시 허우적대고 말았다.

'슬픔과 무기력의 거대한 연대'는 피해자들을 구하는 공감의 시작이다.

 

 

  내 고통에 진심으로 눈을 포개고 듣고 또 듣는 사람, 내 존재에 집중해서 묻고 또 물어주는 사람, 대답을 채근하지 않고 먹먹하게 기다려주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상관없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앓다.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다. 그 한 사람이 있으면 사람은 산다.- P109

   한 사람의 힘이 그렇게 강력한 것은 한 사람이 한 우주라서 그럴 것이다. 근사한 수식이나 관념적인 언어가 아니라 마음에 관한 신비한 팩트다. 사람은 그 한 사람‘이라는 존재의 개별성 끝에서 보편성을 획득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은 세상의 전부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다. 그래서 누구든 결정적인 치유자가 될 수 있다.

   ‘나‘ 이야기, 내 존재 자체에 대한 이야기의 불씨가 지펴지면 희미하던 생명의 박동이 쿵쾅쿵쾅 돌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나‘ 이야기에 정확하게 두 손을 대고 있는 한 사람은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어도 심리적 CPR을 하는 사람이다. 사람 목숨을 구하는 사람이다. 두 손을 그의 나‘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한 존재와 이어진 것이다. 존재와 존재의 연결이 사람에게 생명을 부여한다. - P110

   "우리는 누군가에게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다." 이 부분을 읽을 때 이문재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어떤 경우에는/ 내가 이 세상 앞에서/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어떤 경우에는/내가 어느 한 사람에게/ 세상 전부가 될 때가 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다."--[어떤 경우] 전문

   고통에 찬 누군가의 이야기를 그저 담담하게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그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결과적으로 얼마나 오만한 판단이었던 건지 지금도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그 생각들은 꿈자리를 뒤숭숭하게 만들고 가위에 눌리게 만든다.

나는 같은 관심사를 공유한 사람들과의 대화와 토론도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같이 고민을 해결하기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1인이지만 친해지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소극적인 사람이다. 온라인 글쓰기 동아리방에서 만난 그 사람은 그곳의 중심에서 언제나 빛나는 사람이었다. 나와 다른 세상을 살고, 주변이 언제나 반짝반짝하던 그 사람이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조언을 구하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다. 내가 모르는 세상에서 사는 사람에게 조언을 할 수도 없었지만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밖에 다른 방법도 없었다. 그런 시절을 삼 년여, '존재와 존재의 연결이 사람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일인 줄 알았으나 일방적인 듣기는 한계가 왔다. 많이 지치기도 했다. 힘든 일과의 끝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통화를 하고 있다 보면 진절머리가 나기도 했고 제대로 성의를 다하지 못하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만들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타인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따뜻한 사람이 나에게는 자신에게만 그런 사람이기를 바라는 모순을 지켜보는 심정은 복잡했다. '죽겠다, 죽겠다' 하면서도 본인의 일상은 평화롭게 유지하면서 내 일상은 엉망으로 만드는 나보다 훨씬 어른인 사람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서 갈팡질팡하기도 했다. 그런 감정의 줄다리기 끝에 절교를 선언하기에 이르렀고 결정하기까지가 어렵지 선택한 후에는 돌아보지 않는 나의 성품상 잊고 지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다 되어갈 때, 스스로 세상을 버렸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자신의 생명과도 바꿀 수 없다던 아이를 둘 남겨두고 홀연히 떠나버린 것이다. 나는 그 서늘한 결기를 마주하기가 두렵다. 한때는 사는 일이 너무 막막하고 고단해서 죽음의 유혹이 강하던 어느 시절을 지나왔다. 그때마다 내 발목을 잡은 건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남길 상처였다. '내가 뭐라고 그들에게 평생 그런 트라우마를 안긴단 말인가'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선택을 하는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그 결연함이 무섭다.

   아직도 이 문제를 풀지 못했다. 아니 풀려고 했던 적도 없이 밀어두고 숨겨두고 감추고 있다. 솔직히 어째야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아는 척한 순간, 그 상처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몰라서 새로운 관계 맺기가 안 된다. 정말 나는 '재수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잊을만하면 슬금슬금 덮쳐온다.

 

   공감은 내 등골을 빼가며 누군가를 부축하는 일이 아니다. 그 방식으론 상대를 끝까지 부축해 낼 수 없다. 둘 다 늪에 빠진다. 공감은 너를 공감하기 위해 나를 소홀히 하거나 억압하지 않아야 이루어지는 일이다. 누군가를 공감한다는 건 자신까지 무겁고 복잡해지다가 마침내 둘 다 홀가분하고 자유로워지는 일이다.

