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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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에서 팔잖아.


팔지 않는 카스테라는 없다고. 당신은 생각할 것이다. 살 수 없는 카스테라는 없다고, 예전에 내가 생각했듯이. 결국 나는, 이 시시한 논리를 시시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 한 조각의 카스테라를 스스로 만들어 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계란과 밀가루를 반죽해 빛이 나올 때까지- 하다못해,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 P 331, 작가의 말 中


모든 물건에는 가격이 있고, 물건은 팔려고 만든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몸담고 계신 시장판에서 눈동냥하면서 배운 사실은 싸게 사들이고 비싸게 팔아치우는 행위가 우리의 생활을 풍요롭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시장의 규칙에 따라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박민규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 대단한 생존의 규칙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 언짢고 시시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작가의 말 중에서 저 다섯줄을 읽고, 책을 읽었던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동안 넋을 놓고 허공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에게도 오븐과 계란과 설탕과 밀가루가 있는데…….


같은 지구에서 같은 규칙을 가지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어쩌면 비슷한 재료를 가지고자신의 카스테라를 오븐 밖으로 선보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살아간다. 그 노력의 근원은 원초적인 본능을 바탕으로 ‘시장’의 흐름과 규칙에서 도태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시장’에 대한 악담을 퍼 붓는 사람을 훈계하면서 시장을 찬양하고, 개인의 자유와 사회 계약이라는 관념을 ‘시장’과 불가분의 관계로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우리가 ‘시장’을 끌어안고 있는 덕분에 우리는 때로는 자신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변신’을 해야 하는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그것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하지만 당연한 것은 위험하다.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구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도 평범하고, 누구나 다 만들 수 있는 카스테라를 만든다면, 그것만큼 위험한 것이 있겠는가? 그래서 그는 당연한 것을 회피하고, 보편적인 것과 평범한 것을 거부한다. 그의 문체가 그렇고, 그의 사고가 그렇고, 그의 생활이 그렇다. 그것은 마치 세계 최고의 빵집을 운영한다는 푸알 랜이 기존의 제빵사 들을 채용하지 않는 대신 기꺼이 몇 년씩 그의 도제가 되겠다는 청년들을 고용하는 것과 흡사하다. 어쩌면 그는 에디슨의 카스테라, 가가린의 카스테라, 지미 핸드릭스의 카스테라, 이백의 카스테라, 제인 구달의 카스테라, 테레사의 카스테라가 탄생을 찬양하고, 기억하며, 그것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카스테라를 만들 수 있기를 소망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인류를 위해서가 아닌(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된다고 할지라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


우리는 살면서 무언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것은 반드시 이유가 있다. 당연히 그렇다. 하지만 우리가 형편없는 카스테라를 만들었다면 그 실패에 대한 비난은 쏟아지겠지만 그것은 우리에 대한 것이 아니라, 카스테라를 만들어내는 요리법(일종의 아이디어)에 대한 비난이다. 그런 비난을 회피하든, 부인하든, 합리화 시키든, 그것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그런 비난이 또 하나의 요리법을 탄생시킬 수 있는 배경이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맛있는 카스테라를 탄생시킨 또 하나의 재료가 되지 않겠는가? 그것이 작가 박민규 만이 소유하고 있었던 특이한 재료 중에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나는 삶이 나에게 부여한 과제의 이름을 이렇게 붙이기로 했다.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살 수 없었던, 단 하나의 위대한(의미있는) 카스테라의 탄생을 위하여! '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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