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아내 폭력‘은 강간, 성적 학대, 의처증, 남편의 경제적 통제 혹은 무능력, 집요한 협박, 알코올 남용, 시집 갈등, 유기적 성격의 외도, 폭언, 잠을 재우지 않음 따위의 언어적, 심리적, 육체적, 경제적, 성적, 정서적 폭력을 동반하기 때문에 ‘구타‘나 ‘매‘는 여성의폭력 경험을 협소한 의미로 축소하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는 아내를함부로 대하는 행동이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에, 언어 폭력과 같은
‘사소한‘ 폭력은 폭력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본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은 곧 폭력을 일상화, 정상화시키게 된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여성의 경험에 근거하여 폭력의 개념을 폭넓게 정의한다는 의미에서 아내에 대한 폭력, 즉 ‘아내 폭력 ‘ 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 P45

면접 과정에서 나와 증언자의 이해(利害)가 가장 불일치하는 지점은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증언자가 말하기 두려워하거나 거부할때였다. 연구자의 관심과 증언자의 인권 문제는 늘 긴장 관계에 있다. 그들이 말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대체로 자신을 보호하는 것과관련이 있다. "나는 구타당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 편인데, 왜냐하면 실제로 그렇게 많은 폭력을 견디어냈다고 생각하면 자존감이사라지기 때문입니다." - P54

물론 모든 여성 폭력의 희생자가 저절로 생존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여성 폭력은 분명 정치적 사진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개인적인경험이다. (개인의 상처가 (정치적 사건이 되기 위해서는 정치적 투쟁이 매개되어야 한다. 고통을 겪었다고 누구나 현자가 되는 것은아니듯 희생자가 생존자가 되기 위해서는 치열하고 고통스런 자기극복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어떤 의미에서 그 과정은 지극히 개인적인 작업이다. 여성주의 연구 과정의 의미는, 이 과정에 연구자가동참하여 그녀가 자신의 경험을 ‘자기 위주로 해석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것일 터이다. - P56

이처럼 인간의 고통 경험은 평등하지 않다. 어떤 고통의 경험자들은 존경받지만, 어떤 고통의 경험자들은 ‘더럽다‘고 추방되고 낙인찍힌다. ‘아내 폭력‘은 인정되지 않는 고통, 믿을 수 없는 고통이다. ‘정치적‘이고 공적인 장에서 인정되는 고통과 달리 재현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지지 못한 타자의 고통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는 폭력당하는 여성들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담론구조도 없고 청자들의 공동체도 없다. 그들의 고통은 가족의 문제가 되거나, 자녀의 고통이 강조될 때만 부수적으로 드러날 뿐이다.
그래서 고통을 인내하는 여성들의 능력은 지나치게 과장되어 왔고,
그들은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는 것 자체에 죄의식을 느낀다. ("나는왜 참을성이 없을까? ) - P58

여성이 폭력당한 경험이 수치심과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녀가 ‘맞을 짓‘을 했거나 늦은 밤거리를 혼자 걸어다녀서가 아니다.
그것은 남성 중심 사회가 강요하고, 희망하는 해석 체계의 산물일뿐이다. 이처럼 폭력당한 피해 여성의 고통은 개인적인 것이자) 사 - P61

회 구조의 결과이기 때문에 정치적 노력에 의해 얼마든지 재해석되고 극복될 수 있다. 일례로 한국 사회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여성 운동의 성장이 개인의 고통을 어떻게 정치적 경험으로, 역사로만드는지를 잘 보여준다. 증언자 중 몇몇은 자기와 비슷한 경험을한 여성들과 만나서 ‘계모임 같은 것‘을 하고 싶다고 했다.(여성 운동단체에는 폭력당한 여성들의 자조모임이 있다.) 이렇게 자신들의 고통을 공유하고 ‘진실‘로 믿어주는 공동체를 만들려는 노력에서부터그들의 ‘개인적‘이고 ‘사소했던 고통은 정치적인 문제가 되기 시작한다. - P62

‘아내 폭력‘은 명백히 성별화된 폭력인데도 성별의 문제는 가장쉽게 간과된다. 가정 폭력적 접근 방식은 왜 언제나 때리는 사람은
‘남성‘이고 맞는 사람은 ‘여성‘인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남편이 스트레스 때문에 때린다면 왜 직장 상사나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은 안때리는지, 술 때문에 때린다면 왜 아내들은 술을 먹고도 남편을 때리지 않는지, 분노 처리 기술이 미숙하기 때문이라면 왜 그 분노를언제나 ‘집안에서만 표출하는지, 폭력 행위가 손실(행사상 제재, 이혼)보다 보상(분노 발산, 타인을 통제)이 크기 때문에 사용된다면 왜여성들은 이 방법을 쓰지 않는지, 종교와 성격 차이 같은 부부 갈등때문에 때린다면 왜 남성들은 이혼한 이후에도 전 부인을 때리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 P91

‘아내 폭력‘처럼 남성 중심적(가해자 중심적) 시각이 가시적이고 체계적인 영역도 없다. 사회는 남성의 폭력행동자체에 대한 정치적인 분석과 비판보다는 남성이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이유에 초점을 둔다. 남편은 아내를 때릴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기 때문에 언제나 ‘아내 폭력‘ 현상은 성차별적으로 해석된다. 피해 여성과 가해 남성의 경험이 해석, 재현, 담론화되는 데 이미 그출발선이 다른 것이다. ‘아내 폭력‘은 현재의 가족 제도와 사회 구조를 지탱하고 있는 성별 관계에 의한 여성 문제들 간의 연관성을이해하지 않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아내 폭력‘에 대한 질문은 (안때릴 수도 있는데) ‘왜 때리는가보다는, ‘아내를 때릴 수 있는 권력은어디에서 나오는가‘로 전환되어야 한다. - P92

이처럼 ‘아내 폭력‘의 현실은 계급, 인종, 직업, 학력 같은 여성들간의 차이가 ‘아내 폭력‘의 발생과 대응에 별로 의미를 지니지 못함을 보여준다. 가부장제의 기본 성격은 여성의 정체성, 지위, 역할(기능)을 남성과의 관계로부터 규정하는 것인데, 그러한 과정이 ‘자연스럽게‘ 실천되는 장소가 바로 가족이기 때문이다. 가족 제도는 여성을 개별적 인격체가 아닌 (남성을 위해 존재하는 동질적, 비역사적, 자연적 집단으로 정체화한다. 가족은 여성을 ‘진정한 여성‘으로만들고, 남성을 ‘진정한 남성‘으로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장치이다.
가족은 특히 사적인 존재로 간주되는 여성에게는 더욱 ‘합당한‘ 정체성을 부여한다. - P99

가부장제 사회의 주체로서 여성과 남성은 모두 가족 내에서 자신의 성 역할에 충실함으로써 사회가 부여한 정체성을 유지하려 하며, 또 (남녀가 동일하지는 않지만) 그로부터 권력을 얻는다. 특히 여성은 성별 분업 원리에 따라 가족 내 지위가 곧 사회에서의 지위가되기 때문에, 피해 여성들은 생명을 위협하는 폭력 앞에서도 아내/어머니로서 성 역할을 좀처럼 포기하지 않게 된다. ‘아내 폭력‘은 아내가 폭력을 유발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가 성 역할에 충실하고 집착함으로써 지속된다. ‘아내 폭력‘은 가부장제의 기본 성격과 맥락을 같이 하기 때문에 성매매(매매춘)와 더불어 가부장제프로젝트의 최후 보루가 되고 있다. - P100

일상적인 가족 생활은 남성과 여성이 남편과 아내가 되어 각자 성별화된 역할(gender role))에 충실함으로써 유지된다. 개인인 남성과 여성은 가족 제도를 통해 남편과 아내라는 지위를 얻게 되고,
그 지위는 남성과 여성에게 서로 다른 내용의 노동과 규범을 요구한다. 결혼 생활을 구성하는 부부 간의 성(sexuality), 여성의 보살핌 노동과 가사 노동, 남성의 임금 노동, 가정의 대표자로서 남성가장 등 가족 생활에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은 사회에 확산되어(가정은 사회의 기본적 단위) 사회적 성별 관계 전반을 규정한다. 이처럼결혼과 가족은 각 개인들에게 성별 정체성(gender identity)을 확고하게 부여하는 핵심적인 사회 장치이자 성별 관계를 생산하는 공장(gender factory)과 같다 - P103