   너를 공감하다 보면 내 상처가 드러나서 아프기도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나도 공감받고 나도 치유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공감하는 사람이 받게 되는 특별한 선물이다. - P121

   공감은 그저 들어주는 것,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듣는 일이다. 정확하게라는 말은 대화의 과녁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뜻이다. 공감에는 과녁이 있다. 과녁에서 멀어지는 대화는 지리멸렬해진다. - P132

   공감은 상처를 더 드러낼 수 있게 만들고 제대로 드러난 상처 위에서 녹아드는 연고다. 상처 위에 바로 스민다. 상처 부위를 덮고 있는 겉옷 위에 뿌리는 분무제가 아니라 옷을 젖히고 상처 난 바로 그 부위 맨살에 바르는 약이다. 정확하고 집중력 있는 공감은 문제 해결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책임진다. 공감은 치유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관장하는 강력한 치유제다. - P158

   사람의 감정은 항상 옳다. 사람을 죽이거나 부수고 싶어도 그 마음은 옳다. 그 마음이 옳다는 것을 누군가 알아주기만 하면 부술 마음도 죽이고 싶은 마음도 없어진다. 비로소 분노의 지옥에서 빠져나온다. - P167

   공감자는 모든 사람과 원만하게 지내는 사람이 아니다. 너도 많이 있지만 나도 마음이 있다는 점, 너와 나는 동시에 존중받고 공감받아야 마땅한 개별적 존재라는 사실을 안다면 관계를 끊을 수 있는 힘도 공감적 관계의 중요한 한 축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관계를 끊는 것이 너와 나를 동시에 보호하는 불가피한 선택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울며 겨자 먹기로 관계를 이어가는 것은 나에게는 파괴적인 행위고 상대에게는 자기 행동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양쪽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결국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모든 사람과 원만하게 지내는 일은 불가능하다. 모든 사람에게 공감적인 사람도 불가능하다. - P170

   어떤 기간 동안, 어떤 특정 맥락과 상황 속에서는 내가 참고 견딜 수도 있지만 나는 항상 그래야 하는 존재, 그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 ‘너도 있지만 나도 있다‘는 자기에 대한 감각이 살아 있어야 공감자가 될 수 있다. 나와 너를 동시에 공감하는 일은 양립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나와 너 모두에 대한 공감‘의 줄임말이 공감이다.- P194

   공감은 한 사람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공감은 너도 있지만 나도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되는 감정적 교류다. 공감은 둘 다 자유로워지고 홀가분해지는 황금분할 지점을 찾는 과정이다. 누구도 희생하지 않아야 제대로 된 공감이다. - P266 

   "공감은 내 등골을 빼가며 누군가를 부축하는 일이 아니다"란 말이 좋았다. 어쩐지 언니한테 위로받는 듯한 말이다. 내 손해를 감수하면서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는 없이 상대방만 보이는 게 '공감'이 아니란 사실이 새롭다. 그동안 '공감'에 대한 공공연한 오해였다. '공감'은 언제나 옳다. 그러나 '나' 다음에 상대방이 있고 비로소 공감은 시작된다는 맥락으로 이해되어 홀가분한 기분이다.

   책을 읽는 동안 아직은 두렵고 서툴지만 관계 맺기의 단절을 가져온 내 안의 상처도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이제 겨우 첫걸음을 뗀 것이지만 그동안의 경험으로 이미 안다. 시작이 어렵지 '첫'을 시작하면 그다음은 성큼성큼 나아간다는 것을. 내 안의 상처를 마주할 수 있어야 타인의 상처도 들여다볼 줄을 알게 된다. 지금 이 직업을 끌고 가기 위해서도 이 과정은 반드시 필요했다. '당신은 옳다. 나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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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ro 2023-04-16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우적대도록
 

1986년 4월 14일 오후 4시 사르트르의 기일을 몇 시간 앞둔 때였다. 향년 78세였다.







