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에센셜 버지니아 울프 (무선 보급판) ㅣ 디 에센셜 에디션 2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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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모르게 장벽처럼 느껴지는 작가들이 있는데 버지니아 울프가 그랬다. 그래서 그동안 계속 작품을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쌓아두고 있었다가 묵혀둔 이 책부터 시작해야지 하며 읽었다. 대표작인 <자기만의 방>을 비롯해 다양한 단편을 싣고 있어서 작가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내 기대를 충족시켜주었다.

울프는 19세기 말에 태어나 20세기 초까지 살며 다양한 작품들을 남긴 작가다. 아버지는 당대 영국 인명사전을 편찬할 만큼 최고의 지식인이자 에세이 작가로 이름을 날렸던 만큼 울프는 지식인의 삶을 곁에서 보고 자랄 수 있는 환경에서 성장했다.

울프가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에세이가 실려 있는데 ‘집안의 철학자 레슬리 스티븐‘이다. 그녀에게 아버지는 철학자로 비췄던 모양이다. 울프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읽노라니 내 눈에 비친 아버지는 어떤 모습인지 떠올리게 되었다. 어릴 때는 그 시절 보통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내게는 고지식하고 완고했던 가부장이었다. 시간이 흘렀어도 기본적인 스타일은 변하지 않았지만 나이가 들며 조금 바뀐 면도 있다.
울프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고 인생 선배, 지식인이었던 아버지로부터 많은 지침을 얻기도 했다. 무엇보다 작가기도 했던 아버지에게 글쓰기 비법을 얻을 수 있었던 점도 있었다. ‘되도록 적은 단어로 되도록 명료하게 의도하는 바를 정확히 쓰는 것‘이 좋은 글쓰기의 비법이라는 지침은 내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다. 글을 쓰다 보면 주제를 놓친 채 장황하게 늘어놓기 쉽다. 명료하고 간결하게 쓰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개인적으로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진 글이어야 한다는 생각도 있다. 어제 신문을 읽으면서 AI가 던져주는 글은 결이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보기도 했다(요즘은 AI의 도움을 많이 얻으며 레포트를 내서 교수나 편집자들이 비슷한 글들을 읽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이 상당한 스트레스가 된다고 한다).

<유산>에서는 길버트 글랜던이라는 남자를 만났다. 길버트 글랜던은 사고로 아내인 안젤라를 잃었다. 아내가 떠난 뒤 그는 그녀의 일기장에서 B.M.이라는 남자와의 묘한 관계에 대해 알게 된다.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아내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용기를 내서 마침내 길버트에게 얘기했다. 그는 아주 친절하게도 기꺼이 도와주었다. 조금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는 그 대화를 떠올렸다. 그녀는 자신이 너무 나태하고, 너무 쓸모없다고 느낀다고 했다. 자신의 일을 갖고 싶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다-바로 저 의자에 앉아 이 말을 하면서 아주 귀엽게 얼굴을 붉혔던 것이 기억났다. 그는 가벼운 농담을 건넸다. 당신이 나를 돌봐주고 가정을 꾸리는 것만으로도 할 일이 충분하지 않소? 그렇지만 당신에게 즐거움을 준다면 물론 반대하지 않겠소. 무슨 일이라고? 어느 구역에서? 어떤 위원회라고? 다만 당신이 아프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해요.
아내는 일을 하고 싶어했다. 이 사연을 보면서 나는 여동생을 떠올렸다. 여동생은 이른 나이에 결혼 후 가정주부가 되었고 아이를 곧바로 낳아 엄마가 되었다. 아이 둘에 시아버지를 모시며 20 여년을 훌쩍 넘게 살았다. 결혼하며 사는 동안 빠듯한 살림에 자신의 일을 하고 싶어했지만 제부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못내 답답했고 화가 났다. 여러 번 불만을 토로했지만 대놓고 제부에게 이야기를 건네지는 못했다. 사실 지금까지도 그래서 제부와는 사이가 껄끄럽다. 인사를 하곤 하지만 그 찜찜함이 내 안에 남아 볼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다.

