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내 나이 서른다섯에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나는 항상 앞으로의 15년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살아왔다. 하지만 때론 상황들이 우리보다 강할 때가 있다.
 이제 난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전쟁일기』를 펼치기 전 먼저 내 소개를 하겠다.
내 이름은 올가 그레벤니크이다.
나는 누구인가?
엄마이자 아내, 딸, 화가, 그리고 작가이다. 또한 나는 내의지와 상관없이 삶이 완전히 무너진 사람이다.
나에게는 두 아이가 있다. 아홉 살 아들 표도르와 네 살 딸 베라
그 외 우리 가족은 화가인 남편 세르게이. 엄마, 그리고 개와 고양이다.
전쟁 전 우리 삶은 마치 작은정원과 같았다. 그 정원에서 자라는 모든 꽃들은 각자의 자리가 있었고, 꽃 피우는 정확한 계절이 있었다. 사랑으로 가득했던 우리 정원은 날이 가면 갈수록 풍성하게 자랐다. 아이들은 음악, 미술, 무용 등예술을 배웠으며, 남편과 나는 차례대로 아이들을 학원에 데려다주며 뒷받침을 했다.

나는 어린이들을 위한 책 일러스트를 그려왔다. 내가 작업한 그림들은 다양한 색상과 행복으로 가득했다. 내가 작가로서 쓴 동화들 또한 성공적으로 출판되었다. 책의 주인공은여우 가족이었다 말썽꾸러기 아기 여우, 작고 귀여운 누나여우, 아빠 여우와 엄마 여우. 나는 여우 가족의 음악 수업과자전거 산책, 시나몬롤을 함께 먹는 아침식사에 대한 글을쓰고 그림을 그렸다.
출판사는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다음 이야기는『전쟁일기』가 되어버렸다…… 너무 느닷없는 장르 변화이지않은가?

전쟁 전날 밤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아이들이 잠든 후 남편과 나는 오랜만에 둘이서 오붓하게 대화할 시간을 가졌다.
남편은 수제 햄버거를 만들고 차를 끊어주었다. 늦은 저녁을먹으며 우리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새로 구입한 아파트수리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상상과 함께 아이들이 즐겁게 학원 생활을 해나가는 것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우리에게는천 개의 계획들과 꿈이 있었다. 그렇게 우린 배부르고 행복한 채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새벽 5시,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
처음에는 폭죽 소리인 줄 알았는데, 사방에서 폭격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완전히 파악하지도 못한 채나는 미친듯이 서류와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아들 페자가 잠에서 깨어났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있는지 아이에게 설명해주어야만 했다...... 그다음 딸 베라가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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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일기를 적는 이유는 "전쟁 그만!"이라고 외치기 위해서다.

전쟁에는 승리자가 없다. 오로지 피, 파산, 그리고 우리 한사람 한사람 마음속의 커다란 구멍만 남는다.

나는 먼 길을 왔고, 그 길에서 오로지 선하고 나를 도우려는 사람들만 만났다.

나는 사람을 민족 소속으로 나누지 않는다

민족이 아닌 행동이 사람을 정의하기 때문이다.

많은 러시아인들도 전쟁을 반대한다는 것을 안다.

나는 이제 정확히 알고 있다. 전쟁이 있고, 사람들은 따로 존재한다는걸.

전쟁은 사람을 신경 쓰지 않는다.

전쟁은 나를 완전히 뒤흔들어놓았다.

지금 나는 국적과 민족을 불문하고 나를 도와주는 이들을 만난다.

이 사람들에게는 '힘'이 있다.

전쟁은 끝날 것이고, 힘센 사람들은 살아남을 것이다.

2022년 4월

올가 그레벤니크

 

 

 

  ​오늘은 열무김치를 마침내 담그는 날이다. 무슨 책을 택할까 하다가 올가 그레벤니크의 글, 그림의 [전쟁 일기]를 챙겼다. 새벽에 지나간 비로 대기는 맑고 청량했다. 버스 안에서 작가의 말을 읽다가 덮고 말았다. 부제가 '우크라이나의 눈물'이다. 전쟁이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에 사는 그림책 작가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올가 그레벤니크가 폭격을 피해 지하실로 대피하면서부터 시작한 연필로 그리고 쓴 일기다.

