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밟을 확률 - 됨됨 이웃그림책 2
안느 장부아 지음, 장 마르크 마티스 그림, 배영하 옮김 / 됨됨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젖소가 만드는 것은 두가지! 우유와 똥.

젖소가 응가를 합니다.

목장 안에 응가를 하면 상관없지만, 길가에 응가를 하면 큰 일이 나거나 괜찮거나 둘 중에 하나.

자, 길가에 똥이 있습니다. 사람이 걸어옵니다. 똥을 밟을까요? 아닐까요?

농부 아저씨가 똥을 발견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둘 중에 하나이겠죠?

발견을 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피하면 되니까요.

그렇지만, 농부 아저씨가 똥을 보지 않았다면, 둘 중에 하나이겠죠?

밟거나 밟지 않거나.

마지막에 '퍽'의 효과음과 함께 책을 읽어주면, 아이들도 덩달아 심각해집니다. 그리곤 웃지요.

별 내용도 아닌데, 아이들은 '똥이야기'만 나오면 너무 좋아합니다.

슬쩍 똥이야기에 둘 중에 하나라는 확률 개념도 묻어서 알려줍니다.

자, 농부아저씨가 어찌해서 똥을 밟게 되는지 따라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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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구나 한 번쯤은 가보고 싶어하는 곳, 파리. 나 역시도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 아름다운 도시 파리가 실은 악취가 진동하는 더러운 도시였단다. 거리의 온갖 오물이 치마자락에 닿지 않게 하려면 높은 하이힐을 신어야 하며, 거리는 언제나 막힌 하수구때문에 질척거리고, 썩은내가 나는 더럽고 지저분한 도시였다.  대류식 난방으로 인해 언제나 매캐한 연기가 드리워져 대기마저 더러운- 겨울엔 너무 추워서 개를 데리고 침대에서 자야 될 정도였다니 당연히 목욕도 안했을 - 19세기의  파리에 착안하여 씌여진 소설이 향수란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향수제조가 발달할 수 밖에 없는 그 파리에 향수제조인이 있었다.

지금도 앞으로도 없을 특이한 한 남자가 살아온 이야기가 있다. 작가만이 그에게 관심을 기울인 유일한 사람일 것 같은 생각이 들만큼 세상사람 누구에게서도  단 한번도 따뜻한 눈길 한 번 받은 적 없는 가엾은 남자 그르누이. 생선썩는 악취속에서 사그러질 운명에서 어렵게 살아났지만, 그에게 주어진 삶은 그리 녹녹한 정도가 아니라 늘,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자신을 처절하게 지켜야하는 고단함이다.

 

아무런 냄새도 없는 남자. 세상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해서 사랑이 무엇인지, 미움이 무엇인지, 즐거움과 슬픔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온 그에게 있어서 유일한 관심은 냄새이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오로지 향기뿐이며, 자신만이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것 또한 냄새 혹은 향기이었으며, 그는 머리 속에서 그려지는 향기의 궁전에서만 희열을 느낀다.  향기만이 삶의 존재이유인 것이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희노애락을 모르고 살아가는 삶은 어떨까? 그는 세상과 단절된 듯 자신만의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런 그에게, 단 한가지 소망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향기로운 자신만의 향수를 갖는 것.  이것만 있으면, 초라하고 비천한 자신도 남들에게 관심을 받고 사랑받을 수 있는 당당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설이지만, 세상으로부터 완벽한 무관심 속에 살아가는 그의 삶이 측은했다. 만약에, 그의 어머니가 그를 방치하지 않았다면- 한 번이라도 안아주었다면, 아니 한 번이라도 따뜻한 눈길을 주었다면- 아니면 사랑과 헌신으로 그를 돌봐줄 양부모라도 아니 작은 관심이라도 보여준 누군가가 있었다면 어땠을까를 줄곧 생각하게 된다.(아이의 엄마가 되면 어쩔 수 없다. 모든 안타깝고 아픈 사연의 원인을 사랑에서 찾으려 하는 것은 부모가 되고 나서 달라진 부분이다.)

