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소사


내소사 다녀왔으므로 내소사 안다고 해도 될까
전나무 숲길 오래 걸었으므로
삼층석탑 전신 속속들이 보았으므로
백의관음보살좌상 눈부처로 있었으므로
단청 지운 맨얼굴을 사랑하였으므로
내소사도 나를 사랑한다고 믿어도 될까
깊고 긴 숲 지나
요사채 안쪽까지 드나들 수 있었으므로
나는 특별히 사랑받고 있다고 믿었다
그가 붉은 단풍으로 절정의 시간을 지날 때나능가산 품에 깃들여 고즈넉할 때는 나도
그로 인해 깊어지고 있었으므로
그의 배경이 되어주는 푸른 하늘까지
다 안다고 말하곤 하였다
정작 그의 적막을 모르면서
종양이 자라는 것 같은 세월을 함께 보내지 않았으면서
그의 오래된 내상(內傷)과 함께 있지 않았으면서
그가 왜 직소폭포 같은 걸 내면에 지니고 있는지
그의 내면 곳곳이 왜 낭떠러지인지 알지 못하면서

어찌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의 곁에 사월 등 행렬 가득하였으므로
그의 기둥과 주춧돌 하나까지 사랑스러웠으므로
사랑했다 말할 수 있을까
해 기울면 그의 그리움이
어느 산기슭과 벼랑을 헤매다 오는지 알지 못하면서
포(包)* 하나가 채워지지 않은 그의 법당이
몇백년을 어떻게 버틸 수 있었는지 알지 못하면서
그의 흐느낌 그의 살에 떨어진 촛농을 모르면서

들국화 2


너 없이 어찌
이 쏠쏠한 시절을 견딜 수 있으랴

너 없이 어찌
이 먼 산길이 가을일 수 있으랴

이렇게 늦게 내게 와
이렇게 오래 꽃으로 있는 너

너 없이 어찌
이 메마르고 거친 땅에 향기 있으랴

저녁노을


눈이 그쳤는데 그는 이제 아프지 않을까
지는 해를 바라보는 동안 나는 내내 아팠다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드는 동안
내 안에 저녁노을처럼 번지는 통증을 그는 알까
그리움 때문에 아프다는 걸
그리움이 얼마나 큰 아픔인지를 그도 알고 있지 않을까
하루 종일 누워서 일어나지 못했다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안다
돌이킬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왜 그리움은 혼자 남아 돌아가지 못하는 걸까
눈은 내리다 그쳤는데
눈처럼 쏟아지던 그리움은
허공을 헤매다 내 곁에 내린다 아프다

엽연


안되는데 안되는데 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멈추자 멈추어야 한다 하면서
오늘도 다리를 건넜다
잘 드는 칼로 끊어버린 날도 많았다
달맞이꽃도 밤별도 알고 있으리라
바보같이 천치같이를 되풀이하며
회초리로 나를 때리며 새운 밤도 많았다
오늘도 안되는데 안되는데 하면서
오늘도 돌아가자 돌아가자 하면서

노란 잎


누구나 혼자 가을로 간다
누구나 혼자 조용히 물든다
가을에는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대 인생의 가을도 그러하리라
몸을 지나가는 오후의 햇살에도
파르르 떨리는 마음
저녁이 오는 시간을 받아들이는
저 노란 잎의 황홀한 적막을 보라
은행나무도
우리도
가을에는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상사화


남쪽에선 태풍이 올라오는데
상사화 꽃대 하나가 쑥 올라왔다
자줏빛 꽃봉오리 두개도 따라 올라왔다
겁도 없다


숲은 어떤 예감으로 부르르 떨고 있는데
어떤 폭우 어떤 강풍 앞에서도
꽃 피우는 일 멈출 수 없다는
저 무모한
저 뜨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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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는 젠더 문제이기도 하면서, 지리적 문제이자 특권 문제이기도 했다. 아이비리그에서는 텍사스 규정에는 없던 모든 방식으로 여학생들을 훈련하려고 했다. 텍사스 여학생들은 승마 경주banneracing)에 나갈 수는 있었지만, 승마를 하려면 돈과 말이 필요했다.
우리가 갖지 못했던 건 스스로 삶의 힘이 자라나고 넓어져 가는 걸 느낄 기회와 방식이었다. 당신은 아직 무엇을 배우지 못했는지, 어떤 기회가 없었는지, 그리 많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부재가 내게 가져다준 모순적인 상황에 조금 경탄한다. 나의 걸음걸이를 느리게 했던 소아마비가 내게 물을 선물해 줬으니까 말이다.
캐롤라인에 대한 나의 사랑은 내 삶에 있어 본질적인 의미의관계였고, 공교롭게도 내가 특정 나이가 되어 힘과 자유를 느끼기시작할 무렵 그녀를 만났다. 40대 초반이 되었을 때다. 세상 물정 - P201

에 밝으면서도 마라톤에 나갈 수 있을 만큼 젊은 나이.
나는 문학 비평가라는 사랑하는 일이 있었고, 처음으로 반려견 사모예드를 기르게 되었다. 22킬로그램이 넘는 아름다운 사모예드는 만족스러운 내 삶의 나날들을 더욱 풍요롭게 해줬다. 내겐 매주 마감 일정이 있었고, 수영장과 숲 그리고 내 쌍둥이인 것같은 여자친구도 있었다. 사실 캐롤라인에겐 진짜 쌍둥이 자매가 있었지만 말이다.
그보다 몇 년 앞서 나는 사랑했던 혹은 사랑한다고 생각했던한 남자를 떠났다. 하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라 그의 칭찬과 사랑을 갈구하며 인질로 잡혀 있는 관계일 뿐이었다. 그는 수년간 형편없는 로맨스로 점철된 내 삶의 거친 나날들의 마지막 장을 장식한 남자였다. - P202

내겐 일이 있었고 술 취하지 않는 맨 정신이 있었기에 겨우 살아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여자친구와의 우정, 특히 캐롤라인과의관계가 나를 지켜 냈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각자의 모습을 발견하며 성장했고, 각자가 발견하지 못한 내면의 힘을 상대가 끌어내주며 함께 성장했다. 함께일 때면, 혼자일 적엔 몰랐던 내면의 강한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사랑했다. - P202

내가 칭찬을 갈구했던 그 남자는 내 글이 발행되기 전 종종 미리 읽고 수정해 주곤 했다. 그 남자가 파란색 펜을 들고 수정하던어느 날, 우리 관계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나는 존 르 카레(John le Carré)와 어렵게 인터뷰를 마친 뒤 기사를작성했는데, 기사 도입부가 썩 마음에 들었다(시간이 확실성의 지표라면 3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그 도입부가 마음에 든다. 내가 쓴기사를 읽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데, 어느 순간 그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생겼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내 첫문장에 줄을 긋고는 "문장이 지나치게 화려해"라고 말했다. - P203

머뭇거리던 그 모습에 나는 그를 보내 버렸다. 나는 이전에도그런 장면을 두어 번 본 적이 있다. 대학원과 직장에서, 내가 존경하던 남성들은 내 글을 읽으며 움찔하고는 분수에 맞는 문장을 쓰라고 했다. 나는 그 남자보다 열한 살이 어렸지만 더 나은 작가였고, 어떤 문장이 좋은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가 수정을 끝냈을 때, 나는 고맙다고 말하고는 사본을 들고내 서재로 갔다. 나는 원래 썼던 그대로 내 문장들을 복구했다. 이틀 뒤 신문이 발행되었고, 내 글은 맨 앞쪽에 실렸다. 그는 아침을먹으며 기사를 읽더니, 눈썹을 치켜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그냥 웃었다. - P203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여자가 그러듯) 친구에게 우리의 성적 역사와권력 앞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했다. 진실이 속삭이거나 소리치는데도 권력은 별 관심도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크든 작든 성폭력이 나를 쓰러뜨리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느낀다고 말한다.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기지도, 드러나든 드러나지 않는 나를 망쳐 놓지 않아서 다행이다.
뜻밖의 행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사람들은 트라우마에시달리고, 트라우마를 안고 살고, 무수한 방식으로 트라우마를 표출하며 살아간다. - P204

