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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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9 인민

  이는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 전까지 나는 빛이 사람의 목소리보다 더 멀리 전달된다고, 또 사람의 목소리는 사람의 몸보다 에너지를 더 멀리 전달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스물아홉 살이던 그 밤에 나는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민이 단결할 때 그들의 목소리는 빛보다 더 멀리 전달되고 그들 몸의 에너지가 그들의 목소리 보다 더 멀리 전달되는 것이다. 마침내 나는 ‘인민’ 이라는 단어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p69 영수

  영수가 서거했다는 소식에 우리는 미친 듯이 눈물을 쏟았다. 천여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쏟아내는 울음소리 속에서 나도 울고 있었다.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숨이 끊어질 듯 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곧 숨이 막혀 죽을 것처럼 심하게 기침을 하면서 우는 소리도 들렸다. 문득 나의 사유가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더 이상 비통함이 나를 어쩌지는 못했다. 이상한 울음소리가 나를 이끌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들이 소리 내어 울고 있을 때, 내가 느꼈던 것은 틀림없는 슬픔이었다. 하지만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대한 공간에서 한꺼번에 울부짖을 때, 내가 느낀 것은 유머였다. 나는 이처럼 풍부하고 다채로운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전 세계 모든 품종의 동물들이 자신들의 대표를 보내 경연을 벌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p104 독서

  나는 매번 위대한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 작품을 따라 어디론가 갔다. 겁 많은 아이처럼 조심스럽게 그 작품의 옷깃을 붙잡고 그 발걸음을 흉내 내면서 시간의 긴 강물 속을 천천히 걸어갔다. 아주 따스하고 만감이 교차하는 여정이었다. 위대한 작품들은 나를 어느 정도 이끌어준 다음, 나로 하여금 혼자 걸어가게 했다. 제자리로 돌아오고 나서야 나는 그 작품들이 이미 영원히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108

  여러 해가 지난 어느 날, 나는 우연히 “죽음은 서늘한 밤이다”라는 하이네의 시구를 읽게 되었다. 그러자 오래전에 사라진 유년의 기억이 내 전율하는 마음속에서 순간적으로 되살아났다. 방금 목욕을 한 것처럼 맑고 뚜렷했다. 그리고 다시는 이 기억이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만일 문학에 신비한 힘이 존재한다면 나는 아마도 이런 것이 그 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독자로 하여금 다른 시대, 다른 나라, 다른 민족, 다른 언어, 다른 문화에 속한 작가의 작품 속에서 자신의 느낌을 읽을 수 있게 하는 힘 말이다. 하이네가 쓴 시가 바로 내가 유년 시절 영안실에서 낮잠을 잘 때의 느낌이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말했다.

  “이것이 바로 문학이다.”

 

 

 

 

p137 글쓰기

  여러 해가 지나 중국의 비평가들은 나의 언어 서술이 매우 간결하다고 칭찬하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농담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건 내가 아는 한자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나의 작품이 영어로 번역, 출판되자 미국의 한 문학교수는 영어로 번역된 나의 언어가 마치 헤밍웨이의 언어 같다고 말했다. 나는 내 농담을 미국으로 수출하여 이 교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헤밍웨이도 아는 단어가 그리 많지 않았나보군요.”

  농담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일리 있는 말이었다. 인생은 종종 이렇다. 때로는 단점에서 출발한 것이 갈수록 장점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장점에서 출발한 것이 갈수록 단점이 되기도 한다. 마오쩌둥의 말을 빌리자면 “좋은 일이 변해 나쁜 일이 되고‘ 나쁜 일이 변해 좋은 일이 된다.”라고 할 수 있다.

  ...........

  “어떻게 해서 유명한 작가가 될 수 있었나요?”