 

그토록 아름다운 향수를 갖기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지만 - 물론 그는 아무런 죄의식도 없다. 그에겐 사랑과 증오도 도덕과 양심도 배울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게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몰랐다. 불쌍한 영혼이여 - 정작 그 결과물 뒤에 느끼는 공허함은 뭐지?

그르누이는 혼란스럽다. 이것만 있으면, 이것만 뿌리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를 사랑하리라 상상했다. 물론, 그가 향수를 뿌리자 모든 사람이 열광하고, 미친듯이 그를 사랑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 모습은 머리 속으로 상상하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라, 환각파티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은 광란의 모습일 뿐이다.

 

향수를 사용하지 않는 나에게선 어떤 냄새가 날까? 남편의 말에 의하면 나만의 독특한 냄새가 있다고 하는데,  정작 나는 나의 냄새를 알지 못한다. 그르누이처럼...

나에게 있어 가장 기분좋은 향기는, 아이의 볼에 뽀뽀할 때 아이의 입술에 뽀뽀할 나는 기분좋은 살냄새이다. 이렇게 매일 부비며 뽀뽀하고 안아주면서 느끼는 엄마의 사랑을 그르누이는 받지 못했으니, 이보다 더 가엾은 영혼이 있을까...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는 냄새 혹은 향기로 지칭되는 세상의 온갖 냄새에 관한 보고서처럼 그 세계가 무궁무진하게 펼쳐진다. - 내가 모르는 그 세상에 별천지가 있었다.  

작가의 꼼꼼하면서도 치밀한 상상력에서 태어난 어느 버림받은 자의 처절한 삶에 대한 몸부림은 연민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사랑하며 아끼며 살아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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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04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화로만 봤는데, 영화도 괜찮았어요 ^^
책으로도 한번 보구 싶네요^^

꿈꾸는자 2007-07-05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화는 보지 않았는데, 괜찮다하시니 시간내서 봐야겠네요^^
그 섬세한 향기의 향연을 어떻게 그려냈을까요? 영화로는 표현하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죠.
 
앞으로 10년, 부자될 기회는 주식에 있다
김준형 외 지음 / 더난출판사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별 다섯개다.  솔직히 별 다섯개까지 기대하고 읽은 책은 아니었다. 시골의사의 추천사가 들어있어서 과감하게 선택했다. 이러니, 출판사들이 유명한 사람들의 추천사를 광고에 활용을 하지. 바로, 나같은 사람들 때문에... 그래도, 그가 추천한 책인데, 기본 이상은 하겠지 하는 생각이 선택의 중요 기준이 되었다.

요 근래에 읽은 주식 관련 책 중에 으뜸이다.  총 367페이지라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로 읽어내려갈  수 있게 쉬우면서도(개인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포인트는 콕콕 집어준다. 

 

누가 얼마를 투자해서 원금의 몇십~몇백배에 달하는 성공을 거두었더라는 성공담이 담긴 책도 좋은 책이지만, 그들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왜? 그들은 고수이고 나는 아니니까.  알아야 참고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종류의 책들은 이렇게 했더니 성공했더라는 성공스토리이기 때문이다. 기본 지식을 바탕에 깔고 있어야 그들의 방법 중에 나에게 맞는 방법을 취사 선택 할 수 있을 것이다. 작은 돈에도 벌벌 떨고, 혹시나 내가 산 종목이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새가슴인 보통의 개미'들이 따라하기에는 무리가 있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이 반가웠다.  시골의사의 추천사처럼 거시와 미시를 아우르면서도 내용도 알차다. (칭찬을 과하게 하는 것 같다^^  나같은 주부들이 많이 읽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별점을 다섯개나 주었다.)

 

하다못해 요즘유행하는 간접투자방법(각종 적립식, 거치식 펀드들..)을 이용하려고 해도 골라야 하는 상품이 수두룩 하다. 이 상품들도 역시 주식과 채권시장을 기초로 해서 나대신 펀드매니저들이 주식과 채권 등에  투자하는 것이니 어차피  주식시장을 모르고는 '돈'을 이야기 할 수 없게 되었다.