마조리는 우리에게 일어난 흔한 일이나 우리의 아주 미미한 조언도 모두 메모하곤 했다. 정작 메모를 해 가며 그녀의 말을 듣고기억해야 했던 건 우리였는데 말이다.
마조리를 알고 지낸 시간이 20년도 되지 않지만, 그동안 내겐반려견이 있었고, 캐롤라인이 있었으며, 내가 사랑한 모든 게 있었고, 그것들을 모두 잃기도 했다.
마조리는 그 모든 걸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비통함앞에서 결코 움츠러드는 법이 없었고, 비탄이 다가올 때 폄하하지않았으며, 큰 의문 이상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녀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50대에는 자매를 잃었기에, 견딜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걸 잃는다는 상실에 관해 잘알 - P217

고 있었다. 이 전쟁터에서 그녀는 전사였다.
지금 와 돌아보면, 그녀는 캐롤라인이 죽은 다음 날 아침 나를만나러 처음으로 내 집에 찾아와 활짝 웃으며 두 팔을 펼치고 성큼성큼 다가온 사람이었다.
몇주 뒤 내가 아무런 경고도 없이 그녀의 집에 찾아가 현관에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자, "벼락처럼 덮쳐 오는 일들이 있지만,
때로는 그만큼 빨리 사라져 버리기도 해"라고 말해 줬다. 그녀는고통을 피해 달아나거나, 말실수한 친구들 그리고 날 돕지 못한친구들을 용서하라고도 일러 줬다. - P218

분개 말고도, 내가 돌봐야 할 더 큰 감정이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았다. 그녀는 내가 가장 친한 친구를 묻을 때도, 부모님 두 분을 땅에 묻을 때도 사랑하던 반려견을 묻을 때도, 내곁에 머물러 주고 어떻게든 계속 살아갈 방법을 알려 줬다.
죽음을 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야기의 자연스러운 결말로받아들이는 것, 그건 비나 밤처럼 어느새 찾아오는 무심하고도확실한 삶의 결과였다.
마조리가 살면서 가장 아쉬워한 점은 자녀가 없다는 것이었다. 자식을 낳지 않은 걸 두고 인생의 한 가지 선택지가 아닌 개인적 실패 혹은 잘못이라고 생각하는게 나는 속상했다. - P218

버지니아 울프는 《파도(The Wave)》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소설 집필을 시작하며, ‘매우 불완전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황홀한 책이 가지고 있는 힘은 하늘만이 아실 것이다‘라고 일기에 썼다.
이 장면은 울프의 순전한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일기 도입부에서는 위풍당당하면서도 외로운 모습을 드러내며 작가의 경험을 정확히 묘사한다.
나는 이 문장을 프린트해서 위층 서재 벽에 붙여 두었다. 그 옆에는 튤라가 잠든 모습을 그린 그림, 글쓰기 아이디어들을 적어둔포스트잇,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아빠가 엄마에게 보낸 전보도 붙여 두었다. - P227

나는 울프의 정신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오래전 잉크병을 집어던졌다. 가정의 상징적인 천사에 맞서기 위해 잉크를 무기로 사용했다. 남성에게 부여받은 성스러움으로 창의적인 여성의 영으로 배를 채우는 가정의 천사에 맞서야 했다. 울프가 기록하길, 그녀는 한 세기 동안 여성들에게 영감을 주고 여간해서는 죽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 내게 강요하는 천사는 없다.
아무도 내게 저녁을 준비하고, 자신을 희생하고, 예의를 갖추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오직 나뿐이다. 나와 반려견, 그리고 바늘이 없는 시계만 있다.
배고프면 먹고, 걷고 싶으면 걷는다. 때로는 몇몇 훌륭한 순간을 위해 검소하고 엄격한 흥정을 하고, 어쩔 땐 잔인한 고요함을누린다.
요즘은 계단을 오를 때면 익숙하게 느껴지는 숲의 빈터를 향해마음이 굽는다. 너무 무서워서 받아들이지는 못할 때도 있다. 어느 날은 그냥 앉아서 창밖을 내다본다. 가끔 겨울 오후에는 춤을춘다. - P230

‘일년생식물(annual)‘이란 단어도 한 해를 의미하는 라틴어에서왔으며, 반드시 죽는(mortal)‘이라는 단어도 죽음을 의미하는 라틴어에 어원을 둔다. 오직 한 단어만이 시간과 연관된 단어가 아닌끝 혹은 빛을 잃는 순간을 의미한다. 반려견은 죽을 것이고, 나는다년간 내가 죽을 때까지 반려견을 사랑할 것이다.
나는 양쪽 부모님 집안으로부터 원예 재능을 물려받았다. 물론 텍사스에서 뭔가를 기르는 일은, 특히 농장 집안 출신이라면의무적으로 주어진 업이었다.
1950년대쯤 찍은 한 사진을 보면, 뒷마당에 있는 아빠 무릎에아주 조그마한 내가 앉아 있다. 옥수수와 토마토의 키가 얼마나큰지, 나는 밥도 못 얻어먹은 아이처럼 보인다. - P238

몇 주 동안은 가을정원을 청소하고 꿩의다리꽃과 스위트피를 지나친 애정으로 돌보느라 날마다 흙에 파묻혀 시간을 보냈다. 해질녘까지 정원에머물다 손이 흙으로 엉망이 되었고, 한철 늦게 피는 야생화들의풍작을 보며 야생의 행복을 음미했다.
나는 항상 삶의 다년성을 상기해야 했고, 윌라 캐더(Willa Cather)의 소설 《나의 안토니아(My Antonia)》에서 호박밭에 누워 완벽한 고요 속으로 떠다니는 장면을 아름답고 정교하게 묘사한 문장 ‘우리가 죽어 전적으로 다른 무언가의 일부가 될 때‘를 상기해야 했다.
내 지친 마음에 연고를 발라 줬다. 내가 일하는 동안튤라는 수호초 근처에 엎드려 있었고, 나는 튤라옆에 누워잡초와 한련초가 고개를 숙이고 우리의 슬픔을 흔적도 없이 덮어 주길 바랐다. - P241

우리는 모두 괜찮고, 사랑은 죽지 않는다. 다만 물리적인 육체만 죽어 없어질 뿐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위안이 된다. 반복해서잊고 마는 천진함처럼,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언제나 잊고 사는진실이다.
샌프란시스코에 살 때 나는 20대 초반이었고, 하루는 희망에찼다가 다음 날 무너져 버리는, 방황하고 아슬아슬한 사람이었다. 혼란스러운 시대에 캘리포니아는 최고의 것과 최악의 것을모두 다 가지고 있었다. - P250

캘리포니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게 분명하다. 닫혔던 내 시스템을 무엇인가가 비집어 열고 들어왔다. 나는 어두운 밤 혼자의자에 앉아서도 혼자라 느끼지 않고 분열되지 않는다. 그냥 슬프고 슬픔에서 위안을 얻을 뿐이다. 그건 온전함이다. 때로는 기쁨 대신 경험 자체를 얻는다.
비탄은 어둠 속에서 펼치는 레슬링 경기다. 당신은 숨을 빼앗기고 탈진해 버린다. 당신은 쓰러지고 거대한 자신 그 자체가 될뿐이다. 당신은 매번 다시 배워야 한다. 고통을 겪어 봤다고 해서, 이해하거나 거르고 넘어가는 법은 없다. - P254

