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스러운 일이야! 친구는 내가 혼자 일하는 작고 단정한 작업실을 들여다보았다. 나 한 사람 외에는 다른 사람이 들어설 여지도없는 방이지만, 그곳에는 내가 일하는 동안 내 소매를 잡아당길 사람이 없고, 방해할 사람도, 모임이나 회의에 가자고 끌어낼 사람도없다. 얼마나 편할까! 친구는 결혼했고,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고, 어린 두 아이의 엄마다. 마지막으로 혼자 밥을 보낸 게 언제였는지기억도 안 난다고 했다. 나로 말하면, 혼자 밤을 보낼 수 없었던 게언제였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 친구는 중얼거렸다. "늘 혼자 있다니 얼마나 즐거울까." 글쎄,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내가 누리는 이런 수준의고독이 즐거운 것은 사실이다. 사치와 안도감이 있다는 것도 엄청난 자유가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친구가 잠시 벗어난시간과 혼자 있는 시간을 쉴 시간과 빈 시간을, 고독과 고립을 헷갈리고 있다는 것도 안다. 마치 내가 일하지 않는 동안은 만면에미소를 띠고 집 안을 어슬렁거리며, 빵을 굽고, 끝도 없이 거품 목욕을 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친구는 이 시간에서 끝없는 평온과 고요만을 보았다. 나로 말하면, 이 시간에서 그보다 좀 더 걱정스러운 것, 그보다 분명 더 어려운 것을 본다. 내가 이렇게 많은 시간을혼자 보내는 것은 그 시간을 늘 혹은 틀림없이 즐기기 때문이 아니다. 내게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 같기 때문이다. - P17
고립은 고독과는 무관하다. 물론 고독한 시간을 쉽게 얻을 수 있는것은 확실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나는 사회적 의무로 꽉꽉 채워진주중에 참석한 파티에서, 방 안 가득한 스물다섯 명의 사람들 속에서도 고립될 수 있다. 고립되었다고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도망치고 싶은 기분 거리를 두고 싶은 기분, 내가 겉모습 너머에서는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혹은 문제투성이인지 아무도 모르게 하기 위해서 장벽을 세우고 그 뒤에 숨고 싶은 강박과 관계된 느낌이다. ‘날 여기서 꺼내줘.‘ 그런 기분이다. ‘나는 불편해. 혼자 있고 싶어‘ 고립은 또한 음흉하다. 우울증과 똑같은 방식으로 그것은 잡초처럼 슬금슬금 자라나서 당신을 붙들고는 다시는 놓아주지 않는 어떤 마음 상태다. 당신은 한동안 혼자 지내며, 그저 고독할 뿐인데… 그러다 어느새 고립된다. 당신은 만족하고 있는데……그러다 어느새 외롭다. 당신은 스스로 잘 통제하고 있다고 믿는데...… 그러다 어느새 스스로 어쩔 수 없는 상태에 갇힌다. 고독과고립의 경계선은 무척 가늘고 모호하며, 우리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기에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다. - P18
지금 마흔여섯인 그레이스는 여전히 금요일 밤에 혼자 닭요리로 저녁을 먹고 TV를 보면서 보내는 날이 많다. 하지만 걱정은누그러졌다. 그를 은둔으로 몰아넣었던 두려움,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무방비 상태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누그러들었기때문이다. 그레이스는 예전보다 더 바람직하고 더 풍요로운 친구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흥미로운 데다가 생계가 되어주는 일을 갖고 있다. 좋은 심리치료사 덕분에 자신을 훨씬 더 잘 인식하게 되었고, 자신에게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필요할 뿐 아니라 그것을 자신이 즐긴다는 사실도 더 또렷하게 느끼게 되었으며, 그 시간에서공허함이 아니라 뿌듯함을 느끼는 능력도 더 기르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고독과 고립의 차이다. 고독은 차분하고 고요하지만, 고립은 무섭다. 고독은 우리가 만족스럽게 찍는 것이지만, 고립은 우리가 하릴없이 빠져 있는 것이다. - P19
