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도 나쁜부류의 나무를 만납니다. 오즈로 가는 길에 있는 ‘싸우는 나무들‘의 숲이 도로시 일행을 지나가지 못하게 막지만, 양철나무꾼이 괴수 나무들에게 과감히 도끼를 휘둘러 길을 낸 덕분에 겨우 빠져나와요. 또한 ‘해리 포터‘ 시리즈에는 강력한 파괴자‘후려치는 버드나무‘가 나옵니다. 나쁜 나무에도 다 화려한 족보가 있어요. 단테의 신곡은 미로 은유로 시작합니다. - P130
우리 인생 여정의 한가운데서 나는 곧은 경로를 잃고 어두운 숲속을 헤매고 있었다.
얼마나 울창하고, 험하고, 뒤엉킨 숲이었는지말로 다 할 수 없고 생각만 해도 그때의 두려움이 되살아난다!
추정컨대 이 숲은 과오와 죄, 정도(正道) 이탈을 상징합니다. 숲은 길을 잃고 헤매는 곳입니다. 옛날에는 숲에서 길을 잃는다는 것은 굶주림이나 추위로 죽거나 들짐승의 먹이가 되는 것을 뜻했습니다. 지금도전혀 아니라고는 못 합니다. 오늘날은 숲에 가는 것을 테디 베어의 피크닉(The Teddy Bears Picnic)』을 구경하는 것쯤으로 생각하는데, 조심하세요. 그러다 본인이 테디 베어의 피크닉이 될 수 있어요. 너무 오래 얼쩡대면 충분히 가능성 있습니다. - P130
셰익스피어의 숲은 단테의 숲만큼 무시무시하진 않지만 그렇다고가볍고 밝지만도 않습니다. 때로는 『한여름 밤의 꿈』의 숲처럼 초인적존재들이 사는 마법과 환상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유 쟁취의장소이기도 합니다. 예컨대 『뜻대로 하세요』의 아덴숲은 로빈 후드의셔우드숲처럼 폭군에게서 도망쳤거나 추방된 사람들의 피난처입니다. 이때의 숲은 자연과의 교감, 문명의 부당함으로부터의 해방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는데, 훗날 페니모어 쿠퍼의 ‘가죽 각반 이야기‘가 이 전통을 물려받습니다. 하지만 도망자들은 강도와 살인자이기 쉽습니다. 그중 다수가 문학과 특히 민담에 잠복해 있어요. 다시 말하지만 숲은포식자들의 영역입니다. 항시 이 점을 잊어선 안 됩니다. 빨간 망토 소녀가 늑대를 만난 곳도 어두운 숲속이었어요. - P131
넓은 평원에 사는 사람들, 또는 멀리 북쪽 수목한계선 너머에 사는사람들은 청자라기보다 응시자입니다. 거기서는 무엇이 나를 잡으러오든 들리기 전에 보이니까요. 하지만 숲에 사는 이들은 청자입니다. 그들에게는 닥쳐오는 것이 무엇이든 소리부터 들립니다. 바람 소리와빗소리가 몰을 공포에 떨게 한 것은 그 때문이었습니다. 숲 보존의 중요성에 대한 생태학 보고서를 아무리 많이 읽는다 해도, 사실 우리는 내심 숲을 무서워합니다. 그리고 숲을 경외합니다. 우리의 이런 본능이 숲의 허구적 버전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냅니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모든 이름이 사라지는 숲. 『반지의 제왕』에서 엘프가 다스리는 황금숲 로스로리엔. 여기에 잘못 들어가면 묶여버립니다. 그리고 아서왕 전설에서 마법사 멀린이 주문에 걸려 잠들어 있는숲. 이런 숲들에 너무 오래 머물다가는 내가 누군지 잊게 됩니다. 숲이매혹적으로 보여도 거기 들어설 때는 위험을 각오해야 합니다. - P132
우리가 이 성향에 완전히 굴복하면 우리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게 됩니다. 세상의 나무를 모두 베어버리면 우리도 망합니다. 인도에 이런속담이 있습니다. "숲 다음은 문명, 문명 다음은 사막. 이 공식은 인류사에서 이미 수차례 현실화됐습니다. 숲의 파괴가 토양침식과 기근으로, 급기야 식인 행위로 이어진 이스터섬의 이야기는 많은 사례 중 하나일 뿐입니다.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 숲이 지구의 기후변화를 막는 데 중요하다는 얘기를 숱하게 듣습니다. 하지만 아마존은 계속 벌목되고 있습니다. 지구의 또 다른 허파 보르네오의 숲들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길가메시의 도끼가 바삐 일하고 있고, 몇몇 신들이 흡족해합니다. 예를 들면 돈의 신들. 공짜를 홍보하고, 자연에게는 아무것도 갚지 않고 끝없이 뜯어 가도 된다는 망상을 촉하는 사람들의 신. 하지만 동물의 수호신은 우리에게 짜증이 날 대로 났습니다. 여신의 경고 중 하나는 이겁니다. "세상에 공짜란 없어." - P133
