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
김종옥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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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 - 김종옥 지음


73년생의 이 작가는 2012년에서야 비로소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소위 '등단'이란 것을 했다고 한다. 1년 뒤 같은 작품으로 2013년 젊은 작가상 대상을 수상하여 이 단편집의 첫 출간에 이른 듯 하다. 이 바닥에선 어쩌면 늦깎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작가의 최근 2~3년간의 단편을 모은 이 소설집의 제목은 이 소설집에 포함된 또다른 단편의 제목이기도 하다.


12개의 단편을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무척 낯설다는 점이었다. (사실 '12월10'일이라는 단편집의 손더스라는 작가도 다른 작가들과 많이 달랐고, 처음 읽은 버지니아 울프도 '등대로'라는 작품 속에서 무척 달랐다. 그렇게 '다름'이 일반적으로 접하는 모습이기에 '다름'이 당연하게 보일 수 있지만, '다름'은 그래서 작가들에겐 더욱 어려운 과제가 되고, 그래서 소설이 가질 수 있는 '가치'의 하나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특히나 요새 같은 '표절'의 시대엔 더더욱. )


낯설음. 다른 말로 하자면 그동안 읽던 것들과 많이 달랐다고나 할까. 그러고 보니, 문학상 수상작을 읽어본 지가 꽤 된 것 같다.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는 어디일까. 수많은 소설들을 읽어왔지만, 한국의 현대 문학이라는 카테고리는 참으로 오랜만에 읽은 듯 하다. 그래서 '다름'이 더욱 강하게 다가왔는지도.  같은 한국 사회의 한국 사람을 보는 것이어서일까. 분명히 잘 아는 사회이고 사람들인데, 이 낯설음은 무얼까. 다른 시대, 다른 사회이기에 다를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잘못된 전제인지도 모른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허상이었을 수도 있다.


자본주의 한국에서 소설 문학의 '소비자'로서 살아 오면서, 대략 가지게 되는 느낌은 이 바닥도 포화 상태라는 안타까움이다. 해외의 기라성 같은 작가들의 최신작의 번역물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와중에 지난 시대의 걸출한 작품들도 세계명작이란 이름으로 갱신을 거듭한다. 쏟아지는 수많은 선택 앞에서 '소비자'로서의 나는 큰 고민 안하고 늘 안전한 선택을 하게 마련이다. 해외 베스트셀러 번역물 아니면, 세계 명작.


그런 와중에 우연히 접하게 된 이 한국의 현대 문학 작품. '신춘문예', '젊은 작가상', 심지어 '문학동네'라는 출판사 마저 오랫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작가의 문체, 생각을 풀어나가는 방식. 모든 것이 낯설다. 그 낯설음은 만만치 않은 저항감으로 다가온다. 편안하지 않고 불편하다. 그러다 문득 생각해본다. 편안하고 익숙한 읽기란 애시당초 얻을게 적은 읽기일 수 밖에 없지 않나. '12월 10일'이나 '등대로' 등도 만만치 않게 불편했다.


첫 단편인 '그녀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에서부터 이 단편은 참 다르게 다가온다. 특별한 사건 없이, 담담하게 일상을 그린다. 일상의 한 순간에 몰려오는 기억들. 다시 돌아와 마주한 현실. 특별하게 없다. 아쉬움도 크지 않다. 기억은 흐릿하고 현실은 남루하다.


이어지는 몇개의 단편들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작은 우연이 몰고오는 기억을 통해 과거를 반추한다. 그 과거는 뭔가 흐릿하다. 아쉬움이 드러날 법한 기억을 작가는 무심한 듯, 냉정한 듯 건조하게 서술한다. 여기서 드러나는 독자와의 거리. 소설 속의 주인공은 독자가 이해하기 힘든 '타자'로서의 거리를 계속 유지한다. '공감'의 순간, '동일화'의 순간은 찾아오지 않는다. 누구나 있을 법한 기억들을 참으로 낯설게 그려낸다.


많은 내용이 작가의 개인적인 체험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몇몇 단편은 서로 이어지기도 하는 듯 하고, 적어도 같은 세계를 공유하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이 가운데에도 다른 단편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작품들이 있다. '유령의 집', '거리의 마술사', '방학식', '크리스마스 포커' 등의 작품에서 작가는 또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독특한 설정을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나가는데, 묘한 필력으로 눈을 떼지 못하고 소설의 주인공에게 몰입하게 한다.


