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부모와 사이가 좋은 자식들도 죄책감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내 아버지는 11개월의 투병 끝에 올봄에 돌아가셨는데, 작년에 아버지가 아프기 시작했을 때 나는 죄책감을 잔뜩 느꼈다. 전단 결과를 들었을 때 처음 또렷하게 떠오른 생각 중 하나는 이것이었다. 만약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내가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보여드리지 못한다면, 나는 남은 평생 죄책감을 느낄 거야.
그런 생각은 사실 도움이 되었다. 나는 아버지가 아픈 동안 함께 시간을 많이 보냈고,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확실히 느끼고 떠나셨다는 점을작은 위안으로 삼을 수 있었다. 그래도 이런 죄책감이 우리 내면에숨은 무언가를 보여주는 건 사실이다. 죄책감은 강한 힘이다. 그속에는 사랑이 있고, 의무감도 있고, 우리가 과거에 남들에게 무언가를 말하거나 보여주지 못했다는 데 대한 회한도 있다.
내가 그때 느꼈던 그 감정은 이제 과부가 된(나는 ‘싱글맘‘이라는 표현이 더 좋지만) 어머니에게로 듬뿍 옮겨갔다. 어머니는 내가아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강하고 자신을 잘 억제하고 미래지향적인 사람이지만, 그래도 나는 어머니가 혼자 집에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움찔하게 된다. 나는 어머니에게 줄기차게 전화를 건다. 줄기 - P122

차게 걱정한다. 엄마가 괜찮은가? 슬퍼하시나? 기운 내고 계신가? 그리고 어마어마하게 죄책감을 느낀다. 내가 엄마에게 좀 더 잘해드려야 하는데, 좀 더 적극적으로 생활을 개선해드려야 하는데, 정확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죄책감이 평범하고 오래된 문제일 수 있다는 사실, 우리가 죄책감과 사랑을 본능적으로 하나로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린다.
이것이 삶임을 깨닫는 데도 긴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모두 나이 들수록 삶이 더 어려워지는 게 아니라 더 쉬워진다는 신화를 믿으며 자라는데(그리고 이것은 진짜 신화일 뿐이다), 나이 드는 부모의모습만큼 그 믿음이 사실이 아님을 잘 보여주는 것은 많지 않다.
실제로는 우리가 나이 들수록 잃은 것이 많아진다. 점점 더 크고버거운 과제가 나타난다. 실수를 되돌리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부모의 죽음을 생각해보는 일이 겁나는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부모님 은혜의 시기가 끝나면, 우리의 순수의 시대 중 후반부의 한 단계도 끝난다. 그분들이 언제까지나 거기 계시진 않을 것이다. 우리 삶이 더 간단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 P123

그야 정확히 말하자면 다행스럽다기보다는 마음이 좀 가볍다는 기분, 한시름 덜었다는 기분이었다. 아버지의 병은 사람을 망가뜨렸고, 잔인했고, 지켜보기 참혹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런 병으로 죽을 때는 애도 과정의 상당 부분이 기억과 안도라는 기묘한 순환으로 전환되는 듯싶다. 당신이 이따금 그 참혹함을 떠올렸다가는 이내 그 일이 끝난 것이 모두에게 다행스러운 일이라고느끼는 것이다. 꼭 다 끝났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런 이미지에 몸서리치고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지워버리려고 애쓰는 것이랄 수 있다. - P126

하지만 사실 아버지는 없다. 크리스마스에 갓난이 조카의 기저귀를 가는 언니를 서서 지켜볼 때 나를 휩쓸고 간 감정이 그것이었던 것 같다. 같은 방, 전혀 다른 이야기. 아홉 달 전에는 슬픔의 장소였던 곳이 지금은 기쁨과 새 시작의 장소였다. 그러니 그때 본아기의 모습은 내게 연속성을 일깨워주었던 것 같다. 아버지의 무력함이 아기의 무력함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아버지를돌보았고, 우리는 아기를 돌볼 것이다. 아버지는 갔지만, 아기는 여기 있다.
- P127

하지만 가끔은 그냥 견딜 수가 없다. 일주일 전, 내가 대학에있을 때 어머니가 보내왔던 편지를 우연히 발견했다. 그때는 내가특히 힘들었던 시기였다. 나를 지지하고 공감하는 차원에서, 어머나는 자신이 대학 시절에 무척 외로웠다는 이야기와 20대 때 스스로 무척 불안정하고 덜 형성된 존재로 느꼈다는 이야기를 적어주었다. 정말 상냥하고 어머니다운 그 편지를 보고 있으니, 그동안 내가 살면서 혼란스럽거나 우울하거나 막막했을 때 어머니에게 전화했던 일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밤중에 듣던 어머니의 목소리가깊고 한결같던 이해가 떠올랐다. 내가 어머니를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편지 봉투를 움켜쥐고 앉아서 흐느껴 울었다. 너무 격렬해서 몸이 다 아픈 울음이었다.
울음은 마음을 좀 편하게 해준다. 하지만 고통을 정말로 줄여주진 못한다. 무엇보다도 힘든 점은 이런 순간에 내 기분을 정말로 낫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내가 정말로 기대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엄마라는 것이다. - P133