점점 금융상품이 고도로 세분화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에는 생소했던 상품들이 이제는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적어도 이런 게 있다더라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턱대고 가입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런 상품인 줄 몰랐어요~내 돈 돌려주세요. 손실난 것 책임지세요.' 해봤자  내 목만 아프다. 그런 상품인 줄 알고 투자해야 하는게 너무나 당연하다. 왜냐하면, 내 돈은 소중하니까...

 

금융지식을 모르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어쩌겠는가 공부해야지...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한 것은 자명한 일. 책 어딘가에 인용되어 있는 "머리를 빌릴 수 있을 정도의 머리는 있어야 한다."는 부분은 꼭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책은 주식투자 - 직접 주식을 사고 팔든, 각종 펀드를 가입하든 -를 하는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꼭 알아야 할 내용을 쉽게 설명해 놓았다.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들을 요점정리해주는 효과도 있었고... 경제학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조금 지루한 부분도 있을 수 있으나, 이것도 모르고 투자를 한다면 깡통계좌까지는 아니어도 잃지 않으면 정말 다행일 것이다. 재테크 서적에서 강조하는 첫번째가 제발 냉장고나 옷 살때 들이는 노력만큼이라도 공부하고 투자하라는 것이다. 당연한 말씀...그러나, 책을 읽을수록 점점 더 어렵다. 공부는 하면 할수록 어렵다더니...

 

 

책에서,

 

"황소(Bull,강세장)도 돈을 벌고, 불곰(Bear, 약세장)도 돈을 벌 수 있지만, 돼지(Pig, 탐욕)는 결국 도살장으로 끌려갈 뿐이다. -미국 투자속담- p.108

 

"푼돈에 현명하고 목돈에 바보스럽다" ......돈 잃는 사람들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눈앞의 작은 이익에 연연하다 보면 큰 흐름을 놓친다. 콩나물값 아껴 모은 돈으로 남 좋은 일 시키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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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 여자, 돈, 행복의 삼각관계
리즈 펄 지음, 부희령 옮김 / 여름언덕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화두처럼 던져지는 이 질문 때문에 책을 구입했다. (내용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제목만으로도 고민을 하게 만들었으므로)

어딘지 어수선하고, 소제목을 굳이 붙이지 않아도 좋을만큼  비슷한 내용의 반복처럼 늘어졌다. 그래도, 책을 읽는 내내 '지나온 내 삶을 돌아보게 했으며, 그동안의 삶들이 주마등처럼 머리 속을 지나갔다.'

 

몇 년 전부터 친한 이웃들과 친목계를 한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밥이나 먹자는 거였다. 아줌마들의 푼 돈이니 금액도 소소하다. 그래도, 그게 반 년쯤 모이면 꽤 되는 액수이다. 남편에게 곗돈을 탔다는 말을 했다고 하니, 계원인 친구들이 난리가 났다. 그걸 남편에게 말하면 어떻게 하냐고..."아니, 왜? 말하면 안 되는거야?" 는 내 질문에, 남편 몰래 만들어 놓는 비상금인데, 남편에게 말했다고 지청구를 꽤 들었다. 남편들끼리도 친하니, 일단 남편 입단속부터 시켰다. 그리고, 이후로는 남편에게 말하지 않았다. 친목모임에서 쫓겨날 판이니 어쩔 수 없었다.  궁금했다. 왜? 비밀로 해야하는지를...사고 싶은 물건을 살 때 쓰거나..암튼 그런 걸 사기 위해서란다. 그걸 왜 비밀로 하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냥 사면 되지....그럼, 난 몇 번 탄 곗돈을 어찌했냐? 남편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그냥 우리들의 통장에 넣어두었다. 남편에게 숨기면서 사고 싶은게 없으니..그대로 통장에 넣어두는 수밖에...(사실 난, 비상금이 없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궁금증이 풀렸다. 여자들은 자기 물건을 살때나, 혹은 비싼 물건을 살 때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서, 소비내역이 훤히 드러나는 신용카드 대신 현금을 ---가끔은 꿍쳐두었던 비상금으로-- 사용한단다. 이런,,,,그런데, 이게 상당히 보편적이라니.....뭐, 죄책감을 느낄 필요까지야 없지 않은가?

