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할 수 있는 이유는 눈으로 본 것의 기억이 몸으로 느낀 것의 기억보다 훨씬 오래가기 때문인 것 같다.
여행 그 자체는 근사한 것들에 둘러싸인 고생스러움의 연속일뿐이다. 낙원행 기차를 타기 위해 폭염 속에서 질주하기도 하고, 점점 무거워지는 배낭을 메고 알프스의 절경 속을 지나기도하고, 복통에 시달리면서 옛터의 장엄함에 압도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그런 고생스러움이 아니라 눈으로 본 근사한 것들이다. 여자들이 출산의 고통을 기억할 수 있으면 대체 누가 둘째를 낳겠느냐고 엄마는 언젠가 세 번째 자식의 셋째인 나에게 말했다. 내가 태어난 것은 망각 덕분이고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것은 시각적 기억의 우위 덕분이라는 뜻이다. 켄마어에 도착해서 자고 일어나니 무릎 한쪽과 근육 한 곳과 발 두 쪽이 말도 못하게 망가져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얼마나 망가져 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걷다가 그 정 - P229

도까지 망가져본 적은 처음이었다. 켄마어와 킬라니 사이의 산맥들을 하나하나 넘는, 사흘 전부터 기대했던 멋진 도보여행은결국 버스여행으로 바뀌었다. 거친 바위를 타고 쏟아지는 작은폭포들은 구불구불한 강물이 되어 휙휙 지나갔고, 강가의 오크나무들은 강물처럼 구불구불한 가지를 하늘로 뻗어 올리고 있었고, 진달래가 무더기로 공세를 펼치고 있었다. 버스는 구불구불하고 오르내림이 많은 복잡한 산길을 달렸고, 시야는 기습적으로 계속 바뀌었다. 아일랜드의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했던 길들지 않은 자연의 복잡다단함이 풍경의 윤곽 자체에 깃들어 있었는데, 나에게는 그 복잡다단함을 풀어낼 기회가 없었다. - P2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린아이에게는 모든 감각이 글자 그대로 비할 데 없는 감각, 곧 전에 느껴보지못한 감각이고, 어린아이가 느낀 그 첫 감각들이 마음의 원재료, 곧 마음의 바탕 이미지가 된다. 지구의 풍경이 태고의 화산활동과 판구조 이동을 통해 만들어졌듯 사람의 마음은 태어나서 첫 15년 동안 느낀 감각들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 후의 인생은 이미 만들어진 풍경에서 길을 찾고 지도를 그리고 흔적을 더듬고 묻혀 있는 것을 파내는 여생이 아닐까, 나중에 다시 볼 때는 처음 보았던 때와 비교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자주 해보게 된다. - P170

내 유년기의 집이 그렇게 추웠다는 것, 7번가 너머가 내 유년기의 따뜻한 에덴동산이었다는 것은 지금도 내게는 경악과 경이를 불러일으킨다. 대개의 사람들에게 유년기는 그런 경이와 경악의 혼합물이다. 벌거벗은 아이는 유년기라는 주어진 세계를 살아나가는 동시에 그 세계로부터 자기만의 작은 세계를 만들어나간다. 운이 좋은 아이는 좀 더 따뜻한 세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나는 운이 좋은 아이였다. 외부의 세계는 감각의 범위를 넘을 수 없지만, 내면의 세계는 어마어마하게 넓다. 생각해낸 것들, 기억해낸 것들이 펼쳐져 있는 밝은 곳도 있고, 아직 기억해내지 않은 것들이 감추어져 있는 어두운 곳도 있다. 내가 어릴 때 살았던 7번가, 내가 어릴 때 읽었던 책들은 내가만들어나가는 세계의 첫 재료이자 주어진 세계를 벗어나야 하 - P170

는 나의 첫 피난처였다. 7번가는 내가 꿈속에서 자주 찾아가는길이기도 하다. 7번가에 서 있으면 어디로든 떠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느 길에 서 있어도 7번가에 서 있는 것 같다. - P171

7번가 한 구간의 가로수 역할을 하는 키 큰 소나무들도 이 사유지의 일부였던 것 같은데, 그곳 소나무의 낮은 가지들이 나에게는 집의 일부였다. 내가 그곳에서 수풀을 모아서 만든 집은 트리하우스보다는 흙바닥의 새 둥지에 가까웠다. 그때 나는 항상 그곳 언덕에서 작은집을 마련하고 있었던 것 같다. 보물을 숨길 수 있는 속 빈나무둥치를 찾아내기도 하고 낮에 들어가 있을 수 있는 바위틈이나 올라가 있을 수 있는 나무를 찾아내기도 했다. 그때 내가 마련했던 가장 좋은 집은 7번가 포장도로가 끝나는 곳 부근에서발견한 거대한 옛날식 장미나무였다. 수십 년간 버려진 채 마구 자란 덤불은 전체 넓이가 큰 거실만 했다. 덤불 중심의 나무줄기까지 낮은 터널이 있었고, 나무줄기 속은 동굴처럼 텅 비어있었다.  - P174

한밤중에 언덕으로 달려가서 가파른 비탈의 아직 식지않은 풀에 드러눕는 날들도 있었다. 바닥에 누워 있는 느낌이라기보다는 무중력 공간에 떠 있는 느낌이었고, 별들을 올려다보고 있는 느낌이라기보다는 깊은 우물 같은 무한한 하늘을 내려다보고 있는 느낌, 당장이라도 그 우물 속에 빠져버릴 것 같은느낌이었다. 무한합이 주는 희열과 공포를 처음 경험한 순간이었다.
유년기가 처음 느껴본 감각들, 처음 당해본 고통들로이루어진 세계라면, 우리에게 유년기는 잃어버린 세계일 수밖에 없다. 유년기가 집이라면, 우리는 집을 잃은 난민일 수밖에없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집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 - P174