 

덧붙일 말이 필요 없다. 

전쟁에 반대한다.

어떤 이유로든, 무슨 명목이로든 결코 전쟁은 안. 된. 다.

나는 바로 아이들의 팔에 이름, 생년월일과 연락처를 적어-왜 적는 거야?
베라가 물었다.
-우리, 지금 놀이를 하는 거야.
- 무슨 놀이?
- ‘전쟁‘이란 놀이.
날이 밝자 우리는 지하실로 내려갔다. 이미 이웃들이 앉아있었다. 깜빡거리는 어두운 전등, 숨을 탁하게 만드는 다리밑 모래, 그리고 낮은 천장. 나는 두려움과 근심을 어떻게라도 떨치기 위해 그림 그릴 노트와 연필을 집에서 챙겨왔다.
그림 그리는 행위는 항상 ‘감정‘과의 싸움에 도움을 주었다. 그렇지만 내 다이어리가 전쟁일기』가 되리라곤 생각지못했다. 나는 며칠 후 이 악몽이 끝날 거라고 믿었다.
바깥에서 전투기들이 우리집을 폭격할 때 그림은 나만의내면세계를 향한 유일한 통로가 되어주었다. 내 모든 두려움을 - P8

을 종이에 쏟아부었다. 잠시나마 조금 괜찮아졌다. 내 일기장은 나에게 지하실에 내려갈 유일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새로운 스케치를 그리기 위해 그곳에 내려갔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는 세상 속에서 나는 전쟁에 맞서살아남기 위해 창작하는 행위를 계속해서 이어왔다. 글과 그림은 내가 온 힘을 다해 붙잡는 지푸라기였다.

우리는 지하실에서 여덟 밤을 보냈다. 조용할 때는 아파트에 올라가서 집안일을 했지만, 폭격 소리가 들리면 곧장 아이들을 대피시킬 준비를 하고 지하실로 뛰쳐내려갔다.
그 기간 우리 아파트의 모습도 많이 변했다. 창문에는 종이테이프를 X자로 붙였다. 이내 모든 유리창과 유리문을 떼어내 구석방 바닥에 쌓아두었다. 복도에는 비상 상황에 대비해 챙겨둔 백팩과 캐리어를 두었다.

전쟁 9일째 되는 날, 도시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결심했다기보다는 내 손가락이 나도 모르게 택시기사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더라.
택시를 잡는 건 정말 어려웠다. 도시에 휘발유가 더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절대로 떠날 수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 P9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택시 구하세요? 저 바로 근처입니다. 10분 후에 나오세요.

엄마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아침식사를 먹이면서 우셨다. 같이 가자고 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의 외삼촌을 남겨두고 갈 수 없어 결국 함께하지 못했다.

나는 아이들을 위해 도망쳤다.

급하게 포옹하고 헤어졌다. 눈물 가득한 엄마의 얼굴을 평생토록 기억할 것이다……빨리 움직여야만 했다. 우린 강아지와 백팩 하나만 든 채 택시로 향했다.

내가 맞이한 첫 이별이었다.
20분 후 우리 가족 네 사람은 기차역 플랫폼에 도착해 첫기차에 뛰어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리보프(르비우)로 가는 기차였다. - P10

리보프에 도착해서는 내 블로그를 통해 나를 아는(실제로만난 적은 없던 분들 집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안전하게 느껴져 두려움에 벌떡벌떡 깨지않고 잠을 잤다.
리보프에서 우리 가족 넷이서 함께 보낼 수 있도록 주어진시간은 단 하루. 그후 난 아이들을 데리고 바르샤바로 떠나야만 했다. 아이들을 위해 그런 결정을 내렸다. 우크라이나에내려진 계엄령으로 인해 남편은 나라를 떠날 수 없었다.

두번째 이별이었다.

