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케일럽은 그의 걸음걸이는 싫어하지만 휠체어는 혐오한다. 케일럽이 처음 낮에 집에 왔던 날, 그는 아파트를 구경시켜줬다. 그는 그 아파트가 자랑스러웠고, 매일 거기서 사는 게 감사했고, 그게 자기 것이라는 게 계속 믿기지가 않았다. 맬컴은 윌럼 방 ㅡ그들은 그렇게 불렀다ㅡ은 그 자리에 그대로 뒀지만 더 확장해서 엘리베이터 가까운 북쪽 구석에 서재를 덧붙였다. 그러고는 피아노가 놓인 길고 개방된 공간과 남향 거실, 창문들이 없는 북쪽에 맬컴이 디자인해서 놓은 테이블이 있고, 그 뒤로는 부엌까지 벽 전체를 책장이 덮고 있었는데, 거기에는친구들, 그리고 친구들의 친구들의 작품들과 여러 해에 걸쳐 사들인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아파트 동쪽은 모두 그의 공간이었다. 침실에서 북쪽 방향으로 옷방을 가로지르면 동향과 남향 창문이 있는 욕실이 나온다. 아파트의 블라인드는 대부분 내려놓지만 한꺼번에 열릴 수 있게 되어 있고, 그러면 공간 전체가 환한 빛의 사각형 같고 자신과 바깥세상 사이의 베일이 홀릴 듯이 - P466

알게 느껴진다. 종종 이 아파트 자체가 거짓 같은 기분이 든다.
아파트를 보면 그 주인이 열려 있고 활기 넘치고 뭐든 대답해주는 사람일 것 같지만, 그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다. 반쯤 가려진 골방들과 어두침침한 미로들과 너무 여러 번 칠해서 나방과벌레가 페인트 층들 사이에 매장되어 생긴 울퉁불퉁한 이랑과기포가 만져지는 벽들이 있는 리스페너드 스트리트가 그를 훨씬 더 정확하게 반영하는 공간이다.
케일럽이 오기 전 그는 아파트에 햇빛이 희미하게 반짝이도록 해뒀고, 케일럽은 그걸 보고 경탄했다. 그들은 천천히 아파트 안을 돌아봤고, 케일럽은 미술작품들을 구경하며 어디서 샀는지, 누가 만든 건지 물었고, 자기가 알아볼 수 있는 작품들에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P467

그는 내내 자신의 오만, 다른 사람들이 가진 걸 자기도 가질수 있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 일종의 벌을 기다리고 있었고, 여기-마침내 그게 온 것이다. ‘이게 네가 받을 대가야.‘ 머릿속 목소리는 말했다.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인 척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 대가야.‘ 제이비가 잭슨을 얼마나 두려워했었는지 생각난다. 그는 제이비의 공포를, 다른 인간에게 꼼짝없이 잡힐 수 있다는 그 공포를 너무나 잘 이해했다. 너무 쉬워 보이는 것-그냥 떠나버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 수 있는지 그는 안다. 예전에 루크 수사에게 느꼈던 감정을 케일럽에게 느낀다. 경솔하게 자신을 맡긴 사람, 너무 큰 희망을 걸었던 사람, 자기를 구해주길 바랐던 사람.  - P477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게 분명해졌을 때도, 희망이 썩어 들어갔을 때도, 그는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떠날 수가 없었다. 그와 케일럽은 잘 맞아떨어지는 짝이다. 망가진 사람과 망가뜨리는 사람, 쓰레기 더미와그 주위를 킁킁대는 자칼이다. 그들은 서로에게만 존재한다. 그는 케일럽 인생의 어떤 사람도 만나지 않았고, 자기 사람들에게도 케일럽을 소개시키지 않았다. 두 사람 다 자기들이 하고 있는게 뭔가 창피한 짓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들은 혐오와 불쾌감으로 서로 묶여 있다. 케일럽은 그의 육체를 참아주고, 그는케일럽의 혐오를 안내한다.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다면, 교환을 해야만 한다. 늘 알고 있다. 앞으로도 케일럽 이상의 사람은 절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케일럽은 기형도 아니고 사디스트도 아니다. 지금 그가당하는 일들 중 이전에 당해보지 않은 일들은 없다. 그는 이 생각을 되새기고, 또 되새긴다. - P477

고통과 공포로 문틀 가장자리를 붙들고 애처롭게 호소하고있는데, 케일럽이 뒤로 물러났다가 달려오는 게, 보이는 게 아니라 들린다. 그의 발이 그의 등을 차고, 그는 캄캄한 계단 안으로 날아간다. 
솟구쳐 오르는 순간 갑자기 카센 박사가 생각난다. 딱히 카센박사 생각이라기보다는 그의 지도를 받으려고 신청할 때 그가 했던 질문이 생각난다. 가장 좋아하는 공리가 뭔가? (얼간이 골라내기 질문이라고, 시엠은 한때 말했었다.)
"등식의 공리입니다." 그가 말하자 카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공리지." 그는 말했다. - P497

등식의 공리란 X는 항상 X와 같다는 것이다. 이 공리는 X라는 개념이 있다면, 그것은 항상 자신과 등치해야 한다고, 자신만의 독특성을 가진다고, 도저히 환원할 수 없는 어떤 성질을지니고 있어서 그것은 항상 절대적으로, 불변으로 그 자신과 등치한다고 가정할 수밖에 없다고, 그 기본성이 절대 바뀔 수 없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그것을 증명하기는 불가능하다. 항상, 절대, 결코, 이것들은 숫자들만큼이나 수학의 세계를 구성하는단어들이다. 모두가 등식의 공리 - 리 박사는 한번은 그걸 수줍고 새침한 공리, 공리계의 나체부채춤이라고 불렀다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늘 그 공리의 알 듯 말 듯한 측면이, 그 방정식 자체의 아름다움이 그걸 증명하려는 시도에 의해좌절된다는 게 늘 마음에 들었다. 그건 사람을 미치게 만들 수있는, 사람을 완전히 사로잡을 수 있는, 쉽게 인생 전체가 될 수있는 그런 공리였다. - P497