읽는 내내, 다 읽고 덮으면서도 참으로 새롭고 독특한 작품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맨 뒤의 문학 평론가 해설을 찬찬히 읽으면서 작가의 작품을 다시 돌아보기도 하면서, 그 새롭고 독특함이 더욱 무겁게 다가왔다. 그런 새로움 가운데 돌아보는 우리네 삶은 이전과는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되는 듯하다.


"기억이 결국 흐릿한 것이 과거에 '지금'을 제대로 붙잡아 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면, 그럼 나는 '오늘'은 어떻게 '지금'을 제대로 붙잡아낼 수 있을까."


문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내가 이 작가의 평생에 걸친 관찰과 사유가 담긴 작품들을 며칠만에 읽고서 무슨 말을 궁시렁 거리는 것 부터가 작가에 대한 실례라는 생각이 들어서 조심스럽기도 하다. 이 작가가 오늘의 나와 같은 시대를 가까운 거리에서 살아온 동시대인이여서 더 특별하고 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2015년이라서 새롭고 독특하다는 것이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장점임을 실감한다. 표절 의혹의 소용돌이가 한국 문학 뿐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이슈가 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효율'과 '수익'이라는 상대적이고 제한된 가치가 분야를 막론하고 침투해 들어가서 마치 '절대' 인 양 우상이 되고 있는 현실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어찌보면 쉬워 보이는 길을 가기 보다, 오랜 시간 동안 꿋꿋하게 자기만의 세계, 자신만의 시각과 스타일을 고수하며 쉽지 않은 길을 걸어온 작가에게 동시대인으로서 격려를 보내고 싶다. 다음 작품을 또한 기대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삶의 모습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담아내는 우리의 작가가 귀하다.


(2015.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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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아홉 번의 종소리 1 아홉 번의 종소리 1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 / 블루프린트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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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세이어즈의 <아홉 번의 종소리> 입니다.

영국의 오래된 지방 도시에서 일어난 사건을 주인공인 피터 윔지가 풀어나가는 구성입니다.

일반적인 추리소설의 문법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차근차근 진행합니다.
피터 윔지 자체가 본문에서 '셜록 홈즈 스타일' 이라고 평판을 받는다고 나옵니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 현재의 사건으로 이어지면서 조용한 마을은 갑자기 시끄러워집니다.
그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과정이 나름 재미있습니다.

물론 현대의 최신 스릴러 만큼의 기법적 완성도를 보여주지는 못하다고 생각이 됩니다만,
당시 영국 사회의 한 면모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또다른 재미입니다.

특이한 것은 교회에 달려 있는 음이 서로 다른 8개의 종을 연주하는 것에 대해서 나옵니다. 
명종술이라고 하는 것으로 길게는 9시간 까지도 연주를 한답니다.

저자인 도로시 세이어즈는 독특한 배경을 가진 사람으로 기독교 사상가로서도 꽤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리디에 올라와 있기로는 1권은 무료, 2권은 3600원, 3권은 2700원입니다.
그냥 1권으로 구성해서 팔았어도 좋지 않았을가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2015.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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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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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는 소설보다는 먼저 영화로 그 명성을 전해 들었던 듯 합니다. 그레고리 펙이 주연하여 아카데미상을 받은 영화로서 '앵무새 죽이기'의 이름은 들었지만, 볼 수가 없었습니다. 93년도 번역판이 집에 있었지만, 볼 생각은 없었습니다. '하퍼 리'란 이름은 너무 낯설었습니다. 

이번에 '파수꾼'이 출간되면서 미국에서 나오는 반응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오바마 대통령 조차... 몇 마디 할 정도라니. 2000년 미국에서 성경 다음으로 영향을 미친 책을 서베이한 결과 이 책이 1위였다고 하니, 대체 어떤 책이길래 하는 궁금함에 이번에 알라딘에서 행사할 때 '앵무새 죽이기'와 '파수꾼'을 세트로 구매했습니다

'앵무새 죽이기'의 배경은 1930년대의 미국. 정확히는 1933년부터라고 합니다. 대공황으로 인해 많은 백인 가정과 모든 흑인 가정이 고통을 겪고 있던 때였습니다. 흑인들에 대한 불공정한 제도와 관행이 여전한 남부의 가난한 앨라배마 주가 지역적 배경입니다. 

