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합체‘ collective라는 말을 사용하여 인간들과 비인간 존재들 간의 연합을 묘사할 것이고, ‘사회‘society라는 말로는 우리의 집합체의 한쪽 부분만을, 즉 사회과학이발명해 낸 분할의 한쪽 편만을 지칭할 것이다. 맥락과 기술적 내용은 매번 재정의되는 것으로 드러난다. - P26

이 글의 가설은 다음과 같은 것인데, ‘근대성‘이라는 말이두 가지의 완전히 다른 실천을 지시하고 있고, 이 두 가지 실천은 그 효과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구분되어야만 하지만 최근에는 이것들이 혼동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실천의 첫 번째 집합은 ‘번역‘translation인데 이는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존 - P41

재들 간의 혼합, 즉 자연과 문화의 하이브리드들을 만들어낸다. 두 번째는 ‘정화‘purification로서, 전적으로 구분되는 존재론적 지대를 창출하는데, 그것은 한편으로는 인간 존재들의 존재론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비인간 존재들의 존재론적 지대이다. 첫 번째 집합이 없다면 정화의 실천은 헛되고 무의미해질 것이다. 두 번째 실천이 없으면 번역의 작업은 느려지고 제한되거나 심지어 불가능해질 것이다. 첫 번째 집합은내가 연결망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응하며, 두 번째는 근대적인 비판적 입장이라고 부르는 것에 상응한다. 전자는 예를들어 고층대기의 화학과 과학적, 산업적 전략, 그리고 국가의정상들의 관심사, 그리고 생태주의자들의 근심 모두를 단일한 연속적인 사슬로 연결시킬 것이다. 후자는 언제나 거기에있어 온 자연세계와, 예측가능하고 안정적인 이익과 이해관계가 있는 사회, 그리고 지시대상과 사회 모두로부터 독립적인 담론들 사이에 분할을 수립할 것이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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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이득‘을 준 이상 이는 노동이다. 그러나 그이득이 스스로에게 돌아갔고 그 보상 역시스스로가 얻은 것이므로 ‘무료‘ 노동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로부터 ‘무료 노동‘이라고 불릴 수있는 유일한 노동은 지불받지도 보상을 얻지도 않은, 다른 이를 위해 행해지는 노동이라는 점을 도출할 수 있다. - P41

가사노동의 특징적인 생산 관계가 가사노동에만 해당하지 않고 혹은 가사노동에만 한정되지 않고 다른 종류의 과업과 노동역시 특정 지으므로, 우리는 가정 내 노동이 - P46

라는 개념으로 가사노동의 개념을 대체하기를 제안한다. 연구 대상은 분명 사회학적이고 광범위한 의미의 집에서 무료로 실시되는 노동이기 때문이다. - P47

토착 이론은 개인의 신장과 그의 신체 기관에 필요한 음식의 양 사이에 상관관계가 성립한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이 전제가 분배의 원칙이 아니라 합리화에 불과하 - P86

다는 것은 이 상관관계에서 드러나는 예외의 수만 봐도 명백해진다. 남편, 사장, 아버지, 장자는 그 자신이 아무리 왜소하더라도자신과 신장이 비슷한 여성이나 노동자, 아이, 동생에게 특권을 양보하지 않는다.
필요 편차 이론은 또한 에너지 소비의 차이라는 세 번째 논거를 포함한다.
이 주장은 실제 개인이 소비하는 에너지 측정값에 근거하지 않으며, 활동과 에너지 소비 사이에 개인과 무관한 관계를 설정한다. 이 관계는 기본적으로 활동을 ‘큰일‘과 ‘작은 일‘로 분류한다. 하지만 이 분류는해당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 소비에 따른 것이 아니라 활동의 성격에 기초한다.
이때 기술적인 수행 자체는 분류의실질적 기준이 아니다. - P87

소비는 재화만이 아니라 서비스도 포함하는 문제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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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아져만 가고 있던 민족주의 의식의 파도 속에서 국제주의의 경험이 제자리를 찾는다는 것은몹시도 어려운 일임이 중일 양국 모두에서 밝혀졌다. - P638