내가 고립되고자 하는 충동에 본격적으로 굴복하기 시작한 것은 약 2년 전술을 끊은 뒤였다. 이전까지 내가 너무 오랫동안 술로 무디게 누그러뜨려왔던 감정들이 두려움, 오래된 상처와 실망, 너무 오래되거나 갓 생겨난 터라 그 근원을 확인하기도 어려웠던 슬픔-그때 온 기세로 돌아와 들이닥쳤다. 그러니 내가 고분고분 웅크리기 시작한 것은, 고립의 목소리가 너무나 유혹적으로 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종종그 충동에 탐닉하는 것이 과연 건강한 일인지, 아니면 자기 파괴적인 일인지 헷갈린다. 한동안 숨어 있어도 괜찮은 걸까? 이 안전한공간에 매일 밤 안락하게 웅크리고 있어도 괜찮을까? 아니면 더활기차게 사교 생활에 몸을 던져야 하나? 성장이 저지된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다른 종류의 성장은 저지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혼자 있는다는 것, 그 모든 다양한 형태는-혼자 살거나, 싱글이거나, 배우자나 가족이나 친구들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을 갖거나-연습이 필요한 기술이다. 고독은 어려운 일이다. 자신을 돌볼의욕이 있어야 하고, 자신을 달래고 즐겁게 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사교적인 생활을 가꾸는 것도 역시 어려운 일이다. - P24
내가 옳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야, 수줍음의 동굴을 나가서 이웃과 어울리려고 애써볼 기회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두려워하는 잡담을 나눠야 한다는 사실과 내가 탐내는 유대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놓고 저울질해보았다. 내가 평생 불안에 지배당한 채살아왔다는 사실, 두려움을 안고 사는 것이 삶을 제약한다는 사실, 변화란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저야 정말 좋죠. 초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함께 날짜와 시간을 정한 뒤, 나는 프랭크에게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하고 문을 닫았다. 내가 용감하고 자신감 있는 사람이 된기분이었다. 내가 훌륭한 일을 해냈다는 것, 두려움과 고독 대신위험과 친목에 표를 던졌다는 것을 나도 알았다. 그리고 약속한 날이 오자(잊지 말길 바란다. 변화는 어렵다! 생물학이 운명이다!), 나는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심한 독감에 걸려서 몸져누웠다. 나는 정말 아팠다. 혹은 아픈 척했을지도 모른다.(요즘 독감이 도나 봐요, 저도 갑자기 걸렸지 뭐예요!) 아무튼 그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아주아주 좋았다. - P39
나는 친구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물론 단점은 있어. 하지만나 혼자 사는 게 정말로 좋아." 장점도 몇 가지 꼽아 보였다. 내 시간을 내 맘대로 보내고, 생활 규칙을 알아서 정하고, 내 취향을 맘껏 탐닉할 자유. 내가 원하지 않는다면 아무하고도 소통하거나 협상하거나 타협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나의 물리적, 정신적 공간을 스스로 구축하는 설계자라는 사실이 안겨주는 주기적인 작은성취감, 나는 말했다. "이건 선택의 문제, 스타일의 문제야. 그리고나는 이 스타일이 편해." 친구는 진지하게 끄덕이면서 들었다. 하지만 내 말을 전혀 믿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P43