이 책은 이러한 지리적 시간적 배경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어야 하지만, 사실 우리는 대략 미국의 흑백 관련한 이야기들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링컨 대통령에 대해서는 초등학생 때부터 줄기차게 들어왔고, 고교 때 공부했던 성문종합영어의 장문 독해란에 마틴 루터 킹의 'I Have a dream'이라는 명연설이 쉬운 영어로 편집되어 실려 있기도 했지요.

그래서 그런지, 큰 저항감 없이 소설에 몰입되게 됩니다. 워낙 평이하고 쉽게 글을 써서요. 등장인물들이 정말 생동감 있게 다가옵니다. 대화와 생각이 낯설지 않게 자연스럽게 흘러가서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스카웃, 젬, 딜 등의 어린아이들과 아버지인 애티커스, 모디, 캘퍼니아 등등 어느 캐릭터 하나 쉽게 내버려 두지 않고 개성있게 그려 냅니다.

매우 인상적인 상황 들도 있습니다

네가 할머니에 대해 뭔가 배우기를 원했거든. 손에 총을 쥐고 있는 사람이 용기 있다는 생각 말고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말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는 것이 바로 용기 있는 모습이란다. 승리하기란 아주 힘든 일이지만 때론 승리할 때도 있는 법이거든. 겨우 45킬로그램도 안되는 몸무게로 할머니는 승리하신 거야. 할머니의 생각대로 그 어떤 것, 그 어떤 사람에게도 의지 하지 않고 돌아가셨으니까. 할머니는 내가 여태까지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용기 있는 분이셨단다."

1부를 마무리하는 이 문장은, 이 문장이 얘기되는 그 상황의 구성 때문에 아주 감명깊었습니다.

읽으면서 마음이 먹먹해지는 바람에 책을 덮고 생각을 정리해야만 했던 부분이 윗부분을 포함해서 총 3군데가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책들은 한군데도 그런 적이 없습니다. 저 대문호 위고의 '웃는 남자'에서 한 군데, 실러의 '도적 떼'에서 한 군데 정도 였을까요. 이런 감동이라니. 이렇게 평이하게 서술된 소설에서 이런 감동을 느껴 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최근에 넘 어려운 소설들만 읽은 듯. '웃는 남자', '도적 떼', '12월 10일' 등 모두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소설이었습니다.)

1960년대 미국 민권운동의 한 복판에 출간된 이 책은 그러한 시대적 상황으로 말미암아 더 큰 영향력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50년대의 매카시즘의 광풍의 여파가 지속되는 가운데 시작된 미국 민권운동의 와중에서 이 소설의 애티커스 핀치는 가장 이상적인 미국인 상으로 미국인들에게 다가왔을 것 같습니다.

사실 '파수꾼'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책은 '앵무새 죽이기'의 후속편이 아니라, 작가가 '앵무새 죽이기' 전에 제일 처음 만들었던 초안이었으니까요. 이 초안을 검토했던 출판사 편집장의 의견에 따라서 3년에 걸쳐서 수정해서 낸 작품이 '앵무새 죽이기'니까요. 작가가 뭔가 부족해서 내지 않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고 하니, '앵무새 죽이기'보다 더 나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일부에서는 출판사의 장삿속으로 하퍼 리가 지병으로 반대 의사 표명이 어려운 때에 억지로 출판한 거 아니냐 고 비판하기도 하더군요

어쨌건 그 덕분에 '앵무새 죽이기'에 대해서 관심들을 가지게 되고 새로운 번역도 나오고 저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긴 합니다. 다른 분들도 많이들 읽으시겠지요.

이 책이 미국인들에게 오늘 날에도 감동을 주는 이유는 이 책이 그들의 역사에서 가지는 의미 때문이겠습니다. 

이 책이 미국인들이 아닌 전세계 인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미국의 흑백 이슈에 대해서 전세계적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각 나라의 상황 가운데에서 이 책이 가지는 보편적인 의미가 공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오늘 제가 감동을 받는 이유는... 
아마도 오늘의 우리에게도 이러한 애티커스 핀치라는 인물상이 절실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돌아보면 어느 시절 어느 지역에서 이러한 애티커스 핀치를 갈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을까 싶습니다.