이기도 하다. 우리 안에 한번 뿌리내린 집은 영원히 우리를 놔주지 않는다. 나라는 존재가 몸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있는 물체라는 식의 생각은 내면이라는 어마어마하게 넓은 집을 은폐하는 픽션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집은 최초의 판단 기준이다. 다른모든 대상의 가치는 집을 기준으로 가늠된다. 우리가 간 곳이더운 곳인가 추운 곳인가, 붐비는 곳인가 조용한 곳인가, 윤택한 곳인가 각박한 곳인가는 우리가 어디서 왔느냐에 좌우된다. 내 마음이 이런 모양으로 만들어지던 때를 돌이켜보면, 나를 나로 만들어준 것, 교외 끝자락의 콩가루 가정보다 더 내 집처럼느껴진 것, 가끔 막연하게 들려오는 가족사와 종족사보다 더나라는 존재의 바탕으로 느껴진 것은 그때 나를 둘러싸고 있던풍경이었던 것 같다. 캘리포니아의 풍경이 나를 만들어주었다는 것은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도 사실이다. 나는 이곳의 작물을먹었고, 이곳의 물을 마셨다. 캘리포니아 와인을 벌컥벌컥 마신것은 세 살 때부터였다. - P175

내가 엄마에게 물려받은 것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에는 언어능력에서부터 사회정의에 대한 관심에 이르기까지 온갖 차원의 대답이 나올 수 있다. (사회정의에 대한 관심은 엄마가 아일랜드공화국의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유산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엄마는 현금인출기가 없던 시절에 비상금을 리엄 오플래허티(LiamO‘Flaherty)의 『기근(Famine)』 (오래된 녹색 표지의 소설책이었다.)에보관하는 사람이었고, 막내 자식의 이름을 지을 때 유대인 시부모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의 오빠와 아빠의 - P175

이름을 따서 데이비드‘라고 짓는 사람이었다. (열혈 국민주의자였던 엄마의 할아버지가 아일랜드 국민주의자 겸 시인 토머스 데이비스(Thomas Davis)처럼 되라고 지은 이름이었다. 친척들이 전하는 이야기에따르면, 엄마의 할아버지는 지명수배자가 되어 가명으로 아일랜드를 탈출한신(新)페인당원이었다.) 내가 물려받은 것들 중에 찻잔 몇 개, 성파트리치오 축일의 소소한 습관들, 모종의 감상주의는 아일랜드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고, 실수에 대해서, 정의에 대해서, 성교에 대해서, 내 몸에 대한 권리에 대해서 불안해했던 면은 가톨릭의 유산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물려받았다고할 수 없는 다른 많은 것이 있다. 내가 가진 가장 중요한 것들은물려받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라기보다 내가 어떤 비주류 문화를 물려받았는지, 그리고 그 문화가 주류 문화와 어떻게 다른지모르겠다는 뜻이다.  - P176

엄마와 외삼촌은 가톨릭 학교를 나오고 세례성사를 받고 교리문답을 통과하고 견진성사를 받은 당당한아일랜드계 미국인이다. 다시 말해 두 사람은 아일랜드라는 나라에 관심과 애정과 요구 사항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 나라를 여러 차례 다녀온 사람들, 각자 그 나라에 가서 먼 친척을수소문하기도 하고 선조의 고향을 둘러보기도 하는 사람들, 하지만 선조의 이름을 우리 자식들에게 알려주지는 않는 사람들이었다. 두 사람에게 아일랜드는 고향이었지만, 우리에게 아일랜드는 그저 다른 나라였다. - P176

기억하고 망각하는 방식도 유행을 탄다. 20세기 들어 한동안은 반짝이는 백색 도시 같은 유토피아적 미래를 앞당기기 위해 과거를 내팽개치는 멜팅포트 방식의 문화 동화주의가 유행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런 식으로 냅다 밀어붙이는 경향에 반발하면서 뿌리, 핏줄, 종족, 차이, 기억, 땅속처럼 어두운과거 등을 강조하는 방식이 유행하고 있다. 하지만 희망을 강조하는 논의나 역사를 강조하는 논의 둘 다 복잡하게 얽힌 현재를 위한 장소를 고려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아니,
장소 자체를 고려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역사를 강조하면서 종족을 고려하는 논의라고 해도, 새로운 토양에 심어진 하이브리드 또는 돌연변이를 고려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나를 키운것은 나의 실제 부모라기보다 캘리포니아 교외의 새로운 토양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담론이었던 생태지역주의(bioregionalism, 현장의 역사, 현장의 자연을 배움으로써 현장의 일 - P178

부가 되는 철학)는 유행 담론의 끝없는 부침 속에서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가 새로 유행하면서 어느새 버려진 듯하다. 요컨대 종족과 지형의 화합물로서의 정체성을 제안하는 화학 같은것은 나온 적이 없고, 뿌리와 뿌리 없음 사이의 균형잡기 담론같은 것도 나온 적이 없다. 7번가는 내가 아직 꿈에서 보는 곳,
내가 꿈에 자주 가는 곳들 중에 진짜 존재하는 두어 곳 중 한곳이다. 내가 찾아간 아일랜드는 그 7번가를 닮은 곳이기도 했고 나의 첫 길이었던 그 7번가로부터 이어지는 길이기도 했다. - P179

아직은 아일랜드라는 곳이 있고 페루라는 곳이 있고 캘리포니아라는 곳이 있고 영국이라는 곳이 있지만, 이제는이 네 곳에서 그저 스페인어와 영어라는 두 언어가 통용되고 있다. 감자와 블루스, 그리고 혼혈이 이 네 곳의 내용물을 완전히뒤섞어놓았다. 리듬과 감자의 로큰롤이 온 세상을 하나로 연결하는 이때, 종족을 말하면서 장소를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종족과는 전혀 다른 그 무엇을 말하고 있다는 뜻, 아니면 자기 집(home)이 어디인지, 자기 땅(native)이 어디까지인지 그렇게 어렵지 않게 말할 수 있었던, 세상이 더 단순 명확했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뜻이다. - P206

