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4월 14일 오후 4시 사르트르의 기일을 몇 시간 앞둔 때였다. 향년 78세였다.







1956년에 (레 망다랭)이 (제2의 성)에 이어 가톨릭 금서 목록에 올랐다.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는 그 무렵부터 가을은 꼭 이탈리아에서보냈고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았다. 영원한 도시 로마 중심가에 호텔 방 두 개를 나란히 잡고 조화로운 고독과 동행하면서 일과 위스키와 아이스크림의 나날을 보냈다. 문학적 리듬을 되찾은 보부아르는백지의 현기증‘ 에서 마지막 퇴고의 자질구레한 손질까지의 기간을즐겼다. 보부아르는 원고를 사르트르, 보스트, 란즈만에게 보여주고
"자르고, 늘리고, 수정하고, 폐기하고, 다시 쓰고, 품고, 결정하는 과정을 거듭했다.
그해에 보부아르는 십 년 전인 1946년부터 보류했던 프로젝트, 즉회고록 쓰기를 재개했다. 처음에 그 생각을 했던 때 이후로 너무 많은 것이 변했다. 제2의 성을 썼고, 올그런을 만났고, 괴물을 붙잡고씨름해서 《레 망다랭을 만들었고, 공쿠르상을 탔다. 미국, 중국, 그외 세계 각국을 다녔다. 그 후 특권에도 썼듯이 문화는 특권이고지식인들이 문화를 누릴 여력이 없는 사람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확신하게 됐다.
- P377

 1958년 1월에 보부아르는 쉰 살이 되었고 그 사실에 치를 떨었다.
인생이 끝나 간다고 생각할 때마다 느끼는 불편함 그 이상으로다. 알제리 전쟁은 더욱더 상황이 안 좋았고 그 전쟁 생각을 떨치기못한 나머지 자기가 프랑스인이라는 것조차 싫어졌다. 잠이 오기 ..
았고 문학조차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보부아르는 레탕 모데른이 알제리인과 군인의 증언을 싣는 작업을 했다. 
- P380

1960년 10월 25일에 회고록 두 번째 권 《생의 한창때가 나왔다.
이 책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여러 평론가가 보부아르는 자전적 글쓰기에서 최고의 진가를 발휘한다고 칭찬했다. 카를로 레비는 이 책을
"세기의 러브 스토리"라고 했다. 보부아르가 사르트르를 인간적으로보이게 했다는 평도 많았다.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던 사르트르의 본모습, 전설의 사르트르와는 자못 다른 한 인간을 보여주었다." 보부아르는 그게 바로 자신의 의도였다고 답했다. 사르트르는 처음에는보부아르가 자기를 등장시키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어떤 식으로 말하는지를 보고 나서는 자유롭게 쓰도록 내버려 두었다. - P402

이 대목의 영어판 번역이 곧잘 보부아르의 내면화된 성차별주의처럼 해석되곤 했기 때문에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철학자, 직함에서 배제당하는 유일한 이유가 아님을 특히 강조해야 한다. 보부아르의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읽으면 체계를 거부하는 데 깔려 있는 철학적 이유를 놓치기 쉽다. "철학자, 직함을 거부하고도 철학자로 알려진 사람은 많다. 알베르 카뮈도 철학이 이성을 과신한다고 비판했고 자크데리다도 그 직함을 거부했다. 따라서 보부아르를 여성이 될 수 있는존재, 될 수 없는 존재로만 판단해선 안 된다.  - P405

이십 년 사이에 페미니즘 제2물결이 탄력을 받았다. 1960년대까지 가족 계획은 금기시되었고 피임약 판매는 법적으로 제한되었다.
1960년에 경구 피임약이 미국에서 판매되기 시작했고 영국은 1961년부터 기혼 여성에 한해서 판매를 허가했다. 프랑스에서 피임약 판매는 1967년에야 비로소 가능해졌다(영국 미혼 여성이 피임약을 살 수 있제 된 것도 이 해부터다). 보부아르는 이 변화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제2의 성은 전 세계 여성들과 페미니스트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었다. 1963년에 베티 프리던 (BettyFriedan)은 《여성성의 신화를 발표했다. 미국에서 페미니즘 운동을일으켰다고 평가받는 이 책은 《제2의 성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 P411

수술 후 몇 주가 지나자 프랑수아즈는 통증이 심해져서 기력을 잃었다. 딸들은 의사에게 모르핀을 더 많이 놓아 달라고 부탁했다. 죽음을 앞당긴대도 그러면 고통도 빨리 사라질 터였다. 그러자 어머니는 대부분의 시간을 잠을 자며 보냈다. 어머니는 사제도, 보부아르가
"독실한 시절의 친구들"이라고 했던 이들도 불러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 11월에 보부아르는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 이상으로 어머니와가까워졌다. 수술 다음 날 밤 보부아르는 북받치는 감정을 어찌할 바올랐다. 어머니의 죽음이 슬펐지만 어머니가 살아온 인생도 슬렀다.
어머니는 숨 막히는 관습의 구속에 갇혀 너무 많은 것을 희생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보부아르는 어머니의 마지막 여섯 주와 자신의 사랑, 양면적 감정, 사별의 아픈 경험을 담은 책 《아주 편안한죽음을 정신없이 써냈다. 그렇게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은기분, 펜으로 인생을 생각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책은 엘렌에게 헌정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 P413

보부아르는 사생활에 갇힌" 여성들이 언제든 자신을 사랑하기를관들 수 있는 누군가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해 불안정하게 살아간다.
는 것을 우려했다. 그 누군가는 경제적 수단이나 그들이 꾸려 온 삶의 의미를 남겨놓지 않은 채 여성들을 떠날 수도 있다. 보부아르는이런 유의 삶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건설하는 " "진정한 사회 생활참여 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여성들은 주부 되기라는 퇴행의 "회생양" 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다른 여성들과 비교당하는 일에 힘들어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일하는 여성들도 집에 있을 때는 주부 역할을 기대받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결과는 자기 선택에 대한 죄책감과 허탈감이다. "여성이 매일 직장에서 여덟 시간을 일하고 와서 집안일을 대여섯 시간 더 한다면 주말에는 완전히 진이 빠질 것이다.  - P428

보부아르는 자기가 늙어 가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사실이 기쁘지않다고 인정할 만큼 솔직했다. 하지만 노년을 감출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노년을 철학적 분석과 정치적 행동이 부족했던 주제로 보고 정면으로 돌파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노년에 대한 책을 구상 중이었다. 나중에 그 책을 《제2의 성의 대응물이라고 부르게 될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조사를 하고 노년에 대한 책들을 읽기 시작하면서 자료가 될 만한 책이 너무 없어서 놀랐다. 국립도서관 열람실에서 랄프 왈도 에머슨과 에밀 파게의 에세이들을 찾았고, 서서히하나의 전기를 엮어 나갔다. 프랑스 노인학회 정기 간행물도 읽었고,
영어로 된 두툼한 저작들도 시카고에서 주문했다. 전 동료 클로드레비스트로스가 콜레주 드 프랑스의 비교인류학 자료 열람을 허락해주었다. 그 덕분에 여러 사회에서 연장자가 차지하는 위치를 다룬 논문들을 참고할 수 있었다
- P436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를 출시로 삼았다. 비지니아 울프는 58세에 이렇게 일기를 썼다.
 
