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 일기 쓰기부터 소설 쓰기까지 단어에서 문체까지
안정효 지음 / 모멘토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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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효 작가는 아마 《하얀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의 원작자로 더 유명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는 소설가이기 앞서 백 권이 넘는 외국문학을 번역한 역자이기도 하다. 그가 번역한 책 목록을 살펴보면 상당히 익숙한 작품들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나는 번역 역시 엄연한 창작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에 드는 외국 소설을 읽었을 때 내가 눈여겨 보는 부분은 역자가 누구냐는 것이다. 역자에 따라 걸작이 졸작으로, 졸작이 걸작으로 탈바꿈하는 사례도 심심찮게 보아왔기 때문. 소설가이자 역자인 사람을 굳이 찾아본다면야 안정효 작가 한 명뿐일까. 다만, 두 분야 모두 그렇다 할만한 성취를 이뤄낸 사람은 드문 듯하다. 하여, 소설가로서, 또한 역자로서 작가 안정효가 생각하는 글쓰기란 어떤 것일까 알고 싶어 이 책을 펼쳤다.


‘일기 쓰기부터 소설 쓰기까지 단어에서 문체까지’라고 부제에서 언급하고 있듯 문장론부터 시작해 소설 쓰기까지 다루는 백과사전 같은 책이다. 500페이지면 결코 얇은 편이 아니건만 두께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다룬다. 보통 이야기를 지어내는 방식에 치중하는 작법 책, 쓰기라는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춘 글쓰기 책 등 이런 부류의 책들도 엄연히 분야가 나뉘는데 이 책은 그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는 게 특이하다. 그럼에도 대충 넘어가는 챕터가 없다는 게 장점. 일테면 “심화는 다른 책으로 하시구요.” 같은 느낌을 주지 않아서 마음에 든다. 이렇게 많은 부분을 다루면서도 꼼꼼하게 엮인 책을 읽은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 다만 제시하는 방법들 가운데 몇 가지는 너무 저자 개인적 상황에 맞춰져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읽다 보니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책에서 저자는 글쓰기 관련 서적들을 읽는 것도 좋지만 ‘자신만의 원칙’을 만드는 것이 우선되지 않으면 다 부질없다는 점을 먼저 강조한다.




나에게 원칙이 없으면 선택의 여지도 없고, 그래서 타인들의 원칙을 노예처럼 따르기만 할 따름이다. 먼저 나에게 원칙이 있어야 타인의 원칙을 만날 때 비판하고 취사선택 할 능력이 생겨난다. 그래야 나 스스로 계속해서 새로운 원칙을 만들어낸다.


p.24



앞선 아쉬움은 바로 저자의 이러한 가치관에서 형성되었던 것. 틀린 말이 아니기에 반론의 여지도 없다. 쓰는 법은 차치하고 읽는 법을 주제로 한 책도 수없이 쏟아지는 요즘 아니던가. 선택의 다양성이 늘어나는 건 독자로서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남들이 만든 방법을 취하기 전에 비록 효율적이진 않더라도 나만의 원칙을 먼저 만들어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나만의 원칙이 없기 때문에 여태껏 남들이 만든 원칙들만 노예처럼 주워섬겼던 것이 아닌가 뜨끔하기도 하고. 특히 ‘쓰기’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 없이는 불가능한 행위인데 요령 따위를 수십, 수백 가지 익힌다고 해서 그게 될 리가 없으니 말이다. 저자는 ‘능력 대신 요령을 익히면, 그만큼 손해를 본다. 손해를 보는 듯싶지만 남의 일까지 대신 다 하는 사람은 능력 또한 남의 몫까지 얻는다. 그러니까 손해를 봐야 손해를 안 본다’(p.21)라고 말하며 나만의 원칙은 온갖 요령을 주워섬기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바로 미련하리만치 힘들게 쓰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임을 역설한다.


여담이지만,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내가 쓰는 문장에 ‘있다’, ‘수’, ‘것’이 이렇게나 많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저자는 이른바 ‘있을 수 있는 것’을 문장에서 모조리 없애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형적인 번역체이기 때문. 커리어 통틀어 번역과 소설 쓰기에 매진해 온 안정효 작가의 충고이기에 허투루 넘길 수 없지 않은가. 이 세 요소가 문장의 가독성과 읽는 맛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모든 글을 천편일률적이게 만들어 개성을 죽는다고 한다. 지금은 덜한데 이 책을 읽었던 시기 한동안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저자의 지적을 접한 이후 내 눈에는 온통 ‘있을 수 있는 것’만 보이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습관처럼 읽던 인터넷 기사와 잡지 칼럼, 자주 방문하는 블로그까지. 저 ‘있을 수 있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는 읽는 게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문제는 덩달아 쓰는 것도 힘들어졌다는 사실. 혹시나 내 문장에 있다와 수 그리고 것이 포함되어 있지 않나 자꾸만 의식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생산력마저 떨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니 저자의 지적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혼자 유난을 떨었던 면도 없지 않다.


눈치챘겠지만 나는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최대한 줄인다고 줄인 게 이 모양. 한동안은 저 ‘있을 수 있는 것’을 철두철미하게 문장에서 몰아내고자 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생각보다 이게 어렵다. 있다, 수, 것 없이는 논리적인 문장을 쓸 수(또!!!) 없는 지경에 이른 것(또 또!!!)이다. 그래서 지금은 의식하지 않고 우선 초고를 작성한 후 퇴고할 때 불필요한 부분만 줄이려고 한다. 사실 저것들을 굳이 배제하지 않아도 좋은 문장을 써내는 작가들도 많지 않은가. 또한 저것들을 문장에서 몰아낸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글이 된다는 보장도 없다. 이런 걱정을 하기에 앞서 한 자 더 써내는 게 지금 내게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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