하지만 이제 그는 그 공리가 얼마나 진실한지 확실히 이해한다. 그 자신, 그의 삶 자체가 그걸 증명했기 때문이다. 과거의 나는 늘 현재의 나다. 그는 깨닫는다. 문맥은 바뀔 수 있다. 이 아파트에서 살 수도 있고, 즐겁고 보수도 좋은 일을 할 수도 있고, 사랑하는 부모와 친구들도 있을 수 있다. 존경받을 수도 있다. 법정에서는 심지어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는 똑같은 사람,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사람, 미움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공중에 떠 있는 그 찰나의 순간, 높이 떠 있는 황홀함과 끔찍할 게 분명한 착륙 사이에서, 그는 x는 항상 x와 같을 거라는 걸 이해한다. 그
가 뭘 하든, 수도원에서, 루크 수사로부터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러도. 돈을 얼마나 많이 벌든 얼마나 잊으려고 노력하든, X는 항상 X와 같다.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그의 어깨는 우지직하며 콘크리트 바닥에 부딪치고, 순간 고맙게도 세상이 그의 아래에서 휙 멀어져간다. x=x, 그는 생각한다. x=x, x=x. - P498

"일주일‘에 몇 번!" 나는 말하다 뚝 멈췄어. 갑자기 거기서나갈 수밖에 없었어. 의자에서 코트를 들고 가방을 안주머니에 쑤셔 넣었어. "돌아올 때 여기 있는 게 좋을 거야." 그렇게 말하고난 나가버렸어. (주드는 도망자였거든. 줄리아와 내가 자기 때문에 기분이 안 좋다고 생각할 때마다. 최대한 빨리 우리 눈앞에서 사라지려고 애썼어. 마치 자기가 얼른 치워야 하는 불쾌한 물건인 것처럼.)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해변으로 갔고, 자신의 한없는 무능함을, 명백한 잘못을 깨달았을 때 느끼는 그런 분노를 느끼며 모래사장을 헤맸어. 그때 처음으로 주드가 우리 옆에서 두 사람처럼 사는 한, 우리도 그냥 주드 옆에 있는 두 사람일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지. 우린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봤고 다른 건 그냥 안 봤어. 너무 준비가 안 되어 있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쉬워, 그 사람들 불행은 우리 불행이고, 그 슬픔은 이해할 수 있고 한 번씩 자기혐오에 빠져도 그건 빨리 지나가고 타협할 만하지. 하지만 주드는 그렇지 않았어. 그의 문제들을 진단하는데 필요한 상상력이 없어서 도와줄 방법조차 알 수가 없었어.
하지만 이건 그냥 변명에 불과해. - P525

난 그걸 묵인했어. 그가 그런 짓을 한다는 걸 잊어버리기로 한 거야. 그래선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해결책을 찾는게 너무 힘들어서, 나 편한 대로 그를 보고 싶어서 말이야.
그가 수천 번의 밤 동안 자기 존엄성을 희생하고 있다는 걸 잊어버리려 하면서도, 내가 그의 존엄을 지켜주고 있다고 변명했어. 그런 게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에게 반박하고 설득하려고 했고, 그걸 알면서도 다른 방법, 더 과격한 방법, 나와 주드를 멀어지게 만들 수도 있는 방법을 취해보려 하지 않았어. 내가겁쟁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 그 가방에 대해서, 그날 밤 트루로에서 알게 된 사실에 대해 줄리아에게 절대 말하지 않았거든. 하지만 결국에는 줄리아도 알게 됐고, 줄리아가 그렇게 화내는모습은 정말 거의 보지 못했어. "이런 걸 어떻게 계속 내버려둘수가 있어?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내버려둘 수 있었어?" 내게 직접적으로 책임을 묻지는 않았지만, 난 알았어. 어떻게 안그럴 수 있겠어? 나도 그랬는걸.
이제 난 여기 주드의 아파트로, 몇 시간 전 내가 아직 잠에서깨서 누워 있을 때 그가 두들겨 맞고 있던 곳으로 돌아왔어. 나는 손에 전화를 들고 소파에 앉아서 앤디가 주드가 집에 돌아갈준비가 다 됐다고, 병원에서 나와 내 간호를 받을 준비가 됐다고 전화해주길 기다렸지. 블라인드를 걷고 앉아 강철 같은 하늘을 바라봤어. 구름이 다음 구름과 합쳐지면서 흐릿해졌고, 마침내 낮이 서서히 밤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회색 안개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 - P531

잊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여러 해 동안 그는 (상상력없게도) 아치형 천장을 상상했고, 하루가 끝나고 나면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이미지들과 장면들, 말들을 모아 무거운 쇠문을 빼꼼 열고 서둘러 그것들을 몰아넣은 다음 재빨리 단단히 닫았다. 하지만 이 방법은 별로 효과적이지 않아서, 그래도 기억들은 서서히 새어 나왔다. 중요한 건 그저 저장하는 게 아니라 없애는 거라는 걸. 그는 깨닫게 됐다.
그래서 그는 해결책을 발명했다. 어떤 기억들ㅡ 사소한 무시, 모욕ㅡ은 무효가 될 때까지, 너무 많이 반복해서 거의 의미가없어질 때까지,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일이고 자기는 방금 들었을 뿐인 일이라고 믿게 될 때까지 되새기고 또 되새긴다.
더 큰 기억들은 필름 조각들처럼 머릿속에 담고 있다가 한 커트, 한 커트 지워나가기 시작한다. 둘 다 쉽지 않았다. 예를 들어, 삭제 작업 중간에 멈추고 자기가 뭘 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 기억의 일부를 펼쳐보기 시작하면서 과거 일들의 덫에 걸리지않기를 바랄 수는 없다. 당연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기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밤마다 그 작업을 해야 한다.
물론 기억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더 멀어졌다. 좀 봐달라고 잡아당기고, 무시하면 눈앞에 뛰어들고,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해서 다른 생각을 하는 게 불가능해질 지경으로 유령처럼 따라다니지 않게 된다. - P555

