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에는 시가 존재할 수 없다고 했지만, 참상 속에 나비가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세상을 좋게 만들기 위해 애쓰는 우리는 세상의 좋은 것을 맛보면 안 되는것일까? 혁명가들과 활동가들이 줄곧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는질문이다. 케이스먼트는 대답한다. 좋은 것을 맛보자. 청옥색과 유황색 나비를 잡으러 다니자. 강에서 수영을 즐기자. 일기를 쓰자. 정의를 위한 투쟁이라는 끝없는 과업에는 휴식의 시간이 필요하다. 아우슈비츠 이후에는 시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 아도르노의 세대는 나치의 유대인 (그리고 집시, 동성애자, 나치 반대자)홀로코스트가 유일무이한 대량학살이라고 믿는 세대였다. 그세대에게 아일랜드의 크롬웰, 아르메니아의 터키인들, 케이스먼트의 두 보고서는 이미 망각 속에 묻힌 과거였고, 캄보디아, 과테말라, 르완다는 아직 예견되지 못한 미래였다. 아우슈비츠 안에 시인이 있었다. 수감 중에 단테를 인용한 프리모 레비 같은작가도 있었다. (레비는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수용소를 규탄하는 서정적인 책을 썼다.) 그런 참혹한 순간에도 경험에는 어떤 복잡한 면, 단순화될 수 없는 면이 있을 것이라고 케이스먼트의 나비는 말하는 듯하다. - P104

아일랜드 토착어의 복잡한 문법을 하나하나 익혀가는 사람들이 일구어낸 혁명. 케이스먼트의 푸투마요 나비처럼 경이롭다. 경이로운데, 좀 난데없다. 지나치다. 시문학 자체에 그런 중력과 무중력이 공존하는 것 같기도 하다. 국민적 차원의봉기가 있으려면 먼저 국민적 정체성이 있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고, 아일랜드 문화의 융성이 부활절 봉기로 이어지던 그때만큼 시문학의 정치적 중력을 확실히 느끼게 해주는 경우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아일랜드공화국 선언」의 서명자 일곱 명 중에서 세 명은 시인, 두 명은 교사, 한 명은 음악가, 한 명은 노조원 겸 역사가였다. 케이스먼트는 봉기의 실질적, 즉각적 결과만을 중요하게 고려했다. 그의 가장 큰 잘못은 그렇게 봉기의 상징적 가능성을 과소평가했다는 것, 시인처럼 계산하지 않고 정치가처럼 계산했다는 것이었다. 그가 봉기에서 수행한 역할은 부활절 주일의 전국 봉기를 취소시킨 것, 이로써 봉기가 부활절 월요일에 더블린에서만 시작되게 만든 것이었다. 그가 시인의 생각을 이해했더라면, 아니, 그가 외부 지원이 없으리라는 소식을 전하지 못했더라면, 아니, 그가 아예 상륙하지 않았더라면, 많은 것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 P108

그때 나를 괴롭히고 있던 유령은 예전에 그곳에 살았을 사람의 유형도 아니고, 7년 전 애인의 유령도 아니었다.(전에인과는 그 여행에서 돌아오고 1년 만에 두 사람의 삶이 다른 곳을 향하고있음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헤어졌다.) 그때 나를 괴롭히고 있던 유령은 7년 전에 나였던 여자의 유령이었다. 리로부터전 애인의 가족사를 들어서였는지, 전 애인과 함께 찍은 사진들을 보게 되어서였는지, 그때 나는 과거를 그리워하면서 심한 상실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서늘한 우울을 떨쳐버리려면 전 애인과 헤어지고 나서 생긴 좋은 일을 하나하나 되뇌어야 했다. 하지만 그 창문 앞에서 갑자기 나는 옛날의 나 자신이 여기 죽어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여자의 모든 꿈들. 그 여자의모든 실현되지 못한 계획들이 여기 죽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있었다. 모든 인체 세포가 7년에 한 번씩 새것으로 바뀐다면,
7년 전에 여기 있었던 그 여자, 지금의 나보다 어리고 소심한 그여자가 물리적인 의미에서 내게 남긴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 여자와 나를 이어주는 것은 한 장의 여행사진에 매달려야 할 정도로 희미한 기억뿐이었다. - P152

어느 한낮, 나는 로어링워터만()의 끝자락인 발리드홉에서 밴트리를 향해 출발했다. 그렇게 혼자 걷는다는 것이 애초의 계획이었지만, 실현될 수 없는 계획이라는 것도 곧 알게 되었다. 아일랜드 지도를 펼쳐놓고 여행의 경로를 정할 때만 해도, 서해의작은 도시들을 하나하나 답파한다는 계획이었다. 밴트리, 켄마어, 킬라니, 트랄리, 리스타월, 글린, 그렇게 남쪽에서 북쪽으로올라가는 지명들 자체가 근사한 느낌을 주었다. 기대 자체가 큰기쁨이고, 계획은 기대의 기쁨을 누리는 좋은 방법이다. 내가여행 계획을 세우는 일을 좋아했던 것은 둘째 오빠와 함께 가출 계획을 세웠던 여덟 살인가 아홉 살 때부터였다. 그때의 가출은 산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하리라고 짐작되는 물건의목록을 적는 데서 끝났다. 이 아일랜드 여행도 출발에서부터 어긋났다. - P155

하지만 여행한다는 것, 어딘가로 가고 있다는 것은그 자체로 깊은 충족감을 준다. 이야기 중에는 여행 이야기가많고, 삶은 여행이 될 때 비로소 이야기가 된다. 여행은 왜 우리에게 그토록 깊은 충족감을 주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우리가삶을 여행에 비유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딘가로 가고 있을때는 시간이 버려진다는 느낌보다는 시간이 채워진다는 느낌,
시간의 흐름이 공간의 리듬을 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만약에우리가 삶을 여행에 비유하지 않았다면, 예컨대 나무가 자라는과정에 비유했다면, 길에서 운명을 느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P157

