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어정쩡함! 그건 오래 걸친 외투처럼 내겐 너무도 친근한 말이 아닌가. 한번은 아들녀석이 물었다. 엄마를 무슨 작가라고 소개해야 돼? 엄마가 글을 쓴다고 하면 사람들이 묻는단다. 소설가냐,
시인이냐, 드라마 작가냐. 난 아이에게 엄마는 인터뷰 하고 칼럼 쓰고 산문도 쓴다고 설명했지만, 말하면서도 뭔가 잡다하고 애매했다.
오랜 질문이다. 나는 무슨 글을 쓰는 사람인가.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반듯한 명함도 없고 내세울 만한 대표작이 있는 것도 아니나 어쨌든 매일 글을 써서 먹고살았다. 그런데도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할말은 늘 궁했다. 종일 컴퓨터 앞에서 자판을 두드리지만, 그건 한 편의 글로 완성되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닌 게 되기도 한다. 그럼 난 그날 일을 한건가 논건가, 헷갈렸다. - P18

"춤추는 별을 잉태하려면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 라는 니체의 말대로, 불확실한 삶의 긴장 상태는 글쓰기 좋은 조건이라고 우리는 또 대부분 그렇게 산다. 주변을 봐도 고시 합격생보다는 준비생이 많다. 고액 연봉에 승승장구하는 직장인보다는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노동자가 다수다. 연인 관계도 팽팽한 사랑 감정을 느낄 때보다 지리멸렬하고 느슨해서 친구인지 가족인지 헷갈리는 시기가 길다. 그러니 어정쩡한 상태를 삶의 실패나 무능으로 여기지 말자고 했다. - P19

나도 20~30대엔 애매함을 배척하고 확실함을 동경했다. 표류보다 안착을 원했다. 돈 걱정 없이 원하는 글을 쓰는 안정된 집필 환경을 꿈꿨고, 내 이름으로 된 책이라도 있다면 존재 증명이 수월하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책상과 고요가 확보된다고 글이 싹 바뀌지않았고, 책이 나온다고 삶이 확 달라지진 않았다. 아이가 기저귀만떼면 엄마 노릇 수월할 줄 알았는데 걸으면 넘어질까 걱정, 취학하면 학교적응 못할까봐 걱정, 성장할수록 근심의 층위도 깊어갔다.
어영부영 이만큼 떠밀려오고 나서야 짐작한다. 인간이 명료함을 갈구하는 존재라는 건 삶의 본질이 어정쩡함에 있다는 뜻이겠구나.
이제 나는 확신에 찬 사람이 되지 않는 게 목표다. 확실함으로자기 안에 갇히고 타인을 억압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싶다. 40대 후반이면 그걸 두려워해야 할 나이다. ‘글쓰기는 이런 거야‘ ‘사는 건원래 그래‘라고 의심하기보다 주장하는 사람이 된다는 건 서글프다. - P19

나이 들면서 체지방이 늘 듯 안 쓰는 핸드폰 번호가 쌓인다. 번호는 정리해도 인연은 삭제되지 않고 내가 피해도 삶이 만나게 한다. 사는 동안 운명을 뒤바꿔놓을 결정적인 만남은 거의 일어나지않겠지만 신상 정보 업데이트가 안 된 지인들과의 애매한 만남, 아니 마주침은 종종 일어날 것 같다.
"우리의 인생은 (..…) 어릴 적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고, 협소하고, 단편적이다."(116) 이 단편적 만남, 하찮은 우연에 잘 임하고싶다. 안색을 살피고 고요를 챙길 것. 앞으로 수차례의 결혼식과 장례식 그리고 무수한 대중교통 탑승 기회가 남았다. - P30

많은 글과 논리가 있고 지식이 있다. 그것에 묻힌 너무 작은 목소리가 있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살리는 일을 내심 과업으로 삼았다.
저자의 일침대로라면 육성만 담지 말고 울림과 떨림까지 담아야 하고 그것은 "무언가를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의 저항"으로 가능하다.
이 무위의 글쓰기라는 경지는 아득하지만 일단 쓰기에 대한 열망으로 조급해진 마음은 누그러뜨려준다. 무언가를 즉각적으로 수행하려는 욕심을 무너뜨리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힘을 다스리라는 글쓰기의 이정표 앞에서 나는 또 가던 길 멈추고 숨을 고른다.
글이 불이 되는 글쓰기를 해낼 재주는 없지만 쓰면서 알아가고싶다. 전업 작가가 되고 싶으면, 혹은 되었다면 하루에 이삼십 장씩쓰라는 말보다 이쪽이 더 윤리적이며 매혹적이고 현실적이다. 이미글이 범람하는 시대에 제면기에서 면발 나오듯 줄줄 써대는 게 능사는 아니며, 그렇게 능력을 행위로 소모하다간 4대 보험 적용도 안되는 무명 작가로 과로사하기 딱 좋다는 자각이 아주 세게 드는 조언이다. 고마워요, 아감벤 씨. - P34

싸구려 모텔에서 단기투숙자로 미혼모 엄마와 사는 아이는 가난과 결핍의 공간을 생성과 자극의 놀이터로 만든다. 이 낙담하지 않는 악동은 자신의 신묘한 능력을 고백한다. "난 어른들이 울려고 하면 바로 알아." 엄마의 기후 변화를 귀신같이 감지하는 것도 아이고, 어떤 절망에 빠졌어도라면 수프 같은 복원력으로 생기를 되찾는 것도 아이다.
"고통이 아픔을 준다는 것이 고통에 반대하는 논거가 될 순 없다"는 니체의 말을 생각한다. 인간은 최악의 상태에서 진정한 통찰과 만난다는 뜻이다. 한부모가정 아이는 불행하다기보다 예민하다.
그 예민함의 촉수로 무니가 타인의 슬픔을 포착하듯, 또 다른 무니들이 삶의 무수한 장면을 읽어내고 속 깊은 글을 써내는 걸 나는 본다. 그래서 묻게 된다. 이혼은, 한부모 가정은, 누구의 무엇을 언제를 기준으로 결핍이고 약점인 것이냐고. 나와 내 친구가 오매불망걱정했던 그 작았던 아이들은 자기 고통을 응시하고 기록하는 사람으로 옆에 있다. - P42

소설을 읽다보면 바틀비가 답답하고 불안하다. 제 발로 사무실에 들어갔으면 일은 해야 하지 않나, 안 할 거면 왜 안 하는지 적어도 이유는 말해야 하지 않나, 그래도 살아야 하지 않나 싶은데 그 모든걸 안 하고 ‘끝‘까지 버틴다. 그런 행동에 대한 속 시원한 해명 없이 소설은 장탄식으로 끝난다. "아! 바틀비여, 아! 인간이여." 
그 허탈함, 황망함, 난감함, 쓸쓸함 속에서 사유가 일어난다(좋은 소설인 것이다). 나는 내 생각을 생각했다. 처음엔 바틀비가 이유도없이 일하지 않는 게 이상했는데, 아니다.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이유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을 그토록 열심히 하는 게 이상하다. 바틀비는 왜 자기 생각과 입장을 설명하지 않을까 궁금했다가,
그럼 나는 구구절절 말함으로써 타인을 이해시키고 타인으로부터이해받은 적이 얼마나 있었는지 회의가 들었다. 말하는 대로 이해받는다는 믿음이야말로 헛것 아닌가…… - P45

바틀비가 변호사에게 했던 말이 나를 향한다. "알려주지 않으면 그 이유를 모르시겠어요?"
그간은 글쓰기를 열렬히 원하는 이들만 만났다. 만사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그러다 비자발적 집단과의 수업에서 난관에 봉착했고 그 와중에 나는 얼굴이 자주 화끈거렸는데, 평소 목소리 없는자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글을 쓰고 싶다고 떠들고 다닌 게 생각나서다. 실상은 목소리 없는 자를 좀처럼 못 견디고, 논리적 전개가 아니면 상황 이해에 서툴고, 원활한 목표 달성에 방해가 되면 구성원을 제쳐두기도 하는 사람이 나였다. 우선은 불안과 조급 없이 목소리 없는 이들과 ‘그냥 있는‘ 연습부터 해야 했던 것이다.
합리성으로 포획되지 않는 삶, 실패로서만 확인되는 앎이 있다.그것은 나를 원점으로 돌려놓는다. 아내의 병을 고치겠다는 의지가확고한 남편이 정작 아내의 말을 듣지 못하듯이, 어떤 목표에 사로잡히면 사람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성실함의 중단, 합리성의 거부를 실천한 바틀비처럼 나도 성실함과 합리성의 스위치를 몸에서 꺼두어야 할까보다. 그래야 사람이 보일 것 같다. - P47