지금 작품들을 보는 내 마음을 저미게 하는 것은 그런 분투 어머니가 특정 시기에 겪었던 어려움이다. 암이 재발하기 전 몇 년동안의 콜라주에는 시간과 인간의 필멸성에 대한 생각이 지속적으로 담겨 있고, 작품들에는 ‘달력‘ ‘신전‘ ‘제단‘과 같은 제목이 붙어있다. 뼈 단층 촬영 사진을 닮은 예의 1987년 작품의 제목은 ‘확률게임‘이다. 또 어떤 해는 누락되어 있다는 사실로 눈길을 끈다. 어머니가 작품 하나하나 꼼꼼하게 기록해둔 공책을 보면 1991년 5월에서 1992년 5월까지가 비어 있는데, 그 일 년은 어머니가 뇌종양으로 죽어가는 아버지를 돌본 시기였다. - P138

어머니가 즐겨 하신 말씀 중에 "인생은 드레스 리허설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었다. 술을 끊기 전 몇 달 동안 나는 저 말을 수시로 떠올렸다. 술을 지나치게 마시면, 인생의 힘든 순간들을 겪어내는 데 술에 지속적으로 의지하면, 삶의 모든 일이 현장이 아닌 연습인 양 느껴지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해 여름에 밤이면밤마다 전화를 붙들고 애통해할 때, 나는 실제로 애도한 게 아니라애도를 연습한 것이었다. 희석된 고통은 직면한 고통과 결코 같지않다. 술과 자신감의 방정식, 술과 불안의 방정식도 마찬가지다.
칵테일 파티에서 마티니로 얻은 세련됨은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힘겨운 작업을 거쳐서 내면으로부터 얻은 세련됨과 결코 같지 않다. - P155

굶으면 또 내가 강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좋은 날에는 -내 식단을 고수하는 날에는 퇴근할 때 식료품 가게와 식당이 즐비한거리를 걸어서 오면서 내 의지를 시험했다. 고급 식료품 가게, 던킨 도너츠, 과자 가게, 노천카페, 빵집을 지나쳤다. 도넛에 발린 달콤한 시럽 냄새를 맡았다. 프렌치프라이, 데리야키 치킨윙, 홈메이드 귀리빵 냄새를 맡았다. 그러면 내가 대단한 통제력을 갖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저 많은 음식들 속에서 아무리 배가 고파도 강렬한 식욕을 참을 수 있다니. 나는 강하고 남들과 다른 사람이었다.
좋은 날에는 또 내가 우월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길에서 사람들을 보면서 식료품 봉지를 든 사람들, 카페에서 먹고 있는 연인들-내가 그들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들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그들은 식욕에 굴복했지만 나는 그것을 초월했고, 그들은충동에 굴복했지만 나는 그것을 정복했다. 나 자신이 사실상 무가치한 인간이라고 느끼던 시기에, 굶기는 내가 잘한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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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스러운 일이야! 친구는 내가 혼자 일하는 작고 단정한 작업실을 들여다보았다. 나 한 사람 외에는 다른 사람이 들어설 여지도없는 방이지만, 그곳에는 내가 일하는 동안 내 소매를 잡아당길 사람이 없고, 방해할 사람도, 모임이나 회의에 가자고 끌어낼 사람도없다. 얼마나 편할까! 친구는 결혼했고,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고,
어린 두 아이의 엄마다. 마지막으로 혼자 밥을 보낸 게 언제였는지기억도 안 난다고 했다. 나로 말하면, 혼자 밤을 보낼 수 없었던 게언제였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 친구는 중얼거렸다. "늘 혼자 있다니 얼마나 즐거울까."
글쎄,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내가 누리는 이런 수준의고독이 즐거운 것은 사실이다. 사치와 안도감이 있다는 것도 엄청난 자유가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친구가 잠시 벗어난시간과 혼자 있는 시간을 쉴 시간과 빈 시간을, 고독과 고립을 헷갈리고 있다는 것도 안다. 마치 내가 일하지 않는 동안은 만면에미소를 띠고 집 안을 어슬렁거리며, 빵을 굽고, 끝도 없이 거품 목욕을 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친구는 이 시간에서 끝없는 평온과 고요만을 보았다. 나로 말하면, 이 시간에서 그보다 좀 더 걱정스러운 것, 그보다 분명 더 어려운 것을 본다. 내가 이렇게 많은 시간을혼자 보내는 것은 그 시간을 늘 혹은 틀림없이 즐기기 때문이 아니다. 내게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 같기 때문이다.
- P17

고립은 고독과는 무관하다. 물론 고독한 시간을 쉽게 얻을 수 있는것은 확실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나는 사회적 의무로 꽉꽉 채워진주중에 참석한 파티에서, 방 안 가득한 스물다섯 명의 사람들 속에서도 고립될 수 있다. 고립되었다고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도망치고 싶은 기분 거리를 두고 싶은 기분, 내가 겉모습 너머에서는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혹은 문제투성이인지 아무도 모르게 하기 위해서 장벽을 세우고 그 뒤에 숨고 싶은 강박과 관계된 느낌이다.
‘날 여기서 꺼내줘.‘ 그런 기분이다. ‘나는 불편해. 혼자 있고 싶어‘
고립은 또한 음흉하다. 우울증과 똑같은 방식으로 그것은 잡초처럼 슬금슬금 자라나서 당신을 붙들고는 다시는 놓아주지 않는 어떤 마음 상태다. 당신은 한동안 혼자 지내며, 그저 고독할 뿐인데… 그러다 어느새 고립된다. 당신은 만족하고 있는데……그러다 어느새 외롭다. 당신은 스스로 잘 통제하고 있다고 믿는데...… 그러다 어느새 스스로 어쩔 수 없는 상태에 갇힌다. 고독과고립의 경계선은 무척 가늘고 모호하며, 우리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기에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다.
- P18