나는 노년의 무정함을 혐오한다. 노년이 다가옴을 느낀다. 나는 삐걱거린다. 씁쓸해진다.

발은 이슬을 밟을 만큼 빠르지 않고,
심장은 감정을 새로이 느끼기에 모자라다시 일어날 만큼 날쌔지 못한 희망을 으깨버린다.

이제 막 매튜 아널드를 펼쳐서 이 시를 필사했다.

노년에서 보부아르는 ‘노년‘이 유일한 보편적 경험을 가리키지않기 때문에 모든 노화가 가혹하거나 삐걱대거나 슬프게 다가오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여성 되기처럼 노인 되기도 개인의 신체적, 심리적, 경제적,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지리학적, 가족적 맥락에 따라서 매우 다양한 양상을 띤다. 나이 듦의 상황‘이 그 경험에 극도로 큰 영향을 준다는 얘기다.
- P444

다른 페미니스트들은 제2의 성》이 자신의 특권을 인식하지 못한 엘리트 여성이 중산층을 자료 삼아 쓴 책이라고 비판했다. 이 인터뷰에서 보부아르는 초기작에서 계급 문제를 간과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여성은 다른 계급이 아니라 다른 ‘카스트‘ 이기 때문에 계급 투쟁이 여성을 해방해주지는 않는다. 계급은 올라갈 수도 있고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카스트는 바뀌지 않는다. 여성은 남성이 될 수 없다.
여성은 경제적·정치적 · 사회적으로 열등한 카스트 취급을 당한다.)
- P457

1970년대에 보부아르는 점점 다른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고자 자기 목소리를 내게 되었다. 〈레 탕 모데른 특별호 ‘여성의 주장‘의 도입문은 성차별 철폐 투쟁이 "우리 안의 가장 내밀하고 가장 확실한것 같았던 부분을 공격한다. 그 투쟁은 우리의 욕망, 우리의 쾌락이취하는 바로 그 형식을 건드린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페미니스트를 불편해한다. 그러나 페미니스트의 말이 실제로 힘이 없다면 조롱당하거나 성질 나쁘다는 말을 듣거나 가스라이팅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보부아르는 이 글에서 자신이 과거에 여성으로서 부딪히는 장벽을 넘어서려면 그 장벽을 아예 무시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어느 정도 "토큰 여성 역할을 했노라고 인정한다. 그리고 젊은 페미니스트들 덕분에 자신의 그런 입장이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데 일조할수도 있음을 알게 됐다고, 그래서 이제 그런 입장과 자기 자신을 성토한다고 말한다.
보부아르가 자기 문제를 인정한 것은 존경스럽다. 이전의 자기가실패한 부분을 볼 수 있는 여성이 됐으니까. 하지만 실패를 모두 보았을까? 성차별 철폐 투쟁이 "우리 안의 가장 내밀하고 가장 확실한것 같았던 부분을 공격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어떤 제약과 욕망이 철학에 대한 사랑, 사르트르 외의 다른 애인들 이야기를 털어놓지 못하게 가로막았을까?  - P464

보부아르는 늘 독자적인 이력을 원했다고 대답했다. "나에게는 환상이 아니라 꿈이 있있어요. 아주 담대한 꿈이긴 했지만요. 사르트르를 만나기 전부터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알고 있었죠! 다행히도 내 힘으로 내 삶을 성취했어요.나에게 성취는 곧 일을 의미했어요.보부아르는 이 인터뷰에서 사르트르가 돌로레스 바네티와 사릴 때 자신과 그의 관계에 회의가 들었다는 말도 했고, 자신과 사르트르의 관계에서 제3자들이 너무 고통을 받아서 유감스럽다는 고백도 했다. 또이미 공개 인터뷰에서 사르트르도 여성들에게 잘못했다고 시원하게인정했다. 그는 보부아르를 예외적 경우, 일종의 토큰으로 - 보부아르 자신도 젊었을 때 그랬듯이 만들었다. 하지만 사르트르처럼 그녀에게 힘이 되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보부아르가 자신의 잠재력을 보려고 몸부림치던 시절에 사르트르는 그 잠재력을 믿어준 사람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면 - 두 사람의 행동의 총합이 없었더라면 결코 그들 자신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보부아르의 생활은 여전히 글쓰기에 주로 할애되었다.  - P491

내가 철학자가 아니라는 말은 체계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철학을 열심히 공부해 왔고, 철학으로 학위를 받았고,
철학을 가르쳤고, 철학에 물들어 있다는 의미에서는 나도 여전히 철학자입니다. 내 책에 철학이 들어가 있다면 그 이유는 그게 내가 세상을보는 방식이고 내 책에서 그 방식을 제거하려야 제거할 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보부아르보다 몇 세기 앞서 파스칼과 키르케고르도 데카트르와 해겔 같은 ‘체계적 철학자이기를 거부했다.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의미의 일부는 미래를 모르는 채, 결코 미리 알 수 없는 의미를 갈망하며사는 데 있다. 그런데 체계적 철학은 그 점을 망각한다. 보부아르의견해도 비슷하다. 삶은 미리 이해될 수 없으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과타인들이 보기에 어떻게 될지 불안해하며 살아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보부아르의 동시대인들은 파스칼과 키르케고르마저 ‘대체 철학으로 보았다. 그 철학자들은 여성은 아니었지만 신앙인이었기 때문이다. 보부아르 초기의 철학적 통찰, 그리고 이기심과 헌신 사이의 딜레마를 피해 가야 한다는 생각은 비슷한 이유로 오늘날 "철학자 칭호를 얻지 못하는 사상가들과 보부아르의 대화에도 나타나 있다.  - P494