두 발이 길에서 걷고 있다. 나의 두 발이 가파른 길에서 북쪽으로 걷고 있다. 발 위에는 다리가 있겠고 한참 더 위에는 머리가 있겠고 머릿속에는 여러 역사가 있겠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길에서 보이는 풍경은 나머지 풍경을 가리는 덤불과 가파른 경사면뿐이다. 지금 세상에는 나 하나, 그리고 길 하나뿐이다. 돌아야 할 모퉁이와 넘어야 할 언덕이 자꾸 나타나는 좁은길, 멀리까지 내다볼 수 없는 길이 지금은 나의 길이고, 이런 감각들과 이런 생각들의 덩어리가 지금의 나다. 지금 내가 볼 수있는 것은 시야의 가장자리에서 움직이고 있는 손과 발, 그리고눈앞의 길 하나뿐이다. 나머지는 전부 신앙의 영역이다. 나라는한 사람이 이렇게 걷고 있을 뿐이다. 이 사람에게도 이름이 있고 과거가 있고 나름의 생활이 있습니다. 조상들도 있습니다. 그 조상들 중에서 절반은 아일랜드라는 나라에서 왔습니다. 그나라가 지금 이 사람이 걷고 있는 길의 동쪽과 북쪽에 한참 더 - P209

펼쳐져 있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신앙고백이다. 믿을 때도 있지만 잊을 때도 있다. 아일랜드라는 이름은 알지만 여기가거기가 맞는지 확실히 알지는 못한다. 나의 것이라고 칭해지는세계가 어딘가 있지만, 그 세계가 없어졌다 한들 여기서 이렇게혼자 걷고 있는 나는 그 세계가 없어진 사실을 알 수 없을 테니,
지금 나의 것이라고 칭해질 수 있는 것들은 지금 내 배낭 속, 아니면 내 호주머니 속에 있는 것들이 전부다. 나는 지금 여행 중이니, 짐은 버릴수록 좋다. 내 나라니 내 세계니 하는 정주와 기억의 말들마저 버린 여행자는 눈앞의 풍경을 그저 좌우로 양분하는 길을 갈 뿐이다. 길은 어떤 장소가 아니라 다른 장소로 떠나는 방법이자 장소와 장소를 이어주는 긴 끈이다. - P210

걸음은 몸 전체를 깨어나게 한다. 쉴 때 깨어 있는 곳은 피부뿐이니, 쉴 때 할 수 있는 일은 감각뿐이다. 몸을 움직일 때 비로소 몸속을 감각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라면 몸속 또한 여행을 통해 탐험할 수 있는 곳들 중 하나다. (보이는 피부 밑에보이지 않는 뼈와 근육과 장기가 있다는 말은 몸이 쉬고 있을 때는 그저신앙고백일 뿐이다.) 하지만 여행은 나라는 존재를 내 피부까지로좁히는 면도 있다. 여행하는 나에게는 내 피부 바깥의 모든 것이 내가 알 수 없는 낯선 대상, 낯선 타인들의 세계로 느껴진다는 뜻이다. 나라는 존재가 나의 세계, 나의 것이라고 칭해질 수있는 세계로 넓어져 있었다는 것을 나는 여러 번의 여행을 통해서 비로소 배울 수 있었다. 나라는 존재는 독립적이고 자족적이고 내면적인 존재라는 논의가 많지만, 나라는 존재가 살아갈 - P210

수 있으려면 나의 세계, 나라는 존재를 받아주고 길러주고 거들어주는 세계가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의 나는 나의 세계라는 동심원들 안에 머물러 있었다. 가장 안쪽 원이던 나의 집은 나라는 한 마리 짐승에게 마치 달팽이의 껍질처럼 아늑하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그다음 원이던 나의 친구들은 나의 여러 가능성을 끌어내주었다. 친구들과의 대화 중에 비로소 해보게 된 생각들, 해보게 된 말들이 있었다. 다음 원은 내가 사는 동네였다. 어렸을 때 살았었고 커서도 계속 꿈에 나오는 7번가로부터 불과 50킬로미터 거리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는마치 두 번째 피부인 듯 친숙하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정주의 세계, 전(前) 코페르니쿠스 세계라고 할 수 있는 이런 동심원의 가장 바깥쪽에서는 가계와 종족의 원이 더없이 희미한 파문을 그리고 있었다. - P211

나의 세계, 나의 것이라고 칭해지는 세계는 많은 경우내가 내 손으로 정성들여 세우는 세계이니만큼, 나의 세계가 끊임없이 불러내는 나라는 존재는 내가 하는 말, 내가 하는 일, 내가 보는 풍경, 내가 먹는 음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 나의 세계, 그렇게 세워놓았던 세계를 토대만 남기고 없애는 것이 여행이다. 여행 중에는 나의 세계를 세울 필요가 없다. 여행 중에 마주치는 낯선 세계가 나의 낯선 가능성들을 불러내기도 한다. 외부의 세계는 내 피부가 감각하는 범위를 넘을 수 없는 데 비해서 내면의 세계는 내가 기억하고 상상하는 모든 일을 포함하는 넓디넓은 곳이라는 말은 내가 앞부분에서 한 번 했던 말이 - P211