숲에 저혈압은 높이고 고혈압은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다른 연구에서는 학대 피해를 입은 어린이들이 참여했고, 결과는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이었습니다. 숲은 몸의 치유뿐 아니라 정신의 치유에도 효험이 있습니다. ‘우드랜드 트러스트‘라는 명칭은 중의적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두가지를 말합니다. 숲과 믿음. 우리는 숲에서 생경함과 두려움을 느끼는 대신 숲을 신뢰해야 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무분별한 파괴를 멈추고 우리 숲의 진면목을 알아보는 길일 것입니다. 숲은 태고의고향이고, 천연의 공기정화장치이자 기후 냉각기이고, 종들의 피난처입니다. 숲은 우리를 태양으로부터 보호하고, 마음을 치유하고, 영혼을위로하고, 세상을 열어줍니다. 엔트족 나무수염의 말을 다시 인용하며 말을 맺겠습니다. 우리의 구호로 삼아도 될 법한 말입니다. "한때 노래하는 숲이 있던 곳에 이제 그루터기와 가시덤불만 있다. 그동안 내가 게을렀다. 내가 팽개쳐두고있었어. 멈춰야 해!" - P136
카푸시친스키는 1978년에 『황제(Cesarz)』를 썼다. 이 책은 표면상으로는 에티오피아의 마지막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Haile Selassie)와 그의부패한 전제 정권의 몰락을 다룬다. 그렇게만 읽혀도 엄청난 책이다. 기자이자 문학가였던 카푸시친스키는 폴란드인 특유의 무모함을 자랑하며 스물일곱 건의 쿠데타와 혁명을 취재했다. 피난민의 물결이 분쟁을 피해 한 방향으로 흐를 때, 카푸시친스키는 매번 그 반대 방향으로, 분쟁의 한복판으로 향했다. 그는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로 들어갔고, 밤에 몰래 도시를 다니며 은거 중인 전직 조신들을 인터뷰해서 황제에 관한 일화들을 적었다. 그 일화들은 의도치 않게 웃긴것(쿠션 담당은 황제가 의자에 앉을 때마다 그의 짧은 다리가 덜렁거리지 않도록 매번 정확한 두께의 쿠션을 황제의 발밑에 밀어 넣어야 했다)부터, 소름 끼치는 것(걸인들이 궁정 연회에서 남은 음식을 먹어치웠다가 눈알이 뽑히는 벌을받았다)까지 다양했다. - P139
카푸시친스키는 평생 여행을 갈망했다. 다만 재미를 찾는 평범한 관광객은 애써 피할 곳들로 떠나기를 갈망했다. 그런 맥락에서 그가 마지막 책 『헤로도토스와의 여행에서 자기 분야의 대선배이자 원조인세계 최초의 여행 작가를 소환한 것은 매우 적절해 보인다. 소환 대상은 바로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다. 카푸시친스키가 젊은 시절 무엇보다 희구했던 것은 ‘국경을 넘는 것‘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폴란드국경을, 다음에는 넘을 수 있는 모든 국경을 넘고자 했다. 그를 추동한것은 온갖 형태의 인간성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이다. 헤로도토스처럼그도 사람들의 말을 듣고 기록할 뿐 비판하지 않는다. 그의 일생은 탐색이었다. 미션보다는 탐색이었다. 그가 찾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일단은 이국적 정황들, 문화적 차이들, 전후 폴란드에는 너무나 결 - P142
핍돼 있던 각양각색의 잡다함이었다. 그리고 그 너머의 것이었다. 그는 최악의 유혈 사태와 가학적 복수와 타락의 한복판에서도 인간공통의 선을 찾아다녔다. 우리의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어쩌면 그건 존엄성이었다. 어디서나 압제자들이 표적으로 삼지만, 결코 완전히 말살될수는 없는 단순한 존엄성. ‘아니요‘라고 말하는 품격. 그가 목격한 것들을 생각하면 카푸시친스키만큼 비관론으로 기울었을 법한 작가도 없다. 하지만 비관은 카푸시친스키가 자주 드러내던감정이 아니다. 그가 자주 표한 것은 경이감이다. 세상에 그런 것들이, 찬란하면서 동시에 참담한 것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데 대한 경이감. 헤로도토스의 여행의 끝부분에 이 한 문장이 있다. 튀르키예의 어느 박물관 내부를 묘사한 말이었지만, 우리 시대를 목격한 최고의 증인이었던 이 겸손한 남자의 묘비명으로 어울릴 법한 표현이다. 그래서이 말을 그를 기리는 말로 여기에 놓고 간다.