결국 딸은 원하는 학교에 원서를 넣었다. 네 상식과 내 상식의다름, 자기 불안의 겨룸, 상호 애환에 대한 무지, 욕망의 투사, 필요의 거래가 얽히고설킨 복잡한 관계. 엄마와 딸. 그러나 패자가 정해진 싸움이다. "부모가 원하는 자리로 되돌아오는 자식은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아이는 내 자식이고 나는 그 애의 부모이고, 그사실만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작은 인간‘의 태를 벗고 세상의중심으로 나아가는 딸아이에 비추어 ‘왜소해진 나‘를 본다. 더는 작지 않은 아이가 더는 쪼그라들고 싶지 않은 엄마를 흔들어 깨운다. - P72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글을 쓰는동안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발견합니다. 글을 써보지 않으면 자신이 무엇을 쓸 수 있는지, 무엇을 알고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미리 어떤 것을 써야지 생각하고 머릿속에 준비해둔 원고를 ‘프린트아웃‘한다고 해서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글쓰기를 시작하는 용기, 그리고 방법은 내 안에 있다. "자기 자신을 단서 삼아 이야기를 밀고 나가" 야 글쓰기에 힘이 붙고 논의가 섬세해지면서 자기의 고유한 목소리가 나온다. 엄마에 관한글쓴이의 고백처럼 우리는 ‘생각보다‘ 자신에 무지하고 자기와 서먹하기에, 글을 쓰면서 나를 알아가는 쾌감도 크다. 그렇게 마음을 다쏟는 태도로 삶을 기록할 때라야 "신체에 닿는 언어"를 낳고 "그런언어만이 타자에게 전해" 진다. - P75

자신이 용감해지는 자리를 알기.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이것이다. 글을 쓸 때 나는 그나마 용감하다. 글 바깥에선 비겁하고 부산스럽지만 글 안에서만은 일관되고 침착하려 애쓴다. 글과 삶의(불)일치는 내 삶의 영원한 화두다. 잘 존재하는 방법은 어렵고, 글쓰는 내가 가장 나으니까, 삶에서 그 비중을 늘리는 전략을 일찍이짰다.
글쓰기 수업도 그 일환으로 재밌게 하고 있다. 학인들은 매번말한다. "우리 수업에 ‘좋은 사람들‘이 정말 많이 와요." 그러면 내가정정한다. 좋은 사람들이 오는 게 아니라 여기서는 우리가 좋은 사람이 되는 거라고.
서로가 경쟁자 아닌 경청자가 될 때, 삶의결을 섬세하게 살피는 관찰자가 될 때 우린 누구나 괜찮은 사람이 된다. 대인배라도 된듯한 그 착각이 좋은 글을 쓰게 하는 동력임은 물론이다. "작가란 최상의 순간에 자기 인격의 최상의 측면을 갖고 주로 글을 쓰고 실제로도 그래야 한다." 저마다 삶에 몰입하고 자기 인격의 최상을만나는 횟수가 잦아지면 우상의 존재도 자연 소멸하지 않을까. - P83

아무려나, 제 몸 써서 일한 사람들이 갖는 삶에 대한 통찰력, 남의 몫 가로채지 않고 자기 손 놀려 ‘저금통‘ 같은 갯벌 일구어 살아온 이들의 가뿐함, 그 와중에도 기역자로 굽은 허리를 펴 "누부리곱과(노을이 고와)" 라며 감탄할 줄 아는 우아함을 배운다. 이 책의최고령 97세 소무의도 윤희분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농땡이가최고야. 젊어서 일 많이 하지 마시오. 늙어서 이렇게 아플 줄 알았으면 그렇게 안 했어. 젊었을 때는 뼈가 나긋나긋하니까 물불 안 가렸지. 농땡이가 최고야." 짐승처럼 일하다가 벌레처럼 작아진 몸피에서 나온 사리 같은 말, 인간다움을 추구하기에 너무도 혁명적인 그 입말을 곱씹는다. - P104

끼니마다 콕쏘는 김치를 허겁지겁 먹어치우면서도 목 안이 따끔하다. 한 여성이 소위 ‘바깥일‘을 하려면 다른 여성의 돌봄노동이 필요하듯이, 내가 김치 담그기에서 해방되자면 누군가의 고단한 노역의 산물인 김치를 먹게 된다. 얼마나 손끝이 얼얼하도록 마늘을 까고 생강을 다지고 배추를 씻고 절이고 버무렸을까.
‘엄마표 김치‘라는 말이 그리운 말에서 징그러운 말이 되어간다. 엄마의 자기희생이 강요된 말, 넙죽 받아먹기만 하는 자들이 계속 받아먹기를 염원하는 말이다. 어느 소설가의 문학관에는 대하소설을 쓰는 동안 사용한 볼펜과 원고지가 탑처럼 쌓여 있다고 하는데, 엄마들이 평생 담근 김치와 사용한 고무장갑을 한눈에 쌓아놓으면 어떤 붉은 스펙터클이 나올지 상상해본다. 어머니가 해주신밥과 김치 먹고 굴러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절대 가시화되지 않는이상한 노동. 피와 살로 스며서 똥으로 나가버리는 엄마의 땀, 부불노동 Impaid work 으로서 가사노동의 불꽃인 김장. - P107

가난은 상대적이나, 한 존재에게서 중요한 것들을 뺏어간다. 밥부터 포기시키고 밥이 매개하는 관계와 건강을 무너뜨린다. 가난은말을 가로챈다. 감추고 싶은 것은 강제로 노출시키고, 말하고 싶은것은 들어주지 않는다. 먹고살기 바빠 일일이 사정을 말할 기회가없다. 설명도 간단치 않다. 저자처럼 수년을 공부하고 책 한권 분량의 구조적 분석을 마쳐야 제대로 이해시킬까 말까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 아마 그건 고생 끝에 낙이 온 사 - P124

람에게만 발언권이 주어졌기 때문일 거다. 그들은 자서전으로, 인터뷰로 자기 말을 퍼뜨리지만 "성실한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성실했다가 개죽음을 당한"이들은 말이 없다. 특정 지역이 사교육 시키기 좋다는 말. 사교육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 기득권층이된 이들의 언어일 것이다. 사교육에 실패했거나 애초에 사교육을받을 수 없는 이들의 말은 배제됐다. 재개발이 지역 발전에 좋다는말도 마찬가지. 매매차익으로 부를 축적한 중산층과 그것을 조장한토건재벌의 말이다. 쫓겨난 원주민의 말은 무음 처리다. 사회적 편견은 그렇게 생산 및 유통된다.
나는 목동 아파트를 떠나 집을 구하며 주택담보대출이란 것을받았다. 용쓰고 살았으나 살다보니 중년에 빚쟁이다. 20년 상환의굴레에 갇혀 죽지도 못할 처지가 된 게 황망하고 서글펐는데 이 책에서 부채에 관한 다른 해석을 얻었다. "개인이 가난해서 빚을 지는것이 아니라, 빚을 지지 않고는 살 수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사회에 적응해나가기 위해 빚을 지는 것이다." 학생-채무자의 글에 노동자-채무자인 나는 위안을 받는다. - P125

한 사람의 공감 능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계속 질문하는 중이다. 여자라서, 아이를 키워봐서, 딸이 있어서처럼 저절로 주어지는 것들은 계기가 될 순 있어도 공감의 지속 조건은 될 순 없다. 배움이 필요하다. 글쓰기 수업에 오는 어른들도 ‘느끼는 능력을 갈구한다. 남 일에 무관심하면 더 빨리 더 높게 사회적 성취를 일굴 수있을지 모르겠으나, 자신과의 서먹함이나 관계맺기의 무능함으로인해 삶의 다른 한쪽이 허물어지는 탓이다.
내가 아는 공감 방법은 듣는 것이다. 남의 처지와 고통의 서사를 듣는 일은 간단치 않다. 자기 판단과 가치를 내려놓으면서, 가령
‘왜 이제 말하느냐‘ 심판하는 게 아니라 왜 이제 말할 수밖에 없었을까 이해하려 애쓰면서, 동시에 자기 경험과 아픔을 불러내는 고강도의 정서 작업이다. 온몸이 귀가 되어야 하는 일. 얼마 전 본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당신이 할 말을 생각하는 동안 나는 들을 준비를 할 거예요." - P128

삶은 늘 우리의 경험과 인식을 초과한다. 문학으로 타인의 삶을상상할 수는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왜 결혼생활 10년이 넘도록 잘참다가 하필 그날부터 호텔로 갔는지, 기껏 가놓고 왜 그 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지, 결혼 전 광고회사에서 일했던 ‘스마트한 여성‘인데 어째서 이혼하지 않고 지리멸렬한 결혼을 이어갔는지, 매사합리적인 언어를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설명 불가능하다. 문학의 언어는 보여준다. 스스로 전개되는 삶을 통해 합리와 이성으로 기획된 세계의 빈틈과 모순을 드러낸다. 그래서 《19호실로 가다》의 첫문장은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지성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수 있다."  - P131

안희정 성폭행 혐의 사건에는 법리적 판단이 내려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건이 끝나도 여성의 삶은 계속된다는 사실이다. 그건성폭행이 계속된다는 말이고, 남성의 언어로 세상을 해석하고 편집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말하기는 자주 실패하리라는 뜻이다. 그러나 견고한 지배 질서의 틈을 뚫고 터져나오는 목소리는 그만큼 질긴 생명력을 갖는다. 삶을 대동하고 나온 목소리는 말하기에 실패할 때마다 정교해진다. 나는 거기서 희망을 본다. - P131