폭력 남편들은 ‘정상적‘인 사람들이다. 아내들은 남편이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존경받는 별문제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대응하기가 더 어렵다고 호소한다. 피해 여성들은 남편을 ‘아이큐가 높고 머리 회전이 빠르다. 치밀하다. 주도면밀하다. 논리정연하다. 형사 출신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행동과 판단력이 빠르고 예민하다.
잔머리가 천재다. 자존심과 자제력이 뛰어나다. 차분하고 생각이많다. 집념이 강한 엘리트, 지적(知的)이다. 용의주도하다, 인격적이고 부드러운 사람, 매사에 계획적이고 꼼꼼하다‘고 표현했다. 이는 폭력 남편들이 참을성이 없고 충동적이며 자기통제력이 부족하고 스트레스 관리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라는 기존의 ‘아내 폭력‘ 연구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기존 연구들이 이미 전제한 시각에 따라 자료를 구성하기 때문에 폭력 남편을 비정상적인 사람으로간주하는 것이다. 커스티 일로는 이 문제를 ‘보는 대로 얻는다 (whatyou see is what you get)‘라고 표현했다. - P106

한국 사회에서 가사 노동은 여성의 임금 노동 여부에 상관없이 여성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의무로 간주된다. 가사 노동은 반드시 여성에 의해 수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가사 노동과 비슷한 성격의 일을가정이나 직장에서 남성이 하는 것은 남성성의 수치이자 훼손으로여겨진다. 남성들이 결혼하는 가장 실질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가사노동 담당자를 구하기 위해서이다. 청소, 요리, 세탁, 남편과 자녀 돌보기, 시집에 대한 봉사 따위의 가사 노동은 가족 생활의 유지와 지속을 위한 여성의 가정 내 역할 중에서 아주 핵심적인 것이다. - P115

모두 폭력의 고의성 여부와 심각성 정도로 정의한 것인데 이는 ‘아내 폭력‘의 성격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아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아내 폭력‘의 기본 성격과 작동기제는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의 역할 구분이다.
성 역할 구분은 ‘사소한‘ 폭력에서 범죄로 명명될 수 있는 극단적인 폭력에까지 모두 작동한다. ‘부부 싸움‘이나 가부장적 테러리즘은 결국 같은 사회 구조와 논리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이는 ‘아내 폭력‘이 부부 관계의 극단적 예외적, 일탈적 사건이 아니라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일상적인 ‘정상‘ 규범임을 말해준다. ‘맞을 짓‘이란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여성과 남성이 가족 제도를 통해아내와 남편이 되었을 때만 발효된다. 현재의 가족 제도에서 ‘맞을짓‘은 남녀의 역할 규범 그 자체에서 발생한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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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의 시작
-성 역할, 가족, 폭력


남편은 아내의 뺨을 세차게 때렸다. 딱 한 대. 그러자 아내는 몇시간을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질렀다. 고성의 욕설과 저주가 멈추지않는다. 남편과 자녀들은 귀를 막고 흩어진다. 여성학 시간 강사 시절, 한 여학생이 내게 질문했다. "선생님, 이게 우리 집이거든요. 지금 누가 가해자예요? 소리 지르는 것은 폭력이 아닌가요? 저는 솔직히 엄마가 더 폭력적이라고 생각해요."
가정 폭력이 화제에 오를 때마다 매번 등장하는 문제제기다. 여성에 대한 다양한 폭력, 이를테면 사티 (sati, 아내 순장)나 스토닝(stoning, 돌로 여성을 살해함), 신부(新婦) 불태우기, 다우리(dowry, 지참금 살인), 명예 살인(honor killing), 음핵절개, 황산테러 들과 달리 가정 폭력은 남편의 폭력 못지않게 아내의 협상과 저항도 계속되기 때문에 피해자의 정당방위도 폭력이라고 인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 여성 대부분은 평생에 한두 번 이상 배우자나 연인으로부터폭력 피해를 경험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가정 폭력(정확하게는 ‘아내에 대한 폭력‘)의 경우, 그중 절반 이상은 종종‘, 3분의 1은 반복적규칙적, 일상적으로 발생한다고 추정된다. 그렇게 버티던 여성 중에어느 정도가 남편의 ‘과실‘로 사망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개 자살이나 사고사, 실종, 자연사로 처리된다. 남성에게 맞아 죽기 위해태어난 여성은 없다. 하지만 매일 어딘가에서는 가정에서 ‘강남역사건‘이 일어난다.

폭력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보다 더 근본적인 권력 관계라는 인식은, 현실의 심각함에 비추어 보면 너무나 얇고 낮고 가볍다. 우리의 일상은 젠더로부터 파생하는 정치의 연속이다. 가부장제는 공기일지도 모른다. 남성의 폭력과 권력이 "남녀상열지사", "격렬한 로맨스", "규범에 저항하는 순수한 사랑으로 읽히는 사회에서, 여성주의를 ‘남혐‘으로오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남혐‘은 나에게는 너무나 놀라운 언어였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데, 나는 "당신의 글이어떻게 읽히면 좋겠는가."라는 질문을 좋아한다. 이 책의 소재는 가정 폭력이지만 나의 궁극적인 관심은 성 역할의 비대칭성이다. 성역할 규범(norm, 남성성/여성성, 남성다움/여성다움)은 자연스러운 일상 문화에서부터 불법 행위까지 다양하다. 여성의 경우, 가부장제규범을 스스로 초과달성하려는 이들도 있고 강요받고 고통받는 이들도 있다. 같은 행동이라도 남성의 이해에 부합하느냐에 따라 보상과 처벌이 다르다.

성 역할이라는 중립적이고 기능적인 단어 속에 감추어진 역할론은 모든 위계적 사회 분업론의 모델이 되어 왔다. 강약, 우열,
보편과 특수 등등 모든 권력 관계의 법칙은 젠더 메타포(gendermetaphor) 없이 작동하지 않는다. 남성성과 여성성 개념을 정확히이해하고 이 개념을 해체하는 것은 여성주의 인식의 기초가 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가장 쉬운‘ 여성학 입문서, 인문학 교양서로읽히기를 바란다. 가정 폭력과 성매매는 가부장제의 매트릭스(母型)이기 때문에, 이에 관한 책들 대부분은 여성주의적 시각을 훈련하는데 필수적이다. 더불어 기존의 통념과는 다른 창의적 사고와 다른목소리‘를 획득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나는 대학 졸업 후 우연한 기회에 가정폭력 피해 여성을 돕는 인권 단체 ‘여성의전화‘에서 상근자로 일할 때부터 꼭 이 여성들의 목소리를 전해야겠다는 ‘사명감‘으로 살았다. 1980년대, 극도의 남성중심 사회였던 학창 시절 마르크스주의자이자 ‘명예 남성‘이었던 내가 여성주의자로 ‘변절‘하는 데는 일 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다행히나는 보는 대로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여성학 공부는 평생에 걸친엄마와의 애증, 사춘기 이후 나를 지배했던 ‘이름 모를 병‘이었던 우울과 분노를 지식으로 전환해준 세례(洗禮)였다.