사르트르는 인간적으로든 철학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보부아르의 비판을 피해 가지 못했다. 보부아르는 그에게 맹점이 있다고 생각했고 온 세상이 그 사실을 알 수 있도록 글로 썼다. 그렇지만 사르트르를 계속 사랑하는 것이 그녀의 선택이었다.
보부아르는 몽파르나스 묘지의 사르트르 바로 옆자리에 붉은색 터번, 붉은색 실내 가운, 올그런의 반지와 함께 묻혔다. 몽파르나스의사회당부터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그리스, 에스파냐의 대학들까지여러 단체가 보부아르를 추모했다. 장례식에 모인 군중은 페미니스트 철학자 엘리자베트 바댕테르(Elisabeth Badinter)의 선창에 따라 외쳤다. "여성들이여, 모든 것은 이 사람 덕분이다!"
- P502

보부아르는 안으로부터의 관점에서 자신을 우상"으로 바라본 적이 없다. 알리스 슈바르처와 한 인터뷰에서도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나 시몬 드 보부아르이지, 나 자신에겐 아니에요."라고 했다.2) 여성들이 본받을 만한 긍정적 모델이 부족하다는 점은 알고 있었다. 왜페미니즘의 이상을 실현하려다가 실패하는 여성들 말고 좀 더 긍정적인 여성 캐릭터를 소설에 등장시키지 않느냐는 질문도 받았다.13) 독자들이 그런 캐릭터에서 보부아르를 찾으려 하면 의문을 품게 된다.
보부아르 자신도 실패했기 때문에 이 캐릭터들도 페미니즘의 이상대로 살려다가 실패하고 마는 걸까?
- P503

보부아르가 안으로부터 바라본 자기는 절대 멈추지 않는 ‘되어 가는 자기‘였다. "모든 순간이 조화를 이루는 인생의 어느 한순간 따위는 없기에 인생의 어느 한 시점이 ‘시몬 드 보부아르‘를 보여준다고는 결코 믿지 않았다. 모든 행위는 실패할 가능성이 있고 어떤 실 - P507

패는 행위가 완료된 후에 비로소 실패임이 밝혀진다. 시간은 흐른다.
꿈은 바뀐다. 자기는 늘 다다르지 못한 지점에 있다. 보부아르 되기의 개별적 순간은 극적일 만큼 다양하다. 하지만 시몬 드 보부아르의삶에서 배울 점은 바로 이것이다. 아무도 저 홀로 자기가 되지는 않는다.
- P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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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이 우수,
  나무들 조용조용 부산하다.
  먼 물소리로
  몸을 부풀린다.
  문 밖에 봄이다.


우수
안도현

그리운 게
없어서
노루귀꽃은 앞니가
시려

바라는 게
없어서
나는 귓볼이 발갛게
달아올라

내소사 뒷산에
핑계도 없이
와서

이마에 손을 얹는
먼 물소리

시집<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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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고 맑은 저녁이다.
푸르게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정월 대보름이 지난지 이틀째인데 달이, 쟁반같이 둥근달이 슬쩍 떠올랐다.
나는 왜 매번 보름달만 보면 혼불의 춘복이가 피가 터져라 외치는 ˝달 봤다아˝가 떠오를까?
그만큼 강렬했던, 그만큼 간절한 춘복이의 욕망이 달처럼 환해 설까?
하여 다시금 혼불 5권을 스륵스륵 펼쳐본다.
달이, 많다.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달들의 문장을 구경한다. 덕분에 언제나 나를 홀리는 초저녁 초승달을 보면 이제는 강실이가 소환될 것 같다.

어쩜 문장들을 저렇게 쓸 수 있을까? 철심을 눌러 쓴 듯한 최명희선생님의 글 앞에서 새벽 하늘에 비수같이 떠 있는 그믐달을 만난다.

달이야 어느 땐들 유정(有情) 하지 않을까.
초저녁 동산 위에 가느소롬 곱게 뜬 각시 눈썹같이 이제 막 생겨나기 시작하는 초승달이나, 무심코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그렇게 흰 살이 차 오른 반달, 그리고 참으로 온전하고 둥글어서 오직 우러러 바라보며 한동안을 그대로 서 있게 하는 보름달이며, 그 달이 한쪽부터 서운하게 이지러져 드디어는 하현(下)에 이르다가, 이제는 사윌 대로 사위어 빛을 다 깎여 버린 마지막 푸른 손톱이, 끝내 잠 못 이룬 채, 아직도 캄캄한 사경(四)의 새벽 하늘에 비수같이 떠 있는 그믐달.
우주 만물 삼라만상이 모두 한 빛으로 어둠에 잠기는 밤, 야청의 하늘에 홀로 뜬 달의 그 모양은, 때로 꿈 같고, 때로 넘치도록 충만하고,
때로는 또 처연한 신비로움을 느끼게 하여, 누구라도 달이 있는 밤에는그 달을 올려다보게 하지만,
정작으로 좋은 것은, 달의 모양이 아니라 달빛일 것이다.
- P38

해동(東)의 밭머리에 자운영 돋으면서, 건듯 스치는 바람결에도 부드러운 흙냄새가 섞여 있어, 흙이 열리는 향훈을 느낄 수가 있는 밤.
물오른 나무들이 젖은 숨을 뿜어 내어 촉촉한 대기 속 어디선가 꽃봉오리 터지는 소리가 연연하게 들릴 것만 같은데,
연분홍 살구꽃 수줍게 만개한 봄밤이나, 진분홍색 도발하는 복사꽃이 홀리듯이 피어나는 봄밤에 뜬 달은 잦아들게 애달프다. 부연 안개와 같은 기운이 구름도 아니면서 둥근 달의 낯을 가리워 감싸고 번지는 조요한 달빛은, 차라리 맑게 드러난 명월보다 묘취가 있다.
안타까운 연두빛을 머금어 포료한 그 달빛은 먼 산 봉우리를 아득히잠기게 하고, 살 속으로 습기같이 스며들어 피를 자욱하게 하니,
- P39

멍석에 둘러앉아 웃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차 오르는 달빛이 귓전에부서질 때, 괄괄괄, 촤르르르흐, 서 소리는 개울물 소리인가, 달빛 소리인가, 아니면 구슬을 파랗게 쏟는 소리인가.
이 달빛이 형광으로 찍힌 것 같던 박꽃들이 이울어 둥그렇게 달덩이로 떠오를 무렵이면, 밤 사이 뜰에는 찬 이슬이 내리고, 하늘은 물 속으로 가라앉아 가을이 깊어진다.
- P40