여성혐오로 인한 죽음, 그리고 성폭력 피해는 주식 시세나 날씨처럼 매일 생산되는 뉴스다. 한샘 기업 내 성폭력 사건이 폭로된 게불과 몇 달 전이고,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진 게 2년전이다. 누구도 들어주지 않아서 서사가 되지 못한 채 눈송이처럼흩어져버린 힘없는 여성 피해자들 이야기는 반도의 땅 곳곳에 설산을 이루고도 남는다.
우리가 무서워해야 할 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페미니스트가가리키는 여성이 처한 현실의 참담함이다. 여자는 밥하려고 태어나지 않았고 꽃처럼 꺾어도 되는 존재가 아닌데 밥 안 한다고 죽이고꽃 꺾듯 존엄을 꺾어버리는 무수한 사건들에도, 우리는 계속 놀라고 말리고 떠들고 분노해야 한다. - P134

읽고 쓰고 말하고 고치기의 반복. 이 고된 노역을 우리는 왜 자처하는가. 글쓰기의 목적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이렇게 정리해본다.
삶이 고차함수인데 글이 쉽게 써지면 반칙이다. 정확한 단어와 표현을 고심하다 보면 자신을 스스로 속일 가능성이 줄어들고, 몸을숙여 한 사람의 내면의 갱도에 들어가는 훈련으로 남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을 수 있다고.
"모든 사물과 현상을 씨 -동기-로부터 본다"(김수영)는 것, 자기 중심성을 벗어나 타인의 처지가 되어보는 일, 사람살이에 꼭 필요한이것을 교육받을 기회가 드물었던 우리는 글쓰기를 핑계 삼아 공부하고 있다. 꼰대 발언, 혐오 발언이 승한 시대에 말을 지키는 것은나를 지키는 것이기도 하니까. - P149

부모와 산다고 다 행복하지 않듯이 부모가 없다고 꼭 불행하지않다. 복지시설에서 사는 열다섯 살 아이의 비밀이 아픈 것이지, 그아이의 삶 자체가 슬픈 것은 아니다. 아침에 학교에 가고 아이돌 좋아하고 친구들이랑 싸우고 떠들고 치마 기장 줄이기에 연연하며 핸드폰 카톡에 정신이 팔려 있는 모습은 또래 아이와 다르지 않다. 부모의 부재를 무조건 동정하거나 차별하는 시선만 아니라면 아이가기죽을 일도, 거짓으로 둘러댈 일도 없다.
한 아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타인의 돌봄이다. 그 타인이꼭 부모일 필요는 없다. 부모이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인간은 나 - P162

약하고 흔들리는 존재다. 자식을 낳는다고 남을 돌볼 수 있는 육체적·정신적·경제적 상태가 자동으로 세팅되지는 않으며 세팅되었다고 한들 영원하지도 않다. 그러므로 "아이는 무조건 친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식으로 혈연을 강조하고 모성에 대한 환상을 부풀리는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1284).
한 아이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든 신체적 온전함과 존엄성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후원금을 척척 내는 어른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부모님 뭐하시느냐‘ 다짜고짜 묻지 않는 어른이 많아져야 하고 이력서에 가족관계를 쓰지 않도록 하는 제도가 생겨야 한다. 이 세상에 ‘불쌍한 아이‘는 없다. 부모 없이 자란 자식이라는 굴레를 씌우고불쌍한 아이를 만들어내는 집요한 어른들이 있고, 정상가족이라는틀로 자율적 존재를 가두거나 배제하는 닫힌 사회가 있을 뿐이다. - P163

며칠 후 찬바람 뚫고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오늘‘ 전시회 토크콘서트에 갔다. 전시를 주최한 10대여성인권센터 조진경 대표는피해자에 대해 양육자와 눈 맞추고 말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 그래서 처음엔 뭘 물어봐도 "싫어" "재수 없어" 두 마디로만 답하는 아이들이었다고 표현했다. 어려서부터 가정폭력이나 학대를 당하던 아이들이 ‘살려고 집을 나와 먹여주고 재워주는 사람을 따르다가 피해를 입는 구조라는 것.
그런데도 아이들은 보호받기는커녕 ‘쉽게 돈 번다‘며 비난받고낙인찍힌다. 조 대표는 말했다.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어렵지 않으냐고 물어보는데 현장을 모르는 행정부 어른들과 싸우는 게 더 어려워요." 심지어 단속에 적발된 성 구매자가 억울함을 호소하러 센터에 직접 찾아오는 일까지 있다며 "어째서 구매한 놈이 당당한가"
분통을 터뜨렸다. - P165

이날 내가 배운 것도 세 가지다. 첫째, 소위 ‘원조교제‘나 ‘조건만남‘으로 불리는 10대 성매매는 동등한 입장에서 거래가 이루어진다는 착각을 주지만 한쪽이 취약한 처지이므로 성착취라는 말이 합당하다. 둘째, 전 세계는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 범죄에 - P165

대해 엄격하게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는 보호하는 추세로 발전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범죄라는 인식조차 미약해서 가해자들이 외려 당당하게 군다. 셋째, 성착취라는 말이 일반화되면 "당당한 놈들도 바퀴벌레처럼 숨을 것"이며 성착취도 사라질 것이다. - P16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인의 말

‘11월 ‘이란 제목이 셋이다.
번호를 붙일까 생각했지만, 모양이 거슬린다.
‘십일월‘로 고칠까? 어쩐지 진중하고 격 있어 보이는데……
아무래도 아직은 ‘11월이다.
이랬다저랬다, 돌아보는 시들을 묶는 마음.

2022년 가을
황인숙


내 삶의 예쁜 종아리


오르막길이
배가 더 나오고
무릎관절에도 나쁘고
발목이 더 굵어지고 종아리가 미워진다면
얼마나 더 싫을까
나는 얼마나 더 힘들까

내가 사는 동네에는 오르막길이 많네
게다가 지름길은 꼭 오르막이지
마치 내 삶처럼

Spleen


이 또한 지나갈까
지나갈까, 모르겠지만
이 느낌 처음 아니지
처음이긴커녕 단골 중에 상단골
슬픔인 듯 고통이여, 자주 안녕
고통인 듯 슬픔이여, 자꾸 안녕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도 나쁜부류의 나무를 만납니다. 오즈로 가는 길에 있는 ‘싸우는 나무들‘의 숲이 도로시 일행을 지나가지 못하게 막지만, 양철나무꾼이 괴수 나무들에게 과감히 도끼를 휘둘러 길을 낸 덕분에 겨우 빠져나와요. 또한
‘해리 포터‘ 시리즈에는 강력한 파괴자‘후려치는 버드나무‘가 나옵니다. 나쁜 나무에도 다 화려한 족보가 있어요.
단테의 신곡은 미로 은유로 시작합니다. - P130

우리 인생 여정의 한가운데서
나는 곧은 경로를 잃고
어두운 숲속을 헤매고 있었다.

얼마나 울창하고, 험하고, 뒤엉킨 숲이었는지말로 다 할 수 없고
생각만 해도 그때의 두려움이 되살아난다!


추정컨대 이 숲은 과오와 죄, 정도(正道) 이탈을 상징합니다. 숲은 길을 잃고 헤매는 곳입니다. 옛날에는 숲에서 길을 잃는다는 것은 굶주림이나 추위로 죽거나 들짐승의 먹이가 되는 것을 뜻했습니다. 지금도전혀 아니라고는 못 합니다. 오늘날은 숲에 가는 것을 테디 베어의 피크닉(The Teddy Bears Picnic)』을 구경하는 것쯤으로 생각하는데, 조심하세요. 그러다 본인이 테디 베어의 피크닉이 될 수 있어요. 너무 오래 얼쩡대면 충분히 가능성 있습니다. - P130

셰익스피어의 숲은 단테의 숲만큼 무시무시하진 않지만 그렇다고가볍고 밝지만도 않습니다. 때로는 『한여름 밤의 꿈』의 숲처럼 초인적존재들이 사는 마법과 환상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유 쟁취의장소이기도 합니다. 예컨대 『뜻대로 하세요』의 아덴숲은 로빈 후드의셔우드숲처럼 폭군에게서 도망쳤거나 추방된 사람들의 피난처입니다.
이때의 숲은 자연과의 교감, 문명의 부당함으로부터의 해방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는데, 훗날 페니모어 쿠퍼의 ‘가죽 각반 이야기‘가 이 전통을 물려받습니다. 하지만 도망자들은 강도와 살인자이기 쉽습니다.
그중 다수가 문학과 특히 민담에 잠복해 있어요. 다시 말하지만 숲은포식자들의 영역입니다. 항시 이 점을 잊어선 안 됩니다. 빨간 망토 소녀가 늑대를 만난 곳도 어두운 숲속이었어요. - P131