지금 마흔여섯인 그레이스는 여전히 금요일 밤에 혼자 닭요리로 저녁을 먹고 TV를 보면서 보내는 날이 많다. 하지만 걱정은누그러졌다. 그를 은둔으로 몰아넣었던 두려움,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무방비 상태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누그러들었기때문이다. 그레이스는 예전보다 더 바람직하고 더 풍요로운 친구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흥미로운 데다가 생계가 되어주는 일을 갖고 있다. 좋은 심리치료사 덕분에 자신을 훨씬 더 잘 인식하게 되었고, 자신에게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필요할 뿐 아니라 그것을 자신이 즐긴다는 사실도 더 또렷하게 느끼게 되었으며, 그 시간에서공허함이 아니라 뿌듯함을 느끼는 능력도 더 기르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고독과 고립의 차이다. 고독은 차분하고 고요하지만, 고립은 무섭다. 고독은 우리가 만족스럽게 찍는 것이지만, 고립은 우리가 하릴없이 빠져 있는 것이다.
- P19

내가 고립되고자 하는 충동에 본격적으로 굴복하기 시작한 것은 약 2년 전술을 끊은 뒤였다. 이전까지 내가 너무 오랫동안 술로 무디게 누그러뜨려왔던 감정들이 두려움, 오래된 상처와 실망, 너무 오래되거나 갓 생겨난 터라 그 근원을 확인하기도 어려웠던 슬픔-그때 온 기세로 돌아와 들이닥쳤다. 그러니 내가 고분고분 웅크리기 시작한 것은, 고립의 목소리가 너무나 유혹적으로 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종종그 충동에 탐닉하는 것이 과연 건강한 일인지, 아니면 자기 파괴적인 일인지 헷갈린다. 한동안 숨어 있어도 괜찮은 걸까? 이 안전한공간에 매일 밤 안락하게 웅크리고 있어도 괜찮을까? 아니면 더활기차게 사교 생활에 몸을 던져야 하나? 성장이 저지된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다른 종류의 성장은 저지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혼자 있는다는 것, 그 모든 다양한 형태는-혼자 살거나, 싱글이거나, 배우자나 가족이나 친구들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을 갖거나-연습이 필요한 기술이다. 고독은 어려운 일이다. 자신을 돌볼의욕이 있어야 하고, 자신을 달래고 즐겁게 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사교적인 생활을 가꾸는 것도 역시 어려운 일이다.  - P24

내가 옳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야, 수줍음의 동굴을 나가서 이웃과 어울리려고 애써볼 기회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두려워하는 잡담을 나눠야 한다는 사실과 내가 탐내는 유대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놓고 저울질해보았다. 내가 평생 불안에 지배당한 채살아왔다는 사실, 두려움을 안고 사는 것이 삶을 제약한다는 사실,
변화란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저야 정말 좋죠. 초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함께 날짜와 시간을 정한 뒤, 나는 프랭크에게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하고 문을 닫았다. 내가 용감하고 자신감 있는 사람이 된기분이었다. 내가 훌륭한 일을 해냈다는 것, 두려움과 고독 대신위험과 친목에 표를 던졌다는 것을 나도 알았다. 그리고 약속한 날이 오자(잊지 말길 바란다. 변화는 어렵다! 생물학이 운명이다!), 나는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심한 독감에 걸려서 몸져누웠다.
나는 정말 아팠다. 혹은 아픈 척했을지도 모른다.(요즘 독감이 도나 봐요, 저도 갑자기 걸렸지 뭐예요!) 아무튼 그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아주아주 좋았다. - P39

나는 친구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물론 단점은 있어. 하지만나 혼자 사는 게 정말로 좋아." 장점도 몇 가지 꼽아 보였다. 내 시간을 내 맘대로 보내고, 생활 규칙을 알아서 정하고, 내 취향을 맘껏 탐닉할 자유. 내가 원하지 않는다면 아무하고도 소통하거나 협상하거나 타협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나의 물리적, 정신적 공간을 스스로 구축하는 설계자라는 사실이 안겨주는 주기적인 작은성취감, 나는 말했다. "이건 선택의 문제, 스타일의 문제야. 그리고나는 이 스타일이 편해."
친구는 진지하게 끄덕이면서 들었다. 하지만 내 말을 전혀 믿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P43