그는 오랫동안 기다렸고, 조금 울었다. 피곤하고 겁에 질렸기 때문에, 갈 준비가 떠날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그는 눈을 비비고 시작했다. 왼팔부터 시작했다. 먼저 한 줄을그었고, 예상했던 것보다 더 아파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두 번째를 그었다. 스카치를 한 모금 더 마셨다. 피는 끈적끈적했다. 액체라기보다는 젤라틴 같았고, 환하게 어른어른 빛나는 오일 같은 검은색이었다. 바지는 벌써 피에 흠뻑 젖었고, 칼을 잡는 손에 이미 힘이 빠지고 있었다. 그는 세 번째 선을그었다.
양쪽 팔을 다 끝내고 나자, 그는 샤워실 벽에 털썩 기댔다. 난데없이 베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카치와 자기가 흘린 피 때문에 몸이 더웠고, 다리를 돌며 웅덩이를 이룬피가 몸에 부딪혀 출렁거렸다. 몸 안쪽과 바깥쪽의 만남, 안쪽이 바깥쪽을 씻어주고 있다. 그는 눈을 감았다. 뒤에서 하이에나들이 그를 향해 사납게 울부짖었다. 앞에는 문 열린 집이 있었다. 아직은 가깝지 않았지만, 전보다는 가까웠다. 안이 보일정도로 가까웠다. 쉴 수 있는, 오랜 달리기 후에 누워서 잠들 수있는, 그리고 평생 처음으로 안전할 수 있는 침대가 보였다. - P574

그는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이건 윌럼이야. 그는 되뇌었다. 윌럼은 절대 널 해치지 않을 거야, 절대. 때가 됐어. 때가.
"좋아." 그는 마침내 말했다. "좋아. 물어봐."
그는 윌럼이 의자에 기대앉아 그를 쳐다보며, 한 친구가 다른친구에게 물을 수 있어야 하는. 하지만 절대 질문을 허락받지 못했던 수백 가지 질문들 중 무엇을 고를 건지 고심하는 모습을 봤다. 그러자 눈물이 고였다. 자기가 이 우정을 이렇게 치우치게 만들어서, 그가 달아날 때도, 근원을 밝힐 수 없는 문제들로 도움을 요청할 때도 한 해 또 한 해 윌럼이 너무나 오랫동안그의 옆을 지켜줘서 눈물이 났다. 새 인생에서는 친구들에게 덜요구하겠다고, 더 베풀겠다고 그는 다짐했다. 친구들이 무엇을원하든 줄 것이다. 윌럼이 정보를 원하면 받게 될 거고, 그 정보를 어떻게 줄지 궁리하는 건 그에게 달린 일이다. 그는 상처 받고 또 상처 받겠지만 ㅡ 모두가 그렇다 ㅡ노력하려면, 살아 있으 - P608

려면, 더 강해져야 했다. 준비해야 했다. 이게 삶이라는 거래의 일부라는 걸 받아들어야만 했다.
"좋아, 하나 생각했어." 윌럼이 말하더니, 똑바로 앉아 준비했다. "손등에 상처는 어떻게 하다 생긴 거야?"
그는 놀라서 눈을 깜박거렸다. 질문이 뭐가 될지 몰랐지만, 막상 주어지자 마음이 놓였다. 요즘에는 그 흉터는 거의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제 그는 호박단처럼 반질반질 윤나는 상처를 바라보며 손가락 끝으로 쓸었고, 그 흉터가 얼마나 많은 다른 문제들로, 그리고 루크 수사에게로, 그리고 고아원으로, 그리고 필라델피아로, 그 모든 것들로 이어지는지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에서 더 크고 더 슬픈 다른 이야기와 연결되지 않은게 뭐가 있단 말인가? 윌럼이 묻는 건 그저 이 이야기 하나였다. 다른 모든 것들, 으르렁대는 거대하고 추한 문제점들을그 뒤로 끌고 들어올 필요 없었다.
그는 입을 열기 전 머릿속에서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어떻게 이야기를 엮어나갈지 생각했다. 마침내 그는 준비가 됐다.
"난 항상 욕심 많은 아이였어." 그는 이야기를 시작했고, 식탁너머에서 윌럼이 팔꿈치를 기대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친구가 된 이래 처음으로 윌럼이 청자,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됐다. - P609

애너를 믿게 되고 나서, 그는 루크 수사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를 해줬다. 하지만 다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에게도이야기하지 않았다. 자기가 바보여서 루크를 따라갔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루크는 그에게 거짓말을 했다. 끔찍한 짓들을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겪으면서도, 그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루크가 정말로 그를 사랑했다고, 그 부분만은 정말이라고, 곡해나 합리화가 아니라 진짜라고 믿고 싶었다. 그는 애너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 말하듯이 하는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은 괴물이었어, 주드 사람들이 널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건 널 조종하기 위해서야. 모르겠어? 그게 소아성애자들이 하는 짓이야. 그런 식으로 아이들을 먹이로 삼는 거라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는 여전히 루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 그는 나쁜 사람이었다. 하지만 다른 수사들보다 더 나빴나? 그가 ‘정말로‘ 잘못된 결정을 했나?
수도원에 있었더라면 ‘정말로‘ 더 나았을까? 거기 있었다면 더망가졌을까, 덜 망가졌을까? 루크의 유산은 그가 하는 모든 것, 그의 존재 자체에 남아 있었다. 책과 음악, 수학, 정원일, 언어에 대한 사랑 ㅡ그건 루크였다. 자해, 증오심, 수치심, 두려움,
병, 정상적인 성생활을 할 수 없는, 정상적인 사람이 될 수 없는것 ㅡ 그것도 루크였다. 루크는 인생의 즐거움을 찾는 법을 가르쳐줬고, 한편으로는 즐거움을 완전히 제거해버렸다.
그는 그의 이름을 입 밖에 내지 않으려고 조심했지만, 때때 - P618

로 그 생각을 했고,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아무리 많은 세월이 지나도, 루크의 미소 짓는 얼굴이 순식간에 마법처럼 떠오르곤했다. 그는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고 있던 시절, 그가 너무 순진하고 너무 외롭고 너무 애정이 그리운 어린아이여서 아무것도 모른 채 유혹당하던 시절의 루크를 생각했다. 그는 온실로 달려가고 있었다. 문을 열고 있었다. 꽃들의 온기와 향기가 그를 망토처럼 둘러쌌다. 그건 그가 그토록 소박하게 행복했던, 복잡할 것 전혀 없는 기쁨을 알았던 마지막 순간이었다. "우리 꼬마 미남이 왔구나!" 루크는 외쳤다. "아, 주드 ㅡ널 보니 너무 행복하다."