모든 것이 배움의 과정이었다. 여성주의자는 되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고통을 목격한 사람, 그 고통에 공감하고자 하는 사람, 피해자/운동가/연구자의 차이와 위계를 넘어 ‘당사자(actor)‘로서 나를알아 가는 과정이다.
이 책의 사례 중에는 내 주변의 여성들도 있다. 나는 이 책을 쓰면서 한 시간 쓰고, 한 시간 울고, 한 시간 자는 상태를 반복했다.
음식은 거의 먹지 못했다. 책상을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 초콜릿과 우유를 사다놓고 책상 앞에 계속 앉아 있었다. 글을 쓰는 도중에 피해 여성에게 연락이 오면 변호사와 경찰을 만나고, 아이와 함께 폭력 남편을 탈출하려는 여성을 돕기 위해 아이의 담임선생님을 설득하러 먼 곳을 돌아다녔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피해 여성에 대한 동일시와 거리 두기 사이에서 빚어지는 방황과 죄의식이었고, 하나는 여성주의자들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과 사회로부터 받은 상처였다. 한국 사회에서 가정 폭력, 성폭력, 성매매에 대한 글은 ‘학문‘과는 거리가 먼 선정적인 글로 간주되기 쉽다. 나는 이 말도 안 되는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언제나 자기 검열로 노이로제 상태였고 지금도 많이 다르지 않다. 내가 분명히 경험하고 목격한 것을 스스로 믿을 수 없었고 나 자신이 분열되는 것 같았다. 가정 폭력 같은 사회의
‘어두운‘ 면을 모르는 것이, 마치 순수한 학자의 징표처럼 여겨지는

사회에서 ‘험한 꼴‘을 목격하고 그것을 ‘자료‘ 삼아 외울 정도로 읽고또 읽는 경험자인 나는 누구인가 페미니즘은 여성학인가 여성 운동인가, 여성주의인가. 심지어 남녀를 불문하고 내 글은 이론, 지식, 학문이 아니라 르포, 사례집, "여성 잡지 기사 같다."고 말하는 이들도있었다. 특히, 나는 "과장 아니냐"는 말에 가장 민감하게 분노하고좌절했다. 물론 그들의 반응은 무지의 산물이지만, 이 문제는 폭력과 고통을 연구하고 싶은 내가 평생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프리모 레비는 평생 ‘경험한 자아‘와 ‘말하는 자아‘ 사이의 간극에시달렸다. 홀로코스트 피해자가 그 비극을 경험하지 않은 ‘특권‘을가진 자에게 베풀어야 하는 배려와 관용 나는 이 부정의를 참을 수없다. 나는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고통, 폭력, 슬픔이 연구되기 어려운 이유라고 생각한다. 고통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고통이 언어화될 때만이 우리는 위로받을 수 있다. 내 고통이 역사의 산물이라는인식만이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그런 점에서 학문이란 무엇인가,
지식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다.

시대를 초월하여 대개 TV에서 방영되는 가정 폭력 추방 공익 광고는 가정 폭력에 대한 한국 사회의 접근 방식을 매우 상징적으로보여준다. 많은 광고가 폭력 가정에서 자란 남녀 어린이가 폭력 부부의 성 역할을 그대로 학습한다는 내용을 그리면서, 남편의 폭력이 아동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런 광고가 가장 우려하는 가정 폭력 피해는 남편에게 직접 폭력을 당하는여성이 아니라 ‘부부 싸움‘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어린 자녀이다. 물론 남편이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할 때 자녀 역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피해자임은 분명하지만, 광고의 시작과 끝에 ‘여성 인권 캠페인‘이라고 강조하는 문구가 나와도 그 광고는 여성 인권 캠페인이라기보다는 아동 인권 캠페인에 가깝다. - P21

만일 어떤 사람이 가정이 아닌 길거리에서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당했다면, 당연히 가해자를 처벌해야지 치료하거나상담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즉 ‘아내 폭력‘
이 전쟁, 고문, 조직 폭력 같은 일반적인 폭력과 다른 것은 그것이단지 ‘가정‘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행사한다는 점이고 그로 인해 오랫동안 은폐되었거나 지속된 점이라고 볼 수 있는데 바로 이 부분을 지적하고 비판하지 않는다면 ‘아내 폭력‘을 근절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오히려 성(차)별 제도에 의한 가족내 남녀의 차별적 지위와 그에 따른 성 역할 규범은 그대로 둔 채폭력만을 방지하는 기존의 가족 중심적 접근이야말로 ‘실질적인‘
대책이 되기 어렵다고 본다. - P31

1. 가정 내 남편과 아내의 역할과 관련하여 ‘맞을 짓‘이 어떻게 구성되는가? ‘아내 폭력‘의 근본 원인과 발생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2. 피해 여성과 가해 남성이 자신을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가족내 성별 정체성인 아내/남편으로 규정할 때 폭력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폭력을 폭력이 아닌 다른 것으로 인식할 때 그것은 ‘아내 폭력‘ 대응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며 그렇게 인식하게 하는 사회문화적 맥락은 무엇일까?
3. 여성에 대한 가족 내 성 역할 규범은 피해 여성의 탈출을 비롯한 다양한 대응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 이를 통해 현재의 가족제도 아래서 폭력당하는 아내의 순종 혹은 저항이 폭력을 예방하는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보고, 피해 여성이 폭력 가정을 벗어나는 데 필요한 사회적 조건은 무엇인지 모색하고자 한다. - P33

부부 관계에서 신체적 폭력이 없는 언어적, 정신적 폭력은 발생할 수 있어도 언어적 폭력이 없는 신체적 폭력은 없다. 이 연구의증언자들은 특히 남편의 언어 폭력에 대한 고통을 호소했다. 언어폭력은 육체적 폭력만큼 아내를 절망케 하는데, 대체로 여성의 성(sexuality)과 관련된 것이 많고 매우 여성 혐오적이다. ‘구타할 때,
남편이 화났을 때 주로 폭언을 하느냐‘는 나의 질문에 대부분의 증언자들은 그것이 일상적인 부부간의 대화라고 말했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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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의 시선‘ 때문에 ‘정희진처럼 읽기‘를 폈다가 아직 놓지 못하고 있다ㅠ


내가 습득한 책 읽기 습관을 요약해본다.
1. 눈을 감아야 보인다(in/sight).
2. 새로운 것을 얻으려면 기존의 인식을 잠시 유보하라 판단 정지, epoche).
3. 한계와 관점은 언어와 사유의 본질적인 속성이지, 결함이 아니다.
4. 인식이란 결국 자기 눈을 통해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는나의 시각을 객관화하는 것이다.
5. 본질적인 나는 없다. 내가 추구하는 것이 나다.
6. 선택 밖에서 선택하라.
7. 궤도 밖에서 사유해야 궤도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8. 대중적인 책은 나를 소외시킨다.
9. 독서는 읽기라기보다 생각하는 노동이다. - P24

독서는 저항, 불복종의 시작이다. 이 책에는 내가 그간 겪은 ‘책,
글쓰기, 공부와 여성/아줌마‘와 관련해 차별, 편견, 무시, 경멸, 혐오당한 일화는 쓰지 않았다. 남들이 봐도, 지금 내가 생각해도 재미있는 일화가 무궁하다. 20여년 동안 거의 매일 하루에 한 건 이상겪었다. 너무 많아서, 너무 어이가 없어서, 누가 믿을까 싶어서 쓰지않았다. 새삼스런 이야기지만 가장 강력한 지배는 사람들에게 여행과 독서를 금지하거나 접근하기 어렵게 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독서 이전의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서 ‘갑‘은원하는 것이 없는 사람 잃을 것이 없는 사람, 덜 사랑하는 사람일지모르지만 권력이 두려워하는 인간은 분명하다. 세상이 넓다는 것,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이다. - P25

나는 갱생(更生)의 의미를 진짜로 알게 된 것 같았다. 사람은 여러 번 태어날 수 있다. 나는 겁이 없어졌다. 그리고 세상을 철봉에매달려 거꾸로, 아주 멀리서 아래서, 혹은 눈을 감고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자 기존의 권위에 주눅 들거나 주류에 대한 욕망도 우스워졌다.
지금 생각하면, 여성학 책을 읽으면서 그간 억눌렸던 존재감이두서없이 분출해서 매일 혼자 무엇인가를 선언하는 식으로 살았던것 같다. 누구랑 논쟁해도 이길 자신이 있다는 황당한 상상에서부터 내가 앞으로 읽을 책과 쓸 책을 망상하면서 가슴이 뛰었다.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나는 다른 방식으로 ‘성공‘할 수 있을 것같았다. 사회 밖으로 튕겨 나간다 해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옥살이를 한다고 해도 겁나지 않았다. 왜? 나에겐 책이 있으니까. ‘언어가있으니까!‘ - P34

실제로 나를 좌절시킨 것은 몇몇 후보의 당선이다. 문학평론가황현산의 표현대로, "우리의 삶이 아무리 비천해도 그 고통까지 마비시키지는 못한다." 고통이 아픈 것이 아니라 마비된 고통이 불러올 고통이 끔찍한 것이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아프기는커녕 ‘더욱 열심히 뛰겠다‘고 한다. 썩지 않는 시체에항생제를 붓는다. 인간이 인격체가 아니라 방부제인 사회. 절망할기력조차 없다. - P48