(2015.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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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슈퍼마켓에 출근한 사이먼 신부 : 슈퍼마켓 점원이 된 신부님의 달콤 쌉쌀한 인생 이야기 - 슈퍼마켓 점원이 된 신부님의 달콤 쌉쌀한 인생 이야기
사이먼 파크 지음, 전행선 옮김 / 이덴슬리벨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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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사이먼 파크는 무려 20년 동안이나 영국 국교회의 신부였다고 한다. (영국 국교회 또는 영국 성공회는 카톨릭이 아니라, 개신교이다. ) 그는 그렇게 신부로서, 성직자로서  20년동안 지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신부직을 그만둬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다른 직장을 찾아 나선다. 왜 그만두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히지는 않는다. 막연한 짐작을 할 수 있을 뿐. 

'2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모험은 끝났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제는 제도적으로 만들어진 교회를 떠날 시기였던 것이다. (중략) 내 결정의 근간에는 분노가 자리하고 있었다. 자기자신을 위한 존재가 되기를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을 향한 분노.' 

즉, 신앙 자체에 대한 회의였다기 보다, 제도화된 교회, 권력화 된 성직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던 것 같다. 

본문 중에 그가 27세에 사제서품을 받았다 하니, 신부직을 그만 둔 나이는 47세 정도이고, 슈퍼마켓에서 3년을 일했다고 하니, 50세까지 매장직원으로 일한 셈이다. 저자의 이러한 독특한 배경은 40대 중반의 내게 특히 흥미롭게 다가왔다

20년 동안 신부를 해왔던 그에게 쉽게 문을 열어 주는 직장은 흔치 않았다. 결국 그는 대형 슈퍼마켓 체인의 매장 직원으로 일을 시작한다. 이 에세이는 3년간 슈퍼마켓에서 일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바를  모아 31개의 챕터로 정리한 결과이다. 개점 시간으로 시작하는 이 에세이는 폐점 시간으로 끝난다.

20년 동안 성직자로서 살아오면서, 세상을 간접적으로만 접해 왔을 그에게 슈퍼마켓과 같은 삶의 현장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그는 이 자전적 에세이에서 신부직을 떠난 뒤 엄습해 오는 불안감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슈퍼마켓에서 일할 때에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그를 힘들게도 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을 꾸미려 하지 않고 도리어 연약함을 드러낸다. 강한 척, 지혜로운 척하지 않고 힘들 때는 힘든 대로, 불안할 때는 불안한대로, 불만이 덮칠 때, 짜증이 날 때 또한 진솔하게 자신을 드러낸다. 그러한 꾸밈없는 모습을 읽어가다가 어느샌가 나타나는 펀치라인은 읽는 이의 감정을 즐겁게 흔들어 댄다. 

슈퍼마켓 직원으로서 시작한 새로운 삶에는 다양한 등장인물이 나타난다. 태어난 나라, 언어, 피부색, 종교들 조차 다양하다. 사피, 개리, 캐스파, 윈스턴, 브라이언, 모하메드, 페이스, 로즈메리, 토드, 스타브, 로티, 피노키오, 소니, 브린, 마닉, 콩 등.  성격들도 너무나 다양하다. 개성이 강한 그들이 서로 부딪혀 가며 슈퍼마켓이란 공간 안에서 같이 일을 하면서 수도 없이 많은 에피소드들을 만들어낸다. 

그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마치 어디선가 만났던 사람들처럼 이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어떤 면에서는 이기적이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순수하기도 한 그들의 다양한 모습을 접하면서 저자 사이먼 신부는 끝까지 따스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 물론 저자에게도 감정이 있음을 우리는 알게 되지만, 저자는 때로 그것을 극복하고 한 걸음 더 그들을 향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저자 특유의 삶에 대한 통찰이 나오는 대목이 주로 이런 대목이다. 

수도 없이 이력서를 냈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아 불안감에 빠진 자신을 성찰하면서, 
'일단 나쁜 소식을 전해 듣고 그 충격을 이겨내면 내적 자아는 회복의 기술을 연마할 수 있다. (중략) 누구든 현실을 직면하고 받아들이면 그것은 매우 심오하고도 개인적인 진실이 될 것이다. 스스로 소망하는 자신이 아니라 진실된 자신에 관해서. 즉, 우리는 끊임 없이 희망적이며 행복한 사람이고, 바로 그 지점에서 치유가 시작된다. 만일 당신이 진실이라는 양식으로 내면을 채워간다면 실로 비범한 내적 자원을 간직하게 될 것이다.'

