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혹한이 몰아닥친 겨울 아침에 보았다
무심코 추어탕집 앞을 지나가다가
출입문 앞에 내어놓은 고무함지 속에
꽁꽁 얼어붙어 있는 미꾸라지들
결빙이 되는 순간까지 온몸으로
시를 쓰고 죽은 모습을
꼬리지느러미를 흔들고 허리를 구부리며
길게 수염이 난 머리를 꼿꼿이 치켜든 채
기역자로 혹은 이용자로 문자를 이루어
결빙의 순간까지 온몸으로
진흙을 토해내며 투명한 얼음 속에
절명시를 쓰고 죽은 겨울의
시인들을

이사


낡은 재건축 아파트 철거작업이 끝나자
마지막으로 나무들이 철거되기 시작한다
아직 봄은 오지 않았는데
뿌리를 꼭 껴안고 있던 흙을 새끼줄로 동여매고
하늘을 우러러보던 나뭇가지를 땅바닥에 질질 끌고
이삿짐 트럭에 실려가는 힘없는 나무 뒤를
까치들이 따라간다
울지도 않고
아슬아슬 아직 까치집이 그대로 남아 있는 나무 뒤를
울지도 않고




어미개가 갓난 새끼의 몸을 핥는다
앞발을 들어 마르지 않도록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온몸 구석구석을 혀로 핥는다
병약하게 태어나 젖도 먹지 못하고
태어난 지 이틀 만에 죽은 줄도 모르고
잠도 자지 않고 핥고 또 핥는다
나는 아이들과 죽은 새끼를
손수건에 고이 싸서
손바닥만한 언 땅에 묻어주었으나
어미개는 길게 뽑은 혀를 거두지 않고
밤새도록 허공을 핥고 또 핥더니
이튿날 아침
혀가 다 닳아 보이지 않았다

산산조각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바닥에 대하여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은 말한다
결국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고
바닥은 보이지 않지만
그냥 바닥까지 걸어가는 것이라고
바닥까지 걸어가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바닥을 딛고
굳세게 일어선 사람들도 말한다
더이상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고
발이 닿지 않아도
그냥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말한다
더이상 바닥은 없다고
바닥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물 위를 걸으며 


물속에 빠져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물 위를 걸으면
물 속에 발이 빠지지 않는다

물 속에 빠져
한마리 물고기의 시체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물 위를 걸으면
물 속에 무릎이 빠지지 않는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여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주어진
물 위를 걸어가는
이 짧은 시간 동안

물 속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지 말고
출렁출렁 부지런히 물 위를 걸어가라
눈을 항상 먼 수평선에 두고
두려워하지 말고

무릎


너도 무릎을 꿇고 나서야 비로소
사랑이 되었느냐
너도 무릎을 꿇어야만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데에
평생이 걸렸느냐
차디찬 바닥에
스스로 무릎을 꿇었을 때가 일어설 때이다
무릎을 꿇고
먼 산을 바라볼 때가 길 떠날 때이다
낙타도 먼 길을 가기 위해서는
먼저 무릎을 꿇고 사막을 바라본다
낙타도 사막의 길을 가다가
밤이 깊으면
먼저 무릎을 꿇고
찬란한 별들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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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이 루이스를 하나의 분신으로, 그의친구들과 연인들의 낭만적 생활의 희생자로 보는 것은 당연했다. 루이스는 어린 아내로 인해 참혹하게 괴로워했는데, 셸리처럽 자유연애의 신봉자였던 그의 아내가 손턴 헌트의 아이들을임신했기 때문이다. 루이스 자신도 레이와 손턴 헌트를 통해 고드윈, 셸리, 푸리에의 영향을 받았다. 아내인 아그네스에게 보여준 루이스의 관용 (그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성을 물려줌으로써 그녀의 간통 행위를 용서했다) 때문에 루이스는 당시의 법에 따라 이혼을 할 수 없었다. 루이스는 여성 작가가 바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후원자이고 사랑스러운 동료였지만 (그는 엘리엇이 글을 쓰도록 독려했고, 출판과 관련한 세세한 일을 처리했고, 자주 아팠던 그녀를 간호했고, 작품의 배경 조사를 도왔다)엘리엇이 루이스와 불법으로 동거했기 때문에 사회적 징벌을 직접적으로 받은 것도 진실이다. - P797