 

여자와 남자는 돈에 대해서, 성공에 대해서 다르게 배우고 자라왔다. 사실이다. 이전보다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여자들이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은 내면적으로는 전통적인 사고방식 -예를 들자면, 남편은 돈을 벌고, 여자는 가정을 지키는 -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책에서는 말한다.  직장에서도, 경제적으로도 안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은 누군가 나보다 더 강한 남자가 나타나서 자기를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으며, 여자가 돈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은 금기시 되는 분위기때문에 대부분의 여자들은 돈에 대해 걱정은 많이 하지만,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걱정만 한단다. 그래서, 위험에 무방비상태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여자들에게 닥칠 위험은, 이혼이나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 혹은 평균수명의 증가로 인해 남자들보다 더 오래살게 될 가능성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추락이다.  이런 치명적인 위험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은 아무런 준비를 해 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제시된 것이 이제 여자도 경제에 눈을 뜰 것, 남자를 너무 믿지 말 것(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남편 몰래 비상금을 만들어둘 것(이렇게 노골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백마 탄 왕자를 꿈꾸지 말 것(가난한 자와 사는 것도 힘들지만 부자와 사는 것은 더 힘들다고 저자는 말한다. 누군가의 말을 인용하면서---이 부분은 나도 동의한다.  ),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지도 말며, 일어나지도 않을 미래를 위해 불안해하지도 말라는 것 등이다.

 

 책에서는, 많은 여자들이(간혹 남자들도) 지나치게 소비를 하는 것이 문제라고 되어있다. 상위 20% 의 소득계층에서의 소비수준을 대부분의 중산층이 그들과 비슷하게 소비하려고 하는데서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저자의 이력탓인지 - 저자는 아무런 대비나 낌새도 알아 차리지 못한채 이혼을 당한다. - 돈과 경력의 중요성에 대해서 (심하게 말하면, 믿을 남자 하나도 없다. 결국은 믿을 구석은 '나'밖에 없다는 의미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지나치게 강조한 부분도 없지 않지만, 적어도,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특히, 아이를 양육할 책임을 지고 있는 엄마이면서 여자인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는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할 만큼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럼, 이제부터라도 나만의 '비상금'을 만들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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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노아 > 최고의 역사 이야기꾼, 이덕일

졸업을 하고 학교라는 곳에 첫발을 내딛던 그 순간, 온갖 걱정에 휩싸여 있었다.  전공을 했다지만 학생들을 가르칠 만한 컨텐츠라는 게 내 안에 있는가...라고 자문했을 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몸만 어른인 것 같았고, 나 역시 아직 학생인 것만 같던 그때....  첫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서 엄청 머리를 싸매었다.  3월 2일이 개학인데 하루 전인 삼일절 날에 나는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고 있었다.  정말, 수업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대책이 서지 않았다.

첫수업을 어떻게 했는지 알지도 못한 채 아무튼 수업은 마쳐졌다.  다행히 학생들 반응은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이후의 수업은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어떤 수업을 할 것인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나에게 지침이 될만한 참고서, 도우미 책이 필요했다.  그때, 일년 전쯤부터 나를 열광시켰던 사람이 생각났다.  탁월한 글솜씨와 익히 새겨둘 필요가 있던 문제 제기.  무엇보다도 즐겁게 읽혀졌던 그 책 "역사에게 길을 묻다..."

 

 

 

 

내가 배웠던 역사책을 성역처럼 생각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책이 그토록 문제가 많다는 것을 처음으로 인식하게 했다.  내가 즐겨 보던 사극들, 그 사극의 문제점과 실제 역사와의 간극에 대한 심각한 고민도 이 책을 통해서 처음으로 해 봤다.  역사 속의 사건 사고 인물들과 오늘을 사는 이 시대의 사건 사고 인물들이 교묘하게 겹쳐짐을, 그래서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배워지는 인간의 모습도, 역시 이 책을 통해서 새삼스레 깨달았다. 