<2권에 계속> - P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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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에 대해 그가 알지 못했던 사실은 성공이 사람들을 지루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실패도 물론 사람들을 지루하게 만들지만, 그 방식은 다르다. 실패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성공 한가지를 위해 분투한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 또한 그 성공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차이점은 달리기와 제자리달리기라는 것이고, 달리는 건 어쨌거나 지루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달리는 사람은 다른 경치들을 통과하며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자면, 주드와 윌럼에게는 그에게 없는 뭔가가 성공의 숨 막히는 권태로부터 보호해줄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았다. 잠에서 깨서 자기가 성공했다는 걸 깨닫는, 여기서 멈추면 자신은 더 이상 성공자가 아니라 실패자가 될 것이기 때문에 성공한 일이 무엇이건 그걸 매일 계속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 그 지루함에서 보호해줄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 때로 주드와 윌럼이 그와 맬컴과 진짜로 다른 점은 인종이나 부가 아니라 그들이 가진 끝없는 감탄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비교할 때 그들의 어린 시절은 너무도 하찮고 회색빛이어서, 그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끊임없이 감탄할 수 있는 것 같았다.  - P390

정신이 들었을 때 그는 자기가 어디 있는지 몰랐다. 숨쉬기가힘들었다. 코에 뭔가가 있었다. 하지만 그게 뭔지 만져보려고손을 들려고 하니 그럴 수가 없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손목이결박되어 있었다. 그제야 그는 자기가 병원에 있다는 걸 알았다. 그는 눈을 감고 기억을 되살렸다. 윌럼이 그를 쳤다. 이유도생각났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울부짖었지만 소리가 나오지않았다.
그 순간이 지나가고, 그는 다시 눈을 떴다. 고개를 왼쪽으로돌리자 못생긴 파란 커튼이 쳐져 있어 문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고개를 오른쪽, 이른 아침 햇살 쪽을 향해 돌리자, 주드가침대 옆 의자에 잠들어 있었다. 의자가 너무 작아서, 끔찍한 자세로 몸을 구기고 있었다. 무릎은 가슴에 바싹 붙이고, 가슴은무릎 위에 올리고 팔로 종아리를 감싸고 있었다.
‘그렇게 자면 안 되는 거 알잖아, 주드‘ 그는 머릿속으로 말했다. ‘일어나면 허리가 아플 거라고. 하지만 팔을 뻗어 그를 - P412

깨울 수 있었다 하더라도 그는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에, 그는 생각했다. 세상에,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미안해, 주드.‘ 그는 머릿속으로 말했고, 이번에는 제대로 울수 있었다. 눈물이 입으로 흘러 들어가고, 닦을 수 없는 콧물이콧방울을 만들며 그 위로 같이 흘렀다. 하지만 그는 조용했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미안해, 주드, 미안해, 주드.‘ 그는혼자 계속해서 말했고, 그러고는 커다랗게, 하지만 조용하게 속삭였다. 너무 조용해서 입이 벌어지고 닫히는 소리밖에 들리지않았다. ‘용서해줘, 주드, 용서해줘.‘
용서해줘.
용서해줘.
용서해줘. - P413

몇 달 동안이나 제이비는 얼굴도 본 적 없었다. 물론 소식은듣는다. 맬컴을 통해서, 리처드를 통해서, 블랙 헨리 영을 통해서. 하지만 더 이상 보지는 않는다. 거의 3년이 지났지만 용서할 수가 없다.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자기가 얼마나 고집불통이고 비열하고 무자비하게 굴고 있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쩔수가 없다. 제이비를 보면, 자기를 흉내 내던 그 모습이 보인다.
자기가 어떻게 보일까 두려워하던 생각들이,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워하던 생각들이 다 옳았다는 걸 단번에 확인시켜주던 그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친구들이 자기를 그렇게 보고 있으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면적어도 자기에게 그걸 말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그 정확한 흉내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지지만, 그걸 제이비가 했다는 사실에 그는 망연자실한다. 밤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할 때면 종종 제이비가 입을 헤벌린 채 침을 흘리며 손을 앞으로 내밀고 발을 질질 끌며 구부정하게 걷는 모습이 보인다. ‘내가 주드다. 내가 주드 세인트 프랜시스다.‘ - P423

때로 이 외로움이란 게 그가 외로움을 느껴야 한다는 사실, 지금 그의 삶에 뭔가 이상하고 용납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았다면 느끼지 않을 감정 같다. 자기가 원한다고, 자기가 가질 수 있다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것들이 그렇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늘 있다. 해럴드와 맬컴은 물론이고 인디아라는 동료 예술가와 동거를 시작한 리처드, 자주 보지 않는 사람들 -시티즌과 일라이저, 페드라, 심지어 설리번판사 판사실의 옛 동료 케리건까지도. 몇몇은 그를 동정하며 묻고, 몇몇은 의심하며 묻는다. 첫 번째 그룹은 그가 혼자인 게 자신의 결정이 아니라 외부적 상황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그를 가엾게 여기고, 두 번째 그룹은 그에게 일종의 적의를 품는다. 그들은 그가 혼자인 게 자신의 결정이며 성인기의 근본법칙을 도전적으로 위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쪽이건, 나이 마흔에 혼자라는 건 나이 서른에 혼자인것과는 다르고, 해가 갈수록 더 이해할 수 없는 일, 덜 부럽고, 더 안됐고, 더 부적절한 일이 되어간다. 지난 5년 동안 그는 모든 파트너변호사 디너에 혼자 참석했고, 작년에 형평법 파트너변호사가 됐을 때는 연례 수련회에도 혼자 참석했다.  - P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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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설리번 판사는 말하곤했다. "쉽게 믿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내 법정에서는 믿음이 중요해. 모든 것들에 대한 믿음이."
그는 자주 이렇게 선언했고, 그러고 나면 끙끙대다가 -판사는 굉장히 뚱뚱했다- 방에서 어정어정 나갔다. 주로 하루 일과, 적어도 설리번 판사의 일과가 끝날 때 보는 광경이었다. 판사는 퇴근길에 판사실에서 나와 재판연구원과 이야기를 나누러 와서는 책상 모서리에 걸터앉아 애매모호한 연설을 늘어놓았는데, 마치 거기 있는 재판연구원들이 서기라서 그가 하는 말을 받아 적어야 하는 것처럼 말 사이를 자주 끊고 쉬었다. 하지만 필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셋 중 판사의 충실한 신도이자 제일 보수주의자인 케리건마저 하지 않았다.
판사가 나가고 나면, 그는 방 건너편에 있는 토머스에게 싱긋미소 지었고 그러면 그는 뭐 어쩌겠느냐며 미안하다는 듯이 눈알을 위로 굴리곤 했다. 토머스도 보수적이었지만, 자기는 "생각하는 보수주의자"라며 "그런 구분을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완전 우울하다"고 말했다. - P162