다. 하지만 외부의 세계가 감각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다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나의 몸은 그저 나의 토대일 뿐이니, 나의내면이라는 보이지 않는 가지가 나의 세계로 뻗을 때 나는 나의몸보다 훨씬 큰 존재가 된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그 대상을나의 내면이라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머물게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나라는 존재의 일부가 되게한다는 것이다.
피부가 국경이라면, 피부라는 국경은 열린 국경이다. 밖이 안에 의해 감각되기도 하고 안의 일부가 밖으로 빠져나가기도 하고 밖이 안을 자극하기도 하고 안이 밖의 일부를 흡수하기도 한다. 하지만 피부가 글자 그대로 폐쇄된 국경인 면도 있다. 몸의 3분의 2를 구성하는 물은 몸 밖으로 흘러 나가 존재의 수원에 가닿고자 하니, 피부가 없다면 몸은 별개의 국가로 존재하는 대신 세계 만국의 일부가 되어 사라져버릴 것이다. - P212

혼자 여행할 때 나라는 존재는 몸 하나만 남은 존재, 피부라는 국경안에 갇힌 존재다. 여행의 좋은 점은 휴대할 수 있는 것들, 나의세계를 떠날 때 챙길 수 있는 것들, 낯선 세계에서도 통용되는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데 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수도 있겠구나, 존재가 세계로 뻗는 데 필요한 언어들, 장소들,
관습들, 행보들, 친구들을 새로 사귀면서 새로운 세계를 세울•수도 있겠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여행의 좋은 점이다. 몸 하나로 여행 중이라는 것은 현재와 단절되었다는뜻이고, 현재와 단절되었다는 것은 과거를 마음껏 회상할 수 있 - P212

다는 뜻, 실현되지 않은 다른 결말들을 상상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에 실현되지 못한 시간들은 외부의 세계가 두 번 다시불러내지 않을 수도 있는 내면의 세계로 남는다. 현재의 세계는감옥 같은 세계든 궁전 같은 세계든 내가 벗어날 수 있는 세계일 것이다. 머릿속으로는 벗어날 수 없다 해도 몸으로는 벗어날수 있을 것이다. 이번의 여행은 내가 세운 현재를 벗어나 아직실현되지 못한 다른 시간들을 찾아가는 내 몸의 여행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떠난 여행이었다. - P2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젠가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에는 시가 존재할 수 없다고 했지만, 참상 속에 나비가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세상을 좋게 만들기 위해 애쓰는 우리는 세상의 좋은 것을 맛보면 안 되는것일까? 혁명가들과 활동가들이 줄곧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는질문이다. 케이스먼트는 대답한다. 좋은 것을 맛보자. 청옥색과 유황색 나비를 잡으러 다니자. 강에서 수영을 즐기자. 일기를 쓰자. 정의를 위한 투쟁이라는 끝없는 과업에는 휴식의 시간이 필요하다. 아우슈비츠 이후에는 시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 아도르노의 세대는 나치의 유대인 (그리고 집시, 동성애자, 나치 반대자)홀로코스트가 유일무이한 대량학살이라고 믿는 세대였다. 그세대에게 아일랜드의 크롬웰, 아르메니아의 터키인들, 케이스먼트의 두 보고서는 이미 망각 속에 묻힌 과거였고, 캄보디아, 과테말라, 르완다는 아직 예견되지 못한 미래였다. 아우슈비츠 안에 시인이 있었다. 수감 중에 단테를 인용한 프리모 레비 같은작가도 있었다. (레비는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수용소를 규탄하는 서정적인 책을 썼다.) 그런 참혹한 순간에도 경험에는 어떤 복잡한 면, 단순화될 수 없는 면이 있을 것이라고 케이스먼트의 나비는 말하는 듯하다. - P104

아일랜드 토착어의 복잡한 문법을 하나하나 익혀가는 사람들이 일구어낸 혁명. 케이스먼트의 푸투마요 나비처럼 경이롭다. 경이로운데, 좀 난데없다. 지나치다. 시문학 자체에 그런 중력과 무중력이 공존하는 것 같기도 하다. 국민적 차원의봉기가 있으려면 먼저 국민적 정체성이 있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고, 아일랜드 문화의 융성이 부활절 봉기로 이어지던 그때만큼 시문학의 정치적 중력을 확실히 느끼게 해주는 경우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아일랜드공화국 선언」의 서명자 일곱 명 중에서 세 명은 시인, 두 명은 교사, 한 명은 음악가, 한 명은 노조원 겸 역사가였다. 케이스먼트는 봉기의 실질적, 즉각적 결과만을 중요하게 고려했다. 그의 가장 큰 잘못은 그렇게 봉기의 상징적 가능성을 과소평가했다는 것, 시인처럼 계산하지 않고 정치가처럼 계산했다는 것이었다. 그가 봉기에서 수행한 역할은 부활절 주일의 전국 봉기를 취소시킨 것, 이로써 봉기가 부활절 월요일에 더블린에서만 시작되게 만든 것이었다. 그가 시인의 생각을 이해했더라면, 아니, 그가 외부 지원이 없으리라는 소식을 전하지 못했더라면, 아니, 그가 아예 상륙하지 않았더라면, 많은 것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 P108

그때 나를 괴롭히고 있던 유령은 예전에 그곳에 살았을 사람의 유형도 아니고, 7년 전 애인의 유령도 아니었다.(전에인과는 그 여행에서 돌아오고 1년 만에 두 사람의 삶이 다른 곳을 향하고있음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헤어졌다.) 그때 나를 괴롭히고 있던 유령은 7년 전에 나였던 여자의 유령이었다. 리로부터전 애인의 가족사를 들어서였는지, 전 애인과 함께 찍은 사진들을 보게 되어서였는지, 그때 나는 과거를 그리워하면서 심한 상실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서늘한 우울을 떨쳐버리려면 전 애인과 헤어지고 나서 생긴 좋은 일을 하나하나 되뇌어야 했다. 하지만 그 창문 앞에서 갑자기 나는 옛날의 나 자신이 여기 죽어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여자의 모든 꿈들. 그 여자의모든 실현되지 못한 계획들이 여기 죽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있었다. 모든 인체 세포가 7년에 한 번씩 새것으로 바뀐다면,
7년 전에 여기 있었던 그 여자, 지금의 나보다 어리고 소심한 그여자가 물리적인 의미에서 내게 남긴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 여자와 나를 이어주는 것은 한 장의 여행사진에 매달려야 할 정도로 희미한 기억뿐이었다. - P152