재미와 교훈, 정보를 두루 주면서 은근 감동까지 안겨주었던 이 책은, 시작할 때 제시했던 문제점을 재차 환기시키며 독자에게 다음 나아갈 길을 물으면서 끝이 난다.  너무도 신선했던... 반가운 만남.

그래서, 이 책을 쓴 이덕일씨의 다른 책들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두번째로 만난 것은 "누가 왕을 죽였는가"라는 제목의 책.  제목도 어찌나 극적으로 지었는지 귀가 솔깃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학교 도서관에 두권을 신청해서 빌려 읽었는데 책 내용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나도 소장해야지... 결심했건만, 그 순간 책이 절판되었음을 알았다. (학교 도서관에서 구한 게 용했다.) 구하고 싶어도 구할 길이 없었다.  결국, 책 한권을 통째로 복사해서 분철을 했다.  그렇게라도 소장하게 되었음을 얼마나 기뻐했던가.  시간이 흘러 책이 다시 출간되었을 때, 제대로 된 표지를 갖고 소장하게 된 것이 무척 기뻤다.  책 제목은 "조선왕 독살 사건"으로 바뀌었는데, 첫번째 제목보다는 덜 마음에 들었다.

조선의 임금들이, 그토록 독살 의혹을 많이 받았다는 것은 충격 그 자체였다.  누군가는 의혹만 있을 뿐 물증이 없었지만, 또 누군가는 너무도 명백한 증거들이 있어서 타살임을 부인할 수가 없었다.  단지 기막힌 죽음만을 알려준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사정이 나오게 된 배경을 그야말로 '드라마틱하게' 전개하고 있었다.  웬만한 스릴러보다 더 긴장감 높았고,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거의 섬뜩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참으로 안타깝고 또 안타깝고... 채 이루지 못한 조선 왕들의 꿈과 야망과 희망들에 나는 여러 날 마음이 쓰이고 아파했다.

이젠 멈출 수 없게 되었다.  '이덕일'이라는 이름 석자는 내게 충격 그 자체였고, 내 역사 공부에 지대한 스승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누가 왕을 죽였는가"에는 같이 실리지 않은, 그러나 가장 극적인 삶을 살았던 사도세자... 그 이의 자취도 나는 찾아가기 시작했다.

 

 

 

 

사도세자의 고백... 아, 또 다시 제목부터 나를 울린다.  얼마나 처절한 울음이었던가...

사도세자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아버지 영조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왕이 되었는지, 그의 치세 기간 동안 어떠한 사건들이 있었는지,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데에 말리기는커녕 동조했던, 아니 등 떠밀었던 세력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그 저간의 사정들을 알아가면서 나는 사도세자와 함께 분노했고, 그와 함께 오열했으며 목 메인 울음을 토해야 했다.  이 책을 읽고 일년 여 뒤 수업을 위해서 책을 다시 읽으면서 여전히 내 가슴은 타올랐다.  그리고 수업 시간.  나처럼 무섭게 몰입하는 학생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마지막 종이 치는 순간 절묘하게도 나의 마지막 말은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니라."로 마쳐졌고, 그 순간 또르륵 눈물 흘리는 학생을 보고 말았다.  그리고, 나도 울컥!하고 말았다.  다행히 같이 울고 나온 것은 아니지만, 꽤 인상 깊었던,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이야기 수업'을 선호하게 된 것은 사도세자 때부터는 아니었다.  고등학교 국사는 2학기 시작할 때 조선사를 들어가는데 개학하던 날, 으레 수업이 없을 거라 여긴 나는 부끄럽게도 수업 준비를 해가지 않았다.  그런데 수업은 있었고, 학생들은 그 흔한 '놀아요~' 소리도 안 하는 것이었다.  맙소사!  선생 체면에 (수업 준비를 안해 왔으니) 놀자~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한 시간 수업을 그냥 버릴 수도 없었다.  어쨌든 수업은 시작해야 했고, 나는 무언가를 학생들에게 내주어야 했다.