루이스와 엘리엇은 바이런, 채프먼, 셸리, 헌트에게 매력을 느끼면서도 그들을 거부한다. 이런 루이스와 엘리엇은 칼라일이 ‘바이런을 덮고, 괴테를 펼쳐라‘ 하고 권고하며 해결하려 했던 관습적인 빅토리아 시대의 양면성을 예증하는 것처럼 보인다. 엘리엇은 가장 뛰어난 괴테의 전기 작가와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칼라일의 충고를 따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엇은 「의상철학』의 저자인 칼라일이 보기에 자신이 타락한 존재임을 알고 있었고, 바이런의 난교 윤리와 괴테의 영원히 여성적인 것의 원칙이 모두 자신에게 문학적인 맥락을 제공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이런 판단은 엘리엇이 자신을 한여자인 동시에 암암리에 여성 혐오자로도 인식했다는 점에서 매우 타당하다. 엘리엇이 낭만주의에 양가적 반응을 보인 것은 빅토리아적이지만, 그것은 여성에게 특히 위험하다고 생각한 전통을 내면화하지 않으려는 여성의 반응이라고도 할 수 있다. - P798

상호적이면서 상반되는 두 인물인 여성적인 래티머와 거세하는 버사는 삶에서 자유를 강탈해간 그들 자신의 한 측면으로서 서로를 경험한다. 더 나아가 래티머의 초월적 신통력과 버사의 정열적 욕망 사이의 투쟁은 일레인 쇼월터가 말한 매기의 ‘여성적인‘ 정열과 톰 털리버의 ‘남성적인‘ 억압 사이의 갈등을 상기시킨다. 이런 투쟁과 갈등은 또한 『미들마치』의 결혼관계에서도 (엘리엇이 이런 결혼 관계를 통해 자신의 무력감과 자신의 성을 약화시키고 폄하하는 태도를 내면화했다는 죄책감을 극화할 때조차) 나타난다.
따라서 엘리엇에게 의식의 타락 상태와 여성의 내밀한 상처는 자기혐오로 인한 무력감과 관련된 주제일 뿐 아니라 속박이기도 하다. 이런 자기혐오는 여성이 자신의 탁월성 때문에 (말하지는 않을지라도) 불가피하게 얻는 인식과 모순되는 가부장적인 가치를 수용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요컨대 엘리엇은 그녀의 에세이 「마거릿 풀러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에서 『19세기여성과 여성의 권리』는 남자들의 불의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 P803

있다는 점보다는) 어떻게 여성의 예속이 여성의 정신과 영혼을 모독하고 약화시키는지를 다룬다는 점에서 칭송받을 만하다고말한다. 마찬가지로 「여성 소설가들의 어리석은 소설들」에서엘리엇은 ‘여성이 지닌 가장 유해한 형태의 어리석음‘을 강력하게 공격한다. 엘리엇이 여자 주인공들에게 내리는 징벌, 빈번한병의 발작, 빈번하게 드러나는 비판적이면서도 자상한 어조, 그녀의 남자같은 필명,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성과 동일시되지 않으려는 엘리엇의 강한 바람을 암시한다.
젠더의 한계를 비상할 정도로 초월한 작가로서 엘리엇은 자신의 노력과 성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의 중요한 소설에서 여성적 체념의 신조와 복종의 서약에 자주 의지한다. 그런 신조와 서약은 공격적으로 자신의 경력을 쌓아나갔던 엘리엇 자신의 삶과는 정면으로 대치된다. - P804

따라서 엘리엇은 ‘나의 책들이 나를 괴롭힌다‘고 소리쳤던 것이다. [편지 5] 버지니아 울프도 엘리엇에 대해 ‘오랫동안 그녀는 차라리 자신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는 설득력 있는 주장을 내놓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엘리엇이 ‘영원히 여성적인‘ 고귀함을 찬미하면서도 자기 이야기를 쓰는 일은 거부함으로써 두통에 시달렸으며, 두통 때문에 괴테의 마카리에 같은 유형, 즉 작가에게는 결코 기분 좋지않은 유형의 인물이 되어버렸음을 알게 된다. 더 나아가 벗겨진 베일」에서 엘리엇은 타락의 신화와 여성적 악의 신화에 양가적 태도를 견지하는데, 이로써 그런 신화를 영속시켜 여자를 ‘타자‘로 규정하는 가부장적 문화를 엘리엇 자신이 내면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엘리엇은 전 생애 동안 이런 내면화의 - P804