겨울은 사물이 살을 버리고 뼈로 돌아가는 계절이다.
그래서 제 형상을 갖지 않은 물마저도, 흐르고 흐르던 그 살을 허옇게 뒤집어 뼈다귀 드러내며 얼어붙는다.
그뿐인가, 바람 또한 결의 뼈를 날카롭게 세워 회초리로 허공을 가르며 후려치니,
날새의 자취도 그치고, 사람도 다니지 않으며, 짐승 또한 굴 속으로 들어가 몸을 사리는 혹독한 추위 속에, 사위를 둘러보아 그 무슨이나 온기 한 점 얻을 길 없는 삼동(三冬).
헐벗은 잿빛으로 앙상한 골격을 뻗치고 있는 낙목한천겨울 달은 얼음처럼 떠오른다.
그래서 그 이름을 빙륜이라 하는가.
얼음보다 차고 맑은 둥근 달은, 얼음가루가 안개같이 서린 손으로 삭막한 세상의 밤을 쓸어 내리며 푸르게 푸르게 옥물 들인다. 물든 밤은 그대로 다시 투명하게 얼어, 대낮같이 환한 달이 뜬 밤이면, 웬일인지 달 없는 밤보다 더 춥게 느껴지곤 한다.
아마 빛으로 속이 꿰뚫리는 까닭인지도 모른다.
- P42


그 흰 눈도 없는 극한(極寒)의 밤에, 들여다보기 무서우리 만큼 깊고검푸른 거울이, 티 하나 없이 말갛게 씻기워 상공에 걸린 겨울 밤 하늘, 그 가슴 한복판에 얼음으로 깎은 흰 달이 부시도록 시리게 박혀 있는 빙월(水月)이야말로, 달의 정(精)이라 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강실이는 그 냉염한 달을 오래 오래 우러르며, 버선의 발등에 묻은 달빛이 속으로 얼어들어도 그 자리에서 움직일 줄을 모른다.
다만 그네는 몇 번인가 고개를 돌려 희부연 댓돌 위에 뎅그마니 놓인 검은 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었다.
그 신은 얼핏 보면 달빛의 얼룩인가 싶기도 하였다.
- P43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어두운 하늘이 트이면서, 황금 눈길이신 달의 정수리가 능선 위로 가느다랗게 비치었다.
"달 봤다아."
춘복이는 거멍굴 동산의 꼭대기 바위 날망에 올라, 두 다리를 장승마냥 뻗치고 선 채로 두 팔을 공중으로 번쩍 치켜 올리며 부르짖었다.
그 소리는 사나운 산짐승이 달을 보고 잡아먹을 듯이 응그리며운 용틀임으로 으르렁거리는 것같이 들렸다. 아니면 시퍼렇게 이들도록 오래 참고 참아 온 울음을 한 목에 터뜨리는 소리 같기도 하였다.
"달 봤다아아."
비명에 가까운 춘복이의 고함 소리가 동산을 뒤흔들며 공중에 울때, 함께 올라온 거멍굴 사람들은 달을 향해 넙죽이 큰절을 올렸다.
소원을 비는 것이다.
- P176

춘복이는 마음에 먹은 일이 있어, 힘이 되기만 한다면 풀뿌리, 바윗를 지나가는 바람한테라도 절절히 빌고 싶은 심정이었으며, 꾀를 빌릴수만 있다면 사람은 그만두고 들짐승, 날짐승한테라도 엎드리고 싶은
심정이었으니.
며칠 전부터 옴짝도 하지 않고 제 오막살이 농막에 웅크린 채, 그는오직 한 사람 강실이를 생각하며 궁리에 궁리를 기웠다가 뜯어냈다 뒤척이던 끝에 오늘, 달맞이에 일의 성패를 건 미친 사람처럼 단걸음에 내달아, 누구보다 먼저 동산 위의 날망에 올라선 심정이야.
그리고 드디어는 이렇게 달을 보고 만 것이다.
달을 차지하고 만 것이다.
춘복이는 숨이 막혀 지레 가슴이 터져 나갈 지경이었다.
"작은아씨를 내 사람 되게 해 주시요."
- P177


그것은 거대한 달이었다. 온전하게 둥그런 얼굴로, 검은 파도처럼 첩첩한 산 능선을 발 아래 치맛자락같이 거느리면서 떠오른 보름달은 놀랍게 크고 너무나 가까웠다. 무엇만이나 하다고 해야 할까. 춘복이는그렇게 큰 달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일이 없었다. 얼른 보면 커다란 방죽만 한 것 같지만 누우런 황금빛 용암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빛의 물살을 끝없이 뒤채는 이 달에는 어림없는 말이었다.
 보통 때 무심코 올려다보면 둥그렇게 눈 안에 들어오던 그 조그만 달이, 지금은 그의 두 팔을 벌린 아름으로는 당치도 않게 거대하여, 그것은 떠오른다기보다는 흥건하게 무거워서 금방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
달은 그의 머리 위에 뜬 것이 아니었다.
싯누렇다 못하여 화광을 받은 것처럼 붉은 주홍빛을 머금고 있는 그달은 바로 춘복이의 눈앞에 바짝 들이밀려와 있었다. 마치 놀라 바라보는 춘복이를 그대로 덮쳐 한 입에 삼켜 버릴 듯한 기세로.
가슴패기 맞닿게.
그는 숨이 질려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린 채 얼른 다물지를 못하였다.
달은 거대한 빛의 아가리였다.
그 아가리의 빛이 장마진 붉덕물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회오리 돌았다. 한번 빠지면 못 나오는 늪이 용틀임으로 뒤집히는 아가리.
- P183


인간의 갈피에 고인 시름과 눈물을 서럽게 위로해 주기는커녕,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고 빨아들여 빛으로 덮쳐 버릴 것 같은 그 붉누런 빛의 밀물을, 칼로 도려낸 듯 차갑게 뚜렷한 원으로 삼엄하게 가두는 달의 서슬에, 몇 낱 별빛마저 무색하게 지워져 버린 겨울 밤 하늘은 이 시린 궁청빛으로 깊어 더욱 시퍼렇다.
그 앞에 홀로 마주선 춘복이는 한 점 티끌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대로 달빛에 휩쓸리면 그 심연의 수렁 속으로 말려 들어가 다시는헤어나오지 못할, 아니면 그 물살에 떠밀려 곤두박질치며 떠내려 갈.
달은 무서운 기세로 점점 가까이 부딪칠 것처럼 다가왔다.
그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견고한 빛의 바위덩이 암벽 같기도 하였다.
아아, 차라리 저 달에 부딪쳐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죽고 싶다.
춘복이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달을 향하여 가슴을 내밀고 온몸으로 버티고 마주쳤다.
달은 아까보다 숨막히게 더 가까웠다.
가까이 온 달은 다시 누렇게 뒤집히어 붉덕물을 일으키면서, 거문거뭇 멍든 골짜기로 춘복이를 빨아들여 삼키려 하였다.
내가 너를 삼키리라.
- P184