그러나 공포는 반응이지 현실이 아니다. 공포는 겁먹은 자에게만효과가 있다. 공포는 가장 강력한 인간의 행위 동기여서 오랫동안편리한 통치 수단으로 쓰였다. 인간의 과거는 다양하다. 그중 어떤경험에 정당성을 부여할 것인지는 인간 스스로의 선택에 달려 있다. "세계화를 겪는 훈련이 아니라 ‘세계화로부터 빠져나오는‘ 훈련을 함으로써 세계화에 부응할 수는 없는 것일까?"
지금 이 체제에 시너를 부을 것인가? 폭탄을 설치할 것인가? 자폭할 것인가? 필요한 것은 앎이다. ‘무능한 잉여‘의 유일한 자원은생각하는 능력뿐이다. 필독을 권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인생, 자녀 교육, 투표에 대한 생각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 P110

나는 양성 평등을 주장하지 않는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자는여자랑 평등해지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여성이 남성과 평등해지려면 이중 노동을 해야 한다. 이것이 평등인가? 다문화 가정의한국 사회 적응? 왜 그들이 우리에게 동화되어야 하는가. 한국은가만히 있어도 되는 제정신인 사회인가. 권김현영과 서동진이 지적한 대로, 자본은 자기가 100퍼센트(보편)라고 주장하는데 왜 없는사람들은 자신을 99퍼센트라고 정의하는가? - P126

‘어떤 가치도 온 누리에 골고루 퍼지지 않는다. 미국 밖에서 전쟁이 없다면 미국 군수 노동자는 실업자가 된다. 뻔뻔한 이의 마음의평화는 억울한 사람이 겪는 마음의 고통의 대가다. 관용은 개인의인격이 아니라 사회가 쥐어준 권력에서 나온다. 때문에 ‘없는 자‘의관용은 비굴이나 아부로 간주되기 쉽다.
그러므로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힐링하려고 애쓸 필요 없다.
성숙한 사람은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마음의 평화는 스스로에게 잠시 속아주는 것.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우리는 삶을속여 봤자다. - P188

사상가는 그 자신이 사유의 도구이며, 개인의 감정은 연구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대개는 약점이라 생각하지만, 나는 ‘자서전과 과학의 뒤엉킴‘이 정신분석의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지식은결국은 한 개인의 이야기다. 백인 중산층 남성의 경험이 보편적 이론으로 여겨진 것은 권력의 작동 때문이다. 그들의 이론이 역사가 아니라. 그들의 이론이 역사가 된 과정이 역사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환자는 바로 나 자신이었다." 이 문장은 지식의 근본 문제, 즉 인식자와 인식 대상의 관계를 가장 바람직하게 요약하고 있다. - P199

우리가 무엇에 대해 말하는 것은 대상에 대한 순수한 보고가아니라 그 대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 태도, 입장을 드러내는 행위다. (투사!) 모든 발화는 객관적일 수 없다. 지식은 인식자의 렌즈를통해 우리 앞에 재현(再現)된 것이다. 공부는 지식을 습득하는 것자체가 아니라 인식자가 자기에 대해 아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을 사회와 공유하는 것이다. - P199

모든 삶은 자신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해야하며 따라서 글쓰기나 말하기(인문학)는 저자 개인에 대한 언설이다. 보편적 지식은 인식자가 자신을 인간의 대표라거나 우주, 신, 과학 등과 동격으로간주할 때만 가능하다. 자신을 지배하는 정열이 사라질 때, 스스로에게 질문이 없을 때, ‘나는 정상‘이라고 믿을 때, ‘지당하신 말씀‘,
‘쉽게 읽히는‘, ‘대중성‘ 있는 글이 생산된다. - P199

심(그 밥에사는 것이 혁명이라면, 지구상 모든 이들의 일상은 혁명 중인 그무엇이다. 내가 변혁하고자 하는 사회는 내 몸과 혼재된 나 자신이다. 쿠데타를 포함한 기존의 혁명 패러다임은 "눈앞에서 벌어지는일을 인정"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민중을 분열시키는 ‘문제‘로보고 억압한다. 저출산, 동성애자의 결혼권 주장, 병역 거부, 높은이혼율・・・・・・ "지금 일어나는 혁명을 인정하라." 그리고 해석하라. - P221

무지는 약자를 무시하는 권력에서 나온다. 자신을 ‘남성‘으로 생각하는 이들은 ‘여성‘과 ‘흑인‘의 목소리를 공부하지 않는다. 간혹고민하더라도 그것을 공부로 착각해서, 자기도취와 연민에 빠지기도 한다. 여성은 남성 이론을 모르면 무시받지만, 남성은 좌우를막론하고 여성주의는 물론 자기 생각도 모르는 이가 숱하다. 주체가 타자를 모르면 자기를 알 수 없다. 간단한 이치다.
좌파는 무엇으로 사는지가 궁금한가? 무지로 산다. 이는 여성주의자를 포함한 모든 인간에게 해당한다. 거듭 말하지만, 의미는 찾아나서는 것이다. 있는 의미는 이미 권위다. "현존하는 것이 진리일리는 없다."(<좌파로 살다》, 에른스트 블로흐) - P251

인생이 강물이 아니라 사막을 혼자 걷는 일이라면, 애초에 물에빠지는 사람도 없다. 우리가 선택한 그립지만 괴로운 대상들은 사막을 지나가다 잠시 스친 풍경들이다. 조우했을 뿐 오아시스에서 만나 한참 이야기를 나눈 사이가 아니다. 인생에 오아시스가 없다고생각하면 익숙한 것들의 막강한 존재감이 다소 상대화된다. 중독보다는 생존의 힘이 세다고 믿는다. 천천히 조금씩 이별할 수 있다.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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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
이산하


누군가 인생의 바닥까지 내려가봤다고 말할 때마다
누군가 인생의 바닥의 바닥을 치고 올라왔다고 말할 때마다
오래전 두 번이나 투신자살에 실패했다가
수중 인명구조원으로 변신한 어느 목수의 얘기가 떠오른다.
어떤 이유로든 사람들이 강에 투신자살하면거의 ‘99대 1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시신의 99%는 강물 속으로 가라앉다가 그대로 흘러가버리고
1%는 투신한 자리에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는 것이다.
흘러간 시신은 강의 바닥까지 가라앉지 못한 시신이고
떠오른 시신은 강의 바닥까지 완전히 가라앉은 시신이란다.
물론 잠시 머문 뒤 떠내려가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시신들은 한결같이
반쯤 눈 감은 채 미소를 머금어 마치 불상처럼 보인다고 했다.
어떤 생이든 막다른 벼랑에서 떨어져 바닥에 이르면
그곳이 정말 더이상 떨어질 수 없는 바닥의 바닥이라면
관짝을 부수고 나온 부처의 맨발처럼 오히려 고요해질지도모른다.

고요해지면 더이상 두렵거나 더이상 취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난 바닥을 쳤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숨이 멎는다.
물론 욕망과 탐욕의 덩어리가 되어 바닥에 이르기도 전에흘러간들
바닥을 치고 다시 떠올라 잠시 세상을 애도하고 흘러간들
시신을 염하고 운구하는 강물의 숨결은 한결같을 것이다.
언젠가 내 몸도 바닥에 이르지 못한 채 흘러가겠지만
언제나 가벼운 생일수록 바닥을 쳤다고 더욱 강조하겠지만
이제는 강물의 색깔만 봐도 수심을 안다는 목수의 말만큼은
바닥의 바닥을 치고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을 믿는다.


시집[악의 평범성]중에서


[새의 시선]을 마치고 가을 광교산에 올라갔다. 책이 주는 먹먹함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던 거다. 여름내 멀리했던 산이 무거워진 다리를 밀어낸다. 땀을 쏟으며 다리를 뻗어나가며 방금 빠져나온 소설을 생각한다. 이 땅의 현대사에서 사라진 사람들이 소환되고, 세월호, 용산, 어린이집 수련회 화재로 아이를 잃는 피해자들....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설로만 생각할 수가 없다.
이 이야기들이 그럴듯한 이야기에 불과하다면 좋겠다.
그렇게 눈 감아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대의 소설은
이 시대의 작가는 이런 글을 써내야한다.
지겹도록, 써내야 할 책무들이 있다.