내 경우 그 이유는 내면적인 것, 기질적인 것, 섹슈얼리티처럼대단히 개인적인 것이다. 대부분의 여자들처럼 나도 어릴 때는 언젠가 내가 결혼할 거라고 생각했다. 가족을 이룰 것이라고, 아이가 갖고 싶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부 여자들(또한 남자들처럼, 세월이 아무리 흐르고 또 흘러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 안에서 그럴 마음이 들어야 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들지않는 듯했다. 인생의 많은 결정들이 이런 식이다. 우리가 고를 선택지가 처음부터 빤히 보이고, 해답은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소극적으로 나타난다. 나는 문득 내가 성인이 된 뒤 대부분의 기간을 지난 18년 중 15년을ㅡ혼자 살았다는 사실을 깨닫고좀 놀란다. 그 기간 동안-부엌에서 예의 명랑하고 작은 깨달음을 얻었던 날까지 대체로 나는 혼자라는 상태를 일시적인 상태로 여겼던 것 같다. 스타일의 문제라기보다는 상황의 산물이라고.
하지만 사실 나는 이유가 있어서 이렇게 살아왔던 게 아닌가 싶다.
내가 선택한 고독의 수준이 어떤 면에서든 내게 좋았기 때문에, 나와 내가 잘 맞았기 때문에 그래 왔을 것이다. - P46

그날 밤 부엌에서 켈로그 만찬을 준비하며 내 집의 단정함과조용함을 즐길 때, 그 시간이 고마운 선물이자 일종의 승리로 느껴졌다. 예전에 내가 애쓰며 괴로워했던 일들이 과거로 좀 더 멀리 물러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원래 숫기 없는 성격이다. 타인과의 소통을 늘 부담스럽게 느껴왔고, 앞으로도 아마 어느 정도는 계속 그럴 것이다. 따라서 나는 혼자 있는 걸 늘 대단히 편하게여겼지만, 그러면서도 그 상태를 만끽할 줄은 잘 몰랐다. 혼자 방에앉아 있으면서도 초조해지지 않는 것, 연애의 틀 밖에서도 안락과 - P49

위로와 인정을 얻을 수 있다고 느끼는 것, 내가 가진 자원만으로도-나라는 사람, 내가 하는 선택만으로도-고독의 어두운 복도를 끝까지 걸어서 밝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 이런 것은 잘하지 못했다.
나는 시리얼 그릇을 들고 거실로 가서 TV 앞에 자리 잡고 앉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정말로 명랑하게. 이게 내 집이야. - P50

이렇게 생각하는 내 마음이 상당히 슬프긴 해도, 이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다. 친구관계에 작별을 고할 때를 아는 것은 계속이어갈 때를 아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나는 호프를 한때잘 작동했던 관계, 저만의 장소와 시간 안에서는 아주 아름답게 작동했던 관계라는 작지만 소중한 범주로 분류하게 될 것 같다. 한줌의 옛 직장 동료들도 이 범주에 속한다. 직장이라는 전쟁터에서어깨를 겯고 싸웠던 사람들, 내가 존경하고 동경했던 사람들, 하지만 우리가 모두 전쟁터를 떠나고 나서는 관계가 끊어진 사람들. 재활원에서 만났던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그들과 내가 공유했던 경험은 너무나 독특하고 특정 맥락에 좌우되는 것이었기에, 그 유대감은 우리가 병원에서 걸어 나오기가 무섭게 거의 즉시 사라졌다.
어쩌면 호프와 나는 서로에게 놀랍게도 앞으로 오랫동안 연락하고지낼지도 모른다. 우리의 우정이 또 다른 종류의 작지만 소중한 범주, 즉 일상적 접촉이나 지리적 근접성이 없어도 살아남는 관계라는 범주로 바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이 가능성이 현실이 될 만큼 우리가 오래 알고 지내진 않았고, 공통의 역사를 충분히 쌓지도 못했다. 그러니 처음에는 상황적 친구였고 그다음에는마음의 친구였던 내 친구 호프는 이제 과거의 친구가 될 것이다.
훗날에도 내가 순수한 애정으로 똑똑히 기억할 친구가.
- P71

여자들은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는 데 능하다. 우리는 파트너가 바라는 모습으로 자신을 바꾸는 데 익숙하고, 본능적으로 자신의 욕구와 욕망보다 상대의 욕구와 욕망을 더 중요시하고, 관계에서 발생한 어떤 실패에 대해서도 쉽게 자신을 탓한다. 그러니 꿈이좌절되는 것은 거의 필연적인 결과다. 우리 자신의 바람이라는 패는 연애 관계의 패섞기에서 십중팔구 사라져버린다. 나는 엘리자에게 이렇게 말해본다. "너는 사랑받는다고 느낄 자격이 있어. 네가충분히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 특별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면, 네 마음속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해. 더 많이 원해도 괜찮아." 엘리자는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본다. 그 표정으로 보아,  - P76

