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기서 "자신의 문제를 풀어갈 언어를 가지지 못한 사회, 자신의 사회를 보는 이론을자생적으로 만들어 가지 못하는 사회"를 ‘식민지적‘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여기서 ‘식민지성‘은 딱히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현상을 뜻하기보다는지식과 삶이 겉도는 현상을 뜻한다.
이 책은 겉도는 글, 헛도는 삶에 관한 책이다. 글을 읽을 때 우리는 당연히 그 내용을 우리 자신의 삶과 연결하여 적극적이고 창조적으로 읽어낸다. 당연히? 아니, 대부분의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나는 왜 우리가 책을 자신의 삶과 연결지어 읽어내지 못하는지를 캐묻고 있다. 인문사회과학 계통의 책을 읽으면서 텍스트를 자신의삶과 연결지어 적극적이고 창조적으로 읽어내지 못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다수의 대학생들이, 그리고 활동하는 지식인들이 그렇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에 도움이 될묘안은 없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다 보니 작게는 우리 사회의 현행입시 위주 교육이 생산해 내는 ‘인간‘에 대해, 크게는 지난 일세기에걸친 근대적 지식 생산과정에 나타난 ‘지식인‘에 대해 생각이 모아지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이 책은 자아 성찰의 기록이며 ‘지식과 식민 지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 P6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가르침‘과 ‘배움‘에 관한, 곧 ‘페다고지에 관해생각해 보는‘ 책이기도 하다. 강의를 하지 않기로 한 나의 결심이 학생들을 ‘배움‘으로 이끌었고 이 책의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학생들의소리가 선생인 나를 ‘가르쳤다. 여기에 실린 학생들의 글은 분명 오랫동안 90년대 전후 지성사를 알아가는 데 중요한 자료로 남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은 작은 교실 상황에서 내뱉아지고 되받아지고 또 모아지는 말을 살펴보고 있지만, 실은 여성이 ‘최초의 식민지‘가 된 이래의 장구한 인류 역사에서부터 지난 한 세기에 걸친 한국의 구체적 식민지 역사, 그리고 ‘종말론적‘ 위기 상황이라고 말해지는 후기자본주의적 상황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고 있으며 근본적인 시각전환을 주장하는, 의도가 강한 글인 만큼 논의가 거칠고 단순화된 부분이 없지 않을 것이다. 독자들은 누구에게 무엇을 배운다는 생각보다자아 성찰을 위한 토론에 참여하는 자세로 적극적인 책 읽기를 해주었으면 한다. - P7
이 책 전반을 통해 우리들의 ‘구체적 만남‘에 커다란 의미를 걸고 있는 나의 의도를 읽어내 주기 바란다. 동시에 이 책에서 간간히 부렸을지 모르는 횡포도 너그럽게 받아주고…… 작은 공동체가 깨지면서 활성화된 문자매체는 새로운 공동체가 만들어지지 않은 지금까지 여전히 인간적이기보다는 횡포한 매체로 남아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없다. 나는 궁극적으로 이 책에서 ‘서로 마주보며 하는 말‘이 중심이 되는 공동체 만들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삶‘과 ‘말‘과 ‘글‘의 거리가 좁혀진 세상, 우리가 원하는 바의 공동체가 만들어질 때 문자매체는 보다 선한 기능을 갖게 되리라.
1992년 3월 17일 신촌에서 저자 씀 - P9
‘명제적 지식에 중독됨‘은 구체적 식민지 역사를 가진 사회에 팽배한 현상이지만 이제는 꼭 그런 사회에만 국한하여 나타나는 현상이 아님은 이미 앞에서 밝혔다. 과학기술주의와 거대관료주의 시대로 들어서면서 세계 구석구석에 "일상적삶이 식민화 되고 있다"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으며 중심과 주변, 타자화된 주체와 권위적 언설의 해체 등이 이 시대의 문제를 풀어가는 주요 개념으로 부각되고 있다. 지난 3-4세기 동안에 있은 제국주의적역사 진행이 중심과 주변에 사는 모든 이들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어버렸다는 것을 우리는 지금 피부로 느끼고 있지 않는가? 이는 식민지적 상황이 단순히 정치적 독립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아니며 또한 식민 통치 기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님을 뜻하기도 한다. 어쨌든 ‘탈‘ 근대, ‘탈‘ 식민, ‘탈‘가부장제의 과제는 이 시대 우리에게지워진 무거운 짐이며 이 책에서는 ‘탈‘식민의 문제를 시작으로 ‘탈‘의 과제를 풀어가고자 하였다. - P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