북동부의 끝없는 겨울엔 무엇보다도 빛이 가장 먼저 돌아온다. 맹렬한 눈보라 한가운데서도 견뎌 내야 하는 혹한의 바람이주나 더 남았어도 매일 새하얀 눈 위로 하얗게 반사되어 펼쳐지는 빛을 보며 삶은 살아봄 직하다는 사실이 축복처럼 다가온다.
상처받고 황량해도 밝게 펼쳐지는 빛이 있고, 길어질 날이 있으며, 약속이 있다.
살아오면서, 지나온 것들보다는 앞에 놓인 것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러지 못하면 삶의 여정에서 슬픔에 빠져정신을 놓아 버릴 것이다. 과거의 시계와 앞에 놓인 날들 사이에조심스럽게 머물러야 한다. 같은 길일지라도 말이다.
나는 겨울 중 아주 여러 날을 케임브리지 거리를 걸으며 보낸다. 어떤 날은 묘지에 들러 내가 돌멩이를 놓아 둔 묘비를 지나친다.  - P256

가능한 한 매일, 영감의 원천이 되는 샘물을 마셔야 한다. 꼭 대단한 트레비 분수가 아니어도 된다. 개울에서 흘러온 물도 괜찮고 컵에 든 한 잔의 물이어도 된다. 아름다움이든 선함이든, 거기 있는 걸 취하면 된다. 들이마시는 공기도 피어스 무덤 위를 뱅뱅 도는 새빨간 꽁지깃을 단 매도, 영감을 준다.
돌멩이들을 남겨라. 걱정은 되도록 하지 말자. 나는 이 무덤이 좋고, 죽음과 희망에 관해 무덤이 가르쳐 주는 게 좋다. 타일러가 어릴 적 상상했던 40만 킬로미터도 넘는 밧줄처럼, 세대를 건너 무덤이 던지는 기다란 밧줄 같은 게 느껴진다.
나는 지금 나의 어둠보다 멀리 걸어 나가려 한다. 한 발짝 한발짝이 모두 믿음의 행동이고, 매번 내쉬는 숨은 누더기가 되어버린 기도문이다. - P258

공집합 기호 Ø가 새겨진 피어스의 무덤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무한대 기호 ∞와 헷갈렸다. 어릴 때 나름 수학 영재였던 내가처음부터 제대로 파악했어야 했지만, 어쨌든 몇 달간은 무한대로착각하고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무의식중에 아무것도 없는 공집합이 아닌 영원함을 보고 - P267

싶었던 것 같다. 텅 빈 공간이 아닌 한계가 없는 수평선을 말이다.
나는 수평선이 두 가지 모두를 상징한다고 배우며 자랐다. 끝이없으면서도 반드시 풍족한 개념은 아니기에, 내게도 그리고 세상에도 와 ∞는 같은 걸로 보일지 모르겠다.
당신은 이 두가지 모두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요정들은 자라서 사라지고, 반려견과 친구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도 모두 당신을 떠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삶 자체를 비롯한 삶의 모든 것이, 타인의 선의는 물론이고 타인의 덧없음에도 달려 있다는 사실 또한 기억해야 한다.
영원은 멀리 한 줄 기억 속에 흐릿해지도록 두고, 당신은 신기루를 향해 걸어가야만 한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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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도 지난 일인데 아직도 그때의 감정이 느껴진다. 나는 수학 문제를 두고 고민하는 아이처럼 혼란과 흥미를 동시에 느끼고있었다. 그러다 나는 어떤 사실 한가지를 간파했다. 그건 나를 변화시키고, 온 우주를 조금 바꿔놓을 깨달음이었다.
남자들이 모든 부분에 있어 너무 자주 결정권자 노릇을 한다는것 우리는 대답을 해야만 하고, 온종일 갖고 놀던 장난감 칼을 밤마다 권위자에게 반납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단순히 성적이거나 연애와 관련한 통찰은 아니었다. 나의 통찰은 그보다 광범위했다. - P122

여름날 저녁 방에서 흘러나오던 빛, 노란색 전화기 그리고 그남자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은 삶이 거쳐 온 과정에서그 통찰이 갖는 가치의 증거였다.
그 순간 나는 스스로 자유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생각을 미세 조정하고 저항만 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독립과 자존감에 관한 것으로 만들어 가며 수년이 흘렀다.
그날 밤의 웃음소리라든지 집안을 가득 채운 여성들의 자율성과 애정 같은 건, 기억의 빛으로 남아 안식처와 모험의 이상적 관 - P122

념이 되고 삶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되었다.


이후 수년간 그런 순간들이 몇 번 더 있었다. 빼앗긴 길이나 닫힌 문 앞에 설 때면 내면의 목소리가 말했다. ‘안 돼, 난 안 할 거야 안 돼, 나랑 맞지 않아 아닐 거야.‘ 이제 와 그걸 깨닫는다는사실에 마음이 아프다.
나이가 들면 후회도 하고 과거를 자주 회상한다. 하지만 나자신을 위해 길을 찾으려 애썼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물론 당시에는 제대로 깨닫지도 못했고, 그 길에서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말이다. - P123

나랑 맞지 않아‘라는 깨달음은 많은 부분에 해당했다. 여러 남자와 여자를 떠났고, 대학원 과정을 다 마치지 않았으며, 하던 일을 관두고 도시를 벗어났다.
모두 다 잘한 일이었을까? 전혀 아니다. 돌아보면, 잘한 일이라느껴진 적도 있었지만 젊음의 많은 부분이 자유와 두려움으로 뒤엉켜 있다.
나는 희뿌연 미지의 길일지라도 앞을 향해 나아갔다. 호기심이 두려움을 1밀리리터 가량 눌렀고, 때론 그 정도로 충분했다.
나는 그날 밤 로빈슨 가에서 내 행복한 자율성을 흩어 버린 남 - P123

자를 떠났고 이후 사랑했던 여자도 떠났다. 대학원에 진학했다.
가 페미니즘이 내 심장을 갈고 닦은 것만큼이나 내 정신을 날카롭게 다듬어 준 대학원 프로그램도 버렸다.
이 모든 과정에서 내게 용기를 주는 위스키에 매달렸다. 아예효과가 없어지기 전까지, 위스키의 효과는 엄청났다.
그로 인한 실패의 크기는 빙하 속 깊게 갈라진 틈만큼이나 깊고 무시무시했으며, 그 어떤 위험보다도 크나큰 위험이었다. - P124

지금 생각해 보면, M은 내게 폭풍우를 피할 안식처를 마련해쥐고 충분히 머물며 안정감을 되찾게 해 줬다. 나는 편안하게 머불 장소를 찾았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가진 않았다.
나는 20대의 대부분을 성장하기도 사라지기도 하며 보냈다.
전형적인 20대의 모습일 수 있지만, 관계의 궁핍 속에 머무는 내겐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믿어 줬고, 그 믿음은 당시내게 과분한 선물이었다.
어느 날 밤, 스카치위스키와 와인을 어마어마하게 마신 뒤 그녀가 내 말을 끊더니 말했다. "너는 왜 지적으로 퇴행하려고만 하는거야?" 왜 그리 자신을 무너뜨리고 태워 버리냐는 의미였다.
그 질문은 나를 흔들어 깨웠다. 마치 내가 깨닫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했던 걸 그녀는 알고 있는 듯했다.
나는 지루한 상태로부랑하며 꿈도 없이 밑바닥을 전전하는 가짜 혁명가였고, 그녀는 그 모든 걸 꿰뚫고는 내게 꼭 필요한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 P131