1956년에 (레 망다랭)이 (제2의 성)에 이어 가톨릭 금서 목록에 올랐다.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는 그 무렵부터 가을은 꼭 이탈리아에서보냈고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았다. 영원한 도시 로마 중심가에 호텔 방 두 개를 나란히 잡고 조화로운 고독과 동행하면서 일과 위스키와 아이스크림의 나날을 보냈다. 문학적 리듬을 되찾은 보부아르는백지의 현기증‘ 에서 마지막 퇴고의 자질구레한 손질까지의 기간을즐겼다. 보부아르는 원고를 사르트르, 보스트, 란즈만에게 보여주고
"자르고, 늘리고, 수정하고, 폐기하고, 다시 쓰고, 품고, 결정하는 과정을 거듭했다.
그해에 보부아르는 십 년 전인 1946년부터 보류했던 프로젝트, 즉회고록 쓰기를 재개했다. 처음에 그 생각을 했던 때 이후로 너무 많은 것이 변했다. 제2의 성을 썼고, 올그런을 만났고, 괴물을 붙잡고씨름해서 《레 망다랭을 만들었고, 공쿠르상을 탔다. 미국, 중국, 그외 세계 각국을 다녔다. 그 후 특권에도 썼듯이 문화는 특권이고지식인들이 문화를 누릴 여력이 없는 사람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확신하게 됐다.
- P377

 1958년 1월에 보부아르는 쉰 살이 되었고 그 사실에 치를 떨었다.
인생이 끝나 간다고 생각할 때마다 느끼는 불편함 그 이상으로다. 알제리 전쟁은 더욱더 상황이 안 좋았고 그 전쟁 생각을 떨치기못한 나머지 자기가 프랑스인이라는 것조차 싫어졌다. 잠이 오기 ..
았고 문학조차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보부아르는 레탕 모데른이 알제리인과 군인의 증언을 싣는 작업을 했다. 
- P380

1960년 10월 25일에 회고록 두 번째 권 《생의 한창때가 나왔다.
이 책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여러 평론가가 보부아르는 자전적 글쓰기에서 최고의 진가를 발휘한다고 칭찬했다. 카를로 레비는 이 책을
"세기의 러브 스토리"라고 했다. 보부아르가 사르트르를 인간적으로보이게 했다는 평도 많았다.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던 사르트르의 본모습, 전설의 사르트르와는 자못 다른 한 인간을 보여주었다." 보부아르는 그게 바로 자신의 의도였다고 답했다. 사르트르는 처음에는보부아르가 자기를 등장시키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어떤 식으로 말하는지를 보고 나서는 자유롭게 쓰도록 내버려 두었다. - P402

이 대목의 영어판 번역이 곧잘 보부아르의 내면화된 성차별주의처럼 해석되곤 했기 때문에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철학자, 직함에서 배제당하는 유일한 이유가 아님을 특히 강조해야 한다. 보부아르의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읽으면 체계를 거부하는 데 깔려 있는 철학적 이유를 놓치기 쉽다. "철학자, 직함을 거부하고도 철학자로 알려진 사람은 많다. 알베르 카뮈도 철학이 이성을 과신한다고 비판했고 자크데리다도 그 직함을 거부했다. 따라서 보부아르를 여성이 될 수 있는존재, 될 수 없는 존재로만 판단해선 안 된다.  - P405

이십 년 사이에 페미니즘 제2물결이 탄력을 받았다. 1960년대까지 가족 계획은 금기시되었고 피임약 판매는 법적으로 제한되었다.
1960년에 경구 피임약이 미국에서 판매되기 시작했고 영국은 1961년부터 기혼 여성에 한해서 판매를 허가했다. 프랑스에서 피임약 판매는 1967년에야 비로소 가능해졌다(영국 미혼 여성이 피임약을 살 수 있제 된 것도 이 해부터다). 보부아르는 이 변화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제2의 성은 전 세계 여성들과 페미니스트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었다. 1963년에 베티 프리던 (BettyFriedan)은 《여성성의 신화를 발표했다. 미국에서 페미니즘 운동을일으켰다고 평가받는 이 책은 《제2의 성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 P411

수술 후 몇 주가 지나자 프랑수아즈는 통증이 심해져서 기력을 잃었다. 딸들은 의사에게 모르핀을 더 많이 놓아 달라고 부탁했다. 죽음을 앞당긴대도 그러면 고통도 빨리 사라질 터였다. 그러자 어머니는 대부분의 시간을 잠을 자며 보냈다. 어머니는 사제도, 보부아르가
"독실한 시절의 친구들"이라고 했던 이들도 불러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 11월에 보부아르는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 이상으로 어머니와가까워졌다. 수술 다음 날 밤 보부아르는 북받치는 감정을 어찌할 바올랐다. 어머니의 죽음이 슬펐지만 어머니가 살아온 인생도 슬렀다.
어머니는 숨 막히는 관습의 구속에 갇혀 너무 많은 것을 희생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보부아르는 어머니의 마지막 여섯 주와 자신의 사랑, 양면적 감정, 사별의 아픈 경험을 담은 책 《아주 편안한죽음을 정신없이 써냈다. 그렇게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은기분, 펜으로 인생을 생각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책은 엘렌에게 헌정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 P413