넓은 평원에 사는 사람들, 또는 멀리 북쪽 수목한계선 너머에 사는사람들은 청자라기보다 응시자입니다. 거기서는 무엇이 나를 잡으러오든 들리기 전에 보이니까요. 하지만 숲에 사는 이들은 청자입니다.
그들에게는 닥쳐오는 것이 무엇이든 소리부터 들립니다. 바람 소리와빗소리가 몰을 공포에 떨게 한 것은 그 때문이었습니다.
숲 보존의 중요성에 대한 생태학 보고서를 아무리 많이 읽는다 해도, 사실 우리는 내심 숲을 무서워합니다. 그리고 숲을 경외합니다. 우리의 이런 본능이 숲의 허구적 버전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냅니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모든 이름이 사라지는 숲. 『반지의 제왕』에서 엘프가 다스리는 황금숲 로스로리엔. 여기에 잘못 들어가면 묶여버립니다. 그리고 아서왕 전설에서 마법사 멀린이 주문에 걸려 잠들어 있는숲. 이런 숲들에 너무 오래 머물다가는 내가 누군지 잊게 됩니다. 숲이매혹적으로 보여도 거기 들어설 때는 위험을 각오해야 합니다. - P132

우리가 이 성향에 완전히 굴복하면 우리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게 됩니다. 세상의 나무를 모두 베어버리면 우리도 망합니다. 인도에 이런속담이 있습니다. "숲 다음은 문명, 문명 다음은 사막. 이 공식은 인류사에서 이미 수차례 현실화됐습니다. 숲의 파괴가 토양침식과 기근으로, 급기야 식인 행위로 이어진 이스터섬의 이야기는 많은 사례 중 하나일 뿐입니다.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 숲이 지구의 기후변화를 막는 데 중요하다는 얘기를 숱하게 듣습니다. 하지만 아마존은 계속 벌목되고 있습니다. 지구의 또 다른 허파 보르네오의 숲들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길가메시의 도끼가 바삐 일하고 있고, 몇몇 신들이 흡족해합니다. 예를 들면 돈의 신들. 공짜를 홍보하고, 자연에게는 아무것도 갚지 않고 끝없이 뜯어 가도 된다는 망상을 촉하는 사람들의 신. 하지만 동물의 수호신은 우리에게 짜증이 날 대로 났습니다. 여신의 경고 중 하나는 이겁니다. "세상에 공짜란 없어." - P133

숲에 저혈압은 높이고 고혈압은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다른 연구에서는 학대 피해를 입은 어린이들이 참여했고, 결과는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이었습니다. 숲은 몸의 치유뿐 아니라 정신의 치유에도 효험이 있습니다.
‘우드랜드 트러스트‘라는 명칭은 중의적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두가지를 말합니다. 숲과 믿음. 우리는 숲에서 생경함과 두려움을 느끼는 대신 숲을 신뢰해야 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무분별한 파괴를 멈추고 우리 숲의 진면목을 알아보는 길일 것입니다. 숲은 태고의고향이고, 천연의 공기정화장치이자 기후 냉각기이고, 종들의 피난처입니다. 숲은 우리를 태양으로부터 보호하고, 마음을 치유하고, 영혼을위로하고, 세상을 열어줍니다.
엔트족 나무수염의 말을 다시 인용하며 말을 맺겠습니다. 우리의 구호로 삼아도 될 법한 말입니다. "한때 노래하는 숲이 있던 곳에 이제 그루터기와 가시덤불만 있다. 그동안 내가 게을렀다. 내가 팽개쳐두고있었어. 멈춰야 해!" - P136

카푸시친스키는 1978년에 『황제(Cesarz)』를 썼다. 이 책은 표면상으로는 에티오피아의 마지막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Haile Selassie)와 그의부패한 전제 정권의 몰락을 다룬다. 그렇게만 읽혀도 엄청난 책이다.
기자이자 문학가였던 카푸시친스키는 폴란드인 특유의 무모함을 자랑하며 스물일곱 건의 쿠데타와 혁명을 취재했다. 피난민의 물결이 분쟁을 피해 한 방향으로 흐를 때, 카푸시친스키는 매번 그 반대 방향으로, 분쟁의 한복판으로 향했다. 그는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로 들어갔고, 밤에 몰래 도시를 다니며 은거 중인 전직 조신들을 인터뷰해서 황제에 관한 일화들을 적었다. 그 일화들은 의도치 않게 웃긴것(쿠션 담당은 황제가 의자에 앉을 때마다 그의 짧은 다리가 덜렁거리지 않도록 매번 정확한 두께의 쿠션을 황제의 발밑에 밀어 넣어야 했다)부터, 소름 끼치는 것(걸인들이 궁정 연회에서 남은 음식을 먹어치웠다가 눈알이 뽑히는 벌을받았다)까지 다양했다. - P139

카푸시친스키는 평생 여행을 갈망했다. 다만 재미를 찾는 평범한 관광객은 애써 피할 곳들로 떠나기를 갈망했다. 그런 맥락에서 그가 마지막 책 『헤로도토스와의 여행에서 자기 분야의 대선배이자 원조인세계 최초의 여행 작가를 소환한 것은 매우 적절해 보인다. 소환 대상은 바로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다. 카푸시친스키가 젊은 시절 무엇보다 희구했던 것은 ‘국경을 넘는 것‘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폴란드국경을, 다음에는 넘을 수 있는 모든 국경을 넘고자 했다. 그를 추동한것은 온갖 형태의 인간성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이다. 헤로도토스처럼그도 사람들의 말을 듣고 기록할 뿐 비판하지 않는다. 그의 일생은 탐색이었다. 미션보다는 탐색이었다. 그가 찾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일단은 이국적 정황들, 문화적 차이들, 전후 폴란드에는 너무나 결 - P142

핍돼 있던 각양각색의 잡다함이었다. 그리고 그 너머의 것이었다. 그는 최악의 유혈 사태와 가학적 복수와 타락의 한복판에서도 인간공통의 선을 찾아다녔다. 우리의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어쩌면 그건 존엄성이었다. 어디서나 압제자들이 표적으로 삼지만, 결코 완전히 말살될수는 없는 단순한 존엄성. ‘아니요‘라고 말하는 품격.
그가 목격한 것들을 생각하면 카푸시친스키만큼 비관론으로 기울었을 법한 작가도 없다. 하지만 비관은 카푸시친스키가 자주 드러내던감정이 아니다. 그가 자주 표한 것은 경이감이다. 세상에 그런 것들이,
찬란하면서 동시에 참담한 것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데 대한 경이감.
헤로도토스의 여행의 끝부분에 이 한 문장이 있다. 튀르키예의 어느 박물관 내부를 묘사한 말이었지만, 우리 시대를 목격한 최고의 증인이었던 이 겸손한 남자의 묘비명으로 어울릴 법한 표현이다. 그래서이 말을 그를 기리는 말로 여기에 놓고 간다.


우리는 어둠 속에 빛으로 둘러싸인 어둠 속에 서 있다. - P143

앨리스 먼로는 명실공히 우리 시대의 대표적 영어권 소설가 중 한 명이다. 먼로는 북미와 영국의 평단에서 최상급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아왔고, 여러 문학상을 휩쓸었으며, 국제적으로 열렬한 독자층을 보유하고 있다. 작가들 사이에서도 그녀의 이름은 경건하게 일컬어진다. 최근에는 먼로의 이름이 작가들의 다양한 설전에서 적을 때리는 매로 소환되곤 한다. "이게 글이야? 앨리스 먼로 알지? 글은 그런 게 글이야!"
비판자들이 실제로 하는 말이다. 먼로에게는 더 유명하지 않은 게 이상하다는 말이 따라다닌다. 그녀가 아무리 유명해져도 이 말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중 하루아침에 일어난 건 아무것도 없다. 앨리스 먼로는 1960년대부터 글을 썼고, 그녀의 첫 번째 단편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이1969년에 나왔다.  - P157

‘정신적 황량함‘도 먼로가 상대하는 강적 중 하나다. 먼로의 인물들은숨 막히는 관습, 남들의 독한 기대, 부과된 행동 규범, 온갖 종류의 입막음, 정신적 압박에 맞서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투쟁한다. 선한 일을행하지만 진정성도 감동도 없는 사람과 행실은 나쁘지만 자기 감정에충실하고 자신에게 민감한 사람 중에서 선택하라면 먼로의 여성은 후자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전자를 택할 경우도 그녀는 나중에 자신의 약삭빠름과 교활함과 간교함과 요망함과 사악함을 논한다.
먼로의 작품에서 정직은 최선의 방책이 아니다. 정직은 방책 자체가아니다. 정직은 공기 같은 필수 요소다. 그녀의 등장인물들은 어떻게든 그것을, 적어도 어느 정도는, 확보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침몰을 예감한다. - P169

「내가 너에게 말하려 했던 것(Something I‘ve Been Meaning to Tell You)」이라는 단편에서 에트는 여동생의 애인이었던 난잡한 바람둥이가 여자들에게 던지는 눈빛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모든 공허함과 차가움과잔해를 통과해 끝없이 아래로 내려가는 심해 잠수부처럼, 자신이 염원하는 오직 한 가지를 향해서, 해저에 놓인 루비처럼 작고 귀하고 찾기힘든 것을 찾아내기 위해서 강하하는 인간처럼 보인다."
먼로의 이야기들은 이처럼 미심쩍은 탐색자와 손때 묻은 술책으로넘쳐난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통찰도 풍부하다. 어느 이야기, 어느 인간 안에도 위험한 보물이 값을 매길 수 없는 루비가 있을 수 있다. 어느 마음에도 염원이 있을 수 있다. - P174

