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기서
"자신의 문제를 풀어갈 언어를 가지지 못한 사회, 자신의 사회를 보는 이론을자생적으로 만들어 가지 못하는 사회"를
‘식민지적‘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여기서 ‘식민지성‘은 딱히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현상을 뜻하기보다는지식과 삶이 겉도는 현상을 뜻한다.

이 책은 겉도는 글, 헛도는 삶에 관한 책이다. 글을 읽을 때 우리는 당연히 그 내용을 우리 자신의 삶과 연결하여 적극적이고 창조적으로 읽어낸다. 당연히? 아니, 대부분의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나는 왜 우리가 책을 자신의 삶과 연결지어 읽어내지 못하는지를 캐묻고 있다. 인문사회과학 계통의 책을 읽으면서 텍스트를 자신의삶과 연결지어 적극적이고 창조적으로 읽어내지 못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다수의 대학생들이, 그리고 활동하는 지식인들이 그렇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에 도움이 될묘안은 없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다 보니 작게는 우리 사회의 현행입시 위주 교육이 생산해 내는 ‘인간‘에 대해, 크게는 지난 일세기에걸친 근대적 지식 생산과정에 나타난 ‘지식인‘에 대해 생각이 모아지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이 책은 자아 성찰의 기록이며 ‘지식과 식민 지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 P6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가르침‘과 ‘배움‘에 관한, 곧 ‘페다고지에 관해생각해 보는‘ 책이기도 하다. 강의를 하지 않기로 한 나의 결심이 학생들을 ‘배움‘으로 이끌었고 이 책의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학생들의소리가 선생인 나를 ‘가르쳤다. 여기에 실린 학생들의 글은 분명 오랫동안 90년대 전후 지성사를 알아가는 데 중요한 자료로 남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은 작은 교실 상황에서 내뱉아지고 되받아지고 또 모아지는 말을 살펴보고 있지만, 실은 여성이 ‘최초의 식민지‘가 된 이래의 장구한 인류 역사에서부터 지난 한 세기에 걸친 한국의 구체적 식민지 역사, 그리고 ‘종말론적‘ 위기 상황이라고 말해지는 후기자본주의적 상황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고 있으며 근본적인 시각전환을 주장하는, 의도가 강한 글인 만큼 논의가 거칠고 단순화된 부분이 없지 않을 것이다. 독자들은 누구에게 무엇을 배운다는 생각보다자아 성찰을 위한 토론에 참여하는 자세로 적극적인 책 읽기를 해주었으면 한다. - P7

이 책 전반을 통해 우리들의 ‘구체적 만남‘에 커다란 의미를 걸고 있는 나의 의도를 읽어내 주기 바란다. 동시에 이 책에서 간간히 부렸을지 모르는 횡포도 너그럽게 받아주고…… 작은 공동체가 깨지면서 활성화된 문자매체는 새로운 공동체가 만들어지지 않은 지금까지 여전히 인간적이기보다는 횡포한 매체로 남아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없다. 나는 궁극적으로 이 책에서 ‘서로 마주보며 하는 말‘이 중심이 되는 공동체 만들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삶‘과 ‘말‘과 ‘글‘의 거리가 좁혀진 세상, 우리가 원하는 바의 공동체가 만들어질 때 문자매체는 보다 선한 기능을 갖게 되리라.

1992년 3월 17일 신촌에서 저자 씀 - P9

 ‘명제적 지식에 중독됨‘은 구체적 식민지 역사를 가진 사회에 팽배한 현상이지만 이제는 꼭 그런 사회에만 국한하여 나타나는 현상이 아님은 이미 앞에서 밝혔다. 과학기술주의와 거대관료주의 시대로 들어서면서 세계 구석구석에 "일상적삶이 식민화 되고 있다"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으며 중심과 주변, 타자화된 주체와 권위적 언설의 해체 등이 이 시대의 문제를 풀어가는 주요 개념으로 부각되고 있다. 지난 3-4세기 동안에 있은 제국주의적역사 진행이 중심과 주변에 사는 모든 이들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어버렸다는 것을 우리는 지금 피부로 느끼고 있지 않는가? 이는 식민지적 상황이 단순히 정치적 독립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아니며 또한 식민 통치 기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님을 뜻하기도 한다. 어쨌든 ‘탈‘ 근대, ‘탈‘ 식민, ‘탈‘가부장제의 과제는 이 시대 우리에게지워진 무거운 짐이며 이 책에서는 ‘탈‘식민의 문제를 시작으로 ‘탈‘의 과제를 풀어가고자 하였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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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 루슈디 인도, 1947.6, 19,~

신화와 현실읗 넘나드는 환상적인 필치와 장중하고 지적인 문체로 관심을 받고 있는 작가이다. 부커 상과 휘트브레드 최우수 소설상 등을 수상하며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인도 뭄바이에서 태어나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다. 1975년 소설 「그리머스로 문단에 첫발을 내렸다. 1981년에 두 번째 작품 『한밤의 아이들로 세계 문학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그해 부커 상을 수상했다.
1988년 출간한 ‘악마의 시』에서 코란의 일부를 ‘악마의 시‘로 언급해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소설로 루슈디는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오르나, 이란의 이슬람 최고지도자로부터 사형선고를 받고 오랜 세월 암살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이런 위협 속에서도 그는2004년 세계 작가 단체인 국제 펜클럽의 미국 지부 회장에 지명되었다. 미국 애틀랜타 에모리 대학교의 교수로 부임했고, 2007년에는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는 『하룻과 이야기 바다』,
‘루카와 생명의 불』, 『한밤의 아이들』, 광대 샬리마르」, 피렌체의 여마법사』, 『악마의 시』, 『분노』 등이 있으며,
부커 상을 비롯하여 휘트브레드 최우수 소설상, 프랑스최우수 외국도서상, 독일 올해의 작가상 등 세계적으로권위 있는 문학상을 다수 수상했다.

글을 쓰는 순간순간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곤 합니다. 이 책을 쓸 때도 그랬어요. 제가 만든 등장인물 때문에 울고 있는 저를 발견할 만큼 그들에게 완전히 사로잡혔다고 느꼈습니다. 부니의 아버지인 현자 피야레랄이 과수원에서 죽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장면을 견디기 힘들어서 책상에 앉아서 울었습니다. ‘지금 뭐하는거지? 이 사람은 내가 만들어낸 인물일 뿐인데‘라면서요. 카슈미* 마을이 파괴되는 것을 쓰던 순간도 비슷했어요. 그 구상 자체를견디기 힘들었어요. 이 문장들을 쓸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극악무도함이라는 주제를 다루어야 하는 작가들은 이런 대면을 피할 수없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걸 견딜 수 없는 느낌은 처음이었습니다. ‘너무도 끔찍해서 쓰고 싶지 않아. 혹시 다른 일이 일어나게 할 수는 없을까?"라고 했어요. 그렇지만 다음에 바로 ‘다른 일이 일어날 수는 없어. 바로 이 일이 일어나야만 해.‘라고 타일렀지요. - P388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신문과 잡지에 실리는 악평입니다. 영국언론에서 일하는 누군가가 저를 호감이 가지 않는 사람이라고 평하면 참으로 이상한 느낌이 듭니다. 제가 그런 평을 받을 만한 사람인지 전혀 믿을 수가 없어요. 문학계에서는 한 번 칭찬받으면 다음번에는 비난받는 순환적인 체계가 있습니다. 『분노』가 나왔을 때는 비난받을 차례라는 것이 분명했지요. 상당히 많은 비판적인 반응이 책이 아니라 저 자신에 대한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분노』에 대한 서평 대부분에 지금은 아내가 된 당시 여자친구와 찍은 사진이 함께실렸습니다. ‘도대체 이 사진과 서평이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이들은 존 업다이크 책 서평을 시작하면서도 그의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을 실을까? 솔 벨로에게도 그렇게 하려나?‘ 하고 생각했지요. - P410

회고록을 쓸 계획이 있으신가요?