  나의 대답은 하나이다. 바로 ‘글쓰기’ 덕분이었다. 글쓰기는 경험과 같다. 마찬가지로 직접 써보지 않으면 자신이 무엇을 쓸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p147

  지금의 나는 이미 27년이라는 글쓰기 경력을 갖고 있고 이제는 ‘나는 글쓰기를 사랑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 누구나 일생을 통틀어 표현 하고 싶은 무수한 욕망과 감정을 품게 된다. 하지만 실제 현실과 개인의 이성과 지혜가 이를 억누르고 만다. 하지만 글쓰기의 세계에서는 이렇게 억압된 욕망과 감정을 충분히 표출할 수 있다. 나는 글쓰기가 사람의 심신 건강에 큰 도움이 되고 인생을 더욱더 완전하게 만들어 준다고 믿는다. 또는 글쓰기가 사람들에게 두 갈래 인생의 길을 갈 수 있게 해준다고 할 수도 있다. 하나는 현실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허구의 길이다. 이 두 가지 길은 건강과 질병의 관계와 같아서 하나가 강대해지면 다른 하나가 필연적으로 쇠약해진다. 내 현실에서의 삶의 길이 갈수록 평범해지는 것은 허구에서의 내 삶의 길이 갈수록 풍부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p148

  지나치게 많은 답변은 답변하지 않은 것과 같다는 사실을 그간의 경험이 내게 말해 주었다. 진정한 답은 하나 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그 가운데 하나만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이 진정한 대답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제 나는 또다시 얘기를 하고자 한다. 이것이 나의 강점이다. 아주 오랫동안 나는 한 가지 생각을 고집스럽게 믿어왔다. 한 사람이 성장해 온 과정이 그의 일생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가장 기본적인 그림이 바로 이때 그의 가슴 깊은 곳에 새겨져 마치 복사기처럼 한 장 또 한 장 개인의 성장에 계속 복사되는 것이다. 그가 자라 성인이 된 뒤 성공한 사람이 되었건 실패한 사람이 되었건, 위대한 사람이 되었건 평범한 사람이 되었건, 그가 행하는 모든 것들은 이 가장 기본적인 그림을 부분적으로 수정한 데 지나지 않는다. 당연히 그림 전체는 변하지 않는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이 그림을 많이 바꾸고 어떤 사람들은 조금 밖에 바꾸지 못한다.

 

 

 

 

p202 차이

  사회형태의 각도에서 볼 때, 문화대혁명 시기는 아주 단순한 시대였던 데 비해 오늘날은 대단히 혼란스럽고 복잡한 시대이다. 마오쩌둥이 말한 “우리는 적이 반대하는 것을 옹호해야 하고 적이 옹호하는 것을 반대해야 한다.”라는 한마디로 문화대혁명 시대의 기본적인 특징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대혁명 시기는 이처럼 흑백이 분명한 시대였다. 적은 영원히 착오를 범하고 우리는 영원히 정확하다는 것이 그 시대의 인식이었다. 그 누구도 감히 적이 정확할 때가 있고 우리도 틀릴 때가 있지 않을까 하고 물을 수 없었다. 마오쩌둥 이후에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잡는 고양이가 훌륭한 고양이다.”라고 한 덩샤오핑의 말이 오늘날 변화한 시대의 기본적 특징을 잘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덩샤오핑의 이 한마디는 마오쩌둥의 사회 가치관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중국 사회에 아주 오랫동안 존재해온 사실, 즉 잘못된 것과 정확한 것은 항상 같은 사물 안에 존재하며 서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동시에 이 한마디는 중국의 경제발전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논쟁을 종식시켜주기도 했다. 이리하여 중국은 정치가 모든 것을 주도하는 마오쩌둥의 흑백시대에서 덩샤오핑의 경제지상주의 컬러 시대로 접어들었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우리는 항상 “사회주의의 풀을 뜯어 먹을지언정 자본주의의 싹은 먹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오늘날의 중국에서 우리는 이미 어떤 것이 사회주의이고 어떤 것이 자본주의인지 분명하게 구분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의 중국에서는 풀과 싹 둘 다 똑같은 식물일 뿐이다.

  때로는 하나의 단어가 갖고 있는 함의가 단순한 상태에서 복잡한 상태로 변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사회 변화는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차이’가 바로 그런 단어다.