내 경우 그 이유는 내면적인 것, 기질적인 것, 섹슈얼리티처럼대단히 개인적인 것이다. 대부분의 여자들처럼 나도 어릴 때는 언젠가 내가 결혼할 거라고 생각했다. 가족을 이룰 것이라고, 아이가 갖고 싶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부 여자들(또한 남자들처럼, 세월이 아무리 흐르고 또 흘러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 안에서 그럴 마음이 들어야 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들지않는 듯했다. 인생의 많은 결정들이 이런 식이다. 우리가 고를 선택지가 처음부터 빤히 보이고, 해답은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소극적으로 나타난다. 나는 문득 내가 성인이 된 뒤 대부분의 기간을 지난 18년 중 15년을ㅡ혼자 살았다는 사실을 깨닫고좀 놀란다. 그 기간 동안-부엌에서 예의 명랑하고 작은 깨달음을 얻었던 날까지 대체로 나는 혼자라는 상태를 일시적인 상태로 여겼던 것 같다. 스타일의 문제라기보다는 상황의 산물이라고. 하지만 사실 나는 이유가 있어서 이렇게 살아왔던 게 아닌가 싶다. 내가 선택한 고독의 수준이 어떤 면에서든 내게 좋았기 때문에, 나와 내가 잘 맞았기 때문에 그래 왔을 것이다. - P46
그날 밤 부엌에서 켈로그 만찬을 준비하며 내 집의 단정함과조용함을 즐길 때, 그 시간이 고마운 선물이자 일종의 승리로 느껴졌다. 예전에 내가 애쓰며 괴로워했던 일들이 과거로 좀 더 멀리 물러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원래 숫기 없는 성격이다. 타인과의 소통을 늘 부담스럽게 느껴왔고, 앞으로도 아마 어느 정도는 계속 그럴 것이다. 따라서 나는 혼자 있는 걸 늘 대단히 편하게여겼지만, 그러면서도 그 상태를 만끽할 줄은 잘 몰랐다. 혼자 방에앉아 있으면서도 초조해지지 않는 것, 연애의 틀 밖에서도 안락과 - P49
위로와 인정을 얻을 수 있다고 느끼는 것, 내가 가진 자원만으로도-나라는 사람, 내가 하는 선택만으로도-고독의 어두운 복도를 끝까지 걸어서 밝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 이런 것은 잘하지 못했다. 나는 시리얼 그릇을 들고 거실로 가서 TV 앞에 자리 잡고 앉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정말로 명랑하게. 이게 내 집이야. - P50
이렇게 생각하는 내 마음이 상당히 슬프긴 해도, 이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다. 친구관계에 작별을 고할 때를 아는 것은 계속이어갈 때를 아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나는 호프를 한때잘 작동했던 관계, 저만의 장소와 시간 안에서는 아주 아름답게 작동했던 관계라는 작지만 소중한 범주로 분류하게 될 것 같다. 한줌의 옛 직장 동료들도 이 범주에 속한다. 직장이라는 전쟁터에서어깨를 겯고 싸웠던 사람들, 내가 존경하고 동경했던 사람들, 하지만 우리가 모두 전쟁터를 떠나고 나서는 관계가 끊어진 사람들. 재활원에서 만났던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그들과 내가 공유했던 경험은 너무나 독특하고 특정 맥락에 좌우되는 것이었기에, 그 유대감은 우리가 병원에서 걸어 나오기가 무섭게 거의 즉시 사라졌다. 어쩌면 호프와 나는 서로에게 놀랍게도 앞으로 오랫동안 연락하고지낼지도 모른다. 우리의 우정이 또 다른 종류의 작지만 소중한 범주, 즉 일상적 접촉이나 지리적 근접성이 없어도 살아남는 관계라는 범주로 바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이 가능성이 현실이 될 만큼 우리가 오래 알고 지내진 않았고, 공통의 역사를 충분히 쌓지도 못했다. 그러니 처음에는 상황적 친구였고 그다음에는마음의 친구였던 내 친구 호프는 이제 과거의 친구가 될 것이다. 훗날에도 내가 순수한 애정으로 똑똑히 기억할 친구가. - P71
