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
공선옥 지음 / 당대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앎이라는 것이 때로는 진실을 가능하게 해주지만 때로는 거짓을 가능하게 한다. 알기 때문에 거짓을 말할 수 있고, 알기 때문에 거짓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작가는 삶을 알기 때문에 거짓을 말할 수 있고, 삶을 알기 때문에 거짓이라고 느꼈을까? 그녀의 작품을 많이 접해보지는 못했지만 알고 있기에 고뇌하는 모습을 통해, 그 모든 것을 부인하고 싶어 하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 나의 삶을 되돌아보고 쓴 웃음을 짓는다. 그 웃음의 의미를 알지도 못하면서.

 

짧지도 길지도 않은 삶을 살아왔지만 엄살도 부리고, 한탄도 하고, 고뇌도 했던 나의 지난 시간들이 온전히 나 자신을 향해 있었다는 사실이 이토록 부끄럽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무엇이 그렇게 급박하여 내 앞가림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으면서도 내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다는 명분을 내세워 주위를 둘러보지도, 마음에 담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일까? 정작 무엇을 위했으면 정작 누구를 위했다는 말인가? 나는 나의 작은 세계를 가슴에 품고 그것이 전부일 것이라고 믿고 싶었던 것일까?


수많은 사람들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세계지만 모두의 세계는 다르다. 어쩌면 우리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세계가 전부일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기 위해 투쟁하고, 이토록 몸부림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누구에게도 온전한 세계는 없으며 그 누구도 온전한 세계를 알지 못하기에 더 강박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자든 후자든 자신의 인식 안에 갇혀 그 이상을 바라보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은 어리석다.

 

물론 작가의 시각도 작가의 인식에서 비롯되었으면 그녀가 가지고 있는 인식의 세계가 온전하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그녀와 나의 차이점은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느냐의 여부와 온전하지 못한 것을 깨기 위해 어떤 시도를 했느냐의 여부이다. 때때로 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작은 세계를 깨부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는 모습을 통해 내가 가지고 있었던 양가감정은 나의 오만한 인식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오만함은 굴곡을 만들고 그 굴곡은 내 자신을 바로 보지도, 바로 듣지도, 바로 생각하지도 못하게 만들 것이다. 끝내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내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 땐, 그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믿고 싶어지겠지? 그것이 삶이 가지고 있는 모순된 속성인지도 모르겠다. 거짓을 진실이라고 믿어야 하고, 진실을 거짓이라고 믿어야하고, 그런 반복이 거짓과 진실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게 된다면 삶은 거짓과 다름없는 것 이 된다. 그래서 사는 게 때때로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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