보부아르는 사생활에 갇힌" 여성들이 언제든 자신을 사랑하기를관들 수 있는 누군가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해 불안정하게 살아간다.
는 것을 우려했다. 그 누군가는 경제적 수단이나 그들이 꾸려 온 삶의 의미를 남겨놓지 않은 채 여성들을 떠날 수도 있다. 보부아르는이런 유의 삶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건설하는 " "진정한 사회 생활참여 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여성들은 주부 되기라는 퇴행의 "회생양" 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다른 여성들과 비교당하는 일에 힘들어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일하는 여성들도 집에 있을 때는 주부 역할을 기대받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결과는 자기 선택에 대한 죄책감과 허탈감이다. "여성이 매일 직장에서 여덟 시간을 일하고 와서 집안일을 대여섯 시간 더 한다면 주말에는 완전히 진이 빠질 것이다.  - P428

보부아르는 자기가 늙어 가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사실이 기쁘지않다고 인정할 만큼 솔직했다. 하지만 노년을 감출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노년을 철학적 분석과 정치적 행동이 부족했던 주제로 보고 정면으로 돌파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노년에 대한 책을 구상 중이었다. 나중에 그 책을 《제2의 성의 대응물이라고 부르게 될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조사를 하고 노년에 대한 책들을 읽기 시작하면서 자료가 될 만한 책이 너무 없어서 놀랐다. 국립도서관 열람실에서 랄프 왈도 에머슨과 에밀 파게의 에세이들을 찾았고, 서서히하나의 전기를 엮어 나갔다. 프랑스 노인학회 정기 간행물도 읽었고,
영어로 된 두툼한 저작들도 시카고에서 주문했다. 전 동료 클로드레비스트로스가 콜레주 드 프랑스의 비교인류학 자료 열람을 허락해주었다. 그 덕분에 여러 사회에서 연장자가 차지하는 위치를 다룬 논문들을 참고할 수 있었다
- P436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를 출시로 삼았다. 비지니아 울프는 58세에 이렇게 일기를 썼다.
 
나는 노년의 무정함을 혐오한다. 노년이 다가옴을 느낀다. 나는 삐걱거린다. 씁쓸해진다.

발은 이슬을 밟을 만큼 빠르지 않고,
심장은 감정을 새로이 느끼기에 모자라다시 일어날 만큼 날쌔지 못한 희망을 으깨버린다.

이제 막 매튜 아널드를 펼쳐서 이 시를 필사했다.

노년에서 보부아르는 ‘노년‘이 유일한 보편적 경험을 가리키지않기 때문에 모든 노화가 가혹하거나 삐걱대거나 슬프게 다가오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여성 되기처럼 노인 되기도 개인의 신체적, 심리적, 경제적,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지리학적, 가족적 맥락에 따라서 매우 다양한 양상을 띤다. 나이 듦의 상황‘이 그 경험에 극도로 큰 영향을 준다는 얘기다.
- P444

다른 페미니스트들은 제2의 성》이 자신의 특권을 인식하지 못한 엘리트 여성이 중산층을 자료 삼아 쓴 책이라고 비판했다. 이 인터뷰에서 보부아르는 초기작에서 계급 문제를 간과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여성은 다른 계급이 아니라 다른 ‘카스트‘ 이기 때문에 계급 투쟁이 여성을 해방해주지는 않는다. 계급은 올라갈 수도 있고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카스트는 바뀌지 않는다. 여성은 남성이 될 수 없다.
여성은 경제적·정치적 · 사회적으로 열등한 카스트 취급을 당한다.)
- P457