이산하시인의 시들이 맴돈다.
‘바닥의 바닥을 치고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영혼들을 생각한다.

세상은 아름다운 가을이다.
이 아름다움이 거저 온 것이 아니라는...
그 흔한 새 한마리 만나지 못하고,
새소리 한 번 듣지 못하고 산을 내려온다.
무력하다.
부끄럽다.

‘그는 권력과 폭력을 비판하거나 혐오하기보다, 사유한다.‘
정희진은 옳았다

˝배우 자신도 그랬다지만 나 역시 영화를 보고 ‘만 가지 슬픔‘ (이라는 책이 있다)이 쏟아졌다. 인류는 폭력 피해자 가족의 이런 ‘희망과 안도‘를 개념화한 적이 있는가? 나의 무식 탓이기를 바란다. 이런 심정은 프리모 레비(Primo Levi)의 책이나 로만 폴란스키(RomanPolanski)의 영화 <죽음과 소녀 (Death and the Maiden)> 같은 ‘전형적인‘ 고문의 서사에서는 언급되지 않는다.
한국 소설 중 나만의 3부작‘이 있다. <슬픔의 노래> <얼음의 집> <새>.
모두 한 작가의 작품이다. 우연이다. 우리 사회에서 인생은 생잔(生殘, 살아남기‘), 권력은 폭력, 슬픔은 실패를 의미한다. 이런 현실에서 폭력과 권력 탐구를 짊어지는 작가는 흔치 않다. 어쨌든 정찬같은 ‘캐릭터‘의 지식인이 많아야 한다고 절실히 주장한다. 내가 만일 대통령 후보라면 이런 공약을 하겠다. ˝치열하게 생각하는 인간이 대우받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내가 이해하는 ‘정치신학자‘ 정찬의 주제는, 권력과 폭력 앞에 선 인간의 선택이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그들의 모습은 작가를 통해 예술과 신학의 이유가 된다. 그는 권력과 폭력을 비판하거나 혐오하기보다, 사유한다. 그의 작품은 ‘남영동‘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윤리학이다.˝ [정희진처럼 읽기]중에서 p149, 150


새들의 길


운동화 한 켤레가 방파제 위에 놓여있다. 봄햇살을 받아눈처럼 희게 빛난다. 그녀의 눈에는 한 마리 새처럼 보인다.
운동화 옆에 비닐에 싸인 옷이 있고, 그 위에는 부모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접착테이프로 붙여져 있다.
- 사랑하는 내 아들, 넌 지금 어디 있니? 어찌 그리 못 오고 있어. 새 신발을 신어보고, 옷도 입어봐야지. 너의 여행이너무 길어. 어서 빨리 돌아와. 오늘은 약속하는 거지?
그녀의 눈자위가 금방 붉어진다. 저 아이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우리 종우와는 얼마나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걸까? 어젯밤 꿈이 떠오른다. 종우가 바다 밑 뻘을 헤치고 무언가를찾고 있었다. 얼굴 표정과 몸짓이 간절했다.  - P111

 종우야, 깊은 바다 밑에서 무얼 그토록 애타게 찾고 있니? 함께 찾고 싶었지만 종우에게로 갈 수 없었다. 몸이 무언가에 묶여 있는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 종우의 발이 보였다.
맨발이었다. 몸은 진흙투성인데 발은 하였다. 하얀 발에 눈이시렸다. 아! 그녀의 입에서 탄성이 흘렀다. 종우가 찾는 것이무엇인지 깨달은 것이다. 운동화였다. - P112

"그럼 신고 가. 외삼촌이 너에게 주는 거니까."
"가슴 깊은 곳에서 슬픔이 일렁이고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묻어둔 슬픔이었다.
"외삼촌이 주시는 거라면 받아야지."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던 종우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이 운동화 내 거네."
"그래, 외삼촌 운동화는 이제 우리 종우 거야."
오빠의 얼굴이 떠올랐다. 해맑은 얼굴이었다. 그녀는 나이가 들어 얼굴이 쭈글쭈글해졌는데, 오빠의 얼굴은 여전히 스물다섯 살 청년이었다. 스물다섯 살 청년을 그리워하며 보낸 세월이 아득했다. 사무친 아득함이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 P118

진도 바닷가에서 지낸 한 달여 동안 잠을 제대로 잔 적이없다. 간신히 잠이 들면 악몽에 시달렸다. 끔찍하게 변해버린종우가 꿈에 자주 나타났다. 손톱이 다 빠진 손으로 무언가를긁고 있었다. 눈동자가 없어 휑하니 뚫린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입안에 피를 가득 머금은 채 누군가를 소리쳐 부르고 있었다. 너무 끔찍해 잠드는 것이 무서웠다.
배가 침몰하던 4월 16일 아침 그녀는 잠 속에 빠져 있었다.
마트 일이 끝난 것은 새벽 1시 40분이었다. 매출 금액과 받은 - P118

돈이 차이가 나 식은땀을 흘렸다. 적은 액수가 아니었지만 그녀 돈으로 메웠다. 팀장을 면담하고 사유서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했다. 집에 오니 2시 반이었다. 3시 넘어 이불을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오랫동안 뒤척이다 간신히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난 것은 성태의 전화 때문이었다. 잠결에전화를 받았다. 9시 40분경이었다. - P119

오후 2시에 구조된 승객이 368명이라고 발표한 정부는 4시30분에는 164명으로 수정 발표했다. 믿기지 않았다. 종우가구조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타들어갔다.
오후 5시 10분에 시작된 행정안전부 브리핑에서 대통령은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는데, 그렇게 찾기 어려운가요?"라고 물었다고 했다. 학생들 대다수가 배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 뉴스로 알려진 지 한참 지난 뒤였다. 억장이 무너졌다. 옆에 앉은 이에게 무어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말하는 법을 잊은 것 같았다. - P122

"고래의 눈을 어떻게 보니?"
"컴퓨터 스크린에서는 볼 수 있어요."
"아, 그렇겠네."
"저도 봤는데, 눈동자가 너무 깊어요."
"눈동자가 어떻게 깊어?"
"제가 보일 만큼요."
종우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슬픈 얼굴 같기도 하고, 화난얼굴 같기도 하다. 어쩌면 자신도 명호 어머니처럼 종우에게정말 중요한 것은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종우가 고래를 좋아하게 된 건 고래 눈동자가 깊기 때문이라는 거야?"
"맞아요. 종우는 고래 눈동자 속에 다른 세상이 있다고 했어요. 여기와는 다른 세상 말이에요." - P131

"귀신고래가 1년 동안 여행하는 거리가 얼만지 아세요?"
"몰라."
"2만 킬로미터예요. 귀신고래의 수명은 40년 남짓이에요.
40년 동안 귀신고래가 여행하는 거리는 지구에서 달까지의거리예요. 귀신고래에게 북극 여행은 아주 가벼운 여행인 거지요."
"하지만 종우는 고래가 아니잖니?"
"종우는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고래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어요."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종우가 부르는 소리를듣지 못하고・・・・・・ 너는 들었는데, 난 듣지 못하고・・・・・・ 그동안그녀는 종우와 통화했을 경우의 상황을 수없이 그렸다. 종우에게 갑판으로 올라가라고 말했을 것 같았다. 그 생각을 하면견디기 힘들었다.
132배 안에 있는 친구들이 부러워요."
"왜 그런 생각을 해?"
"많은 사람이 배를 탄 친구들을 생각하고………… 또・・・・・・ 보고 - P132

싶어 하잖아요."
"그건.......
목에 무엇이 턱 걸려 있는 것 같아 말을 할 수 없다.
"종우와 함께 북극에 가는 것이 꿈이었어요. 그 생각만 하면 힘이 절로 났어요. 이제 제 꿈은 산산조각이 났어요. 전 종우와 함께 배를 탔어야 했어요. 정말 탔어야 했어요."
성태의 목소리에 울음이 섞여 있다. - P133