하지만 우리는 삶을 여행에 비유하고 있고, 길에서 운명을 느끼고 있다. 길을 떠난다는 것은 한곳에 머물러 있었다면 만날 수없었을 온갖 위험과 온갖 기회를 만난다는 것, 낯익은 운명을뒤로 하고 낯선 운명들을 찾아 나선다는 것이다. 길은 그저 약속, 어겨진 것도 아니고 지켜진 것도 아닌 약속이다. 길이 나라라면 길기는 이 세상의 땅을 모두 합친 것보다 길면서 좁기는건물 하나만큼 좁은 이상한 나라다.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있고 이 나라를 다스리는 법이 있다. 견고했던 것들, 고정되어있던 것들이 이 나라에서는 유동하고 변화한다. - P15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과거의 무수한 오브제들은 우리가 역사의 일방통행로를 얼마나 달려왔는지를 말해주는 이정표이다. 과거의 재산이 된 것들을 이렇게 없애버리면서 사는 사람은 영원한 현재를사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런 사람에게 과거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기억과 이야기로 전해질 수 있는 과거뿐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문화는 머리에 넣을 수 있는 데까지였고, 물질문화는 언제나 자기를 둘러싼 풍경으로부터 새로 창조되는 중이었다. 이런 식의 영원한 재창조(re-creation)를 전제하는 구전 역사에서는 창세(creation)의 몽환시(幻)와 현재 사이의 관계가 유동적이고 탄력적이다. 현재는 과거에서 출발해서 한 발 한 발 올라오는 지형이라기보다는 창세에 둘러싸인 메사(mesa) 지형이다. 기억에 그 용도가 있듯 망각에도 그 용도가 있다. 둘 사이의 균형점이 어디냐는 여기가 어디냐에 따라 달라진다. - P25

이런 역사관은 자기가 자기를 둘러싼 풍경과 불가분의 관계라는 선언이자, 자기는 새로운 풍경에 적응해온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그 풍경 속에 있었다는 선언이자, 다른 곳으로떠나거나 새로운 집을 꾸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선언으로서 정치적 의미와 영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두 가지 역사에 다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태고에 인류의 이주가 있었다는 말에도 의미가 있고(물질적 차원의 역사), 거주민과 거주지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말에도 의미가 있다(문화적 차원의 역사). 거주민의 정체성과 거주지의 풍경 사이에 그토록 밀접한 관계가있다면, 그 사람들이 그 풍경 속에 거주하기 전에도 그런 사람들이었다고 말하기는 불가능하다. 그 풍경이 그 정체성의 기원이자 얼굴이라면 그 사람들이 그 풍경 속에서 창조되었다는 것이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들에 비하면 나머지 우리는 뿌리가 없는 사람들이다. - P27

나는 법적 유럽인이다. 타고난(natural) 유럽인은 아니지만 귀화된(naturalized) 유럽인인 것이다. 내가 아일랜드 여권을 얻은 것은 명탐정 엉클 데이브(외삼촌)가 우리 가족과 아일랜드를 잇는 출생증명서와 혼인증명서의 긴 사슬을 발굴해낸 덕분이다. 피라는 신화적 액체가 국적이라는 법률적 지위를 보장해준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아직 놀랍기만 하다. 내 계보는 아일랜드계 미국인 3세대쯤 되는 것 같지만, 가족 이야기를 거의 못듣고 자란 나에게는 아일랜드에 대한 기억이 아무것도 없다. 러시아 유대인 이민자를 부모로 두었던 아버지를 둔 나를 아일랜드계라고 하기도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내가가톨릭 신도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내가 지금까지 주로 거주해온 곳은 캘리포니아라는 잡종 지역, 세계 제일의 망각력을 자랑하는 지역이다. 아일랜드 여권이 생겼을 때 나는 유산을 받은느낌이라기보다 횡재가 굴러 들어온 느낌이었다. 열쇠에 비유하자면 내 집의 열쇠가 아니라 모르는 건물의 열쇠였고, 초청장에비유하자면 나에게 온 초청장이 아니라 내가 거의 잘 모르는 아일랜드 이민자 네 명(엄마의 조부모 네 명)에게 온 초청장이었다. 핏줄, 뿌리 등의 관습적 의미에 따르면, 아일랜드라는 내가 잘모르는 나라가 내 나라였다. - P29

내가 찾으려고 했던 것은 어떻게 보자면 여행 그자체였다. 사람이 한 번에 온전히 한 곳에 존재한다는 것은 편의적 픽션이고, 여행문학은 그 픽션을 수호하는 장르 중 하나다.
마찬가지로, 한 종족이 처음부터 한 장소에 있었다는 생각은그 종족의 신화 혹은 그 종족의 이상일 뿐이다. 오늘날 아메리카 원주민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대개 혼혈이고, 강제 이주라는 돌발적, 폭력적 상황을 겪으면서 조상의 과거를 일부 상실하기도 하고 미국의 지배적 문화를 다수 채택하기도 한 사람들이다.(미국의 문화 자체가 유럽에서 온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뒤섞인잡종 문화다.) 우리는 한 번에 두 곳에 있는 경우가 많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대개의 경우 최소한 두 곳에 있다. 그 두 곳이 완전히 상반되는 경우도 있다. 나는 항상 한 번에 여러 곳을 지나가고 있는 느낌이다. 유타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이다호의 동굴을생각하면서 영국의 감옥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서 뉴펀들랜드로 짐작되는 곳의 상공을 날면서 아일랜드행 비행기에 타고 있는 것은 예외적 상황이 아니었다. - P31