1970년대에 보부아르는 점점 다른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고자 자기 목소리를 내게 되었다. 〈레 탕 모데른 특별호 ‘여성의 주장‘의 도입문은 성차별 철폐 투쟁이 "우리 안의 가장 내밀하고 가장 확실한것 같았던 부분을 공격한다. 그 투쟁은 우리의 욕망, 우리의 쾌락이취하는 바로 그 형식을 건드린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페미니스트를 불편해한다. 그러나 페미니스트의 말이 실제로 힘이 없다면 조롱당하거나 성질 나쁘다는 말을 듣거나 가스라이팅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보부아르는 이 글에서 자신이 과거에 여성으로서 부딪히는 장벽을 넘어서려면 그 장벽을 아예 무시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어느 정도 "토큰 여성 역할을 했노라고 인정한다. 그리고 젊은 페미니스트들 덕분에 자신의 그런 입장이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데 일조할수도 있음을 알게 됐다고, 그래서 이제 그런 입장과 자기 자신을 성토한다고 말한다.
보부아르가 자기 문제를 인정한 것은 존경스럽다. 이전의 자기가실패한 부분을 볼 수 있는 여성이 됐으니까. 하지만 실패를 모두 보았을까? 성차별 철폐 투쟁이 "우리 안의 가장 내밀하고 가장 확실한것 같았던 부분을 공격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어떤 제약과 욕망이 철학에 대한 사랑, 사르트르 외의 다른 애인들 이야기를 털어놓지 못하게 가로막았을까?  - P464

보부아르는 늘 독자적인 이력을 원했다고 대답했다. "나에게는 환상이 아니라 꿈이 있있어요. 아주 담대한 꿈이긴 했지만요. 사르트르를 만나기 전부터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알고 있었죠! 다행히도 내 힘으로 내 삶을 성취했어요.나에게 성취는 곧 일을 의미했어요.보부아르는 이 인터뷰에서 사르트르가 돌로레스 바네티와 사릴 때 자신과 그의 관계에 회의가 들었다는 말도 했고, 자신과 사르트르의 관계에서 제3자들이 너무 고통을 받아서 유감스럽다는 고백도 했다. 또이미 공개 인터뷰에서 사르트르도 여성들에게 잘못했다고 시원하게인정했다. 그는 보부아르를 예외적 경우, 일종의 토큰으로 - 보부아르 자신도 젊었을 때 그랬듯이 만들었다. 하지만 사르트르처럼 그녀에게 힘이 되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보부아르가 자신의 잠재력을 보려고 몸부림치던 시절에 사르트르는 그 잠재력을 믿어준 사람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면 - 두 사람의 행동의 총합이 없었더라면 결코 그들 자신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보부아르의 생활은 여전히 글쓰기에 주로 할애되었다.  - P491

내가 철학자가 아니라는 말은 체계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철학을 열심히 공부해 왔고, 철학으로 학위를 받았고,
철학을 가르쳤고, 철학에 물들어 있다는 의미에서는 나도 여전히 철학자입니다. 내 책에 철학이 들어가 있다면 그 이유는 그게 내가 세상을보는 방식이고 내 책에서 그 방식을 제거하려야 제거할 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보부아르보다 몇 세기 앞서 파스칼과 키르케고르도 데카트르와 해겔 같은 ‘체계적 철학자이기를 거부했다.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의미의 일부는 미래를 모르는 채, 결코 미리 알 수 없는 의미를 갈망하며사는 데 있다. 그런데 체계적 철학은 그 점을 망각한다. 보부아르의견해도 비슷하다. 삶은 미리 이해될 수 없으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과타인들이 보기에 어떻게 될지 불안해하며 살아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보부아르의 동시대인들은 파스칼과 키르케고르마저 ‘대체 철학으로 보았다. 그 철학자들은 여성은 아니었지만 신앙인이었기 때문이다. 보부아르 초기의 철학적 통찰, 그리고 이기심과 헌신 사이의 딜레마를 피해 가야 한다는 생각은 비슷한 이유로 오늘날 "철학자 칭호를 얻지 못하는 사상가들과 보부아르의 대화에도 나타나 있다.  - P494

사르트르는 인간적으로든 철학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보부아르의 비판을 피해 가지 못했다. 보부아르는 그에게 맹점이 있다고 생각했고 온 세상이 그 사실을 알 수 있도록 글로 썼다. 그렇지만 사르트르를 계속 사랑하는 것이 그녀의 선택이었다.
보부아르는 몽파르나스 묘지의 사르트르 바로 옆자리에 붉은색 터번, 붉은색 실내 가운, 올그런의 반지와 함께 묻혔다. 몽파르나스의사회당부터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그리스, 에스파냐의 대학들까지여러 단체가 보부아르를 추모했다. 장례식에 모인 군중은 페미니스트 철학자 엘리자베트 바댕테르(Elisabeth Badinter)의 선창에 따라 외쳤다. "여성들이여, 모든 것은 이 사람 덕분이다!"
- P502