루슈디 
파트와 사건이 생기기 전까지 제 인생이 흥미롭다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저는 단지 소설이나 쓰고 그 소설이 흥미돕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어느 누가 작가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갖겠어요? 그랬는데 매우 드문 일이 제게 일어났지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하기 위해 이 일 저 일을 적어두곤 했습니다. 그리고정상적인 상황으로 되돌아갔을 때 회고록은 파트를 정리할 방법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어느 누구도 그 일에 대해서 다시는 묻지 않겠지요. 그렇지만 그러려면 자료를 조사하느라 일년, 글쓰느라 일 년, 글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최소한 일 년을 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제가 막 벗어난 그 사건에 서너 해동안 묶여 있어야 합니다. 그 일을 견뎌낼 수 있을 거라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 P412

작가들이 글을 쓸 때 이타적이라고 믿습니다. 돈과 명성에 대해서 생각하지도 않고요. 그들이 생각하는 건 가능한 한 최고의 작가가 되는 것, 할 수 있는 한 가장 훌륭한 이야기를 쓰는 것, 쓸 수 있는 가장 멋진 문장을 쓰는 것,
흥미로운 사람이 되는 것, 주제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하는 것뿐입니다. 이야기를 제대로 만드는 일에만 관심이 있지요. 글쓰기는너무도 어렵고 많은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글에 대한 반응이나 판매 등은 작가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이렇게 5년이란 시간을보냈는데 제가 얻은 것이라곤 전 세계적인 비난과 위협을 받는 삶뿐이었습니다. 신체적인 위험보다 지적 경멸이 훨씬 더 문제가 됩니다. 이는 작품의 진지함을 훼손하는데 이런 일은 제가 값어치 없는작품을 쓰는 가치 없는 사람이란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운이나쁘게도 이런 생각에 동의하는 서양사람들이 많지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짓을 한 걸까? 그럴 만한 값어치가 없는 일이었어. 5년을 엄청나게 진지하게 소설을 쓰면서 보냈는데, 의도적으로 썼다며 경솔하고 이기적인 기회주의자라고 비난받아야 하다니.‘ 당연히 의도적으로 썼지요. 5년이란 세월을 소설로 보냈는데, 우연일 수가 있겠습니까? - P413

읽으면 글을 쓰는 데 특별히 도움이 되는 게 있으신지요?


루슈디 
시를 읽습니다. 소설을 쓸 때는 약간 게을러지기 쉽습니다.
시를 읽는 것이 언어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합니다. 최근에는 체스와프 미워시‘를 많이 읽습니다. 그리고 다른 분야로 밥 딜런의 연대기도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은 놀랍습니다. 너무도 잘 써졌지만 가끔매우 조잡한 글이 뒤섞여 있기도 하고, 철자가 잘못된 부분도 있습니다. ‘evidently‘(분명하게)라고 써야 할 것을 ‘evidentially‘ (증거에 - P421

의거하여)라고 쓰기도 하고, ‘incredibly (믿을 수 없을 정도로)라고 써야 할 것을 ‘incredulously‘(쉽사리 믿지 않는 듯이)라고 쓰기도 했지요. 출판사의 누군가가 이 모든 것이 밥 딜런답다고 생각했음에 틀림없어요 - P422

 세계 영화가 놀라울 정도로 많이 쏟아져나왔던1960년대와 1970년대였지요. 책에서 배운 만큼이나 영화감독인 루이스 부뉴엘, 잉마르 베리만 장 뤽 고다르, 페데리코 펠리니로부터배웠다고 생각합니다. 한 주 동안 펠리니의 새 영화인 <8과 1/2>이상영되고 한 주 뒤에 고다르, 그다음 주에는 베리만 그리고 사티아지트라이 그다음엔 구로사와의 새 영화가 상영되면 어떤 기분일지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들은 의식적으로 일관성 있는 작품을 만들었지요. 그리고 작품의 주제가 완전히 소진될 때까지 탐구하였어요. 진지한 예술적인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고나 할까요. 그렇지만이제 영화든 책이든 우리 문화는 훨씬 태만합니다. 영화감독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팔려나가지요. 흥미로운 영화 한 편을 만들고 돈의 세계로 가버립니다. 지적이며 예술적으로 일관된 영화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이제는 누구도 그런 것에 관심이 없어요. - P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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귄터 그라스 폴란드 1927.10. 16.~


소설, 시, 희곡 등 다방면의 작품을 썼다. 직설적인 시대 비평이 특징이다. 대표적 장편소설 양철북으로 199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폴란드의 랑푸우르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독일인 어머니는 슬라브계 소수민족인 카슈바이인이었다. 제2차세계대전 기간 중 청소년기를 보낸 그라스는 후일 십 대 시절 나치 친위대에서 복무했던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1954년 서정시 대회에서 입상하면서 문단에 발을 들여놓았다. 같은 해 새로운 문학적 방향을 모색하는 전후청년 문학의 대표적 집단인 ‘47 그룹‘에 가입했고, 1959년 양철북』을 출간했다. 이후 양철북』으로 게오르크뷔히너 상, 폰타네 상, 테오도르 호이스 상 등 수많은문학상을 수상했다.
1963년 개들의 시절을 출간해 양철북」, 「고양이와 쥐까지 단치히 3부작‘을 완성했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를 거치는 동안 미국, 이스라엘을 여행하며 자신의 작품들을 감독했으며 국부마취」, 「납치」, 「텔크테에서의 만남, 같은 대작들을 출간했다. 1995년엔 독일 통일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작품인 ‘아득한 평원을 출간했으며, 1999년 그의 전 생애를 갈무리하는 나의 세기」를 발표했고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 외에도 ‘무당개구리 울음 게걸음으로 가다』 등을 발표하며 최근까지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어떻게 작가가 되신 건가요?


귄터그라스 
제가 자란 사회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겁니다. 저회 가족은 중하층 계급이었어요. 방이 두 개 있는 작은 아파트에서살았지요. 누이와 저는 방을 따로 갖지 못했습니다. 자신만을 위한공간이라곤 하나도 없었습니다. 거실의 창문 두개 너머에 좁다란구석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제 책이 쌓여 있었고 수채화물감 같은다른 물건들이 보관되었지요. 종종 필요한 것들을 상상하는 것으로만 만족해야 했습니다.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책 읽는 법을 매우 일찌감치 배웠습니다. 그렇게 글쓰기와 그림 그리는 일을 어린 나이에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이 낳은 다른 결과로 이제 저는 방을 모읍니다. 서로 다른 네 장소에 서재가 있습니다. 작은 공간에 딸린 한쪽구석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두렵거든요. - P264

어린 시절 첫 소설 쓰기에 실패한 다음에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라스 
첫 책에는 시와 그림이 들어 있었습니다. 제가 쓴 시의 초고는 언제나 그림과 시가 결합된 방식입니다. 때로는 이미지에서 때로는 단어에서부터 시작되지요. 그리고 스물다섯 살이 되어서 타자기를 살 만한 여력이 생겼을 때는 두 손가락으로만 타자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양철북』의 초고는 타자기로 썼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많은 동료들이 컴퓨터로 글을 쓴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요즘은다시 손으로 초고를 씁니다. 『쥐』의 첫 판본은 인쇄소에서 받은 줄이 없는 종이로 만든 커다란 책이었습니다. 책이 출판될 무렵, 항상다음 작품을 쓸 수 있는 빈 공책 한 권을 청합니다. 요즘에도 첫 원고는 그림을 곁들여 손으로 씁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타자기로고쳐 쓰지요. 책을 마무리하려면 고쳐 쓰는 과정을 세 번 거쳐야 합니다. 대개는 수정을 많이 한 네 번째 원고도 있기 마련입니다. - P266

소설과 비소설을 어떻게 구분하시나요?


그라스 
‘소설과 비소설‘이라는 구분은 당치 않습니다. 장르로 책을분류하는 서적상들에게는 유용하겠지만, 제 책이 그런 식으로 범주화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서적상들이 모임을 갖고 어떤 책은 소설로 어떤 책은 비소설로 구분하는 것을 언제나 상상하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구분 자체가 허구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 P268

실천적인 정치관을 시각예술이나 글과 어떻게 조화시키시나요?


그라스 
작가들은 그들의 내적이며 지적인 삶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 P268

삶의 과정과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글과 그림과 정치적인 활동, 이세 가지는 제가 별개로 추구하는 일입니다. 각각은 나름대로 강렬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생활하는 사회에 특히 잘 적응하였고 깊이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글과 그림 모두 언제나 정치와 섞여 있습니다. 제가 원하거나 원하지 않거나 상관없이요. 쓰고 있는 글에 정치를 도입하려고 계획하고 일을 시작하지는 않습니다. 서너 번 이상정치 현실을 직접 다루기를 주저하다가 역사에 의해서 망각된 사실을 알게 된 적이 있습니다. 단순히 특정한 정치 현실만 다루는 이야기를 쓰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 삶에 거대하고 결정적인 힘을 행사하는 정치에 대해 쓰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지요. 정치는 이런저런 방식으로 삶의 모든 측면에 배어듭니다. - P269

그래서 다시 캘커타에 갔습니다만, 언어를 사용하는 능력을 잃었습니다. 한마디도 쓸 수가 없었어요. 이런 순간에 그림이 중요해겠습니다. 캘커타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고 애쓰는 또 다른방법이었지요. 그림의 도움으로 마침내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책의 첫 부분이 되었는데, 일종의 에세이라고 할 수있을 겁니다. 그 후에 저는 세 번째 부분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 부분은 열두 개의 절로 이루어진 한 편의 긴 시입니다. 이는 캘키타에대한 도시의 시City Poem 입니다. 산문과 그림과 시를 함께 본다면, 이들이 연관되어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캘커타라는 도시를다룬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이 셋은 아주 다르지만 서로 대화가 이루어지지요.



