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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재깍재깍 시계의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를 내지 않는 시계를 바라보면서 귀를 기울였다. 소리는 분명나지 않았지만 나는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있었다. 초침이 한 바퀴 돌고 나서 분침이 한 칸 움직인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이 生을 만든다는 것을 한 권을 책을 통해서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生이라는 것은 자연의 법칙에 따르는 것이며 그 자연의 법칙 안에서 무기력한 인간은 어떤 저항도 할 수 없다. 지구에 있는 수십억이 넘는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그것이다.
그 生의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다는 것 뿐, 그 외에 많은 것들을 나는 모른다. 내가 그 마지막 순간을 향하고 있다는 것도 때때로 망각해버리고, 내가 그 生이라는 공간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도 때때로 잊는다. 그것은 시계바늘의 끝에 매달려 그것들을 움직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계바늘의 흐름에 나의 몸을 맡기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로자 아줌마의 모습을 통해 확인하게 되었다. 나는 그녀와 같이 언젠가는 다가올 마지막 순간을 향하고 있으며 그녀를 바라보는 모모의 시각에서 그 움직임을 자연의 법칙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生의 흔적은 기억을 만든다. 그래서 기억이라는 것에 많은 것을 의존한다. 하지만 나는 치매에 걸린 로자 아줌마와 달리 건강한 육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많은 것을 잊었다. 망각이라는 것은 때때로 삶에 적응하기 위해서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내가 그런 판단을 했기 때문에 망각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망각을 하는 것도 자연의 법칙에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위안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은 때로는 生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生의 소멸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그것은 生의 소멸과 生의 생성이 맞물려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를 망각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그녀의 몸뚱이가 악취를 내며 썩어갔다고 할지라도 그녀와 함께 유태인 동굴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를 향한 모모의 사랑을 쉽게 소멸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인간들은 生은 통해 지독하고 쉽게 소멸하지 않는 흔적을 남기기를 바라는 것일까? 자신의 육체가 소멸되어 사라진다 할지라도 자신의 흔적이 오랜 시간 남아있기를 바라는 로자 아줌마의 모습을 통해 나의 내면에 꿈틀거리는 본능적인 소망을 엿보았다. 그것은 ‘사랑’을 향한 욕망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랑이 없이도 살수 있다는 하밀 할아버지의 말에 울음을 터트렸던 모모는 마지막에 사랑에 대한 강한 집념을 남긴다. 창녀의 자식으로 태어나 ‘사랑’이 결핍된 유년생활을 보내왔던 모모는 유일하게 자신을 돌봐주는 로자 아줌마에게 적절한 보호를 받지는 못했지만 자신을 행한 그녀의 ‘사랑’과 그녀를 향한 자신의 마음이 ‘사랑’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서 生이 남겨주는 가장 지독한 흔적이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일까? 그것은 로자 아줌마가 치매에 걸려서 자신과 생의 많은 기억을 망각하게 되었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사랑’이 남아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生은 소멸되고 기억은 망각된다. 하지만 사랑은 지독하고 강한 흔적을 남기고 쉽게 소멸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