캐나다의 생태주의 작가 어니스트 톰프슨 시튼(Ernest Thompson Seton)은 21세 생일에 기묘한 청구서를 선물로 받았다. 그것은 그의 부친이그를 키우면서 지출한 비용을 모두 기록한 장부였다. 거기에는 그가태어난 병원이 청구한 분만 비용도 있었다. 더 이상한 것은 지불자가어니스트로 돼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한때 시튼의 부친이 웃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그가 원칙적으로 맞는다면? 우리는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누군가에게 또는 무언가에 빚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빚졌을까? 누구에게? 무엇에? 그리고 어떻게 갚아야 할까? - P175

우리 모두는 공짜 펀치나 공짜 런치를 바란다. 우리는 공짜라면 뭐든 좋아한다. 하지만 마법의 주문을 장착한 경우가 아니라면 뭐라도공짜로 얻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도 안다. 이렇게 펀치는 다른 펀치를 부르기 마련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았을까? 초기 사회화-유치원에서 찰흙을 놓고 실랑이를 하다가 때리고 깨무는 싸움으로 번졌을 때 깨닫는 것의 결과일까, 아니면 인간 뇌에 내장된 템플릿일까? - P188

처음 만났을 때는 일단 우호적으로 대하고 차후에는 상대가 했던 대로 대응하는 전략, 즉 선은 선으로, 악은 악으로 갚는 전략은 경기장이 평평할 때만 승리 전략이 될 수있다. 이 대회에서는 참가 프로그램이 남보다 우수한 무기체계를 보유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만약 참가자 중 하나에게 전차나 칭기즈칸의 이중 곡선 활이나 원자폭탄 같은 이점이 허용됐다면 팃포탯은 실패했을 것이다. 기술적 우위를 가진 플레이어가 단독으로 상대들을 말살하거나, 노예로 삼거나, 그들에게 불공평한 거래 조건을 강제할 수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것이 긴긴 인류사에서 반복되어온 일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자들이 법을 만들었고, 승자의 법은 그들이 꼭대기를차지한 계층적 사회구조를 정당화함으로써 불공평을 명예의 사당에안치했다. - P19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녁에서 새벽까지(From Eve to Dawn)』는 매릴린 프렌치 (Marilyn French)가 쓴 총 네 권, 2000여 페이지의 방대한 여성사다.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관통하고, 지역적 범위도 전 세계를 망라한다. 가장 짧은 제1권만 해도 페루·이집트·수메르·중국·인도·멕시코·그리스·로마를 다루고, 유대교부터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아우른다. 이 책은 법과 조치뿐 아니라 그 이면의 사상까지 살핀다. 이 책은 때로 헨리 필딩(HenryFielding)의 『어밀리아(Amelia)』가 짜증스러운 이유와 같은 이유로 짜증스럽다. 끔찍한 장면은 그만 좀! 거기다 때로는 미치도록 환원주의적이다.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저작이다. 참고 서적으로 더없이 유용하다. 참고 문헌 목록만으로도 값어치를 한다. 무엇보다 인간행동과 남성 엽기성의 끔찍한 극단들에 대한 일종의 경고로서 불가결한 가치를지닌다. - P52

특히 지금 그 가치를 발한다. 지난 1990년대 초, 사람들이 역사가 최종 단계에 이르렀고, 유토피아가 (쇼핑몰과 매우 유사한 모습으로 도래했으며, ‘페미니스트 이슈들‘이 모두 해결됐다고 믿었던 순간이 있었다.
그 순간은 매우 짧았다. 현재 이슬람 근본주의와 미국 극우파가 세를불리고 있고, 둘의 최우선 목표 중 하나가 여성 억압이다. 여성의 육체,
생각, 노동의 결과에 대한 억압,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여성의 옷차림에 대한 억압.
저녁에서 새벽까지』는 특징 관점을 가진다. 베스트셀러였던 프렌치의 1977년 소설 ‘여자의 방(The Women‘s Room)』을 읽은 독자에게는 친숙한 관점이다. 프렌치는 주장한다. "여자들을 억압한 사람들은 남자들이었다. 모든 남자가 여자를 억압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이 이 지배에서 이득을 얻었고(또는 이득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막거나 완화하기위한 어떤 일도 하지 않은 이들을 포함해 대부분이 거기에 가담했다." - P53

이 책을 읽는 여자들은 경악과 분노에 빠지게 된다. 저녁에서 새벽까지」를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의 『제2의 성』에 비교하는 것은 늑대를 푸들에 비교하는 것과 같다. 이 책을 읽는 남자들은 남성 집단을 악랄한 사이코패스로 묘사한 데에 기겁하거나 "남자들은 그들의 성별이 지금껏 한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프렌치의 발상에 당황할지 모른다. (수메르의 군주들, 이집트의 파라오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대해 내가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한단 말인가?) 분명한 것은 누가 이 책을 읽든 사정없이 쏟아지는 디테일과 사건들의 홍수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수천 년 분량의 기이한 관습들, 여성 혐오적인 법체계들, 여성의학의 부조리들, 아동학대, 허가된 폭력, 성적 잔학 행위들. 이것들을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 P53

심리학에서 말하듯, 사람들을 학대할수록 그들이 학대당해 마땅한이유가 절실해진다. 그런 필요에서 여성의 ‘천부적‘ 열등함에 대한 저술이 쏟아졌다. 그중 대부분이 서구사회를 사상적으로 떠받쳤던 철학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의 머리에서 나왔다. 프렌치의 놀랍도록 절제된표현에 따르면 이 같은 남존여비 사고방식은 대개 여성의 생식에 대한 남성의 집요한 관심‘에 기초했다. 남자의 자긍심은 자신이 여자가아니라는 데 달려 있었고, 그럴수록 여자들은 가급적 ‘여성스러워야‘
했다. 심지어 남자가 만든 ‘여성‘의 정의에 남자를 더럽히고 유혹하고약화시키는 힘이 포함돼 있을 때조차, 아니 그럴 때일수록 여자들은더더욱 ‘여성‘이어야 했다. - P55

자유, 평등, 박애‘는 여자들을 포함하지 않았다. 나폴레옹이 정권을잡았을 때 "그는 여자들이 얻어낸 권리를 모두 무효화했다. 하지만 이때 이후로 "여자들은 다시는 침묵하고 있지 않았다". 구질서 타도에 참여한 대가로 그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몇 가지라도 원했다.
제3권 지옥과 천국(Infernos and Paradises)』과 제4권 『혁명과 정의를위한 투쟁(Revolutions and the Struggles for Justice)』은 19세기와 20세기에 제국주의, 자본주의, 두 번의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전개됐던 여성해방운동을 두루 관통하면서 그 소득과 실패, 승리와 역풍을 고찰한다. 러시아혁명이 특히 흥미진진했다. 이때 혁명 성공의 핵심은 여자들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유난히 암담했다. 프렌치에 따르면 "성적 해방은 남자들에게는 자유를, 여자들에게는 모성을 의미했다. ・・・) 책임 없는 섹스를 원하는 남자들은 자신들을 거부하는 여자들에게 ‘부르주아적 내숭‘이라는 죄를 덮어씌웠다. (……)  - P57

하지만 프렌치는 페미니스트든아니든 여자들은 모두 "경로만 다를 뿐 결국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믿는다.
이 낙관론을 공유할지 여부는 지구라는 타이타닉호가 이미 가라앉고있다고 믿는지에 달려 있다. 모두가 공평한 기회와 재미를 누리는 무도장은 아름답다.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현실은 어쩌면 구명보트 탑승을 위한 쟁탈전에 가깝다. 프렌치의 결론을 어떻게 평가하는그녀가 제기하는 이슈들은 간과할 수 없다. 여자들은 부차적인 존재가아니다. 여자들은 회전하는 권력의 바퀴에서 필연적 중심이다. 달리표현하면 여자들은 꼭대기의 과두 권력자들을 지탱하는 삼각형의 넓은 밑면이다. 프렌치의 책을 읽은 뒤에는 앞으로 어떤 역사서를 읽든다시는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 P58

일장 연설을 생략해도, 지시 사항을 줄줄이 읊어주지 않아도그들은 무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도 마지막 말은 환영한다. 마지막말은 충고가 아니라 축복이니까.
잘 가거라. 내 축복이 네 안에서 피어나기를.
젊은이들은 항해에 나서며 당신의 배웅을 바란다. 그 항해는 어쨌거나 그들 스스로 해내야 하는 항해다. 위험한 항해가 될 수도 있다. 당신의 위험 대처 능력이 그들보다 나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당신이 항해를 대신 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신은 뒤에 남을 수밖에 없다. 손을흔들어 격려하면서 걱정스럽게 조금은 서글프게 잘 가거라! 잘 가!
그들은 다만 당신의 호의를 원한다. 그들은 축복을 원한다. - P67