 

 

 

 

p353 후기

  이런 느낌은 내 뼛속 깊이 새겨졌고, 그 뒤로 내 글쓰기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었을 때, 나는 진정으로 인생이 무엇인지, 글쓰기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세상에 고통만큼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쉽게 소통하도록 해주는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통이 소통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사람들이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서 뻗어 나오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나는 중국의 고통을 쓰는 동시에 나 자신의 고통을 함께 썼다. 중국의 고통은 나 개인의 고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위화, 그의 작품은 ‘허삼관 매혈기’만 읽어보았다. 그 책은 소재의 강렬함은 두고라도 읽는 동안 몰입했고, 아주 오래전임에도 가끔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형제’는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미뤄둔 소설인데 엉뚱하게도 산문집을 택하게 된 것이다. 우선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는 제목에 끌렸고 (편집자는 성공했다.) 중국이라는 다 알 것 같기도, 전혀 모를 것 같기도 한 나라의 잘나가는 동시대의 작가가 쓰는 현대 중국의 모습이 궁금했고 노란색 표지가 이 산문집을 선뜻 고르게 했다. (나는 왜 노란색이면 홀려들 듯이 혹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책 읽기를 마친 지금, 최근 다시 읽은 루쉰의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와 김산. 님웨일즈의 ‘아리랑’과 함께 읽으면서 비슷한 시절의 중국, 조선, 일본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 시절뿐 아니라 21세기의 중국을, 젊은 중국을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가 ‘독서’에서 쓴 그대로 그는 책을 읽는 동안은 물론이고 읽고 난 여운이 남은 지금도 나를 중국으로 이끌고 갔던 것이다. ‘문화 대혁명’의 격변을 딛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근세를 살아가는 모습은 그곳이나 우리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삶은 민족이나 국가의 다름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한 사람이 성장해온 과정이 그의 일생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제는 같이 일하는 조선족들에게서 보는 뜨악하게 만드는 행동들을 약간은 이해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시절을 살아남은 이들의 처세술이 아닐까? 특히 위화조차 짐작하지 못한 소수민족으로 살아남기 위한.

  나의 주관만으로 누군가를 판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생각한다. 소통되지 않는 편협한 판단으로 누구를 평가하는 일이 마오의 사상과 다를 게 없다는 섬뜩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내게 책을 읽는 것은 생각의 확장이고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가깝게 만나는 일이다.

 

  열 개의 단어는 인민人民, 영수領袖, 독서閱讀, 글쓰기寪作, 루쉰魯迅, 차이差異, 혁명革命, 풀뿌리草根, 산채山寨, 홀유忽悠다.

  열 개의 단어로 현재의 중국을 다 알 수는 없을 테지만 특별하지는 않아도 이런 시도는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타고난 이야기꾼이 풀어나가는 글이었기에 가능했을 음험하고, 동굴 속 같이 큼큼해서 도저히 다가서지지 않던 중국이라는 나라를, 아니, 중국 사람들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위화는 탁월했다.

  이런 시대적인 내용은 아니지만 김수영도 그런 글을 썼는데. 아름다운 우리 말 열 개던가, 그랬던 거 같다. 열 개의 단어, 그가 얘기한대로 직접 써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니 문득 써보고 싶어진다. 나한테는 어떤 열 개의 단어가 생겨 나올까? 궁금해지기도 하고.

  오래 읽힌 (진도가 안 나가는) 무거운 주제들이 나중엔 쉬워졌다. 그 변화의 계기가 무엇이었나? ‘아리랑’의 영향이었다.

 

  제주에서도 남이섬에서도 화성에서도 나는 언제부터인지 어린아이부터 노인들에 이르는 전방위 계층의 중국 사람들의 소란 속에 묻혀있어야 했다. 그들 사이에 서서 무섭게 몰려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시끄러워서만은 아닌 당당한 저들의 행보에서, 일방적인 방공식별구역 선포를 하는 중국 정부의 모습이 보이는 듯도 해서다. 그들을 알고 그들을 읽어야겠다. 이제 그 첫걸음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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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대화
정지아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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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작가의 책들을 좋아한다. 소설집 [봄빛]에서 시작된 끌림이 [행복], [빨치산의 딸1~3],에 이어 [숲의 대화]까지 오는 동안 여여하다. 작가의 철학이, 삶이, 세계관이 시종일관 감동시키고 소소한 일상들이 공감의 세계로 이끈다. 우리 시대의 주인공들은 그런 서민적인 풍경 속에 존재하리란 기대감이 그녀를 주목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잔잔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그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면서 많은 독자들이 [숲의 대화]를 읽어 줬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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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땅에 펀드 - 땅, 농부, 이야기에 투자하는 발칙한 펀드
권산 지음 / 반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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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번이 투자에 실패했다.