어느 한낮, 나는 로어링워터만()의 끝자락인 발리드홉에서 밴트리를 향해 출발했다. 그렇게 혼자 걷는다는 것이 애초의 계획이었지만, 실현될 수 없는 계획이라는 것도 곧 알게 되었다. 아일랜드 지도를 펼쳐놓고 여행의 경로를 정할 때만 해도, 서해의작은 도시들을 하나하나 답파한다는 계획이었다. 밴트리, 켄마어, 킬라니, 트랄리, 리스타월, 글린, 그렇게 남쪽에서 북쪽으로올라가는 지명들 자체가 근사한 느낌을 주었다. 기대 자체가 큰기쁨이고, 계획은 기대의 기쁨을 누리는 좋은 방법이다. 내가여행 계획을 세우는 일을 좋아했던 것은 둘째 오빠와 함께 가출 계획을 세웠던 여덟 살인가 아홉 살 때부터였다. 그때의 가출은 산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하리라고 짐작되는 물건의목록을 적는 데서 끝났다. 이 아일랜드 여행도 출발에서부터 어긋났다. - P155

하지만 여행한다는 것, 어딘가로 가고 있다는 것은그 자체로 깊은 충족감을 준다. 이야기 중에는 여행 이야기가많고, 삶은 여행이 될 때 비로소 이야기가 된다. 여행은 왜 우리에게 그토록 깊은 충족감을 주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우리가삶을 여행에 비유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딘가로 가고 있을때는 시간이 버려진다는 느낌보다는 시간이 채워진다는 느낌,
시간의 흐름이 공간의 리듬을 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만약에우리가 삶을 여행에 비유하지 않았다면, 예컨대 나무가 자라는과정에 비유했다면, 길에서 운명을 느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P157

하지만 우리는 삶을 여행에 비유하고 있고, 길에서 운명을 느끼고 있다. 길을 떠난다는 것은 한곳에 머물러 있었다면 만날 수없었을 온갖 위험과 온갖 기회를 만난다는 것, 낯익은 운명을뒤로 하고 낯선 운명들을 찾아 나선다는 것이다. 길은 그저 약속, 어겨진 것도 아니고 지켜진 것도 아닌 약속이다. 길이 나라라면 길기는 이 세상의 땅을 모두 합친 것보다 길면서 좁기는건물 하나만큼 좁은 이상한 나라다.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있고 이 나라를 다스리는 법이 있다. 견고했던 것들, 고정되어있던 것들이 이 나라에서는 유동하고 변화한다. - P15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과거의 무수한 오브제들은 우리가 역사의 일방통행로를 얼마나 달려왔는지를 말해주는 이정표이다. 과거의 재산이 된 것들을 이렇게 없애버리면서 사는 사람은 영원한 현재를사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런 사람에게 과거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기억과 이야기로 전해질 수 있는 과거뿐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문화는 머리에 넣을 수 있는 데까지였고, 물질문화는 언제나 자기를 둘러싼 풍경으로부터 새로 창조되는 중이었다. 이런 식의 영원한 재창조(re-creation)를 전제하는 구전 역사에서는 창세(creation)의 몽환시(幻)와 현재 사이의 관계가 유동적이고 탄력적이다. 현재는 과거에서 출발해서 한 발 한 발 올라오는 지형이라기보다는 창세에 둘러싸인 메사(mesa) 지형이다. 기억에 그 용도가 있듯 망각에도 그 용도가 있다. 둘 사이의 균형점이 어디냐는 여기가 어디냐에 따라 달라진다. - P25

이런 역사관은 자기가 자기를 둘러싼 풍경과 불가분의 관계라는 선언이자, 자기는 새로운 풍경에 적응해온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그 풍경 속에 있었다는 선언이자, 다른 곳으로떠나거나 새로운 집을 꾸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선언으로서 정치적 의미와 영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두 가지 역사에 다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태고에 인류의 이주가 있었다는 말에도 의미가 있고(물질적 차원의 역사), 거주민과 거주지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말에도 의미가 있다(문화적 차원의 역사). 거주민의 정체성과 거주지의 풍경 사이에 그토록 밀접한 관계가있다면, 그 사람들이 그 풍경 속에 거주하기 전에도 그런 사람들이었다고 말하기는 불가능하다. 그 풍경이 그 정체성의 기원이자 얼굴이라면 그 사람들이 그 풍경 속에서 창조되었다는 것이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들에 비하면 나머지 우리는 뿌리가 없는 사람들이다. - P27

나는 법적 유럽인이다. 타고난(natural) 유럽인은 아니지만 귀화된(naturalized) 유럽인인 것이다. 내가 아일랜드 여권을 얻은 것은 명탐정 엉클 데이브(외삼촌)가 우리 가족과 아일랜드를 잇는 출생증명서와 혼인증명서의 긴 사슬을 발굴해낸 덕분이다. 피라는 신화적 액체가 국적이라는 법률적 지위를 보장해준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아직 놀랍기만 하다. 내 계보는 아일랜드계 미국인 3세대쯤 되는 것 같지만, 가족 이야기를 거의 못듣고 자란 나에게는 아일랜드에 대한 기억이 아무것도 없다. 러시아 유대인 이민자를 부모로 두었던 아버지를 둔 나를 아일랜드계라고 하기도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내가가톨릭 신도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내가 지금까지 주로 거주해온 곳은 캘리포니아라는 잡종 지역, 세계 제일의 망각력을 자랑하는 지역이다. 아일랜드 여권이 생겼을 때 나는 유산을 받은느낌이라기보다 횡재가 굴러 들어온 느낌이었다. 열쇠에 비유하자면 내 집의 열쇠가 아니라 모르는 건물의 열쇠였고, 초청장에비유하자면 나에게 온 초청장이 아니라 내가 거의 잘 모르는 아일랜드 이민자 네 명(엄마의 조부모 네 명)에게 온 초청장이었다. 핏줄, 뿌리 등의 관습적 의미에 따르면, 아일랜드라는 내가 잘모르는 나라가 내 나라였다. - P29