더블린은 아일랜드 안에 있으면서도 아일랜드와는차이가 있다. 아일랜드공화국의 350만 인구 중에 4분의 1 이상이 이 차이를 공유하고 있다. 도시와 시골이 근본적으로 차이나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아일랜드에서 더블린이라는 도시는 실로 다르다. 아일랜드에서 도시는 더블린 하나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더블린을 뺀 나머지 아일랜드에서는 아직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것 같다. 농경시대의 고요한 운명론이 생활의 속도를 지배하는 것 같고, 촉촉한 녹색의 풍경이거의 어디나 펼쳐져 있다. 관광객에게는 그림 같은 광경이고, 원주민에게는 고립적 환경이다. 대학교 때 읽은 아일랜드 역사책에 켈트족은 "읍내(town) 개념을 모르는 생활을 했다는 내용이나오는데, 이 나라의 다른 인구 밀집 지역(리머릭, 골웨이, 코크)은 지금까지도 읍내가 좀 커진 느낌이고, 전체 인구의 40퍼센트 이상이 아직 농촌 인구로 간주된다. 혼잡하고 번화한 명실상부한도시는 더블린 하나다. - P36

관광의 역할은 전쟁, 침략, 피난이라는 인간의 끝없는 행렬을 놀이로 재구성하는 것, 이주의 비극을 욕망과 지출의희극으로 재공연하는 것이다. 관광객에게서 순례자의 메아리가울리기도 한다. 물론 세속의 관광객이 찾아다니는 것은 더 다양하고 더 변덕스럽다. 예컨대 태양을 찾아다닐 수도 있고 특정한 지형이나 기후를 찾아다닐 수도 있고 축제를 찾아다닐 수도있고 과거의 흔적과 유물을 찾아다닐 수도 있다. 관광객은 묘한인종이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목적지를 찾아 헤매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여행의 진정한 목적과 묘미는 그저 집을 떠나 떠돌아다니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 P49

불공평과 불의, 흙과 똥에 대한 스위프트의 깊은 관심에는 성 패트릭 대성당 동네라는 글자 그대로의 기반(ground)이 있었다는 것이 문학사 연구자 캐럴 패브리컨트(CaroleFabricant)의 지적이다. 문학사는 스위프트를 영국 작가로 분류하면서 그의 염세, 그의 분노, 육체의 비교적 역겨운 측면들에대한 그의 깊은 관심을 개인적 기벽 또는 정신질환의 징후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가 정말 미친 사람이었다고 해도 그런 테마들을 선택했던 데는 근거(ground)가 있었다. 스위프트의 냉혹한 반(反)낭만주의에 아일랜드 빈민들과 어울려 지내는 생활이라는 뿌리가 있는 것은 그의 친구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의 꾸밈 많은 시에 영국 시골저택에서 하인을부리는 생활이라는 뿌리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스위프트는 아일랜드와 묘한 관계였다. 그는 "아일랜드에 살아야 하는사람은 불행하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진정 불행하다고 하기 - P55

는 어렵다."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자유인들 사이에서 노예로사느니 차라리 노예들 사이에서 자유인으로 살겠다."라고 말하면서 런던으로 돌아가기를 거절하기도 했다. 크롬웰 이후에 아일랜드로 건너온 조부모를 둔 그가 영국인인가 아니면 아일랜드인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결정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확연한 사실이라기보다는 욕망과 정치다. 영국인과 아일랜드인 둘 다였다는 것이 가장 정확한 대답일 듯하다. 나고 자란 곳은 아일랜드였고, 청년기를 보낸 곳은 영국의 문학적, 정치적 동인사회였고, 인생 후반기를 보낸 곳은 고향 아일랜드였다. 어느나라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고 안락과 양심 사이에서 분열되어 있던 그는 어느 나라에 있든 다른 나라 사람 같은 데가 있었던 것 같다. - P56

영문학 그 자체가 영국 시골저택 같다. 영국 문학은고색창연한 중앙 건물이고, 영어권의 다른 문학들은 헛간이나신축 부속 건물이다. 서사시, 서정시 소설은 중앙 건물의 중심공간을 차지하는 익숙한 가구들이고, 에세이는 사이드 테이블들과 캐비닛들이다. 내가 영문학 전공생일 때 읽은 교과서들을보면 아일랜드 문학도 섞여 있었지만, 가장 비중 있고 가장 중요하고 가장 익숙한 작품은 거의 항상 영국 문학이었다. 밀턴은어두운 왕좌였고, 셰익스피어는 파티장이었고, 시드니에서 셸리까지의 소네트는 파티를 장식하는 부케였고, 영국 소설은 커다랗고 희고 푹신해 보이는 깃털 침대였다. 반면에 스위프트의작품은 통로에 놓여 있는 딱딱한 의자이고(그곳에 앉으면 벽면의틈새를 통해서 바깥의 전망이 보인다.), 조이스의 작품은 하인의 방에 걸려 있는 거울이다.("금이 간 하인의 거울"이 "아일랜드 예술을 상징"할 수 있다는 스티븐 디덜러스의 말은 거울의 예속된 상태를 암시할 뿐아니라 거울에 비치는 균열된 모습, 의외의 모습을 암시한다.) 물론 조이스는 밖으로 나가서 새 집을 지은 작가였고, 그 집에 들어가보면 더블린을 기리는 기념비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 P57