세 가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그라스 
저에게만 한정해서 말씀드리자면, 시가 제일 중요하다고 답할 수 있겠습니다. 한 편의 시를 쓰는 것으로 한 편의 소설을 탄생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가 궁극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없지만, 시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제게는 출발점으로서 시가 필요합니다. - P271

당신의 활동 반경은 정치뿐만 아니라 환경까지 포함하며 이를 작품에서도 다루시지요.


그라스 
지난 몇 년간 독일과 다른 많은 곳을 여행했습니다. 죽어가는 오염된 세계를 그림으로 그렸지요. 당시 아직 동독이었던 지역과서독 국경의 죽어가고 오염된 곳을 목격하고 그린 그림책 『숲의 죽음』을 출판하였습니다. 정치적인 통일 이전에 독일 통일은 그곳에서 죽어가는 숲의 형식으로 먼저 발생했습니다. 이는 서독과 체코슬로바키아 국경의 산악 지역에서도 똑같이 일어났습니다. 마치 대학살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본 대로 그렸습니다. 그림은 설명이라기보다는 주석이라는 느낌을 주도록 의도한 간단하지만 의미심장한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그리고 후기가 실려 있지요. 이런종류의 주제를 다룰 때 그림은 글과 동등하거나 아니면 더 큰 무게감을 줍니다. - P288

문학은 변화를 가져올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술도 마찬가지고요. 현대예술의 영향으로 우리들은 세상을 보는 습관을 바꾸었습니다. 우리가 거의 알지못했던 방식으로 말입니다. 입체파의 독창성은 새로운 관점을 도입한 데 있습니다. 제임스 조이스가 『율리시스』에 내적 독백을 도입함으로써 인간이란 존재의 복잡함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문학이 일으킨 변화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책과 독자 사이의교류는 평화적이고 익명성을 띠지요.
책이 어느 정도까지 사람들을 바꿀까요?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많이 알지 못합니다. 책이 저에게는 결정적이었다고 대답할 수 있을뿐입니다. 어린 시절, 전쟁이 끝나고 제게 중요했던 많은 책 중의 하나는 카뮈가 쓴 작은 책인 시시포스 신화였습니다. 산의 바위-반드시 바닥으로 다시 굴러떨어지는 굴려 올리는 벌을 받은 유명한 신화적 영웅인 시시포스는 전통적으로 진정한 비극적인 인물로 여겨졌습니다.  - P289

그러나 카뮈는 그의 운명을 행복한 것으로 새롭게해석하였습니다. 그는 떨어지는 돌을 산꼭대기로 굴려 올리는 일을계속하지만 이 쓸모없는 듯이 보이는 행위는 실제로는 그의 실존을만족시킵니다. 만일 누군가가 그에게서 돌을 빼앗아간다면 그는 불행해질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저는 최종적인 목표를 믿지 않습니다. 돌이 산꼭대기에 가만히 있을거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이 신화는 비록 독일관념론을 포함하여,
모든 형태의 이상주의와 이데올로기에게 적대적인 입장이지만, 우리는 이것을 인간의 조건에 대한 긍정적인 묘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서양의 이데올로기는 어떤 궁극적인 목표, 즉 행복하고 공정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약속합니다. 저는 그런 것을 믿지 않습니 - P289

다.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입니다. 그 돌은 항상 우리로부터 미끄러져 내려가서 다시 굴려 올려야 합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그 돌은 우리로부터 떼어내려고 해보아야떼어낼 수 없는 그런 것입니다.



인간의 미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그라스 
우리가 필요로 하는 한 어떤 종류의 미래든 미래는 있을 것입니다. 한마디 말로 미래에 대해 많은 것을 말씀드리기는 어렵겠네요. 게다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한마디로 드리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쥐』‘암쥐‘ ‘라테사‘란 책을 썼지요. 그 밖의 대답을 원하십니까? 이 책이 그 질문에 대한 저의 긴 대답입니다. - P290

엘리자베스 개프니Elizabeth Gafney 
소설가이자 편집자이다. 바사 대학교를 졸업했고, 브루클린 대학교에서 소설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퍼블릭 스페이스와 파리 리뷰의 편집자로 일했다. 작품으로「메트로폴리스」, 「세계가 어렸을 때가 있다. - P290

토니 모리슨 미국, 1931, 2, 18,~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흑인의 정체성 문제를 주로 다루었다.
199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1931년 미국 오하이오 주 로레인에서 태어났다. 하워드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후 코넬 대학교에서 월리엄 포크너와 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쳤고 편집자로 일하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70년 첫 작품인 ‘가장 푸른 눈을 발표했으며, 19731년에 출간한 두 번째 소설 『술라가 전미도서상 후보에오르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 후 『솔로몬의 노래』가 전미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하고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며 대중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었다.
토니 모리슨은 1988년 『빌러비드」로 퓰리처상, 전미도서상, 로버트 케네디 상을 수상했다. 그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빌러비드』는 2006년 뉴욕 타임스] 북리뷰가 선정한 지난 25년간 최고의 미국 소설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1993년에는 독창적인 상상력과 시적 언어를 통해 미국 사회의 핵심적인 문제를 생생하게 담아냈다."는 평을 들으며 흑인 여성 작가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2006년 프린스턴 대학교의 교수직에서 퇴임한 후 아홉번째 소설 『자비를 발표했고, 이후 희곡 「데스데모나」,소설 ‘고향』을 잇따라 출간했다. 현재 잡지 『네이션』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글을 쓸 때 독자들을 염두에 두시나요?


모리슨 
저 자신만 염두에 두고 씁니다. 확신이 서지 않는 곳에서는등장인물들에게 의지하지요. 그때쯤이면 그들의 삶을 그리는 일에진정성이 있는지 없는지 저에게 이야기해줄 만큼 그들과 친해지지요. 하지만 저만이 할 수 있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결국 이건 제 작품이니까요. 잘하든 못하든 제게 모든 책임이 있습니다. 못하는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못해놓고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한여름 내내 아주 인상 깊은 작업을 해놓고 겨울까지 다시 손대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50쪽가량 쓴 글이 최상의 수준이라고 믿어마지 않았는데, 다시 읽어보니 매 쪽마다 형편없었습니다. 정말이지 제대로 된 작품이 아니었어요. 다시 시도해볼 수도 있었지만, 처음에 그렇게도 훌륭하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을 떨쳐버릴 수가 없더군요.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두려운일입니다. - P308

여기란 어디를 의미하나요?


모리슨 
이 세상이지요. 끔찍한 폭력, 고집스러운 무지,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려는 욕망 등을 자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좋은 친구와 식사하거나 책을 읽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세상의 이러한 상황을 의식하지요.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 큰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가르치는 행위가 문제를 풀려고 애쓰게 하기보다는 순응하거나 방심하도록 할 수도 있거든요.
저를 바로 여기, 이 세상에 속해 있다고 느끼도록 하는 것은 교수, 어머니, 혹은 연인으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글을 쓸 때 제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때는 제가 이 세상에 소속되어 있으며,
뿔뿔이 흩어져서 화해가 불가능한 여러 가지가 유용하게 연결될 수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럴 때면 전통적으로 작가들이 한다고 하는 일, 즉 혼돈에서 질서를 끌어내는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비록무질서를 생산해내더라도 그 시점에서 작가는 주권자 Sovereign가 됩니다. 작품을 쓰면서 분투하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실은 저에게 - P309

는 작품을 출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입니다.



이 일을 하지 않으면, 그렇다면 아마도 혼돈이……


모리슨 
그렇다면 저 역시 혼돈의 일부가 되겠지요.



혼돈에 대해서 강의하거나 정치에 뛰어드는 것은 해답이 되지 못할까요?


모리슨 
그쪽에 재능이 있다면야 그렇겠지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책을 읽거나 쓰거나 편집하거나 비평하는 것뿐입니다. 본격적인 정치가가 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곧 흥미를 잃게 될 테니까요. 정치가가 될 재주나 재능이 전혀 없습니다. 사람들을 조직해서 뭔가를할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아닙니다. 아마도 곧 따분함을 느끼게 될 겁니다. - P310

작가의 재능이 있다는 걸 언제 분명히 깨달으셨는지요?


모리슨 
아주 늦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이야기해주곤 해서 늘 제가 글 쓰는 데 능숙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기준이 제 기준이 될 수는 없지요. 그래서 남들이야 뭐라고 이야기하든 관심이 없었지요. 의미가 없으니까요. 세번째 책인 『솔로몬의 노래를 쓸 때쯤에 글쓰기를 제 삶의 핵심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여성 작가들이 말하지 못한 건 아닙니다만, 사실 여성으로서 "나는 작가다."라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어째서 그런가요?