그러면 꿈에 굶주린 평범한 20세기 여성은 어떻게 해야 할까?
어느 정도가 충분할까? 사랑받고 싶은 내 바람이 과하고 비현실적인지, 아니면 정상적이고 건전한지 어떻게 구별할까?
이것은 어려운 질문이고, 어려운 질문이 늘 그렇듯이 그 해답은 애매하고 개인적인 수준으로만 존재하는 편이다. 나는 엘리자같은 여성을 보면(그리고 나는 그와 비슷한 궁지에 처한 여성을 아주많이 안다) 자존감의 언어를 떠올리곤 한다. 그는 자신이 갈망하는수준의 만족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 느끼지 않는 한,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면서 스스로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진심으로 믿지 않는 한 그 갈망을 채울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그저 사랑받기만을-한없이 한없이 사랑받기만을 원한다는 건 사실 내적으로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 혼자서도 충분히 귀한 존재라고 느끼지 못한다는 것, 그 느낌을 바깥의 다른 사람으로부터 - 아마 지나치게 많은 양을 얻어야 하는 상태라는 것을 뜻할 때가 많다.
이렇게 말했지만, 나는 자기애는 타인으로부터 받는 사랑이든 사랑 그 자체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도 잘 안다. 나는 혼자서 진심으로 편안하다고 느낄 때면 자신감이 있고, 자신을 돌볼 능력이 있고, 자신이 귀하다고 느낄 때는-마이클의 애정을 덜 필요로하고, 내면의 쓰라린 허기를 덜 예민하게 느끼는 편이다.  - P80

락에서, 내가 더 애정에 굶주리고 불안정한 상태일 때는 그 갈망이격화된다. 사랑받는 느낌이란ㅡ진정으로 사랑받는 느낌이란-일종의 균형이 필요한 일이다. 그 느낌은 상대와 내게서 절반씩 생겨나야 한다. 사랑은 솟구쳤다가 가라앉았다가 하는 역동적인 감정이다. 가끔씩 밀려드는 의문과 실망과 애매함의 파도는 사랑의 자연스러운 물결에 반드시 있기 마련인 그 일부다.
이런 깨달음이 마냥 좋은 건 아니다. 나도 이런 현실이 싫고,
그래서 자주 맞서려고 한다. 아직도 나는 동화적인 환상, 어린 시절부터 뇌리에 새겨온 신념, 즉 언젠가 완벽한 사람이 나타나서 나를 사로잡아 모든 것이 분명하고 밝고 모호함 따위는 없는 미래로데려갈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기가 끔찍이 어렵다. 하지만 나도 인간일 뿐인 것을 어쩌겠는가. 나는 사랑받고 싶다. 한없이 한없이한없이. - P81

자기 아이가 없고 아이들과 많이 어울리지도 않는 나 같은 사람이 너처럼 작은 존재에게 이토록 다양하고 강한 감정들을 느낀다는 것, 이상한 일이지. 예전에 나는 아이들이 좀 겁났어. 아이들은 보통 정신이 덜 형성된 존재들이고 그런 그들이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는 건 시간문제라고 여겼어. 하지만 네 곁에 있을 때는 그런 두려움을 덜 느껴. 꼭 그렇진 않더라도, 두려움이 물러나고 그보다 더 강한 다른 감정들이 떠올라. 몇 주 전에 내가 작은 선물을 갖고 찾아갔단다. 까맣고 노란 줄무늬에 날개가 달린 꿀벌 가방이었어. 너는 그걸 메고 아장아장 돌아다녔지. 그런 순간에 너는어찌나 귀여운지, 나는 너를 덥석 안아 들고 네가 숨 막힐 때까지껴안고 싶은 충동을 힘껏 눌러야 해.  - P93

네 작은 존재에, 완벽한 아기 피부에, 두 살 짜리의 걸음마에 흘려서 넋이 나가는 것 같단다. 나는 인생의 대부분을 타인의 애정이란 내가 얻어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어. 사랑받으려면 시험을 통과하고, 지적 후프를 뛰어넘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고 여겼어. 그러니 그저 존재하기만해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것도 깊이 사랑받을 수 있다는사실을 너를 통해 알게 된 것이 내게는 놀라운 일이야. 이것이 네가 내게 준 선물이란다. 네 존재만큼이나 소중한 선물이란다. - P94

내가 그런 언쟁에 대해서 놀라는 점은, 가벼운 짜증이나 약간의 의견 차이를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파국적 결과가 올 수 있다는듯이 그런 것이 위협적으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어쩌면 여자들의관계에는 어머니의 사랑을 연상시키는 무언가가 작동하는 게 아닌가 싶다. 여자친구들 사이의 친밀감과 따스함과 애정은 최초의 중요한 유대감이었던 어머니와의 유대감에 필적하는 것을 넘어서 그것을 능가할 수도 있는 듯싶다. 우정에는 우리가 어머니와 나눴던친밀감보다 더 평등하고 어쩌면 더 풍성할지도 모르는 친밀감을안겨줄 가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 멋진 친구가 나타난 순간 우리 내면에서는(가장 진정한 의미에서의) 슈퍼맘이라고 적힌 스위치가 탁 켜지고, 우리가 한때 가졌다가 잃었거나 처음부터 갖지못했던 감정들에 대한 갈망이 불붙는다. 그것은 완전한 신뢰와 솔직함, 흔들리지 않는 충실함과 애정, 감정적 동조라는 환상이다. 이처럼 기대가 한껏 부푼 상황에서는 흔해빠진실패가(가령 귀고리를잃어버린 일이 들어설 여지조차 없다.
- P100

친밀감은 무섭고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결국 편안함과 깊이를 만들어내는 것은친밀감이다. 내가 존중받고 이해받는다는 느낌, 세상이 좀 더 편하게 느껴진다는 기분을 얻게 해주는 길도 친밀감이다.
그러니 내 마흔 살 생일의 가장 큰 선물은 그레이스와 개들과함께 조용히 산책했던 일만은 아니었다. 우리가 애써 얻은 신뢰가이 관계의 바탕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우리의 단단한 유대감을 느끼는 것도 선물이었다. 다 큰 여자 둘이서 세상을 함께 걸어나갈 때 드는 놀랍도록 따뜻하고 자유로운 기분, 그것이 선물이었다. - P103