우리는 어둠 속에 빛으로 둘러싸인 어둠 속에 서 있다. - P143
앨리스 먼로는 명실공히 우리 시대의 대표적 영어권 소설가 중 한 명이다. 먼로는 북미와 영국의 평단에서 최상급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아왔고, 여러 문학상을 휩쓸었으며, 국제적으로 열렬한 독자층을 보유하고 있다. 작가들 사이에서도 그녀의 이름은 경건하게 일컬어진다. 최근에는 먼로의 이름이 작가들의 다양한 설전에서 적을 때리는 매로 소환되곤 한다. "이게 글이야? 앨리스 먼로 알지? 글은 그런 게 글이야!" 비판자들이 실제로 하는 말이다. 먼로에게는 더 유명하지 않은 게 이상하다는 말이 따라다닌다. 그녀가 아무리 유명해져도 이 말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중 하루아침에 일어난 건 아무것도 없다. 앨리스 먼로는 1960년대부터 글을 썼고, 그녀의 첫 번째 단편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이1969년에 나왔다. - P157
‘정신적 황량함‘도 먼로가 상대하는 강적 중 하나다. 먼로의 인물들은숨 막히는 관습, 남들의 독한 기대, 부과된 행동 규범, 온갖 종류의 입막음, 정신적 압박에 맞서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투쟁한다. 선한 일을행하지만 진정성도 감동도 없는 사람과 행실은 나쁘지만 자기 감정에충실하고 자신에게 민감한 사람 중에서 선택하라면 먼로의 여성은 후자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전자를 택할 경우도 그녀는 나중에 자신의 약삭빠름과 교활함과 간교함과 요망함과 사악함을 논한다. 먼로의 작품에서 정직은 최선의 방책이 아니다. 정직은 방책 자체가아니다. 정직은 공기 같은 필수 요소다. 그녀의 등장인물들은 어떻게든 그것을, 적어도 어느 정도는, 확보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침몰을 예감한다. - P169
「내가 너에게 말하려 했던 것(Something I‘ve Been Meaning to Tell You)」이라는 단편에서 에트는 여동생의 애인이었던 난잡한 바람둥이가 여자들에게 던지는 눈빛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모든 공허함과 차가움과잔해를 통과해 끝없이 아래로 내려가는 심해 잠수부처럼, 자신이 염원하는 오직 한 가지를 향해서, 해저에 놓인 루비처럼 작고 귀하고 찾기힘든 것을 찾아내기 위해서 강하하는 인간처럼 보인다." 먼로의 이야기들은 이처럼 미심쩍은 탐색자와 손때 묻은 술책으로넘쳐난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통찰도 풍부하다. 어느 이야기, 어느 인간 안에도 위험한 보물이 값을 매길 수 없는 루비가 있을 수 있다. 어느 마음에도 염원이 있을 수 있다. - P174
캐나다의 생태주의 작가 어니스트 톰프슨 시튼(Ernest Thompson Seton)은 21세 생일에 기묘한 청구서를 선물로 받았다. 그것은 그의 부친이그를 키우면서 지출한 비용을 모두 기록한 장부였다. 거기에는 그가태어난 병원이 청구한 분만 비용도 있었다. 더 이상한 것은 지불자가어니스트로 돼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한때 시튼의 부친이 웃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그가 원칙적으로 맞는다면? 우리는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누군가에게 또는 무언가에 빚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빚졌을까? 누구에게? 무엇에? 그리고 어떻게 갚아야 할까? - P175
우리 모두는 공짜 펀치나 공짜 런치를 바란다. 우리는 공짜라면 뭐든 좋아한다. 하지만 마법의 주문을 장착한 경우가 아니라면 뭐라도공짜로 얻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도 안다. 이렇게 펀치는 다른 펀치를 부르기 마련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았을까? 초기 사회화-유치원에서 찰흙을 놓고 실랑이를 하다가 때리고 깨무는 싸움으로 번졌을 때 깨닫는 것의 결과일까, 아니면 인간 뇌에 내장된 템플릿일까? - P188
처음 만났을 때는 일단 우호적으로 대하고 차후에는 상대가 했던 대로 대응하는 전략, 즉 선은 선으로, 악은 악으로 갚는 전략은 경기장이 평평할 때만 승리 전략이 될 수있다. 이 대회에서는 참가 프로그램이 남보다 우수한 무기체계를 보유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만약 참가자 중 하나에게 전차나 칭기즈칸의 이중 곡선 활이나 원자폭탄 같은 이점이 허용됐다면 팃포탯은 실패했을 것이다. 기술적 우위를 가진 플레이어가 단독으로 상대들을 말살하거나, 노예로 삼거나, 그들에게 불공평한 거래 조건을 강제할 수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것이 긴긴 인류사에서 반복되어온 일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자들이 법을 만들었고, 승자의 법은 그들이 꼭대기를차지한 계층적 사회구조를 정당화함으로써 불공평을 명예의 사당에안치했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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