우리는 서로에게 지독히도 심한 말을 내뱉고, 서로를 배신하고 너무 많은 술을 마시다 나쁘게 끝나 버렸지만, 그날 밤 그녀가나의 조용한 적을 언급해 준 데 대해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 그건 아마도 내 안의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내 삶을 단단히 붙들어야겠다고 느낄 만큼 충분한 힘이 생겼다.
하지만 그녀와 헤어지고 한동안은 죽을 것만 같았다. 참나무한 그루가 도끼에 찍혀 버린 느낌이었다. 물리적인 고통이 느껴졌고, 때론 숨쉬기조차 힘들었으며, 그럴 때마다 위스키를 들이마시고 담배를 피워 댔다. 수영장을 몇 바퀴씩 돌거나 끝없는 무용담으로 많은 친구를 지루하게 만들었다. - P132

매우 이상적인 동시에 실망스럽게도, 내가 알아낸 사실은 세상모든 페미니즘은 정신적 사랑으로부터 당신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 나는 오스틴의 한 작은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었고, 어느봄날 저녁 베란다에 앉아 (당연히) 백포도주를 한 잔 곁들인 완두콩 페투치니를 먹고 있었다.
나는 그날 먹은 콩과 값싼 와인 그리고 나무 너머로 펼쳐진 풍경을 강렬하게 기억한다. 외롭고 슬펐지만 마침내 괜찮아졌고,
앞으로도 괜찮을 거란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 조용한 저녁, 나 - P132

자신과 눈앞에 살아 있는 참나무만으로 의미가 가득했다. 앞으로내 삶의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야하는지 말해 주는 듯했다.
나는 멀리 떠나갔다. 이 시기의 내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주오랜 시간 먼 길을 갔고, 오랜 기간 위험에 빠지고 갇혀 있는 악몽에 시달렸다. 나는 절망 속에서 이성애자가 되었던, 혹은 단지 나쁜 선택을 했을 뿐인 나를 탓했다.
나는 나의 자유 낙하가 여성들과의 관계와 연관이 있다고 믿기도 했다. 급격히 친밀해지고 감정적으로 연결이 되지만 갑자기물속으로 뛰어들고 마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내 생에 두 번 정도는 한 여자를 만났을 때와 몇 년 뒤한 남자를 만났을 때, 한 번은 진탕 마셨다가 다음에는 정신이 멀쩡했을 때, 그러다 결국 영혼을 파괴하는 사랑에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마주했다.
- P133

하지만 나의 고전적인 관점으로 볼 때, 여성과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여성들에겐 상호 배려와 다정한 태도가있는데, 남성과의 관계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우리는 서로를 인정하며 걸어온 길을 잘 알고 있다. 감정을 개방할 때도 위협이나 자아 투쟁이 필요 없다. 우리는 오랫동안 인간의 심장에 물을 나르는 일을 해 왔으니까 말이다.
나는 수년간 이 사실을 믿어 왔고 믿고자 했다. 데이터가 항상이런 희망이 옳다고 말하진 않더라도, 때로 외로운 미치광이들이 다시는 내가 사랑을 하거나 위험을 감수하지 못하게 할지라도 말이다. - P134

이 이야기를 슬프다고만은 할 수 없다. 종잡을 수 없는 사랑과고요 그리고 사랑과 열병의 기간이, 마침내 다른 플라토닉 사랑이되고 다른 사랑과 고독을 만들어 낸다. 때로는 끔찍했고 내향적인 사람에겐 종신형과도 같았지만, 또 어떤 밤에는 기이하고 과감했으며 혹은 있는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여성운동이라는 덮개 아래서 나처럼 나이를 먹어 온 여성이라면 이것이 평범하게 느껴질 것이다. 우리는 전통적인 남녀관계를 더 이상 참지 못해 밖으로 걸어 나왔고, 결혼과 모성 그리고 현상이 시키는 대로 하는 대신 다른 선택지에 따라 행동했다.
우리는 온전히 사랑과 힘 그리고 원하는 걸 바탕으로 선택했으며, 그런 자유가 초능력처럼 느껴졌다. 우리 중 누군가가 결국 혼자된다는 사실은, 좋든 나쁘든 우리가 쟁취한 승리의 부산물 같은것이었다. 의도치 않았더라도, 때로는 가슴 저미는 결과의 법칙이었다. - P135

나는 모두가 조금씩은 깨졌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게 어떤종류건, 사랑의 임무는 힘들게 어딘가에 닿아 깨진 부분을 메우는거라는 사실도 안다.
상처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배우면 되고,
강력 접착제와 기도문을 품고 계속해서 사랑하면 된다. - P136

캠퍼스를 두 번이나 가로질러 이 사무실과 저 사무실을 오가며 다양한 의견에 흥분되기도 긴장하기도 했던 그날, 술이 마시고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순간, 드넓기로 유명한 5만 평에 이르는캠퍼스의 본관 앞에 갑자기 멈춰 섰다. 십여 년 전 찰스 휘트먼이 올랐던 시계탑이 보이는 그곳에서, <요한복음> 구절이 새겨진 입구를 바라봤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열살쯤 처음 여기에 섰던 나는 이 구절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단순히 진리를 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진리(veritas)에 동조하기 위해 인정받길 희망하며, 그것을 좇고 있었다. 수개월 동안이나 여류 작가들의 잊힌 목소리에 관해 논문을 써 놓고, 이제와 힘을 쥔 네 명의 남성에게 도장을 받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한두 해 전, 그중 한 명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가 자네를 망쳐놓기 전에 여기서 벗어나게." 나는 벗어나기로 했다. - P140

나는 승리보다는 고된 노력을 기억하려는 편이다. 힘겹게 언덕에 올라 꼭대기에서 뒤돌아보면, 승리는 수월하게 성취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리라. 등반은 오래 걸릴 뿐 아니라 그 실상을 더욱 잘 보여 준다. 춥고 외롭고 포기하고 싶을 때, 당신은 몸을 일으켜 휘청거리면서도 계속해서 나아간다. 나머지는 뜻밖에 얻어지는 것이다.
타일러는 승리를 빼고서는 얘기하지 않을 거라고 한 친구가 일러 줬다. 그녀의 말이 옳다. 하늘을 나는 말에 올라탄 기사와 달리기 시합에 나가기 전날 밤 부러졌던 다리가 회복되는 일화 등,  - P150

이곳의 모든 게 신성하게 느껴지곤 한다. 묘지와 인접한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외치는 소리, 근처 찰스 강에서 승무원 코치가메가폰에 대고 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여기는 혼잡하게 이어지는 삶과 그 끝의 고요함이 교차하는 곳이다. 계속되는 논쟁도, 권력이나 살인 충동도, 더 이상 존재하지않는다. 늑대와 어린양이 마침내 함께 누워 있다.
지난 2년여의 시간은 너무 끔찍했다.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고, 사회와 개인의 상처들이 드러났다. 이 세계의 비열함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겐 이 조용한 땅, 바로 이곳이 필요하다. 비록 기억과 근거없는 믿음에 국한된 것일지라도, 매일 한두시간씩 나를 위로하는 곳이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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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계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찾아오지 않을 것이었다.
대신 일상의 사소한 기적들,
어둠 속에서 뜻하지 않게 켜지는 성냥불처럼반짝이는 순간들이 있을 뿐이다.
그때도 그런 순간이었다.
버지니아 울프 《등대로) 중