도시 삶의 현실, 내가 의문을 제기해본 적조차 드문 이 현실이나는 대체로 마음에 든다. 이 현실이 우리의 도시 생활이 쇠락해가는 몇몇 이유를 알려주는 건 사실이다. 사람들은 갈수록 서로 소외되고, 낯선 사람을 대할 때 경계하게 되고, 뉴잉글랜드 토박이들특유의 약간 쌀쌀한 태도도 문제다. 그래도 대체로 나는 이웃들과의 거리에 대해서 특이할 것 없고 설명하기 쉬운 이유를 갖고 있었는데, 그 이유란 집이 내게는 은둔처라는 것이다. 집은 내가 고독과 프라이버시를 맘껏 누릴 수 있는 장소다.  - P111

타인과의 접촉이 이처럼 단순하고 편안한 경우는 드물다. 우리 삶의 다른 영역들에서는 일터, 사교 모임, 가정에서 만남이날카로운 판단, 불안의 기색, 퍼뜩 떠오르는 자의식으로 점철될 수있다. 나는 인생에서 유례없이 공식 활동이 많았던 지난 두 달 동안 특히 그랬다. 3월 중순에 내가 평생중독과 씨름해온 역사를 기록한 책이 출간되었고, 이후 나는 폭풍에 휘말리듯이 공식적인 자리에 쫓아다녔다. 최근에 세어본 바로 그동안 인터뷰를 54회 했고,
TV에 마지못해 십여 차례 출연했고, 보스턴에서 샌디에이고까지온갖 신문에 얼굴이 실렸다. 그 모든 일로 나는 남들의 시선을 예민하게 의식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참석하는 개 주인 모임은 그래서 더 중요해졌다. 이 모임은 집이 내게 늘 그랬던 것처럼 내가 쉴안식처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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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월 구일

  유월 들어서 오늘 첫 휴일을 쉰다. 밀린 잠을 자고 며칠 동안 엉망으로 겨우 꾸린 북플도 정리하려던 계획은 그동안 쓰지 않던 근육들이 동원되었던 탓에 삭신은 여기저기 쑤시고 무기력해져서 미뤄뒀던 일들은 다시 밀리게 되었다. 소파와 한 몸이 되어서 지난주에 보지 못한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면서 펑펑 울었다. 눈이 퉁퉁 부었지만 어쩐지 머리가 가벼워진다. 박준 시인의 산문집‘운다고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처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지만 뭔가 비워지는 것 같기는 하다. 노희경의 대사들은 도무지 모른 척할 수가 없게 만든다. 우리들의 일상이고 내 주변의 일상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결국 대본집을 구입하고 말았다. 7월15일 발간 예정이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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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호프 자런 지음, 김은령 옮김 / 김영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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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걸에서 반한 호프자런을 만날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의 중요성을 자주 깨우치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70억명중의 한명일 뿐인 나하나부터 바뀌어야 지구가 조금이라도 더 건강해질 수 있겠다. 지금도 가난하다 생각하지만 누리는 풍요는 확실히 다르다. 조금 더 많이 불편해져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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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내 나이 서른다섯에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나는 항상 앞으로의 15년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살아왔다. 하지만 때론 상황들이 우리보다 강할 때가 있다.
 이제 난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전쟁일기』를 펼치기 전 먼저 내 소개를 하겠다.
내 이름은 올가 그레벤니크이다.
나는 누구인가?
엄마이자 아내, 딸, 화가, 그리고 작가이다. 또한 나는 내의지와 상관없이 삶이 완전히 무너진 사람이다.
나에게는 두 아이가 있다. 아홉 살 아들 표도르와 네 살 딸 베라
그 외 우리 가족은 화가인 남편 세르게이. 엄마, 그리고 개와 고양이다.
전쟁 전 우리 삶은 마치 작은정원과 같았다. 그 정원에서 자라는 모든 꽃들은 각자의 자리가 있었고, 꽃 피우는 정확한 계절이 있었다. 사랑으로 가득했던 우리 정원은 날이 가면 갈수록 풍성하게 자랐다. 아이들은 음악, 미술, 무용 등예술을 배웠으며, 남편과 나는 차례대로 아이들을 학원에 데려다주며 뒷받침을 했다.

나는 어린이들을 위한 책 일러스트를 그려왔다. 내가 작업한 그림들은 다양한 색상과 행복으로 가득했다. 내가 작가로서 쓴 동화들 또한 성공적으로 출판되었다. 책의 주인공은여우 가족이었다 말썽꾸러기 아기 여우, 작고 귀여운 누나여우, 아빠 여우와 엄마 여우. 나는 여우 가족의 음악 수업과자전거 산책, 시나몬롤을 함께 먹는 아침식사에 대한 글을쓰고 그림을 그렸다.
출판사는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다음 이야기는『전쟁일기』가 되어버렸다…… 너무 느닷없는 장르 변화이지않은가?

