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모든 형식체계에서 참은 정리성을 초월한다는 사실이 그 체계의 "불완전성"이라 불린다. 괴델의 증명 방법에서의 가장 당혹스러운 사실은 그가 겉보기로는 틀 안에 집어넣을 수 없는 추론 방법들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 추론 방법들은 어떤 형식체계에도 통합되는 것에 저항한다. 이렇게 해서, 처음에 보기에는, 괴델이 인간의추론과 기계적 추론 사이의, 지금까지 미지였던, 그러나 아주 중요한 차이를 발굴해낸 것처럼 보인다. 생명체계와 비생명체계의 추론능력 사이의 이러한 불가사의한 차이는 참이라는 개념과 정리성이라는 개념 사이의 차이에 반영되어 있다.또는 적어도 그것은 상황을 "낭만적"으로 보는 방식이다." - P117
어떤 회사 중역이 한꺼번에 여러 통의 전화를 받을 수 있는 멋진 전화기를 가졌다고 해보자. A와 통화하고 있는데 B한테 전화가 온다. A에게 말한다. "전화 끊지 말고 잠깐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물론 그는 A가 전화를 끊는다고 해도 개의치 않는다. 그는 간단히 단추를 누르고는(푸시(push)) B와 통화한다. 이어서 C한테 전화가 온다. 똑같은 통화 일시중단이 B에게도 일어난다. 이런 식으로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 있지만 너무 길게끌지는 말자! 자, 이제 C하고 통화가 끝났다고 해보자. 그러면 그 중역은 B에게 - P170
로 "돌아와서(팝(pop))" 통화를 계속한다. 한편 A는 그 회선의 다른 쪽 끝에 앉아서 손톱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전화기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통화 대기자를 위한 배경 음악을 듣고 있다.……………. 이제 가장 간단한 경우는 B와의 통화가 끝나면그 중역이 마침내 A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B와의 통화가 재개된 이후 새로운 통화자 D가 전화를 거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B는 다시 한번 통화 대기자상태가 되고(스택에 푸시됨), D가 통화 상대자가 된다. D와의 통화가 끝나면 B에게 돌아오고 그러고 나서 A에게 돌아온다. - P171
지능은 패턴을 좋아하고 우연적인 것은 꺼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케이지의 음악에 들어 있는 우연성은 많은 설명을 요구한다. 심지어 설명을 듣고 나서도, 메시지를 놓치고 있다고 느낄지 모른다. 반면에 바흐의 많은 작품들은 말이 필요 없다. 이런 점에서 바흐의음악은 케이지의 음악보다 더 자기-완결적이다. 그러나 바흐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에 인간이라는 조건이 얼마나 전제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 P233
체계가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생각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여전히 자신의 외부에서는 아니다. 당신은 체계가 자신을 이해하는 것과는 다르게, 체계 바깥에서, 체계를 이해한다. 그래서 심지어 그 자체 안에서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이론에 대해서도 여전히 메타이론-외부에서 보는 견해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것들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이론들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 P260
당신이 체계에서의 작업(기계-방식)과 체계에 대한 생각(지능방식)을 조심해서 구별하지 않는다면, 오류가 생길 수 있다. - P261
완전히 형식화한 다음에, 가야 할 유일한 길은 형식체계를이완시키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형식체계는 너무나도 다루기가 불편해서 모든 실용적인 목적으로는 쓸모가 없다. 따라서 TNT를 더 넓은 맥락, 즉 도출 속도를 높일 수 있도록, 새로운 추론규칙을 도출할 수 있게 하는맥락으로 집어넣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추론규칙을 표현하는 언어, 즉 메타언어의 형식화를 요구한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훨씬 더 멀리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속도 증진 묘책들은 어느 것도 TNT를 더 강력하게 하지는 않는다. 그저 TNT를 좀더 쓰기 쉽게 해준다. 단순한 사실은 우리가 수론 전문가들이 의존하는 모든 사고 양식을 TNT에 도입했다는 것이다. TNT를 더 큰 맥락속에 집어넣는다고 해도 정리들의 영역을 확장하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TNT에서의또는 "새로 개선된 버전"에서의 작업을 전통적인 수론 작업과 더욱 닮아가도록 할 뿐이다. - P308
지각을 억누르는 것, 논리적, 언어적, 이원론적 사고를 억누르는 것-이것이선의 본질이요, 이름의 본질이다. 이것이 바로 언-방식(Un-mode)으로 지능적인•것도 아니고 기계적인 것도 아니고 그냥 "언(Un)"이다. 조주는 언-방식에 있었고그렇기 때문에 그의 ‘무‘는 그것을 불문(不問)에 부친 것이다. 그 언-방식은 선사운문(門)에게는 아주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 호기심이 많은 중이 선사에게 물었다. "무엇이 진정한 길입니까? "그것은 바로 네 눈앞에 있다." 선사가 말했다. "어째서 제 눈에는 안 보입니까?" "왜냐하면 너는 네 자신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흡"그러면 선사께서는 그 길을 보십니까?" "네가 나는 어쩌지 않는다‘, ‘당신은 어쩐다‘ 등 이런 식으로 말하며 이분법적으로보는 한 네 눈은 흐려져 있다." 선사는 말했다. "저도 선사께서도 없다면 다른 사람이 그것을 볼 수 있습니까?" 나도 너도 없다면 그것을 보려는 자가 누구란 말인가? - P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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