그 작품이 속한 장르의 관습을 해체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야기의 관습, 언어의 관습, 전통의 관습을 모두해체한다. 그중에서 『걸리버 여행기』와 『율리시스』는 각각 아일랜드 문학이라는 영국 점령지의 처음과 끝이다. 스위프트는 더블린을 망명지로 삼은 아일랜드인이고 조이스는 더블린을 떠나 망명자가 된 아일랜드인이지만, 어쨌든 두 책 다 조롱과 망명과 방랑의 책이다. 최초이자 여러 의미에서 최고의 실험적 영국 소설인 『트리스트럼 샌디』는 아일랜드 태생의 성직자 로런스스턴(Laurence Sterne)이 1759년에서 1767년 사이에 펴낸 작품이고, 요크셔 지역의 습지와 동일시되다시피 하는 브론테 자매도 아일랜드인 아버지의 격정적인 아일랜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브론테 자매는 자기만족적인 빅토리아 소설 속에 음울하고 폭력적인 요소들을 들여왔고(깃털 침대 한복판의 뱀장어들), 이어서 와일드, 조이스, 싱, 쇼, 베케트도 놀라움을 안겨주는 여러요소들을 들여왔다. 좀 더 복잡하고 좀 더 신랄하고 좀 더 위태로운 상상력이야말로, 문학 형식들이 자의적이라는 사실과 함께 그런 문학 형식들을 전복할 기회를 좀 더 예민하게 인지하는감수성이야말로 아일랜드 문학이라는 영국 점령지의 특징인 것같다. - P58

하지만 스위프트는 18세기에 이미 이런 종류의 지도 개편 작업을 하고 있었다. 스위프트 자신이 속해 있는 우아한 사교계가뒤에서, 밑에서, 밖에서 어떻게 보이는가를 까발려주는 작업이었다. 유머 그 자체가 이중적 시야를 갖는 방법, 당위와 실상의간극을 감지하는 방법일 수 있다. 당위와 실상의 간극은 논리,
언어 등의 형식 요소에도 존재하고 사회생활, 정치생활의 위선에도 존재하는 만큼, 유머라는 동력은 단순한 농담에서도 작용할 수 있고 장문의 풍자에서도 작용할 수 있다. 스위프트의 시에서 유머가 고상함과 저속함을 끊임없이 오가는 데 있다면, 그의 「겸손한 제안(A Modest Proposal)」에서 유머는 식인을 아일랜드의 빈곤에 대한 합리적 해법으로 제시함으로써 기득권 세력의 착취 방식들이 본질적으로 식인과 다르지 않음을 까발리는데 있다. 유머를 모르는 사람들은 대개 기성 질서의 수혜자들이었고, 유머는 언제나 그 간극을 간파할 수 있는 사람들의 놀이이자 연장이자 무기였다. 더블린에서 바라본 세상은 비극적, 영웅적, 감상적일 때가 많았지만, 뼈 아프게 웃긴 경우도 있었다. - P59

이제 그들에게 가축의 세계는 인간의 속성을 묘사할 능력이 없는 세계였고, 엄한 통제라는표현은 점점 무의미해지는 표현, 머잖아 멸종할 표현이었다.(나는 최근에 말을 타러 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당근(carrot)과 보조 막대(stick)를 사용해본 다음에야 비로소 당근과 채찍(carrot and stick)이라는 표현의 의미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이런 장소들, 이런 존재들과 접촉하지 못한 채로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면 영어는 마침내신어(newspeak)‘로 전락하지 않겠는가는 우려도 생긴다. 노새(mule)의 발길질(kick)에 얻어맞아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벌 떼가 직선 코스로 날아가는 모습을 본 적 있는 사람은 또 얼마나 있을까? 언어가 공허해진다는 것은 상상력이 공허해졌다는 징조가 아닐까? 자연사박물관은 언어, 상징, 메타포, 상상력의 박물관, 한때 우리의 삶 속에서 서식했지만 이제 우리의 언어에서조차 사라지고 있는 피조물들의 박물관이다. - P75

메타포는 장소의 이동을 뜻하는 그리스어(petapopk)에서 온 단어인데, 아테네에서는 대중교통편을 메타포라고 부른다. 다른곳에서는 메타포가 그저 상상의 여행을 도와주는 비유법일 뿐이지만, 아테네에서는 메타포를 타고 일하러 갈 수도 있고 마지막 메타포를 타고 집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어쨌든 메타포는생각을 태우고 가는 차량, 아니, 생각을 통해서 별개의 두 존재를 연결하는 방식이다. 다만 메타포의 이런 연결은 직관적, 심미적 연결이며, 그런 의미에서 메타포는 생각의 본질, 곧 기계로는 수행될 수 없는 인간적 생각의 본질이다. 메타포는 이 존재와 저 존재의 다른 점과 같은 점을 가늠할 통로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아찔할 정도로 다양한 동시에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세계를 그려 보이기도 한다. 세상에서 메타포가 사라진다면모든 것이 무서울 정도로 형체가 없다고 느껴질 것이다. 그런 세상은 우리와 너무 똑같아서 지겨운 곳, 아니면 우리와 너무 달라서 이해할 수 없는 곳으로 느껴질 것이다. 메타포는 동물(우리와 본질적으로 비슷한 동시에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로부터 시작된다. - P76

‘인간의 입에서 말이 나오게 한 최초의 힘이 감정이었듯, 인간의 입에서 나온 최초의 말은 비유였다. 비유가 오히려 최초의 언어였고, 본질적 의미가 오히려 최후의 부산물이었다.‘ 최초의 은유가 동물의 은유였다면 그 이유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본질적으로 은유 관계라서였다. [.....]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생각할 때 상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상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말이 그저 대상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무관한 어떤 것을 의미한다는 것)은 언어의 발달과 불가분의 관계였다. 그런데 최초의 상징이 바로 동물의 상징이었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만들어낸 것이 바로 인간과 동물의 관계였다는 뜻이다. 언어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창조물(creation)이다. 세계라는 신의 창조물(Creation)의 희미한 그림자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라는 인간의 창조물은 인간이 창조하지 않은 세계로 거듭 되돌아가서 새로운 힘과 새로운 색을 거듭 되찾아와야 한다. 언어라는 창조물을 세계라는창조물에 연결하기 위해서는 자연계(풍경, 육체, 동물계)와 접촉할방법이 있어야 하는데, 그 방법이 바로 메타포다. - P77