모리슨 
글쎄요. 더 이상은 그렇게 말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겁니다. - P310

하지만 저에게는, 제 세대나 계급 또는 인종의 사람에게는 확실히어려웠지요. 모든 것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이제 많은 경우 젠더역할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더이상 여성들은 ‘엄마‘라든가 ‘아내‘로 스스로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노동 시장에서는 ‘교사‘라거나
‘편집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작가‘가 된다는 건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요? 직업인가요? 아니면 먹고사는 방편인가요? 작가가 된다는 건익숙하지 않고 속해 있지 않은 영역으로 개입해 들어가는 일입니다.
당시에는 개인적으로 아는, 성공한 여성 작가가 전혀 없었어요. 작가가 되는 건 남성의 영역처럼 보였지요. 그래서 주변부의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작가라도 되기를 바랐습니다. 허가라도 얻어야 할 것처럼 느껴졌지요. - P311

여성 작가의 전기나 자서전, 또는 어떤 여성이 어떻게 글을 쓰기 시작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보면, 거의 대부분 그들에게 누군가가 그것을 허락한 순간에 대한 일화가 등장합니다. 엄마이거나,
남편이거나, 선생님이거나, 하여간 누군가가 "좋아, 글을 써보렴. 너는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거지요. 남성 작가들에게 그런 순간이필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닙니다. 특히 그들이 아주 젊을 때 어떤 멘토가 훌륭하다고 칭찬해주면 그 순간 날아오르기도 합니다. 제 말씀은 남성들은 작가로서의 자격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겁니다. 저는 그럴 수가 없었는데 말입니다. 이상한 일이지요. 글쓰기가 인생의 핵심이고 마음을 몽땅 차지하고 있고, 기쁨을 주고 자극을 주는데도저는 제가 작가라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직업이 뭔가요?"라고 물으면 "아, 저는 작가랍니다."라고 대답하지 못했어요.
대신 "편집자랍니다." 아니면 "교사예요."라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 P311

당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이 조금이라도 관련 있나요?


모리슨 
그 점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는너무 바빴습니다. 그렇지만 제 삶과 미래를 절대로 남자들의 변덕에맡기지 않을 거라는 점만은 확실합니다. 직장 내에서든 밖에서든요.
남자들의 판단은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저의 생각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겁니다. 이혼하고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 엄청난 해방감을 주었지요. 실패에 대해서는 한 번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어떤 남성이 저보다 현명하다고 판단하게 되는 데는신경이 쓰입니다. 그전에는 제가 아는 모든 남자가 저보다 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도 그랬고요. 아버지와 선생님들은 모든 것을 잘 아는 똑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저한테 아주 중요하고 똑똑하지만 저보다 현명하지는 못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 P313

분명 재즈는 악마의 음악이라고 여겨졌습니다. 모든 새로운 음악이 그렇듯이요. 너무나 관능적이고 자극적이라는 이유 등으로요.
그러나 몇몇 흑인들에게 재즈는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다시 찾는 과정이었습니다. 자신의 몸이 오랫동안 소유의 대상이었고, 어린시절에 노예였으며 부모님도 노예였음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사실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블루스와 재즈는 자신의 감정에 대한 소유권을 나타냅니다. 물론 그래서 그 음악은 과도한 경향이 있지요. 마치 행복한 결말이 재즈의 영광과 맛을 앗아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재즈에서의 비극을 즐깁니다. 요즘 광고주들은 텔레비전에서 진정성과 현대성이라는 분위기전달을 위해서 재즈를 이용합니다. ‘나를 믿어요. 혹은 ‘최신 유행‘ - P332

이라는 거지요.
요즘에도 도시는 재즈 시대에 가졌던 흥미진진한 특징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단지 요즘에는 흥미를 다른 종류의 위험과 연결시키지만요. 우리는 노숙자들에 대해서 경악해서 끝없이 떠들고 비명을지르고 시끄럽게 합니다. 우리의 거리를 되찾고 싶다고 말하지요.
하지만 노숙자에 대한 인식과 그 문제를 다루는 고용 전략에서 우리는 도시의 느낌을 갖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것, 소외된 것, 낯설고폭력적인 것과 만났을 때 관여되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무기와방어막, 결단력, 힘, 강인함, 영리함을 갖춘 것처럼 느끼는 것이 도시삶이 갖는 의미의 일부입니다. 사람들이 노숙자에 대해서 소위 ‘불평할 때 실제로는 자랑하는 겁니다. 뉴욕은 샌프란시스코보다 노숙자가 더 많아요. 아니요, 아닙니다. 샌프란시스코에 더 많다니까요.
아니지요. 디트로이트가 더 많아요. 이런 식이지요. 우리는 우리의관용에 대해서 거의 경쟁적입니다. 그 점이 우리가 노숙자를 그렇게쉽게 받아들이는 이유랍니다. - P333

하지만 흑인음악을 들으면 듀크 엘링턴, 시드니 베체트, 루이 암스트롱, 혹은 마힐스 베이비스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지요. 그들은 서로 전혀 비슷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이 흑인 연주자라는 것을알지요. 그 사실을 깨닫게 하는 어떤 특징이 있으니까요. 그래요, 그렇습니다. 이 점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음악 전통이라고 불리는 어떤 것의 일부이지요. 어떤 흑인 여성 가수도 팝송이나 재즈, 블루스를 서로 비슷하게 부르지 않습니다. 빌리 홀리데이는 어리사 프랭클린이나 니나 시몬 혹은 사라 본처럼 노래하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와도 다릅니다. 그들은 실로 강렬하게 다른 사람들과 다릅니다. 다른 가수들과 비슷하게 노래를 불렀다면 가수가 되는 것 자체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들은 말해줄 겁니다. 만일 누군가 엘라피츠제럴드처럼 노래한다면 사람들은 "아! 우리는 이미 그런 가수가 있어요."라고 할 겁니다. 이 여성 가수들이 어떻게 그다지도 뚜렷하고 명확한 이미지를 가졌는지 생각해보면 흥미롭습니다. 저도 그런 식으로 글을 쓰고 싶습니다. 명확하게 나만의 것이면서도 아프리카계 미국인 전통에 부합하고, 다음으로 문학 전체에 걸맞는 그런소설을 말입니다. - P338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보다는 문학의 위대한 대변인으로 알려지고 싶지는 않으신지요?


모리슨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저에게는 매우 중요합니다. 제 작품이 다른 집단이나 더 커다란 집단으로 동화될 수있다면 더욱 좋지요. 하지만 말씀하신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조이스는 그런 요청을 받지 않았지요. 톨스토이도 그렇고요. 그작가들은 러시아, 프랑스, 아일랜드, 혹은 가톨릭에 뿌리를 둔 작가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출신에 근거를 두고 글을 썼습니다. 저도그렇습니다. 단지 저에게는 그 공간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것뿐입니다. 가톨릭일 수도 있고, 중서부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한편으로는 가톨릭 신앙을 가진 중서부 출신이기도 합니다. 그런 사실들이모두 다 중요하지요. - P339

엘리사 샤펠Elissa Schappell 

소설가이자 편집자, 수필가이다. 2000년에 출판된 첫 번째 소설은 열 개의 단편을 모은 책으로 펜클럽 상과 헤밍웨이 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파리 리뷰의 선임 편집자였고,
문학 잡지 「틴 하우스의 선임 편집자이자 공동 설립자이다. - P346

주제 사라마구 포르투갈 1922.11.16.~2010.6.18.

독재 치하 공산주의 정당에서 활동하다가 추방된 후 소설가,
시인, 언론인으로 활동하였다. 인간의 운명과 약점을 깊이 있게 다른 독창적이고 다층적인 작품들로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했다. 1998년 포르투갈어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포르투갈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기계공, 번역가, 평론가, 신문기자, 잡지사와 출판사의 편집위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1947년 소설 『죄의 땅』을 발표하면서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후 오랜 시간 한 편의 소설도 쓰지않고, 우파 독재자 살라자르 시절 내내 정치 칼럼니스트 활동 등 공산당 활동에만 전념하다가, 1966년 시집가능한 시들』을 펴낸 후에야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시, 소설, 희곡, 콩트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작품을 발표했지만 문학적 명성을 공고히 한 작품은 1980년 출간한 「바닥에서 일어서서였다. 전성기를 연 작품은 『수도원의 비망록으로, 이 작품으로 사라마구는 유럽 최고의 작가로 떠올랐으며 1998년에는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외 주요 작품으로 예수복음, 눈먼 자들의 도시」,
동굴」, 「도플갱어」, 「눈뜬 자들의 도시』 등이 있다.