하지만 그럼에도, 종종 그는 해럴드가 거기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로스쿨 시절을 추억하고 그에 수반되는 활동인, 로스쿨 재학 당시 본인의 업적을 자랑하는 건 사무실 최고의 오락이었고, 수많은 동료들이 같은 학교를 다녔고 많은 수가 해럴드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그리고 나머지는 그에 대해 들었기 때문예). 그는 때로 해럴드의 수업을 들었던 이야기나 얼마나 수업준비를 열심히 했는지에 대해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그러면 해럴드가 자랑스러웠고, 비록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건 알지만, 그를 아는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다음 해면 헌법에 대한헤럴드의 저서가 출판될 테고, 그러면 사무실의 모두가 헌사를읽고 그의 이름을 보게 될 테고, 그러면 그와 해럴드의 관계가밝혀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의심쩍게 생각할 테고, 그러면그는 그의 앞에서 해럴드에 대해 무슨 소리를 했었는지 기억하려고 애쓰는 근심 가득한 얼굴들을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자기 힘으로 사무실에서 자리를 굳힌 거라고, 시티즌과 로즈 옆에 자기 자리를 찾은 거라고. 마셜과 독자적으로 관계를 맺은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 P195

줄리아가 돌아왔을 때, 그는 해럴드가 그의 멍청하고 서투른 짓을 이야기하기를 기다렸지만, 그는 하지 않았다. 그날 밤 저녁식사때 해럴드는 평소 모습이랑 전혀 다르지 않았지만, 그는 리스페너드 스트리트로 돌아가서 해럴드에게 제대로 사과하는 진짜제대로 된 편지를 써서 부쳤다.
며칠 후 그는 정식 편지 형식으로 된 답장을 받았다. 나중에 평생토록 간직하게 될 편지였다.
"주드에게." 해럴드의 편지는 이렇게 시작됐다. "(필요 없긴해도) 아름다운 편지 고맙게 받았다. 그 편지에 쓰인 모든 말들다 고맙다. 네 말이 맞아. 그 머그는 내겐 정말 소중한 거야. 하지만 너는 더 소중해, 그러니 더 이상 자기를 고문하지 마라.
내가 다른 종류의 사람이라면, 이 모든 사고가 인생 일반에대한 은유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물건들은 깨지고, 때로는 수리되고, 대부분의 경우엔 어떤 게 망가지더라도 삶이 스스로 변화하면서 그 상실을 보상해주지. 때로는 아주 근사한 방식으로 말이야.
사실, 어쩌면 나도 결국 그런 종류의 사람인지 몰라.
사랑을 담아, 해럴드." - P199

그러자 루크 수사는 일어섰고, 이번에는 좀 더 유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드, 들어봐. 보여줄 게 있어. 같이 가자." 그러고는 온실을 향해 걷기 시작했고, 뒤를 돌아보며 그가 따라오고있는지 확인했다. "주드." 그가 다시 불렀다. "같이 가자." 그래서 그는 자기도 모르게 그를 따라 온실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너무나 잘 아는 온실인데도 마치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처럼 낮선 갈망이 솟아올랐다.
어른이 되어 그는 정확히 언제부터 일이 잘못되기 시작했는지 짚어내는 데 집착하기 시작했다. 마치 그 순간을 동결시켜 - P227

세균배양기 안에 보존했다가 교실 앞에서 들고 가르칠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이게 바로 그 일이 벌어졌던 때야. 이게 바로그 일이 시작된 곳이야.‘ 그는 생각하곤 했다. 크래커를 훔쳤을때였을까? 루크의 수선화를 망쳐놓았을 때였을까? 처음으로분노발작을 일으켰을 때였을까? 더 말도 안 되지만, 뭔지 모르지만 엄마가 날 그 잡화상 뒤에 버리게 만든 그 짓을 저질렀을때였을까? 그건 무엇이었을까?
하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건 그날 오후 그 온실에 들어갔을 때였다. 호위를 받으며 자기 발로 들어갔을 때, 루크 수사를 따라가기 위해 모든 걸 포기했을 때였다. 그때가 그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는 결코 전과 같지 않았다. - P228

"주디." 앤디는 오늘은 상냥모드일 테고, 어떤 연설도 하지않을 것이다. 그는 앤디가 이끄는 대로 텅 빈 대기실을 지나 아직 열지 않은 진찰실로 들어가, 그의 부축을 받으며 여러 시간을, 여러 날을 보냈던 진찰대 위에 올라가고, 심지어 앤디가 옷을 벗기도록 내버려둔 채 눈을 감고 그가 다리에서 붕대를 풀고 쓰라린 피부에서 흠뻑 젖은 거즈를 떼어내기를 기다릴 것이다.
내 인생, 그는 생각할 것이다. 내 인생. 하지만 그 이상은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을 것이고, 그저 그 말만 일부는 찬송처럼, 일부는 저주처럼, 일부는 확신을 바라는 것처럼ㅡ 반복 - P230

하다 그런 극심한 고통을 겪을 때면 찾아가는 다른 세상으로, 자기 세상에서 결코 멀지 않지만 나중에 결코 기억나지 않는 그세상으로 스르르 들어갈 것이다. 내 인생. - P231