마지막 진열장 앞에서 진화의 순간을 상상해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한때 나무 위의 유인원이었던 존재가 숲에서 나와서 이족 보행이라는 힘겨운 여정에 오른다. 시선은 처음 보는 먼 지평선에 닿고, 자유로워진 두 손은 붙잡을수 있는 누군가를,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입에서 나온 소리가 탁 트인 들판에 울려 퍼진다. 그런 상상이었다. 진열장 천장에 매달린 머리를 보면 하늘에 속한 존재, 날개를 얻어서 지상에서 더 멀리 떠나고 싶어 하는 존재인 것 같았지만(두 발 짐승은대개 날개가 있다.). 바닥에 닿은 두 발을 보면, 지상으로 돌아와야하는 존재, 나무처럼 꼿꼿하게 서서 단단히 뿌리를 내려야 하는 존재인 것 같았다. 씻지 못한 몸의 찝찝함과 시차로 인한 피곤함 사이에서 인간의 해골 앞에 서 있던 나에게 인간의 직립은두 가지 상반된 소망의 증거인 듯했다. 새도 되고 싶고 나무도되고 싶다, 떠돌고도 싶고 머물고도 싶다, 뿌리를 내리고도 싶고 날아가고도 싶다, 머물러 있을 때는 어디론가 날아가고만 싶고, 떠돌고 있을 때는 한곳에 뿌리를 내리고만 싶다. 그런 소망이었다. - P7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인의 말


우리는 너무 떨어져 살아서 만날 때마다 방을 잡았다.
그 방에서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었고 파티를 했다.
자정을 훌쩍 넘기면 한 사람씩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지만, 누군가는 체크아웃 시간까지 혼자 남아 있었다.
가장 먼 곳에 사는 사람이었다.
건물 바깥으로 나오면그 방 창문을 나는 한 번쯤 올려다보았다.

2023년 9월
김소연

흩어져 있던 사람들


선생님 댁 벽난로 앞에서 나는 나무 타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누군가 사과를 깎았고 누군가

허리를 구부려 콘솔 위의 도자기를 자세히 보았다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무 타는 소리가

빗소리에 묻혀갔다 누군가 창 앞으로 다가가

뒷짐을 지고 비를 올려다보았고 누군가

그 옆으로 다가갔다

뭘 보는 거야?

비 오는 걸 보는 거야?

선생님 댁 벽난로에서 장작 하나가 맥없이 내려앉았다 - P9

다 같이 빗소리 좀 듣자며 누군가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때 말벌 한 마리가 실내로 날아들었다

누군가 저것을 잡아야 한다고 소리쳤지만 모두가

일제히 어깨를 움츠렸다 처마 밑에 벌집이 있는데요?

119를 불러서 태워야 하지 않을까요?

누군가 선생님을 처마 아래로 불러 세웠고 누군가는

날아다니는 말벌만 쳐다보았다

겨울이 되면 말벌이 떠나고 빈집만 남는댔어

가만히 기다리면 적의 목이 떠내려온다구 - P10

선생님 댁 벽난로에서 나무 타는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내 옆에 와 앉으며

말벌의 독침은 연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 옆에 다가와서 누군가는 어린 시절 벌에 쏘인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은 2층으로 올라가서

벌집을 들고 내려왔다 이건 작년 겨울에

처마 밑에 있던 거야 조금만 기다리면

저 벌집도 내 차지야

벌집은 정말로 육각형이었다

까끌까끌했지만 보석 같았다 - P11

근데 말벌은 어디 있지?

뿔뿔이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벌집을 에워
싸며

처음으로 가까이 모여들었다

모두의 얼굴을 둘러보며 선생님은 빙그레 웃었다

말벌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어?

선생님은 2층에 벌집이 하나 더 있다며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 - P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행은 마음의 발걸음이기도 해서, 다른 장소에 가면 다른 생각이 떠오른다. 나는 이 여행에서 내 마음의 발걸음도 한번 뒤따라 가보고 싶었다. 내 주관적, 개인적 경험을 적어나갔지만 내 평범한 삶을 미화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글자 그대로의 땅을 걸어가는 것이 어떻게 마음의 구석진 곳들을 탐험하는것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한 사례로 내 경험을 이용한 것뿐이었다. 이 책의 장르는 통상적 의미의 여행서가 아니라 여행을 계기로 구상되고 배열된 연작 에세이다. 이 책의 글 한 편 한 편이 다양한 모양의 구슬이라면 이 책의 계기가 된 여행은 그 글들을 한데 엮는 실이었다. 글마다 소재(여행지 풍경과 여행자의 정체성, 기억하는 내용과 기억에서 사라지는 내용, 상수와 변수)가 다르지만, 여행(내가 떠났던 수수한 여행이기도 하지만, 그와 같은 다른 많은 여행들이 공명했던 과거의 모든 위대한 여행들이기도 하다.) 자체는 이 책으로 엮인 모든 글의 소재였다. - P7

조이스의 『율리시스』 끝부분에 나오는 몰리 블룸의 독백이 잘포착한 것으로 유명한 의식의 흐름은 내적 자아로의 귀환이다.
내가 다른 나라라는 미지의 영토로 떠나면서 해보고 싶었던 것중 하나 또한 그 내적 자아라는 연상의 영토를 탐험하는 것이었다.
여행자가 가장 여행하기 어려운 풍경은 여행자에게가장 강한 영향을 미치는 풍경, 곧 여행자 자신의 생각 속에 녹아 있는 풍경이다. 자아의 두 번째 겹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은풍경이 마치 모기들처럼, 아니면 갑옷처럼, 아니면 향수처럼, 아니면 눈가리개처럼 자아를 에워싸고 있다. 내가 마음의 발걸음을 쓰면서 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 내적 경험이라는 겹을여행에 포함시키는 것, 그리고 이로써 여행수필(travel writing)의 관행을 해체하는 것이었다.  - P9