내가 찾으려고 했던 것은 어떻게 보자면 여행 그자체였다. 사람이 한 번에 온전히 한 곳에 존재한다는 것은 편의적 픽션이고, 여행문학은 그 픽션을 수호하는 장르 중 하나다.
마찬가지로, 한 종족이 처음부터 한 장소에 있었다는 생각은그 종족의 신화 혹은 그 종족의 이상일 뿐이다. 오늘날 아메리카 원주민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대개 혼혈이고, 강제 이주라는 돌발적, 폭력적 상황을 겪으면서 조상의 과거를 일부 상실하기도 하고 미국의 지배적 문화를 다수 채택하기도 한 사람들이다.(미국의 문화 자체가 유럽에서 온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뒤섞인잡종 문화다.) 우리는 한 번에 두 곳에 있는 경우가 많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대개의 경우 최소한 두 곳에 있다. 그 두 곳이 완전히 상반되는 경우도 있다. 나는 항상 한 번에 여러 곳을 지나가고 있는 느낌이다. 유타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이다호의 동굴을생각하면서 영국의 감옥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서 뉴펀들랜드로 짐작되는 곳의 상공을 날면서 아일랜드행 비행기에 타고 있는 것은 예외적 상황이 아니었다. - P31

더블린은 아일랜드 안에 있으면서도 아일랜드와는차이가 있다. 아일랜드공화국의 350만 인구 중에 4분의 1 이상이 이 차이를 공유하고 있다. 도시와 시골이 근본적으로 차이나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아일랜드에서 더블린이라는 도시는 실로 다르다. 아일랜드에서 도시는 더블린 하나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더블린을 뺀 나머지 아일랜드에서는 아직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것 같다. 농경시대의 고요한 운명론이 생활의 속도를 지배하는 것 같고, 촉촉한 녹색의 풍경이거의 어디나 펼쳐져 있다. 관광객에게는 그림 같은 광경이고, 원주민에게는 고립적 환경이다. 대학교 때 읽은 아일랜드 역사책에 켈트족은 "읍내(town) 개념을 모르는 생활을 했다는 내용이나오는데, 이 나라의 다른 인구 밀집 지역(리머릭, 골웨이, 코크)은 지금까지도 읍내가 좀 커진 느낌이고, 전체 인구의 40퍼센트 이상이 아직 농촌 인구로 간주된다. 혼잡하고 번화한 명실상부한도시는 더블린 하나다. - P36

관광의 역할은 전쟁, 침략, 피난이라는 인간의 끝없는 행렬을 놀이로 재구성하는 것, 이주의 비극을 욕망과 지출의희극으로 재공연하는 것이다. 관광객에게서 순례자의 메아리가울리기도 한다. 물론 세속의 관광객이 찾아다니는 것은 더 다양하고 더 변덕스럽다. 예컨대 태양을 찾아다닐 수도 있고 특정한 지형이나 기후를 찾아다닐 수도 있고 축제를 찾아다닐 수도있고 과거의 흔적과 유물을 찾아다닐 수도 있다. 관광객은 묘한인종이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목적지를 찾아 헤매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여행의 진정한 목적과 묘미는 그저 집을 떠나 떠돌아다니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 P49

불공평과 불의, 흙과 똥에 대한 스위프트의 깊은 관심에는 성 패트릭 대성당 동네라는 글자 그대로의 기반(ground)이 있었다는 것이 문학사 연구자 캐럴 패브리컨트(CaroleFabricant)의 지적이다. 문학사는 스위프트를 영국 작가로 분류하면서 그의 염세, 그의 분노, 육체의 비교적 역겨운 측면들에대한 그의 깊은 관심을 개인적 기벽 또는 정신질환의 징후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가 정말 미친 사람이었다고 해도 그런 테마들을 선택했던 데는 근거(ground)가 있었다. 스위프트의 냉혹한 반(反)낭만주의에 아일랜드 빈민들과 어울려 지내는 생활이라는 뿌리가 있는 것은 그의 친구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의 꾸밈 많은 시에 영국 시골저택에서 하인을부리는 생활이라는 뿌리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스위프트는 아일랜드와 묘한 관계였다. 그는 "아일랜드에 살아야 하는사람은 불행하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진정 불행하다고 하기 - P55

는 어렵다."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자유인들 사이에서 노예로사느니 차라리 노예들 사이에서 자유인으로 살겠다."라고 말하면서 런던으로 돌아가기를 거절하기도 했다. 크롬웰 이후에 아일랜드로 건너온 조부모를 둔 그가 영국인인가 아니면 아일랜드인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결정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확연한 사실이라기보다는 욕망과 정치다. 영국인과 아일랜드인 둘 다였다는 것이 가장 정확한 대답일 듯하다. 나고 자란 곳은 아일랜드였고, 청년기를 보낸 곳은 영국의 문학적, 정치적 동인사회였고, 인생 후반기를 보낸 곳은 고향 아일랜드였다. 어느나라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고 안락과 양심 사이에서 분열되어 있던 그는 어느 나라에 있든 다른 나라 사람 같은 데가 있었던 것 같다. - P56