보부아르는 안으로부터의 관점에서 자신을 우상"으로 바라본 적이 없다. 알리스 슈바르처와 한 인터뷰에서도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나 시몬 드 보부아르이지, 나 자신에겐 아니에요."라고 했다.2) 여성들이 본받을 만한 긍정적 모델이 부족하다는 점은 알고 있었다. 왜페미니즘의 이상을 실현하려다가 실패하는 여성들 말고 좀 더 긍정적인 여성 캐릭터를 소설에 등장시키지 않느냐는 질문도 받았다.13) 독자들이 그런 캐릭터에서 보부아르를 찾으려 하면 의문을 품게 된다.
보부아르 자신도 실패했기 때문에 이 캐릭터들도 페미니즘의 이상대로 살려다가 실패하고 마는 걸까?
- P503

보부아르가 안으로부터 바라본 자기는 절대 멈추지 않는 ‘되어 가는 자기‘였다. "모든 순간이 조화를 이루는 인생의 어느 한순간 따위는 없기에 인생의 어느 한 시점이 ‘시몬 드 보부아르‘를 보여준다고는 결코 믿지 않았다. 모든 행위는 실패할 가능성이 있고 어떤 실 - P507

패는 행위가 완료된 후에 비로소 실패임이 밝혀진다. 시간은 흐른다.
꿈은 바뀐다. 자기는 늘 다다르지 못한 지점에 있다. 보부아르 되기의 개별적 순간은 극적일 만큼 다양하다. 하지만 시몬 드 보부아르의삶에서 배울 점은 바로 이것이다. 아무도 저 홀로 자기가 되지는 않는다.
- P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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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이 우수,
  나무들 조용조용 부산하다.
  먼 물소리로
  몸을 부풀린다.
  문 밖에 봄이다.


우수
안도현

그리운 게
없어서
노루귀꽃은 앞니가
시려

바라는 게
없어서
나는 귓볼이 발갛게
달아올라

내소사 뒷산에
핑계도 없이
와서

이마에 손을 얹는
먼 물소리

시집<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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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고 맑은 저녁이다.
푸르게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정월 대보름이 지난지 이틀째인데 달이, 쟁반같이 둥근달이 슬쩍 떠올랐다.
나는 왜 매번 보름달만 보면 혼불의 춘복이가 피가 터져라 외치는 ˝달 봤다아˝가 떠오를까?
그만큼 강렬했던, 그만큼 간절한 춘복이의 욕망이 달처럼 환해 설까?
하여 다시금 혼불 5권을 스륵스륵 펼쳐본다.
달이, 많다.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달들의 문장을 구경한다. 덕분에 언제나 나를 홀리는 초저녁 초승달을 보면 이제는 강실이가 소환될 것 같다.

어쩜 문장들을 저렇게 쓸 수 있을까? 철심을 눌러 쓴 듯한 최명희선생님의 글 앞에서 새벽 하늘에 비수같이 떠 있는 그믐달을 만난다.

달이야 어느 땐들 유정(有情) 하지 않을까.
초저녁 동산 위에 가느소롬 곱게 뜬 각시 눈썹같이 이제 막 생겨나기 시작하는 초승달이나, 무심코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그렇게 흰 살이 차 오른 반달, 그리고 참으로 온전하고 둥글어서 오직 우러러 바라보며 한동안을 그대로 서 있게 하는 보름달이며, 그 달이 한쪽부터 서운하게 이지러져 드디어는 하현(下)에 이르다가, 이제는 사윌 대로 사위어 빛을 다 깎여 버린 마지막 푸른 손톱이, 끝내 잠 못 이룬 채, 아직도 캄캄한 사경(四)의 새벽 하늘에 비수같이 떠 있는 그믐달.
우주 만물 삼라만상이 모두 한 빛으로 어둠에 잠기는 밤, 야청의 하늘에 홀로 뜬 달의 그 모양은, 때로 꿈 같고, 때로 넘치도록 충만하고,
때로는 또 처연한 신비로움을 느끼게 하여, 누구라도 달이 있는 밤에는그 달을 올려다보게 하지만,
정작으로 좋은 것은, 달의 모양이 아니라 달빛일 것이다.
- P38

해동(東)의 밭머리에 자운영 돋으면서, 건듯 스치는 바람결에도 부드러운 흙냄새가 섞여 있어, 흙이 열리는 향훈을 느낄 수가 있는 밤.
물오른 나무들이 젖은 숨을 뿜어 내어 촉촉한 대기 속 어디선가 꽃봉오리 터지는 소리가 연연하게 들릴 것만 같은데,
연분홍 살구꽃 수줍게 만개한 봄밤이나, 진분홍색 도발하는 복사꽃이 홀리듯이 피어나는 봄밤에 뜬 달은 잦아들게 애달프다. 부연 안개와 같은 기운이 구름도 아니면서 둥근 달의 낯을 가리워 감싸고 번지는 조요한 달빛은, 차라리 맑게 드러난 명월보다 묘취가 있다.
안타까운 연두빛을 머금어 포료한 그 달빛은 먼 산 봉우리를 아득히잠기게 하고, 살 속으로 습기같이 스며들어 피를 자욱하게 하니,
- P39

