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창비시선 125
나희덕 지음 / 창비 / 199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길 위에서

 

                                              나희덕

 

길을 잃고 나서야 나는

누군가의 길을 잃게 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떤 개미를 기억해내었다

눅눅한 벽지 위 개미의 길을

무심코 손가락으로 문질러버린 일이 있다.

돌아오던 개미는 지워진 길 앞에서 두리번거리다가

전혀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다

제 길 위에 놓아주려 했지만

그럴수록 개미는 발버둥치며 달아나버렸다.

길을 잃고 나서야 생각한다.

사람들에게도

누군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냄새 같은 게 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인연들의 길과 냄새를

흐려놓았던지, 나의 발길은

아직도 길 위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시집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중에서

 

                       1966년 충남 논산 출생.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 [사라진 손바닥] [야생사과]가 있고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수상.

 

 

 

 

무언가를 잃어보면 알게 되는 것들이 많습니다.

당장은 상실감에 죽을 듯이 힘들지만 잃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

우리,

지나온 자리에 얼마나 많은 인연들의 길을, 흐려놓았을까요?

마음, 아프게 했을까요? 눈물, 흘리게 했을까요?

혹여 절망하게 만들어버린 건 아닌지...

가슴 서늘해지는 시입니다.

그러니 당신, 잊지 마세요.

당신의 따뜻한 마음 길의 화살표가 당신 곁에서 길을 잃은 이에게

이정표라는 것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