둘 다 자연을, 야외를 좋아했고, 둘 다 동물들을 사랑했지. 그런데 어느 순간 네가 주드의 어깨를 살짝 건드리더니 주드 앞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한쪽 신발의 풀어진 끈을 매주고는 다시 뒤로 가서 줄리아와 발맞춰 걷기 시작하더군. 정말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고, 별것 아닌 행동이었어. 앞으로 한 걸음 나와서 무릎을 꿇고 앉았다가, 줄리아 옆으로 다시 물러나는 것. 너한텐 아무것도 아니었어. 넌 아마 생각도 안 했을 거야. 심지어 하던 대화를 중단하지도 않았어. 넌 항상 주드를 지켜보고 있었지(하지만 너희들 모두 그랬어). 여러 가지 세심한 방식으로 보살폈어. 그 며칠 사이에 난 그걸 다 봤어. 하지만 이 일을 네가 기억할 것 같진 않네.
하지만 네가 그러고 있을 동안, 주드는 나를 봤어. 그때 주드의 표정이라니. 그 순간이 아니고서는 아직도 그 표정을 뭐라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 내 안에서 뭔가가. 마치 너무 높이 쌓아 올린 축축한 모래탑처럼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어. 주드를 위해, 너를 위해, 나를 위해서도, 주드의 얼굴을 보며 난 나도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으리라는 걸 알았어. 다른 사람을 위해그런 걸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우아하게 해줄 수 있는사람을 찾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의 표정을! 주드를 봤을 때, 난 제이컵이 죽은 후 처음으로 가슴이 찢어질 것 - P234

같다는 말의 의미를, 뭔가가 가슴을 찢어놓을 수 있다는 말의의미를 이해했어. 늘 지나치게 감상적인 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순간 나는 그게 감상적일지는 몰라도 진실이라는 걸 깨달았지.
그때 알았던 것 같아. - P235

물론 결국엔 걱정할 필요도 없었어. 주드는 그런 생각들을 통제하는 법을 배웠고, 옳고 그름을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게 됐으•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런 성향을 가지고도 좋은 변호사가 됐고. 하지만 나중에 종종 그를 생각하면, 그리고 나를 생각하면 슬퍼졌어. 로스쿨을 그만두라고 강력하게 말했더라면 좋았을걸, 드래이먼 241호 비슷한 곳으로 가라고 말했더라면좋았을걸. 내가 준 기술들은 결국은 그에게 필요한 기술이 아니었어. 그의 정신이 있는 그대로 유연하게, 지루한 사고방식으로 스스로를 동여맬 필요가 없는 방향으로 밀어줬더라면 좋았을걸. 한때 개를 그릴 줄 알았던 사람을 형태만 그릴 줄 아는 사람으로 바꿔놓은 기분이야.
그에 관해서라면 난 많은 죄를 저질렀어. 하지만 때로 비논리적이게도 그중 가장 죄책감이 드는 일은 이거야. 내가 밴 문을 열고, 그를 안으로 들어오게 했어. 난 길에서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대신 그를 태우고 어딘가 황량하고 추운 무채색의 장소로 데려가서 거기다 두고 온 거야. 예전에 내가 그를 태웠을 때는 풍경이 온통 색으로 아른아른 반짝이고 하늘에선 불꽃이 쉬잇하고 터졌고, 그는 경이로운 눈으로 입을 벌린 채 서 있었던 바로 그 똑같은 장소에다가. - P250

훗날 그는 그 일을 일종의 지레받침대,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관계 사이의 경첩 같은 걸로 돌이켜보곤 했다. 제이비와의우정은 물론이고 윌럼과의 우정에 대해. 20대의 어느 순간,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너무도 순수하고 깊은 만족감이 들어서, 모든 것이 평형을 이루고 친구들에 대한 그의 애정도 완벽한 그순간에서 누구도 움직이지 않아도 되도록 그 주위 세상이 그냥멈춰버렸으면 하는 때들이 있었다. 하지만 한 박자 후에는 모든게 움직이고, 그 순간은 고요히 사라져버린다.
이 일 이후 제이비가 그의 마음속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영원히 줄어들었다고 말하면 너무 과장 같고, 너무 최종적인 느낌이 들 것이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믿게 된 사람들이 언젠가는 어떤 식으로든 그를 배신할지도 모른다는 걸 이해하게 됐고, 실망스럽긴 하지만 그런 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그래도 인생은 쉼 없이 앞으로 나간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그를 실망시킨 사람이 나타날 때마다 적어도 절대 그러지 않을 사람이 하나는 있었기 때문이다.
- P262

그는 집에 돌아와 있다. 윌럼이 함께 있다. 그는 두 번째 성 주드 조상을 가지고 와서 부엌에 뒀다. 하지만 이 성 주드는 더크고 텅 빈 도자기 재질이고, 머리 뒤에는 기다란 홈이 뚫려 있어서, 하루를 마친 후 그들은 남은 동전을 여기 넣는다. 조상이다 차면 정말 좋은 와인을 사서 마시기로, 그리고 다시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지금은 모르고 있지만, 앞으로 그는 해럴드가 공언한 애정을시험하고 또 시험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한결같은지 보려고 약속을 저버리게 될 것이다. 자기가 그러고 있다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는 그렇게 할 것이다. 마음 한구석에서 절대 해럴드와 줄리아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러고 싶어도, 아무리 그렇다고 생각해도 그는그러지 못하고 결국엔 그들이 그에게 지칠 거라고 늘 확신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시험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관계가 결국끝나고 나면 그걸 돌이켜보면서 자기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올. 그뿐만 아니라 그 원인이 된 구체적 사건도 확실히 알게 될테니까. 그러면 그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뭘 더 잘할 수 있을지다시는 궁금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미래의 일이다. 지금 그의 행복은 완전무결하다. -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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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했잖아. 베었다고."
"하지만, 심해?"
주드는 어깨를 으쓱했고, 윌럼은 처음으로 주드의 입술색이이상한 색, 아니 색이라 할 수 없는 색이라는 걸 눈치챘다. 어쩌면 북쪽을 향해 달리는 택시 안에서 주드의 얼굴을 때리고 노란색, 황토색, 유충처럼 창백한 흰색 멍 자국을 남기고 미끄러져지나가는 가로등 불빛 탓인지도 모른다. 주드는 창문에 머리를기대고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월럼은 정확히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갑자기 메스꺼움이, 두려움이 치밀어 올랐다. 아는것이라곤 그저 택시를 타고 업타운 쪽으로 가고 있으며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뭔가 나쁜 일이라는것, 자기가 뭔가 중요하고 핵심적인 걸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것, 몇 시간 전의 축축한 따스함은 사라졌고 세상은 다시 얼음장 같은 혹독함으로, 연말의 날것 그대로의 잔혹함으로 돌아갔다는 것뿐이었다. - P105