멍석에 둘러앉아 웃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차 오르는 달빛이 귓전에부서질 때, 괄괄괄, 촤르르르흐, 서 소리는 개울물 소리인가, 달빛 소리인가, 아니면 구슬을 파랗게 쏟는 소리인가.
이 달빛이 형광으로 찍힌 것 같던 박꽃들이 이울어 둥그렇게 달덩이로 떠오를 무렵이면, 밤 사이 뜰에는 찬 이슬이 내리고, 하늘은 물 속으로 가라앉아 가을이 깊어진다.
- P40

겨울은 사물이 살을 버리고 뼈로 돌아가는 계절이다.
그래서 제 형상을 갖지 않은 물마저도, 흐르고 흐르던 그 살을 허옇게 뒤집어 뼈다귀 드러내며 얼어붙는다.
그뿐인가, 바람 또한 결의 뼈를 날카롭게 세워 회초리로 허공을 가르며 후려치니,
날새의 자취도 그치고, 사람도 다니지 않으며, 짐승 또한 굴 속으로 들어가 몸을 사리는 혹독한 추위 속에, 사위를 둘러보아 그 무슨이나 온기 한 점 얻을 길 없는 삼동(三冬).
헐벗은 잿빛으로 앙상한 골격을 뻗치고 있는 낙목한천겨울 달은 얼음처럼 떠오른다.
그래서 그 이름을 빙륜이라 하는가.
얼음보다 차고 맑은 둥근 달은, 얼음가루가 안개같이 서린 손으로 삭막한 세상의 밤을 쓸어 내리며 푸르게 푸르게 옥물 들인다. 물든 밤은 그대로 다시 투명하게 얼어, 대낮같이 환한 달이 뜬 밤이면, 웬일인지 달 없는 밤보다 더 춥게 느껴지곤 한다.
아마 빛으로 속이 꿰뚫리는 까닭인지도 모른다.
- P42


그 흰 눈도 없는 극한(極寒)의 밤에, 들여다보기 무서우리 만큼 깊고검푸른 거울이, 티 하나 없이 말갛게 씻기워 상공에 걸린 겨울 밤 하늘, 그 가슴 한복판에 얼음으로 깎은 흰 달이 부시도록 시리게 박혀 있는 빙월(水月)이야말로, 달의 정(精)이라 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강실이는 그 냉염한 달을 오래 오래 우러르며, 버선의 발등에 묻은 달빛이 속으로 얼어들어도 그 자리에서 움직일 줄을 모른다.
다만 그네는 몇 번인가 고개를 돌려 희부연 댓돌 위에 뎅그마니 놓인 검은 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었다.
그 신은 얼핏 보면 달빛의 얼룩인가 싶기도 하였다.
- P43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어두운 하늘이 트이면서, 황금 눈길이신 달의 정수리가 능선 위로 가느다랗게 비치었다.
"달 봤다아."
춘복이는 거멍굴 동산의 꼭대기 바위 날망에 올라, 두 다리를 장승마냥 뻗치고 선 채로 두 팔을 공중으로 번쩍 치켜 올리며 부르짖었다.
그 소리는 사나운 산짐승이 달을 보고 잡아먹을 듯이 응그리며운 용틀임으로 으르렁거리는 것같이 들렸다. 아니면 시퍼렇게 이들도록 오래 참고 참아 온 울음을 한 목에 터뜨리는 소리 같기도 하였다.
"달 봤다아아."
비명에 가까운 춘복이의 고함 소리가 동산을 뒤흔들며 공중에 울때, 함께 올라온 거멍굴 사람들은 달을 향해 넙죽이 큰절을 올렸다.
소원을 비는 것이다.
- P176