  지난해에도 은행원의 권유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결국은 터무니없을 만큼 낮은 이자율에 혹시나 하고 선택했다가 역시나 실패했다.

  아무 생각 없이 길게 묻어두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당연하다는 듯 쓸 곳은 생겼고 처분하자니 어김없이 마이너스였다. 그래도 해지 할 밖에...

  다시는, 다시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펀드따위는 내 사전에 없다고 작심했다. 

  그런데 [맨땅에 펀드]란다.

  '쳇~! 뭔 놈의 펀드를 땅에다가... 쳇, 쳇, 쳇~' 했다.

  또 다시 실패할 게 뻔한 투자 위험 등급 1등급, 이라는 문구 때문에 투자를 안 한 것은 아니다. 단언컨대! 가뭄에 콩 나듯 밥을 해먹는 내가 배당 되는 농산물을 소화할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책이란다.

  책이라면, 그의 책은 손해 보아도 좋은 확실한 투자 이유를 가졌다.

  무조건 담백하고 정갈한 맛의 글을 좋아한다.

  오래 지리산닷껌에서 만난 그의 글은 그렇다. 그래서 질렀다.

  '고뤠! 나도 뭐 그쯤은 치사빤쑤~ 과감하게 [맨땅에 펀드]랑께라우.'

  농사짓지 않고 시골에서 사는 권산의 좌충우돌 구례 생활의 두 번째 이야기이고-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사는 법]- 생산자와 소비자를 잇는 땅의 이야기이다.

  더 이상 무슨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가 있겠나 싶은데, 좀 보탠다.

  작가의 바람대로 이 책이 좀 많이 팔렸으면 싶어서다. 

  거기에 출현한 어르신들의 삶이 공감 백배다.

  호랭이도 안 물어갈 수석 펀드매니저 대평댁을 비롯하여  펀드매니저인 지정댁, 대구댁, 갑동댁, 왕샌등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동 오미마을 사람들의 실감나는 현실의 중계 방송이 그렇고 이제는 유명인이 되어버린 듯한 농부 홍순영 형님과 그의 가족들, 오미동의 중심 운조루와 허당 농부 윤정수씨, 손이 먼저 떠오르는 구례 감의 대표주자 김종옥형님, 언제나 부지런하고 야무진 '산에사네' 농장과 카페를 운영하는 지리산 노을언니, 귀촌하여 고생이 이만저만아닌 가운데 인기도가 급 상승중인 '나는 설비다'의 무얼까와 일탈 부부, 아쉽게 떠나버린 박과장과 윤하, 그리고 이 말도 안 되는 펀드의 책임자인 어리버리한 권산의 이야기가 있다.

  그들 속에 내가 살아 있는 것 같은, 한 번도 만나지 못한 그들이 매일 보는 식구들 같은 생활이, 땀이, 웃음이, 징함이 있다.

  우리는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내 맘대로 땅으로 맺어진 식구가 되어버렸다.

  안보면 궁금하고 보고 싶고, 보면 짠해지기도 하고 장하기도 해서 징허디 징한 식구들이다.

  계속 실패한다 해도 투자할 이유가 충분한 우리 식구들이 운영하는 맨땅에 해딩하기, 아니 펀드다.

  부디 승승장구하길 바란다.

  땅을 믿는, 땅심을 믿는 이 땅의 모든 농사짓는 바보들과 농사도 모르는 바보들이여,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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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공원에서 창비시선 354
고영민 지음 / 창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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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등
               고영민

 

울고 싶을 때 울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라
어떤 미동으로 꽃은 피었느니
곡진하게
피었다 졌느니
꽃은 당신이 쥐고 있다 놓아버린 모든 것
울고 싶을 때 울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라
마음이 불러
둥근 알뿌리를 인 채
듣는
저녁 빗소리

 

 

모래
                고영민

 

봄녘,
보도블록을 새로 깐 자리에
인부들이 모래를
흩뿌려놓았다

틈을 메운다는 것은 저런 것일까

그냥 가만히
흩뿌려놓고
가는

 

 

벽돌 한장
                고영민

 

변기 물통에 벽돌 한장을 넣어두었다

네 안에도 몰래
벽돌 한장 넣어두고 싶다
내 심장 같은

물을 내리고
다시 새 물이 차오를 때
고여있던 물이 어느 저녁으로 급히 빠져나갈 때

벽돌 한장의 부피만큼
더 빨리
네 숨이 나를 향해
차오른다

 


 

시집 한 권에 8000원,

통상적인 밥 한 그릇의 가격이다.