청조의 마지막 10년 전 기간 동안은 아니더라도 마지막 5~6년 동안에 진행된 개혁 계획은 만주족 통치자들, 한족 순무와신사들이 권력을 보존하거나 심지어 확장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요소들은 목적한 바와는 정반대의 결과를져왔다. 결국 개혁들은 왕조를 멸망으로 이끌었다. - P692

19세기 말 중국이 근대적 기업을 장려했던 것은 신속하게존경할 만한 국력을 키워야 한다는 정치적 필요성에서 촉발된 것이었다. 이러한 근본적인 목표가 다양한 파벌의 정부 관료들을 단결시켜공동으로 공업화에 매진하도록 했다. - P699

하나의 새로운 사회 계급을 형성하게 된 상인, 신사, 관료들은 당시에는 아직 뚜렷한 부르주아 계급이 되지는 못했다. 대규모 조약항에서는 신사상인들의 수가 상당한 정도에 이르러 그들의 공통적인 생활 방식과 가치관 그리고 사회적·정치적 성향은 일반 - P702

대중과 뚜렷이 구별되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목표에 대한 광범위한 통일을 결여하고 있었으며 전통적인 향촌과 친족 관계에 강한애착을 갖고 있었다. - P703

공화주의와 사회주의가 중국인들의 흥미를 크게 끌었던 것은 두 이념이 세계를 석권하고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즉 중국인들은 그것들이 국가의 부강, 정치적 통일과 질서, 그리고 사회 복리를 제공해줄 최 ‘첨단‘ 사상이라고 생각했다. 새롭고 진보적인 것을 찾아 나선 중국의 지식인들은 왕왕 하나의 사상을 위해 다른 사상을 버리거나 또는 쉽게 양립할 수 없는 사상들을 하나로 결합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이념은 극심한 인격 분열로 발전하기도 했는데, 주요한 갈등은 외국인에 대한 태도를 둘러싼 차마 말할 수 없는 갈등이었다. 그들은 외국의 혁명가들에게 혈족 관계를 느꼈으며 외국의부와 막강한 힘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리고 서구와 일본의 제국주위에 분개하면서도 동시에 서구와 일본의 원조를 구했다. 제국주의가중국을 부분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상황에서 비롯된 이런 딜레마는 혁명 운동과 혁명 이념의 불안정성을 한층 더 증폭시켰다. 혁명가들 중에는 낙오하거나 변절하거나 사상을 바꾼 사람들도 있었고, 내부에서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 P821

폭정은 세 가지 상이한 방면에서 동시에 표출되었다. 민감하기 짝이 없는 종족 문제와 애국심, 민주적 의식, 경제적 이익 이 모두를 동시에 범했던 것이다(공교롭게도 이 세 가지 시책은 결국 삼민주의의 세원칙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청조에 대한최후의 심판에 있어서의 혁명파의 역할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청조는 기본적으로 정권 자체의 오류 때문에 적절치 못한 정권이라는 - P855

것이 드러났지만 그에 대한 판결은 혁명파가 전력을 기울여 수립하려고 했던 원칙(삼민주의)에 따라 내려졌다. 이 원칙들은 전적으로 분명하거나 일관된 것이 아니었으며, 그것을 옹호한 일부 사람들은 입으로만 떠들어대면서 실제로는 언제라도 어길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1911년 당시 그것들은 중국의 국민적 합의에 가장 가까운 것이었다.
마침내 혁명파가 사태의 핵심으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왜냐하면 다양한 집단들은 이 세 가지 원칙 중 어느 하나에만 찬성한 반면 혁명파만은 세 가지 모두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최종적인 반연합에 가담한 모든 파벌 가운데서 이해관계의 충돌을 조절하고 경쟁중인 집단을 규합할 수 있는 최고의 위치에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입헌주의 개혁파들 사이에서 가장 가까운 동맹 세력을 찾을 수 있었다. - P856

1911년 이후 중국의 역사는 새로운 사상과 행동의 틀을 어•떻게 짤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전개되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1911~1913년 사이 사람들의 사상과 행동이 워낙 다양하고 불안정했기 때문에 나타나게 된 변화무쌍한 이합집산은 그 자체가 혁명적 변화의 증후이기도 했다. 새로운 세력은 너무 많고 또 너무나 다양해 서로 화해하거나 구질서의 많은 생존자들과 타협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뒤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제국의 멸망을 인정하면서 장젠은이렇게 말하고 있다.