징후들(사회적 승인을 받지 못한 일에 대한 계속된 죄책감, 남자 친구를 더 좋아한다는 공언, 여성의 반페미니즘, 여성의 예속보다 다른 형태의 불의 전체가 더 중요한 자기 예술의 주제라는 자기 변명 같은 주장, 격려와 인정을 받기 위해 루이스에게 극도로 의존했던 모습, 작가로서 세상을 바라볼 수 없었고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가장 호의적인 비평조차 읽을 수 없었던 무능력)을 보여준다. 엘리엇은 스펜서, 조잇, 프루드와 마치니 같은 저명한 사상가들의 지적 동아리에서 단지 명목상으로만 여자였을 뿐, 자신이 그토록 맹렬하게 비판했던 해나 모어 부인이 바로 자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 P805

엘리엇은 가정에서 전통적인 여성의 자리를 유리하게 이용해 공적인 태도 뒤에 가려져 있는 사적인 연약성을 폭로하며 남성적 신화를 반박하는데,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이라면 엘리엇의 이런 방식을 전형적으로 여성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동양적 전통과 베일로 가린 여성의 얼굴을 통해 가부장이 성공적으로 다루었던 악은 과연 어떤 종류의 악인가? 만약 민첩하고 확실한 본능과 정직하고 순수한 눈을 가진 가모장이 그 가부장을 흘깃 바라보고 이름을 불러 그들을 손쉽게 추방한다면어떻게 될까?  - P817

실비아 플라스, 루이스 보건, 메이 사턴처럼 엘리엇은 여성괴물들을 바라보고 그 괴물들에게서 자신을 발견한다.


나는 당신의 얼굴을 돌려본다! 그것은 나의 얼굴
얼어붙은 분노는 내가 탐색해야 하는 것-
오, 비밀스럽고, 자기 봉쇄적이며, 약탈당한 곳!
이것은 내가 메두사에게 감사해야 할 선물. - P821

엘리엇의 예술이 함축하는 것, 즉 여성의 힘이 자기혐오로 전복되어 여성의 창조성을 추악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이해한 메이 사턴은 이 시에 ‘메두사 뮤즈‘라는 제목을 붙였다. 엘리엇이자신의 비밀 중에서도 자기 봉쇄적이고 약탈당한 부분을 탐색했다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벗겨진 베일은 엘리엇이 우리를 설득시키고자 했던 만큼 그렇게까지 특이하지도 않다. 움직이는 판넬벽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궨덜린 할레스를 괴롭힌 죽은 얼굴과 같이, 실제로 「벗겨진 베일」은 엘리엇의 성숙기 주요소설에 영향을 드리웠다. 할 수만 있었다면 엘리엇도 매기 털리버와 로저먼드 빈시처럼 여성 고딕의 유산을 거부했겠지만. - P821

그리하여 오래된 태피스트리가 벽을 장식했다.
고귀한 귀부인들이 솜씨 좋은 베틀을 경멸하기 이전에.
아라크네는, 그때, 아테네 여신과 겨루었고,
그녀의 작품은 최상의 것으로 판정받았다.
용감한 행위는 책에서도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모든 명성은 싸움터에서 전해졌고,
유순한 동료는 그곳에 베틀을 가져와 일을 시작했다.
노동을 공유하는 동안에는 명성도 공유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영웅들과 그녀의 섞여 짜인 이름이 뒤섞였다.
이제 여자들은 더는 그런 칭송을 열망하지 않으며,
이제 우리는 농노제도를 정당하게 찬양한다.
그리하여 모든 예술은 남자들이 독점하고 있으며,
얼마 안 되는 우리의 재능은 발휘되지 못하거나 방해받는다.
-앤 핀치

어둡고 차가운 거미집,
유리즌 같은 영혼의 슬픔에서 뻗어나와
모든 고통받은 것을 뒤덮은
태아 상태의 여자.
누구도 그것을 깨뜨릴 수 없으리, 불의 날개로도.