지나자 경찰서를 찾았다. 치안 공무원들은 몹시 곤혹스러워했다. 담당이 아니라고 서로 미루었다. 민원실로, 수사과로,
보안과로, 정보과로 돌아다니다 수색원 서류 하나만 달랑 제출하고 쫓겨나다시피 나왔다. 그 후 경찰서에서는 어떤 연락도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오빠 주변 사람들은 물론 오빠와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사람이면 수소문해서 만났다. 하지만 만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그들의 얼굴은 어두워져갔다. 어머니는 땅을 파헤쳐서라도 오빠를 찾고야 말겠다고 혼잣말하듯 중얼거리곤 했다. - P136

그녀를 바라보는 오빠의 눈은 슬펐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오빠는 간혹 그녀에게 말을 건네곤 했는데,
그녀에게 닿기도 전에 공중으로 흩어졌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새가 되고 싶었다. 새라면 공중으로 흩어지는 오빠의 말을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오빠의 말은 공중으로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들의 길을 따라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의 서른번째 생일을 맞은 그해 늦봄, 법무사인 지인의권유로 아버지와 어머니는 법원을 찾았다. 법원행정처 공무원은 아드님이 행불돼버렸으니 보상금 받으면 부자 되겠소,
하고 말했다. 그날 이후 시름시름 앓던 어머니는 한 달도 채못 되어 세상을 떠났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던 아버지는 이듬해 겨울 어머니의 뒤를 따랐다. 아버지 시신은 공장 숙직실에서 발견되었다. 소주병들이 뒹구는 방 안에서 앉은 채로 죽어 있었다. - P137

오랜 세월 동안 오빠가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희망은 오빠를 대신하는 생명체였다. 그녀가 세상의 끔찍함을견딘 것은 희망이라는 생명체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빠의 운동화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다. 생명체의 표징이었다.
그것은 버릴 수 없는 물건이었다. 그럼에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빠를 보내야 했다. 언젠가부터 오빠를 가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에게 갇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생각은 종우가 커갈수록 짙어졌다. 그녀가 오빠운동화를 새로 산 것은 종우를 통해 오빠를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빠의 오래된 운동화는 너무 낡아 신을 수 없었다.
종우 운동화 치수가 오빠 운동화 치수와 같아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작별을 연습했다. 그전처럼 두렵지 않았다.
오빠가 떠난 가슴속 빈방을 종우가 채워주리라 믿었다. 수학여행 가는 날 아침, 종우가 오빠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설 때기쁘면서도 슬펐다. - P139

종우야 가거라.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 엄마도 잊어라. 엄마를 잊지 않으면 죄 많은 땅도 잊지 못할 테니. 시신으로도 돌아오지 마라. 시신으로 돌아온 아이는 시신을 통해,
시신으로도 돌아오지 않는 아이는 시신의 없음을 통해 죄 많은 땅을 비출 테니까. 네가 머나먼 여행을 하는 동안 엄마는죄 많은 땅을, 너를 사라지게 한 죄의 진창 속을 무릎으로 기어가면서 너를 그리워할 것이다. 그리움의 힘으로 너의 없음을 땅과 하늘 사이에서 쉼 없이 외칠 것이다.
그녀는 등대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 P140

등불


그가 여객선 사고 소식을 처음 들은 것은 문경새재에서였다. 부산항에서 안산 시화공단으로 화물을 싣고 가던 도중이었다. 휴게소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을 때 가까운 식탁에서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이 들려왔다. 5백 명에 가까운 승객들이 탄 여객선이 침몰되었는데 구조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승객 가운데 수학여행 가던 학생이 3백 명이 넘는다고 했다. 그는 빠르게 잊었다. 그에게 세상일은 어디론가끊임없이 흘러가는 흐린 영상 같은 것이었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 P143

뜻밖에도 식당 문이 잠겨 있었다. 창 안을 들여다보니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휴대폰으로 식당 전화번호를 눌렀으나 받지 않았다. 그녀의 휴대폰 번호를 알아두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옆집 세탁소 노인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관두었다. 노인이어떻게 생각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세탁소 노인은 그녀를 모슬포댁이라고 불렀다. 그녀 고향이 제주 모슬포였다. 언젠가모슬포댁이 보기 드물게 착한 여자라고 그에게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못 들은 척했다. 노인이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으나 알 수 없었다. - P145

식당 문은 그전처럼 잠겨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녀가 식당을 일주일씩이나 비워둘 리 없다는 생각이들었다. 머릿속에서 희뿌연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주 낯설지가 않았다. 가슴이 조이는 듯한 불안이 일면서 발밑이 허전해졌다. 두 발을 딛고 있는 데가 땅이 아닌 듯 몸이 흐느적거렸다. 무릎 아래가 사라진 것같은 느낌이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발밑을 살피면서 식당 앞 계단에 겨우 앉았다. 그런 증상이 처음 나타난것은 시커멓게 불에 탄 채 반쯤 무너진 건물을 보고 있을 때였다. 어린이 캠프에 참가한 딸의 숙소였다.
그는 딸이 죽었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받아들이지 못했다.
겨우 여섯 살이었다. 여섯 살 아이가 그렇게 죽을 수 있다는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소풍을 간다고 했다. 하룻밤만 자고온다고 했다.  - P147

"그런데 왜 그 사람 이름이 없다고 해요?"
그의 물음에 노인은 한숨을 쉬었다.
"회사 직원 말로는 유료 승객이 아닌 승선자의 신원은 확인이 안 될 수 있다는 거야. 어떻게 무료로 탈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승무원이나 선사 관계자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더러그렇게 탄다고 하더군. 선박 회사 사람들이 모슬포댁 식당에종종 오곤 했어. 더 알아볼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진도로가보라고 해. 거기에 가면 그들이 모르는 정보를 들을 수 있올지 모른다면서…….."
노인의 주름진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 P151

아내는 숨을 쉴 수 없다면서 가슴을 자주 쥐어뜯었다. 자신에게서 역겨운 냄새가 난다고 했다. 기분이 조금이라도 좋아지면 죄스럽다고 했다. 딸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귓전을 늘 맴돌던 딸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딸이뜨거운 석탄 위에 서 있는 꿈을 자주 꾼다고 울며 말했다. 어느 날은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말했다. 처음에는 믿기가 힘들었다. 멀쩡한 눈이 안 보일까닭이 없었다. 의사는 전환장애라고 했다. 마음의 깊은 상처가 신체 이상으로 나타나는 병으로, 사람에 따라 증세가 다양하다고 했다. - P152

한 모습이었다. 아내는 유서에서 그를 혼자 두고 떠난 자신을부디 용서해달라고 하면서, 떠나는 것을 허락해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다른 말은 없었다.
아내를 화장한 후 딸의 곁에 두었다. 이제 딸이 외롭지 않을 것이란 생각과 함께 딸과 아내를 제대로 기억해줄 사람은자신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웠다. 그가 짊어져야 할죽음의 무게를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P155

그녀는 그에게 죽은 자가 아니었다. 사라졌을 뿐이었다. 산자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삶과 죽음 사이를, 그 자욱한안개 속을 떠도는 존재였다. 그의 의식도 그녀를 따라 삶과죽음 사이를 떠돌았다. 그에게는 낯선 떠돌이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그렇게 떠돌았다. 트럭 안이 관처럼 느껴져도 조금도이상하지 않았다. 가속 페달을 밟고 있을 때는 백합 향기가 콧속으로 스며들곤 했다. - P165

 세탁소 노인을 만난 이후 잠자리에 들면 똑바로 누워
‘눈을 감고 양팔을 가슴에 얹은 자세를 자주 취했다. 죽은 사람의 자세였다. 외로움을 견디는 좋은 방법이었다. 그녀가 제주도에서 돌아오면 칼을 맡기려 했다. 죽음을 그녀에게 맡기고 싶었다.
달빛이 한층 밝아졌다. 달 주위에 얇게 끼어 있던 구름이걷히고 있었다. 트럭에 올랐다. 시계를 보았다. 4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진도에 도착하면 아침이 될 것이다. 그 시각에 꽃을 살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백합 다발을 가득 안고항구로 가고 싶었다. 시동을 걸었다. 길이 떠올랐다. 처음 가는 길이었다. 그녀를 만난 것은 길에서였다. 처음 가는 길에서 누구를 만나게 될지 가슴이 설렜다. 길 너머에서 누군가가손을 흔들고 있었다. 손은 빛처럼 희었다. - P169