각자는 자기 의지의 주인이며 세상에 이러한 힘을 제한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1900년 이전의 중국과는 완전히 다른 나라가 탄생한 것이다. - P874

1911년의 중국은 해체된 사회가 가진 이중적 전망을 보여주었다.
즉 그러한 사회는 동시에 신군, 근대적 엘리트, 혁명파 등 1911년에왕조에 반대하기 위해 협력한 일군의 새로운 사회 세력의 온상이기도했던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생명을 서서히 영혼과 정신을 잃어가고 있던 사회의 흐릿한 틀 안에 감추어둘 수는 없었다. 당시 사람들이 말하던 소위 소년 중국Young China은 분명한 정체성을 갖지도 못한 채 극히다양한 지역적 상황에 불확실하게 기반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면 위의거품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민중의 압력으로 인해 장기간에 걸쳐 왕조의 권력이 소진되지 않았다면 벼락부자(폭발호戶), 청년 장교, 활력에 찬 대도시의 지식인들이 정말 왕조를 종식시킬 수 있었을까? 그러나 결국 황제를 퇴위시킨 것이 과연 이 소년 중국의 공격이긴한 것일까? 최고위층의 정치적 의지력의 약화와 상실 때문이 아니었을까? 도시 폭동인 신해혁명은 아편전쟁 이후의 전례 없는 사회적 변화의 결과이자, 농업 제국인 낡은 세계에서 등을 돌리고 정치 조직과 경제적 발전에 관한 새로운 기술을 서구에서 찾으려고 한 도시 엘리트들의창작품으로 해석되어왔다. 그러나 공화국은 당시 새로운 엘리트들의손에 장악되어 있었으나 그것을 탄생시킨 청조의 붕괴는 농촌 전체 내부에 깊숙한 근원을 가진 운동이 서서히 진척되면서 나온 성과였다. - P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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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유물론은 계급 차원에서의 사회적 대립에 대한 분석에 기초하고 있는데, 이때 계급은 생산 과정에서의 위치로 정의된다. 그러나 여성의 여성으로서의 상황에 대한 연구에 이러한 원칙을 적용하려 하면서도, 여성이 생산과 맺는 구체적인 관계에 대한 분석은 간단하고 완전하게 누락하고 말았다. 계급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 P6

가부장제 착취는 여성들에게특수하고도 핵심적인 공통 억압을 만들어낸다. 이때 억압이 ‘공통적‘인 까닭은 이억압이 모든 기혼 여성(시기에 상관없이 여성의 80퍼센트)에게 적용되기 때문이고, ‘특수‘한 까닭은 가정 내 무급노동을 제공할 의무가 여성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이며, ‘핵심적‘인 까닭은 여성들이 ‘밖‘에서 일을 할 때조차, 이들이 속한 계급은 여성으로서 겪는 착취에 의해 조건화되기 때문이다. - P63

즉각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주장은 가부장제의 생산 및 재생산 체계를 총체적으로 파괴하지 않고는 여성 해방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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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유산‘이라고 부르는 재산의 순환방식은 ‘시장‘이라고 불리는 순환 방식과하나하나 대비된다. 바로 ① 교환이 아니라증여에 의해서 규정된다는 점 ② 행위자들은 서로 대체될 수 없으며 모부가 매긴 규칙에 따라 엄격하게 정해진다는 점 ③ 이때의순환은 행위자들, 즉 증여자와 수혜자의 선의에 의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 P11

국가는 거대한 가족이었다. 그러나 경제학이 ‘엄밀한‘ 과학으로 굳어지자, 이 경영과 부가 인간 행위 바깥의 우주적 움직임의법칙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는 효과가 생겼다. ‘경제économie‘에 ‘정치 politique‘라는 단어가 더해지면서 경제는 ‘폴리티 politie‘ 즉 국가를 생산의 장소로 여기게 되었고 실제 생산의 장소는 도외시했다. 이처럼 경제가 생산과 그 조건들보다 교환에 더 집중하면서 경제와 시장 간의 등식이라는 이념적인 레짐이 탄생했고, 우리는 여전히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 P12