슈퍼마켓에 출근하기 위해 아침에 일어 나면서는, 
'나는 평소보다 훨씬 즐거운 마음으로 아침에 깨어나고 싶다. 그래, 좀 더 경이로운 마음으로. (중략) 천재성이란 하루가 당신을 힘겹게 만들 때 오히려 희망을 거머쥐는 능력에 있다. 그것도 가능한 즉시.'
 
슈퍼마켓에서 진상 고객을 상대한 뒤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자신을 부여잡으며,
'나는 훌륭한 분노를 좋아한다. 훌륭한 분노는 근사하다. 반짝이게 광을 낸 은처럼 분노도 아름다울 수 있다. 자아로부터 분리된 분노는 가장 멋진 것이 될 수 있다. 간디가 보여주었듯이 소유주나 지휘자가 없는 분노는 자신의 존재를 정화하고 드러내고, 결점을 보완하는 투명한 힘이 된다.'

자신의 돈을 도둑질 당해서 잃어버린 후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겠다고 자책하는 동료를 위로하며, 
'사람들은 종종 신뢰라는 것이 열망하기만 하면 얻을 수 잇는 것이라도 되는 양, 또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도덕심을 그러모으기 라도 해야 하는 듯 착각하곤 한다. 그러나 신뢰란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선물이다.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것이다. 누군가 삶에 크나큰 은혜를 베풀 때 우리는 그를 신뢰하게 된다.'

엘살바도르의 로메로 주교를 떠올리면서, 
'여기는 엘살바도르가 아니다. (중략) 여기는 그저 영국 런던에서 형편없이 운영되는 슈퍼마켓일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모두 어딘가에서는 나름의 지도자이고, 세상에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란 없다. 지도자로서 우리가 어떤 존재이든 간에 지금 우리에게는 선택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31개 장 중 앞의 6개 장에서만도 이런 통찰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냥 교과서를 읊어내리는 상투어구가 아니라, 직접 겪은 현실에 뿌리내린 그러한 통찰.  

신부로서의 20년, 매장직원으로서의 3년. 그래서 그는 이제 과거의 그와 어떻게 달라졌을까. 어떻게 성장했을까.  
그를 직접 만나보지 못한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을 통해 뭔가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싶다. 

폐점 시간에 슈퍼마켓의 문을 닫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그 다음에는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내일도 무대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페이스, 캐스파, 브라이언, 윈스턴, 개리, 로즈메리, 토드, 로티, 모하메드, 마닉 등등, 모든 영광스러운 배역들과 함께. 우리는 내일도 일찍 일어나 다시 시작할 것이다. 사뮈엘 베케트가 말했듯이, 우리 모두 다시 시도하고, 다시 실패하고, 그리고 더 잘 실패할 것이다.'

그는 그 모든 구성원들, 장점 보다는 단점이 많아 보이는, 도저히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그들을 자신의 삶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끌어 안으려는 것 같다. 꼭 뭔가를 잘하기 위해서라기 보다, 뭔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기 보다, 살아가는 그 과정 자체를 함께 하는 구성원으로서.

책을 한 번만 읽고 끝내기에는 아까와서 두번째 읽기를 시작하며 서문을 다시 읽으니, 처음 읽었을 때는 무심코 지나갔던 구절들이 마음에 와서 딱 박힌다.

'행복한 3년이었고, 심지어 병가 한 번 내지 않았다. 그 천국 같은 날들을 어찌 하루라도 놓치길 바라겠는가?' 

라는 말로 서문을 시작한 그는 아래와 같은 말로 서문을 마무리 한다.

'사피, 개리, 캐스파, 윈스턴, 브라이언, 모하케드, 페이스, 로즈메리, 토드, 스타브, 로티, 피노키오, 소니, 브린, 마닉, 콩, 그 외에도 나와 함께 선반을 정리하고 계산대를 지켰던 모든 동료. 

그 시절, 참으로 많이 행복했습니다, 친구들. 그리고 고맙습니다.'