춘복이는 입을 크게 벌리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달의, 싯누렇게 뒤집히며 붉덕물을 일으키는 소용돌이 달빛을 깊이깊이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목으로 빨려들어오는 달빛은 가슴을 깎으며 아프게 비집고 내려가 다시 폐장을 가득 채웠다.
이윽고 가슴이 벌어져 쪼개질 것 같은 통증에 그는 잠시 숨을 멈추었지만, 그곳에 뼈다귀처럼 걸린 달빛을 아랫배로 밀어내리고, 다시 무서운 기세로 흡월을 하였다. 머리꼭지 정수리에서 어깨뼈와 가슴팍, 그리고 단전과 손가락 발가락 끝까지 터질 만큼 차 오르도록 달빛을 들이켜는춘복이의 몸은 둥그렇게 부풀어 올랐다.
내가 너를 삼키리라.
그는 드디어 달빛에 딸려 오는 달이 덩어리째 삼켜질 때까지 그렇게사나운 짐승처럼 서서 흡월을 할 작정인 것 같았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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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12장 <제 2의 성>스캔들 편까지 읽었다. 1993년판 을유문화사 <제 2의 성>을 가지고 있다. 마구마구 읽고 싶은 욕구가 배를 부글부글하게 만든다. 이제 그 책을 읽을 때가 도래한 것인가, 흡~!


문제는 이것이다. 우리는 세계의 어느 부분에 마음을 쓰고 일궈나가야 하는가? 바로 우리의 행동이다. 보부아르의 대답은 이렇다.
행동해야 하느냐고? 행동만이 나의 것, 오직 나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행동을 통해서 나는 지금의 내가 된다. 오직 나만이 나와 타자를묶는 끈을 더 이롭게 혹은 더 나쁘게 창조하거나 유지할 수 있다.
나와 타자의 관계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새로이 창조해야하는 것. 죽을 때까지 풍성하게 가꾸든가 무시하고 남용하든가 하는것이다. 30)보부아르는 십년 넘게 사르트르와 자유 개념을 토론했고 어릴 적하느님을 사랑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자기가 믿는 철학에 따라 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그렇게 살 수는 없었다.  - P256

하지만 헌신을 통해 자신의 삶을 정당화하려는 태도는 문제가 있다. 일단 헌신의 대상이 자기가 요구하지도 않았던 것을 받아들이는데 나의 행복이 달려 있다면 그 대상은 짜증이 날지도 모른다. 또한헌신을 통해서 타자의 자유를 그의 의지에 반하는 방향으로 제한한다면 타자를 위한 헌신이 되레 억압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너무 많은이가 타인에게 헌신하고 싶어 하는 듯 보였기에 보부아르는 궁금했다. 억압자가 되지 않으면서 헌신한다는 것이 가능한가??)이제 투명하리만치 분명해졌다. 사르트르가 제안한 것과는 다른,
자유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자유에 제한이 없다는 그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었다. 우리의 선택은 타자들의 선택에 제한당하고 우리 역시 그들의 선택을 제한한다. 그러므로 자유롭고자 애쓰는 것으로는충분치 않다. 위선 없이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자라면 누구나 다른사람의 자유도 소중히 여기고 자유를 윤리적으로 행사하는 방향으로33)행동해야만 했다.
보부아르는 독자들이 자기 책을 읽고서 그들의 행동이 그들의 삶속 타자들의 세계를 형성하고 행동의 조건까지 생성한다는 시각을얻기를 바랐다. 보부아르는 이전의 정치적 무관심을 강하게 부정하는중이었다. 하지만 이 태도가 얼마나 그녀가 마주한 상황에서 비롯된것인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순간과 사생활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무게를 지녔는지는 분명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 P257

실존주의는 어떤 윤리학도 암시하지 않습니다. 나는 실존주의에서윤리학을 끄집어내려고 했지요. 그 윤리학을 《피로스와 키네아스》라는 에세이에서 자세히 썼고, 소설과 희곡으로도, 다시 말해 훨씬 구체적인 동시에 모호한 형식으로도 내가 찾은 답을 표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37) 그런데 보부아르는 왜 이 중대한 철학적 공헌을 회고록에서누락했을까? 이 질문의 답을 이해하려면 보부아르가 대외적으로는사뭇 다른 자기가 되기로 선택한 과정을 좀 더 이해할 필요가 있다.
- P259

백지를 마주하고 하니 있다. 친구이자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가 그녀를 보고 사나워 보인다고했다. 보부아르는 글을 쓰고 싶은데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자코메티는 "아무거나 써봐요."라고 했다. 보부아르는 자전 문학의 새 지평을 연 미셀 레리스의 소설 《성년)을 좋아했기 때문데 자기이야기도 그렇게 한번 써보고 싶었다. 발상이 차차 얼개를 갖추었다.
메모를 좀 하고 사르트르와 얘기를 나눴다. 보부아르의 질문은 이것이었다. "내가 여성이라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보부아르의 회고록에서 사르트르와 나눈 대화는 일종의 계시처럼묘사된다. 상황의 힘에서 보부아르는 처음에는 자기가 여성이라는사실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열등감을 느낀 적도 없고, 보이주장으로는 "아무도 감히 나에게 ‘네가 여자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지야.‘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의 여성성은 어떤 식으로든 귀찮았던 집이없다."라고 했다.7) 사르트르는 보부아르에게 좀 더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그녀가 남자아이처럼 양육받고 자란 건 아니었다. 그래서보부아르는 그 문제를 파고들었고 그제야 비로소 세상이 얼마나 남성적인지 깨달았다. 자신의 유년기를 형성한 수많은 신화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다르게 형성했다.  - P284