책 집필을 계획하는 순간, 영감을 주는 뮤즈들이 비웃는다고했던가. 이 모든 일은 2016년 미국 대선 이전에 일어났다. 한 해전 여름 도널드 트럼프가 출마를 선언했을 때 나는 너무 어이가없어 탄식했고, 그가 열흘 안에 포기한다는 데 10달러를 걸었다.
대선 이후 2년간 여성으로 존재하며 겪는 일상의 시련은, 이면의 상처에서부터 시작해 분노와 카타르시스의 불협화음에까지이르게 되었다.
나는 도의적인 용기가 결국엔 부당함을 이길 거라 믿어야 하지만, 엄청나게 끔찍한 사건들이 이미 일어났고 임기 중 얼마나 더많은 게 황폐해질지 몰라 두렵다.
그래도 지난 몇 년간은 여성들이 표출한 분노에 탄력이 붙어희망을 보기도 했다. 과거의 교훈을 잊지 않았다는,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싸워왔는지 기억하고 있다는 희망 말이다. - P22

우리는 하늘의 존재를 너무 당연하게 여긴다. 지독히도 새파란 하늘, 질릴 만큼 흔하디흔한 하지만 누구도 모방하지 못할 그푸른빛을 말이다. 9·11 사건 이후로는 새파란 하늘을 보면 비극이떠오른다.
강 위로 기다랗게 늘어선 다리, 비행선 혹은 석유시추선으로시선을 던져 보아도 매일 새벽만 되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푸른빛을 흩어 내는 하늘이 버티고 서서 배경이 되어 주고 있다. 하늘의 말이 들리는 듯하다.
나는 항상 여기 있었지. 내 아래서 뭐든 재밌는 건 다해봐.‘
세상은 이제 엉망이 되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타일러에겐 말하지 않았다. 40만 킬로미터를 넘어 무한대의 길이를 가늠할 줄아는 다섯 살 소녀라면, 하늘을 구해 내는 상상력과 죽을 만큼 노력해 볼 용기를 지니고 있다. - P24

그러니까 이 책은 여성들에게 바치고 싶다.
먼저 이네스 가르시아(Inez Garcia)에게 바친다. 1974년, 강간을 당한 그녀는 집으로 가서 22구경 소총을 가지고 나왔고 강간범을 찾 - P24

아가 쏴 죽였다. 그녀는 2급살인 혐의로 주 교도소에서 복역하다가, 2년 후 평결이 뒤집히며 혐의를 벗었다.
레시 테일러(Recy Taylor)에게도 바친다. 소작인이었던 그녀는 여섯 명의 백인 남성에게 윤간을 당한 후 침묵하지 않았고, 로자 과크스(Rosa Parks)가 이 사건을 파헤쳤다. 로자 파크스는 수년 뒤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버스기사의 요구를 거절했다.
데비 샤프(Daehehic Sharpe)에게도 바친다. 텍사스 출신인 내 오랜 전구 데비는 스토커의 손에 살인을 당했다. - P25

버지니아 울프가 상상했던 셰익스피어의 누이에게도 바친다.
소설 <시스터 캐리 (Sister Carrie)》의 주인공에게도 바친다. 난잡한계집이자 인기도 없고 마약쟁이였던 캐리는, 입센의 소설 《인형의 집》에서 집을 뛰쳐나간 노라가 닫고 나간 문의 근처에도 가 보지 못했다.
전기충격 치료를 받다 돌아가신 나의 이모와 고모에게도 바친다. 알코올중독과 우울증으로 죽어 가는 여성들을 치료할 방법이전기충격 말고는 달리 없었다고 한다.

물론 이 책은 소년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좋은 남자로 자라 - P25

가는 법을 배우는 선한 아들들에게 바친다.
우리를 뒤이어 이 땅에서 삶을 꾸려 갈 모든 이에게도 바친다.
전쟁에 짓밟힌 이 땅 위에서 살아 낼 다음 세대 모두에게 말이다. - P26

그리고 나는 내면 깊이 묻혀 있던 규칙들을 불러냈다. 일부러모른 척하는 법, 어두운 길에서 빨리 지나가는 법, 혼자 있을 때주차장에서 빠져나가는 법, 눈 맞추는 법, 고함치기와 회유하기, 큰 소리로 말하기, 도망치기, 손가락 사이에 열쇠를 끼우고 주먹쥐기, 휘파람 불기, 유도 배우기.
이 모든 건 여자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존 가이드였다.
그 충격적인 폭로 사건이 터진 후 선거가 열리기까지, 나는 입이 바싹바싹 마르고 쉽게 열이 받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지경이 되었다. 진정하려고 수영을 더 열심히 했다. 말이 빨라지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개인적인 일이든 사회적 사건이든, 재앙이 일어났을 때마다 나의 반응이 이렇진 않았다. - P45

9월, 나는 도망치듯 사우스 쇼어(South Shore)에 가서 해변을 걸으며 산책 나온 개들과 파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날 저녁, 입고 간 옷은 차 안에 벗어 둔 채 티셔츠만 걸치고 1.5킬로미터 정도를 걸어 인적 드문 해변에 도착했다. 나는 높다란 바위 위에 티셔츠를벗어 놓은 뒤 속옷 차림으로 수영을 하러 들어갔다.
신성한 순간, 눈을 감은 채 본능이 이끄는 대로 파도에 몸을 맡기자, 파도로 뛰어들어라, 흐름을 거스르려 애쓰지 말고 해변과나란히 헤엄치다 지치면 등을 돌린 채 물 위에 머무르면 된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삶은 언제나 당신보다 당신의 두려움보다큰 존재임을 기억하자, 물에 뜬 채로 공기를 가득 머금으면, 폐 속가득 생명력을 채워 넣으면, 당신은 뗏목이 된다. 발을 구를수록몸이 가라앉고, 물은 당신의 적이 된다. - P48

바다와 땅은 단 한 번도 당신의 적인 적이 없었다. 아니,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 그러니 자연의 생명력을 빌어 앞으로 나아가는 편이 차라리 낫다. 그럼 당신은 살 수 있다. 심지어 파도 속에서 자신이 사라지는 순간을 경험하며 희열을 느낄 수 있다.
주머니 속 돌들은 안 된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여긴 우즈 강 - P48

이 아니지 않는가. 당신의 티셔츠가 바위 위에서 기다리고 있다.
땅 위에서, 진짜 적들이 도사리는 땅 위에서 말이다. 먼저 바다의품에서 힘과 품위를 떠올려 보자.
정말이지 피난처에 잘 머무는 건 매우 중요한 문제다. - P49

내 눈빛에서 뭔가를 읽은 그의 얼굴이 서늘하게 굳었다. 그는철벽 앞에서 허둥대는 뻐꾸기 같았고, 말을 더듬거리며 악수를 청했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텍사스 출신답게 힘껏 흔들었다. 그는다른 한 손을 허공에 대고 허우적거렸다. 그가 당황한 듯 물었다.
"포옹해도 될까요?"
나는 미소를 머금고 "아니요, 전 괜찮아요"라고 대답했고, 그걸로 해결됐다. 그는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알아먹고, 기가 죽은 개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몸을 돌려 집에 들어오는 길, 엔도르핀이마구마구 솟아나는 게 느껴졌다. 남자들이 그렇지 뭐, 라며 합리화하는 대신 저리 가라고 말하는 기분이 어떤지 알게 되었다.
모든 분노를 수치심과 절망으로 내면화하는 대신, 바깥으로 표출하는 기분, 칼은 휘두르라고 있는 것이지 삼키는 게 아니었다. - P52