19세기 런던 최고의 지식인 계층에서 태어나 지적 문화를 향유했던 울프였지만 당시 대다수의 여성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숨기며 ‘보이지 않는‘ 삶을 살았다. <V양의 미스터리한 일생>에서도 그런 대다수의 여성 중 한 사람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벽에 난 자국>, <큐 식물원>은 묘사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벽에 난 자국>은 대체 벽에 난 자국이 무엇인지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추리하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큐 식물원>은 식물원을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는데 사실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마치 수채화를 보는 듯 인상적인 인 기법을 통해 묘사한다.

<웃음의 가치>나 <질병에 관하여>, <여성의 직업>은 서로 다른 이야기지만 같은 맥락으로 이어지는 글이다. <웃음의 가치>에서 울프는 웃음이 쉽사리 평가 절하되는 상황에 대하여 칼날을 겨눈다. 이는 진지한 체하는 정신이 훌륭하다는 남성적인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여성과 아이들은 예술에서 희극적 태도를 중요시하는 것처럼 일상을 살아간다. 물론 삶이 비극만으로 구성되지 않지만 웃음을 통해 삶의 균형 감각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질병에 관하여>에서는 몸에 대한 기록이 부족함을 이야기하며 지성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감각에 대해서는 등한시하는 것에 대하여 비판을 가한다.
<여성의 직업>에서는 빅토리아 시대 집안의 천사(?)였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하며 여성이 자신의 일을 가져야 함을 말하고 있다. 앞으로도 여성들 앞에 많은 유령과 방해물이 가로막겠지만 그럼에도 계속 나아가야 한다고.

대표작인 <자기만의 방>은 케임브리지 대학 내 여자 대학인 거턴과 뉴넘에서의 강연을 토대로 나온 작품이다. 워낙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작품이라 읽지 않았음에도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결론은 이미 알고 있었는데 과연 이를 어떤 방식으로 끌어낼지가 궁금했다.
여성이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려면 연간 500파운드의 ‘고정 수입‘과 타인의 방해를 받지 않을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예전보다 여성이 직업 세계에 진출하고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아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일과 가사(살림, 육아)를 병행하기란 쉽지가 않은 상황에서 약 100 여 년 전 이런 글을 썼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뿐만 아니라 여성이 가져야 한다고 여기는 고정적인 편견들에 대해서도 가감 없는 말을 던진다.
여성은 평정을 지켜야 한다고 흔히들 생각한다. 그러나 여성은 남성들이 느끼는 것을 똑같이 느끼며, 자신들의 남자 형제들처럼 자신의 능력을 훈련하기를 바라고 자신의 노력을 기울일 활동 영역을 요구한다.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지나치게 엄격한 통제와 절대적인 침체에서 고통받는다. 여성은 푸딩을 만들고 양말을 짜며 피아노를 치거나 가방에 수를 놓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고 보다 많은 특권을 누리는 동료 남성들이 말한다면 그들은 도량이 좁은 것이다. 만일 여성이 관습적으로 자신들에게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것 이상을 배우려고 하거나 더 많은 일을 하려고 해도 그들을 나무라거나 비웃는 것은 분별없는 일이다.

당시 여성 작가들은 얼마 없었던 만큼 출간된 글들은 남성 작가들의 시선에 의해 좌우되었다. 문학 속에 여성들 간의 관계는 지나치게 단순했다. 대부분 여성들의 모습은 남성과 맺는 관계를 통해서만 제시되었는데 이는 남성의 여성에 대한 이해가 편파적이고 제한되어 있음을 의미했다.
울프는 앞선 여성들의 글을 보면서 배울 점은 배우고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당시 대부분의 여성 소설가들은 남성의 생활을 동경하거나 모방하여 남성의 시선에 의하여 글을 내놓았다. 반면 제인 오스틴이나 에밀리 브론테 등은 여성이 여성의 정체성으로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 작가이기에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울프는 여성 소설가들이 자신의 성의 한계를 용감하게 인정함으로써 탁월한 경지에 이르기를 열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아무리 사소한 것이든 아무리 광범위한 주제든 그냥 써라!˝라는 말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말이다.
내가 쓴 글이 너무 보잘 것 없어 보여서 타자를 치기를 망설이거나 그만두지 말고 용기를 내 써보라는 것이다.

울프의 말은 지금도 현시성을 가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여성의 삶이 계속되는 한 이는 앞으로도 계속되지 않을까.

내가 여러분에게 더 많은 책을 쓰라고 권하는 것은 여러분 자신에게 그리고 세계 전반에 도움이 될 일을 하라고 촉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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