지위와 급여 면에서 사다리 아래로 추방당한 그들의 상태가 특정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 상태가결혼에 대한 객관적인 유인이 된다(델피, 「결혼과 이혼」 참조). 이러한 상황에서는 자본주의생산 양식, 적어도 노동시장이야말로 가정내부에서 이루어지는 가정 내 노동으로 인한 착취의 구조적 기반이자 선행 변수다. - P28

가정 내 생산 양식은 여성 종속의 다른 요소들, 특히 억압경제적 착취처럼 물질적인 것뿐 아니라 예컨대 물리적이거나상징적인 성화된 폭력 (대상이 여성이냐 혹은 남성이냐와 연결된)과 물리적이거나 상징적인 성적 폭력(해부학적 기관으로서의성기와 연결된)을 고려하지 않는다. - P31

사실 우리는 각 순간 제도의 존재를 그 순간의 맥락에 따라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그 지속성-지속이라는 게 있다면은 현재의 맥락에서 설명되어야 한다. - P38

우선 근본적으로 ‘대상‘은 ‘순수한‘ 사실 자체가 아니라 사실에 대한 즉각적이고비표면적인 인식으로서, 이는 세계에 대한특정한 시각, 파이어아벤트(1979)가 말하는
‘자연적 해석‘에 의해서 생겨난다. 다른 한편으로, 겉으로 드러나는 풍경은 맨눈으로는보이지 않는 이데올로기적인 요소들을 내재할 뿐 아니라 ‘사진‘으로 보았을 때 분석에적절하지 않은 구성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 P45

사회적 측면에 최소한의 중요성만을 부여한다 해도, 우리가 그저 사회가 기능함에 있어 성별이 적절하다고 주장하는 데서 만족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이 적절성이라는 것이 결국 사회적 사실이라는 점, 따라서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설명을 요구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의무가 있다. - P53

‘아무 곳도 아닌‘ 곳에 대해 이야기하는듯한 태도는 결국 ‘모든 곳‘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이는 속인적인 권위를 행사하려는태도와 함께 간다. - P62

페미니즘에 반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페미니즘이 만들어낸 개념(예를 들면 젠더) 중 일부를 빌려야만 하기 때문에, 이 대표자들은방어적인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젠더가 ‘섹스‘와 동의어로 (개념이 아닌 용어로) 쓰이는 경우에도, ‘젠더‘라는 단어가 발화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는 담론에서 싫든 좋든,
가장 일반적인 차원에서 가장 전복적인 차원‘젠더‘를 사회 분열의 주요 쟁점으로 만드는에 이르기까지 젠더에 대한 모든 함의를 끌어내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페미니즘에 적대적인 이들은 페미니즘의 영역으로 끌려 나온다. - P65

마르크스주의적 개념 가운데 일부는 부인할 수 없는 효용성을가졌기 때문에 사회를 사유하는 이들 대부분이 차용할 수밖에 없다. 그런 개념 중 내가 사용한 것은 ‘계급‘이다(「주적」 및 「결혼과 이혼』 참조). 이 용어는 앞서 필요하다고 언급한 분석 방식에 적합하다. 즉, 이미 구성된대상 자체-여기에서는 여성 억압ㅡ를 잘게 쪼개어 (특정한 시각으로 조각을 만들어 - P67

낸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겠다) 조각내는 방식 말이다. 더 정확히는 경제적 차원과 같은, 더욱 자세하게는 경제적 착취의 영역과같이 비- 특정적인 차원으로 쪼개는 것이다. - P68

젠더 개념은 처음 등장했을때 단 한 단어로 ‘성적‘ 이분법의 사회적 측면을 인정하고 그 사회적 측면을 사회적으로다뤄야 할 필요성을 포괄했으며, 결과적으로 사회적인 측면을 성의 해부학적·생물학적인 면과 분리했다. 젠더는 성 역할에 대한시선을 ‘성‘의 구성 자체로 이동하게 할 방편을 잠정적으로나마 가지고 있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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