끈은 너무 꼬이고, 그물망은 너무 엉켜 있어
마치 사람의 뇌와 같다.

모두 그것을 종교의 그물망이라 불렀다.
ㅡ윌리엄 블레이크

‘그리고 악에 대한 열망, 악에 대한 기원이 다시 와서ㅡ그 사이에서 내가 그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지 못하게 될 때까지 ㅡ그 밖의 모든 것을 희미하게 지워냈다. [...]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나는 단지 나의 소망이 나를 벗어나 있다는 것을 알 뿐이다.
-조지 엘리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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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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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에게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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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는 19세기 정신, ‘바위를 집어던지는 과격한 운동을 하는 티탄-소년‘(37장]의 정신을 상징한다. 영국은 웰링턴이라는 티탄소년과 유사한 ‘신격화된 영웅‘에 의해 구제되었다. 반면, 브론테는 최종적인 승리와 비전을 갖는 자는 로버트임을 암시한다. 로버트는 ‘초록빛 자연의 대지를 포장된 거리로 만드는방법을 묘사한다. ‘어두운 계곡과 쓸쓸한 비탈에도 집들이 있을것이다. 울퉁불퉁한 자갈길은 평탄하고 단단하고 넓고 까맣고거무스름한 길이 될 것이다.‘ [37장] 미래는 오직 남자들과 그들의 산업적 가부장제에 의해, 그리고 그들을 위해 쟁취되었다.
화자는 이 예측이 사실임을 확신하며 할로로 되돌아와 돌과 벽돌, 바벨탑처럼 거대한 공장을 묘사한다. ‘그의 설명은 그가 ‘그의‘ 가정부와 대화하는 것으로 끝나는데, 그 가정부의 어머니는
‘필드헤드 할로에서 요정을 보았으며, 그 요정이 이 지역에 출몰했던 마지막 요정이었다‘고 말한다.[37장] 이 소설의 마지막에서 동화가 거부되는 것처럼, 요정들의 부재는 어머니/자연의신화가 상업적인, 타락 이후의 영국에서 거부당했음을 암시한다. 브론테는 이 타락한 세상에서는 행복한 결말이 그렇게 쉽게현실화되지 않으리라는 점을 암시한다. 냉혹한 사실의 세계에서 그저 로맨스에 불과한 것은 역사로 대체되기 때문이다. - P696

나의 쇠사슬과 나는 친구가 되었고,
그토록 오랜 친교가
우리를 오늘의 우리 모습으로 만들어간다.
-바이런 경

고독하게 감금된 죄수, 대리석 벽돌에 갇힌 두꺼비,
모두들 때맞춰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간다.
-샬럿 브론테

우리는 방이 될 필요가 없다ㅡ 귀신이 출몰하는ㅡ
우리는 집이 될 필요가 없다ㅡ우리의 머리에는 통로가 있어 ㅡ물리적 장소를
능가하는ㅡ
-에밀리 디킨슨

나 자신의 우리에 걸쇠를 걸어 잠근다.
나의 말들이 자물쇠를 채운다
[...]
나는 ‘명령을 따르는‘ 종복.
나에게는 권한이 없지
-에리카 종

『빌레트」는 여러 가지 면에서 샬럿 브론테의 가장 명백하고 절망적인 페미니즘 소설이다.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교수』와『셜리』는 여성성의 불안에 대한 강한 집착을 냉정한 가짜 남성외관 뒤에 숨기면서 적어도 다른 의도가 있는 체했다. 『제인 에어는 암시적으로 반항적인 페미니즘 소설이라 할 수 있지만 일종의 동화 구조를 이용해 심지어 남성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에 관한 작가의 깊은 비관주의를 작가 자신에게조차 감추고 있었다. 그러나 브론테의 다른 어떤 여자 주인공보다 나이가 많고현명한 「빌레트』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루시 스노는 처음부터끝까지 아무것도 없는(바깥 사회에서도 가진 것이 없고, 부모도 친구도 없고, 육체적 정신적 매력도 없고, 돈도 자신감도 건강도 없는) 여자다. 루시 스노의 이야기는 아마도 지금까지 여성의 박탈을 다뤄왔던 이야기 중 가장 감동적이며 무시무시한 이야기일 것이다. - P698