마거릿 사이먼,
그는 보부아르가 그 전에 여성성을 사유해보지 않았다는 생각은 완전히 잘못했다고 지적한다. 일기, 편지, 자전적 작품과 허구적 작품리 러 대목에서 반증을 찾을 수 있다. 생각이 깊고 주도면밀한 보부아르가 그 일화를 의도적으로 거짓되게 썼을 거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어쨌든 십 대의 보부아르는 철학의 개척자가 되기를 간절히 원했고, 진로 선택을 두고 부모 앞에서 침묵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 바람을 이루려면 여성에게 전통적으로 주어지는 역할중 어떤 것과는 소원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십 대의 보부아르는 잔 메르시에 선생님에게 철학적 이성과 감정적인 면이 어떻게공존할 수 있을지 물었다. 메르시에는 감정도 온전한 생을 이루는 부분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1927년 7월에 보부아르는 "여성으로 남고 싶지만 두뇌는 더 남성적이면 좋겠고 감성은 더 여성적이면 좋겠다고 썼다.
그로부터 십여 년 후 서른두 살이 되어 가는 보부아르는 전쟁 중에이런 글을 썼다. "내가 완연한 성인 여성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 여성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 사르트르에게도 자기가 정말로 관심을 두는 자신의 일면에 대해 썼다. 바로 자신의 "여성성", "나는 어편 면에서 여성스럽고 어떤 면에서 그렇지 않은가, 라는 문제였다.  - P285

수 세기 동안 오로지 남성들만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만들어 왔다.
다시 말해, 이 세상은 남성에게 속해 있다. 그 세상에는 여성의 자리도있지만 결코 여성에게 편한 자리는 아니다. 남성은 자연스럽게 자기가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영지를 탐색한다. 그는 알고자 하는 호가심으로세상을 연구하고, 자신의 사유로 그 세상을 지배하려 애쓰고, 예술을 다개로 삼아 그 세상을 새롭게 창조했노라 주장하기까지 한다. 아무것도그를 저지하거나 제한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여성의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 P296

여성의 상황은 최근 들어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투표권을 얻었을뿐 아니라 프랑스에서 여성의 참정권이 실현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교육과 기회에 다가갈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도 그랬다. 그 결과 여성은 점점 자신에 대한 내적 앎을 심화하기 원했고 "철학으로 눈을돌렸다. 1) 하지만 보부아르는 넘어서야 할 것이 아직도 많다고 생각했다. 여성성이 겸손과 너무 자주 동일시되는 탓에 여성들은 과감성이 부족하고 과감한 행동의 결과를 두려워한다. 보부아르는 여자들도 어릴 때는 꽤 자율적이지만 사랑과 행복을 위해 자율을 희생하라는 식의 말을 너무 많이 들으면서 자란다고 썼다. - P297

 반면에 남성은 남성성을 지키기 위해 성공을 희생하거나 마음 편히 살기 위해 성취를 포기할 필요가 없다. 오로지 여성들만 이 모순에 시달렸다. 인격의 온전한 실현을 일부 포기하든가, 남성을 유혹하는 힘을 일부 포기하는가 들 중 하나라야 했다. "21) 하지만 성공이든 유혹이는 왜 그렇게 일부를 포기해야만 얻을 수 있단 말인가?
보부아르는 미국에 있는 동안 여성을 주제로 하는 책을 위해서 기억해 두고 싶은 것들이 생겼다. 다른 문화권에서 외국인의 시각을 취하다 보니 남성과 여성은 관계를 맺는 기준 자체가 서로 다르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보부아르는 미국 여행기 에서 실제로 미국 여성이 프랑스 여성보다 자유롭지 못하다는 데 놀랐다고 썼다. 미국에 직접 가보기 전에는 "미국 여성"을 "자유로운 여성"의 동의어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미혼 여성은 충격적일 정도로 미국에서 존중받지 못했다. 처음에는 "미국 여성의 옷차림이 거의 성적이라고 할 만큼 여성성을 노골적으로 강조하는 데 놀랐다. - P301

《애매성의 윤리를 위하여》는 1948년에 영어로 출간되었다. 당시《피로스와 키네아스는 영어 번역본이 없었고 제2의 성》은 집필 단계였다. 그래서 이 저작이 어떻게 보부아르의 초기 철학을 발전시키고 이후 철학의 토대가 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보부아르는 상황‘ 개념과 타인들이 우리의 삶을 형성하는 방식을 여전히 사유하는 중이었다. 애매성의 윤리를 위하여는 윤리적으로 자유로워지려면 우리와 타자들의 유대를 받아들이는 데 자유를 사용해야 한다.
고 말한다. 보부아르는 이를 타자의 자유에 대한 호소" 혹은 "부름"
이라 불렀다. 모든 인간은 자기 인생이 그저 ‘하나의 인생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이므로 진실하게 보이기를 바라고 중요한 의미가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모두 "정당화 되고 싶고, 삶에 의미가 있다고 느끼고 싶다. 그러나 타자의 자유의 부름을 듣지 않고 자기 자유의 부름만 듣는 태도는 유아론,  - P311

생의 한창때에서 보부아르는 1930년대 초에는 ‘페미니즘과 성전쟁‘이 자기에게 아무 의미도 없었다고 썼다. 그랬던 사람이 어쩌다 이른바 ‘페미니즘 성시‘를 쓰게 됐을까??
제2의 성을 출간할 때 보부아르는 마흔한 살이었다. 어려서부터어머니가 아버지와 불평등한 관계에서 고생하는 모습을 보았다. 하느님 앞에서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평등하다는 사실을 알고서부터는 사람들이 자신을 여자아이처럼 대하지 않기를 바랐다. 서점 직원에게 성추행을 당한 날부터는 모르는 남자들과 함께 있는 게 불편리다. 친구 자자는 지참금, 재산, 사랑의 가치를 비교하는 실랑이 속에서 눈을 감았다. 보부아르는 불법 낙태 시술 후 감염으로 고생하거나입원하는 친구들도 많이 보았다. 다른 여성들과 대화를 나눠보던 자기 동의 기능이나 쾌락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 보부아르는 외국을 많이 다녀본 덕분에 관습이 공통적이라는 이유만으로 필연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 P320

제2의 성>의 첫 줄에서 보부아르는 ‘여성‘을 주제로 삼아 글을 쓸때의 망설임과 성가심을 숨기지 않는다. "여성에 대한 책을 쓰기 전에오랫동안 망설였다. 그렇지만 지난 세기에 "어리석은 잡소리"가 너무 많이 책으로 나왔다. 여성성의 상실을 슬퍼하면서 여성은 "여성이어야 하고, 여성으로 남아야 하고, 여성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그런 책들, 그래서 더는 옆에 서서 구경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 P321