카일라스를 찾아서 


정신이 혼미했다. 머릿속에 축축한 안개가 가득 차 있는 것같았다. 땅의 감촉도 느껴지지 않았다. 공중에 뜬 상태로 걷는 듯했다. 귓속에서는 종류가 다른 소리들이 뒤섞인 채 쉼없이 윙윙거렸다. 바람 소리, 물 흐르는 소리, 얼음이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의 목소리까지 들렸다.
고산병 증세가 나타난 것은 티베트 고원지대로 들어서면서였다. 해발 4천 미터가 넘는다고 했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물속에 있는 것처럼 숨이 찼고, 머리가 아팠다. 조금만 걸어도 몸이 축축 처졌다. 라사에서 카일라스 가는 길은 멀고험했다.  - P173

밤에는 꿈을 많이 꾸었다. 아내가 자주 나타났다. 아내는혼자 나타나지 않았다. 현수와 함께 왔다. 현수의 얼굴은 윤곽이 흐려 잘 보이지 않았다. 현수가 탄 승용차가 새벽 고속도로에서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뒤 전복했다. 운전자의 부상은 가벼웠지만 조수석에 앉아 있던 현수는 병원 응급실에실려 온 지 얼마 안 돼 숨졌다. 겨우 열일곱 살이었다.
머릿속 안개가 걷히기 시작한 것은 언덕으로 올라가고 있을 때였다. 바위투성이 언덕에는 수많은 룽다와 타르초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티베트인에게 경전의 언어는 진리의표상이다. 그 표상을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 삶의 공간에 배치해놓았다. 룽다가경전의 언어가 새겨진 천을 깃대에 꽂은 한 폭의 깃발이라면,
타르초는 경전의 언어가 새겨진 오색 천들을 기다란 끈에 연결해놓은 천 다발이다. - P174

골짜기가 황량함에도 풍경은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풍경 속에는 이마를 차갑게 하면서 정신을 두드리는 무언가가있었다. 길이 꺾이는 곳에 돌탑이 보였다. 순례자들이 쌓은탑이었다. 돌 하나를 놓으며 무언가를 빌거나 누군가를 생각했을 것이다.
현수의 죽음 이후 살아 있는 이들은 그립지 않았다. 눈에보이는 것들, 살아 움직이는 것들이 그림자처럼 느껴졌다. 삶이 슬프고 무서웠다. 슬프고 무서운 삶을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삶은 버리고 싶다고 버려지는 것이 아니었다. 삶을 버리려면 먼저 삶이 내 몸에 새긴 기억들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했다. 현수와 함께한 기억들이, 아내와의 추억들이 버려진다고생각하면 죽음보다 더 슬프고 무서웠다. - P189

"언젠가부터 저는 히말라야의 풍경에서 시선을 느꼈습니다. 저만이 풍경을 보는 게 아니었습니다. 놀랍게도 풍경도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저의 시선과 풍경의 시선이 마주치는순간 신성한 존재의 숨결을 느꼈습니다. 어머니의 신성이었습니다. 풍경의 내면에서 흘러나온 어머니의 신성한 숨결이제 몸속으로 흘러들어 와 물결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라는존재의 생물학적 몸에 갇혀 있던 저의 자아가 해방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저를 감싼 희열은 자유가 불러일으킨 희열이었습니다. 그 희열 속에서 저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사르나트의 무너진 탑 앞에서 오체투지하고 있었던 여인이 저의어머니였음을." - P201

"사랑을 한다는 것은 고통과 마주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기훈은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 고통과 마주했습니다. 기훈에게는 혹독한 고통입니다. 그 고통을 저는 옆에서 느끼고 있습니다. 티베트 속담에 부정한 카르마를 쓸어내는 빗자루가 고통이라고 했습니다. 영혼을 정화하는 고통의힘을 표현하는 말이지요. 기훈은 아드님에게서 영혼을 정화하는 마르지 않는 우물을 얻은 것입니다. 우물의 원천은 아드님의 희생입니다. 사고 당시 상황이 불러일으킨 어떤 물리학적 법칙의 결과로 기훈이는 살았고, 아드님은 숨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우연 혹은 운으로 치부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것은 현상의 거죽일 뿐입니다. 영혼의 생명 활동은 거죽에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저는 기훈의 고통을 통해 아드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아드님은......"
그는 눈을 내리깔았다.
"사무치게 아름답고 거룩한 존재입니다.그존재앞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기도뿐입니다. 저는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더 깊은 기도를 드릴 수 있을까. 하고."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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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의 최애 소설가, 정찬을 드디어 만난다.


양의 냄새 


그를 만난 것은 라스베이거스의 한 카지노에 머문 지 한 달이 되어가고 있을 때였다. 2008년 1월 20일 저녁이었다. 룰렛테이블을 지나가다 우연히 그를 보았다. 테가 굵고 검은 안경을 쓴 그는 룰렛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이를 헤아리기가 쉽지않았다. 청년처럼 보이기도 했고, 노인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가 그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얼굴 표정 때문이었다.
도박은 사람의 본성을 대단히 효율적으로 자극하는 정교한놀이로,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쾌락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지각을 해체시킬 정도로 강렬하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서는 쾌락이 보이지 않았다. 쾌락 대신 슬픔이 얼굴에 비쳤다. - P9

사람은 동물 가운데 표정을 가장 풍부하게 짓는 존재다. 한사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은 만 개가 넘는다. 하지만 문명의발전으로 표정에 제한이 가해지면서 지속적으로 위축되어가다가 어느 시점부터 사람의 얼굴이 가면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가면의 얼굴은 마음을 숨길 뿐 아니라 필요에 따라 마 - P11

음의 상태와 다른 표정을 짓는다. 그런 가면이 하나만 있는게 아니다. 가면 뒤에 다른 가면이 있으며, 그 가면 뒤에 또다른 가면이 있다. 경쟁이 치열한 사회일수록 더 많은 가면을요구한다.
카지노는 가면을 벗기는 공간이다. 일상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카지노는 놀이의 세계이다. 놀이 세계에서 가면은 거추장스러운 장식물일 뿐이다. 사람의 민얼굴을 볼 수 있는 희귀한 공간이 카지노인 것이다. 카지노가 얼굴 연구자에게 대단히 의미 있는 공간인 까닭은 여기에 있다. 카지노는 ‘얼굴연구학회‘의 요청을 받아들여 내게 객실과 함께 CCTV실 출입증을 제공했다. - P12

히스 레저가 뉴욕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된 것은 그날로부터 이틀 후인 1월 22일 오후 3시 30분경이었다. 뉴스로 그 사실을 알았다. 뉴욕 경찰청은 히스레저의 집에서 여섯 가지약물을 발견했다면서, 마약 같은 불법적인 약은 아니었다고발표했다. 2월 초순에는 뉴욕 병원이 검시 결과 약물 과량으로 인한 사고사라고 발표했다. 그의 나이 스물여덟이었다. 너무나 이른 나이였다. 하지만 나의 눈에 비친 그는 스물여덟살 청년이 아니었다. 그의 얼굴은 수많은 생의 곁에 싸여 백년을 넘게 산 늙은이처럼 보였다. 죽음이 어쩌면 그에게 축복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 P36

새의 시선 


박민우가 손목 관절 통증으로 병원을 찾은 것은 2010년12월 중순이었다. 손목이 부어 있었지만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다. 당시 그는 서른일곱 살의 건강한 남자였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증상이 심해졌고 언제부턴가 목과 다리에도 통증이 일어난다고 호소하더니 급기야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정도로 근육 마비 증상이 광범위하게 나타나 한 달 후에는 입원하기에 이르렀다. 정형외과 과장이 나를 찾은 것은 박민우의 상태가 병리학적으로 납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장은심리적 충격과 고통, 욕구 등이 신체의 이상 증세로 발현하는전환장애가 아닌가 의심된다고 자신의 견해를 조심스레 밝혔다. - P39