아주 오래된 배나무 가지는 대부분 죽어 있다. 그러나 몇몇가지들은 여전히 충실하게 봄에는 눈같이 하얀 배꽃 향기를 새롭게 뿜어내고, 가을에는 그들의 꿀처럼 달콤한 열매를 매달고 있었다. 반쯤 드러난 뿌리 사이로 이끼 낀 흙덩이를 긁어내면, 부드럽고 단단하며 검고 두꺼운 나무 널판들이 언뜻언뜻 보였다. 이 정원에는 확증할 수 없고 인정받지 못했지만 여전히 널리 퍼져 있는 전설이 있다. 이곳은 땅속 깊은 곳에 묻힌 지하 납골당의 입구로, 그 위에는 풀이 자라고 꽃이 피고 있는데, 음울한 중세 수도 생활의 비밀 회합에서 자신의 맹세를 어긴 소녀가여기에 산 채로 매장되어 지금도 그 뼈가 묻혀 있다는 이야기다.[12장] - P716

루시는 캐서린 몰런드가 발견하고 싶어했던 것, ‘상처 입고 분명한 어떤 수녀의 끔찍한 기념물‘을 발견하고[『노생거 사원』1부 2장] 그 수녀의 이야기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한다. 하지만 수도원의 비너스』나 『망토를 걸친 수녀』에서 루이스의 수도사에 이르기까지 남성 문학에서는 수도원이 에로틱한 모험의 장소였던 것과는 달리, 여기에서 종교적 유폐의 상징은 해방된 성의 표출을 위한 사생활을 제공하지 않는다. 반대로 루시와 수녀는 둘 다 수도사의 감독에 동조함으로써 순결이라는 감옥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매장된 그 소녀처럼 루시는 금지된 오솔길에 자주 간다. 루시는 자신이 애초에 묵인했던 억압에 반역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성‘과 ‘상상력‘은 루시가 의식적인 자기 억압과 무의식적인(그녀가 두려워하지만 또한 회 - P716

망하는) 성적 욕망 사이의 갈등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용어들이다. 그러나 의미심장하게도 루시는 자신을 이 두 힘에서분리된 존재로 인식하고, 이성과 상상력 둘 다에 희생되었다고느낀다.
(루시가 영국의 오래된 가시나무 곁에서 빛나던 것으로 기억하는) 초승달과 별들 아래, ‘금지된 통로‘의 감추어진 좌석에 앉아 루시는 자신이 그렇게 오랫동안 억압해왔던 그 위험한 감정을 경험한다. - P717

나에게도 감정이 있었다. 비록 수동적으로 살았고, 말을 거의하지 않았으며, 냉정하게 보일지라도, 과거를 생각했을 때 나는느낄 수 있었다. 현재를 생각하면 금욕적인 것이 더 낫다. 미래에 관해서 말하자면, 나의 미래라고 하는 그런 것은 죽은 것이다. 마비와 죽은 듯한 최면 상태에서 나는 내 본성의 속살을 애써 눌렀다.[12장] - P717

실로 루시의 삶에서 공포란 반복에 대한 공포이고, 특히 프랜시스 앙리가 그렇게 두려워했던, 주기적으로 피를흘리는 상처가 불러오는 공포였다. 루시의 존재는 살아 있는 죽음이었다. 루시는 의식하지 못한 채 죽어가는 이방인이고, 의심하지 않는 손님을 살해하는 가정부이기 때문이다. 폴리이자 루시이고 지네브라이자 마담 베크인 루시는 이런 내적 갈등으로마비된 수녀다. 루시가 자신을 마담 베크의 거미집에 걸린 파리, 달팽이, 혹은 위태로운 거미줄에서 튕겨 나오는 거미로 상상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아라는 집 내부의 갈등 속에서 루시안의 서로 대립하는 존재들은 루시의 내면이 파편화되었음을•보여준다. 결국 이 파편화는 루시를 완전한 신경쇠약으로 내몰고 말 것이다. - P719