아니, 커피 한 잔의 가격이다. 
이런 시편들을 만날 수 있는데 밥 한 그릇의 값이고

커피 한 잔의 값이라니......

어쩐지 시인들께 죄송하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한 그릇의 밥이

한 잔의 커피가 소중하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래도
시인의 심장을, 시인의 가슴을 통째로 가질 수 있는데...

시집을 사는 일은

내 속에 

벽돌 한장을 놓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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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그는 추억의 속도로 걸어갔다 - 오늘의 작가 총서 27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27
이응준 지음 / 민음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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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 어둡고 쓸쓸한 날들의 평화

  늦가을의 바람이 제법 찼고, 해뜨기 전의 구름들은 파란 잉크가 번진 솜뭉치 같았다. 비가 한 차례 내리면 곧 이어 지상엔 영하의 날씨들이 닥칠 거였다. 겨울, 만물이 어둠 속의 흐느낌처럼 가냘 퍼지는 겨울.

 

 

p25

  언뜻 그런 우스갯소리들이 엉터리인 것 같지만, 사실 전쟁터에서도 사람이 늘 찡그리고만 사는 건 아니거든, 사람들은 우울한 환경 속에서도 해학을 수신할 수 있는 안테나를 제공받게 마련이지. 생존하려고 말이야. 웃음은 폭풍이 몰아치는 인생의 강을 건너게 해주는 배와도 같아.

 

 

 

 

p47 이제 나무묘지로 간다

  고풍스런 옛 관공서 건물에는, 지난여름 약진하는 군대와도 같이 벽을 타고 기어오르던 담쟁이덩굴의 손자국들이 역력했다. 무성하고자했던 것들, 번식하고자했던 것들의 상흔. 나는 어느새 손톱이 다 부러져 나간 것을, 내 추억의 검은 피가 딱딱하게 맺혀버린 자리를 보고 있었다.

 

 

p52

  터무니없는 고요라는 것, 나는 폐 속에 갑갑하게 차있는 그 고요함으로 인해 지독한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었다.p

 

p53

  거기엔 어김없이 그 혼령의 옷자락 같은 파란 안개가 있었다. 나는 내 영혼이 색맹이기를 바랬다. 세상의 안개들은 워낙 우윳빛일 뿐, 저 안개가 자꾸 파란색으로 느껴지는 것은 내 눈이 이상해서라고 .......

  풍경은 그것을 바라보는 내 시선을 향해 날카롭고 가느다란 음각의 판화를 새기고 있었다.

  ........ 아무런 언어 없이 서로의 세계를 주고받는 모습을.

 

 

p62

  물이 끓는 난로에 올려놓은 겨울 귤껍질처럼, 서서히 내 몸에서 추억의 냄새가 우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

땅에 묻히기를 거부하는 상처받은 영혼들이 교감하는 어떤 장소에서, 나무만큼 영원한 모습으로 마주치리라는 것을.

  ....... 손끝에서 별빛 같은 아픔이 반짝였다.

  별빛 같은 아픔이.

 

 

 

 

p67 그녀에게 경배하시오

  바람이 생선처럼 식어 있다는 것을 느낀다.

 

 

 

 

p101 그는 추억의 속도로 걸어갔다

  병원이라는 곳은 환자복만 입히고서도 모든 사람들을 죽음에 가깝게 만드는 묘한 마력을 지닌 곳이었다. 생의 체념과 연민의 범벅이 표현하기 힘든 모양으로 흘러내리는 그런 곳이었다.

 

 

p109

  추억에도 속도라는 것이 있다. 나는 아주 드물게 그 속도를 감지하곤 한다. 나는 내 그림 속의 인물과 사물들이 그 추억의 속도로 움직이길 원했고, 그 그림들에서 지나간 내 모습들을 반추할 수 있기를 추구했다.

 

 

p114

  지독한 불면의 밤 홀로 천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는 그 방이 활활 타오르는 환상에 사로잡힌다. 내가 외로움이라는 도가니 속에 들어가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귓속으로 마치 수돗물이 욕조를 채우듯 올라오는 느낌, 내 삶의 대부분은 그런 쓸쓸함과의 싸움이었다고 장정이 멋진 공책에 쓰면, 그것이 바로 내 자서전이다. 삶에 관한 주의; 부작용인 것이다.