여자들은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는 데 능하다. 우리는 파트너가 바라는 모습으로 자신을 바꾸는 데 익숙하고, 본능적으로 자신의 욕구와 욕망보다 상대의 욕구와 욕망을 더 중요시하고, 관계에서 발생한 어떤 실패에 대해서도 쉽게 자신을 탓한다. 그러니 꿈이좌절되는 것은 거의 필연적인 결과다. 우리 자신의 바람이라는 패는 연애 관계의 패섞기에서 십중팔구 사라져버린다. 나는 엘리자에게 이렇게 말해본다. "너는 사랑받는다고 느낄 자격이 있어. 네가충분히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 특별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면, 네 마음속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해. 더 많이 원해도 괜찮아." 엘리자는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본다. 그 표정으로 보아, - P76
그러면 꿈에 굶주린 평범한 20세기 여성은 어떻게 해야 할까? 어느 정도가 충분할까? 사랑받고 싶은 내 바람이 과하고 비현실적인지, 아니면 정상적이고 건전한지 어떻게 구별할까? 이것은 어려운 질문이고, 어려운 질문이 늘 그렇듯이 그 해답은 애매하고 개인적인 수준으로만 존재하는 편이다. 나는 엘리자같은 여성을 보면(그리고 나는 그와 비슷한 궁지에 처한 여성을 아주많이 안다) 자존감의 언어를 떠올리곤 한다. 그는 자신이 갈망하는수준의 만족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 느끼지 않는 한,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면서 스스로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진심으로 믿지 않는 한 그 갈망을 채울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그저 사랑받기만을-한없이 한없이 사랑받기만을 원한다는 건 사실 내적으로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 혼자서도 충분히 귀한 존재라고 느끼지 못한다는 것, 그 느낌을 바깥의 다른 사람으로부터 - 아마 지나치게 많은 양을 얻어야 하는 상태라는 것을 뜻할 때가 많다. 이렇게 말했지만, 나는 자기애는 타인으로부터 받는 사랑이든 사랑 그 자체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도 잘 안다. 나는 혼자서 진심으로 편안하다고 느낄 때면 자신감이 있고, 자신을 돌볼 능력이 있고, 자신이 귀하다고 느낄 때는-마이클의 애정을 덜 필요로하고, 내면의 쓰라린 허기를 덜 예민하게 느끼는 편이다. - P80
락에서, 내가 더 애정에 굶주리고 불안정한 상태일 때는 그 갈망이격화된다. 사랑받는 느낌이란ㅡ진정으로 사랑받는 느낌이란-일종의 균형이 필요한 일이다. 그 느낌은 상대와 내게서 절반씩 생겨나야 한다. 사랑은 솟구쳤다가 가라앉았다가 하는 역동적인 감정이다. 가끔씩 밀려드는 의문과 실망과 애매함의 파도는 사랑의 자연스러운 물결에 반드시 있기 마련인 그 일부다. 이런 깨달음이 마냥 좋은 건 아니다. 나도 이런 현실이 싫고, 그래서 자주 맞서려고 한다. 아직도 나는 동화적인 환상, 어린 시절부터 뇌리에 새겨온 신념, 즉 언젠가 완벽한 사람이 나타나서 나를 사로잡아 모든 것이 분명하고 밝고 모호함 따위는 없는 미래로데려갈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기가 끔찍이 어렵다. 하지만 나도 인간일 뿐인 것을 어쩌겠는가. 나는 사랑받고 싶다. 한없이 한없이한없이. - P81
자기 아이가 없고 아이들과 많이 어울리지도 않는 나 같은 사람이 너처럼 작은 존재에게 이토록 다양하고 강한 감정들을 느낀다는 것, 이상한 일이지. 예전에 나는 아이들이 좀 겁났어. 아이들은 보통 정신이 덜 형성된 존재들이고 그런 그들이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는 건 시간문제라고 여겼어. 하지만 네 곁에 있을 때는 그런 두려움을 덜 느껴. 꼭 그렇진 않더라도, 두려움이 물러나고 그보다 더 강한 다른 감정들이 떠올라. 몇 주 전에 내가 작은 선물을 갖고 찾아갔단다. 까맣고 노란 줄무늬에 날개가 달린 꿀벌 가방이었어. 너는 그걸 메고 아장아장 돌아다녔지. 그런 순간에 너는어찌나 귀여운지, 나는 너를 덥석 안아 들고 네가 숨 막힐 때까지껴안고 싶은 충동을 힘껏 눌러야 해. - P93