브렌다는 철학의 역설을 수집, 편찬하는 작업을 구상 중이었고나는 온유에 관심이 있었으니 우리는 서로의 작업에서 어떤 친연성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몇 가지 정의를 찾으면서 행복해한 것은 그 전날에 스네이크 강가를 산책하며 얼어붙은 웅덩이를 이리저리 피하면서였고, 그렇게 찾아낸 정의들을 함께 정리해본 것은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저녁으로 브렌다가 만든 토마토 커리를 함께 먹으면서였다.(브렌다는 지식욕이 왕성한 만큼 식욕도 왕성한 미인이었다.) 나의 은유와 브렌다의 역설은 한 번에 두곳에 있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데가 있었다. 모종의 종점에 가닿고 싶어 하는 철학은 결국 한 곳에만 있으려는재미없는 시도가 아닐까. 비유가 아닌 진리, 곧 진리 그 자체는영원히 가닿을 수 없는 소실점 같은 것이 아닐까, 끝나는 곳은시작하는 곳과 마찬가지로 신화적 장소가 아닐까, 라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었다. - P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이 점을 포착하고 있다. 마리아 공주는 자기 집 앞으로 지나가는 무수한 러시아 순례자들에게 먹을 것을내주면서 모종의 열망을 느낀다. "그녀는 순례자들에게 이야기를 청해들을 때가 많았다. 그들의 소박한 말투, 그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하지만 그녀의 귀에는 깊은 의미로 가득한 것처럼 들리는 그 말투에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동했던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길을 나설 뻔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럴 때 이미 그녀는 누더기를 걸친 차림으로 보따리와 지팡이를 들고 흙먼지 자욱한 길을 걸어가는 자기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그녀는 단 한 곳의 목적지를 향해 명료하고 검소하고 강렬하게 나아가는 고상한 은둔자의 삶을 상상한다. 순례자의 발걸음은 단순 명료함의 표현이자 목적의식의 표현이다. 낸시 프레이(NancyFrey)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까지의 긴 순례길에 대해 이렇게말한다. "순례자가 걷기 시작하는 순간 세계를 느끼는 방식 몇 가지가 한꺼번에 변하는데, 그 변화는 여정 내내 이어진다. 시간 감각이 바뀌고, 오감이 예민해지고, 자기 몸과 자기 몸을 둘러싼 자연경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긴다. [......] 그것을 한 독일 청년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기도 했다. ‘걷는 경험 속에서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사유가 된다. 자신으로부터 도피하기란 불가능하다.‘
- P91

실비아 플래스(Sylvia Plath)가 그 이유를 일기에 적은 것도 열아홉살 때였다. "여자로 태어났다는 건 내 끔찍한 비극이다. 길에서 일하는사람들, 선원들과 병사들, 술집 단골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풍경의 일부가 되고 싶은데, 익명의 존재가 되고 싶은데, 경청하고 싶은데, 기록하고 싶은데, 다 망했다. 내가 어린 여자라서 수컷으로부터 습격당하거나 구타당할 가능성이 있는 암컷이라서. 남자들이 어떤 존재인지, 남자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데, 그렇게 궁금해하면 유혹한다고 오해받는다. 모든 사람과 최대한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좋을까. 노천에서 자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서부로 여행을 가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밤에 마음껏 걸어 다녀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플래스가 남자들을 궁금해한 이유는 남자들에 대해 알아볼 방법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제 막 자기의 인생을 시작한 이 어린 여자는 자기보다 자유로운 남자들의 삶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산책, 즉 집 밖에서 재미 삼아거니는 일에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가 자유 시간, 둘째가 걸을 만한 - P374

장소, 셋째가 질병이나 사회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육체다. 자유 시간에는 다양한 변수가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대에 대부분의 공공장소는여자들에게 그렇게 편하고 안전한 장소가 아니었다. 법률, 성별 관행, 추행과 강간의 위험 등은 여자들이 걷고 싶을 때 걷고 싶은 곳을 걷는 일에 제약을 가했다.(여자에게는 옷이 신체적 구속이 될 때가 많다. 굽이 높은 신발, 발을조이는 가냘픈 구두, 너무 넓거나 너무 좁은 스커트, 쉽게 찢어지는 옷감, 시야를 가리는 베일 등은 법이나 두려움 못지않게 여자에게 핸디캡을 안겨주는 사회 관행이다.)
여자들은 공공장소에 있는 동안 사적인 부분(private parts)을 침해당하는 일이 놀라울 정도로 자주 발생한다. 영어에도 여자의 걷기를성별화하는 표현이 많다. 창녀를 뜻하는 표현으로 길거리를 걷는 사람(streetwalker), 거리의 여자(woman of the streets), 도심의 여자(woman on thetown), 공공의 여자(public woman) 등이 있다. 이런 표현에서 여자(woman)를 남자(man)로 바꾸면 공인(public man), 유행에 밝은 사람(man abouttown), 건달 (man of the streets)이 된다. 성에 관한 관습을 깨뜨린 여자를 묘사하는 방황한다
(stroll, roam, wander, stray)는 표현은 여자의 여행에 성적인 면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또는 여자가 여행을 떠날 때 여자의 섹슈얼리티는 관습을 위반할 수밖에 없음을 암시한다. - P375