그 다사다난했던 3년이 행복했다고 회고하는 그. 알고 보니, 서문이 결론이었다.

'만약 그곳에 행복을 끌어들인다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반면 절망을 불러들인다면 절망하게 될 것이다.' 라고 그 자신이 책 가운데에서 말했듯이, 행복을 끌어 들였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그걸 이룬 것으로 보인다.  슈퍼마켓에서 새로이 부딪힌 일들, 사람들을 신부로서의 20년간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통찰력으로 겪어 나가는 동안 그는  주변의 사람들과 그들을 둘러싼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에 이르게 된다. 본사 청문회에 호출당한 부매니저가 같이 가 달라고 부탁하는 장면 등은, 결국 그가 그의 자리에서 주변 사람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준다.

그 모습이 그가 신부직을 떠날 때 바라던 모습이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에 뿌리박은 신앙. 온실의 화초 같은 신부직을 떠나 현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직접 부딪히길 원했던 것 아니었을까. 물론 이는 나의 짐작이다. 그는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는다.
 
이 책의 번역에 대해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양한 영국식 표현을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자상함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영어와 한국어의 언어적 차이로 인해, 영어로 읽었으면 더 재미있었을 것 같은 문장들은 많았다. 번역의 문제라기 보다는 순전히 언어의 차이로 인해서.

익숙한 일상을 꿰뚫는 깊은 통찰이 있지만, 에피소드 하나하나는 유머로 넘쳐난다.  
그 하나하나가 낯설지 않고 익숙하게 다가온다. 슈퍼마켓이니까.

기억하고 싶은 한 문장, '천재성이란 하루가 당신을 힘겹게 만들 때 오히려 희망을 거머쥐는 능력에 있다. 그것도 가능한 즉시.'

나와 같은 40대에게는 특히 강추하는 책이다.



(2015.08.01)


(이책의 별점은 4점입니다. 별점 5점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급을 위해서 남겨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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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
존 R. 스토트 지음, 정옥배 옮김 / IVP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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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의 저자는 20세기 기독교 복음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 영국 성공회의 존 스토트 목사이다. 그는 2011년 7월에 향년 90세의 나이로 소천하였다. 그의 소천 후에야 비로소 그의 저서인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대 사회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은 1984년에 처음 출판된 이래 1990년, 1999년, 2006년에 걸쳐서 개정판이 나왔다. 4판의 편집자 서문에 의하면 개정의 주요 목적은 3판의 내용 중 시의성이 별로 없는 사건이나 논쟁들을 제외하고 새로운 사항들을 추가하기 위함이었다. 20년이 넘게 진행되어 온 이같은 업데이트가 존 스토트 목사의 소천으로 더 이상 진행되지 않을 것은 역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개정 4판은 10년 전인 2006년에 출간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포함된 내용의 대부분이 지금까지도 그 의미의 중요성을 잃지 않고 있다. 


이 책은 크게 4부로 나뉘어 있다. 1부 ‘상황’은 그리스도인의 사회 참여의 필요성, 복음적 근거 및 행함에 있어서 고려해야 할 요소들을 다룬다. 2부에서 4부까지는 14개로 나뉘어진 주제에 관련된 세계적 상황을 제시하고,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행해야 하는지를 다룬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복음주의적 관점에서의 사회 참여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가 본문에서 말하듯이 ‘유감스럽게도 여전히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사회적 책임은 없으며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위임령만 받았을 뿐이라고 믿는다.’ 이는 한국의 복음주의 진영의 기본적인 사고방식과도 유사하다. 한국의 복음주의에서의 사회참여는 ‘구제’ 차원을 벗어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이 책의 1부에서 사회참여의 복음적인 토대와 다원주의적 사회환경에 대한 대응전략을 복음에 근거해서 제시한다. 저자는 ‘우리 하나님은 회개하고 그분께 돌이키는 사람들을 용서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하지만 그 하나님은 또한 정의를 바라시고 그분의 백성인 우리에게 정의롭게 살 뿐 아니라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옹호하라고 명하신다.’는 원칙을 천명하면서 복음주의 진영의 사회참여 역사를 개관한다. 영국의 존 웨슬리, 윌리엄 윌버포스와 앤서니 애쉴리 쿠퍼, 미국의 찰스 피니의 역사를 통해 복음주의자들에 의한 사회 참여가 19세기까지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얘기한다. 20세기가 시작되면서 자유주의와의 대결 등의 이슈로 복음주의 진영에서 사회적 관심이 어떻게 가라앉았는지를 돌아보고, 1960년대 이후 회복된 사회적 관심이 어떻게 1974년의 로잔 대회까지 이어졌는지를 얘기한다. 