그는 잔인하게 냉담한 태도로 수업에서 나갈 걸 권유했다.
그는 미적분이 여성과는 맞지 않다고 했다. 내 점수는 그걸 증명했다. 연말에는 결국 한 명의 여학생만이 수업에 남게 되었다.
나는 수치심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끼며 이미 나와 버린 뒤였다.
좋다. 그래서 나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그때 내 계획이 변경된 게 전적으로 그 냉혈한 교수 탓이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내가 수학으로 빛을 볼 운명이었다면 그런 교수 정도는 이미 능가했을 것이다. 그리고 미적분 수업을 포기한 덕에 다른 길을 발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그 수업에서, 아직 세상으로 나오기도 전에 미처 다 배우지 못한 것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조금 속상하다. 만일 예전 그 사람이랑 결혼했다면, 하는 후회와 비슷한 감정일 것이다.
그때 이후 뭘 하든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수학 과목에서 낙제한 것과 일이 잘 안 풀린 게 어떤 상관관계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미적분은 그렇게 나를 떠나갔다. - P58

그랬겠지, 당연히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겠지. 우리가 그런걸 말하는 일은 정말 드물지 말했더라도 되돌아오는 답변은 이멋겠지. "남자들이 원래 그렇잖아." 그러니 나도, 절대로 누군가에게 말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일 때문에 그놈이 진짜 싫다고는말할 수 있었겠지만, 한동안은 그날 밤 일을 잊으려고 애쓰고 나서 더 이상 생각하지 않은 게 전부다. 기억에서 벗어나는 법은 열가지도 넘었고,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했다.
마리화나를 잔뜩 피운다든지, 여성을 아낄 줄 알고 날 웃겨 주는 히피족 남자친구를 만들어 삶의 다음 단계를 그려 본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혁명처럼 보이는 곳으로 넘어갈 태세를 갖추고 나니, 그 철없는 녀석을 업신여기는 게 별 것도 아니었다.
나는 엄마가 죄악의 소굴이라 부르는 곳을 향해 갔다. 반체제의 온상인 오스틴으로 말이다. 그렇게 J의 데이트 강간은 내가 도망쳐 나온 마초 문화의 일부로 남게 되었다. 텅 빈 평지와 너저분한 남자들은 내가 떠나 온 과거의 이미지로 고스란히 남았다. - P68

타일러는 타자기 앞에 앉더니, 심각한 고민에 빠진 작가라도 된 듯 손으로 턱을 괴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그러고는 마음대로 그리고 과감하게 타자를 두드린다. 대부분 알 수 없는 철자등의 조합이지만, 가끔 ‘튤라‘, ‘타일러‘ 같은 단어를 만들어 냈다.
그녀가 "샤일로는 어떻게 써요?"라고 물었고, 나는 그제야 타일러가 진지한 태도로 임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어느날은 타일러가 완전한 문장을 완성했다. ‘타일러가 게일과 튤라를 만나러 갑니다.‘ 그러고는 캐리지에서 종이를 뜯어내 내게 건네며 말했다. "이제 절대로 날 잊지 못할 거예요!"
인식과 언어의 도약, 이 모든 과정은 빠르게 일어난다. 언젠가 내가 쓴 책을 발견한 타일러가 뒤표지에 나온 내 사진을 보고는놀란 눈으로 날 쳐다봤다. "이 많은 단어를 혼자 다 쓴 거예요?"
그녀는 글을 읽고 쓰는 세계에 놓인 진실을 언뜻 본 듯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언어로 가득한 보물 상자가 존재한다는 진실, 
- P76

검문 요원들은 내게서 진통제를 압수했고 그제야 우리를 보내줬다. 나는 마취제에 취한 탓에 그 순간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있는지 크게 신경 쓰지도 못했을 뿐더러, 이후에도 크게 분노하지않았다. 그 경험은 1970년에 성욕이 왕성했던 젊은 여성들이 무수히 당했던 치욕 중 하나에 불과했다.
우리는 한밤중이 되어서야 오스틴에 도착했고, 나는 열 시간을내리 잤다. 다음 날에는 임신 사실을 확인했던 학생 건강증진센터에 검사를 받으러 갔다. 나를 봐 준 담당자는 40대의 차분한 남자 의사였다. 검사를 마친 그가 책상을 둘러 내게 오더니 어깨를토닥거리며 말했다. "누가 했든지 간에, 정말 잘했네요." - P89

검사를 마친 나는, 캠퍼스 바로 옆 19번가에 있는 나이트호크레스토랑으로 걸어가 안락한 가죽 의자에 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편안함을 느꼈다. 혼자 너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라떼 한잔과 콜라 한 병, 그리고 미식축구 선수라도 배불리 먹을 만큼의치킨 요리를 주문했다.
식사를 마친 나는 거리로 나와 뜨겁게 내리쬐는 텍사스 햇살아래서, 더할 나위 없는 내 자리에 섰다. 그러자 반짝이고도 소중한 내 삶을 향한 감사함에 눈물이 차올랐다. 몇 주 뒤에는 자궁 내 피임장치를 할 만큼 건강을 회복했다. - P89

열아홉, 선의와 평균 이상의 지능을 겸비한 나는 평범하게 권리를 누리며 살았다. 평범하게 살아온 삶의 일부는 이랬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미적분) 교수의 편견을 마주했고 직장 내성희롱을 당했다(애머릴로에서 여름 인턴을 할 때, 상사가 밤을 함께 보내자며 내게 1,000달러를 내밀었다. 내가 거절하자 자르겠다고 위협했다.
사람들이 데이트 강간이라 부르는 것에 ‘이용당했고, 한때 사귀었던 철없는 놈한테 맞았다.
여성들이 (공격적이지 못하고 영민하지 않아 형편없는 법조인이된다는 말도 들어 왔으며,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영계들‘은 온통 ‘남자들이랑 잘 생각뿐‘이라는 말도 들었다. - P90

우리가 여성해방운동의 초기 활동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 후 몇 년간 내가 운동에서 만나 연대한 여성들은 타고난 재능을 갖고도 멋대로 사는 이들이었고, 여성은 어떠해야 한다는 정통적 규정보다 훨씬 복잡했다. 그런 깨달음은 내 시야를 넓혀 줬고 매일 매일을 가두 연극을 하는 기분으로 살게 했다.
우리는 뭔가를 고의로 방해하기 위해 문을 열고 들어가 무대를급습하기도 했지만, 가장 큰 전략적 승리는 내면에서 일어났다.
남성들의 생각, 예상 그리고 요구를 신경 쓰지 않자 변화가 일었다. 현상유지에서 관심을 돌려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였다.
너무 순진하고 이상적인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순진하고도 이상적인 게 맞지만, 그 시대에 우리는 그래야만 했다. 이후 10년 동안은 우리의 비전이 탄력을 받아 축제의 세계를 창조하기에 이르렀다. - P91

당시 오스틴에서 살아남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조심하지 않으면 젖과 꿀이 흐르는 성지도 위험한 곳으로변모할 수 있었다. 많은 여성이 도약하거나 떠났고, 우리가 도착한 그곳에는 그곳에 닿기까지 지불한 모든 게 상처로 새겨져 있었다. 누구는 엄마가 되었고, 누구는 의학 전문대학원이나 법학 대학원에 진학했으며, 누구는 음악가나 활동가가 되기도 했다.
나에게 도약은 대학원에 진학할 용기를 의미했기에, 타자기와위스키 두어 병을 트렁크에 싣고 동부 해안을 향해 나아갔다. 그로 인한 피해 목록 또한 길었다. 우울과 약물 남용 그리고 불운.
나는 그것이 비극적인 여자 영웅이나 극적인 인물에게나 해당하는 얘기라고 여기곤 했지만, 이제는 다르게 생각한다. 그건 힘들어도 살아가려는 삶과 관련된 것들일 뿐이다. 수십 년 길을 걷다 보면, 모든 길가에는 깨어진돌들이 널브러져 있기 마련이다. - P92