그래서, 조선사를 쭈욱 한달음에 개관을 했다. (졸지에 말이다.)  어쩌지? 하고 시작했는데, 뜻밖에도 말은 술술 잘 나왔다.  한 시간을 한 번도 쉬지 않고, 학생들 역시 졸지도 않은 채 서로 재밌게 수업이 마쳐졌다.  그때, 수업의 방향을 "즐겁게, 재밌게, 감동적으로..." 잡았다.  다행히 나의 학생들은 요즘 학생들 답지 않게 '감수성 풍부한 여고생'들이었고, 호소하는 그대로 흡수할 줄도 알았다.

그때 내가 의지했던 책은 바로 이거였다.

 

 

 

 

'사화'로 보는 조선 역사였지만 고려말부터 조선 창립기의 일도 아주 자세히, 역시나 드라마틱하게 설명해 주었던 책이다.  이전에 미처 몰랐던 새로운 이성계와 정몽주, 정도전을 나는 이 책에서 만났다.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는, 혹은 과장되고 미화된 야사 속의 조선이 아니라, 실록에 의해 입증되는 좀 더 사실적인 조선을 만났던 것이다.  네 차례나 이어지는 사화의 폭풍우를 지나니 '당쟁'이라는 더 큰 해일을 만나고 말았다.

그 사이사이에 양념처럼 송시열을 만났고 정약용과 정조를 만났다.

 

 

 

 

숙종과 인현왕후, 장희빈에 대한 감춰졌던 이면을 '운부'를 통해서 만났고, 그 바람에 영조와 사도세자, 그리고 정조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내게 있어 멈춰짐 없이 하나의 서사로 이어졌다.  역시나 절판된 바람에 도서관을 통해서 빌려 읽은 운부는, 친한 지인이 생일 선물로 어렵게 구해주는 바람에 고맙게도 소장 책이 되고 말았다.  출판사를 수소문하고 온갖 서점을 수소문한 끝의 쾌거였다. ^^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는 본문의 내용이 다소 어려웠다.  전문적인 내용이 많았고 워낙 많은 사람이 등장하는지라 배경지식이 필요했다.  그때는 "살아있는 한국사"를 겸해서 같이 보니 도움이 되었다.  마지막에 작가 후기 비스무리하게 에필로그가 있었는데, 그 부분은 18세기부터의 조선사의 흐름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방면에 걸쳐 보탤 것도 뺄 것도 없이 진국으로 요약이 되어 있었다.  이는 19세기 후반부터 개항기를 맞이할 때의 조선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고, 역시나 나의 수업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2학기 수업만 도움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1학기에는 선사시대부터 고조선사, 삼국사, 고려사 등을 배우게 되는데, 나에게 흥미를 주고 재미를 주고, 그것을 학생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길을 이덕일씨 책에서 역시 많이 찾게 되었다.  고구려에 신라에 백제에, 그토록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책장을 넘기며 나는 황홀감과 함께 맛보았다.

 

 

 

 

무지했던 것을 알아가는 기쁨과, 미처 생각지 못했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자부심, 막연히 알았던 옛 이야기를 영화처럼 들여다 보는 재미는, 그의 이름이 박힌 새 책이 나올 때마다 나를 흥분되게 만들었다. (다행히 그는 부지런했고, 다작을 했으며, 그럼에도 집중도는 떨어지지 않았다.)

정사만 파고들었던 것도 아니다.  톡톡 튀는 즐거움과 맛을 선사했던 수수께끼 시리즈도 내게는 반가운 만남이었다.  또 우리 역사 속에서 중요한 획을 그었던 여인들을 재조명한 것도 내게 있어 큰 수확이었다.             


 

 

 

 

 

내가 했던 수업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은 '임진왜란'이었다.  많이 가슴 아픈 전쟁에 관한 내용이지만, 그 속에 너무도 사모하는 장군님이 계셔서 준비할 때에도, 수업에 임할 때에도 언제나 신이 나곤 했다.

