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부모와 사이가 좋은 자식들도 죄책감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내 아버지는 11개월의 투병 끝에 올봄에 돌아가셨는데, 작년에 아버지가 아프기 시작했을 때 나는 죄책감을 잔뜩 느꼈다. 전단 결과를 들었을 때 처음 또렷하게 떠오른 생각 중 하나는 이것이었다. 만약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내가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보여드리지 못한다면, 나는 남은 평생 죄책감을 느낄 거야.
그런 생각은 사실 도움이 되었다. 나는 아버지가 아픈 동안 함께 시간을 많이 보냈고,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확실히 느끼고 떠나셨다는 점을작은 위안으로 삼을 수 있었다. 그래도 이런 죄책감이 우리 내면에숨은 무언가를 보여주는 건 사실이다. 죄책감은 강한 힘이다. 그속에는 사랑이 있고, 의무감도 있고, 우리가 과거에 남들에게 무언가를 말하거나 보여주지 못했다는 데 대한 회한도 있다.
내가 그때 느꼈던 그 감정은 이제 과부가 된(나는 ‘싱글맘‘이라는 표현이 더 좋지만) 어머니에게로 듬뿍 옮겨갔다. 어머니는 내가아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강하고 자신을 잘 억제하고 미래지향적인 사람이지만, 그래도 나는 어머니가 혼자 집에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움찔하게 된다. 나는 어머니에게 줄기차게 전화를 건다. 줄기 - P122

차게 걱정한다. 엄마가 괜찮은가? 슬퍼하시나? 기운 내고 계신가? 그리고 어마어마하게 죄책감을 느낀다. 내가 엄마에게 좀 더 잘해드려야 하는데, 좀 더 적극적으로 생활을 개선해드려야 하는데, 정확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죄책감이 평범하고 오래된 문제일 수 있다는 사실, 우리가 죄책감과 사랑을 본능적으로 하나로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린다.
이것이 삶임을 깨닫는 데도 긴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모두 나이 들수록 삶이 더 어려워지는 게 아니라 더 쉬워진다는 신화를 믿으며 자라는데(그리고 이것은 진짜 신화일 뿐이다), 나이 드는 부모의모습만큼 그 믿음이 사실이 아님을 잘 보여주는 것은 많지 않다.
실제로는 우리가 나이 들수록 잃은 것이 많아진다. 점점 더 크고버거운 과제가 나타난다. 실수를 되돌리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부모의 죽음을 생각해보는 일이 겁나는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부모님 은혜의 시기가 끝나면, 우리의 순수의 시대 중 후반부의 한 단계도 끝난다. 그분들이 언제까지나 거기 계시진 않을 것이다. 우리 삶이 더 간단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 P123

그야 정확히 말하자면 다행스럽다기보다는 마음이 좀 가볍다는 기분, 한시름 덜었다는 기분이었다. 아버지의 병은 사람을 망가뜨렸고, 잔인했고, 지켜보기 참혹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런 병으로 죽을 때는 애도 과정의 상당 부분이 기억과 안도라는 기묘한 순환으로 전환되는 듯싶다. 당신이 이따금 그 참혹함을 떠올렸다가는 이내 그 일이 끝난 것이 모두에게 다행스러운 일이라고느끼는 것이다. 꼭 다 끝났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런 이미지에 몸서리치고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지워버리려고 애쓰는 것이랄 수 있다. - P126

하지만 사실 아버지는 없다. 크리스마스에 갓난이 조카의 기저귀를 가는 언니를 서서 지켜볼 때 나를 휩쓸고 간 감정이 그것이었던 것 같다. 같은 방, 전혀 다른 이야기. 아홉 달 전에는 슬픔의 장소였던 곳이 지금은 기쁨과 새 시작의 장소였다. 그러니 그때 본아기의 모습은 내게 연속성을 일깨워주었던 것 같다. 아버지의 무력함이 아기의 무력함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아버지를돌보았고, 우리는 아기를 돌볼 것이다. 아버지는 갔지만, 아기는 여기 있다.
- P127