역사는 일련의 스냅사진이다. 달콤한 추억이든 낡고 찢어진 사진이든, 세월이 흐르면서 변하고 우리를 괴롭히며 전체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준다.
과거의 아쉬운 일을 생각하느라 시간과 마음을 얼마나 낭비하든 진실은 살아 보지 않은 삶을 평가할 수 없다. 대신 우리는 과거를 실패한 꿈이라고 여긴다. 때로 판타지는 꼭 필요한 거짓일뿐이며, 숨 쉴 공간을 마련해 주고 현재를 견디게 해 준다.
어떤 기억들은 암갈색을 띠고 미심쩍은 모습을 하고 있다. 어느 시점에는 카드를 마구 섞은 뒤 카드판을 인생이라 부른다. 우리는 단지 빙 둘러앉아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어른이 되어가는 청사진은 들여다보지 않고 심리극의 대본이나 짜는 젊고 아름다운 바보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잘 안다. 여성운동은 어디서도 찾을 수없었던 나 자신을 찾게 해 줬다. 여성운동이 빠진 나의 삶을 상상하고 싶지 않다. - P93

이런 대답도 삼간다. "음, 사실, 내가 나쁜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경향이 있어. 내가 떠난 적도 있고, 그들이 날 떠나기도 했지.
아 그리고 나는 20년 동안 조니 워커 레드랑 결혼했었어. 술과 사랑에 빠지면 방안이 온통 술병으로 가득차게 된단다."
하지만 대답에서 생략된 내용은 정리되지 않았을지언정 모두사실이다. 그러니 내가 타일러에게 ‘아직은 말해 주지 않는 가장중요한 점은, 운이 좋다면 실수들이 지류가 되어 다른 어떤 곳을향해 흘러간다는 사실이다.
되돌아보면, 과거의 모든 선택과 유턴과 방랑벽이 나름의 박자와 내면의 논리에 따라 하나의 삶으로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그게 무엇이든 지나온 이야기에 자신을 결부시킨다. 수용 혹은 부정이라 불리고, 세계 종교들의 중심 토대가 되기도 한다. - P101

나는 커다란 의자와 개들이 있는 집을 원했고, 누구든 들어올수 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온종일 머무는 사람은 없어야 하는 집을 원했다. 이제 내 나이가 70에 접어들었으니, 지금까지 꽤 긴시간이었다. 엄동설한이 닥쳤을 때나 다쳤을 때, 혹은 브로콜리 사오는 걸 깜빡했을 때나 재밌다는 파티에 못 간다고 핑계를 대야할 때는 참담한 짐으로 느껴진다.
무엇을 먹고 어디서 자느냐의 문제라기보단 영혼과 정신의 문제다. 그리고 누구든 원하고 꿈꾸고 고통받고 후회하는 능력인의식 자체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누구에게도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 P103

한겨울 깜깜한 밤에 개와 산책을 할 때, 나는 창에서 황색 불빛이 새어 나오는 집들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 다른 사람들이 완벽해 보이는 삶을 살아 내고 있는 곳, 그 안에는 우리가 볼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아마도 타일러와 내가 같이 쓰게 될 책은 여름날의 기억과 공원에서의 농구시합, 그리고 장애물달리기나 파이 만들기 같은 추억에 근거해 의식의 안과 밖을 표류하는 판타지가 될 것이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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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초기에는 충격적일 만큼 광포하게 감정이 날뛴다. 걷잡을 수 없이 사납고 절망적이다. 슬픔에 이를 수만 있다면 슬픔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애도의 순전한 물질성에아무런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납으로 안감을 댄 외투처럼몸을 내리누르는 둔통을 털어내기까지 몇 개월이 걸릴지 몰랐다. 내가 상실에 대해 뭔가 안다고 생각했던들-캐럴라인이 없는 상태, 두려움이 물러가고 근심이 멈춘 이후의 상태를어떻게 예상했던들-그것이 새로운 불변의 세계를 뜻할 줄은 짐작도 하지 못했다. 나는 캐럴라인의 항시 부재라는 현실에 살고 있는 것 같았고, 때로는 그 명백한 사실이 내 숨통을 꽉 틀어막는 듯했다. 추도식을 치르고 보름쯤 지났을 무렵, 친구 둘을 위해 저녁을 준비하게 되었다. 간신히 한 끼 분량의 절반쯤 음식을 차리고서야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간소하디간소한 치킨라이스 접시-깜빡 - P224

하고 다른 요리는 더 만들지도 않았다 앞에 너그럽게 앉아준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는 주방으로 들어가 조리대에 몸을 기댔다. 그녀가 죽었다. 이 말이 떠올랐다. 그 자체로참혹한 말이었다. 나는 죽음을 에둘러 완곡하게 표현하는 문화가 언제나 싫었다. ‘세상을 떠났다‘ ‘유명을 달리했다‘ ‘고이잠들었다‘, 이런 말들은 회피적이고 감상적인 것 같았다. 죽음이라는 개념에서 그 진술의 효력이 탈색되는 것 같았다. 이제는 어째서 이 단어를 희석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녀는 죽었다. - P225

었다.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글을 읽었다. 프로이트의 『애도와 우울증』, W. H. 오든, 에밀리 디킨슨 프로이트보다 시가 더 도움이 되었다. 몹시 힘들게, 그러나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나는 이중 상실이라는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끊기 시작했다. 만신창이가 된 지금 나의 외로움은캐럴라인의 마지막 몇 주 동안 그녀로 인해 겪은 괴로움과는별개의 것이었다.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 죽음에 대해 하는 말은 모두 상투적이다. 나는 적막감으로 미칠 것 같았고, 적막감은 종종 노여움으로 둔갑했다. 난데없이 엄습하는 원초적인 분노에 대해 말해주는 책은 없다. 죽은 사람과의 동거를대신할 그나마 견딜 만한 대안은 이런 분노뿐이다. 죽음은 아무도 청하지 않은 이혼이며, 이것을 견디고 산다는 건 잃고서 - P225

는 도저히 버틸 수 없을 줄 알았던 존재와 절연할 길을 찾는것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우리 우정의 강도를 의심하거나 무시하고 있었다. 마치 사랑을 버리면 고통을 건너뛸 수 있을 것처럼, 이런 시도의 효과는 이십 분을 넘기지 못하거나, 아니면우리 둘을 아는 누군가에게 "그래, 어쩌면 우리가 그렇게 가깝진 않았을 거야"라고 했다가 상대방이 웃음을 터뜨리며 끝이 났다. 내가 좋아하지 않던 캐럴라인의 특징을 일일이 떠올려볼까도 생각했다. 그런 점은 몇 가지 없었다. 혹은 보트를타고 강에 나가 그녀에게 소리내어 말을 걸기도 했다―그런시간이 잦아지고 길어지면서 결국 강의 특정구역을 ‘캐럴라인 예배당‘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에게 루실의 근황을 보고하고, 사람들이 했던 관대하거나 어리석은 언행을전하고, 우리 모두가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도 알려주었다. - P226