‘누군가의 딸‘은 이누이트의 전통 바느질을 배울 기회가 전혀 없었던 20대, 30대, 40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다. 참가자 대부분이 비극적사건, 폭력, 가족과의 분리를 겪었다. 버너뎃은 내게 프로그램 명칭을이렇게 설명했다. "모두가 아내인 것도 아니고, 모두가 엄마인 것도 아니고, 모두가 할머니도 아니지만, 모든 여성은 누군가의 딸입니다." 이명칭은 참가자 모두에게 즉각적인 소속감을 부여한다.
‘딸들‘은 원로 겸 교사들과 함께 대지로 나간다. 그들은 텐트에서 생활하며 옛날 방식으로 옷을 짓는다. 먼저 동물 가죽을 긁고 늘여서 부드럽게 만들고, 이누이트 여성이 쓰는 울루라는 곡선 모양의 칼로 재단해서 동물 힘줄로 꿰맨다. 힘줄은 최고의 실이다. 물이 닿으면 팽창해서 옷에 물이 새어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이 기술을 배우는 뿌듯함은말로 표현하기가 힘들 정도다. - P70


북방의 누군가가 세상의 모든 여자들에게 당신이 어떻게 생긴 사람이든 당신은 매우 특별해요. 이 말을 늘 마음에 간직해줘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배움은 배우는 사람이 안전하고 평안하게 느낄 때 시작됩니다. 안전하고 평안한 분위기를 제공하세요. 그리고 계속 노력해요!


응원의 메시지를 쓰는 것은 쓰는 사람에게도 응원이 된다. 크고 둥근 텐트는 그 안의 여성들에게 안전과 평안과 치유의 장소가 됐고, 글쓰기도 그들 대부분에게 안전과 평안과 치유의 장소가 됐을 것으로 믿는다. 여성들은 텐트 안에서, 그리고 글쓰기 안에서 웃고, 농담하고, 이야기하고, 때로는 슬퍼했다. 들은 바에 따르면 이 문화에서는 슬퍼하는 일도 큰 소리로, 남들과 함께 행해야 했다. 이 방식을 통해 애도가치유로 이어진다. - P74

‘무엇‘을 아는 것과 ‘어떻게‘를 아는 것은 별개입니다. ‘어떻게‘는 다년간의 연습과 실패에서 옵니다. "어떻게‘는 모자가 낳을 달걀을 수없이 떨어뜨리고, 제1장을 스무 번째 구겨서 휴지통에다 던진 끝에 실현됩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도 『보물섬』을마법처럼 불러내기 전에 다 쓴 원고를 세 번이나 불태웠습니다. 그때소각된 소설들은 그가 떨어뜨린 세 개의 달걀이었습니다. 하지만 깨진달걀이 헛된 낭비는 아니었습니다. 그것들을 떨어뜨린 덕분에 다음 달걀을 감쪽같이 나타나게 하는 방법을 익힌거니까요. - P78

다음은 앨리스 먼로(Alice Munro)의 「코르테스섬(Cortes Island)」이라는 단편에 있는 내용입니다.


내가 독자뿐 아니라 작가도 되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학생용 공책을사서 글을 써봤다. 실제로 썼다. 그것도 여러 페이지나 처음에는 웅장하게 시작했다가 이내 시들해졌다. 결국 페이지들을 찢어내 중벌을내리듯 비틀어서 휴지통에 버려야 했다. 나는 이 짓을 하고 또 했다.
공책에 표지만 남을 때까지. 그 후 공책을 하나 더 사서 이 과정을 고스란히 반복했다. 동일한 순환. 흥분과 절망, 흥분과 절망. 매주 비밀임신과 유산을 반복하는 것 같았다.
완전한 비밀은 아니었다. 체스는 내가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쓰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내 용기를 꺾지 않았다. 그는 글쓰기를 내가 무리 없이 배울 수 있는 일로 생각했다. 브리지 게임이나 테니스처럼,
힘든 연습이 필요하겠지만 숙달할 수 있는 일로 여겼다. 나는 그의 이너그러운 믿음에 감사하지 않았다. 그것은 내 재앙의 촌극 일화를추가했을 뿐이다.


화자도 그녀의 남편 체스도 모두 옳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할 수있다. 이것이 체스의 관점입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까지만 그렇습니다. - P81

저는 1995년 4월 4일까지 그레이스」의 177 페이지를 썼고, 1995년9월까지 395 페이지를 썼어요. 이렇게 느리지만 꾸준히 전진했어요. 계속고쳐 써가면서요. 1996년 1월에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고, 그 시점에아일랜드에 갔고, 병이 났어요. 한동안 치열하게 매달리던 일이 끝나면종종 일어나는 일이죠. 몸이 원하는 휴식을 주지 않으면, 몸이 참고 참다가 마침내 숨 돌릴 틈이 생겼을 때 이때다 하고 복수하는 거예요.
방법론으로 돌아갑시다. 대체로 저는 처음에는 글을 천천히 씁니다.
동굴로 더듬더듬 길을 찾아 들어가는 것처럼요. 이후 속도를 올리고쓰는 시간도 늘려가다가 마지막에는 하루 여덟 시간씩 씁니다. 걸을때 허리가 꺾이고 눈이 가물거리는 상태가 되죠이방법은 추천하지않습니다. 차라리 수영이나 스피드스케이팅이나 볼룸댄스 선수권대회에 나가세요. 그게 낫습니다. 글쓰기보다는 그게 건강에 좋아요. 제가가장 되기 싫은 게 롤모델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제 방식에 대해 말한어떤 것도 본보기로 삼지 마세요. - P89

신경과학에서 ‘영혼‘을 그저 뇌의 환각작용으로 본다는 것은 논외의문제다. 그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이 뇌의 환각작용이다. 육체도 예외가 아니다. 즉 우리에게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면 영혼을 실제로 갖는것과 진배없다. 세상에 대한 생각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는 자기계발서의 상투적 문구가 결국 진리인 걸까? 우리는 복제본이 원본인 것처럼, 그것이 보전하고 개선할 가치가 있는 것처럼 살아야 한다. 우리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에. 마크도 결국 이렇게 말한다. "그게 그거야………. 내 말은, 우리. 너. 나. 여기…… 이 모든 것을 뭐라 부르든, 진짜와 다를바 없어." - P108

오늘 저녁 찰스 소리올 환경 만찬회(Charles Sauriol Environmental Dinner)에 함께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 만찬회의 수익금은 오크리지스 모레인 랜드 신탁(Oak Ridges Moraine Land Trust)과 토론토 지역환경보존재단(Toronto and Region Conservation Foundation)에 전달됩니다.
이 두 단체는 서로 연대해 지금까지 수천 에이커의 땅을 보호했습니다. 이 단체들이 전개하는 운동은 현재 인지도, 효과성, 지지 기반 모두성장세에 있습니다. 이 운동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참나무의 시작은 작은 도토리였고, 작은 도토리 없이는 참나무도 없으며, 지상의 모든 나무와 (우리 같은 언어 사용 이족보행 동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은 토양과 물,
깨끗한 공기, 정보에 기반한 신중한 배려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무수히 많은 고민들과 자원봉사 활동이 이단체들에 투입됐습니다. - P110

이런 단체들의 노력이 성공을 거두게 되면 우리는 한가지가 아니라정말 여러 면에서 숨 쉬기가 편해집니다. 거대한 투쟁-지구온난화와그것이 야기하게 될, 그리고 이미 야기하고 있는 대대적 파괴에 맞선투쟁에 일조했다는 뿌듯함을 느끼게 될 겁니다. 밤에 잠을 푹 자게될 겁니다. 기침을 덜하게 될 테니까요. 그렇게 희망해봅니다.
저는 정치인이 아닙니다. 제가 정치적으로 뜨거운 감자가 된 사안에대해 이렇게 연설하는 것이 의아할 수도 있어요. 여러 의미에서 뜨거운문제죠. 나사(NASA)를 비롯해 지구적 현상들을 계측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지금지구는 지난 수천 년 중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고 합니다. 여기서 더 뜨거워지면 당장 우리는 돌아올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됩니다.
"아, 그 마거릿."사람들은 때로 말합니다. "그 여자는 픽션 작가에 불과해." 맞습니다. 저는 픽션 작가이고, 그 점이 지구온난화를 둘러싼 진실이냐 허구냐의 공방에서 저에게 엄청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일부 정치인들과 달리 저는 진실과 허구의 차이를 알거든요. 제가 작년에 영국문학잡지 『그랜타(Granta)』에 글을 썼습니다. 이번 글은 논픽션이고,
주제는 북극 빙하가 녹는 문제였습니다. 제 눈으로 직접 본 일이었습니다. - P111