영문학 그 자체가 영국 시골저택 같다. 영국 문학은고색창연한 중앙 건물이고, 영어권의 다른 문학들은 헛간이나신축 부속 건물이다. 서사시, 서정시 소설은 중앙 건물의 중심공간을 차지하는 익숙한 가구들이고, 에세이는 사이드 테이블들과 캐비닛들이다. 내가 영문학 전공생일 때 읽은 교과서들을보면 아일랜드 문학도 섞여 있었지만, 가장 비중 있고 가장 중요하고 가장 익숙한 작품은 거의 항상 영국 문학이었다. 밀턴은어두운 왕좌였고, 셰익스피어는 파티장이었고, 시드니에서 셸리까지의 소네트는 파티를 장식하는 부케였고, 영국 소설은 커다랗고 희고 푹신해 보이는 깃털 침대였다. 반면에 스위프트의작품은 통로에 놓여 있는 딱딱한 의자이고(그곳에 앉으면 벽면의틈새를 통해서 바깥의 전망이 보인다.), 조이스의 작품은 하인의 방에 걸려 있는 거울이다.("금이 간 하인의 거울"이 "아일랜드 예술을 상징"할 수 있다는 스티븐 디덜러스의 말은 거울의 예속된 상태를 암시할 뿐아니라 거울에 비치는 균열된 모습, 의외의 모습을 암시한다.) 물론 조이스는 밖으로 나가서 새 집을 지은 작가였고, 그 집에 들어가보면 더블린을 기리는 기념비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 P57

그 작품이 속한 장르의 관습을 해체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야기의 관습, 언어의 관습, 전통의 관습을 모두해체한다. 그중에서 『걸리버 여행기』와 『율리시스』는 각각 아일랜드 문학이라는 영국 점령지의 처음과 끝이다. 스위프트는 더블린을 망명지로 삼은 아일랜드인이고 조이스는 더블린을 떠나 망명자가 된 아일랜드인이지만, 어쨌든 두 책 다 조롱과 망명과 방랑의 책이다. 최초이자 여러 의미에서 최고의 실험적 영국 소설인 『트리스트럼 샌디』는 아일랜드 태생의 성직자 로런스스턴(Laurence Sterne)이 1759년에서 1767년 사이에 펴낸 작품이고, 요크셔 지역의 습지와 동일시되다시피 하는 브론테 자매도 아일랜드인 아버지의 격정적인 아일랜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브론테 자매는 자기만족적인 빅토리아 소설 속에 음울하고 폭력적인 요소들을 들여왔고(깃털 침대 한복판의 뱀장어들), 이어서 와일드, 조이스, 싱, 쇼, 베케트도 놀라움을 안겨주는 여러요소들을 들여왔다. 좀 더 복잡하고 좀 더 신랄하고 좀 더 위태로운 상상력이야말로, 문학 형식들이 자의적이라는 사실과 함께 그런 문학 형식들을 전복할 기회를 좀 더 예민하게 인지하는감수성이야말로 아일랜드 문학이라는 영국 점령지의 특징인 것같다. - P58

하지만 스위프트는 18세기에 이미 이런 종류의 지도 개편 작업을 하고 있었다. 스위프트 자신이 속해 있는 우아한 사교계가뒤에서, 밑에서, 밖에서 어떻게 보이는가를 까발려주는 작업이었다. 유머 그 자체가 이중적 시야를 갖는 방법, 당위와 실상의간극을 감지하는 방법일 수 있다. 당위와 실상의 간극은 논리,
언어 등의 형식 요소에도 존재하고 사회생활, 정치생활의 위선에도 존재하는 만큼, 유머라는 동력은 단순한 농담에서도 작용할 수 있고 장문의 풍자에서도 작용할 수 있다. 스위프트의 시에서 유머가 고상함과 저속함을 끊임없이 오가는 데 있다면, 그의 「겸손한 제안(A Modest Proposal)」에서 유머는 식인을 아일랜드의 빈곤에 대한 합리적 해법으로 제시함으로써 기득권 세력의 착취 방식들이 본질적으로 식인과 다르지 않음을 까발리는데 있다. 유머를 모르는 사람들은 대개 기성 질서의 수혜자들이었고, 유머는 언제나 그 간극을 간파할 수 있는 사람들의 놀이이자 연장이자 무기였다. 더블린에서 바라본 세상은 비극적, 영웅적, 감상적일 때가 많았지만, 뼈 아프게 웃긴 경우도 있었다. - P59

이제 그들에게 가축의 세계는 인간의 속성을 묘사할 능력이 없는 세계였고, 엄한 통제라는표현은 점점 무의미해지는 표현, 머잖아 멸종할 표현이었다.(나는 최근에 말을 타러 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당근(carrot)과 보조 막대(stick)를 사용해본 다음에야 비로소 당근과 채찍(carrot and stick)이라는 표현의 의미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이런 장소들, 이런 존재들과 접촉하지 못한 채로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면 영어는 마침내신어(newspeak)‘로 전락하지 않겠는가는 우려도 생긴다. 노새(mule)의 발길질(kick)에 얻어맞아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벌 떼가 직선 코스로 날아가는 모습을 본 적 있는 사람은 또 얼마나 있을까? 언어가 공허해진다는 것은 상상력이 공허해졌다는 징조가 아닐까? 자연사박물관은 언어, 상징, 메타포, 상상력의 박물관, 한때 우리의 삶 속에서 서식했지만 이제 우리의 언어에서조차 사라지고 있는 피조물들의 박물관이다. - P75