 하지만 또(또다시!) 그는 아무행동도 하지 않았고, 거실 소파에 누운 주드(잠든 척하는 걸까.실제로 자는 걸까?)를 지나쳐 가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다음 날에도 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많은 날들이 그의 눈앞에서 휴지처럼 깨끗이 풀려 나가 펼쳐졌고, 매일매일 그는 아무말도, 아무 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3년 전에, 8년 전에 뭔가를(무엇을?) 했다면,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이게 정확히 뭘까?
하지만 이번에는 뭐라고 말할 것이다. 이번에는 증거가 있으니까. 이번에도 주드가 빠져나가 그를 피하게 만든다면, 만약무슨 일이 생겼을 때 그건 다 그의 잘못이 된다.
이렇게 결정하고 나자, 피곤이 몰려왔고, 지난밤의 걱정과 불안, 좌절감이 그 피곤 속에서 지워졌다. 그날은 한 해의 마지막날이었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을 때 그가 마지막으로 느낀건 그렇게 빨리 잠들 수 있다는 데 대한 놀라움이었다. - P114

토요일은 일을 했지만, 일요일은 산책하는 날이었다. 산책은 5년 전 그가 이 도시에 이사 와서 거의 아무것도 몰랐을 때 필요에 의해 시작한 일이었다. 그는 매주 다른 구역을 선택해 리스페너드 스트리트에서 거기까지 걸어갔고, 그 주변을 정확하게 다 둘러본 다음 다시 집으로 왔다. 험한 날씨 때문에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 아니라면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산책을 했고, 맨해튼의 모든 구역은 물론, 브루클린과 퀸스의 여러 구역들까지걸어본 지금도 매주 일요일 10시면 집을 떠나 정해놓은 노선을다 끝내고서야 돌아왔다. 산책은 이미 오래전부터 좋아서 하는일이 아니라, 그냥 하는 일이 됐다-그렇다고 즐기지 않는 건아니지만, 한동안 그는 이 산책이 뭔가 운동 이상의, 어쩌면 아마추어 물리치료처럼 회복에 도움을 주는 일과가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가졌다. 앤디는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고 사실산책 자체에 반대했다. "다리 운동을 하고 싶어 하는 건 괜찮아." 앤디는 말했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면 수영을 해야지, 다리를 끌고 보도를 왔다 갔다 할 게 아니라." 사실 수영도 나쁘지 않았겠지만, 그가 혼자서만 수영할 수 있는 곳이 없었고, 그래서 그는 하지 않았다. - P127

몇 달이 지나면서 그 기분은 누그러졌지만, 그래도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 그건 얇게 낀 곰팡이처럼 그의 마음속에서 계속살아남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받아들일 만해질수록 다른 게더 힘들어졌다. 그는 자기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아도 될 처음이자 마지막 사람이 애너라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애너는 그가이제껏 살아온 삶을 온몸에 두르고 있다는 걸, 그의 전기가 살과 뼈에 새겨져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애너라면 쪄 죽을 것 같은 날씨에도 왜 짧은 소매를 입지 않느냐고, 왜 신체 접촉을 싫•어하느냐고 절대 묻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다리나 등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절대 묻지 않을 것이다. 애너는 이미다 알고 있었다. 애너와 있을 때는 다른 모든 사람들 옆에서 형벌처럼 느껴야만 하는 끝없는 불안이나 경계심을 전혀 느끼지않았다. 늘 곤두서 있느라 진이 빠졌지만, 결국 그 경계심은 그냥 삶의 한 부분이, 바른 자세 같은 습관이 됐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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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평일 저녁 5시와 주말 아침 11시면 제이비는 지하철을타고 롱아일랜드시티에 있는 스튜디오로 향했다. 평일에 갈 때가 제일 좋았다. 그는 커넬 역에서 지하철을 타서 정류장에 설때마다 기차 안이 온갖 국적과 인종의 사람들로 끝없이 변화무쌍하게 채워지고 비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열 블록 정도마다지하철의 인구는 폴란드와 중국, 한국, 세네갈 사람들에서 세네갈, 도미니카, 인도, 파키스탄 사람들, 또 파키스탄, 아일랜드, 살바도르, 멕시코 사람들, 그러고는 멕시코와 스리랑카, 나이지리아, 티베트 사람들이 뒤섞인 정신없고 놀라운 조합으로 재구성되었다. 이들의 공통점이라고는 미국에 새로 왔다는 것과 이민자들의 얼굴에서만 볼 수 있는 결의와 체념이 혼재된 지친 표정들뿐이었다.
이런 순간이면 자신의 행운에 감사하는 마음과 자신이 사는이 도시에 대한 감상적 기분이 동시에 들었다. 둘 다 자주 느끼는 감정은 아니었다. 그는 자기 고향을 화려한 모자이크라고 찬양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그러는 사람들을 놀려댔다. 하지만 이 지하철 공간을 공유하는 동료들이 분명 그날 해냈을 노동, ‘진짜‘ 노동의 총량은 대단하게 생각했다.  - P43

지금 그는 이 사진을 작업하는 중이고, 이 그림을 그리려고기존 형식을 버리고 1미터 크기의 정사각형 캔버스로 바꿨다. 주드의 홍채에 어울리는 오묘한 녹색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며칠 동안이나 실험을 했고, 머리카락 색들도 마음에 들 때까지 다시, 또다시 칠했다. 그건 대단한 그림이었고, 그는 그걸알았다. 이따금 찾아오는 절대적 확신이었다. 그는 그림이 어딘가의 갤러리 벽에 걸릴 때까지는, 그래서 주드가 그 그림에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 전까지는 절대 보여줄 생각이 없었다. 그림 속 자신이 너무 연약하고, 너무 여성적이고, 너무 취약해 보이고, 너무 ‘어려‘ 보인다고 주드가 싫어할 거라는 걸, 또한 그림 속에서 그 외 수많은 가상의 것들, 주드 같은자기혐오 종자가 아닌 제이비로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온갖것들을 발견하고 싫어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제이비에게 있어 이 그림은 이 연작에서 자신이 바라는 모든 것을 담고 있었다. 그건 연서였다. 문헌이었다. 대하소설이었다. 그리고 그건 ‘그의 것‘이었다.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면, 때로 하늘을 날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갤러리들과 파티들과 다른 예술가 - P59