전쟁 전날 밤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아이들이 잠든 후 남편과 나는 오랜만에 둘이서 오붓하게 대화할 시간을 가졌다.
남편은 수제 햄버거를 만들고 차를 끊어주었다. 늦은 저녁을먹으며 우리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새로 구입한 아파트수리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상상과 함께 아이들이 즐겁게 학원 생활을 해나가는 것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우리에게는천 개의 계획들과 꿈이 있었다. 그렇게 우린 배부르고 행복한 채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새벽 5시,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
처음에는 폭죽 소리인 줄 알았는데, 사방에서 폭격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완전히 파악하지도 못한 채나는 미친듯이 서류와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아들 페자가 잠에서 깨어났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있는지 아이에게 설명해주어야만 했다...... 그다음 딸 베라가 깼다.
.

.

.

.

.

.

.

내가 이 일기를 적는 이유는 "전쟁 그만!"이라고 외치기 위해서다.

전쟁에는 승리자가 없다. 오로지 피, 파산, 그리고 우리 한사람 한사람 마음속의 커다란 구멍만 남는다.

나는 먼 길을 왔고, 그 길에서 오로지 선하고 나를 도우려는 사람들만 만났다.

나는 사람을 민족 소속으로 나누지 않는다

민족이 아닌 행동이 사람을 정의하기 때문이다.

많은 러시아인들도 전쟁을 반대한다는 것을 안다.

나는 이제 정확히 알고 있다. 전쟁이 있고, 사람들은 따로 존재한다는걸.

전쟁은 사람을 신경 쓰지 않는다.

전쟁은 나를 완전히 뒤흔들어놓았다.

지금 나는 국적과 민족을 불문하고 나를 도와주는 이들을 만난다.

이 사람들에게는 '힘'이 있다.

전쟁은 끝날 것이고, 힘센 사람들은 살아남을 것이다.

2022년 4월

올가 그레벤니크

 

 

 

  ​오늘은 열무김치를 마침내 담그는 날이다. 무슨 책을 택할까 하다가 올가 그레벤니크의 글, 그림의 [전쟁 일기]를 챙겼다. 새벽에 지나간 비로 대기는 맑고 청량했다. 버스 안에서 작가의 말을 읽다가 덮고 말았다. 부제가 '우크라이나의 눈물'이다. 전쟁이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에 사는 그림책 작가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올가 그레벤니크가 폭격을 피해 지하실로 대피하면서부터 시작한 연필로 그리고 쓴 일기다.

 

덧붙일 말이 필요 없다. 

전쟁에 반대한다.

어떤 이유로든, 무슨 명목이로든 결코 전쟁은 안. 된. 다.

나는 바로 아이들의 팔에 이름, 생년월일과 연락처를 적어-왜 적는 거야?
베라가 물었다.
-우리, 지금 놀이를 하는 거야.
- 무슨 놀이?
- ‘전쟁‘이란 놀이.
날이 밝자 우리는 지하실로 내려갔다. 이미 이웃들이 앉아있었다. 깜빡거리는 어두운 전등, 숨을 탁하게 만드는 다리밑 모래, 그리고 낮은 천장. 나는 두려움과 근심을 어떻게라도 떨치기 위해 그림 그릴 노트와 연필을 집에서 챙겨왔다.
그림 그리는 행위는 항상 ‘감정‘과의 싸움에 도움을 주었다. 그렇지만 내 다이어리가 전쟁일기』가 되리라곤 생각지못했다. 나는 며칠 후 이 악몽이 끝날 거라고 믿었다.
바깥에서 전투기들이 우리집을 폭격할 때 그림은 나만의내면세계를 향한 유일한 통로가 되어주었다. 내 모든 두려움을 - P8

을 종이에 쏟아부었다. 잠시나마 조금 괜찮아졌다. 내 일기장은 나에게 지하실에 내려갈 유일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새로운 스케치를 그리기 위해 그곳에 내려갔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는 세상 속에서 나는 전쟁에 맞서살아남기 위해 창작하는 행위를 계속해서 이어왔다. 글과 그림은 내가 온 힘을 다해 붙잡는 지푸라기였다.

우리는 지하실에서 여덟 밤을 보냈다. 조용할 때는 아파트에 올라가서 집안일을 했지만, 폭격 소리가 들리면 곧장 아이들을 대피시킬 준비를 하고 지하실로 뛰쳐내려갔다.
그 기간 우리 아파트의 모습도 많이 변했다. 창문에는 종이테이프를 X자로 붙였다. 이내 모든 유리창과 유리문을 떼어내 구석방 바닥에 쌓아두었다. 복도에는 비상 상황에 대비해 챙겨둔 백팩과 캐리어를 두었다.

전쟁 9일째 되는 날, 도시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결심했다기보다는 내 손가락이 나도 모르게 택시기사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더라.
택시를 잡는 건 정말 어려웠다. 도시에 휘발유가 더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절대로 떠날 수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 P9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택시 구하세요? 저 바로 근처입니다. 10분 후에 나오세요.

엄마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아침식사를 먹이면서 우셨다. 같이 가자고 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의 외삼촌을 남겨두고 갈 수 없어 결국 함께하지 못했다.

나는 아이들을 위해 도망쳤다.