「빌레트』의 마지막 장은 ‘공포는 가끔 헛된상상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우리에게 인지시키며 시작한다. [42장] 소설의 끝에서 루시는 확실하게 결론 내리기를 거부한다.
‘찬란한 상상력이 희망하게 놔두라.‘ [42장] 브론테는 삶을 떠받치는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것 이외의 어떤 명확한 메시지도 삼가는, 애매하게 열린결말을 남겼다.
루시가 자기 삶의 저자가 되는 이야기를 말하는 매우 변덕스러운 방식은 어떻게 브론테가 문학적 대상이 아니라 의식의 문학을 만들어냈는지 예증하고 있다. 『빌레트』를 쓰기 위해 브론테 자신이 루시 스노가 되었던 것처럼, 루시가 모든 브론테의인물들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는 소설의 마력과 상상력의 마술•로 소생한 죽은 자들이 내뱉는 진실을 말하는 음산한 목소리에굴복한다. 브론테는 가부장적 예술이 여성들에게 부여한 감금 - P762

의 이미지뿐만 아니라 그런 예술의 암묵적으로 강압적인 특질도 거부한다. 「빌레트』는 세심하게 만들어진 작품은 아니다. 과도한 문체도 그렇고 작가와 여자 주인공의 모호한 관계는 브론테가 쓰고 읽는 개인적인 과정에 몰두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도취적 철학적 개인 중심적 장엄함 대신 브론테는 우리에게키츠가 ‘소극적 수용 능력‘이라고 불렀던 것에 좀 더 가까운 경험을 제공한다. 브론테는 자신의 소설을 플롯의 시간적인 연속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는 풍자적이며 고백적인 발화로 만듦으로써, 『빌레트』에서 그녀가 고찰하는 예술가들, 루벤스, 실러,
베르나르댕 드 생 피에르, 워즈워스, 아널드와 그 밖의 사람들을 비판한다. - P763

브론테 자신의 저항 때문에 그녀가 시인들의 이른 죽음에 대한 아널드의 시적 불평의 주제가 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아널드는 「하워스의 교회 묘지에서 브론테가 어떻게 ‘주인의어투로 그녀 자신의 정열적인 삶의 위장된 역사를 말했는지 묘사했다. 이때 아널드는 브론테의 예술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세계임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아널드는 브론테의 예술에서 성적 특징을 제거하면서 (여기에서는 그녀의 ‘주인의 어투‘를 묘사하고, 나중에는 그녀를 언급할 때 남성 고유명사를 사용함으로써) 32 그 자신의 삶, 예술, 비평과 전적으로 어긋나는 독서과정과 인식에 그 자신이 굴복할 수 없거나 굴복하지 않으려는독자들의 긴 대열의 선두에 서 있음을 입증한다.
가부장적 예술을 전복하기 위해 브론테가 사용한 것은 수용의 행위다. 최근 몇몇 페미니스트들은 브론테가 여자 주인공들 - P763

을 수동적인 인물로 그렸다는 이유로 불편해한다. 우리가 살펴보았듯 브론테의 작품들은 남성성을 권력과 동일시하고 여성성을 굴종과 동일시하는 폐해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러나 브론테는 순종의 습관이 여성에게 중요한 통찰(여성들이 저항할때 그들의 주인처럼 되지 않도록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공감의 상상력)로 이끌었음을 알고 있었다. 여자들은 자신을 대상으로서 경험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살아 있는 죽음에서 깨어날 필요성과 깨어날 수 있는 능력을 둘 다 이해한다.  - P764

여성들은 그 능력과 필요성이 마술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마력이며, 박해하는고백적인 참회가 아니라 부활하는 고백적인 예술임을 알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탈출했던 장소에 또 다른 타자를 옭아매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는 예술이다. 시학의 정치를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브론테는 어떤 의미에서 (이성과 상상사이의 간극을 공격하고, 객관적인 예술 작품의 주관성을 주장하며, 그녀 소설의 주제로 대상화된 희생자들을 선택하고, 그녀와 함께 타자화된 사람의 내면성을 경험하도록 독자를 초대하는) 현상학자다. 이 모든 이유 때문에 브론테는 끊임없이 고통받았고, 그녀의 좀처럼 잊을 수 없는 예술의 정직성 덕분에 힘을 얻었던 모든 여성들의 강력한 선구자로 남아 있다. - P764

에덴의 여자들은 어두운 무덤 속에 자신들을 감추기 위해 손수 짠부드러운 비단 베일 속에서 겨울잠을 잔다.
그러나 남자들은 여자의 죽음을 통해 부활해 영원한 삶을 산다.
-윌리엄 블레이크