들과 야심의 세상이 저 아래 까마득한 한 점으로 작아진 나머지, 그냥 축구공처럼 뻥 차서 자기와 아무 상관 없는 멀고 먼 어느 궤도로 휘휘 날려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6시가 거의 다 됐다. 곧 빛이 바뀔 것이다. 비록 저 멀리서 철로 위를 덜컹덜컹 달리는 열차 소리가 들려오긴 했지만, 지금그를 둘러싸고 있는 그 공간은 여전히 고요했다. 그의 앞에는캔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붓을 들고 시작했다. - P60

지하철에는 시들이 있었다. 움푹 파인 플라스틱 좌석과, 우편으로 대학 학위를 딸 수 있다고 약속하는 회사들과 피부과 광고들 사이의 빈 전시 공간을 시가 인쇄된 기다란 코팅 종이들이채우고 있었다. 이류 스티븐스와 삼류 로스케와 사류 로웰들, 누구의 마음도 흔들어놓지 못하는 운문, 공허한 경구로 전락한분노와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렇게 제이비는 늘 말했다. 그는 그 시들에 반대했다. 그것들은 제이비가 중학교 때 처음 나타났고, 지난 15년 동안 그는계속 거기 반대하고 있는 중이었다. "진짜 예술이랑 진짜 예술가들한테 투자하는 대신, 노처녀 사서들이랑 카디건 걸친 게이들한테 이런 쓰레기들을 고르라고 돈을 주고 있잖아." F 열차가 끼이익 하며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 위로 제이비가 윌럼에게 소리 질렀다. "그리고 이건 다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 유형의 쓰레기들이라고. 아니면 사실은 좋은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 - P60

이 거세시켰든지. 게다가 이 사람들은 다 백인이야. 그거 눈치쳤어? 거기에 새로울 게 젠장 뭐가 있냐고?"
다음 주 윌럼은 랭스턴 휴스 포스터가 걸린 걸 보고 제이비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랭스턴 휴스?!" 제이비는 신음했다.
"내가 맞혀볼게- <유예된 꿈>, 맞지? 그럴 줄 알았어! 그 쓰레기는 치면 안 되지. 어쨌거나 뭔가가 ‘정말로‘ 폭발하는 일이 생기면, 그 쓰레기는 딱 2초 만에 거기서 내려질걸."
그날 오후 윌럼의 맞은편에는 톰 건의 시가 걸려 있었다. "그들의 관계가 존재한다면/ 그건 토론 속에 존재했다." 그 아래 누군가가 검정색 마커로 이렇게 써놓았다. "걱정 마 친구 나도 계집은 못 얻는 처지니." 그는 눈을 감았다. - P61

사실 그에게는 제이비와 주드가 가진 그런 식의 야망, 그런 묵묵하고 모진 결의는 없었다. 그들은 그 결의로다른 누구보다 더 오래 스튜디오에 사무실에 남아 일했고 어딘가 꿈꾸는 듯한 눈빛을 하고 있어서, 그들의 일부는 이미 오직자기들에게는 명료하게 보이는 상상 속 미래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제이비의 야망에 불을 지피는 것은 그 미래에 신속하게 도달하고픈 욕망이었다. 하지만 윌림이 보기에, 주드의야망을 자극하는 것은 공포,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순식간에과거로, 절대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않는 이전 생활로 다시 돌아가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었다. 이런 특성은 주드와 제이비만 가진게 아니었다. 뉴욕은 야심가들이 사는 곳이었다. 종종 그건이곳의 모든 사람들이 가진 유일한 공통점이었다.
야망과 무신론, "야망이 내 유일한 종교야." 맥주에 얼큰하게 취해 있던 어느 늦은 밤 제이비가 윌럼에게 말했다. 그 말에선 언젠가 어딘가의 인터뷰에서 진짜로 말할 때를 대비해 무심히던지는 말투를 연마하려고 리허설이라도 한 것처럼 약간 연습한 티가 났다. 하지만 윌럼은 그게 진심이라는 것도 알았다. 오로지 이곳에서만은 자신의 일을 위해서라면 광기를 제외한 무엇이든 정당화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오로지 이곳에서만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에 대한 믿음은 변명의 대상일 수밖에없다. - P69

건축학교에 간 이유조차 최악인 것 같았다. 그는 그냥 건물이좋아서 갔다. 그건 괜찮은 열정이었고, 어린 시절 부모님은 함께 여행을 다닐 때마다 집들과 기념비들을 구경시켜줬다. 심지어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는 늘 상상의 건물들을 그렸고, 상상의 구조물들을 만들었다. 그게 위안이고 보고였다. 말할 수없는 모든 것, 결정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을 건물에 녹여낼 수 있는 것 같았다.
근본적으로, 가장 부끄러운 점은 이것이었다. 섹스에 대한 빈약한 이해도, 불충스러운 인종적 관점도,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못 한다거나 돈을 못번다거나 자율적 존재로 행동하지 못하는 무능력도 아니었다. 밤에 그와 동료들이 사무실에 앉아 모두각자의 야심찬 꿈의 건축물에 깊이 몰두해 있을 때, 다들 있을법하지 않은 건물들을 스케치하고 계획하고 있을 때,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는 무언가를 상상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매일 밤, 다른 사람들이 창조하고 있을 때, 그는 모방을했다. 여행하면서 본 건물들, 다른 사람들이 꿈꾸고 건설한 건물들, 자기가 살았거나 들어가본 건물들을 그렸다. 이미 만들어 - P100

진 건물들을 개선할 생각조차 없이 그저 흉내만 내면서 다시, 또다시 만들었다. 그는 스물여덟 살이었고, 상상력은 사라졌고, 모방꾼이었다.
그는 겁이 났다. 제이비에게는 연작이 있다. 주드에게는 자기일이 있다. 윌럼도 자기 일이 있다. 하지만 다시는 아무것도 못만든다면 맬컴은 어떻게 하나? 자기 방에서 모눈종이 위로 손만 움직이고 있으면 충분하던 시절이 그리웠다. 결정과 정체성의 나날 이전, 결정은 부모님이 대신 해주고 자기는 그저 깨끗하고 날카로운 선, 줄자의 완벽하게 예리한 날에만 집중하면 되던 그 시절이 그리웠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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