전쟁 9일 만에 그들은 나를 집, 엄마, 그리고 남편으로부터 ‘해방‘ 시켜주었다. 나에게 남은 건 아이들 강아지, 등뒤의 백팩 하나와 그림 그릴 수 있는 재능뿐이었다.
내 마음속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빨려들지 않기 위해뚜껑으로 막아놓았을 뿐이다. - P11

바르샤바의 머큐어 Mercure 호텔은 점차 여자들과 아이로 가득찼다. 호텔 로비에 아이들 놀이방이 만들어졌다. 아마 호텔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아이들이 떠들고 웃는 소리와 곳곳에 어질러진 장난감들.
아침마다 제공되는 맛있는 조식, 새하얀 침구, 아름답고깨끗한 도시, 커다란 동물원, 빠르고 정확한 대중교통. 잠시주어진, 절대로 익숙해져서는 안 되는 동화였다.

미래는 막막했고, 마음은 너무나 지쳐 있었고 근심 가득했다. 잠시 쉬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야만 했다.

불가리아에 임시숙소를 제안받았다. 내 그림 블로그를 사랑해주던 팔로어들이 초대해주었다.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인 채 또 한번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발을 내딛었다. 여러모로 낯선 도시에서 여자 혼자서 두 아이와 살아남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 P12

강아지와 함께 이동하기 위한 모든 서류를 어렵게 마련한이후 우리는 비행기표를 구입하고 3월 16일 불가리아 소피아에 도착했다.

지금 나는 불가리아의 소도시에서 지내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굉장히 친절하고 우리를 따뜻하게 반겨준다. 가능한 대로 살림을 하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매일 강아지와 산책하며 봄을 맞이한다.

그렇지만 매일 밤 난 꿈에서 남편과 내 고향도시를 본다.
잠에서 깨어나면 마음이 찢어지는 듯하다. 핸드폰을 들어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어떻게 지내?"

남편은 하리코프(하르키우)에 돌아갔다.
도시는 계속해서 폭격당하고 있지만 더이상 지하실에 내려가지 않는다.
남편 또한 마음속 구멍을 어떻게든 메꾸기 위해 적십자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구호품을 모아 도시에 남은 사람들에게 - P13

도움을 주고 있다.
엄마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하리코프(하르키우) 근교 도시에서 지내신다. 아직까지는 조용하지만 언제든 ‘해방군‘이 들이닥칠 수 있다.

그들 생각에 울면서 기도한다. 마치 내 두 손이 절단되었는데 절단된 손의 통증을 계속 그대로 느끼는 것과 같다.

내가 이 일기를 적는 이유는 "전쟁 그만!"이라고 외치기위해서다.
전쟁에는 승리자가 없다. 오로지 피, 파산, 그리고 우리 한사람 한사람 마음속의 커다란 구멍만 남는다.
나는 먼 길을 왔고, 그 길에서 오로지 선하고 나를 도우려는 사람들만 만났다.

나는 사람을 민족 소속으로 나누지 않는다. - P14

2022년 2월 24일
#1인칭지하시점

새벽 5시 30분, 폭파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뭐라도 하기 위해 짐을 싼다.
그림들을 웹하드에 업로드한다.
작업중이던 새 책의 운명이 걱정된다.

아이들과 우리의 배낭을 쌌다.
아침을 먹었다 먹어야만 하니깐.
메밀죽은 아무맛도 나지 않는다.

내 그림들을 파일에 넣었다. - P20

지하의 아이들

내 아이들은 지하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여기서 이미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집에서는 투정이 많아진다.
무서우니까 그런다.

딸베라는 묻는다 :
- 우리 언제 지하에 내려가? - P36

피난열차

열차는 이 세상의 모든 눈물로 가득하다.
여자들과 아이들.
기차가 멈출 때마다 여자들과 아이들은 더 많아졌다.
여자들은 저마다 방금 전까지 남편과 함께 있었고, 이제 혼자가 되었다.
아이들은 울고 있다.
엄마는 눈물을 삼키며 아이를 달랜다.
아빠가 다음 기차로 따라올 거라고.
못올텐데……
아이들은 모두 자기 장난감을 소중하게 감싸안는다.
집으로 전화를 걸어본다.
집에 남은 가족들에 대한 걱정과 눈물 섞인 말들.
정말 많은 눈물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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