보부아르와 같은 세대인 디자이너 
샤넬은 바지를 입은 신여성으로서 중성적이면서도, 화려한 패권을 신보였다. 직업이 있는 여성의 수가 이렇게 많았던 적은 없었다. 예성은이제 막 투표권도 획득했다. 일부는 국가고시에서 남성보다 우수한성적으로 합격했다. 그런데도 여성은 아직 자기 명의로 은행 계좌를만들 수 없었다. 1965년에 ‘나폴레옹 법전‘이 개정된 후에야 그런 일이 가능해진다. 1940년대 말에 ‘페미니즘‘은 당시에는 이 단어가여성 참정권 운동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는데 -- 미국과 프랑스두곳 모두에서 한계를 넘어섰다. 여성 침정권이 드디어 실현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성은 이제 무엇을 바랄 것인가?
보부아르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인간이 타인의 신체적 특징에 기초한 계급, 심지어 노예 계급까지도 만들어내는 습관이 있음을 알았다. 인종차별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 점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성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보부아르는 남성이 여성을 ‘타자‘로 규정하고 자기들과 다른 계급 위상을 - 제2의 성을 - 부여했다고 주장했다.
- P322


모든 인간은 유일무이한 ‘상황‘에 놓여 있다. 남성과 여성이 처한구체적 상황은 평등하지 않다. 왜 그럴까? 누구나 알다시피 인간은두 범주로 나뉘어 있고 신체, 얼굴, 의복, 관심, 직업의 차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여성 생식기만 있으면 ‘여성‘으로 간주하기에 충분할까?
어떤 여성은 여성 생식기가 있지만 여성스럽지 않다"고 비난받는다.
소설가 조르주 상드 (Genge Sand)가 관습적인 여성성을 무시했을 때귀스타브 플로베르는 "제3의 성" 운운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보부아르는 묻는다. 신체적 여성성이 여성의 충분조건이 아니라면 여성이란 과연 무엇인가?
"여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보부아르는 여성은 남성이 아닌것이라고 답했다. 프로타고라스는 "인류는 만물의 척도" 라고 했다.
이때 ‘인류‘를 판단하는 기준은 남성이다. 역사를 통틀어 여성이 ‘인류‘의 문제와 무관한 시각을 지닌 열등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남성이얼마나 많았던가. 심지어 1940년대에도 보부아르는 단지 여성이라는이유로 자기 견해가 묵살당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 P323


1949년 11월에 출간된 《제2의 성 두 번째 권에는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문장이 들어 있다. 모든여성은 완결된 책이 아니라 일종의 ‘되기 이기 때문에 보부아르는 여성들의 생생한 경험을 기술함으로써 그들이 삶의 여정에서 내내 타자가 되고 마는 방식을 일부 보여주고 싶었다. 자기 자신도 아직은펼쳐진 책이요, ‘보부아르가 되는 중‘이었다. 보부아르는 자신의 것한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자기 앞의 장애물 중 어떤 것은 다른여성들의 ‘되기‘에도 고질적인 위협임을 알았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보부아르는 아직도 알프레드 푸예의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는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되는 것" 이라는 생각에서 영감을 얻는 철학자였다. 이제 보부아르는 여성이 남성과 구별되거나 남성에게 복종하면서 사는 이유는 생물학, 심리학, 경제학에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문명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문명‘은 시몬 드 보부아르와 함께 (좋은방향으로) 열심히 일했다. - P330

전쟁으로 인구가 감소한 프랑스는 국민이 필요했다. 보부아르는자신의 성별과 국가를 배신한 사람으로 취급받았다. 건후 프랑스 산없은 경기 부양이 간절했고 그러자면 출산율 증가와 여성 노동력 증가가 모두 필요했다. 보부아르의 언어는 장소에 따라서 충격적으로 여겨졌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이제 와 《제2의 성》을 읽어보면정치적 상황이나 ‘엄마‘라는 노예가 되었다고 느껴본 적 없는 여성들의 경험 때문에 잘못 받아들여진 대목들이 있다. 보부아르는 임신부를 기생의 숙주, 종(種)에 매인 노예로 지칭했다. (쇼펜하우어도 동일한 표현을 썼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그는 이렇게까지 격렬한 비난을 받지않았다.) 보부아르는 임신을 여성이 신체적 자율의 상실과 함께 개인적으로 "안으로부터 경험한다는 점, 엄마가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라는 여성의 불안감에 관심을 두었다. 보부아르는 여성이 생식 기능으로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주목하는 이는 별로없었지만) 자신이 모성을 송두리째 거부하는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말했다. 임신, 출산, 육아 같은 전형적인 여성만의 구체적 경험조차도여성의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경험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
- P331


보부아르는 모성을 떠받드는 사회의 자기 기만을 고발했을 뿐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자신이 천착했던 주제, 즉 사랑과 헌신의 유리..
돌아갔다. 제2의 성은 ‘사랑‘이라는 단어가 남성과 여성에게 기다른 의미로 통하고 이 차이에서 남녀 간의 불화가 빚어지는 경우가많다고 주장했다.
남성은 사랑에서 "주권이 있는 주체로 존재해 왔다. 남성은 자기가 사랑하는 여성도 삶 전체를 이루는 부분 중 하나로서, 자기가 분에서 추구하는 다른 것들과 나란히 두었다. 반면에 여성에게는 사람이 삶 자체처럼 제시되었다. 사랑의 이상은 여성들에게 자기 회생적인 삶, 더 심하게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자기를 완전히 망각할 것을 은근히 권했다. 남성은 장차 세상에서 활동하리라는 기대를 받고성장한다. 사랑도 하되, 다른 영역에서도 야망을 품고 왕성하게 활동을 펼치리라는 기대 말이다. 여성은 가치 있는 남자에게 사랑받아야자기 가치도 올라간다는 가르침 속에서 성장한다.
- P332

보부아르에게 사랑의 지배적 패러다임의 문제는 상호성의 결여‘에있는 것으로 보였다. 남성은 여성이 사랑에 헌신하기를 기대하면서자기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 결과 사랑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위험하다. 보부아르는 전적으로 남성의 잘못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여성도 상호적이지 않은 연애에 가담함으로써 억압 구조의 지속에 한몫을 한다. 그러나 사회가 여성이 자신을 압박하는 데 동의하도록 유도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는 탓에, 여성이 그 구조를 거부하기란 실로어려운 일이다.
제2의 성은 다분히 이성애 중심 언어로 논의를 펼치지만 보부아르는 여성과의 관계에서도 상호성을 둘러싼 갈등을 경험한 바 있다.
1940년에 비앙카 비넨펠트는 보부아르의 삶에서 더 중심적인 역할을원한다고 털어놓고 서로 얘기를 나눈 후 이런 편지를 썼다.
당신은 자기를 내어주지 않고 취하기만 해요..
내가 당신 인생이라는 말은 ‘거짓‘이죠. 당신의 인생은 모자이크니까.
- P333

그래도 나한테는 당신이 인생이에요. 내 전부가 당신 거예요.