그 길을 열어준 것이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1권에서 이순신과 원균에 대한 편견이었다.  오래도록 죽일 놈! 소리를 들어왔던 그 원균이 사실은 조금 억울하다는 것.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참을 수 없을 만큼 궁금증이 일었다.  관련 서적들을 찾아보고 좀 더 진실에 가깝게 다가가려고 애를 썼다.  거기에는 이덕일씨의 책 외에도 역사스페셜이나 그밖에 영상 자료도 큰 몫을 해내었고, 그 한권으로 나를 팬으로 묶어버린 김훈의 "칼의 노래" 역할도 무시할 수 없었다.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였지만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도 마찬가지의 자극을 내게 주었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나이다."를 말할 때에는, 마치 내가 이순신이 된 것처럼 그 감정에 사로잡혀 간곡하고도 단호한 어조가 되었다.  앞서도 잠깐 얘기했지만, 내가 수업 중에 학생을 처음으로 울린 부분은 바로 이 대목이었다.  그리고 울둘목 전투를 얘기할 때에는 학생들이 너무도 집중해서 수업을 듣는 바람에 '시선'이라는 게 이토록 뜨거울 수 있다는 것을 온 몸으로 체득하기도 했다.  그 '몰입'은 나를 다시 '몰입'하게 만들었고, 일종의 카타르시스도 느끼게 했다. 

늘 설명만 하는 수업이 아니라 언제나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 수업이었던 탓에 학생들의 관심은 높았고 수업에 대한 기대나 반응도 늘 높았지만, 그게 언제나 순기능만 할 수는 없을 거라는 불안감이 내게 있었다.  단지 '재미'만 주어서는 안 됨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책을 읽을 때에도 언제나 고민이 같이 따라왔다.  역사속 시간을 헤집어 나갈 때에는 호기심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일종의 두려움과 걱정도 동반하고 있었고, 그 속에서 깨닫고 바뀌어가야 할 어떤 의식 같은 게 필요했었다.  다음의 책들은 그런 생각들을 일깨우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특정 인물(이회영/김종서)이나 특정 주제(고조선, 개혁, 혁명, 투쟁)로 묶은 책이었고, 그들의 삶 속에서, 그들이 밟아 나갔던 역사 속 과정 속에서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강렬한 무언가를 만나게 하였다.  역사가 결코 과거 속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고 있는 오늘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고, 그대로 투영해 내는 거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새삼스럽게 알려주었던 책들이다.  특히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몸소 체험한 이회영은, 내용은 다소 어려웠지만 자부심을 알게 해준 존재였고, 김종서 평전 '거칠 것이 없어라'는 채 이루지 못한 꿈과 희망에 역사에서 있을 수 없는 'IF'를 자꾸 되뇌이게 하는 책이었다.

이밖에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책에서도 나는 큰 도움을 많이 받았고, 최근에 주제사로 묶인 책 두권도 제법 흥미롭게 읽었다.(조선 최대 갑부 역관, 한국사의 천재들-감동은 별로 없었지만)


 

 

 

 

 

다행히도 과거에 절판되었거나 품절되었던 많은 책들이 복간되거나 개정되어서 다시 나오고 있어 책이 없어 못 볼 걱정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그 위대한 전쟁"은 '오국사기'의 개정판이고,  "교양한국사"는 '살아있는 한국사'의 개정판이며, "조선 선비 살해 사건"은 '사화로 보는 조선사'와 '당쟁으로 보는 조선사'의 개정판이다.

나로서는 이제 사놓고서 아직 보지 못한 "장군과 제왕"을 보는 즐거움이 남아 있다.  소망이 있다면, 세종 시절을 배경으로 한 역사책을 더 써주셨음 하는 것이고, 이덕일씨의 박사 논문 주제였던 동북항일 투쟁사가 좀 더 소상하게 설명되어진 책이 나왔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4권도 열심히 기다리는 중이다. ^^

 

 

 

 

사족 하나, 이제는 수업 준비 안하고 학교 가는 일은 절대 없다.  밤을 새워서라도 준비는 마친다(>_<)

사족 둘, 이덕일씨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나처럼 늘 후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안다.  다른 각도의 접근도 귀기울이고 있다.  여전히 이덕일씨의 팬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알라딘 주최의 이덕일씨 강연회는 가지 못했다.  그날 이승환이 열린음악회에 출연하는 바람에 방송국으로 직행했다.....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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