또한 그는 사회 참여의 신학적 토대 다섯가지를 소개한다. 첫째는 하나님에 대한 더 온전한 교리를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세상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 열방의 하나님, 칭의와 공의의 하나님 등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인식이 필요하다. 둘째는 인간에 대한 더 온전한 교리로서 인간을 영혼, 육체, 사회적 관계를 포함한 총체적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셋째는 그리스도에 대한 더 온전한 교리로서 우리가 겪는 고통과 소외와 시험이 있는 곳으로 직접 들어오신 예수님을 본받아야 한다. 넷째는 구원에 대한 더 온전한 교리로서 ‘구원은 세 단계의 철저한 변혁으로, 우리가 회심할 때 시작되고 이 땅에 사는 동안 지속되며 그리스도가 오실 때 완성된다. 특히 우리는 한데 결합되어 있는 진리들을 분리하려는 유혹을 극복해야 한다’고 한다. 구원을 하나님 나라와 분리해서는 안되며, 구세주 예수님과 주 예수님을 분리해서는 안되며, 믿음을 사랑과 분리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다섯째는 교회에 대한 더 온전한 교리로서 교회는 세상에서 나와 하나님께 속하라는 부름을 받은 ‘거룩한’ 사람들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내세 지향성’을 버리고 증거하고 섬기도록 다시 세상으로 보냄받는다는 의미에서 ‘세상적인’ 사람들이기도 하다. 교회는 이러한 이중 정체성을 기억하고 보존해야 한다.


이러한 다섯 가지 토대하에서 저자는 기독교적 지성을 개발할 것을 주문한다. 창조, 타락, 구속, 완성의 성경적 실재를 통해 역사를 바로 보는 지성을 훈련해야 한다. 이러한 역사관을 통해서 하나님의 실재와 인간됨의 수수께끼를 올바로 인식하며, 사회 변혁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섬기면서’, ‘기다려야 함’을 바울의 데살로니가 전서 1:9~10절을 토대로 얘기한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4가지 선물로 우리의 지성, 성경, 성령과 기독교 공동체를 제시한다. 이러한 토대와 선물을 가지고 어떻게 세상 속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저자는 현대사회의 다원주의적 특성을 고찰하며 이에 대한 대응전략을 논의하면서 1부를 마무리한다.


2부에서는 ‘세계’라는 대주제 하에서 ‘전쟁과 평화’, ‘창조 세계를 돌봄’, ‘개발과 원조’, ‘인권’ 등의 주제를 다루며, 3부에서는 ‘사회’라는 대주제하에서 ‘노동과 실험’, ‘비즈니스’, ‘인종문제와 다문화 사회’, ‘경제적 불균형’ 등에 대해서, 4부에서는 ‘인간’이라는 대주제 하에서 ‘여자와 남자’, ‘결혼, 동거, 이혼’, ‘낙태와 안락사’, ‘새로운 생명 공학’, ‘동성애’ 등의 주제를 다루며, 결론으로 ‘기독교적 리더십에 대한 요구’를 정리하며 마무리한다. 


각각의 주제의 범위는 새삼스럽게도 전세계적이다. 한국에서 ‘사회문제’를 고민할 때 우리는 한국 사회만의 문제에 국한시켜 생각을 한다. 해외의 문제를 거론할 때도 참고사례로서, 또는 한국 사회에서의 문제와의 관련성 하에서 거론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이 영국의 복음주의자는 전세계를 그 시각으로 넣고 그 문제 하나하나를 기독교인의 당면 문제로서 진지하게 직면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반면에 그래서 그 하나하나의 문제의 구체적 내용들은 한국 사회의 당면 문제보다는 조금은 거리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문제들을 성경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관점을 수립하는 과정은 여전히 유효하며, 이러한 관점을 통해 한국 사회의 문제들을 직면하고 관점을 정립하는 것은 이 책을 읽은 한국의 독자들이 감당해야할 몫이라 하겠다.


(2016.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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