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했잖아. 베었다고." "하지만, 심해?" 주드는 어깨를 으쓱했고, 윌럼은 처음으로 주드의 입술색이이상한 색, 아니 색이라 할 수 없는 색이라는 걸 눈치챘다. 어쩌면 북쪽을 향해 달리는 택시 안에서 주드의 얼굴을 때리고 노란색, 황토색, 유충처럼 창백한 흰색 멍 자국을 남기고 미끄러져지나가는 가로등 불빛 탓인지도 모른다. 주드는 창문에 머리를기대고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월럼은 정확히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갑자기 메스꺼움이, 두려움이 치밀어 올랐다. 아는것이라곤 그저 택시를 타고 업타운 쪽으로 가고 있으며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뭔가 나쁜 일이라는것, 자기가 뭔가 중요하고 핵심적인 걸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것, 몇 시간 전의 축축한 따스함은 사라졌고 세상은 다시 얼음장 같은 혹독함으로, 연말의 날것 그대로의 잔혹함으로 돌아갔다는 것뿐이었다. - P105
하지만 또(또다시!) 그는 아무행동도 하지 않았고, 거실 소파에 누운 주드(잠든 척하는 걸까.실제로 자는 걸까?)를 지나쳐 가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다음 날에도 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많은 날들이 그의 눈앞에서 휴지처럼 깨끗이 풀려 나가 펼쳐졌고, 매일매일 그는 아무말도, 아무 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3년 전에, 8년 전에 뭔가를(무엇을?) 했다면,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이게 정확히 뭘까? 하지만 이번에는 뭐라고 말할 것이다. 이번에는 증거가 있으니까. 이번에도 주드가 빠져나가 그를 피하게 만든다면, 만약무슨 일이 생겼을 때 그건 다 그의 잘못이 된다. 이렇게 결정하고 나자, 피곤이 몰려왔고, 지난밤의 걱정과 불안, 좌절감이 그 피곤 속에서 지워졌다. 그날은 한 해의 마지막날이었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을 때 그가 마지막으로 느낀건 그렇게 빨리 잠들 수 있다는 데 대한 놀라움이었다. - P114
토요일은 일을 했지만, 일요일은 산책하는 날이었다. 산책은 5년 전 그가 이 도시에 이사 와서 거의 아무것도 몰랐을 때 필요에 의해 시작한 일이었다. 그는 매주 다른 구역을 선택해 리스페너드 스트리트에서 거기까지 걸어갔고, 그 주변을 정확하게 다 둘러본 다음 다시 집으로 왔다. 험한 날씨 때문에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 아니라면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산책을 했고, 맨해튼의 모든 구역은 물론, 브루클린과 퀸스의 여러 구역들까지걸어본 지금도 매주 일요일 10시면 집을 떠나 정해놓은 노선을다 끝내고서야 돌아왔다. 산책은 이미 오래전부터 좋아서 하는일이 아니라, 그냥 하는 일이 됐다-그렇다고 즐기지 않는 건아니지만, 한동안 그는 이 산책이 뭔가 운동 이상의, 어쩌면 아마추어 물리치료처럼 회복에 도움을 주는 일과가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가졌다. 앤디는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고 사실산책 자체에 반대했다. "다리 운동을 하고 싶어 하는 건 괜찮아." 앤디는 말했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면 수영을 해야지, 다리를 끌고 보도를 왔다 갔다 할 게 아니라." 사실 수영도 나쁘지 않았겠지만, 그가 혼자서만 수영할 수 있는 곳이 없었고, 그래서 그는 하지 않았다. - P127
몇 달이 지나면서 그 기분은 누그러졌지만, 그래도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 그건 얇게 낀 곰팡이처럼 그의 마음속에서 계속살아남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받아들일 만해질수록 다른 게더 힘들어졌다. 그는 자기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아도 될 처음이자 마지막 사람이 애너라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애너는 그가이제껏 살아온 삶을 온몸에 두르고 있다는 걸, 그의 전기가 살과 뼈에 새겨져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애너라면 쪄 죽을 것 같은 날씨에도 왜 짧은 소매를 입지 않느냐고, 왜 신체 접촉을 싫•어하느냐고 절대 묻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다리나 등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절대 묻지 않을 것이다. 애너는 이미다 알고 있었다. 애너와 있을 때는 다른 모든 사람들 옆에서 형벌처럼 느껴야만 하는 끝없는 불안이나 경계심을 전혀 느끼지않았다. 늘 곤두서 있느라 진이 빠졌지만, 결국 그 경계심은 그냥 삶의 한 부분이, 바른 자세 같은 습관이 됐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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