이 믿음은 제게 지금 사는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하게합니다. 제가 상상하는 건 전 세계를 아우르는 혁명입니다. 저의 이상적인 비전을 부디 용서해주길 바랍니다. 선Goodness 으로 하나가 되는 거죠, 만일 우리 중에서 두 사람이 깨어나 "오늘 누구도 해치지않겠다."라고 말하고, 다음 날 다시 말하고, 실제로 이런 말을 지키면서 산다면 세상은 빠른 시일 안에 변화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터무니없는 소리입니다.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겠지요.
그 모든 것이 ‘이런 세계에서 이성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절 이끌었습니다. 제가 『눈먼 자들의 도시를 쓴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런 주제들이 문학작품을 쓰는 데 영향을 미칩니다. - P370

눈먼자들의 도시가 당신 소설 중에서 가장 쓰기 어려웠다고 말씀하셨지요.
그 이유는, 백색 질병이라는 유행병이 맹위를 떨치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동족에게 표출한 명백한 잔인성과 이러한 행동에 대한 글을 쓰면서 겪게 된불안함 때문인가요? 당신은 궁극적으로는 낙관주의자이신가요?


사라마구 
저는 비관주의자입니다. 그러나 제 머리에 총을 쏠 정도는아닙니다. 언급하신 잔인함은 단지 소설에서만이라기보다는 전 세계에서 매일 벌어지는 일상적인 일입니다. 바로 이 순간 우리는 백색 질병이라는 전염병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실명은 인간의 이성이맹목적임을 표현하기 위한 은유입니다. 이 행성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는데도, 아무런 갈등 없이 저 행성의 바위 형성과정을 조사하려고 화성으로 우주선을 보냅니다. 우리는 눈이 멀었거나 미친 거지요. - P371

비평가들의 의견이 중요한가요?


사라마구 
중요한 것은 제가 해야 할 일을 잘하는 겁니다. 잘했는지그렇지 않은지는 순전히 저만의 기준에 따르지요. 그리고 제가 쓰고싶은 대로 책을 쓰고 있다는 점이고요. 책이 제 손을 벗어난 뒤에는인생에서 볼 수 있는 다른 모든 것과 똑같습니다. 어머니가 아이를낳고 아이에게 최선이길 희망하지만, 그 인생은 어머니가 아니라 아이의 것이지요. 아이는 자신의 삶을 만들고 또 다른 사람들도 그럴텐데, 확실한 건 그 삶이 결코 어머니가 꿈꾸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수많은 독자들이 제 책을 대단히 좋아해 주리라는 꿈은 아무소용도 없습니다. 독자들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P373

가끔씩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인간이 결코 지구에서 떠날 수 없어야 한다고요. 왜냐하면 우주로 흩어진다 하더라도, 지구에서 해왔던 것과 다르게 행동할 것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인간이 정말로 우주에서 살 수 있게 된다면-사실 인간이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 않지만 아마도 전 우주를 감염시킬 것입니다.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이 지상에서만 존재하는 바이러스의 일종이겠지요. 언젠가 초신성과 그 폭발에 대한 글을 읽고 난 뒤 인간이 우주로 흩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대해 안심했습니다. 그 초신성 폭발로 인해 생긴 빛이 약 3~4년 전에 지구에 도달하였는데, 지구에 도달하 - P375

는 데까지 16만 600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두려워할 필요 없겠군. 우리는 그렇게 멀리까지 갈 수 없을테니‘ - P376

돈젤리나바호주Donzelina Barroso 
로버트 F. 와그너 대학원에서 행정학, 뉴욕 대학에서 공공사업, 버나드 대학에서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문학에 대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교육, 건강, 빈곤층 구조에초점을 맞춘 국제 기금을 조성했고, 현재는 포르투갈에서 사회복지 정책과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 중이다. 포르투갈-미국 상공회의소의 이사회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국제 자선기금 네트워크 운영위원회의 구성원이다. - P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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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창비시선 237
김태정 지음 / 창비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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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싼타


바람 부는 성탄 전야
쏟아지는 잠을 쫓으며
그림동화 원고를 메운다
삼십여년 전의 아비가 되어……


옛날 옛적 갓날 갓적 호랑이 담배 먹고 여우가 시집 가던 시절에 인당수보다 깊고 보릿고개보다 높고 배고픔보다 서러운 산골에 참배같이 늡늡하고 댕돌같이 단단하고 비단처럼 마음씨 고운 나무꾼이 살았더란다…… 어느 추운 겨울날 배고픈 호랑이가 산속에서 어슬렁어슬렁 내려와…… 어쩌면 외로워서 동무가 그리워서 혼자 겨울날것을 생각하니 까마아득해져서 그래서 호랑이는 산골마을로 내려온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파랑병을 던지니물바다가 되고 빨강병을 던지니 불바다가 되고…… 그래서 호랑이는 꽁지가 빠져라 도망을 가고 나무꾼은 참배 같은 댕돌 같은 아들딸 낳고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았더란다. - P10

최저생계비도 되지 못하는 원고지만
그래도 이런 해피엔딩이 있어서 좋다
삼십여년 전 아비도 그랬을까


삼십여년 전 아비의 그림동화 속에서
심청이는 심봉사와 해후하고
홍길동은 혁명을 시도하고
춘향이는 사랑을 꽃피우고
아비는 원고지에 무엇을 완성했을까
호랑이처럼 입 벌리고 있는 가난에
희망의 파랑 병 빨강 병을 던져
아비는 무엇을 구했을까


시인도 되지 못하고 소설가도 되지 못한 아비
아침이면 식구들의 양식이 되고
아이들의 양말이며 운동화가 될 원고지에 - P11

아비는 좌절된 해피엔딩을 꿈꾸었을까


어린 남매와 만삭의 아내
그리고 눈 내리는 성탄 전야
사랑도 혁명도 희망도
아비에게는 한끼의 봉지쌀도 되어주지 못하던
1960년대 그 미완의 성탄 전야 - P12

나의 아나키스트


1980년대를 거쳐온 1963년생 소위 386세대라고 불리던 그러나 386 컴퓨터와는 지극히 거리가 먼 나같이 비과학적 비문명적인 사람도 286이나마 컴퓨터가 있으니 참살기 좋은 세상이다.
자판을 누르기만 하면 척척 글자가 나오고 오자가 나오면 고쳐주고 맘에 들지 않는 문장은 지워주고
펜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내, 생각의 속도보다 앞질러 미리 시가 되어주고
원고지 백매 천매라도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해주는,
또한 원고지 백매 천매라도 단 한순간 눈 깜빡할 사이에 지워주는
이 286 컴퓨터는 1996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색인 교정 아르바이트 일당 4만원으로 장만한 내 재산목록 1호


부티나는 장정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멀리 바다 건너오느라 후진국 가난한 시인의 생계를 알 리 없겠지만
아무튼 일당 4만원의 노동으로 장만한 286은 그후 내 - P13

내 밥줄이 되어주었는데 386은 물론 486도 가고 586도가고 따라올 테면 따라와보라는 속도의 최강자만이 살아남는 인터넷 시대에
내가 아직도 286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일당 4만원의 땀 밴 추억 때문도 아니고 재활용에 대한 알뜰한 집착때문도 아니다


원고로 먹고사는 사람들에겐 뭐니뭐니 해도 컴퓨터의 장점은 속도와 정보와 통신이라지만
정보와 통신이 두절되고 속도를 아예 잊어버린 그의 자폐적 태평세월이 흔적을 남기지 않는 그의 신중함이 열받을 땐 백매든 천매든 미련없이 날려버리는 그 화끈함이 내겐 무엇보다 믿음직스러워서
어떤 사상이든 어떤 정견이든 어떤 욕설이든 내뱉어도 발설하지 않는 나의 286은 외계와의 교신을 버린 아나키스트라서
흔적을 사냥하는 광견의 시대 팔공년대를 통과하면서 - P14

천기누설공포증이라 해도 좋을 풍토병을 다만 아웃사이더였을 뿐인 나까지 덩달아 않았으니 볼펜을 쥐는 것조차 두렵던 시절 시도 편지도 머릿속으로만 쓰는 습관이 들었으므로 전화번호를 씹어삼키는 버릇이 생겼으므로


이제 나의 286은 천하무적이다
내가 무슨 소리를 지껄여도 어떤 사상을 꿈꾸어도 어떤 정치꾼을 욕한대도 어떤 정견을 갖고 있대도
아무도 모르는 오직 나와 286과의 암묵적인 약속, 수상한 문자는 깨끗이 지워준다는 불온한 유전자는 절대 유출하지 않는다는 외계와의 교신은 완벽하게 끊어준다는 알리바이를 확실히 담보해준다는 약속을 나는 철저하게 맹신한다
이것이 팔공년대에 대한 나의 증오이고 애정이라 해도좋다 머지않아 다시 컴퓨터대란이 올지라도 - P15

시의 힘 욕의 힘


시가 안될 때
요렇게 한번 해보렷다
개새끼!
그래도 안될 때
죽어도 안될 때
쫌스럽게 하지 말고
똑 요렇게
씹새끼!
설사가 나오지?
후련하지?


