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레시피
다이라 아스코 지음, 박미옥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나는 일본 문학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많은 문학작품을 접해본 것은 아니지만, 문화의 이질감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벼운 재미 이상의 감동이나 즐거움을 느끼는 게 어려웠다. 그런 경우 대부분 등장인물을 이해하거나 감정이입을 하는 것이 어려웠는데- 이번에는 다르다. 다이라아스코의 소설은 <멋진 하루>를 먼저 읽었는데, 작가후기를 보고 또 다른 작품 <오늘의 레시피>를 안 읽을 수가 없었다.

‘책을 사주신 독자님, 고맙습니다. 다이라 아즈코, 이 바닥에서 마구 설칠 예정이오니, 오래오래 사랑해주세요. 서점에서 후기를 읽고 있는 당신, 듣기 싫은 말 하지 않을 테니 우선 사서 읽어주세요. 그냥 돌아가면 말이죠. 당신 나쁜 사람이에요. 잘 부탁해요.’

이 겸손하고 솔직하고 유머 있는 후기를 보라. 독자의 심리를 단번에 파악하고 소비를 하도록 속삭이는- 이 작가. 참 매력적이지 않은가. 이런 작가에게 현혹되거나 유혹되어 충동구매를 하는 것일지라도 다른 작품을 더 접해보고 싶었다. 때마침 신혼이라 밤낮으로 요리연습을 하던 나에게 <오늘의 레시피>라는 제목도 참 친근했다. 음식과 식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실감하고 있었던 터라 음식을 통해 들여다보는 사랑과 사람이야기-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하리라 여겼다.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참 즐거웠다.

식욕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다. 그래서 본능의 모습을 하고 있고, 의식 안에서 다양하게 표현되는 것이 가능한 소재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식욕을 통해 억누르고 있거나 억압할 수밖에 없는 많은 것들을 표출한다. 그런데 그것은 본능의 속성은 지닌지라 쉽게 드러나지 않기 마련이다. 억압하는 것과 표출되고자 하는 것의 균형이 깨지면- 의식의 반작용에 의해 회피, 합리화, 부인, 투사 등 다양한 방어기제의 형태로 표출한다.

그래서 여섯 가지 요리에 얽힌 연애 스토리는 단순하고 식상한 이야기로 치부될 수 있지만 그 안에 등장한 주인공들의 행동을 분석하고 그들의 심리를 추리하다보면 결코 단순하고 식상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아주 복잡하고 신선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리고 유머와 위트, 섬세한 관찰력으로 상황이나 심리를 잘 풀어내준 작가의 시선을 쫒다보면 소설이 아닌 내 안에 꿈틀대는 본능적인 측면과 만나게 된다. 그것은 내 안에 있는 이야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한다.

참 많은 사람을 만났고,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참 많은 생각을 했었던 지난 시간들을 되돌려보면 그 안에는 소설속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다양한 주인공들이 존재한다. 그들의 모습은 각기 다르지만 인간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녀서인지 닮은 부분도 많았다. 그때는 몰랐던 것이나 그때는 마냥 혼란스럽기만 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이해가 되고 정리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은 나에게 그런 기회를 주었다. 내 자신과 지난 시간을 들여다보기! 그리고 그것을 유머와 웃음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분명 그럴 것이다. 죽기 전에 다시 한번 먹고 싶은 게 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곧바로 대답할 수 있을 그런 맛. 그 맛을 찾는다면 앞으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는 축복받은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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