어느 날은 싸늘한 거실에 앉아 날뛰는 아픔에 몸을 내맡겼다. 오직 이곳에서만 내 마음이 거울에 정확히 비치는 느낌이었다. 나의 다른 자리들-내 집, 친구들과의 관계, 클레먼타인과 함께하거나 보트를 타거나 수영을 하는 나날은 내슬픔의 굴절된 형상을 담고 있었다. 그런 자리들은 모두 나를품어주고, 우리의 이야기를 되비춰주었으며 잠깐씩 잊게 도와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곳은 우리의 이야기 자체였다. 쾌적하다고 할 수 없는 온도와 박물관 같은 정적이 흐르는 여기가캐럴라인이 있는, 그녀가 떠난 자리였다. 이 장소는 하느님을팔아버린 나의 불신앙과 나의 모든 변명을 뚫고 들어왔다. 그런 까닭에 나는 여기에 가야만 하는 동시에 가기 싫었다. - P232

캐럴라인의 죽음 이후 처음 한 해 동안은 평소와 같은 일상, 이제 두툼한 침묵에 싸인 일상을 보내는 것 외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산책하고 책을 읽고 빛의 변화를지켜보는 일들.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편지와 카드를 읽고 또 되풀이해 읽으며 우리가 함께있을 적의 모습을 기억에 담았다. 평소 캐럴라인과 함께 보내던 휴일이 되면 친구앤드리아에게 이끌려 모임에 나갔다. 로잉도 했다 - 그야말로 손바닥이 가죽처럼 뻣뻣해지고 심장이 느끼는 피로감으로 온몸이 욱신거릴 때까지 노를 저었다.
저녁 어스름 속에서 보트하우스로 돌아오면 보트를 물 밖으로 꺼내 열심히 걸은 말에게 하듯 닦고 말려주었다. 글을 쓰기는 했지만 몇 달은 글쓰기가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흙에서 생명이 나고 번식하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차가운 순수생물학의 승리를 인간의 의식이나 계획으로 넘어서 - P239

는 게 가능한지 남몰래 고민할 때가 많았다. 주로는 부인할수 없는 그녀의 부재를 견디기 힘들었고, 기억 속에 남는 것이 곧 진정한 의미의 영생이라는 시시한 관념도 참을 수 없었다. 죽은 이들은 꼼짝도 않는데, 그들을 지나쳐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산 자들의 의연함 혹은 착각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궁리하며 보낸 시간도 허다했다. 처음에는 희망을 품는것이 상실에 대한 모독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희망이 없다면우리는 생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여러 해 전 아직 젖먹이였던 첫아이를 잃은 친구가 있다. 아이를 떠나보내고 얼마 되지않아 슬퍼하던 그녀가 들은 뼈아픈 위로의 말들 가운데, 죽은 사람에게 느끼는 강렬한 의리를 이해하는 어느 남성의 한마디가 있었다고 한다. "진짜 지옥은," 그가 친구에게 말했다.
"이것을 결국 극복하고 산다는 사실입니다." 불가사리처럼, 제 살이 잘려나가도 심장은 죽지 않는다. - P240

클레멘타인은 엉덩이와 배를 여러 곳 물리고 등은 길고 깊숙이 찢어져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아마 촘촘하게 몸을 덮은 이중 털 덕분에 목숨을 구했을 것이다. 상처의 봉합이 모두 끝나고 마취가 풀리기 시작할 때, 나는 클레멘타인이 깨자마자 내냄새를맡을 수 있도록 수술대옆에 웅크려 앉았다. 치료중에 수의사를 보조하며 클레먼타인을 붙들고 있어준 매기가 수술대 건너에서 내게 미소를 보냈다. "그래도요," 그녀가 말했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잘 버티시네요."
나는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당연하죠." 내가 말했다. "이녀석이 이렇게 살아 있잖아요. - P251

우리가 공격받은 다음날 동물관리과에서 핏불테리어들을데려가 격리시켰다. 수개월에 걸친 법정출석과 둘 중 한 마리는 안락사를, 다른 한 마리는 영구격리를 하도록 요구하는 시차원의 긴 캠페인이 이어졌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불안과 때때로 엄습하는 그때의 기억, 다소 엉뚱한 걱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위험이 지나간 뒤에 서서히 정신을 잠식하는 트라우마의 파편이었다. 본능적으로 나는 이미 내러티브의 순전한 힘을 무기로 이런 잔해에 맞설 태세가 돼 있었다. 숲에서피터에게 전화를 건 순간부터 그날의 사건들은 견딜 만한 진실로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게 있어 오래도록 수색과 구조의 신이었던 캐럴라인이야말로 이 이야기를 다시 들려줄 때 빠질 수 없는 산소 같은 존재였다. - P253

"죽은 이들이 우리를 지켜줘." 축구장의 그 스산한 날로부더 한참 시간이 흐르고, 캐럴라인의 영혼이 우리를 집까지인도해주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다니지 않은 지도 이미 오래인 어느 날, 저녁을 먹으며 앤드리아에게 내가 한 말이다. 무슨 뜻인지 나조차도 긴가민가하고 입 밖에 내기 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하는지 의식조차 못했는데,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기도서의 문구처럼 확신에 차 있었다. 죽은 이들이 우리를지켜준다. 이제 나는 이 말을 실감하며 강한 안도감을 얻는다.
캐럴라인의 죽음으로 나혼자 전장에서 버티도록 내몰렸지만, 이제 그녀가 말없는 호위병이 되어 내 안에 함께 머무르고 있었다. 이런 애착이 기억 덕분이든 신의 가호이든, 이것은 내가 아는 그 무엇과도 다른 위안을 안겨준다. 그대는 나와 함께 있다. "전부 앗아가잖아!" 그날 밤 절망에 치여 전화기에 대고 루이즈에게 그렇게 소리쳤었다. 지나고 보니 전부다 앗아가버리는 건 아니다. - P255

그후로 십 년 동안 클레먼타인은 내 인생에서 가장 감정이 확장되고 즐거웠던 시절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고, 가장 슬펐던 순간의 목격자였다. 내게는 다시없을 절친한 친구와 함께 나를 숲으로 이끈 것도 클레먼타인이었고, 캐럴라인이 죽어갈 때 매일 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나를 기다려준것도 클레먼타인이었다. 연로한 부모님을 보살피러 텍사스에 다녀올 때마다 그 여정의 끝에는 클레멘타인이라는 보초가 서 있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텍사스 태양 아래 두 분을 나란히 묻어드리고서 케임브리지로 돌아왔을 때, 클레먼타인은 현관에 들어서는 내 코끝을 가볍게 다독이듯 깨물고 내게 몸을 기댔다. 녀석은 그후 며칠간 좀처럼 내 곁을 비우지 않았다. - P262

옛날 나바호족 사람들은 러그를 짤 때 어울리지 않는 실을한 가닥씩 넣고 그 도드라지는 색이 바깥 테두리로 이어지게했다. 이 의도된 결함은 러그 안에 갇힌 에너지를 풀어주고또다른 창조로 이어지도록 길을 낸다는 뜻에서 영혼의 줄이라 불렸으며, 이 줄의 유무로 진품을 가릴 수 있다.
인생에서 굳게 품을 가치가 있는 이야기에는 모두 이런 영혼의 줄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희망이라 부르든 내일이라 부르든, 내러티브의 뒷이야기라고 부르는 상관없다. 다만 이것없이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미지의 선명한 불협화음 없이는 우리의 의식과 함께 모든 것이 안으로 무너져 파열될것이다. 우주가 역설하는바, 모든 고정된 것은 유한하다.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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