욕이라는 것은 그래서 좋은가
사람들은 그래서 사는가


개당 50원짜리 실밥따기에 코피를 쏟아도
개새끼!
사람들은 그 생의 들숨으로 온 밤을 버티지 - P16

종종 삶의 비탈길에서 허방을 짚어도
씹새끼!
사람들은 그 생의 날숨으로 땅을 짚고 일어서지


그래 나도 시가 안될 때 한번
개새끼!
그래도 안될 때
죽어도 안될 때
씹새끼!
설사가 나온다
후련하다
시를 쓴다는 것은 그래서 좋다
나는 그래서 산다


순도 백 퍼센트를 내세우고도 모자라 순, 진짜만을 부르짖는 예술교주의파 시인들이
점잖게 경멸을 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 P17

힘을 준다는 것
견디게 해준다는 것
시와 욕은 그래서 하나라는 것
이것이 나의 시론이고 개똥철학일 수밖에 - P18

오늘밤 기차는


오늘밤 기차는 나비처럼 나비처럼만 청산 가자 하네 청산엘 가자 하네 북덕유 남덕유 지나 육십령은 너무 늙어 청산은 간 곳 없고 반야 천왕봉 시방 일러 꽃내음 아득하니 섬진강 물후미 돌아 남으로 남으로나 내려가자네 오늘밤 기차는


나비처럼 나비처럼만 청산 가자 하네 청산에 가자 하네 꽃아비야 너도 가자 쇠도 살도 산그늘에 흩어버린 채, 꽃각시야 너도 가자 감푸른 고기 떼 달물 결 타는 남해 큰바다 여수는 여수(麗水)로되 잠도 꿈도 곤곤하련만


나비야 심청이처럼 심청이처럼만 풍덩 뛰어든 심해 혼몽 끝에 꽃은 피어 온통 동백이로구나 그 환한 어혈 속에 집이 들어 비난수하는 할마이 잠마다 꿈마다 꽃이슬로 슬맺혀 있고나 나비야 청산가자 여수 14연대 구빨치 뫼똥도 없는 아비의 기일이면 달싹쿵달싹쿵 꽃몸살 하는 동박새 함께 놀다 가자 밥도 잠도 폭폭하면 꽃그늘 속 푸르고 바랜 이끼 위에 살폿 머물다 가자 - P19

겨울산


한시절 붉고 노란 단풍으로
내 마음 끝없이 일렁이게 하더니
끝없이 일렁여 솔미치광이버섯처럼
내가 네 속을 헤매며
네가 내 속을 할퀴며 피
흘리게 하더니
이제 산은 겨울산이다
너는 먼빛으로도 겨울산이다


어느곁에 소스라치게 단풍 들어
네 피에 내가 취해 가을이 가고
풍성했던 열애가 가고
이제 우린 겨울산이다
마침내 헐벗은 사랑이다
추운 애인아
누더기라도 벗어주랴
목도리라도 둘러주랴da - P20

쌀 한줌 두부한모 사들고 돌아오는 저녁
내 야트막한 골목길에 멈춰서서 바라보면
배고픈 애인아
따뜻한 저녁 한끼 지어주랴
너도 삶이 만만치 않았으리니
내 슬픔에 네가 기대어
네 고독에 내가 기대어
겨울을 살자
이 겨울을 살자 - P21

울어라 기타줄


가진 것이라곤 달랑 깡통밖에 없던 그가, 무전취식에 문전결식에 다리밑 인생인 그가, 공중변소 안에 웅크려앉아 빵을 뜯어먹던 그가 사회정화의 몽둥이로 밑바닥을 일망타진하던 짭새들에게 끌려갔다는 이야기 한 대목.


저거이 사람이냐 저거이 사내냐 니는 워디서 왔다 워디로 가는 인생이간디 뭐 묵고 헐 지랄이 없어서 노다지 동냥질이나 동냥질이 도대체 저 인생은 뭣으로 산다냐 왜 산다냐.


하며 짭새들이 밟아댔다는데 갑자기 그가 웃통을 훌떡벗어젖혀 순간, 어리둥절하며 할말을 잃은 광주의 어느 뒷골목, 팽팽한 기타줄처럼 쟁쟁한 긴장감이 감돌았다는데, 포획당한 짐승의 눈빛은 솟구치는 쇳물꽃만 같았다는데..… 기타 치는 폼으로 기타줄 고르듯 그가 제 갈비뼈를 뜯으며 멋들어지게 뽑아댄 눈물의 십팔번이라는 것이 - P22

나앛서어얼으은 타햐아앙에에에서 그으나알 바암그으 처어녀어어가아 웨엔이이일이이인지이 나아르을나아아르을 모옷이이이잊게에 하아아아네에 기타아아아주우울에에 시일으은 사아라앙 뜨내애애기이 사라아앙 우울어어어라아 추우어어억의 나아의 기이이타아아여어


구절양장 산길을 타듯 솟구쳤다 사라지고 사라졌다 솟구치는 굽이굽이 강물이 흐르듯 무심한 듯 유정하고 유정한 듯 무심한, 유장한 목청 하나로 세상과 맞장을 떴다는데, 그의 기타줄도 그렇게 울었다는데


뭐 땀시 뭔 낙으로 사느냐고?


누더기 속에 감춰진 앙상한 갈비뼈…… 구절양장 그의 오장육부와 사라졌다 솟구치고 솟구치다 사라지는 그의 - P23

생애와 무심한 듯 유정하고 유정한 듯 무심한 그의 사랑을 지탱해주는, 가래침 같은 모멸과 치욕과 증오를 다스리게 해주는, 아무도 모를 그의 직립의 비밀은 거기 있었다는, 흘러간 팔십년대 신파극 한 대목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는 이야기. - P24

눈물의 배후


십년 묵이 낡은 책장을 열다가 그만
목구멍이 싸아하니 아파왔네
아침이슬 1, 어머니,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때문이 아니라
먼지 때문에, 다만 먼지 때문에


수염이 덥수룩한 도이치 사내를 펼쳐 보다가 그만 재채기를 했네
자본론, 실천론, 클라라 쩨트킨, 꽃도 십자가도 없는묘지
때문이 아니라
먼지 때문에, 다만 먼지 때문에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힘들다던
네루다 시집 속엔
오래 삭힌 멍처럼 빛바랜 쑥이파리 한점
매캐한 이 콧물과 재채기는 - P25

먼지 때문에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힘들다는 그 말
때문이 아니라
다만 먼지 때문에


바람이 꽃가루를 날려보내듯
먼지가 울컥 눈물을 불러일으켰나


청소할 때면 으레 나오던 재채기도
재채기 뒤에 오는 피로도
피로 뒤에 오는 무기력함도
무기력함으로 인한 단절과 해체도
그 쓸쓸함도, 그 황폐함도 다만
먼지 때문이라고 해두자
먼지보다 소심한 눈물 때문이라고 해두자


그 사소한 콧물과 눈물과 재채기 뒤에 - P26

저토록 수상한 배후가 있었다니


꽃도 십자가도 없는
해묵은 먼지의 무덤을 열어보다가
그만 눈물이 나왔네
최루가스 마신 듯 매캐한 눈물이
먼지 때문에, 다만 먼지 때문에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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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를 마치고 한 시간쯤 뒤 에스트라벤은 그래도 될 것같으면 스토브 열기를 낮췄고, 스토브의 조명을 껐다. 에스트라벤은 그러면서 짧고 아름답고 우아한 기도문을 암송했다. 내가 한다라에서 유일하게 배운 기도문이었다. "그리고 어둠을 찬미하고, 끝나지 않은 창조를 찬미하라." 에스트라벤이 말했고, 어둠이 찾아왔다. 우리는 잠을 잤다. 아침이 되면 같은 일과가 반복되었다.
50일 동안 그런 생활을 했다.
에스트라벤은 빙원을 지나던 시기에는 날씨와 그날 이동한 거리 말고 다른 것은 거의 적지 않았지만 그래도 날마다 일기를썼다. 이러한 기록 가운데에는 자신의 생각이나 우리가 나눈 대화에 대한 언급이 종종 있었지만 우리가 빙원에서 지낸 첫 달, 이야기할 힘이 충분했으며, 며칠 동안 폭풍 때문에 텐트에서 지내야 했던 당시 거의 밤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잠잘 때까지 나눈 심도 깊은 대화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쓰지 않았다. 나는 에스트라벤에게 비동맹 행성에서 마음의 언어 사용이 금지되어 - P335