... 분별력과 훌륭한 감식력은 순수과학에서 뛰어난 성취를 이룩한 여자로 하여금 일반적인 관찰자들이 자신을 알아볼 수 없도록 항상 베일을 쓰게 만들었다. 그런 성취는 여자의 성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두걸드 스튜어트

천천히, 머뭇거리며, 기어서,
여자는 여기까지 왔다!-
그녀는 베일을 쓴 채 졸면서 걷는다,
자신의 힘을 알지 못하므로.
-샬럿 퍼킨스 길먼

내가 쓰려고 하지 않았던
가면이, 마치 서리로 만든 가면인 양
내 얼굴을 덮는다.
내다보는 눈들,
노래의 핵심에는 침묵을 갈망하고.
-데니즈 레버토프

샬럿 브론테의 소설은 여성문학에 나타난 폐쇄라는 문학적형상과 분신 사용의 관련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우리가 그녀의작품에서 보았듯이, 이 둘은 여성의 희생을 나타내는 상보적인기호다. 불편한 공간과 불편한 자아에 갇혀 있는 브론테의 여자주인공들은 그들 자신이 두려워하는 충동을 대체하거나 가장하는 대행자를 피할 수 없다. 따라서 그녀들은 존 어윈이 남성 소설에서 최근에 탐색했던 ‘운명의 손아귀에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죽음에 직면해서, 모든 힘 있는 아버지의 손 안에서 무력감을‘ 경험할 때조차‘ 프로이트가 ‘억압된 것의 귀환‘이라고 말했던 것을 반복해서 견뎌야 한다. 여자들의 이런 무력감은 여성정체성의 수수께끼에 대한 이상적이지는 않지만 적절한 해결책으로 처방되는데, 이 사실이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예를들면 루시 스노는 스스로 수동적 상태를 선택했다고 생각하려 애쓴다.
- P768

여성들이 정치, 사회, 교육 분야에서 그들의 영향력과 활동을 확대해가던 19세기 중반까지, 역설적으로 여성 작가들은 반항하기보다는 한 발 물러나 내면화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따라서 19세기 중반의 여성 작가들은 천사 같은 순종과 괴물 같은 자기주장이라는 쌍둥이 같은 유혹에 붙잡혀 있는 가운데 남성 지배 문화에서 문제적인 여성의 역할을 특히 강조했다. 그들은 모두 오스틴, 울스턴크래프트, 메리 셸리, 브론테의 열렬한 독자였기 때문에 여성의 하위문화에 의식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가장 두드러진 이름을 들자면 영국의 조지 엘리엇과 크리스티나 로세티, 이탈리아의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미국의 에밀리 디킨슨과 해리엇 비처 스토가 있는데, 이들 사이에 감지되는 끈끈한 유대를 설명해주는 것은 바로 여성의 하위문화다. - P769

그러나 최근 페미니즘 비평가들은 조지 엘리엇의 소설에 감춰진 비이성적 요소를 간파해냈다. 스토 부인에게 보내는 답신에서 엘리엇은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불행한 영혼이 있다면 그때는 모든 일을 멈추고 그들의 편협한 정신을 감내해야 한다고 말한다.‘ 엘리엇의 이 생각은 인류를 돌볼 책임감을 떠맡은 여성의 전형적 태도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또 이 생각이 한 여성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 편지에서 엘리엇은 ‘여성적고딕‘에 대한 기호를 자매처럼 공유하는 다른 두 여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담겨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 P770

조지 엘리엇은 그녀의 낭만주의적 선구자들에게 (남성이든 여성이든) 매력을 느끼면서도 반발한 여성 예술가로, 자신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널리 읽히진 않지만 「벗겨진 베일」이라는 이야기에서 우리는 낭만화된 사탄의 모습에 (확장하면 이브의 사탄같은 모습에 매력을 느끼는 엘리엇을 만날 수 있다. 이 이야기는 권위에 대한 엘리엇의 불편한 심기를 비롯해 엘리엇 자신과 메리 셀리 및 샬럿 브론테의 관계, 엘리엇이 베일이라는 낭만주의적 이미지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 등을 뛰어나게 해명한다.  - P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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