메타포는 장소의 이동을 뜻하는 그리스어(petapopk)에서 온 단어인데, 아테네에서는 대중교통편을 메타포라고 부른다. 다른곳에서는 메타포가 그저 상상의 여행을 도와주는 비유법일 뿐이지만, 아테네에서는 메타포를 타고 일하러 갈 수도 있고 마지막 메타포를 타고 집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어쨌든 메타포는생각을 태우고 가는 차량, 아니, 생각을 통해서 별개의 두 존재를 연결하는 방식이다. 다만 메타포의 이런 연결은 직관적, 심미적 연결이며, 그런 의미에서 메타포는 생각의 본질, 곧 기계로는 수행될 수 없는 인간적 생각의 본질이다. 메타포는 이 존재와 저 존재의 다른 점과 같은 점을 가늠할 통로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아찔할 정도로 다양한 동시에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세계를 그려 보이기도 한다. 세상에서 메타포가 사라진다면모든 것이 무서울 정도로 형체가 없다고 느껴질 것이다. 그런 세상은 우리와 너무 똑같아서 지겨운 곳, 아니면 우리와 너무 달라서 이해할 수 없는 곳으로 느껴질 것이다. 메타포는 동물(우리와 본질적으로 비슷한 동시에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로부터 시작된다. - P76

‘인간의 입에서 말이 나오게 한 최초의 힘이 감정이었듯, 인간의 입에서 나온 최초의 말은 비유였다. 비유가 오히려 최초의 언어였고, 본질적 의미가 오히려 최후의 부산물이었다.‘ 최초의 은유가 동물의 은유였다면 그 이유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본질적으로 은유 관계라서였다. [.....]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생각할 때 상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상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말이 그저 대상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무관한 어떤 것을 의미한다는 것)은 언어의 발달과 불가분의 관계였다. 그런데 최초의 상징이 바로 동물의 상징이었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만들어낸 것이 바로 인간과 동물의 관계였다는 뜻이다. 언어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창조물(creation)이다. 세계라는 신의 창조물(Creation)의 희미한 그림자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라는 인간의 창조물은 인간이 창조하지 않은 세계로 거듭 되돌아가서 새로운 힘과 새로운 색을 거듭 되찾아와야 한다. 언어라는 창조물을 세계라는창조물에 연결하기 위해서는 자연계(풍경, 육체, 동물계)와 접촉할방법이 있어야 하는데, 그 방법이 바로 메타포다. - P77

마지막 진열장 앞에서 진화의 순간을 상상해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한때 나무 위의 유인원이었던 존재가 숲에서 나와서 이족 보행이라는 힘겨운 여정에 오른다. 시선은 처음 보는 먼 지평선에 닿고, 자유로워진 두 손은 붙잡을수 있는 누군가를,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입에서 나온 소리가 탁 트인 들판에 울려 퍼진다. 그런 상상이었다. 진열장 천장에 매달린 머리를 보면 하늘에 속한 존재, 날개를 얻어서 지상에서 더 멀리 떠나고 싶어 하는 존재인 것 같았지만(두 발 짐승은대개 날개가 있다.). 바닥에 닿은 두 발을 보면, 지상으로 돌아와야하는 존재, 나무처럼 꼿꼿하게 서서 단단히 뿌리를 내려야 하는 존재인 것 같았다. 씻지 못한 몸의 찝찝함과 시차로 인한 피곤함 사이에서 인간의 해골 앞에 서 있던 나에게 인간의 직립은두 가지 상반된 소망의 증거인 듯했다. 새도 되고 싶고 나무도되고 싶다, 떠돌고도 싶고 머물고도 싶다, 뿌리를 내리고도 싶고 날아가고도 싶다, 머물러 있을 때는 어디론가 날아가고만 싶고, 떠돌고 있을 때는 한곳에 뿌리를 내리고만 싶다. 그런 소망이었다. - P7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인의 말


우리는 너무 떨어져 살아서 만날 때마다 방을 잡았다.
그 방에서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었고 파티를 했다.
자정을 훌쩍 넘기면 한 사람씩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지만, 누군가는 체크아웃 시간까지 혼자 남아 있었다.
가장 먼 곳에 사는 사람이었다.
건물 바깥으로 나오면그 방 창문을 나는 한 번쯤 올려다보았다.

2023년 9월
김소연

흩어져 있던 사람들


선생님 댁 벽난로 앞에서 나는 나무 타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누군가 사과를 깎았고 누군가

허리를 구부려 콘솔 위의 도자기를 자세히 보았다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무 타는 소리가

빗소리에 묻혀갔다 누군가 창 앞으로 다가가

뒷짐을 지고 비를 올려다보았고 누군가

그 옆으로 다가갔다

뭘 보는 거야?

비 오는 걸 보는 거야?

선생님 댁 벽난로에서 장작 하나가 맥없이 내려앉았다 - P9

다 같이 빗소리 좀 듣자며 누군가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때 말벌 한 마리가 실내로 날아들었다

누군가 저것을 잡아야 한다고 소리쳤지만 모두가

일제히 어깨를 움츠렸다 처마 밑에 벌집이 있는데요?

119를 불러서 태워야 하지 않을까요?

누군가 선생님을 처마 아래로 불러 세웠고 누군가는

날아다니는 말벌만 쳐다보았다

겨울이 되면 말벌이 떠나고 빈집만 남는댔어

가만히 기다리면 적의 목이 떠내려온다구 - P10

선생님 댁 벽난로에서 나무 타는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내 옆에 와 앉으며

말벌의 독침은 연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 옆에 다가와서 누군가는 어린 시절 벌에 쏘인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은 2층으로 올라가서

벌집을 들고 내려왔다 이건 작년 겨울에

처마 밑에 있던 거야 조금만 기다리면

저 벌집도 내 차지야

벌집은 정말로 육각형이었다

까끌까끌했지만 보석 같았다 - P11

근데 말벌은 어디 있지?

뿔뿔이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벌집을 에워
싸며

처음으로 가까이 모여들었다

모두의 얼굴을 둘러보며 선생님은 빙그레 웃었다

말벌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어?

선생님은 2층에 벌집이 하나 더 있다며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 - P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