있는 것은 아니지만 쓰지 않는 걸 기본으로 한다고 설명했고, 최소한 우주선에 있는 동료들과 그 문제에 대해 상의할 때까지 그것을 게센인들에게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에스트라벤은흔쾌히 동의하고 약속을 지켰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침묵의 대화에 대해서 절대 말하거나 글로 쓰지 않았다.
에스트라벤은 우리 세계의 문명과 외계의 존재에 대해 깊은관심을 보였으며, 마음의 언어는 그런 그에게 내가 알려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나는 끝없이 이야기하고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사실, 어쩌면 우리가 겨울 행성에 꼭 주어야 할 것도 그것뿐인지 몰랐다. 하지만나는 내가 문화 수출 금지령을 어긴 동기가 그에 대한 고마운 마음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에스트라벤에게 진 빚을 갚은 게 아니었다. 그러한 빚은 언제까지고 남아 있는 법이다. 에스트라벤과 나는 단지 우리가 나누어 가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나누는 단계에 이른 것뿐이다. - P336

우리는 자고 또 자고, 조금 먹고, 동상과 염증과 멍든 곳을 돌보고, 마음으로 이야기하고, 다시 잤다. 사흘 동안 계속된 비명과 고함이 수다로 바뀌었고, 이윽고 흐느낌이 되었다가 이윽고침묵이 되었다. 날이 밝았다. 열린 문밸브 사이로 하늘의 환한빛이 비쳐 들어왔다. 덕분에 마음이 가벼워졌지만, 너무 지쳐있었기에 가벼운 마음에 맞춰 재빨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우리는 텐트를 접고 그러는 데 거의 두 시간이 걸렸다. 두 사람 모두 노인처럼 꾸물거렸기 때문이다 출발했다. 내리막길이었으며, 가파르지 않았다. 설질은 스키를 타기에 딱 좋았다. 태양이빛났다. 아침 중반, 온도계는 화씨 영하 10도를 가리켰다. 움직이기 시작하자 힘이 나는 듯했으며, 빠르고 쉽게 앞으로 나아갔다. 우리는 그날 별이 뜰 때까지 이동했다. - P364

나는 이 마지막 며칠 동안의 여정을 자세히 설명할 수가 없다.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굶주림은 지각을 날카롭게 하지만, 극도의 피곤함과 겹쳐졌을 때는 그렇지 않다. 당시에는 내 모든 감각이 아주 둔해졌던 것 같다. 굶주림 때문에 경련이 일어난 기억이 나지만 그 때문에 고통스러웠는지 어땠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해방감과 황홀감이랄까, 그 너머의 감정이랄까를 몽롱한 속에서 계속 느꼈으며, 또한 끔찍하게 졸렸던 기억도 난다. 우리는 안네르 포스세, 즉 12일에 육지에 도착했고, 마침내 얼어붙은 해안을 넘어, 바위와 눈투성이인 황량한구센만 해안에 발을 들여놓았다.
우리는 카르히데에 있었다.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배고픈 성취감에 가까웠다. 배낭이 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도착을 축하하기 위해 뜨거운 물로 건배를 했다. 이튿날 아침, 도로와 마을을 찾아 출발했다. 이곳은 황량한 지역으로, 우리는 지도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 P367

그날은 안네르 오드오르니로, 여행을 시작하고 81 일째 되는날이었다. 우리는 에스트라벤이 짠 일정보다 열하루 늦었다. 에스트라벤은 날짜에 정확히 맞춰 식량을 준비했다. 많아야 78 일치였다. 썰매 계량기에 표시된 거리에 마지막 며칠동안 이동한 거리를 어림짐작한다면 840 마일을 온 것이다. 그 거리 가운데 상당 부분은 헤매며 낭비한 거리였으므로, 만약 우리가 정말로 이동해야 할 거리가 800마일이었다면 절대로 해내지 못했을것이다. 제대로 된 지도를 손에 넣었을 때, 우리는 풀레펜농장과 이 마을 사이 거리가 730마일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긴 거리와 시간 동안 우리는 집도 없고 사람도 없는 황량한 곳을 가로질러 왔다. 바위와 얼음과 하늘과 침묵만이 존재하는 곳, 81일 동안 우리 둘 말고는 아무도 없는 곳을 가로지른 것이다. - P368

에스트라벤이 간신히 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영지의 환대를 부탁드립니다."
소란, 웅성거림, 혼란, 놀람, 환영.
"저희는 고브린 빙원을 넘어왔습니다."
더 큰 소란, 더 많은 목소리들. 질문들. 그들이 우리 앞으로 몰려왔다.
"제 친구를 돌봐주시겠습니까?"
나는 내가 그렇게 말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에스트라벤이 한 말이었다. 누군가 나를 앉혔다. 그들은 우리에게 음식을내주었다. 우리를 돌보아주었고, 받아들였으며, 환영했다.
그들은 가난한 땅에 사는 아는 것 없고, 토론하기 좋아하고,
열정적이며, 무식한 시골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호의 덕분에우리는 힘든 여행을 멋지게 끝맺을 수 있었다. 그 사람들은 우리 - P369

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주었다. 아까워하거나 계산을 따지지 않았다. 그리고 에스트라벤은 그들이 우리에게 주는 것을 영주 무리 속의 영주처럼, 거지 무리 속의 거지처럼, 자기 동포 속에 있는 사람처럼 편안히 받아들였다.
오지 중의 오지인 이곳 마을, 인간이 간신히 살아갈 수 있는이 대륙의 거주 한계점에 사는 어부들에게 정직은 음식과 마찬가지로 필수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서로 정직하게 행동해야만했다. 서로 속일 만큼 풍족하지 않았다. 에스트라벤은 이를 알고 있었고, 하루 이틀이 지나자 그들은 우리 주위에 몰려와 시프그레소를 갖춘 조심스럽고 신중한 태도로, 왜 한겨울에 고브린병원을 헤맸는지 물었다. 에스트라벤이 즉시 대답했다. "침묵을 지켜서는 안 되겠지만 거짓말보다는 낫겠지요." - P370

"고귀한 분들은 추방당하기 마련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그렇다고 그런 분들의 그림자가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온식 가게 요리사가 말했다. 그는 이 마을에서 촌장 다음의 서열이었으며, 그의 가게는 겨울 동안 영지 사람들에게 일종의 사랑방 구실을 했다.
"한 명은 카르히데에서 추방당하고 다른 한 명은 오르고레인에서 추방당했다고 할 수 있겠군요." 에스트라벤이 말했다.
"사실입니다. 한 명은 자기 부족에 의해, 다른 한 명은 에르헨랑에 있는 왕에 의해."
"왕은 누구의 그림자도 줄어들게 하지 못합니다. 시도는 할 수있겠지만요." 에스트라벤이 의견을 말했고, 요리사는 만족한 듯 - P370

보였다. 만약 에스트라벤이 그 자신의 부족에 의해 추방되었다면 의심스러운 인물이 되었겠지만 왕에게 비난을 받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한편 나로 말하면, 외국인이자 오르고레인에서 추방된 자가 분명했지만, 그건 기껏해야 내 신망과 관련이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쿠르쿠라스트에서 우리 이름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에스트라벤은 가명을 쓰는 걸 무척 꺼려했지만 진짜이름을 밝힐 수는 없었다. 어찌되었든, 이들이 했던 것처럼 에스트라벤에게 먹을 것과 옷가지를 주고 묵을 곳을 제공해주는 건고사하고 말만 걸어도 범죄였기 때문이다. 구 해안의 벽촌에도 라디오는 있었으므로 추방령을 몰랐다고 시치미를 뗄 순 없었다. 하지만 손님의 정체를 정말로 몰랐다고 한다면 변명의 여지가 있었다. 내가 미처 생각하기 전부터 에스트라벤은 이들이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운 듯 보였다.  - P371

하지만 에스트라벤은 언덕을 내려갔다. 에스트라벤은 스키솜씨가 뛰어났고, 이번에는 나를 위해 속력을 늦추지 않았다.
에스트라벤은 길고 빠르게 곡선을 그리며 눈 위의 그림자들을헤치고 쏜살같이 언덕을 내려갔다. 그는 나를 떠나 국경경비대의 총부리를 향해 곧장 나아갔다. 아마 경비대가 경고를 하거나멈추라고 외쳤을 것이다. 어디선가 불빛이 반짝인 듯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어쨌든 에스트라벤은 멈추지 않고 울타리를 향해 번개처럼 나아갔고, 경비대는 에스트라벤이 그곳에 닿기 전에 총을 쏘았다. 경비대는 음파 마비총이 아닌 약탈용 총을, 금속 조각을 발사하는 고대의 총을 쏘았다. 경비대는 에스트라벤을 사살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죽어가고 있었다. 뒤틀려 벗겨진 스키는 눈에 꽂혀 있었으며, 그는 큰 대자로 뻗어있었고, 가슴은 총알에 의해 반쯤 날아간 상태였다. 나는 그의머리를 팔에 안고 말했지만 그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그에 대한 내 사랑에 대답하듯, 침묵의 잔해와 마음의 동요를 헤치고,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한 번, 또렸하게 외쳤을 뿐이다. <아렉!> 그뿐이었다. 나는 죽은 그를 끌어안고 눈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경비원들은 내가 그렇게 하도록두었다. 이윽고 그들은 나를 일으켜 어딘가로 데려갔다. 그는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나는 감옥으로 끌려갔고, 그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P384