변화는 소비자 개개인의 선택이 만드는 것이며, 거기서 정부는 빠져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공해를 일으키는 낙엽 청소기를 사는 것도, 매연을 뿜어내는 대형 차량을 모는 것도 다 개인의 선택이며, 반대로 양심적이고 친환경적인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위해 남보다 돈을 더 쓰겠다면(친환경은 돈이 더 들 때가 많아요) 그것 역시 개인의 선택이라는 거죠.
하지만 그것은 바람직한 친환경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벌주고 나머지는 눈감아주는 일입니다.
공기, 땅, 물은 공동의 재산이며 공동으로 보호해야 합니다. 자연이보호되면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고, 보호되지 못하면 모두가 고통받습니다. 이 특수한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들기 위한 입법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P119

옛이야기로 말을 맺겠습니다. 미다스왕은 신이 소원을 말하라고 했을 때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는 그저 재물만을 원했어요. 그래서 자기손이 닿는 것마다 금으로 변하게 해달하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금으로 변했습니다. 음식도 먹으려 하면 금이 되고, 물도 마시려 하면 금이 됐습니다. 그는 굶어 죽었습니다.
세상에는 돈이 아닌 종류의 부도 많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것을 금으로 바꾸는 대신, 아직 우리에게는 금을 다시 예전의 4원소-생명에필요한 것들로 되돌릴 기회가 있습니다. 좋은 물, 맑은 공기, 건강한토양, 깨끗한 에너지. 우리 모두가 남은 기회를 잘 이용하길 바랍니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잡아야 합니다. - P120

삼림부 100주년을 기념하는 헌사를 하게 돼 영광입니다. 제 연설은 세부분으로 구성됩니다. 각각이 뭔지도 알려드리죠. 무슨 말이 나올지아실 수 있게요.
1부는 나무와 숲에 얽힌 제 배경을 소개합니다. 2부는 나무와 숲의신화적 상징적 의미를 논합니다. 3부는 숲이 사라져가는 세상에서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실제로 얼마나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을까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삼림부와 오랜 인연이 있습니다. 숲과의 인연도 깊습니다. 딱히 제가 선택한 인연은 아니었지만요. 올 3월에 저는 우연찮게 오키나와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희귀종인 오키나와뜸부기를 보기 위해 섬 북부의 얀바루숲으로 향하는 길이었습니다. 결국 뜸부기는 보지 못했어요. 그런데 가는 길에 심각한 상태의 침염수림을 봤습니다.  - P121

옛날이야기에서는 숲을 베는 것이 금기 위반으로 등장할 때가 많습니다. 심지어 어떤 숲은 신성시됩니다. 그렇다면 숲이 어떤 신에게 봉현됐다는 걸까요? 나무를 베도 베지 않아도 누군가와 문제가 생깁니다. 야훼는 숲을 베길 원하고, 달의 여신 아스다롯은 숲이 서 있길 원합니다.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는 숲의 여신이자 동물의 수호신이기도 합니다. 숲을 파괴하는 것은 대개는 목초지를원하는 목부나 경작지를 원하는 농부의 편에 서서 야생동물을 공격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동물의 수호 여신을 너무 화나게 하면 무서운 후환이 따릅니다. 그녀는 역병을 보내는 신이기도 하거든요. 에볼라, 마르부르크병, 에이즈 같은 중간 전파 전염병들을 떠올려보세요. 서식지파괴로 인해 원래의 숙주들이 사라지자 새로운 숙주들-우리들을찾아 이동한 병원체들 말이에요. - P12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거릿 애트우드Margaret Atwood

소설가, 시인, 에세이스트, 문학비평가 1939년 11월 18일 캐나다 오타와에서 태어났다. 시집 서클 게임(The Circle Game)」(1964)과 소설 먹을 수 있는 여자」(1967)로 이름을 알린 이래, 장르를 뛰어넘는 빼어난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대표작으로 소설 시녀 이야기」 「고양이 눈 도둑 신부, ‘그레이스」와 ‘미친 아담‘ 3부작 등이 있으며, 눈먼 암살자 (2000)와
증언들(2019)로 두 차례 부커상을 받았다. 이 외에도 아서 C. 클라크상,
프란츠 카프카상, 독일도서전 평화상, 미국PEN협회 평생공로상, 데이턴문학평화상 등을 수상했고, 노벨 문학상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다. 화가, 일러스트 작가, 오페라 작사가, 극작가, 인형극 공연자로도 활동한 애트우드는 현존하는 가장 치열한 작가이자 독자로서 ‘타오르는 질문들‘을 세계에 던지고 또 답하며, 현재 캐나다 토론토에 살고 있다.

「타오르는 질문들』은 나의 세 번째 에세이 및 조각글 모음집이다. 첫번째 모음집인 『두 번째 말(Second Words)』은 내가 서평을 쓰기 시작했던 1960년에서 시작해 1982년에서 끝난다. 두 번째 모음집 『움직이는표적들(Moving Targets)』은 1983년부터 2004년 중반까지 쓴 글들을 모았다. 그리고 이번 『타오르는 질문들』은 2004년 중반부터 2021년 중반까지 이어진다. 각 권에 대략 20년씩 묶인 셈이다.
각기 나름대로 격동의 시기였다. 조각글은 특정 경우를 위해 쓴 글이기 때문에 저마다의 시간과 장소에 밀접히 연결돼 있다. 적어도 내글들은 그렇다. 또한 이 글들은 당시의 내 나이와 외적 환경에 유기적으로 엮여 있다. (내게 벌이가 있었나? 학생 때였나? 원고료가 필요했나? 나는그때 이미 내 관심사에 매진하던 유명 작가였나? 도와달라는 외침에 붙잡혀 공짜글을 써주는 중이었나?) - P11

1960년의 나는 스무 살의 독신이었고, 책을 출간해본 적도 없고, 입는 옷만 입는 대학생이었다. 2021년의 나는 알려질 만큼 알려진 81세의 작가이고, 할머니이자 과부다. 입는 옷은 여전히 한정적이다. 실패한 실험들을 통해 내가 입지 않는 게 좋은 옷들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당연히 나는 변했다. 예컨대 머리색이 달라졌다. 하지만 세상도 변했다. 지난 60여 년은 충격과 격변, 소동과 반전으로 가득한 롤러코스터였다. 1960년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15년밖에 안 됐던 때였다.
우리 세대에게 그 전쟁은 매우 가깝게 느껴졌다. 어쨌거나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있을 때 벌어진 일이었고, 집집에 귀향 군인과 사상자가 있었고, 우리 고등학교 선생님들 중 일부가 참전했다. 동시에 매우 멀게느껴지기도 했다. 1950년과 1960년 사이에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드러낸 매카시즘이 왔는가 하면, 노래와 춤의 개념을 뒤집어버린 엘비스도왔다. 옷도 극과 극을 달렸다.  - P12

1980년대는 미국에서 로널드 레이건의 당선과 종교적 우파의 득세로 시작됐다. 우리는 농장에서 토론토로 이사했다. (아이의 학교 문제가가장 큰 이유였다. 나는 1981년에 시녀 이야기』의 구상에 들어갔지만1984년까지 집필을 연기했다. 이때는 콘셉트가 억지스럽게 느껴졌던탓이다. 한편 내 ‘조각글쓰기‘의 출력 속도는 올라갔다. 아이가 학교에들어가면서 낮에 여유 시간이 생기기도 했고, 원고 청탁도 늘어났기때문이다. 산발적이고, 두서없고, 별반 유용하지도 않은 이때의 일기를 - P14

보면, 후렴처럼 등장하는 라이트모티프 중 하나가 일이 너무 많은 것에 대한 지속적인 앓는 소리다. "멈춰야 해." 나도 모르게 하는 말이다.
그때 내가 쓰던 글들의 일부는 도움 요청을 거절하지 못한 결과였고,
이 양상은 지금껏 이어진다.
"그냥 싫다고 해." 사람들이 내게 말했고, 나도 내게 말했다. 그러나1년에 에세이 열 편을 청탁받고 그중 90퍼센트를 거절하면 1년에 한편이 남지만, 400건의 원고 청탁을 받으면 90퍼센트를 거절해도 (그러려면 얼마나 단호하고 도도해야 하는가!) 여전히 40편이 남는다. 나는 지난20년 동안 매년 평균 40편씩 썼다. 거기가 내 한계다. 멈춰야 해. - P15

우리의 연대기를 이어가자. 1989년에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면서 냉전과 소련 붕괴했다. 누군가는 우리가 드디어 역사의 종언"에 도달했다고 했다. 자본주의가 팽창일로였고, 쇼핑이 세상을 지배했으며, 어떤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하느냐가 개인을 규정했다. 여자들이 여기서 무엇을 더 바라겠어? ‘소수집단들‘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야. 내 스파이들의 전언에 따르면, 캐나다의 정치인과 정부 관료가 소수자들‘을 부르는 말은 ‘멀티에스(multi-eths, 영어와 프랑스어가 아닌 언어를 쓰는 사람들)‘와 ‘비지민(visi-mins, 백인이 아닌 사람들)‘이었다. 천만의 말씀이었다. - P15