급하게 포옹하고 헤어졌다. 눈물 가득한 엄마의 얼굴을 평생토록 기억할 것이다……빨리 움직여야만 했다. 우린 강아지와 백팩 하나만 든 채 택시로 향했다.

내가 맞이한 첫 이별이었다.
20분 후 우리 가족 네 사람은 기차역 플랫폼에 도착해 첫기차에 뛰어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리보프(르비우)로 가는 기차였다. - P10

리보프에 도착해서는 내 블로그를 통해 나를 아는(실제로만난 적은 없던 분들 집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안전하게 느껴져 두려움에 벌떡벌떡 깨지않고 잠을 잤다.
리보프에서 우리 가족 넷이서 함께 보낼 수 있도록 주어진시간은 단 하루. 그후 난 아이들을 데리고 바르샤바로 떠나야만 했다. 아이들을 위해 그런 결정을 내렸다. 우크라이나에내려진 계엄령으로 인해 남편은 나라를 떠날 수 없었다.

두번째 이별이었다.

전쟁 9일 만에 그들은 나를 집, 엄마, 그리고 남편으로부터 ‘해방‘ 시켜주었다. 나에게 남은 건 아이들 강아지, 등뒤의 백팩 하나와 그림 그릴 수 있는 재능뿐이었다.
내 마음속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빨려들지 않기 위해뚜껑으로 막아놓았을 뿐이다. - P11

바르샤바의 머큐어 Mercure 호텔은 점차 여자들과 아이로 가득찼다. 호텔 로비에 아이들 놀이방이 만들어졌다. 아마 호텔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아이들이 떠들고 웃는 소리와 곳곳에 어질러진 장난감들.
아침마다 제공되는 맛있는 조식, 새하얀 침구, 아름답고깨끗한 도시, 커다란 동물원, 빠르고 정확한 대중교통. 잠시주어진, 절대로 익숙해져서는 안 되는 동화였다.

미래는 막막했고, 마음은 너무나 지쳐 있었고 근심 가득했다. 잠시 쉬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야만 했다.

불가리아에 임시숙소를 제안받았다. 내 그림 블로그를 사랑해주던 팔로어들이 초대해주었다.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인 채 또 한번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발을 내딛었다. 여러모로 낯선 도시에서 여자 혼자서 두 아이와 살아남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 P12

강아지와 함께 이동하기 위한 모든 서류를 어렵게 마련한이후 우리는 비행기표를 구입하고 3월 16일 불가리아 소피아에 도착했다.

지금 나는 불가리아의 소도시에서 지내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굉장히 친절하고 우리를 따뜻하게 반겨준다. 가능한 대로 살림을 하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매일 강아지와 산책하며 봄을 맞이한다.

그렇지만 매일 밤 난 꿈에서 남편과 내 고향도시를 본다.
잠에서 깨어나면 마음이 찢어지는 듯하다. 핸드폰을 들어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어떻게 지내?"

남편은 하리코프(하르키우)에 돌아갔다.
도시는 계속해서 폭격당하고 있지만 더이상 지하실에 내려가지 않는다.
남편 또한 마음속 구멍을 어떻게든 메꾸기 위해 적십자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구호품을 모아 도시에 남은 사람들에게 - P13

도움을 주고 있다.
엄마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하리코프(하르키우) 근교 도시에서 지내신다. 아직까지는 조용하지만 언제든 ‘해방군‘이 들이닥칠 수 있다.

그들 생각에 울면서 기도한다. 마치 내 두 손이 절단되었는데 절단된 손의 통증을 계속 그대로 느끼는 것과 같다.

내가 이 일기를 적는 이유는 "전쟁 그만!"이라고 외치기위해서다.
전쟁에는 승리자가 없다. 오로지 피, 파산, 그리고 우리 한사람 한사람 마음속의 커다란 구멍만 남는다.
나는 먼 길을 왔고, 그 길에서 오로지 선하고 나를 도우려는 사람들만 만났다.

나는 사람을 민족 소속으로 나누지 않는다. - P14

2022년 2월 24일
#1인칭지하시점

새벽 5시 30분, 폭파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뭐라도 하기 위해 짐을 싼다.
그림들을 웹하드에 업로드한다.
작업중이던 새 책의 운명이 걱정된다.

아이들과 우리의 배낭을 쌌다.
아침을 먹었다 먹어야만 하니깐.
메밀죽은 아무맛도 나지 않는다.

내 그림들을 파일에 넣었다. - P20

지하의 아이들

내 아이들은 지하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여기서 이미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집에서는 투정이 많아진다.
무서우니까 그런다.

딸베라는 묻는다 :
- 우리 언제 지하에 내려가? - P36

피난열차

열차는 이 세상의 모든 눈물로 가득하다.
여자들과 아이들.
기차가 멈출 때마다 여자들과 아이들은 더 많아졌다.
여자들은 저마다 방금 전까지 남편과 함께 있었고, 이제 혼자가 되었다.
아이들은 울고 있다.
엄마는 눈물을 삼키며 아이를 달랜다.
아빠가 다음 기차로 따라올 거라고.
못올텐데……
아이들은 모두 자기 장난감을 소중하게 감싸안는다.
집으로 전화를 걸어본다.
집에 남은 가족들에 대한 걱정과 눈물 섞인 말들.
정말 많은 눈물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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