 

 

 

 

p121 레몬트리

  다만 멀리 존재함으로 환상처럼 여겨지는 것들이 있다. 별들의 세계가 그러하다. 초저녁 서쪽 하늘의 고혹스런 비너스는, 너무 아름다운 사람들이 자주 그러하듯 쉽사리 사라지고 만다. 곧이어 화성의 붉은 사막이 남서쪽 처녀자리 일등성 스피카 곁을 산책하고, 목성은 길잡이별 거문고자리 직녀의 밝기를 무시하며 제 고뇌를 빛낸다.

  ....... 만일 고통을 감당할 자격이 없다면, 불행조차도 함부로 찾아와 주질 않는 것이다. 지금 어떤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은, 결국 그가 아무것도 아님을 뜻하기에.

 

 

 

 

p153 달의 뒤편으로 가는 자전거 여행

  지나치게 소심한 배려는 가장 육중한 비판에 다름 아니라는 걸 왜 모르고 있을까, 그대는.

  내가 쓴 소설을 언제나 처음 읽던 여자. 그녀가 쓴 시를 항상 외우고 있던 나. 두 사람 모두 이젠 내게서 떠나라. 내 사랑의 추억, 기다림이 닿을 수 없는 아주 먼 곳으로, 윤회의 혹독한 끈마저 끊어지도록 매서운 속도로.

 

 

p161

  먼저 된 자가 나중이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두려운 가르침. 진리의 명제 그 역도 참일진대, 훗날 시작된 방황이 저렇듯 끝을 모르고 먼 곳으로 진행될 때, 우린 무작정 미래가 궁금해지고 만다. 종교 없이도 운명을 믿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고는 있지만, 결코 영원히 사랑한 수는 없다는 서글픈 확신.

 

 

p170

  문이 존재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삶은 깜깜한 복도 정도가 아니야. 미로조차도 아니고. 하지만 어찌 어두운 실 없이 양탄자의 아름다운 무늬를 짤 수 있겠냔 말이지. 보다 포괄적이고 따뜻한 비유를 찾아 헤매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네.

 

 

p172

  기다리는 일이 얼마나 바쁘고 정교한 노동인 줄 아나? 가구는 없고 전화만 딸랑 놓인 방에서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리다가도,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운명을 바꿔놓을 만한 소식이 끊기곤 하는 게 세월이지.

  ....... 도시에서의 마흔과 이런 시골에서의 마흔은 다르지. 여기선 세월이 은은하고 선명한 탓에, 시간은 속도가 아니라 얕고 깊음이라는 걸 금방 알게 된다네.

 

 

 

 

 

 

이응준은 처음 만나는 작가다.

오래 전에 구입했는데 선뜻 손이 가질 않았다.

 

좋다.

야~ 좋다, 하면서 읽었다.

왜 그동안 밀어두었는지......

긴 제목이 어색해서였을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거라고 읽으면서 실소를 깨물었다.

전체적으로 긴 제목이 많다.

제목을 정하는 작가의 취향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짧은 제목이 강렬한 함축의 의미를 담는다면

긴 제목은 낭만적 상상력으로 호기심을 갖게 해준다.

‘달의 뒤편으로 가는 자전거 여행’이 특히 그러했다.

이 작가는 시를 쓰고 소설을 짓고 영화를 만든다.

그래서일까?

감각적인 문장이 많고 시적 은유를 가진 행간에 자꾸 발목이 잡혔다.

 

최근에 몰입하는 작가 중

황정은의 ‘百의 그림자’,

헤르타 뮐러의 ‘저지대’에서.

긴 호흡의 문장에서도 강력하게 끌리는 시적 운율을 만난다.

책 耽(탐)이 그쪽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밑줄 긋는 횟수가 점점 늘고 있다.

가을에 읽은 책을 이제야 쓴다.

눈이 펑펑 내리고 있다.

바야흐로 12월이고 겨울이다.

어쩐지 길 것 같고 추울 것 같은 겨울

살아보자.

"겨울, 만물이 어둠 속의 흐느낌처럼 가냘 퍼지는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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