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공원에서 창비시선 354
고영민 지음 / 창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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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등
               고영민

 

울고 싶을 때 울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라
어떤 미동으로 꽃은 피었느니
곡진하게
피었다 졌느니
꽃은 당신이 쥐고 있다 놓아버린 모든 것
울고 싶을 때 울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라
마음이 불러
둥근 알뿌리를 인 채
듣는
저녁 빗소리

 

 

모래
                고영민

 

봄녘,
보도블록을 새로 깐 자리에
인부들이 모래를
흩뿌려놓았다

틈을 메운다는 것은 저런 것일까

그냥 가만히
흩뿌려놓고
가는

 

 

벽돌 한장
                고영민

 

변기 물통에 벽돌 한장을 넣어두었다

네 안에도 몰래
벽돌 한장 넣어두고 싶다
내 심장 같은

물을 내리고
다시 새 물이 차오를 때
고여있던 물이 어느 저녁으로 급히 빠져나갈 때

벽돌 한장의 부피만큼
더 빨리
네 숨이 나를 향해
차오른다

 


 

시집 한 권에 8000원,

통상적인 밥 한 그릇의 가격이다.

아니, 커피 한 잔의 가격이다. 
이런 시편들을 만날 수 있는데 밥 한 그릇의 값이고

커피 한 잔의 값이라니......

어쩐지 시인들께 죄송하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한 그릇의 밥이

한 잔의 커피가 소중하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래도
시인의 심장을, 시인의 가슴을 통째로 가질 수 있는데...

시집을 사는 일은

내 속에 

벽돌 한장을 놓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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