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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ㅣ 소담 베스트셀러 월드북 18
헤르만 헤세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1991년 11월
평점 :
품절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산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라고 한다.
삶은 모순으로 가득하고, 나의 세계는 그 모순과 맞물려 또 다른 모순을 낳는다. 내가 삶을 이해할 수 없으며, 내가 나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기에 나는 내가 만들어 놓은 알 속에 갇혀있다. 그 딱딱한 껍질은 모순을 거듭할수록 단단해지며 그 딱딱한 껍질을 깨부수는 행위는 모순이 거듭될수록 위험해진다. 하지만 새는 본래 알을 깨고 세상을 향해 비상하고자 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기에 나의 본능도 내가 만들어놓은 세계에 갇혀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끊임없는 모순을 거듭하더라도 언젠가는 비상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소망을 품고, 칠흑 같은 어둠으로 가득한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그 처절한 몸부림이 나를 비로소 새로 거듭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면, 그 처절한 몸부림을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나의 몸뚱이가 찢기고, 뭉개져 앙상한 뼈만 남게 된다고 할지라도…….
소년 싱클레어가 성장하면서 경험하는 사건들이 그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많은 것들과 맞물려 수많은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을 간접적으로 바라보면서 그에게 투영되는 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어느 대상에 내 자신을 투영시켜 간접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내 자신과 나를 분리시켜 객관화 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줌과 동시에 나의 인식의 틀 안에서 또 다른 인식의 틀을 내가 이미 만들어 놓은 편협한 세계에 한정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 가능한 것들의 모순 사이에서 나는 삶의 모순을 발견하고, 내 자신의 모순점을 발견한다. 그것은 내가 바라보는 세계와 나를 바라보는 세계가 동시에 공존한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며, 그 공존하는 것들 사이에 하나의 객체로써의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다는 것이 전부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앎이란 어디까지나 이성적인 추론과정일 뿐이며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나의 감각과 감정을 동반되는 정신세계일 뿐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불확실함의 연속이며 모호함과 애매함으로 가득한 허상일 뿐이다.
그것은 알에 갇혀있는 나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 자연스러운 현상에 의문을 던지고, 데미안의 존재에 끊임없는 회의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나의 정신세계의 혼돈이 나의 알을 깰 수 있는 아주 작은 시도가 된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며 그런 인정이 모순을 낳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또 다른 모순을 낳을수록 그 시도의 강렬함이 더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것이 나의 알에게 아주 작고 미세한 ‘금’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은 이 모순으로 가득한 글이 나의 가슴을 울린다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문자들의 움직임이 나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것이 의심스러우면서도 끊임없이 나의 뇌리를 스치는 섬광들이 나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으므로 나의 손가락은 통제력과 자제력을 상실했다. 어쩌면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인지 나의 섬광들이 문자를 타고 움직이는 것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모호함 속에서 내가 이 책의 리뷰를 쓴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알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으므로 나의 알이 깨지는 그 날까지 나는 나의 손가락의 움직임을 허락하지 않을 수 없다.
알은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