고브린 빙원을 건너는 동안 에스트라벤이 쓴 일기 가운데에는자신의 동행이 왜 우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길까라고 쓴 대목이있다. 만일 그때 내게 물었다면, 나는 수치심이 아니라 두려워서울 수가 없었다 말했을 것이다. 이제 나는 사시노스 계곡을지나, 그가 죽은 저녁을 지나, 두려움 저편에 누운 추운 지방으로 가고 있다. 거기서라면 마음껏 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울어도 소용없는 일이다.
나는 다시 사시노스로 끌려와 감옥에 갇혔다. 국법을 어긴 자와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아마도 나를 달리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심지어 에르헨랑으로부터 명령이 오기 전부터 그들은 나를 정중히 대해주었다.  - P385

나는 자살이란 말을 하면서 이들 세계에서 자살이 얼마나 비열한 짓으로 간주되는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들에게 자살은 우리의 경우처럼 선택이 아니었다. 이들에게 자살은 선택의 포기이자 배신 그자체였다. 카르히데인이 우리 경전을 읽는다면 유다의 죄가 그리스도를 배반한 데에 있는 게 아니라 절망을 봉인하고 용서와 변화와 생명의 기회를 거부한 행위, 즉 자살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에스트라벤을 반역자로생각하지 않습니까?"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에스트라벤에게 가해진 비난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들이 많습니다.
아이 씨."
하지만 나는 그 말에서 그 어떤 위안도 얻을 수 없었으며 변함없는 고통 속에서 이렇게 외쳤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그자들 - P387

은 에스트라벤을 쓴 겁니까? 왜 에스트라벤을 죽인 겁니까?" 이질문에 의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나는 공식적인 신문은 받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풀레펜 농장에서탈출해 카르히데까지 왔는지, 그리고 내가 자기들의 무선 송신기로 보낸 암호 메시지의 목적지와 의도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그 정보는 에르헨랑에, 왕에게 곧장 전달되었다. 우주선 문제는 비밀로 붙여진 게 분명했지만, 내가 오르고레인의 감옥에서 탈출해 겨울에 고브린 빙원을 넘어와 지금은 사시노스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은 자유롭게 보도되고 논의되었다. 하지만 이 일에 대한 에스트라벤의 역할은 라디오에서 일체 언급되지 않았고, 그의 죽음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았다. 카르히데에서 비밀이란 지극히 신중하고 합의되고 양해된 침묵의 영역으로, 질문의 생략일 뿐 답의 생략은 아니다. - P388

에르헨랑에 들어서는 순간 힘이 나고 정신이 맑아지는 걸 느꼈다. 그 전까지 나는 온몸이 낱낱이 흩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편한 여행으로도 지친 몸이었지만, 이제는 생기가 도는 느낌이었다. 대부분은 습관의 힘이었으리라. 마침내 내가 아는 곳으로, 내가 1년 넘게 살고 일하던 낯익은 도시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거리와 탑, 궁전의 어두침침한 안뜰과 길과 외관을 알았다.
이곳에서 내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러므로, 내 친구가 죽고 처음으로, 친구가 죽으면서까지 이루려한 일을 마무리해야한다는 생각이 또렷이 들었다. 나는 아치에 쐐기돌을 놓아야만했다. - P390

"배신이 아닙니다. 에스트라벤은 어느 한 국가가 먼저 에큐멘과 동맹을 맺으면 다른 곳이 자연히 그 뒤를 따르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시스, 페룬테르, 다도해 역시 뒤를 따를 겁니다. 그리고 통일이 이루어질 겁니다. 에스트라벤은 자기 나라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폐하. 하지만 카르히데나 폐하를 위해 봉사한 게 아닙니다. 에스트라벤은 제가 섬기는 주인을 섬겼습니다."
"에큐멘?" 아르가벤이 놀라 말했다.
"아닙니다, 인류입니다."
말을 하면서도 나는 내가 진실을 말하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고, 진실인 면이 있었다. 에스트라벤의 행동은 그의 개인적인 성실성과 한 인간에 대한 책임과 우정에서 우러나왔다고 말하는 것 또한 진실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완전한 진실이라고는 할 수 없을 터다. - P395

사시노스에서 동행한 의사가 들어왔다. 그의 조용한 목소리와 젊고 진지한 얼굴, 남자도 여자도 아닌 인간의 얼굴을 보자안심이 되었다. 낯익고 올바른 얼굴을 보고 나서야………. 그는나를 침대에 누인 뒤 약한 진정제를 주고 말했다. "당신의 동료특사들을 보았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별에서 사람들이 오다니. 그것도 제 살아 생전에 말입니다!"
그 말에서 나는 다시 기쁨과 용기를 보았다. 이것이야말로 카르히데인의 정신에서 그리고 인간의 정신에서 가장 훌륭한 요소였다. 비록 그것을 그와 함께 나눌 수는 없었지만 그것을 부정한다는 것은 혐오받을 것이었다. 나는 진심은 아니었지만 절대적인 진실을 말했다. "새로운 세계로 새로운 인류를 만나러 온다는 건 그 사람들에게도 역시 놀라운 일입니다." - P400

나는 카르가프를 가로질렀다. 이번에는 아래쪽 길로, 남해 해안 위쪽으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로 갔다. 나는 3년 전 호르덴섬에 착륙한 나를 데려다주었던 어부가 있는 맨 처음 묵었던 마을을 방문했다. 그 화로 주민들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전혀 놀라움 없이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나는 엔스 강 어귀에 있는 커다란 항구 도시인 사세르에서 일주일을 보낸 뒤, 초여름에 케름 랜드를 향해 도보 여행을 떠났다.
나는 동남쪽으로 걸어, 울퉁불퉁한 바위산과 녹색 언덕들이들어차 있고 큰 강과 외딴 가옥들이 있는 험한 시골을 지나 얼음발 호수로 갔다. 호숫가에서 남쪽 언덕을 바라보니 낯익은 빛이보였다. 깜박이는 빛, 하늘에 넘쳐흐르는 하얀 빛, 언덕 위에 길게 누워 있는 빙하의 광채. 얼음이 거기 있었다. - P401

나는 위안을 찾을 요량으로 이곳에 왔지만 헛걸음이었다. 위안은 없었다. 친구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을 본다고 해서 뭐가달라지겠는가? 어떻게 공허함이 메워지고 회한이 달래지겠는가? 이제 와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내가에스트레에 온 것은 또 다른 목적이 있어서였다. 그리고 그것은이룰 수 있었다.
"아드님이 숨질 때까지 저는 몇 달 동안 함께 있었습니다. 아드님이 숨을 거둘 때도 저는 함께 있었습니다. 아드님이 적은 일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같이 있던 당시에 대해 뭐든 궁금하신 게 있으시면......."
- P404

노인의 얼굴에는 이렇다 할 표정이 나타나지 않았다. 평온함이 조금도 흩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아까의 젊은이가 어둠을 뚫고 창문과 화롯불 사이의 쓸쓸하고 거북한 빛 속으로 튀어나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에르헨랑에서는 아직도 사람들이 그분을 반역자 에스트라벤이라 부릅니다."
노영주는 그를, 이윽고 나를 바라보았다.
노영주가 말했다. "이 아이는 소르베 하르스일세. 에스트레의 상속자이자 내 아들의 아들이지."
이곳에선 근친상간이 금기가 아니며, 나는 그것을 잘 알았다.
다만 테라인인 내게는 그것이 낯설 뿐이었으며, 어둡고 험상궂고 소박한 시골 젊은이에게서 친구의 영혼을 힐긋 보았을 때 그묘한 느낌 때문에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침내 내가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왕은 그 명령을 철회할 겁니다. 세렘" - P404

은 반역자가 아닙니다. 바보들이 에스트라벤을 뭐라고 부르든그게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노영주는 천천히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는 않아."
"고브린 빙원을 함께 건너오셨죠? 그분하고 같이요." 소르베가 물었다.
"그랬지요."
"그 이야기를 듣고 싶군, 아이 특사." 에스반스 노인이 아주온화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소년, 세렘의 아들이 더듬거리며말했다. "그분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말해주시겠어요? 그리고 별들 사이에 있는 다른 세계와...... 다른 종류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삶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어요?" - P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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