보부아르는 진정한 사랑은 상호적 관계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그러한 관계가 좀 더 널리 퍼지기를 바랐다. "여성에게 사랑이 약점이아니라 강점이 될 수 있는 날, 자기 자신을 피하기보다는 되레 발견하게 되는 날, 자기를 체념하지 않고 되레 내세울 수 있는 날, 그때 비로소 사랑은 여성에게나 남성에게나 치명적 위험이 아니라 삶의 원천이 될 것이다. "2) 여성도 당당한 주체로서 연인과 자기 자신을 다 같이 사랑할 수 있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상호적이지 않은 사랑의 신화가 여성을 부차적 위상에 붙잡아놓고 구원을 약속하면서 생지옥을 떠안기기 때문이다.
《제2의 성은 보부아르의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은 의문을 낳는다. 얼마나 많은 자전적 요소를 보부아르의 철학으로 읽어낼수 있을까? 그리고 자전적 글쓰기 중 어느 것과 맞닿아 있을까?  - P334


토릴 모이는 시몬 드 보부아르: 지적 여성의 형성 에서 "시몬 드보부아르는 1949년 말에 진정한 시몬 드 보부아르가 되었다. 인간적으로나 직업적으로 그녀는 ‘만들어졌다."고 썼다. 6) 1949년 이후 보부아르가 했던 작업은 "회고적이고" "자서전 외에는 거의 쓴 것이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작가로서 보부아르는 아직 문학상 수상작 "레망다랭》과 다른 소설 두 권을 쓰기 전이었다. 자서전은 아직 한 권도쓰지 않았고 노년에 대한 책, 프랑스 법을 대폭 바꾸게 될 글들도 아직 쓰지 않았다. 《제2의 성》도 페미니즘 제2물결을 일으키는 역할을하기 전이었다. 페미니스트 운동가로서 이력은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다. 개인적인 삶 역시 상호 관계의 가능성을 여전히 붙들고 있었다.
보부아르는 아직도 되어야 할 것이 많았다.
- P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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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아르는 사르트르의 생각에서 여전히 감탄할 만한 요소를 많이 찾았지만 그의 생각 전부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둘이 유스턴 역에 앉아 있을때 사르트르는 런던이 세계에 대한 자신의 전반적인 이해에 얼마나 잘 맞아 들어가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보부아르는 결핏하면 일반화하는 그의 습관에 짜증이 났고 그 가설이 허술하다고 생각
했다. 전에도 논쟁을 한 적이 있어서 새삼스러운 얘기도 아니었지만 보부아르는 말이 현실을 평가할 수는 없으며, 현실은 모호하고 불확실할지언정 있는 그대로 부딪처야 하는 거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사르트르는 세계를 관찰하고 반응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대꾸했다. 그는 세계를 언어로 정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보부아르는 그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런던을 고작 12일 여행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사르트르는 경험을 살아내는 대신 글로 쓰려했고, 그 점이 보부아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에 대한 지금여기의 현실에 대한 충실성에 거슬렸다.  - P168

개인적으로 보부아르는 자기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학생 시절일기에서 이미 고민했던, 자기를 얼마만큼 내어주고 얼마만큼 지켜야 하는가라고 보았다. "독립에 대한 갈망"과 "너무나 맹렬하게 타인에게 끌려가는 감정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보부아르는 수업 시간에 "여자들이 세상에 아이를 낳고 기르라고만 있는 게 아니다." 같은 주장을 펴거나 학부모들이 문제 삼을만한 책을 학생들에게 빌려주었다. 일부 학부모가 공식적으로 항의를 제기했지만 다행히 장학사가 보부아르의 편을 들어주었다.
- P171

다음 프로젝트를 생각해도 좋을 만큼 소설 작업은 막바지에 와 있었다. 보부아르는 "온전한 삶에 대한 소설을 쓰고싶었다. 자기 작업 외에 사르트르의 원고 검토 작업도 병행하고 있었다. 사르트르는 자유 개념으로 글을 쓰면서 원고가 진전되는 대로조금씩 보내 왔다. 보부아르는 원고를 베르그송과 칸트 철학에 비교해 가며 칭찬했지만 논증 전체를 보지 않고는 제대로 비판할 수 없다.
고 했다. 그리고 그 단계에서 반문하자면 자기는 이렇게 묻고 싶다고썼다. 일단 자유를 인식했다면 그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보부아르는 베르그송, 푸예, 라뇨, 그 외 철학자들을 탐독하던 십대 시절부터 자유의 철학에 관심을 두었다. 교수자격시험의 주요 주제였기 때문에 사르트르와도 토론을 많이 했다. 자유를 추상적 개념으로 생각하고 사르트르처럼 모든 자유가 평등하다고 주장해도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보부아르는 ‘살아낼 수 있는 철학을 원했다. 게다가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자유가 평등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중에 말했듯이) "상황이 각기 다르기에 자유 또한그러하다. " - P221


보부아르는 이미 1930년대에 사르트르의 주장이 틀렸다고 확신했다. 사르트르는 상황이 어떻든 인간은 다양한 반응 양식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유롭다고 보았다. 보부아르는 이렇게 반문한다. "하렘에 갇혀 사는 여성에게 어떤 유의 초월이 가능할까?")자유로운 것(원칙적으로 선택이 가능하다는 것)과 실제로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은 다르다. 보부아르는이러한 철학적 비판을 피로스와 키네아스 와 애매성의 윤리를 위하여〉라는 두 편의 에세이로 남긴다. 하지만 그 전에 초대받은 여자때문에 사생활에 튄 불똥을 처리해야 했다.
어머니는 딸의 첫 소설이 나오기 전까지는 사생활을 잘 몰랐기 때문에 그래도 보부아르가 "착한 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초대받은 여자》 출간 이후 "세상의 소문이 어머니의 환상을 무참히 부수었다." 프랑수아즈는 그 책에 충격을 받았지만 딸이 유명 작가가 됐기때문에 한편으로 자랑스럽게 여겼다. 이제 보부아르가 가장이었으므로 그녀의 성공은 가족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다.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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