네 작은 존재에, 완벽한 아기 피부에, 두 살 짜리의 걸음마에 흘려서 넋이 나가는 것 같단다. 나는 인생의 대부분을 타인의 애정이란 내가 얻어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어. 사랑받으려면 시험을 통과하고, 지적 후프를 뛰어넘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고 여겼어. 그러니 그저 존재하기만해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것도 깊이 사랑받을 수 있다는사실을 너를 통해 알게 된 것이 내게는 놀라운 일이야. 이것이 네가 내게 준 선물이란다. 네 존재만큼이나 소중한 선물이란다. - P94
내가 그런 언쟁에 대해서 놀라는 점은, 가벼운 짜증이나 약간의 의견 차이를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파국적 결과가 올 수 있다는듯이 그런 것이 위협적으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어쩌면 여자들의관계에는 어머니의 사랑을 연상시키는 무언가가 작동하는 게 아닌가 싶다. 여자친구들 사이의 친밀감과 따스함과 애정은 최초의 중요한 유대감이었던 어머니와의 유대감에 필적하는 것을 넘어서 그것을 능가할 수도 있는 듯싶다. 우정에는 우리가 어머니와 나눴던친밀감보다 더 평등하고 어쩌면 더 풍성할지도 모르는 친밀감을안겨줄 가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 멋진 친구가 나타난 순간 우리 내면에서는(가장 진정한 의미에서의) 슈퍼맘이라고 적힌 스위치가 탁 켜지고, 우리가 한때 가졌다가 잃었거나 처음부터 갖지못했던 감정들에 대한 갈망이 불붙는다. 그것은 완전한 신뢰와 솔직함, 흔들리지 않는 충실함과 애정, 감정적 동조라는 환상이다. 이처럼 기대가 한껏 부푼 상황에서는 흔해빠진실패가(가령 귀고리를잃어버린 일이 들어설 여지조차 없다. - P100
친밀감은 무섭고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결국 편안함과 깊이를 만들어내는 것은친밀감이다. 내가 존중받고 이해받는다는 느낌, 세상이 좀 더 편하게 느껴진다는 기분을 얻게 해주는 길도 친밀감이다. 그러니 내 마흔 살 생일의 가장 큰 선물은 그레이스와 개들과함께 조용히 산책했던 일만은 아니었다. 우리가 애써 얻은 신뢰가이 관계의 바탕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우리의 단단한 유대감을 느끼는 것도 선물이었다. 다 큰 여자 둘이서 세상을 함께 걸어나갈 때 드는 놀랍도록 따뜻하고 자유로운 기분, 그것이 선물이었다. - P103
도시 삶의 현실, 내가 의문을 제기해본 적조차 드문 이 현실이나는 대체로 마음에 든다. 이 현실이 우리의 도시 생활이 쇠락해가는 몇몇 이유를 알려주는 건 사실이다. 사람들은 갈수록 서로 소외되고, 낯선 사람을 대할 때 경계하게 되고, 뉴잉글랜드 토박이들특유의 약간 쌀쌀한 태도도 문제다. 그래도 대체로 나는 이웃들과의 거리에 대해서 특이할 것 없고 설명하기 쉬운 이유를 갖고 있었는데, 그 이유란 집이 내게는 은둔처라는 것이다. 집은 내가 고독과 프라이버시를 맘껏 누릴 수 있는 장소다. - P111
타인과의 접촉이 이처럼 단순하고 편안한 경우는 드물다. 우리 삶의 다른 영역들에서는 일터, 사교 모임, 가정에서 만남이날카로운 판단, 불안의 기색, 퍼뜩 떠오르는 자의식으로 점철될 수있다. 나는 인생에서 유례없이 공식 활동이 많았던 지난 두 달 동안 특히 그랬다. 3월 중순에 내가 평생중독과 씨름해온 역사를 기록한 책이 출간되었고, 이후 나는 폭풍에 휘말리듯이 공식적인 자리에 쫓아다녔다. 최근에 세어본 바로 그동안 인터뷰를 54회 했고, TV에 마지못해 십여 차례 출연했고, 보스턴에서 샌디에이고까지온갖 신문에 얼굴이 실렸다. 그 모든 일로 나는 남들의 시선을 예민하게 의식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참석하는 개 주인 모임은 그래서 더 중요해졌다. 이 모임은 집이 내게 늘 그랬던 것처럼 내가 쉴안식처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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