그는 나의 생각을 정확히 짚었다. 카메라를 쥐는 행위, 셔터를 누르는 행위는 손의 동작이다. 사진 예술의 기본 행위가손의 동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손목 관절 통증은 기본 행위를 못 하게 함으로써 그를 카메라에서 해방시킨다. 하지만완전한 해방이 아니다. 손목 관절 통증 속에서도 카메라를 쥘수 있고, 셔터를 누를 수 있다. 그러나 근육 마비는 다르다.
찍는 행위를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와의 첫 대화에서 사진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카메라의 무거움은은유적 표현이었다. 그럼에도 내 생각이 틀릴 수 있음을 염두에 두었다. 전환장애의 요인들이 너무나 다양한 데다, 사진에대한 나의 편애가 생각을 그쪽으로 몰고 간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 P43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기억이 영화의 주인공이니까요."
"선생님에게 기억이란 무엇이죠?"
"어떤 정신분석가가 말하길, 우리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것은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진실을 덮어버리는 일에 뛰어난 전문가라는 말이 생겨났지요. 진실을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바꾸어도 되지요. 저 영화가 관객에게 괴로움을 불러일으켰다면 인간의 그런 속성을 거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선생님도 괴로움을 느꼈습니까?" - P48

잠시 후 그가 스르르 일어나더니 침대에서 내려와 가만히 섰다. 불안정한 자세이긴 했지만근육 마비 환자가 섰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내가모르는 어떤 존재를 애원하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했다. 나무처럼 꼼짝 않고 서 있는데도 그의 몸이 수많은 움직임으로 들끓고 있는 듯했다. 몸 안에서 들끓고 있는움직임이 금방이라도 몸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가 말을 시작한 것은 애원하는 듯한 표정이 슬픔으로 변하면서였다. 괴로움에 싸인, 가슴을 저리게 하는 슬픔이었다. - P51

인터뷰어의 거듭되는 질문에도 그는 끝까지 침묵했다. 그의 얼굴을 응시하던 카메라는 침묵을 견딜 수 없었는지 시선을 그의 뒷모습, 열린 대문과 그 너머의 풍경으로 이동했다. 불길에 사라진 자식을 기억해야 하는 그에게 침묵은 기억의 고통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였을 것이다. 김세진은5월 3일, 이재호는 5월 26일 숨을 거두었다. 그들이 마지막 숨을 쉬고 있을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 길이 없다. - P56

공허해 보이던 그의 눈이 고흐를 말할 때 잠시 빛났다.
"고흐가 동료 화가인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이 최근에 그린 풍경화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고흐는 그 풍경화를 언덕 위에서 새의 시선으로 내려다본 풍경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고흐가 단순히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았기 때문에 새의 시선이라는 말을 사용했을까요?  - P59

새의 감각을 갖는다는것은 새의 영혼을 갖는다는 뜻입니다. 저는 고흐의 그 풍경화를 들여다보면서 새의 감각을 생각했습니다. 사람의 감각은어머니 몸속에서 형성됩니다. 양수의 아늑한 촉감 속에서, 어머니의 움직임이 빚는 율동에 싸여 먼 우주 공간에서 들려오는 듯한 어머니 몸의 소리를 듣습니다. 이 순수한 감각을 깊이꿈꾸면 새의 감각에 닿을 수 있으리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 P60

내렸다. 살을 에는 추위였다. 박민우는 완전한 움직임이 주는 기쁨에 취해 추위를 잊고 있었을까. 아니면 누런 피부 밑에 숨겼던 두려움에 싸여 오들오들 떨고 있었을까. 불현듯 나자신이 낯설어졌다. 내가 누구인지, 혹은 무엇인지, 나라는존재가 세상과 우주 공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나를 낯설게바라보는 지금의 나는 낯선 대상이 되어버린 그전의 나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강렬한 의문에 사로잡혔다. 검은 물처럼일렁이는 의문 속에서 나는 내가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음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새의 시선이었다. - P78

사라지는 것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있을 때 나는 지리산을 종주하고 있었다. 그날 아침 5시 30분 장터목대피소를 나와 천왕봉을 향해 걸었다. 종주 마지막 날이었다.
3월 하순 모 문학관에서 전화가 왔다. 4월 18일 작고 문인추모 행사에 소설가 박영도를 선정했다면서, 그와의 추억을이야기해달라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선배이면서 문학 선배이기도 한 그와는 여섯 살 차이지만 안산 예술인아파트에서 이웃으로 6년 가까이 살면서 추억이 많았다.
문학관 관계자와 통화하면서 박 선배가 세상을 떠난 지어느덧 8년이 흘렀음을 알게 되었다. 내 나이가 그의 마지막 나이보다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 P81

세월호 침몰 소식을 처음 들은 것은 천왕봉을 내려와 치밭목 대피소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10시 조금 못 되어서였다.
라디오를 듣고 있던 어떤 등산객이 알려주었다. 제주도 수학여행 가는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그 여객선에 타고 있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예술인아파트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학교였다. 단원은 조선 시대의 뛰어난 화가 김홍도의 호인데, 안산과 연고가 있는 그를 기려 안산시 단원미술관을 만들었고, 단원미술제를 개최하고 있다. - P82

형조는 몽롱한 눈빛으로 갯벌을 보며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그때가 1986년 가을이었으니 내가 살아온 생의 반 가까이흘러간 것이었다. 그사이 많은 일이 일어났는데, 그중의 하나가사리포구의 사라짐이었다.
사리포구가 사라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호수가 사라진 것은 본 적이 있다. 예술인아파트 뒤쪽 들판에 작은 호수가 있었다. 그곳을 자주 찾은 것은 황량한 들판 가운데 있는 물의풍경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낯섦이었다.  - P86

"고흐는 보이는 것 너머를 보려고 했어. 일상의 시선으로는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했던 거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 돼? 보이는 것을 뚫어야 하겠지. 보려고 하는것을 막고 있으니까. 사물과 풍경, 인간과 역사를 뚫는다는것이 나에겐 아득해."
그의 눈빛도 아득해지고 있었다.
"고흐가 자살한 것은 필연이었을까?"
"고흐는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막대기와 이젤과 캔버스와그 밖의 다른 그림 도구들을 잔뜩 짊어진 초라하고 더러운 모습이 자신이라고 했어. 그 초라하고 더러운 모습의 사내는 어떤 목적지를 향해 쉼 없이 가고 있었지. 그러다가 불현듯 깨닫곤 했어. 목적지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렇다면 걸음을 멈추어야겠지. 하지만 사내는 멈출 수 없었어.
머물 곳이 없었으니......" - P90

형조가 새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숨을 거두기 35일 전이었다. 그때까지 그는 자기파괴적으로 술을 마셨다. 식사는 거의 하지 않았다. 차명아가 못 마시게 하면 나가서 마셨다. 병원에는 가지 않았다. 차명아의 말로는 죽음을 향해 질주하는사람처럼 보였다고 했다. 그런 그가 돌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술도 멀리했다. 무엇이 그를 변화시켰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다행스럽다는 생각과 함께 불길한 예감도들었다. 죽음에 대한 준비가 아닌가 하는 당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 P106

나는 그녀가 잘 견디고 있느냐고 물었다.
딸이 살아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으려 한다면서 김윤희는 눈물을 글썽였다. 아득했다. 삶과 죽음 사이에 어떤 깊이의 허 - P106

공이 가로놓여 있는지, 알고 싶었다. 차명아가 앞으로 겪어야할 고통 앞에 무릎을 꿇고 싶었다. - P107

식사를 마치고 별실에서 나왔을 때 식당 홀 벽에 걸린 텔레비전 화면에 "여객선 침몰 특보, 세월호 선체 완전 침수"라는자막이 보였다. 화면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일행을 따라 식당을 나왔다. 박 선배 부인은 아들 차로 귀가한다고 했다. 그들과 헤어져 어두운 거리를 터벅터벅 걸었다. 형조의 얼굴이 떠올랐다. 수줍은 듯 해맑은 미소가 입가에 어려 있었다. 그가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다행스럽게 생각되었다.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늘이 흐린 것인지, 내 눈이 흐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사리포구 언덕에서 형조와 함께 보았던 별들이 아른거리면서 형조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는 나무처럼 서서 별자리를 찾고 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의 곁으로 가고 싶었다.
그의 곁에서 그와 함께 날개를 활짝 펼쳐 별을 향해 날아가고있는 한 마리 새를 찾고 싶었다.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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