하지만 가끔은 그냥 견딜 수가 없다. 일주일 전, 내가 대학에있을 때 어머니가 보내왔던 편지를 우연히 발견했다. 그때는 내가특히 힘들었던 시기였다. 나를 지지하고 공감하는 차원에서, 어머나는 자신이 대학 시절에 무척 외로웠다는 이야기와 20대 때 스스로 무척 불안정하고 덜 형성된 존재로 느꼈다는 이야기를 적어주었다. 정말 상냥하고 어머니다운 그 편지를 보고 있으니, 그동안 내가 살면서 혼란스럽거나 우울하거나 막막했을 때 어머니에게 전화했던 일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밤중에 듣던 어머니의 목소리가깊고 한결같던 이해가 떠올랐다. 내가 어머니를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편지 봉투를 움켜쥐고 앉아서 흐느껴 울었다. 너무 격렬해서 몸이 다 아픈 울음이었다.
울음은 마음을 좀 편하게 해준다. 하지만 고통을 정말로 줄여주진 못한다. 무엇보다도 힘든 점은 이런 순간에 내 기분을 정말로 낫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내가 정말로 기대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엄마라는 것이다. - P133

지금 작품들을 보는 내 마음을 저미게 하는 것은 그런 분투 어머니가 특정 시기에 겪었던 어려움이다. 암이 재발하기 전 몇 년동안의 콜라주에는 시간과 인간의 필멸성에 대한 생각이 지속적으로 담겨 있고, 작품들에는 ‘달력‘ ‘신전‘ ‘제단‘과 같은 제목이 붙어있다. 뼈 단층 촬영 사진을 닮은 예의 1987년 작품의 제목은 ‘확률게임‘이다. 또 어떤 해는 누락되어 있다는 사실로 눈길을 끈다. 어머니가 작품 하나하나 꼼꼼하게 기록해둔 공책을 보면 1991년 5월에서 1992년 5월까지가 비어 있는데, 그 일 년은 어머니가 뇌종양으로 죽어가는 아버지를 돌본 시기였다. - P138

어머니가 즐겨 하신 말씀 중에 "인생은 드레스 리허설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었다. 술을 끊기 전 몇 달 동안 나는 저 말을 수시로 떠올렸다. 술을 지나치게 마시면, 인생의 힘든 순간들을 겪어내는 데 술에 지속적으로 의지하면, 삶의 모든 일이 현장이 아닌 연습인 양 느껴지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해 여름에 밤이면밤마다 전화를 붙들고 애통해할 때, 나는 실제로 애도한 게 아니라애도를 연습한 것이었다. 희석된 고통은 직면한 고통과 결코 같지않다. 술과 자신감의 방정식, 술과 불안의 방정식도 마찬가지다.
칵테일 파티에서 마티니로 얻은 세련됨은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힘겨운 작업을 거쳐서 내면으로부터 얻은 세련됨과 결코 같지 않다. - P155

굶으면 또 내가 강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좋은 날에는 -내 식단을 고수하는 날에는 퇴근할 때 식료품 가게와 식당이 즐비한거리를 걸어서 오면서 내 의지를 시험했다. 고급 식료품 가게, 던킨 도너츠, 과자 가게, 노천카페, 빵집을 지나쳤다. 도넛에 발린 달콤한 시럽 냄새를 맡았다. 프렌치프라이, 데리야키 치킨윙, 홈메이드 귀리빵 냄새를 맡았다. 그러면 내가 대단한 통제력을 갖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저 많은 음식들 속에서 아무리 배가 고파도 강렬한 식욕을 참을 수 있다니. 나는 강하고 남들과 다른 사람이었다.
좋은 날에는 또 내가 우월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길에서 사람들을 보면서 식료품 봉지를 든 사람들, 카페에서 먹고 있는 연인들-내가 그들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들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그들은 식욕에 굴복했지만 나는 그것을 초월했고, 그들은충동에 굴복했지만 나는 그것을 정복했다. 나 자신이 사실상 무가치한 인간이라고 느끼던 시기에, 굶기는 내가 잘한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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