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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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유명하지 않은 저자의 책이었다면 내가 그 수많은 책들 중에서 이 책을 선택했을 이유는 없었을 것 같다. 대략적인 내용은 짐작하고 있었으나 파울로 코엘료만의 철학으로 내가 예상하는 이야기가 아닌, 즉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방향에서 접근하고, 내가 가지지 못한 안목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여 어떤 희열감을 전해줄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이 책은 나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기대가 컸기에 실망감이 생긴 것인지, 아니면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 性을 통해 자아를 발견한다는 것이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가치관과 많이 대립되기 때문에 실망을 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은 정신분석학을 배우면서 프로이트 리비도(libido)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그의 이론에 비판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던 이유와 같은 맥락을 이룬다고 생각된다.

이 책의 주인공 마리아는 창녀다. 그녀는 평범한 여성이었으며 누구나 그렇듯이 자신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누구나 그렇듯이 내면에는 자신의 성공과 행복을 갈망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녀는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性에 눈을 뜨게 되고, 자신의 내면에 성욕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은 몸소 체험하게 된다. 그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겪는 성장과정을 지나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육체가 어른이 되었을 뿐 그녀의 자아는 정체성을 찾지 못했으므로 그녀에게 다가오는 남들과는 다른 환경에 직면해야 했을 때 그녀는 자신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욕구에 이끌려 창녀의 길을 택하게 된다. 자신의 性을 매매하는 것은 자유이며, 그것이 사회적으로 옳지 못한 행동이라는 지탄을 받았을 때 자신에게 돌아올 대가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性행위를 하는 동안 그녀가 상대에게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제공하는 위안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여 받는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창녀의 길을 택했을 때 마치 운명의 힘에 의존하듯,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운명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어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에는 유감을 표하고 싶다. 그것은 그녀에게 표하는 유감이 아닌 저자에게 표하는 유감일 수도 있다. 즉, 자신의 선택을 자신의 성향에 귀인 시켜 이해하려 하는 것보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상황에 귀인 시켜 이해하려고 했다는 점에 유감을 표하고 싶다. 그것을 환경에 적응하면 살아가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방어기제라고 이해한다면 그 유감도 별로 대수롭지 않는 것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그런 방식으로 절박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지는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내면에 꿈틀거리는 욕망과 性추동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자신을 이끈 운명의 힘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은 자신의 무의식이 의식화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스스로의 선택을 합리화 시키면서 행동과 의식사이에서 모순을 낳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해한 것이 맞다면, 저자는 프로이트의  리비도(libido)설과 같은 맥락에서 인간을 이해하고 있다. 리비도는 성욕보다는 넓은 개념으로 인간의 내면에 있는 무의식에서 비롯된 일종의 에너지이다. 그 에너지가 어느 곳에 고착되느냐에 따라서 인간을 이해하는 것으로 그것은 자신의 신체에 고착되기도 하고, 타인에게 고착되기도 한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대부분의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감정의 원인이 리비도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즉, 부모와 자식의 사랑과 친구들 사이의 우정과 자기 자신을 스스로 사랑하는 감정에도 性추동을 바탕으로 한 에너지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대부분의 이론이 그렇듯이 알 수 없는 무의식의 영역에 의해 어떤 에너지가 발생된다는 것은 의식적으로 확인이 불가능 하므로 인과오판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수많은 감정은 여러 변수에 의해서 조작될 수 있으므로 그것의 원인을 단지 본능적인 性추동에 의해서 설명하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마리아 역시 性추동을 바탕으로 발생된 감정과 에너지에 의존하여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많은 사람들을 이해한다. 마치 그녀의 머릿속은 性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과 자긍심으로 가득차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것은 삶과 자아에게 던지는 수많은 상념을 단지 性을 이해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면서 해소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내 자신이 속하는 인간이라는 개체와 그 인간들을 둘러싼 환경이 만들어낸 세계를 잘 모른다. 하지만 모른다고 해도 인간을 이해하는 것은 아주 복잡 미묘한 정신활동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정신활동에는 분명 무의식의 영역이라 불리는 性추동도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것이 전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파울로 코엘료가 그런 발상을 가지고 이 책을 썼다고 단정 짓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의 글에 등장한 마리아는 그런 발상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 묘사되었고, 그것이 나에게 불편함을 느끼게 했다.

 

그 불편함은 어쩌면 (프로이트의 말대로) 나의 업압되어있는 性적 추동이 의식화 되는 것이 두려워 부인이라는 방어기제를 쓰면서 발생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드러내는 것이 나의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발생된 괴리감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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