‘일요일의 떠돌이들(Sunday Tramps)‘은 레슬리 스티븐을 비롯한 남자 보도 여행자들의 모임이름인데, 만약 여자들이 자기네 모임을 이런 이름으로 불렀다면 그건일요일에 보도 여행을 한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일요일에 뭔가 외설적인일을 한다는 뜻을 품었을 것이다. 실제로 여자의 보행은 많은 경우 이동이 아니라 공연으로 해석된다. 그런 해석대로라면 여자들은 보고 싶은것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보여주기 위해서 걷고, 자기의 경험이아니라 자기를 보는 남자의 경험을 위해서 걷는 셈이다. 곧 여자는 무슨 - P375

종류의 관심이 됐든 관심받고 싶어 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예로부터 여자의 걸음걸이에 대한 글을 쓴 사람은 많이 있다. 얼마나 에로틱하게 걷는가라는 평가(예컨대 17세기 아가씨의 "페티코트 밑으로 작은 생쥐들처럼 / 슬쩍슬쩍 들락날락하는 두 발"에 대한 평가, 또는 메릴린 먼로의 씰룩거리는 걸음걸이(wiggle)에 대한 평가)에서부터 무엇이 올바른 걸음걸이인가라는 지침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우리가 어디에서 걷는가에 대한 글을 쓴 사람은 많지않다.
이동을 제약당하는 사람들이 여자뿐은 아니었다. 하지만 인종, 계급, 종교, 민족, 성적지향으로 인한 제약에는 지역 특수성이 있었던 데 비해, 여자라는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이 받는 제약은 세계 전역에서 거의1000년 동안 젠더 정체성의 근본적 조형 요소가 돼왔다. 생물학적, 심리학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가장 적절한 설명은 사회적·정치적 상황이 아닐까 싶다.  - P376

혼자 걷는 것에도 막대한 영적, 문화적, 정치적 울림이있다. 지금껏 혼자 걷기는 명상과 기도와 종교적 성찰의 중요한 일부분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소요학파에서 시작해서 뉴욕과 파리를 배회하는 시인들에 이르기까지 혼자 걷기는 사유와 창작의 형식이었다. 또한 작가, 예술가, 정치적 이론가 등에게는 작품을 구상할 공간을 마련하는 방법이자,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을 만남과 경험을 확보하는 방법이었다. 이 뛰어난 남자들이 세상을 마음껏 걸어 다닐 수 없었다면 과연 그 뛰어난 것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까. 아리스토텔레스가 집 안에만 있어야했다면 어땠을까. 뮤어가 풀스커트를 입어야 했다면 어땠을까. 여자들이 낮의 도시를 걸어 다닐 수 있게 된 뒤에도 밤의 도시,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애상적이고도 시적인 카니발은 ‘창녀(woman of the night)‘가 아닌 여자에게는 출입 금지 구역이나 마찬가지였다. 걷기가 기본적인 문화적 행위이자 인간의 중요한 존재 방식이라면, 발길 닿는 대로 걸어 다닐 가능성을 빼앗겨온 사람들은 단순히 운동이나 여가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크게 박탈당해온 사람들이다.
제인 오스틴으로부터 실비아 플래스에 이르기까지 여자들은 남자들과 다른 주제, 비교적 협소한 주제를 다뤄왔다. 틀을 깨고 좀 더 넓 - P392

은 세계로 나아간 여자들도 없지 않았다. 얼른 떠오르기로는 평화 순례자(중년의 나이로), 조르주 상드(남장 차림으로), 에마 골드먼, 조세핀 버틀러, 그웬 모펏 등등. 그러나 아예 침묵해야 했던 여자들이 훨씬 많았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버지니아 울프의 유명한 에세이 자기만의 방』은 제목 그대로 여자들이 작업 공간을 가져야 한다는 항변으로 기억되지만, 사실이 에세이는 창작하는 사람에게 작업 공간 못지않게 필요한 경제, 교육, 공적 공간에의 진입 가능성을 논의하고 있다.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위해 울프는 셰익스피어에게 똑같이 재주 있는 누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한다. 주디스 셰익스피어라는 이 여자의 망가진 인생 앞에서 울프는 묻는다. "그녀가 술집에서 정찬을 시켜 먹거나 밤거리를 걸어 다닐수 있었을까요?" - P393

세라 술먼(Sarah Schulman)의 소녀들, 전망들, 온갖 것들(Girls, Visionsand Fonerything)이라는 소설은 울프의 에세이와 마찬가지로 여자들의 자유에 가해지는 제약을 논의하고 있다.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의 한 대목에서 제목을 따왔다. 케루악의 강령이 소설 속의 젊은 레즈비언 작가 라일라 푸투란스키에게 얼마나 유용한지를 검토하겠다는 의미다. 푸투란스키는 생각한다. "문제는 잭 케루악과 나를 동일시하게 된다는 것, 그가 길을 가는 중에 같이 잔 여자들과 나를 동일시하게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케루악은 오디세우스처럼 한 자리에 머무는 여자들이라는 풍경 속을 여행하는 남자였다. 케루악이 1950년대에 미국의 매력을 탐험했듯, 푸투란스키는 1980년대 중반의 맨해튼 로어이스트사이드의 매력을 탐험한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일" 가운데 하나는 "길거리를 몇 시간씩 정처 없이 걸어 다니다가 어딘가에 가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소설이 진행되면서 그녀의 세계는 더 바깥으로 열리는 대신 더 내밀해진다. - P393

옛날에 말 두 필이 끄는 마차에 올라타는 것은 밖으로 나가되 걷지 않기 위해서였지만, 지금 말 두 필의 힘, 곧 2마력으로 움직이는 기계에 올라서는 것은 걷되 밖으로 나가지 않기 위해서다. 어딘가에서는 지상의 풍경과 생태를 바꿔놓고 있는 발전 설비, 배전 설비 등의 전기 인프라 전체(전선과 계량기와 노동자로 구성되는 네트워크, 발전소를 돌아가게 하는 탄광과 유전의 네트워크, 수력발전 댐의 네트워크)가 눈에 띄지 않게 가정과 연결되어 있고, 어딘가에는 러닝머신을 만드는 공장이 있다. (그리고 오늘날 미국에서 공장노동은 소수집단의 경험이 되었다.) 그러니 러닝머신을 사용한다는 것은 밖에서 걷는 것에 비해 훨씬 많은 경제적·생태적 상호작용을 필요로 하는 일인데, 러닝머신이 만들어내는 경험적 관계는 훨씬 적다. 러닝머신 사용자는 책을 읽는 등의 방법으로 시간을 보낸다.  - P424