왜 이런 제목인가? 21세기까지 우리를 따라온 문제들은 이제 화급을다투는 문제들이 됐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시대가 당대의 위기를 두고 같은 생각을 한다. 하지만 확실히 우리 시대의 위기는 차원이 다르다. 우선, 지구, 세상 자체가 정말로 타오르고 있는가? 세상에 불을 질러온 것이 우리인가? 그럼 우리가 불을 끌 수도 있을까?
그리고 지극히 불평등한 부의 분배. 부의 양극화가 북미뿐 아니라사실상 전 세계에서 격화되고 있다. 이렇게 꼭대기만 무거운 불안정한구조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참다못한 하위 99퍼센트가 마침내 상징적 바스티유로 쳐들어가 불을 지르기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그리고 민주주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는가? 애초에 ‘민주주의‘
는 무슨 의미일까? 모든 시민이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의미라면 그런 상태가 실제로 존재한 적이 있기는 한가? 우리가 모두에 관심이 있기는 한가? 모든 젠더, 모든 종교, 모든 민족에?  - P16

예를 들어 이때의 모두는 모든 말을 뜻할까? 일각에서 입버릇처럼
‘창작자(the creatives)‘로 불리는 사람들은? 작가들과 글쓰기는? 그들우리들은 이른바 사회 친화적인 말들, 용인된 상투어들만 늘어놓는스피커에 불과한가? 아니면 우리에게 뭔가 다른 역할이 있을까? 만약그게 남들이 못마땅해하는 역할이라면 우리의 책들은 불태워질까? 그런 일이 없으리란 보장은 없다. 전에도 있었던 일이다. 책에 있어서 본질적 신성불가침이란 없다.
이것들은 지난 20년 동안 내가 남들에게 받았던, 그리고 스스로 던졌던 타오르는 질문들 중 일부다. 이 책에 내 답변들이 있다. 아니, 답변의 시도들이라고 해야 할까? 에세이‘란 결국 그런 거니까. 시도. 노력. - P17

나는 타오르는 질문들을 역사적 환경운동가 레이철 카슨과 배리로페즈에 대한 글들로 마무리한다. 지구에 붙어사는 우리의 미래가 갈수록 불확실해지는 지금, 두 사람의 저서가 가지는 의미가 갈수록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에게 기후 위기를 앞서 경고했던 카슨과 로페즈 같은 선각자들을 오늘날 그레타 툰베리가 대표하는 젊은 포스트밀레니얼 세대 운동가들이 계승하고 있다. 레이철 카슨의 책이 처음출판된 20세기 중반에는 부정하고, 회피하고, 미루는 것이 속 편했다.
하지만 이제 더는 발을 뺄 수 없다. 우리가 계속 지구의 종(種)으로 남고 싶다면 그렇다.
얼마 안 가 포스트밀레니얼 세대가 성장해 결정권자의 자리에 앉게된다. 그때 그들이 주어진 권력을 현명하게 쓰기를 희망한다. 그리고서둘러주기를 - P22

칼턴대학교 저널리즘 &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의 칼턴 강연에 연사로초대받은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보아하니 제가 네 번째 연사이고, 제 앞에 저명한 남성 연사 세 분이계셨네요. 저는 숫자 4가 늘 찝찝합니다. 숫자 3을 선호하지요. 그래서찝찝한 4를 두 세트로 나눴습니다. 첫 번째는 남성만 포함하고 저를 배제하는 행운의 3인조이고, 두 번째는 여성만 포함하는 세트로, 회원이현재 딱 한 사람 있는데 마침 그게 접니다. 따라서 저는 조만간 회원이늘어날 두 번째 세트의 첫 번째 회원입니다.
이것이 오늘 저녁의 페미니즘입니다. 보시다시피 서두에 페미니즘과 말장난을 교묘히 섞었습니다. 여러분이 너무 위협을 느끼지 않게요. 사람들이 왜 제게 위협을 느끼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우선 저는 키가 작아요. 나폴레옹 이후로는 키 작은 사람이 위협적이었던 적 - P25

이 별로 없잖아요. 둘째, 저는 아이콘입니다. 당연히 아시겠지만 아이콘 대접은 사실상 죽은사람 취급입니다. 그런 사람이 할 일은 공원에꼼짝 않고 서서 비둘기가 어깨에 앉고 머리에 똥을 싸는 동안 청동으로 변해가는 것뿐입니다. 셋째, 저는 전갈자리입니다. 점성술에서 착하고 다정하기로 유명한 별자리죠. 우리는 어둡고 평화로운 신발 속에서조용히 사는 것을 좋아해요. 아무런 말썽도 부리지 않아요. 누군가 누런 발톱을 앞세운 거대한 마당발을 우리 위에 우격다짐으로 쑤셔 넣지만 않으면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밟지 않는 이상 건드리지 않아요. 하지만 밟히면 결과를 책임질 수 없습니다. - P26

여기서 우리는 앞서 말한 노드, 즉 과학과 허구 사이의 접점으로 돌아옵니다. 저는 가끔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과학에 반대하십니까?"신기한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과학에 반대한다니, 무엇의 편에서무엇을 반대한다는 건가요? 우리가 ‘과학‘이라고 부르는 것이 없다면우리 중 많은 수가 천연두로 죽었을 겁니다. 결핵은 말할 것도 없고요.
저는 과학자들 손에 컸습니다. 그들이 어떤지 잘 알아요. 저 자신도 과학자가 될 뻔했습니다. 문학에 납치되지 않았다면 그렇게 됐을 거예요. 친한 친척 중 일부도 과학자입니다. 그들은 프랑켄슈타인 박사 같지 않아요.
하지만 과학이란 앞서 말했듯 지식에 관한 것입니다. 반면 픽션은감정에 관한 것입니다. 과학 자체는 사람이 아니며, 가치관이 내장돼있지도 않습니다. 그 점에선 토스터와 다를 게 없습니다. 과학은 도구일 뿐입니다. 우리가 욕망하는 것을 실현하고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을막는 도구. - P38

우리가 무엇을 원하느냐고요? 여기 그 목록의 일부를 대자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금이 끝없이 솟는 지갑을 원합니다. 우리는 젊음의 샘을 원합니다. 우리는 날기를 원합니다. 말만하면 절로 진수성찬이 차려지고 나중에는 싹 치워지는 식탁을 원합니다. 급료를 줄 필요 없는투명인간 하인을 원하고, 한 걸음에 백 리를 갈 신발을 원합니다. 투명망토를 원합니다. 남들을 몰래 염탐하게요. 절대 빗나가지 않을 적들을 철저히 박살낼 무기를 원합니다. 불의를 처벌하길 원하고, 권력을원합니다. 재미와 모험을 원하고, 안전과 안보를 원합니다. 우리는 불사(不死)를 원합니다. 성적 매력이 넘치는 애인들을 떼로 원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기를, 그 사랑에 충실하기를 원합니다. - P39

우리를 공경하고, 차를 몰고 나가서 박살 내지 않을 귀엽고 똑똑한아이들을 원합니다. 음악과 기막힌 향기들과 멋진 시각적 사물들에 둘러싸이기를 원합니다. 너무 덥지 않기를, 너무 춥지 않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춤추고 싶습니다. 숙취 없이 술을 퍼마시고 싶습니다. 동물과대화하고 싶습니다. 부러움을 사고 싶습니다. 우리는 신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지혜를 원합니다. 희망을 원합니다. 선함을 원합니다. 그래서우리는 때로 스스로에게 우리 욕구의 어두운 면을 다룬 이야기들을 들려줍니다.
우리에게 오직 도구들에 대해서만, 그것들의 사용법과 생산과 유지보수에 대해서만 가르치고 그것들이 우리의 욕망들을 어떻게 지원하는지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는 교육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토스터 수 - P39

리 학교와 다를 게 없습니다. 세계 최고의 토스터 수리공이 되면 뭐 하나요. 토스트가 더 이상 아침 식사 메뉴에서 각광받지 못하게 되면 밥줄이 끊길 텐데요. ‘예술‘은 장식이 아닙니다. 예술은 문제의 본질입니다. 예술은 우리 마음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며, 우리의 기술적 창의성은 우리의 지성뿐 아니라 정서에 의해서도 생성되기 때문입니다. 예술이 없는 사회는 거울을 깨고 자기 심장을 도려냈을 겁니다. 그럼 인간의 모습이 지금 우리가 아는 모습은 아니겠죠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가 오래전에 말했듯, 인간의 상상이 세상을 움직입니다. 처음에는 인간 세계만움직였습니다. 한때 인간 세계는 주위를 둘러싼 거대하고 막강한 자연 세계에 비해 정말 작았습니다. 지금은 날씨를 제외하면 우리가 통제 못 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갖가지 방식으로 우리를 조종하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입니다. 문학은 인간 상상의 발설 또는 표출입니다. - P40

하지만 이 책은 내내 획기적이었다. 북극 탐험역사의 전기적 사건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막대하게 기여했다. 또한이 책은 우리를 오래 매혹해온 이야기에 대한 헌사다. 프랭클린 전설은 이야기가 취할 수 있는 온갖 형태로 전해져온 이야기였다. 그것은미스터리, 가설 루머였고, 전설, 영웅담, 국가적 우상화였다. 그리고 이책 「얼어붙은 시간」에서는 흥미진진한 탐정물이 된다. 실화이기에 더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 P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