춘복이는 마음에 먹은 일이 있어, 힘이 되기만 한다면 풀뿌리, 바윗를 지나가는 바람한테라도 절절히 빌고 싶은 심정이었으며, 꾀를 빌릴수만 있다면 사람은 그만두고 들짐승, 날짐승한테라도 엎드리고 싶은
심정이었으니.
며칠 전부터 옴짝도 하지 않고 제 오막살이 농막에 웅크린 채, 그는오직 한 사람 강실이를 생각하며 궁리에 궁리를 기웠다가 뜯어냈다 뒤척이던 끝에 오늘, 달맞이에 일의 성패를 건 미친 사람처럼 단걸음에 내달아, 누구보다 먼저 동산 위의 날망에 올라선 심정이야.
그리고 드디어는 이렇게 달을 보고 만 것이다.
달을 차지하고 만 것이다.
춘복이는 숨이 막혀 지레 가슴이 터져 나갈 지경이었다.
"작은아씨를 내 사람 되게 해 주시요."
- P177


그것은 거대한 달이었다. 온전하게 둥그런 얼굴로, 검은 파도처럼 첩첩한 산 능선을 발 아래 치맛자락같이 거느리면서 떠오른 보름달은 놀랍게 크고 너무나 가까웠다. 무엇만이나 하다고 해야 할까. 춘복이는그렇게 큰 달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일이 없었다. 얼른 보면 커다란 방죽만 한 것 같지만 누우런 황금빛 용암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빛의 물살을 끝없이 뒤채는 이 달에는 어림없는 말이었다.
 보통 때 무심코 올려다보면 둥그렇게 눈 안에 들어오던 그 조그만 달이, 지금은 그의 두 팔을 벌린 아름으로는 당치도 않게 거대하여, 그것은 떠오른다기보다는 흥건하게 무거워서 금방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
달은 그의 머리 위에 뜬 것이 아니었다.
싯누렇다 못하여 화광을 받은 것처럼 붉은 주홍빛을 머금고 있는 그달은 바로 춘복이의 눈앞에 바짝 들이밀려와 있었다. 마치 놀라 바라보는 춘복이를 그대로 덮쳐 한 입에 삼켜 버릴 듯한 기세로.
가슴패기 맞닿게.
그는 숨이 질려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린 채 얼른 다물지를 못하였다.
달은 거대한 빛의 아가리였다.
그 아가리의 빛이 장마진 붉덕물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회오리 돌았다. 한번 빠지면 못 나오는 늪이 용틀임으로 뒤집히는 아가리.
- P183


인간의 갈피에 고인 시름과 눈물을 서럽게 위로해 주기는커녕,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고 빨아들여 빛으로 덮쳐 버릴 것 같은 그 붉누런 빛의 밀물을, 칼로 도려낸 듯 차갑게 뚜렷한 원으로 삼엄하게 가두는 달의 서슬에, 몇 낱 별빛마저 무색하게 지워져 버린 겨울 밤 하늘은 이 시린 궁청빛으로 깊어 더욱 시퍼렇다.
그 앞에 홀로 마주선 춘복이는 한 점 티끌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대로 달빛에 휩쓸리면 그 심연의 수렁 속으로 말려 들어가 다시는헤어나오지 못할, 아니면 그 물살에 떠밀려 곤두박질치며 떠내려 갈.
달은 무서운 기세로 점점 가까이 부딪칠 것처럼 다가왔다.
그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견고한 빛의 바위덩이 암벽 같기도 하였다.
아아, 차라리 저 달에 부딪쳐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죽고 싶다.
춘복이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달을 향하여 가슴을 내밀고 온몸으로 버티고 마주쳤다.
달은 아까보다 숨막히게 더 가까웠다.
가까이 온 달은 다시 누렇게 뒤집히어 붉덕물을 일으키면서, 거문거뭇 멍든 골짜기로 춘복이를 빨아들여 삼키려 하였다.
내가 너를 삼키리라.
- P184

춘복이는 입을 크게 벌리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달의, 싯누렇게 뒤집히며 붉덕물을 일으키는 소용돌이 달빛을 깊이깊이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목으로 빨려들어오는 달빛은 가슴을 깎으며 아프게 비집고 내려가 다시 폐장을 가득 채웠다.
이윽고 가슴이 벌어져 쪼개질 것 같은 통증에 그는 잠시 숨을 멈추었지만, 그곳에 뼈다귀처럼 걸린 달빛을 아랫배로 밀어내리고, 다시 무서운 기세로 흡월을 하였다. 머리꼭지 정수리에서 어깨뼈와 가슴팍, 그리고 단전과 손가락 발가락 끝까지 터질 만큼 차 오르도록 달빛을 들이켜는춘복이의 몸은 둥그렇게 부풀어 올랐다.
내가 너를 삼키리라.
그는 드디어 달빛에 딸려 오는 달이 덩어리째 삼켜질 때까지 그렇게사나운 짐승처럼 서서 흡월을 할 작정인 것 같았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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