<프리벤션(Prevention)>이라는 잡지는 러닝머신 사용 시에 텔레비전을 시청할 것을 추천하기도 하고, 봄이 왔을 때 러닝머신의 루틴을 실외 걷기로 대체하는 법을 알려주기도 한다.(밖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 아니라 러닝머신을 이용하는 것을 경험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뉴욕 타임스>는 한창 유행하고 있는 실내자전거 강좌에 이어서 러닝머신 장거리 사용자의 고독을 달래주기 위한 러닝머신 강좌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뉴스를 전한다. 러닝머신의지루함은 공장노동과의 공통점이다. 쳇바퀴가 수감자 교화에 도움이 된다고 본 것도 바로 이 지루한 반복 때문이었다. 프레코사(社)의 광택 나는 상품 안내 책자가 심혈관 러닝머신의 장점을 알려주었다. 이 러닝머신에는 "거리별, 시간별, 경사별로 "다섯 가지 코스가 프로그래밍되어 있고, "그중 ‘인터랙티브 체중 감량 코스‘는 운동량을 조절함으로써 사용•자의 심박수가 최적의 체중 감량 존을 벗어나지 않게 유지"하며, "사용자설정 코스는 사용자가 자기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최대 13킬로미터까지 - P424

최소 150미터 간격으로 간단하게 설정, 저장할 수 있다. 나에게는 사용자 설정 코스가 가장 놀랍다. 사용자는 마치 도보 여행길에 오른 듯 다양한 지형의 행로를 설정할 수 있고, 그 다양한 지형을 구현하는 것은 180센티미터 길이의 발판에서 회전하는 고무벨트라는 놀라운 이야기. 일찍이 기차가 공간 경험을 잠식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동 거리의 측정 기준은 공간에서 시간으로 변경되기 시작했다.(요즘 로스앤젤레스 사람은 할리우드에서 베벌리힐스까지 몇 킬로미터 거리라고 하는 대신 20분 거리라고 한다.) 러닝머신은 여행의 의미를 이동 시간, 체력 소모, 기계적 동작으로 측정하는 것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이 변경의 과정을 완성했다. 분위기로서의공간, 지형으로서의 공간, 볼거리로서의 공간, 경험으로서의 공간은 사라졌다. - P425

언어는 말이든 글이든 시간 속에 펼쳐지기에 한눈에 인지될 수 없다는 점에서 길과 비슷하다. 언어와 길은 이렇듯 시간적 전개라는  점에서 닮은 데가 있는데, 미술과 보행은 전혀 닮은 데가 없다. 그런데 1960년대에 모든 것이 변하면서, 시각예술이라는 넓은 우산 밑에서 불가능한 것이 없어졌다. 일종의 혁명이었다. 모든 혁명에는 부모가 있다.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이 시각예술 혁명의 대부(代父) 중 하나라는 것이 그의 자식 중 하나인 앨런 캐프로(Allan Kaprow)의 주장이다. - P427

배회와 도박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기대하고 있을 때가 결과가 나왔을 때보다 즐거울 가능성이 높다. 둘 다 소망은 확실하지만 성취는 불확실하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일이나 손에 쥔 카드를 테이블에 펼쳐놓는 일은 둘 다 운을 시험하는 일이다. 그러나 카지노의 입장에서 도박은 꽤 예측 가능한 과학이 되었다. 이제 카지노와 라스베이거스법집행 세력은 스트립을 걸어 내려갈 때 개입하는 운까지 통제하고자 한다. 스트립은 진짜 대로다. 비바람에 노출되어 있고 주위 환경에 개방되어 있는 공공장소이자, 미국 수정헌법 제1조가 보장하는 명예로운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장소다. 그 자유를 빼앗으려는 상당한 노력이 진행 중이다. 이대로 간다면 스트립은 유원지나 쇼핑몰이 되어버릴 것이다. 이런 공간에서 우리는 소비자는 될 수 있지만 시민은 될 수 없다.  - P452

사람들에게는 장소를 향한 갈증, 도시와 정원과 정글을 향한 갈증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 야외를 배회하면서 건물과 구경거리들과 상품들을 둘러보고 싶은 마음,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고 낯선 사람들과 마주치고 싶은 마음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라스베이거스는 알려준다. 라스베이거스 전체를 놓고 보면 지구상에 이곳만큼 보행자에게 적대적인곳도 없다는 사실은 앞으로 어떤 문제들이 생길지를 시사하지만, 라스베이거스의 명소가 보행자들의 오아시스라는 사실은 보행을 살려낼 수 있는 공간들을 회복할 가능성을 시사해주기도 한다. 공간이 사유화됨으로써 보행과 발언과 시위의 자유가 불법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은 미국이 도시공간을 놓고 통행권 전투(반세기 전 영국 배회자들이 시골길을 놓고벌였던 통행권 전투 못지않게 심각한 전투)를 치러야 하리라는 것을 알려준다. 실제 장소들의 이미테이션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확산돼 있다는 사실도 오싹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이미테이션은 시민적 자유의 온전한 행사를 가로막는 동시에 시인이나 문화비평가나 사회 개혁가나 거리 사진가를 자극할 수 있는 장면들, 만남들, 체험들의 온전한 스펙트럼을 가로막으니 말이다. - P46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